장편소설
因緣
<제2편 방황의 땅>
② 이태원의 파랑새-6
그러나 경산은 정숙의 남편 양지호가 지금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부군께선 지금 무슨 일을 하시나요?”
“.....”
그러자 정숙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문득 몸을 일으키더니 안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가는 거였다.
경산은 의아심이 들기는 하였지만, 옆에 눈을 말똥히 뜨고 조용히 앉아있는 용훈의 어깨를 보듬으면서 무심코 자개문갑 쪽으로 눈을 돌리어보았다.
‘아!’
경산은 깜짝 놀랐다. 보기만 하더라도 몸서리가 치어지는 일본순사의 모자가 눈에 띄었던 거였다. 그 순사모자는 개똥모자와 비슷하게 채양이 짧고 뒤에 테를 두른 것인데, 문갑으로 치장한 바로 옆벽의 벽장문이 빠끔히 열리어있는 문틈사이로 엿보이었다.
“하이! 경산님, 참으로 오랜 만입니다.”
그때 정숙이 나간 문으로 양지호가 성큼 나타나고 정숙은 그의 뒤를 따라서 들어왔다. 그는 일본말투로 경산을 반기면서 방으로 불쑥 들어선 거였다. 예전에도 시커먼 구레나룻이 번지었지만, 지금은 얼굴마저 둥글뭉수레한 데에다 너부데데한 게 우람스럽고 두터워 보이었다.
경산은 그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어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굽히어 그의 인사를 받았다.
“경산님, 일어서지 마시고, 그리 앉으십시오. 제가 인사 올리겠습니다.”
“아니예요. 인사는요? 그냥 앉으세요.”
경산은 그의 인사를 한사코 만류하면서 주춤 서있었다. 그러자 그는 굳이 앉기를 재촉하였다.
“경산님, 앉으세요. 오랜 만에 정리로 인사드린다는데요. 우리 정룡이 아빠가 그동안 경산님 말을 많이 했더랬어요.”
게다가 박정숙조차 앉기를 종용하자 경산은 하는 수 없이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그러자 그가 큰절을 넙죽이 하는데, 경산은 맞절로서 그의 절을 받았다.
“경산님, 그동안 평안히 잘 지내셨습니까? 이렇게 오랜만에 저희 집을 잊지 않으시고 방문해주신데 대해, 고맙고 반갑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저야, 여자로서 행불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양 선생께서는 큰일을 하실 분으로 내가 짐작하고 있는데,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경산은 예전에 이 남자를 장작개비로 사정없이 투들기어 반죽음을 시킨 일이 너무도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이렇게 그의 근황을 물은 거였다.
그런데 그는 선뜻 입은 열지 않고 계면쩍은 듯이 싱글벙글 웃기만 하면서 얼른 입을 떼지 않고 있었다.
“여보! 경산님께서 물으시잖아요. 얼른 말씀을 드리세요.”
경산은 정숙의 말에 지금 양지호가 어려운 지경에 빠지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내가 기왕 여길 왔으니 예전 정리도 있고 하니, 당신의 운세를 한번 짚어주고 가렵니다. 무슨 생이신가요?”
어차피 경산은 거의 매일같이 주로 서울장안의 조선왕가들에 출입하면서 사람들의 신수나 사주를 봐주는 일을 하고 있으므로, 지난날 너무나 가혹하게도 그를 다잡던 일을 떠올리면서, 행여 그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도움말 한마디쯤은 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던 거였다.
첫댓글 순사 모자에는 어떤 사연이 있고
경산의 운세에는 양지호가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집니다 ^^*
경산은 일찍이 주역을 독학했고 무진에게 배운 역술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게 되는데, 그 스승에 그 제자인 고로 누구든 곧고 바르게 살아가면 횡액이 없을 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술이 본래 현실적인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면이 있지요. 그 믿바닥이 정직 성실한 생활 자체가 말입니다. 세상이 무도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