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06년 5월 29일 아침 6시 마산역에서 버스 두대에 나눠 탄 우리 일행은 규정 속도대로 5시간여를 달려 속초에 도착했다 속초에서는 서울,광주,원주,대구에서 온 사람들 50여명과 합하여 120여명의 일행이 한 무리의 여행객이 되어 백두산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애초에 70~80만원 하는 여행경비를 일오 국제관광 여행사에서 회사와 백두산의 홍보를 목적으로 전국의 산악회 회장과 등반대장들에게 절반가격으로 제공된 저렴한 상품의 여행이었다 7~8년 전 전직장에서 근무 할 때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집안사정으로 못간적이 있고 이번에 속초에서 러시아 중국으로 이어지는 여행길은 사실상 나의 첫 해외여행이다 ㅋㅋㅋ 먼길을 버스로 달린 후 오후 4시에 속초에서 출항한 동춘페리호는 러시아의 자루비노까지 16시간의 항해를 시작했다 희안한것은 버스나 소형 승용차는 뒷자리에 타면 바로 멀미가 나고 고생을 하는데 배가 크건 작건, 바다가 조용하건 거칠건 남들하는 뱃멀미는 하지 않으니 나도 좀은 이상한 체질이다 속초 항구와 설악산을 뒤로하고 정 동쪽 공해상으로 나아가는 배위에는 삼삼오오 사진 찍고....... 먼 바다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고............. 갑판에서 아예 일행끼리 낮 술판을 거나하게 펼치는 부류................ 선실에 짱박혀 카드놀이 벌이는 패거리 등등............. 나는 아무래도 내생에 장거리 배타는 신기록이 될것같아 어지간 하면 갑판에서 게기기로 하고 여기저기 이사람 저사람 붙잡고 대화도 하고 얻어도 먹고 하기를 서너시간을 해도 도저히 시간이 가는같지가 않고 속초와 설악산은 그대로 눈앞에 보여서 밥때만 기다리다 얼른 한그릇 해치우고는 선실로 돌아와 들어누워 잠을 청했다 막상 침대에 누우니 사실 잠자리는 그리 편치가 않았다 드르르르 떨리며 롤링하는게 불편해 뒤척이고 있는데 여의치않아 갑판으로 슬슬 나가본다 이미 사방은 칠흑같은 어둠이 내리고 배의 엔진소리와 스크류에 부서지는 물소리 파도소리................. 3층과 2층의 갑판에는 5~6명씩 짝을지어 술판을 벌이는 산꾼들의 무용담(?)을 듣고 있노라니 며칠 지나면 모두들 제법 뱃놈이 될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튿날 10시쯤 두만강 위쪽 러시아의 자루비노 항에 배는 정박하고 러시아 입국 수속을 시작했다 우리팀과 일단의 학생들 100여명 한러 양국의 보따리상 100여명등..... 합계 300여명 우리의 속초항에서 출국수속과 검색대 를 통과하는데 20~30분 걸리던 것이.........아~~~~ 무표정한 러시아 세관원......느려터진 컴퓨터...........느긋한 자세......... 서있는 줄과는 상관없이 여유롭게 피우는 담배.............. 마시는 커피............. 통관 절차라고는 검문검색도 엉성하고 확실한건 여권에 도장 하나 찍는것............. 자그마치 세관 통과에 3시간 반 아~~~~~~~~~~~ 세관 통과 후 탑승한 버스는 참으로 명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태어난 후 맨처음 타 본 시내버스가 고2때 촌놈이 부산에 고고장간다고 도망가서 타본 것이 처음일듯한데 이 버스는 아마 그보다 5~6년은 더 되어보였다 발로 차면 허스러질듯한 버스내벽, 분명한 메이커표시....DAEWOO.............. 20~30년전 버스를 타고 달리는 극동 러시아의 대지는 참으로 감동 그자체였다 한시간을 넘게 달려도 마을은 국경마을 근처에 20여호 작은것 하나뿐 온통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이다.........끝이없는 초원.......이름모를 야생화...안개를 돌아 저쪽 끝없이 가물가물한 대지...........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개간하고 일구었을 야트막한 야산과 구릉들..... 스탈린과...... 강제이주......... 낭만도 잠시 악몽의 3시간짜리 검문소를 하나더, 1시간짜리 국경 검문소를 지나고서야 러시아를 벗어나 중국의 국경세관에 다다랐다 아~~~~ 문명!!!!!!!!!!!! 자루비노 항구의 100년도 더되어 보이던 건물과 대우버스...........러시아............ 늘어가는 한국인 입국자와 물동량 때문에 새로 신축한 중국의 장영자 세관은 외양은 참으로 번듯했다 반가움도 잠시 건물안의 근무자들은 전부 중국의 현역 군이들이며 세련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였다 역시나......... 한명 통과하는데는~~~~~ 그기다 컴퓨터도 되다가 말다가..................또 3시간여만에 통과 자루비노 상륙 후에 석양을 바라보면서야 인구 절반이 조선족인 중국의 국경도시 훈춘에 도착했다 허름하면서도 잘 구획정리된 시가지는 한국의 쌍방울등의 회사가 입주한다고 건설이 한창이다 마치 우리의 70년대처럼............. 걸어가는 사람, 자전거를 탄 사람,우마차, 인력거를 탄 사람,3발 오토바이, 개조한 경운기를 탄 사람, 시발차를 탄 사람 그리고 최신형 도요다.........현대산타페................... 오후 5시에 훈춘에서 점심을 먹고 한자와 한글이 함께쓰인 시가지의 간판들을 뒤로하고 백두산 근처의 숙소 이도백화 까지는 7시간을 더 버스로 달려야 한단다 버스마다 배치된 조선족 가이드의 연변사투리가 친근하게 와 닿는데 어떤 서울 촌놈은 경상도 사투리,전라도 사투리만 해도 버거운데 연변 사투리까지 합세 했다며 구시렁댄다 ㅎㅎㅎ 다행히 연길에서부터 3시간여는 새로 놓인 고속도로를 달리게 되어 행운이었다 훈춘을 지나고 도문시를 지나면서 부터는 중간에 두만강변을 따라 강너머 북한땅을 바라보며 달리게 되었다 해질녁의 두만강과 북녁땅에 대한 느낌은 두만강이 생각보다 강폭이 상당히 좁고 물이 흐릿하고 불은빛을 띤다는점이며 강건너의 북녁땅은 거의 나무는 보이지 않고 민둥산에 밭이 많고 심지어 가파른 경사의 높은산에도 개간을 하고 밭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두만강변을 벗어나고 한참을 고속도로를 달린 후 고산 평원지대를 달리다 맞이한 작은 산촌 휴게소는........ 화장실은 우리의 60년대식으로 옆으로는 머리높이의 벽만있고 앞이 탁트인 화장실에서 응가를 ㅎㅎㅎ 그옆 기념품점에서는 참된 바가지의 진수를 경험하게 된다 ㅎㅎㅎㅎ 장뇌삼 하나가 처음에는 2만원 누군가 잠시 실랑이를 하더니 하나에 만원으로 좀더 시간이 지나자 두개에 만원 사람들이 타고 버스가 출발하려 하자 네개에 만원이란다ㅎㅎㅎㅎ 나중의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그마저도 인삼을 칼로 오려 이수시게로 끼우고 본드로 붙여서 만든것이 흔하다 한다 다시 몇시간을 달려서야 숙소인 이도백화에 도착했다(마산역 출발 후 42시간만에) 식사는 모두가 원탁의 회전테이블에 제공되며 내용도 한국식에 가까운 내용이라 별로 거부감이 없으며 대부분 술안주로 제격이다 특히 훈춘에서의 고량주와 이도백화에서의 그것은 혀끝에 대기만 했는데도.... 특히 연길에서의 북한식당의 들쭉술이 압권이다..... 상철이 영우 재환이 정현이 광팔이 정선이생각이 절로 났다....... 께끗하고 앗싸하게 와닿는 그 진한................. 식사 후 방 배정을 받고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서는데 뭔가가 상당히 찜찜 하다 참고 침대에 걸터 앉는데 방에서 썪은 곰팡네가 나는게 아닌가? 참다 못해 방을 바꾼 후 샤워를 할려는데 시설은 3류의 최신인데 더운물은 오락가락 앞사람이 하고 내차례엔 아예 찬물이다 그도 아까그 붉은 대동강물처럼, 또는 녹물처럼한것이 이빨을 닦고 입 헹군물이 피가난듯 착각하게 한다 ( 백두산의 화산 토질상 주변 지형에서는 우리의 맑은물은 보기 힘듬) 다음날 일어나서 금강하로 3시간 이동하여 백두산 서파로 등정하기로 했는데 가이드 왈 " 일기가 상당히 불순하여 오늘은 등반이 불가하다"는게 아닌가? 그럼 완전한 2박3일을...................으아...................... 그날 금강하의 완전한 3류 여관에서 물이 나오지 않아 샤워도 못하고 지낸 후 다음날 드디어 백두산으로 향한다
( 참고로 중국에서의 백두산 등정은 크게 두갈레로 나눌 수 있다 중국명 장백폭포가 있는 북파산문을 통과하여 짚차로 천문봉에 오르거나 달문에 올라 천지물에 손 담그는 방법과 또 하나는 서파산문을 지나 5호 경계비 향해 등정하고 나중 하산하여 금강대협곡등을 구경 할 수 있는 서쪽이 그 하나이다)
백두산을 향해 달리는 차창밖에 펼쳐진 끝없는 백두고원의 밀림과 풍경은 마치 현재의 우리의 그것과는 상관없는 잘 나가든시절의 우리민족의 어느 한 장소에 온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고원의 밀림을 달리는 동안 특이한점은 "森林防火"(삼림방화) 라는 붉은 깃발이 끝없이 이어지는 밀림의 길 양쪽으로 서있고 거의 2~3킬로마다 군복입은 감시원이 오토바이를 옆에두고 산불감시를 하고있었다. 현재의 중국이 한국의 70년대 방식을 가짱 가깝게 모방하려고 노력 한다지만 내가보기에 산불방재 노력 은 한수 위인듯 했다 3시간여를 비포장도로를 달려가자 밀림 저편 희미하게 희끝희끝 눈덮인 산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희미하든 산봉우리들은 서서히 웅장한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머리에는 구름을 덮어쓴체로 말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산의 기후와 비슷하던 이도백화와는 달리 고원지대에는 아직 나무에는 새순도 나지 않고 거대한 계곡마다에는 엄청난 크기의 눈덩이인지 빙하인지가 계곡 여기 저기를 덮고있다 압권인것은 버스를 타고 오르는데 길을덮은 눈을 잘라낸곳이 있는데 그 눈의 높이가 버스보다 높은것이다 드디어 주차장에 이르고 하차 하차한 산꾼들은 두껍게 눈으로 얼어붙은 화장실을 외부로 둘러싸고 한줄기씩 뿌린 후 계단을 따라 줄지어 오르기 시작한다 120여명이 한줄로 서고 중간 중간에 뙈놈들이 겨울코트를 덮어입고는 산을 오르느라 땀흘리며 씩씩댄다 모두가 한발이라도 먼저 천지를 보려고 두발을 빠르게 움직인다 나역시 예외이겠는가? 제일먼저 오르고나니 장엄한 경관은 커녕 2미터 앞도 보이지않는 찐~한 운무 속이다 한쪽에선 6박7일 허탕쳤다고 개탄하고 난리다................ 쯔쯔쯔 새벽에 설악산 대청봉올랐을때 언제 탁트인적이 있던가?.................. 나는 청명한날 일수록 운무는 진하며 일출후는 급속히 사라져 맑은날이 지속된다고 우기듯 설득하듯 떠든 후 청석봉을 향해 산행을 시작한다 2천6백 고지의 몰아치는 고산바람은 참으로 지독하여 86킬로그램 나가는 이몸을 바람에 날릴듯하여 벼랑에선 참으로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갔다 향후 백두외륜 종주를 하고픈 동기들은 절대로 고광팔, 장해정,황형모,황두철,이영소,등과는 같이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바람이 이들을 그냥두지않고 돌아올때면 옆자리가 허전 할 겁니다 외륜을 따라 청석봉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하늘은 서서히 개이고 발아래 천지도 서서히 혹한의 얼어붙은 그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푸른하늘........... 얼어붙은 천지.............. 주변을감싼 봉우리들.............. 맞은편 북녁의 최고봉 장군봉......... ( 처음의 병사봉을 74년 김일성이 올라 장군봉으로 명칭변경, 일재:2744, 중국:2750, 북한:2749m) 청석봉 정상에 올라 천지를 내려보자 아!!!!!!!!!!!!!!!!!!!.................................... 장군봉을 향해 절을하는 사람 한술더떠 과자봉지를 펼치고 절을한 후 고시래를 하는 사람 앉아서 말없이 흙을 만지는 사람 아껴온 소주를 꺼내 정상주를 돌리는 사람 말없이 건너편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는 사람 ....................... 정상 조금 아래서 바람을 피해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후 백두산 특유의 지형인 "재자하", "금강대협곡", "왕지" 등을 구경한 후 다시 비포장 3시간을 달려 이도백화로 돌아와 호탤에 투숙했다 20만원이면 소 한마리를 잡아먹는다는 말에 솔깃해진 사람들이 돈을 갹출하여 송아지 바배큐를 한답시고 난리를 피더니 좀있으니 질겨서 못먹는것이라고 난리다 (ㅎㅎㅎ 사료먹고 농장에서 고이자란 소와 방목해서 운동하며 풀만먹은소가 같을리가........) 이제 제법 안면들도 익었는지 고량주 병들고 이방 저방 순찰을 도는 인간들도 제법 있다 다음날 두만강 발원지에서 시작하여 연길일대 관광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너무 맑아 그제 취소한 코스의 등정을 다시 하자는 여론에 따라 원하는 사람은 추가로 6만원씩 부담하고 북파등정을 하기로 했다 아침식사 후 이도백화를 떠나 한시간여를 달려서 북파산문에 도착하고 중국 공원관리소의 최신형 도요다 시내버스에 옮겨 타고는 장백폭포 아래에 이르렀다 여기서 부터는 사진으로 너무 눈에 읶은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선 눈앞에 보이는것이 웅장한 장백폭포이다 폭포를 바라보며 콘크리트 계단을따라 오르기를 30여분(상철이 태호는 아마 1시간 반쯤) 웅장한 장백폭포소리를 들으며 천지의 흐르는 물길인 달문에 다다른다 어제의 천지 외륜 등반과는 달리 오늘은 천지 물가에 앉아서 조용히 손담그는 날이다 두께가 얼마인지도 모를 정도로 얼어있고 중간중간에는 녹아있다 집에서 가져간 펫병 두개에 주변 용천수를 두병가득 담는다 (한병은 동생주고 한병은 아직 냉장고에 있슴) 내 카메라에 매모리가 부족해 지금부터는 이틀동안 사진 동냥이다 (제일 아쉬운점) 하산시 동포 가이드는 산아래 온천수에 잌힌 계란을 세개씩 반드시 사먹으라고 권유하는데 나는 무시한다 옆사람이 하나 줘서 얻어먹으니 상당히 맛이있다 노른자가 쫄깃쫄깃한것이................. 중국 여행시 구매를 권하고 싶은 물건은 오직 여기의 계란이다 시각은 12시경 지금부터는 관광이다 두만강 발원지........두만강 줄기따라.......... 민족의 발자취를................... 두시간여를 달리자 어제의 어수룩한 가이드와는 달리 오늘의 고참 가이드의 유창하고 실감나는 잇빨이 불을뿜기 시작한다 두만강 발원지는 너무 가까이 북한군과 마주하기때문에 근접 경호하는 중국공안(경찰)이 없이는 접근이 불가능하다며 옆을 스쳐지나 강따라 하류로 버스는 비포장길을 달린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1~2미터의 강폭을 사이에 두고 북한군과 있은 사소한 이야기들...........사건들............. 상류에서 개천 양쪽에 다리를 두고 오줌을 누다 한쪽다리 잘못들면 국경을 넘는것이되어 체포된다는 이야기... 북한군이 잡은 두만강 최고의 산천어와 술 몇병과 담배와 교환한 일들... 가까이 다가가 건내주는 담배며 사탕이며 커피를 받아들고 고마워 할 줄 모르는 젊은 북한군인........ 지 아버지 한테도 반말을 하는 젊은 북녁사람들의 풍조......... 굶주림에 지쳐서 밤에몰래 총들고 국경을 넘어 중국의 민가로 잠입해 쌀과 음식을 강탈해 달아나는 일이 잦아 중국인과 조선족이 북녁 군인 하면 이를 간다는 이야기........ 작년에 북한에 갔을때 함흥에서 여행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의견이 일치되지않고 한쪽은 해산물을 먹자하고 한쪽은 육고기를 먹자 할때 운전하는 북한 기사 왈 " 저는 참으로 우리 장군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여기 조선족은 30명이 모여서도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데 우리 장군님은 2천만을 하나로 일사분란하게 결집시키시니 말입니다"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버스는 고산지대를 뒤로 하고 강폭도 서서히 2~3미터로 넓어져간다 잠시후 육이오 전쟁 중 김일성이 낚시를 하면서 전쟁의 승리를 구상 했다는 김일성 낚시터에 이르게되고 좀더 하류로 내려가자 아쉽게도 여기서부터 북한의 참상을 두눈으로 너무나 선명하게 보게 된다 하류로 갈수록 중국땅은 한없이 푸르런데 북녁땅은 마치 옷벗은 인간처럼 산과 들에 풀한포기 없는양 온 국토가 벌겉다 심지어 거의 경사도가 45도 이상은 되어보이고 산행을 하는 내가 등산화 신고 오르라고해도 도로 미끌어져 내려올것같은 곳도 다락밭이라고 개간했다 비온 후 바라보노라면 쓸려내려간 강냉이 씨았을 산 아래서 하나 하나 줍는 모습도 볼 수 있단다 나무도 풀도없는 거대한 민둥산에는 " 21세기의 태양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 만세" 라는 글귀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버스를 서행하며 바라본 건너편의 동포들의 모습은 차마 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어른들도 많이 있었다 대를이어 입은듯한 헤어지고 남루한 군복 바지에 비누가 없어 양잿물에 빨래를 했다는 한거풀의 러닝같은 윗옷은 누렇고 낡아보여 줄수만 있다면 내가 입은 옷이라도 벗어주고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나마 힘차게 걸어다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담벼락이나 언덕 아래에 우두커니 힘없이 앉아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밥은 먹고 앉아있는건지........ 하류로 내려갈수록 땅은 넓어지고 마을은 커져간다 좀더 내려가자 숭산세관이란 곳에 이르러자 제법 상호 국경마을답다 강폭은 10여미터, 마주보는 두 마을,간혹 길거리를 오가는 자동차, 다리 위의 검문소........... 내려가며 보는 들판의 풍경에서 중국쪽의 농지에는 사람들이 한사람씩 자기논에서 허리숙여 열심히 일하는데 북한쪽의 집단농장에는 30여명씩 들판에 일하는듯한데 가이드의 설명이........... 오후에 네시간을 일하면 2시간은 김일성 사상학습하고 2시간은 일하는 데 그나마 무슨간부 무슨간부 서있는 사람이 많아 실제 일하는 사람과 시간은 거의 없다는 설명과 함께 우리가 보기에도 30여명중 허리 숙여 일하는 사람은 3할이 될까하는 정도였다 러시아 세관을 통과 할때 드는 생각이 "자연의 순리를 벗어난 오랜 공산주의체제가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놓았구나" 였는데 그나마 러시아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팔아서 곡물을 수입해 먹고는 살지만 북녁의 참상을 보고는 한마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고 마냥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을 어쩔수가 없었다.......... 휴................ 처음에는 중국도 다락밭을 만들고 집단농장을 운영하다 먹는문제 해결은 커녕 굶는자가 수두룩 하다가 등소평 집권 후 호도고리(개인별 임대경작) 라는 제도로 사유경작(토지소유는 국유)을 하자 수확량이 정확히 두배로 증가하고 식량문제는 한방에 해결이되고 다락밭은 다시 숲으로 되돌렸단다 ....................................................................................... 하류에서 또하나... " 아시아의 등불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 만세!!!" ............................................................................. " 인권 인권해도 최고의 인권은 굶는자에게 밥주는것이다" ....... 전임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 ............................................................................. "창고에 곡식이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갖추어져야 영욕을 안다" ..................... 관자
........... "잘살아보자" 며 월남전의 피와 중동의 땀으로 극복한 남쪽의 그것과는 불과 30년 차이 정도이겠지.........................
더 하류로 내려가면 아시아 최대의 노천 철광 무산 철광이 있는데 마구 파헤쳐 모조리 중국으로 실려간다는것과 시간이없어 그냥 지나친다는 가이드의 말과함께 버스는 두만강변을 벗어나 화룡시로 향했다 화룡시......... 용정시............연길시.............훈춘시............인구의 40% 이상이 조선족인 도시들.... 화룡에서 연길까지는 4차선 고속도로가 뚫렸는데 오토바이도 달리고 우마차도 가고있고 경운기가 횡단을 하는데 사고나도 먼저 빵빵 울린놈이 유리하단다.....ㅎㅎ 화룡을 한참 지나자 해란강과 일송정이 오른쪽으로 보인다 시간이 없어 올라보지는 못하고 서행하는 버스에서 설명만 듣고 지나간다 한시간여를 더 달려간 버스는 용정시의 대성중학교 교정에 들어선다 조선족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는 용정시는 자치회의를 할때도 다른 시와는 달리 한국말로 회의를 하고 중국인은 그냥 눈만 꿈벅 꿈벅하고 있으며 구한말 민족운동의 본거지인 이곳에 여러 민족학교 중에서 대성중학교는 아직도 중국인의 입학을 거부하며 민족학교임을 고수하자 중국정부에서는 지원금을 중단하게되고 학교가 어려워지자 한국의 여러 독지가의 도움으로 현재를 유지하고있고 더 나아가 타의 모범이되는 경지까지 이르렀단다 역사 전시관에서 설명을 들은 후 방명록에 서명을 하는데 맨 끝칸이 기부란이다 남들도 그랬겠지만 만원짜리 한두개씩 노란 봉투에 넣는 우리의 모습이 세삼 초라 해 보임은 어쩔 수 가 없었다 비록 뜨거운 피에 바탕한 소박한 행동이지만......... 나 혼자이든 내가 속한 모든 조직을 동원하든 이 자리에서 만큼은 한몫을.................... 언젠가는 우리 동기회가 미력이나마 도우는 날이 오기를 기대함은 과욕일까? 아랫층의 기념품가게에서 조그만것 하나 사고 윤동주 시비앞에 사진 한장 찍고 버스는 마지막 숙박지 연길을 향해 출발이다 고속도로를 한시간 여 달린 후 우리가 도착한곳은 북한에서 직접 운영하는 "해당화식당"이다 3대의 버스가 도착하자 "반갑습니다" 등의 북한특유의 반주와 음향으로 우리를 반긴다 음식은 그간의 다른식당보다 더욱편한 입에맞는 우리의 음식이며 미스코리아 뺨칠 순수한 북녁 미녀들(확실한 신분에 영어,일어,중국어 능통)의 서빙을 받으며 식사를 하고 끝이 날즈음 그녀들 특유의 공연이 30여분간 지속된다 입구에 서 있던 아까씨가 너무 이뻐서 사진한장 같이 찍고 너무 미인이라고 말 해주니 내자리에 두번이나 와서 물을 따라준다.............. 오!!!! 천사여!!!!!!!!........... 식사와 공연이 끝나고 우리가 나서자 식당의 전 종업원들이 문앞까지 나와서 배웅을 한다 우리의 천사는 어이 또 서서 보는 방향이 버스의 내 자리와 마주보며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고........... 버스는 다시 북한상품 전시관으로 향한다 인삼과 버섯등의 특산품도 있으나 특이한점은 세계최고의 북한 자수 제품들인데 특히 내맘에 든것은 "백두고원의 봄" 이라는 작품으로 한명의 공훈예술가 1년반 정도 작업을 해야 완성 할 수 있다 하며 가격은 우리돈 3백만원이다 그러나 분위기가 주체사상 선전관 같은 분위기와 상품의 단조로움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은 별로없고 북녁의 자세가 현실과는 너무나 먼 거리가 있는듯하여 뒸맛이 씁쓰럼했다 버스는 방향을돌려 숙소로 향했다 마지막 밤을 지낼 호텔은 연길 역앞의 아담한 호텔이다 여장을 풀고 처음으로 풍부하고 맑은 더운물에 샤워를 한 후 룸매이트와 바람을 쐐고자 호텔밖으로 나가려 하니 가이드 들이 길거리에 한국인을 노리는 강도들이 많다며 가로막는다 내 뱃가죽 두껍다며 협박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거리의 분위기는 참으로 음침하다 전기세가 비싸 대부분 초저녁에 불을끄고 간혹 슈퍼에만 불빛이 보일뿐이다 그간 우리주변에는 항상 우리말을 하는 사람들이 안내를 하고 물건을 팔고 우리돈을 쓰며 생활했기에 여기가 우리나라인지 중국인지 구분이 모호한게 사실이었다 실제 길거리의 대부분 간판도 한글과 한자가 함께 병기되있다 캔맥주나 한잔 하자는 룸매이트의 말에따라 주변에 불빛이 보이는 슈퍼로 갔다 물건이야 우리것이나 그놈들것이나 별반 다를것이 없는데 문제는 언어였다 한마디 영어면 의사소통은 되겠지 했는데 완전히 오산이다 어렵게 살면서 배우지 못한 중국인은 영어라고는 A도 모른다 손짓 발짓 해서 의사소통은 되는데 문제는 돈이다 그간 그렇게 잘 통하던 우리돈 1000원권 10,000원권을 전혀 받을 생각을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한글이 더 큰 간판을 골라 네군데를 더 다녀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조선족 인구는 40%가 넘는다면서 시내의 장사치는 대부분이 뙈놈들이다 발바닥에 땀이 날즘 연길 역을향해 크게 소리한번 지르고 들어가 취침이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 버스에 올라 시내로 향했다 가이드는 각종 기념품 가게앞에 버스를 세우고 쇼핑을 권한다 오늘도 역시나 내 눈앞의 길거리에는 걸어가는 사람, 어께에 막대기 지게짐을 진 사람, 자전거타고가는 사람, 오토바이, 우마차, 인력거, 개조경운기, 시발차, 도요다, 소나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가각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마치 1세기 전의 원시와... 세계 세번째의 유인 우주선을... 세계 최첨단의 도시 상하이를... 한목에 아울러 내일을 창조하는 거대한 시간의 용광로를 보는듯이................ 잠시후 연길 외곽의 단단해 보이는... 경비가 삼엄한 감옥... 탈북자 수용소를 뒤로하고 우리는 국경으로 향한다 지울 수 없는 다양한 생각들만 간직한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