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간암 극복한 한만청 전 서울대 병원장의 유쾌한 암 투병기
“억지로 이기려고 하지 않고 잘 구슬렸더니 암이 나가더군요”
97년 지름 1cm 종양 제거, 4개월 후 14cm 발견, 수술 후 다시 2개월 뒤 폐로 전이. '간암 4기'로 생존 확률 5%. 서울대병원장으로 평생 암환자들을 보아온 한만청 박사의 3년 전 상황이다. 지금은 검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종양이 발견되지 않는, 완치에 가까운 상태. 그가 최근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는 책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한만청 박사의 유쾌한 암 치료론.
한만청 박사와의 약속 장소에 기자가 들어서자 한 박사가 “어서 오세요!” 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살펴봐도 한 박사에게서 아픈 또는 아팠던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3년 전만 해도 그는 암 중에서도 가장 무섭다는 간암, 그 중에서도 4기, 즉 말기 판정을 받아 폐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정말로 씻은 듯이 나은 걸까. 일부 언론에서는 그를 두고 '완치'란 용어를 썼다. 그러나 그는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아직 완치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저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암이 완치됐다'는 말은 쓸 수 없어요. 건강한 보통 사람의 몸에서도 언제 어디서 불쑥 암덩어리가 생겨날지 모르는 일입니다. 저의 경우를 정확히 설명하자면 '완전 관해'된 상태입니다. 완전 관해란 의학 용어로, 현대 의학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검진을 통해서도 종양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한 박사는 약을 끊은 지 3년 되었다고 했다. 그는 5%의 생존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어떻게 해서 기적이 일어난 걸까.
최고 대접 보장받을 서울대병원을 떠나간 전공 후배에게 수술을 맡긴 이유
한 박사가 암 진단을 받은 것은 1997년 12월.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간암 등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유명한 방사선과 의사였던 그에게 슬그머니 암이 찾아왔다. 그것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 '환자 중심 병원으로의 개혁'을 이끌었던 그가 당시 자신의 주도로 문을 연 서울대병원 건강검진센터를 방문중 “원장님이 만든 곳에서 건강검진을 받아 보라'는 주위의 권유에 떠밀려 한 번 초음파 검사를 받아본 것이었다. 검사 결과 간에서 1cm의 종양이 발견되었다.
“그때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야 화학요법으로 간단히 치료해 왔거든요.”
그는 고농도의 알코올을 종양에 직접 찔러 넣어 암세포를 죽이는 '경피 에탄올 치료법' 시술을 받았다. 그로써 치료는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4개월 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검진을 다시 받아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간 오른쪽에 14cm나 되는 암덩어리가 새로 자라나 있는 것이었다.
“제 눈을 믿을 수 없었어요. 그 동안 간암 환자들을 많이 보았지만 14cm면 큰 축에 속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고민이 시작됐지요.”
한 박사는 수술을 받기로 결정, 이제 누구에게 몸을 맡길지 고민을 했다. 서울대병원장이었으니 한 박사가 택할 곳은 당연히 모교였을텐데도 그는 다른 병원을 찾았다. 간 치료로 유명한 서울 J병원의 제자이자 후배인 L 박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 것이다. 당시 한 박사의 결정은 의료계에 커다란 파문을 가져왔다. 일부 동료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 박사는 이것저것 체면을 차릴 상황이 아니었다. 의사가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목숨을 담보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일반인 누구라도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받기를 원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 의사들의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 병원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간암 환자만 봐도 제대로
실력 쌓기가 어려운데, 당시 저희 병원 의료진들은 밀려드는 암환자들에 시달려 어제는 위 수술, 오늘은 간 수술, 내일은 장 수술을 하는 형편이었거든요. 아무리 조그만 동네 병원이라도 간만을 전문으로 돌보는 의사한테 제 목숨을 맡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간암을 전공한 저의 제자를 찾았지요.”
수술은 가히 성공적이었다. 그는 '이제야 드디어 고비를 넘겼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곧 절대절명의 위기가 불어 닥쳤다. 두 달 후 컴퓨터 촬영에서 간암이 폐로 전이되어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간암 4기, 즉 말기 상태에 생존 확률 5%란 진단이 나왔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간암은 잘라낼 수 있지만 폐암은 화학 요법밖에 없는 데다가 다른 암보다 약물이 잘 듣지 않는 편이거든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오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박사는 재빨리 마음을 다스리고 냉정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결정을 미루었다간 삽시간에 죽음에 휘말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곧바로 그는 주치의에게 “선택한 약물이 듣지 않으면 딱 한 번만 더 바꿔보고 말자”는 제안을 했다.
서 있지도 못하던 상태에서 한 시간씩 산보하기에 이르러
“폐는 약물이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이 약 써서 안 들으면 더 독한 약으로 바꿔보고, 그게 안 들으면 더 독한 약, 또 더 독한 약…. 그러다 죽으면 죽을 때까지 엄청난 고통만 겪다가 죽는 것이죠. 그래서 한 번만 바꿔보자고 한 겁니다. 약이 효과를 못 낸다면 선택은 딱 두 가지가 남습니다. 하나는 생명을 포기하고 죽을 때를 기다리면서 그동안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는 것. 그때 처음으로 유서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도전해 보는 것입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모르모트'처럼 신약 개발의 실험 대상이 되는 것이죠.” 천만 다행하게도 처음 선택한 항암제가 그의 암덩어리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말이 쉬워 '암 극복'이지 정작 암을 극복하기까지 3년 동안의 과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란 표현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한 박사라고 해서 특별히 남들이 겪는 것을 겪지 않는 예외란 없었다. 항암제 투여를 받으면서 원래 71kg이었던 몸무게가 52kg으로 줄어들었다. 가족과 친지들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 일어서서 걷기도 힘들 정도로 암과 약이 그의 기력을 완전히 빼앗아갔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심한 구토증으로 아무 것도 넘길 수가 없고….
그러나 한만청 박사는 이겨냈다. 다른 말기 암환자들과 똑같은 상황에서 그가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바로 '암과 싸우지 않고 친구가 된 것'이다. 두 다리로 서 있을 힘조차 없던 어느 날 운동을 하다가 얻은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주치의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조금씩 운동을 하십시오' 하더군요. 한평생 의사로 살아온 제가 늘 환자들에게 강조하던 말이었어요. 한 달 간격으로 5일에 걸쳐 주사를 맞아 두 다리로 서 있을 힘조차 없는 상태에서 운동을 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디다. 그날도 방바닥에 앉아 숨을 가다듬은 다음 몸을 일으켜 벽을 짚고 느릿느릿 방안을 돌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몇 걸음도 못 떼어 털썩 주저앉고 말았지요.”
그는 난생 처음 무력감을 맛보았고 분노했다고 말했다. 그는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아마도 암이라는 존재가 지닌 상상도 못할 위력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체력을 앗아가고 생명력을 앗아가는 건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무서운 것은 암으로 인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들이 환자의 마음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얼마나 그렇게 주저앉아 있었을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지금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창 마음을 다잡고 힘을 내도 모자랄 판에 주저앉아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놈이 또다시 찾아오면 잘 구슬려서 돌려 보내야지요”
두 번째로 든 생각이 '나는 지금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답은 싸움의 대상은 바로 암이라는 것이었다. 세 번째로 던진 질문은 '왜 암과 싸워야 하는가'였다. 당연히 '내가 살기 위해서'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갑자기 마음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어떤 싸움이든 분노와 적개심을 유발해 스스로를 소모시킵니다. 그렇다면 굳이 싸워야 하는가, 나 자신을 소모시키면서까지 암을 꼭 싸워야 할 대상으로 바라봐야 하겠는가? 아니죠. 그건 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입니다. 결론은 '잘 달래서 보내자!'였어요. 병이란 어느 날 문득 내 몸에 찾아와서 살다가 때 되면 돌아가는 손님 같은 존재지요. 암도 병입니다. 다만 다른 병과는 달리 그냥 스쳐가지 않고 고약하게 심통을 부리다가 돌아가는 악동 같은 친구지요. 물리쳐야 할 적으로 생각해서 선전포고를 하고 경계하며 몸부림치는 건 소모전에 불과해요. 어떻게 해서든 구슬리고 달래야 제 스스로 알아서 떠납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후로 그는 방안을 돌다가 자괴감에 빠져드는 일이 없었다. 한 바퀴도 못 돈다고 분노하고 오기를 부리는 대신 할 수 있는 만큼만 운동을 했다. “너무 무리하는 게 싫단 말이지? 알았어. 오늘은 이만큼만 돌게.” 오늘 두 바퀴 돌았으면 내일은 세 바퀴, 모레는 세 바퀴 반, 그 다음날은 네 바퀴 하는 식으로 운동량을 늘렸더니 다리에 힘이 붙어 마침내 1시간씩 외출도 가능해졌다. 아무것도 넘길 수 없이 구토증이 나면 “그러지 말고 조금이라도 먹게 해주지 그러나” 하며 잠시 쉬었다 재도전했다.
이제 약 끊은 지 3년째. 또 언제 불쑥 찾아오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지금도 3개월에 한 번씩 진단을 받으러 병원을 가면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마찬가지다. 후배 의사들이 진료 결과를 두고 뜸을 들이거나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면 '또 찾아왔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먼저 든다. 다행히 지금까지 수차례 3개월씩을 넘겼다.
“진단 받으러 가서 이럽니다. '그래, 이 사람들아, 난 또 3개월 살았어! 그게 자네들 30년 산 것과 뭐가 달라? 병 걸릴 확률이 내가 조금 더 높을 뿐, 자네들도 나랑 똑같은 처지인 거야' 하고 말입니다. 또다시 그놈이 어슬렁어슬렁 찾아온다면 또 잘 구슬려서 보내야지요.”
자신의 노력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도움도 컸다. 그는 가족들은 물론 주위의 지인들로부터 정신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누구보다도 아내가 가장 힘들었겠죠. 한 번은 몸에 좋다는 홍삼을 가져왔는데 제가 안 먹는다고 엉엉 울더군요. 슬픈 기색을 내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쓰더니…. 환자를 불쌍한 시선으로 보는 것만큼 절망적인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들은 되도록 저에게 평소처럼 대해주었어요. 그 점을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가 몸을 담고 있는 미국 방사선학회 회원들을 비롯해 일본,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도 끊임없이 격려의 편지가 날아왔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서울시내 모 대학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한 여의사의 편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게 선생님의 제자가 못 된 것”이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십자가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내 병이 나아서 어떡해 든 1년 후에 답장을 하리라'고 생각했고 꼭 1년 후인 지난해 11월 30일에 정말로 그는 감사의 답장을 했다.
“3년 동안 저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기분이에요.”
한만청 박사가 말하는 암과 친구가 되는 5가지 원칙
1. 사귀기 전에 충분히 알자
암 치료는 연애와 같다. 어설픈 정보를 가지고 남 하는 대로 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대체의학이니 민간요법이니 하는 정보나 소문에 휘둘리지 말고 꼭 전문 의학서를 보고 담당 의사와 대화를 나누어라. 아는 것이 힘이다.
2.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말아라
'실험은 사람을 속인다.' 혹시 검사 결과 비정상 지수가 나왔다 해도 그것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아라. 수치는 시시각각 변한다. 암은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야 할 존재이므로 매일매일 달라지는 몸의 변화에 매달리는 것은 체력 손실일 뿐이다.
3. 잔수로 사귀지 말아라
암투병은 지구전이다. 단 한 방에 끝내려는 생각을 버려라. 전립선암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2연패를 한 랜스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했다. “기적에 대해 들을 생각은 아예 마십시오. 내가 프랑스의 언덕과 산들을 날아 올라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언덕을 날 수 있습니까. 언덕이나 산은 천천히 고통스럽게 힘을 써야만, 게다가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만 다른 사람보다 먼저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겁니다.”
4. 거리를 두고 차분히 사귀어라
먼저 싸움을 걸어 분노와 적개심을 보이지 말라는 얘기다. 친한 친구도 서로 싸우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암이 끈질기게 위협하면 “오냐, 네가 그렇게 나오는구나. 좋다. 하지만 나는 우선 나를 다진 후 너를 대하겠다' 하고 마음을 다져라.
5. 언젠가는 돌려보낼 수 있는 친구라고 여겨라
얼마 못 산단 말에 미리부터 죽음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암 자체만도 고통이 만만치 않은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해지면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지옥이다. 단언컨대 '암=죽음'이 아니다. '최후에 웃는 승자는 암이 아니라 나다' 하고 되뇌는 순간 암은 '이놈은 내가 붙어 살 수 없는 놈이구나' 하고 돌아갈 채비를 한다.
한만청 박사가 말하는 좋은 의사를 선택하는 방법
1. 정보 수집에 만전을 기하라
의사를 고를 때는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처럼 신중해야 한다. 아는 의사가 한 사람도 없다 해도 한두 다리 건너 혹은 동네 병원에 물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외과의를 고른다면 해당 장기를 전공한 내과의나 방사선과의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2. 언론의 명의 리스트를 과신하지 말아라
언론 보도는 참고가 될 수 있을지언정 명의를 저울질하는 잣대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언론의 속성상 뜻하지 않게 과대 포장되어 소개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꼭 직접 알아보아라.
3. 공부하는 의사인지 살펴보아라
현대 의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하면 얼른 그 방법을 익히는 의사여야 한다. 공부하는 의사의 증거 자료는 바로 논문이다. 권위 있는 학회지 등에 실린 논문이 많을수록 공부하는 의사이다.
4. 열린 귀를 가진 의사를 선택하라
정말 실력 있고 치료에 대한 확신이 서 있는 의사일수록 열린 귀를 가지고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듣고 다른 방법을 수용한다. 팀 플레이를 잘하는지 체크해 보아라. 자신감을 벗어나 독선적인 의사는 객관적이지가 않다.
5. 환자의 편의보다는 실력이 우선이다.
물론 서비스가 좋아야 하겠지만 서비스가 실력보다 우위일 수는 없다. 병원의 편의시설보다는 실력 좋은 의사를 좇아가라.
출처 : 여성조선
글·유나니 기자
첫댓글 훌륭하신 분이네요.
한만청 전 서울대병원장님의 말씀처럼 간치료로 유명한 서울의 J병원이 어디일까요? 혹시 이시는분 분 답글부탁드립니다
그 병원의 L 박사님은 누구실까요?
그런 유명한 분들도 암에 걸리는 군요. 무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