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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가족의 떼죽음, 그리고 복수... 작은 섬마을서 벌어진 기막힌 사건 [박만순의 기억전쟁2]
박만순2024. 6. 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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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갈등 극단적 폭발이 불러온 신안 암태도 민간인학살
[오마이뉴스 박만순 기자]
사촌 동생과 육촌 동생은 이상득의 하숙집에 들이닥치고서도 한참이나 말문을 못 열었다. 목포항에서부터 뛰어온 탓이었다. 한숨을 돌린 뒤에서야 사촌 동생이 말했다.
"형님 큰일 났어라우. 아버지랑, 큰아버지랑, 증조할아버지가 죽게 됐어라우."
"그게 뭔 소리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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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의 본가인 전남 무안군(현재의 신안군) 암태도에서 뭔가 큰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인민군 점령이 시작되면서 두 차례나 암태분주소에 구금됐던 이상득으로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이었다. 자신은 간신히 호랑이 굴에서 벗어났지만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 10여 명이 "오늘을 넘기면 죽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니,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가족 10여 명이 다른 세상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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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신안군 암태지서 터
ⓒ 박만순
앞뒤 잴 것도 없이 목포경찰서를 찾아갔으나 서장은 자리에 없었다.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던 곳에 주둔한 일명 '백부대'(부대장 : 백남표 소령)를 찾아가 "오늘 중에 암태도로 진주하지 않으면 우리 부모들이 다 죽게 된다"고 사정했지만, "군의 사정상 그럴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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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대를 나와 대로를 걷는데 권총을 차고 말 채찍을 든 이가 경찰서장이란 말을 듣고 무턱대고 무릎부터 꿇었다. 사정을 이야기했으나 경찰서장의 부하들에 의해 제지를 당했을 뿐이었다.
이상득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무리 급하더라도 절차를 밟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목포경찰서의 지인을 물색했다. 한 다리 건너 알고 있는 송아무개 경위가 중책을 맡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다른 이를 통해 송 경위에게 부탁한 것이 효과를 봤는지 드디어 목포항에서 백부대 무장병력 12명을 포함한 총 18명이 군사 작전상 징발한 여객선 금성호에 승선했다. 1950년 10월 15일경 오후 6시였다. 이상득의 마음은 급했지만 금성호는 암태도로 직항하지 않고 안좌도를 지나 마진에서 하룻밤 묵었다.
'오늘 밤을 넘기면 우리 가족이 몰살될 텐데'라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완전무장한 해병대가 야간전투(상륙)를 회피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음날인 10월 16일경 암태도 항구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이미 경찰 선발대가 와 있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경찰은 지방 좌익을 소탕하기는커녕 지서와 면 소재지만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백부대 일행이 암태지서가 있는 남강부두에 하선했지만 그때까지 암태지서 경찰들은 지방 좌익들이 암태도 동부지역에서 우익인사 가족들을 집단학살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결국 이상득이 집안 동생들로부터 가족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틀이 지나는 동안, 그의 가족 10여 명은 다른 세상 사람이 됐다.
그가 기진맥진해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큰아들의 헌 오바(오버코트)를 입고 새끼로 묶은 채 앉아 있었다. 그동안 도망 다니면서 고생한 모습을 이상득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다. 그렇게 도망 다니는 와중에 어린 손녀를 잃기도 했다.
아기 업은 채 죽은 여성...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가족은 모두 죽었다지만 시신을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학살됐다는 진작지 모퉁이 암태도 등대 부근을 샅샅이 뒤졌다. 천만다행으로 그는 아버지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희한하게도 아버지 시신이 바닷물에 떠내려가지 않고 갯가에 있던 것이다. 나머지 가족의 시신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학살된 이들의 모습을 목격한 것 중에 충격적인 장면이 있었다. 10살이 채 안 돼 보이는 어린이 셋이 철사에 목이 매여서 흡사 마람(이엉의 방언) 엮듯 엮어져 바닷가에 떠다니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무슨 이념이 있고 정치색이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또 다른 곳에서도 끔찍한 장면이 있었다. 아기를 업고 있는 여성의 시체였다. 포대기에 업혀 있는 아기의 목에 뭔가 새카만 게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엄마의 머리를 아기 목에 묶은 것이다. 헛구역질이 나왔는데, 아기가 죽는 순간을 상상하니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이렇게 많은 주검들을 목격했지만 결국 아버지 이외의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팔금면(팔금도) 고산마을로 갔다. 그곳 주민들은 인근 바닷가에서 떠밀려 온 시신들의 특이사항을 담은 '시체 기록부'를 작성해 놓았다. 예를 들면 성별, 연령대, 옷, 머리 모양뿐만 아니라 금니를 했으면 아랫니인지 윗니인지 등을 기록한 것이다.
그곳에서 작은아버지로 추정되는 기록이 있어 흙을 파헤쳤다. 작은어머니는 남편이 옥양목 중의적삼을 입고 나간 것 같다고 했는데, 시신은 모시 바지와 저고리, 허리띠 차림이었다.
작은집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사촌 여동생이 '자기가 아버지 허리띠를 꿰매서 직접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동행했더니 작은아버지가 확실했다. 그렇게 작은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이상득, <나의 자서전, 가르치며 배우며>, 1991).
그렇다면 이상득의 가족 10여 명은 왜 지방 좌익에게 죽임을 당했을까? 이상득은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다고 자책했다. 해방 후 목포공업학교 교사였던 그가 6.25 때 암태도 본가로 와서 분주소에 두 차례나 구금됐다가 석방돼 목포로 간 것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즉, 자기가 끝까지 남아 총대를 메고 가족을 지켰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이 집단학살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상득의 막내 삼촌 이아무개는 6.25 당시 경찰 간부였기 때문이었다. 이아무개는 한국전쟁 전에 제주도 파견근무를 명받았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거부했다. 그러다가 전쟁이 났고 암태도에서 좌익들에게 붙잡혔다.
그는 뒷결박을 당한 상태에서 암태도 마명마을 갯벌에서 도주를 했다. 하지만 횃불을 지켜들고 완장을 찬 이들에게 새벽에 붙잡힌 그는 마명마을 큰길에서 난도질을 당했다. 결국 경찰 간부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상득의 아버지, 둘째 작은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등 10여 명이 떼죽임을 당한 것이다.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암태도 민간인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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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구섬 지방좌익들이 우익인사들을 학살한 뒷구섬
ⓒ 박만순
여전히 암태도의 민간인학살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임자도는 진리교회 교인을 포함해 최소 992명의 주민들이 지방 좌익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자은면의 민간인학살도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대율리 사건이 진실규명 됐고, 백산리 와우마을 사건도 현재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 중이다.
하지만 암태도는 신안군에서 세 번째로 민간인학살 규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까지 그 실체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 이상득의 자서전이 암태도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군경에 의해 큰형을 잃은 서아무개의 최근 증언은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서아무개는 지방 좌익 박아무개가 주동이 돼 우익가족, 경찰 가족 100여 명을 자은면 뒷구섬에서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고 했다.
이상득의 자서전과 서아무개의 증언을 종합하면 암태도 분주소와 면화 창고에 구금된 이들이 등대 부근과 마명마을, 뒷구섬 등지에서 학살됐음을 알 수 있다.
목포역 앞에 있는 영단(營團) 제9공장(정미소)를 개조한 목포공업학교는 도저히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해방되던 해에는 모스크바 삼국 외상회의 결정을 둘러싸고 찬·반탁 갈등이 학생뿐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있었다.
암태도 신석리 익금마을 출생의 이상득은 암태보통학교와 일본 경도(교토)의 성봉중학교를 졸업하고 암태국민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해방 후에 목포공업학교 교사를 맡게 된 것이다.
1946년 국립서울대학안이 발표되자 우익계인 학련(학생연맹)의 지지 입장과 좌익계의 반대 투쟁이 갈등의 극을 이루었다. 학련 소속 학생들이 수업 거부를 해도 선생들은 일언반구조차 못했고, 교무실에서 행패를 부려도 마찬가지였다. 교권은 무너졌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학련 소속 학생들의 폭행이 지속됐다.
그러던 중 인천공업학교에서 온 교감이 서울, 인천 등지에서 데려온 학생들을 친위대(?)로 만들어 교내 분위기를 악화시키자 이상득이 강력히 항의해 목포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교감과 연계된 우익 학생들(학련)의 편 가르기와 폭력행위에 항의한 것을 두고 좌익교사가 학생들을 선동해 학련 학생을 구타했다고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무정부 상태의 학교 분위기는 이상득의 마음을 천 갈래 만 갈래 갈라 놓았다. 그러던 중 6.25가 터졌다. 본가가 있는 암태도로 피난했는데, 암태분주소(지서)에 구금됐다. 학교 선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이후 좌익계 제자들의 신원보증으로 석방됐다. 하지만 완장 찬 이들이 분주소에 구금돼 있던 이들을 10명 단위로 암태도 바닷가에서 수장시킬 때 해군 함정에게 발각됐다. 수장될 뻔했던 이들은 모두 살아 돌아오고, 죽이려 했던 이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복수의 일상화
이 사건으로 이상득은 재수감됐다. 그곳에서 수감된 이들, 구타당한 이들, 인간 사냥터로 끌려 나가는 이들 중에는 상당수가 부자나 우익이라기보다는 완장 찬 이들과의 감정적 대립에 의한 사감(私感)이 크게 작용한 것을 목격했다.
두 차례의 구금에서도 구사일생으로 목포로 피난 간 이상득이 군경수복 때 암태도로 돌아왔다. 가족의 시신을 마무리 진 한참 후에 남강 근처 문아무개 집 마당에서 유가족 회의가 열렸다.
"부역자의 가산을 몰수하고, 그 가족들은 수단과 방법을 똑같이 해 전부 죽여버리자." 아기부터 노인까지 부역자의 가족을 몰살하자는 거였다. 이상득이 회의장에 갔을 때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다.
이상득은 호소했다. "우리가 똑같은 방법으로 앙갚음을 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면 공산당과 다를 게 무엇입니까? 가산은 몰수하되 그 집에 놓고 봉인만 하고, 무차별 학살만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그의 진심은 통하지 않았다. 지서에 찾아가 똑같이 호소했다. 지서주임이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가족들을 설득했다고 한다(이상득, <나의 자서전, 가르치며 배우며>, 1991).
하지만 실제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부역자 가족이 치안대원들에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물론 이상득의 호소와 건의가 군경에 의한 죽임을 최소화했을 수는 있을 것이다.
결국 주민들은 해방 후부터 지속된 좌우 갈등이 해소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없었다. 6.25 전쟁을 기해 그 갈등이 극단적으로 폭발했기 때문이다. 여러 형태의 사감이 인민군 시절 지방 좌익에 의해 집단학살을 불러왔고, 수복 후에는 '복수'의 일상화가 벌어졌다.
이상득의 '화해'의 정신은 제대로 펼쳐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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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신안군 암태도, 자은도, 임자도 수복지도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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