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라에서 백두까지! 탐라특집: 김포발 제주행 08:20 아시아나 OZ8921 비행기에 몸을 싣고.. 1926년(병인)에 대동보 수보차 제주에 계셨다는 증조부 양산공의 기록으로 접했던 제주와 모슬포..
그 세월..
난생 처음 가는 탐라도..
○ [서종소식] 한라에서 백두까지! 탐라특집: 부사공파와 벽동공파
• 한라에서 백두까지! 탐라특집: 부사 & 벽동 유적지 탐방
- 일시: 2019년 7월 13일(수) 08:20~09:35 김포발 제주 착
- 장소: 제주 – 제주부사 유적지 - [중식] - 모슬포 – 벽동 유적지 - [석식] - 탐사대담 - 숙소
- 참석: 1. 군성 부사회장, 2. 용철 부사총무, 3. 군익 벽동회장, 4. 용일 벽동총무, 5. 석호 부사고문, 6. 해생 부사고문, 7. 상훈 부사청년회장, 8. 재현 종친(38부사), 9. 봉환 감사, 10. 민석 이사, 11. 일현 이사, 12. 세환 총무, 13. 근일 종친(37부사)
- 협찬: 부사공파, 벽동공파, 민석 이사, 일현 이사, 봉환 감
사
⎆ 07:30 김포공항 집결(아시아나항공 데스크 앞)
08:20 김포발 이륙
09:35 제주착; 제주 종친님 합류(석호 부사고문, 용철 부사총무, 상훈 부사청년회장; 군익 벽동 회장, 용일 벽동총무)
10:20 ~ 애월읍 광령1리 산 47-1번지 부사 세장지
문헌19세 부사공 승겸 – 20세 검정공 우맹 – 21세 판관공 충남 – 22세 주부공 명도 – 23세 가선대부 입도조 세택 – 24세 참봉공 온 – 25세 조산대부 성춘 – 26세 별시위공
영 – 27세 장자 득운 & 차자 덕운 – 28세 ⓵일 ⓶백 ⓷배 ⓸림 – 29세 ⓵지번 ⓶지민 - 30세 ⓵창(漲 + 탐라부씨) ⓶수방(秀芳 + 여산송씨)
11:10 ~ 애월읍 광령리 산123번지 합동제단 조성 예정지<진숫못; 30세 선조님부터 모실 예정;
오는 11월 14일(목) 첫 세일사(歲一祀) 봉행 예정>
문헌31세 ⓵언상(彦祥) ⓶몽상(夢祥) ⓷희상(希祥); 전력부위공 언평(彦評 + 남양홍씨) - 32세 선무랑공 정한(廷漢 + 제주고씨) - 33세 ⓵처사공 경노(景魯 + 김해김씨 +김해김씨)
[좌] 입도조13세 처사공 응렬계 가족묘지; 33세 ⓶ 장사랑공 응렬(應烈 + 밀양박씨);
34세 ⓵두만(斗萬 + 김해김씨)
- 11:40 ~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139번지(신물) 도사공 세번(世蕃) 묘소 & 묘표, 시비
▶ 문헌19세손 도사공 이세번(제주입도조): 1) 전북 정읍 출생 2)중종14년(1519) 기묘사화 때 제주로 오시다. 3)중종21년(1526) 44세로 서거하심.
▶묘비를 산소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세운 까닭: 옛날 제주에 묘소 명당 세 곳이 있는데;
제1묘자리가 고산리 139번지(신물)요, 제2명당이 고산리 마을 당산봉 안쪽이요,
제3명당이 안덕면 감산리 남쪽(일주도로변)이 꼽혔다.
도사공 이세번 선조와 임헌령 ·
지참사 세 분이 의형제로 돈독하셨는 바, 돌아가신 순번에 따라 세 명당 중 하나를 차지 하기로 했는데, 도사공께서 먼저 하직하시어 이 자리에 모셨다 한다.
배의 형태를 한 이 자리는 산터가 너무 좋아 묘소와 비석이 가까이 있으면
가라앉을까 싶어 조금 떨어진 위치에 비석을 세웠다. 묘비 병좌지원(丙坐之原) 자리는
⓵모나지 않은 온화한 기풍에 ⓶웅장함이 돋보이는 맥, ⓷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의
균형을 이룬 혈자리이며, ⓸기운차게 들어 온 용세가 휘감는 전설적인 명당으로 후대
자손들이 번성할 묘자리로 전해져 온다.
□ 부사공 유적지 탐사
고부이씨 부사공파(府使公派) 세천지: 제주시 애월읍 광령1리 산 47-1번지
19세 담양부사공 승겸(承謙) 단비(壇碑): 제주시 애월읍 광령1리 산 47-1번지
23세 중추부사공 세택(世澤) 입도조비: 제주시 애월읍 광령1리 산 47-1번지
33세 차사공 경노(景魯 + 김해김씨 +김해김씨)
5. 33세 응렬(應烈 + 밀양박씨); 광령리 2878번지 경좌
6. 34세 두만(斗萬 + 김해김씨) : 광령리 2878번지 경좌
7. 처사공 응렬계 가족장지: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
8. 36세 이락당 계징(啓徵) 묘소: 제주시
□ 벽동공 유적지 탐사:
1. 19세 도사공(都事公) 세번(世蕃) 묘소: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139번지(신물) 병좌
2. 19세 도사공 세번의 배(配) 공인(恭人) 월성석씨지묘: 서귀포시 회수동 755번지(석굴왓) 축좌
3. 20세 성균관 진사공 충현(忠賢) + 배 동래정씨 쌍조(雙兆):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941번지
(산방산서쪽) 갑좌
4. 21세 대정향정공(大靜鄕正公) 우(宇) 묘소: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941번지(산방산서쪽) 갑좌
5. 21세 대정향정공(大靜鄕正公) 우(宇)의 배 광산김씨지묘: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말오름) 간좌
6. 21세 유향좌수공(留鄕座首公) 주(宙) + 배 김해김씨 쌍조(雙兆):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941번지
(산방산서쪽) 갑좌
7. 21세 유향좌수공(留鄕座首公) 주(宙)의 배 제주고씨 묘소: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1525번지
(붉은밭) 자좌
8. 21세 유향좌수공(留鄕座首公) 관(寬) + 배 김씨 쌍조(雙兆):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1980번지 계좌
9. 제주 대정 삼의사비: 변방에 우짖는 새(이재수의 난)
==》》 1. 1896년 한불수호조약으로 천주교인을 여아래(나 임금 대하듯하라) 측서. 천주교의 왕성한 포교 활동. 타락한 일부 교인들이 부폐한 붕세관의 앞잡이로 나서 폭압을 일삼음. -->> 민중의 반발이 목 밑까지 차오름. -->> 두려움 느낀 천주교인들이 관군의 무기고를 털어 기습 공격, 농민을 상해함.
==》》 이에 분노한 제주 농민들이 고부인 이재수를 장두로 불꽃처럼 함께 일어섬.
2. 1901년(신축) 조정에서 파견한 붕세관과 이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교인들의 학정과 착취가 극에 달함. 이제수의 난!!! 세 장두 자진 출두!(이해 8월 500여 명의 장두를 대표하여 선두에 나섰던 이재수•오대현•강우백 장두, 형장의 이슬이 됨.) -->> 이를 계기로 대한국 정부와 프랑스 선교사 신부가 농민들이 요구해 온 제12개 조항 약정 체결. 평민과 교인이 화목하게 하는 계기가 돰.
3. 1961년 제주대정 삼의사비 건립. --> 37년 후인 1999년 대정읍 청년들이 옛비를 땅에 묻고 새로운 대정 삼의사비를 건립하고 이들 제주 삼의사의 숭고한 애국 충절을 기림.
===>> - 중식: 수눌음 방어자리(벽동종회 협찬)
===>> - 석식: 큰물 - 살아있는 해물탕(부사종회 협찬)
■ 탐사대담 -> 한라에서 백두까지! 탐라특집:
# 고맙습니다! 제주 인구 16위에 해당하는 성씨지만 ‘고’ · ‘양’ · ‘부’ 다음으로 큰 존재감을 키워 지켜오고 계신 우리 고부이씨 종친님들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어 참으로 뿌듯합니다. 종사연구소까지 두고 과거 역사를 정리하는 한편, 여기 그리고 지금!!! 미래를 열기 위해 종인 모두 똘똘 뭉친 이 응집력.. 제주도 부사공파와 벽동공파 종친님들이 우리 고부이씨 가문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회원 수첩에 수년의 노고와 수고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귀한 자료를 제공해 주신 벽동공파의 숭조지심, 광령1리의 세장지에 이어 광령리 산123번지에 새로운 합동제단을 준비중이신 부사공파 종인님들의 위선사업<爲先事業; 조상님을 먼저 생각하며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부사공파의 문중 대사. 11월 14일(목) 첫 세일사 봉행 예정>!!!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더더욱 융숭한 식사와 역사 탐방 안내에 잠자리, 배편까지 협찬해 주신 제주 종친님들께 거듭 감사 말씀 올립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더욱 알찬 ‘서종소식’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큰물 - 살아있는 해물탕: 제주시 조공포길 49(064-712-8253)
• 햐다미 펜션: 제주시 서해안로 502(예약•064-711-7900, 7901)
• 노루물 펜션: 제주시 애월읍 광령8길 60(예약•064-748-8250)
⇨ 고부이씨 부사공파 파조 승겸(承謙):
우리 고부이씨의 가계(家系)는 시조의 16세손에서 크게 9파로 번창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17개파로 분파되는데; [1] 사서공 회파(晦派): 16세 시강원 사서공 회(晦) 선조로부터 설파된 1)집의공파와 2)부사(府使)공파; [2] 사서공 삭파(朔派): 역시 16세 시강원 사서공 삭(朔) 선조로부터 분파된 3)처사공파, 4)군수공파, 5)석호공파, 6)벽동공파, 7)설서공파, 8)전적공파; [3] 진사공 망파(望派): 16세 망 선조가 설파한 9)진사공파; [4] 중랑장 초파(初派): 10)병조판서공파와 11)판결사공파; [5] 해남공 국파(國派): 18세 림()이 파조인 12)해남공파; [6] 판삼사공 서파(瑞派): 13)문안공파와 14)진원공파; [7] 판관공 진수파(眞粹派): 사적 부전(史籍 不傳); [8] 참판공 효번파(孝樊派): 26세 춘장(春長)이 파조인15)부사(府事)공파와 21세 정(貞)이 파조인 16)부장공파; [9] 사예공 참의공파: 17세 공조참의공 운재(運載) 선조님이 파조인 참의공파가 그것이다.
제주의 고부이씨는 사서공 회파의 부사공파와 사서공 삭파의 벽동공파에 속한다.
부사공파는 평양서윤공 15세 문수(文守) 중시조의 장남 회 선조의 증손인 담양부사공 승겸(承謙)이 파조다. 안평부원군 현즙(賢楫)이 조부요, 우리 이문의 종손인 사헌부 집의공 백첨(伯瞻)의 차남이요, 사직공 석지(錫祉)의 아우이시다.
⇨ 고부이씨 부사공파 세장지(世藏地) 조성기:
이 터는 제주시 애월읍 광령1리 산47-1번지로 고부이씨 부사공파 후손들이 오래 마음 속에 묻어두었던 바램이 이루어진 곳이다. 오랜 세월 가보(家譜)로만 접하던 조상님들이기에 자그마한 단비(壇碑)로 자손된 도리를 조금이나마 했는가 하는 위안을 바라면서, 문헌29세 지번(之番)의 배 세장지(世藏地)를 조성하고, 자손들이 그 음덕(蔭德)으로 친목(親睦)과 화합(和合)을 이룰 수 있는 기반까지 마련하게 되었으니, 그 크나큰 남김은 가슴 훈훈한 유덕(遺德)이다.
세장지 역내에는 고부이씨 부사공파 파조 문헌19세 담양부사공(潭陽府使公) 단비에서 30세 조상님까지 단비와 안장(安葬)으로모셔 조상님을 모시는 영원한 영면영역(永眠靈域)이 될 것이다.
해가 바뀌면 각 가문마다 봉헌하는 시제(時祭)도 이곳에서 모시게 되며, 후손들이 조상님에 대한 ‘얼’을 체험하는데 있어 큰 교육장이 되길 바라며, 또한 이 영지(靈地)는 그동안 살아오며 이웃과 친족간에 쌓였던 조그마한 한(限)들이 유구(悠久)한 세월 동안 품어온조상님의 ‘넋’을 생각하며 깨끗하게 씻어주는 영지가 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이 세장지를 조성하느라 바쁜 일도 접으면서 땀흘려 수고한 집행부 임원 및 제족(諸族)의 솔선수범에 감사 말씀을 올리고,부사공 후손들 모두 합심노력하여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성원을 아끼지 않으셨기에 오늘 이 영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진솔한 마음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2007년 5월 7일 부사공파 종친회장 승림 근찬
⇨ 고부이씨 부사공파 세장비(世藏碑) :
한라영봉의 정기가 뻗어내린 애월읍 광령리(판이왓) 경(境 땅)에 위치한 이 자리는 고부이씨 담양부사(潭陽府使) 승겸(承謙) 후손들의 세장 영지((世藏靈地)이다.
부사공파의 파조 승겸은 문헌공 시조님의 19세손으로 어려서부터 문장이 뛰어났던 사헌부 집의공(司憲府執意公) 백첨(伯瞻, 집의공파 파조)의 아들이다. 세종10년(甲申 1428) 서울 사온동 본가(지금의 사직동)에서 태어난 사직공(司直公, 정5품 군직) 석지(錫祉)를 형님으로, 이 뒤를 이어 태어났으나 안타깝게도 공의 졸(卒)과 묘(墓)가록(家錄)으로 전하지 않는다.
공의 고조 문수(文守)는 보승랑(保勝郞) 평양서윤이요, 증조 회(晦)는 ‘사서공 회파(晦派)’의 중시조(中始祖)로 시강원 사서요, 조부 현즙(賢楫)은 안평부원군이요, 부 백첨은 전시[殿試, 1419, 복시(覆試) 급제자 중 임금이 친히 시문(詩文)으로 뽑는 최종 과거시험)에서 책문(策文)으로 발탁되어 승정원 주서(注書, 1423), 한림(翰林, 1428), 의금부 진무(義禁府鎭撫)로 함길도(咸吉道)에서 진정(賑政 흉년에 백성을 규휼하는 행정)을 규찰하고,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 1436), 김해부사(金海府使), 무진부사(茂珍府使)등 내외직을 두루 거쳐 사헌부집의에 제수되어 봉직했으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는 것을 보고 장남 석지를 먼저 부안으로 보내고, 세조(世祖)의 원종공신(原從功臣) 녹을 거절하고 은거하시다가 집의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집의공의 차자인 문헌19세 부사공은 문과에 등과하여 담양부사직에 지신(持身)하여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후에 부사공파조가 되셨다. 공께서 우맹(宇孟)을 낳으니 문과 급제하여 첨정(僉正)이요, 첨정공이 충남(忠男)을 낳으니 판관 행 사헌부감찰(判官行司憲府監察)이요, 감찰공이 명도(明道)를 낳으니 훈련원 주부(主簿)요, 주부공이 문헌23세 세택(世澤)을 낳으니 가선대부 중추원부사(中樞院府事)로 사라지란(啥喇之亂) 이후 고부에서 제주도로 오시어 제주시 삼도리(三徒理)에 거주하여 입도조(入島祖)가 되셨고, 가선대부께서 온(薀)을 낳으니 장릉참봉(莊陵參奉)이요, 참봉공이 성춘(成春)을 낳으니 조산대부 진휼관(賑恤官)이요, 조산대부께서 영(英)을 낳으니 별시위(別侍衛)를 지내셨다.
문헌26세 별시위공께서 두 아들을 두시니 득운(得運)이 장남이요,가선대부 덕운(德運)이 차남이다. 가선대부공께서 4남을 두시니1)일(逸), 2)백(栢), 3)배(培), 그리고 4)림(林)이며; 공의 셋째 배(培) 선조께서 종가의 대를 이어 두 아들을 두시니 문헌 29세 지번(之蕃)이 장남이요, 지민(之敏)이 차남이며; 이 이후 부사공파 후손들은 약기(略記)한다.
유구한 세월이 가고 조상의 유지(遺址)를 후손들이 보존하지 못하여 유실(遺失)되어 자손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을 애석하게 아로새겨 추모의 단비를 세우게 됨을 가슴 아프게 새겨두고자 한다.
이 세장지는 시조 29세손 지번 선조의 배위고씨(配位高氏) 묘전(墓田)이 도시택지개발로 인하여 그 보상금으로 이곳에 새로이 세장지를 조성하게 됨은 조상님이 후손에 남기신 크나큰 음덕으로 그 덕은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이 세장의 땅은 오가조상(吾家祖上)의 영세안민(永世安民)의 터임은 물론 오가후손(吾家後孫)의 무궁한 안식처가 될 것이라.
따라서 이곳은 후손들이 발복(發福)과 평안을 바라시는 조령(祖靈)의 음덕과 조상의 자랑스러운 가통(家統)을 이어 숭조보본(崇祖報本)을 명심하여 모든 자손들이 효성(孝誠)을 가문의 번영과 화목을 다짐하는 자자손손 성역이 될 것이다.
2007년 5월 7일 시조 37세손 부사공파 종친회장 승림 근찬
# 오호라~ 군자의 도(道)는 쇠미(微衰)하여 박상지과(剝上之果; 박괘 剝卦는 산이 땅에 붙음. 양이 쇠하고 음이 성하며 소인이 번영하고 군자가 곤궁함. 剝卦上九에서는 백성이 평화에 복귀를 희망함)와 같다. 그러나 이락당 공은 능히 수정(守貞 절조를 지킴)하고 독립하여 복(服)은 선왕의 복(服)을 입고 선왕의 책을 읽으며 선왕의 행(行)을 행하여 가계(家計)가 누공(屢空 여러 번 궁함)하여도 걱정하지 아니하고, 오직 도를 앎을 귀히 여겨 학문에 이르지 못함을 걱정하니 비록 그 천품의 통일함에 있어 학문의 힘을 속일 수 없다. 이는 그 행치(行治)의 대략이며, 또 그 심오한 덕을 필자가 가히 미칠 수 없으니 오직..
⇨ 고부이씨 9대종파(宗派)
사서공 회파 회(晦) 1)집의공파 18世 백첨
2)부사(府使)공파 19世 승겸
2. 사서공 삭파 삭(朔) 3)처사공파 17世 처겸
4)군수공파 19世 원랑
5)석호공파 20世 승간
6)벽동공파 18世 정
7)설서공파 17世 거겸
8)전적공파 21世 근
3. 진사공 망파 망(望) 9)진사공파 16世 망
4. 중랑장공 초파 초(初) 10)병조판서공파 22世 대축
11)판결사공파 18世 아
5. 해남공 국파 국(國) 12)해남공파 18世 림
6. 판삼사공 서파 서(瑞) 13)문안공파 21世 희맹
14)진원공파 21世 희삼
7. 판관공 진수파 진수(眞粹) * * * - -
8. 참판공 효번파 효번(孝樊) 15)부사(府事)공파 26世 춘장
16)부장공파 21世 정
9. 사예공 참의공파 협(挾) 17)참의공파 17世 운재
⇨ 고부이씨 사서공파 파조 삭(朔):
사서공파 파조는 숭의랑(崇義朗) 시강원 사서(司書) 이공(李公)삭(朔)이시다. 공은 고려시대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 平章事)를 지낸 문헌공 경조(敬祖) 시조님의 16세손이요, 평양서윤(平壤庶尹) 문수(文守)의 둘째 아들이며, 벽동공파 파조인 벽동군수(碧潼郡守) 정(精)의 할아버지이시다.
공은 고려 말 진용위별장을 역임하시고, 고부 와석동 입석리에 은거하였으나 학덕과 명망이 높고 경사에 정통하셨다. 조선(朝鮮) 개국(開國) 초에 시강원 사서로 부름을 받아 세자교육(世子敎育)에 일조하시다, 말년에 전북 부안으로 귀향하여 세종8년에 서거하셨다.
배(配)는 의인(宜人) 부안김씨, 후배(後配)는 연천최씨이며, 공의 슬하에 4남을 두시니; 1)장남은 처사 처겸(處謙)이요, 2)2남은 시강원 사서 원소(元蘇)요, 3) 3남 역시 시강원 사서 거겸(居謙) 이요, 4)4남은 형소(亨蘇)이다.
공의 묘소는 불행하게도 실전(失傳)되어 1962년에 부안군 행안면 진동리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