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야기>
상아: "유리언니!! 얼른 일어나. 벌써 10시야. 엄마가 아침상 차려놓은 거 다 식었어. 동그랑땡 내가 다 먹는다??.”
유리: "아 김상아, 모처럼의 일요일에 꼭 언니를 이렇게 들들볶아야겠니? 동그랑땡은 남겨둬.”
상아: "언니 오늘 도자기 만들러 예슬언니랑 어디 간다지 않았어?"
유리: "아 도자기는 무슨 도자기야. 안갈래. 귀찮아..... 이천까지 언제가!! "
유리는 오늘도 늦잠을 자느라 이불속의 누에고치처럼 둘둘 말려있습니다. 예슬이와의 약속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계속대서 울려대는 핸드폰 벨소리만이 시끄럽게 울립니다.
유리: "아, 여보세요.."
예슬: "너! 왜 아직까지 자고 있는 거야 전화안받을래 @#$!%!@#!$?!"
(전화기를 귀에서 멀리하며) " 아.. 미안해 지금 몇시지?"
예슬: " 야 지금 12시야!! 도자기 공방에 도착하기로 한 시간이 11시인데, 지금 전화받으면 어쩌니!!?? 버스 정류장으로 잽싸게 튀어와.!”
유리: " 미안미안 , 도자기 공방에 연락해서 지금이라도 갈 수 있다고 죄송하다고 좀 말씀드려."
예슬: “으이그.. 넌 .... 보물같은 주말의 약속보다 퍼질러 자는 게 더 좋지?”
유리: “야, 당연히 약속이 더 중요하지~~~ 잠속에서 무의식속을 여행하다보니까, 순간 약속을 깜빡했을 뿐야. 너무 몰아붙인다 너 오늘따라”
예슬: “너가 한두번 이러는 게 아니잖아 지금,!! 하여간, 어쩔 수 없지.. 알았어 얼른 준비해!"
예슬이의 쏘아붙임에 부리나케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고양이세수를 하는 유리의 모습이 분주해보입니다.
버스정류장, 헉헉 대며 뛰어오는 유리를 재촉하는 예슬이의 손짓이 보이네요.
예슬: "야! 뛰어와!! 지금 버스 온다고."
유리: "헉헉, 미..미안해, 머리감고 말리느라.. 헉헉"
예슬: "하여튼 넌 못말려, 맨날 잠자느라 세월 다보내지?"
예슬이의 흘겨보는 눈빛이 못내 무서운 유리는 예슬이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능청스레 얼러 봅니다. 버스는 그렇게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창가에 보이는 아파트 겉에는 쌀과 도자기가 그려져있고, 살짝 열어젖힌 창가에서는 푸르른 흙내음이 풍기는 듯 하네요. 이천에서 태어나 유치원때까지는 이곳에 살았던 예슬이지만, 수원으로 이사간 이후 오랜만에 들른 신선한 이천의 자연은 어릴적 기억이 떠오르게 하네요.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바로 '도예마을'입니다. 오늘 유리와 예슬이는 사회과 방학 숙제로 나온 '타고장의 문화‘’를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 고장 이천하면 누구나 알고있는 '도자기'를 체험하러 왔습니다. 유리는 어릴 때 이천을 떠나와 이천의 문화는 많이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태어난 곳을 찾아와 그곳의 고유 문화인 도자기와 흙을 체험한다는 것은 유리에게는 특히 설레는 일입니다. 늦잠때문에 조금 일정이 지체되긴 했지만 도자기체험을 위해 이곳을 찾은 두소녀의 눈빛은 그 누구보다도 반짝거립니다.
예슬: 흐암~~ 다왔다. 여기가 이천버스터미널이야.
유리: 와~ 터미널 느낌부터 되게 향토적이다.
유리: 우리가 갈 데가 어디야?
예슬: 아, ‘소정도요’라는 곳이야. 직접 도자기 만드는 것도 체험할 수 있고, 요새는 기계로 많이 만드는데, 이곳은 아직도 수공예를 고집하고 있는 곳이래.
유리: ‘소정도요’? 야, 우리 엄마 친구 딸이랑 이름이 똑같애. 신기하다
예슬: 헉, 그래? 혹시 거기 너희 엄마 친구분이 하시는 데 아냐?
유리: 와 그럼 정말 신기하겠는데? 우리 부모님은 이천에서 만나서 결혼하시고, 나 다섯 살때까지 이천사셨거든. 부모님이랑 나,상아가 함께 수원올라오기전까지는 말야.
예슬: 그 많고 많은 도자기 만드는 곳 중에 일치할 확률은 적지만.. 너랑 아는 분이면 더 좋겠다!
유리: 만약 우리 엄마 친구라고 해도 난 얼굴본적이 없으니 모르지~ 그 아주머니 딸도 이름만 알아. 엄마가 자주 얘기해주셨거든. 아무튼 진짜라면 신기하겠다^^
예슬: 야야야 저기 버스 온다, 저거 타면 소정도요 근처에서 내려~
알 수 없는 인연의 기대속에 도요로 향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마냥 밝습니다. 정취를 머금은 마을 버스는 동네마실가듯 천천히 달려갑니다. 어느덧 소정도요앞이네요.
유리-예슬: 안녕하세요!
소정도요 여주인: 어머, 많이 늦었네요. 약속시간 안지키면 흙도 못만져볼지도 모르는데?
유리: 앗 한번만 봐주세요~ 늦잠을 자버려서...
예슬: 으이구. 여기까지와서 체험도 못하고 가면 다 네탓이야.
여주인: 어머, 그런데 이학생은 낯이 익은데..?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가요?
유리: 앗 아니요. 이천에서 5살때까지 살기는 했지만.. 이곳은 처음이에요.!
소정도요: 어라... 상당히 낯이 익단 말이야..
소정: 학교 다녀왔습니다!!
여주인: 아 소정아 왔니? 저쪽에 밥차려놨으니 밥부터 먹어라.
소정: 네~
유리: 앗 저 언니 이름이 소정인가요?
여주인: 아, 우리 딸을 알아?
유리: 앗.. 아니요. 저희엄마가 이천사실 때 친구분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 집 딸이 소정이라고 했어요. 아마 지금은 고등학생일걸요?
여주인: 어머... 설마설마했더니, 너 혹시 정희 딸이니??
유리: 어라!! 저희 엄마를 아세요??
여주인: 어머어머 왠일이니, 늦었어도 흙만질 기회는 줘야겠다. 친구딸이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말야. 너 정말 정희랑 닮았다. 난 긴가 민가 했어. 누군갈 닮아서 말야.
예슬: 어머 정말 신기해요!! 그런데 소정언니는 도자기 만드는 집안의 딸인데 뭔가 남다를 것 같아요. 도자기 잘만들 듯! 저희도 잘좀 가르쳐주세요~ 짧은 시간이지만요. 헤헤
여주인: 그래 우리딸은 한국 도예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피는 못속이나보지. 어릴적부터 곁눈질로 배우더니 이젠 아주 수준급이야. 여기 뒤에 있는 것들도 다 소정이가 만들었어.
예슬: 와 정말요? 대단하다. 저희는 오늘 이런 작품은 커녕 그냥 쓸모있어 보이는 작은 물건하나만 만들고 가도 영광이예요.
유리: 나는 컵만들고 싶어. 우리 학교에 이번에 오신 미술선생님있지? 그 분 성함을 새겨서 선물해드리면 어떨까. 아주머니. 저희 개학하기 전에 만든 거 받아볼 수 있죠?
여주인: 어머 너 그 분 좋아하는 거니? 하트까지 새겨라. 아줌마가 예쁘게 구워줄게.
유리: 미술선생님이시니까 저의 미술작품(의아해하며)을 선물하면서 미술에 대한 열의도 인정받고, 선생님께 제 마음도 전하고. 캬~ 일석 이조다 일석이조!!
예슬: 유리야 우리 아직 흙도 안만져봤거든? 김칫국 미리 마시는 습관은 여전하구나.
예슬: 야야 아서라- 미술선생님께서 니가 만든 거 보고 비웃으시면 어떡하려구.
소정: 누구든지 처음부터 잘하는 건 없지. 지금 여기 열정과 의지만 갖고 왔다면 너희가 만드는 물건은 뭐든지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게 될거야.
여주인: 그럼그럼. 유리야 그런데 너는 정희랑 똑같다. 너희 아빠가 네엄마 고등학교때 영어 선생님인 건 알고 있지?
예슬: 오오 정말요? 정말이야 이유리?
유리: 으응.. 맞아. 그런데 엄가 어디가서 말하지는 말래요. 부끄러우시대요.
여주인: 호호호 하긴 그때도 무지 수줍어하면서 좋아하더라구.
유리: 저도 미술선생님이랑 잘되게 좀 도와주세요 아주머니.
여주인: 아이쿠. 의지가 대단한 걸? 일단 저쪽으로 같이 가자. 여기는 여럿이서 작업하기가 좀 복잡하네.
(옆작업실로 장소를 이동하여)
예슬: 오오옷! 아주머니께서 지금 작업하시던건가요?
유리: 와.. 정말 대단하다. 이런 무늬도 직접 다 새겨넣으시는 거군요.
여주인: 어머 당연하지. 한번씩 무늬를 새길때마다 혼을 불어넣는 느낌이야. 내가 나중에 죽더라도 여기 남은 도자기들은 다 조금씩은 내 숨과 정기를 받은 거니까 내혼이 같이 살아 숨쉬고 있을 것만 같아.
소정: 맞아요. 엄마. 얼마전에도 TV에서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청자가 발견되었던데, 묻혀있던 도공의 혼들이 이제 드디어 세상에 나오는 것같은 기분에 왠지 뿌듯했어요.
유리: 맞다. 저도 가끔 박물관에 가서 옛날 도자기같은 것을 보면, 이 도자기를 만든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걸 빚었을까. 이런 생각도 하곤 했는데...
예슬: 야 그거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도공의 혼이 슉하고 튀어나와서 감상하는 사람이랑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라니까?
유리: 무슨 여름 납량특집도 아니고 약간 섬뜩한데?
여주인: 예슬이 말이 일리가 있어. 그런데 그 도자기에 도공의 혼만 있을 것 같아?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유리: 헉 순간 오싹했어요. 도자기에 그럼 귀신들이 갇혀있단 말씀인가요?
예슬: 야야 그럴 수도 있겠다. 도자기입군는 좁고 몸뚱이는 펑퍼짐하잖아. 바닷물에 잠겨있던 도자기속에 귀신들이 쉴 곳을 찾아서 들어갔다가 누군가에게 발견되면서 확 세상으로 나오는 그런 스토리! 이야 생각만해도 굉장한데요. 제가 이걸로 시나리오써서 심형래씨한테 보내면 ‘도자기’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질지도 모르죠. 하하하하하
유리: 예..예슬아. 그런 스토리가 뭐가 재밌다구. 난 무섭기만한데?
예슬: 여름 납량공포물로는 딱인데 뭘. 내가 미래에 쓴 시나리오에 너도 등장시켜줄게.
여주인: 자자- 도자기를 만드는데 도자기에 있어서 기본적인 공부는 해야겠지?
예슬: 아 여기와서까지 공부인가요... 바로 실전으로 고고!!
소정: 예슬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도자기를 알아야 멋진 도자기를 만들겠지.
여주인: 그래 맞아요. 도자기는 뭘로 만들죠?
유리: 흙이요.!
여주인: 맞아맞아. 흙을 빚어서 만들지~
예슬: 저희 집 앞에 공원에 흙많아요. 집에가서 도자기 만들어야겠다.
소정: 예슬아. 그렇게 쉽게 도자기 만드는 흙을 구할 수 있을까. 집앞에서 캐낸 흙으로 도자기 만들면 언니가 너 학회에 상 받도록 추천서하나써줄게.
여주인: 흙은 흙인데. 도자기만드는 흙에 태토라는 것이 있어요. 예전에는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 직접 태토를 구했는데 요즘은 태토공장에서 용도에 맞는 태토를 구입해서 사용하고는 한단다. 태토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서 청자토, 백자토, 고령토, 분청토, 옹기토 등등 여러 가지가 있어. 용도에 맞춰서 흙을 잘 골라 써야해.
유리: 아, 이게 아무 흙이나 가지고는 못만드는 거구나.
예슬: 저는 근데 백자가 참 신기해요. 흙색이 어떻게 백색이 되지요? 이건 거의 흑인이 백인이 되는 수준의 성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봐요.
여주인: 네가 불가능하다고 본 일이 지금까지 숱하게 일어났는 걸?
소정: 백자는 태토가 고령토야. 연회색을 띄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거의 입자가 순백색에 가까워. 흙색은 무조건 갈색혹은 검은빛에 가깝다고 생각했지? 바로 이게 고정관념인거지.
예슬(머리를 긁적대며): 네.
유리: 사람들은 은근히 색깔에 관련하여 편견이 많은 것 같아요.
예슬: 맞아맞아. 나는 예전에 얼굴 하얗고 머리 노란 사람들은 다 미국인인 줄 알았어.
유리: 그치? 난 흑인은 다 아프리카인인 줄 알았다니까.
소정: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틀에 맞춰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여주인: 우리는 너무 좁은 시각에서 모든 걸 바라보고 있어. 머릿속에 생각의 벽을 쌓아두고 그 안에서만 보는 거지.
유리: 예전에 어떤 무협 만화책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무인이 오히려 오감이 발달해서 무림의 최강자가 된 이야기를 봤는데요. 그 사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의 진리를 파악했더라구요.
예슬: 맞아. 사람의 눈은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는 반면 세상에 현혹되게도 만드는 것 같아요.
유리: 그런데 연회색을 띈 녀석들이 어떻게 흰색이 되나요?
여주인: 그 녀석들도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면 흰색이 된단다. 이게 바로 백자(白磁)의 태토로 이용되어, 질좋은 조선 백자가 되는 거야. 중국 가오링이라는 데서 많이나서 고령토라고 불렸어. 우리나라에서는 경남 하동에서 질좋은 백자가 많이 생산되었단다.
예슬: 백자에 사는 귀신들은 깨끗하지 않으면 다 보이겠어. 하하하 그치?
유리: 그러게. 헤헤.
여주인: 근데 너희가 오늘 만질 것은 고령토는 아니란다. 찰흙색에 가까운 흙이지. 너희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본 도자기 굽는 모습알지? 거기나오는 그 흙색이야.
드디어 꿈에 그리던 흙을 만지게 된 예슬과 유리. 옆에서는 여주인 아주머니와 소정언니가 정교하게 도자기에 무늬를 새겨넣고 있지만 예슬이는 간단한 반죽을 하는데도 상당히 애를 먹고 있습니다. 유리는 피곤에 지쳐 꾸벅꾸벅 졸고 있구요. 무슨 꿈을 꾸는지 입가에 침을 흘리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네요.
도공: 어험.. 캘록캘록. 얘야 나 좀 꺼내줘.
유리: 으응? 엥? 누구지?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데? 여긴 어디야. 예슬아! 예슬아!
유리: 여기는 어디지? 언젠가 와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구... 전라도인가? 주위 사람들 말투가 어째 전라도 사투리같아. 근데 주위 건물들이 다 낯설다구. 으아 여기가 어디야!
준후: 유리 아씨. 어서 준비하시랑게. 배에 탈 시간다됐당께로.
유리: 여기가 어디예요?
준후: 허허. 아씨도 참. 여기 전라도 강진이잖수. 개경까지 갈라면 아직 한참 멀었당게. 빨리 빨리 가드라오. 청자 아직 덜실었는데 같이 좀 거듭시다.
첫댓글 소정도요ㅋㅋ (시아)경진아~ 이거 이야기 내용이 정말 생생하다. 우리 옛날에 완전 더운 날에 이천 갔던 거 생각나.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