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의 여인
소리의 비밀을 나는 안다. 천 년 전의 비밀을 캐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귀 기울여 종소리를 듣지만 소리는 귀로 오지 않는 법. 신의 음성인가 싶으면 아이의 울음소리인 듯 하고, 과학의 힘인가 싶으면 인간의 소리다. 성덕대왕 신종은 사연만큼 음색도 신비롭고 다양해 종교의 영역에서 과학으로 넘겨준 지 오래다. 언젠가부터 나도 종소리에 붙들려 살았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나는 소리를 탔다. 소리가 자음과 모음으로 흩어졌다 모이고, 사라졌다 나타나고, 흘러갔다 되돌아왔다. 소리의 비밀이 새어나왔다. 나는 두 손으로 가만히 합장했다.
엄마는 아까부터 경주박물관 입구의 목 없는 불상 앞에서 서성인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엾게 여기는 것이 엄마의 삶이다. 성덕대왕 신종 앞에서 합장하는 나를 보고, 엄마도 다가와 손을 모은다. 손가락에 매듭을 만들어놓은 듯한 엄마의 열 손가락 마디마다 기도가 머문다. 타종은 멈춘 지 오래지만, 종소리는 아직도 계속된다. 박물관 야외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종소리를 따라 한 여인이 하늘로 오르고 있다. 나도 따라 오른다. 댕·····댕·····댕·····
줄줄이 엮인 자식들의 칭얼대는 소리도 아름다운 종소리로 들어주는 여자가 있었다. 자식들 배를 곯지 않게 하는 것이 어미의 도리라며 고향을 떠나 도시의 건설현장으로 뛰어들었던 여자다. 여자의 일생에 어인 공사장인가. 여자의 뱃속에서 내가 두 달이 되었을 때부터 있었던 일이다.
여자는 2층까지 짐을 나르는 것은 물론이고 망치질, 타일붙이기, 남자들과 일의 구분을 두지 않고 해냈다. 그 덕분에 나는 태곳적부터 소리에 익숙해졌고 여자의 뱃속에서 보이지 않는 작은 아틀라스 역할까지 해냈다. 여자는 여성스러웠으나 엄마는 강했다. 가늘고 고운 손가락 마디마다 꽃봉오리가 굵게 영글어가고 있었고, 여자의 뱃속에서 나도 인간의 모습을 거의 다 갖추었다.
나를 낳기 하루 전날이었다. 트럭 한 대가 들어와서 모래를 한마당 부어놓고 갔다. 여자는 제 몸집만 한 일구미라는 나무 체로 모래 속의 돌을 다 걸러내야 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나는 안다. 여자는 내가 모르는 줄 알고 지금도 그때 일을 종종 이야기하지만 말이다.
만삭의 부른 배는 아래로 아래로 쳐졌지만 그것을 끌어당겨 올릴 여유조차 없이 커다란 일구미를 일렁였다. 일구미의 나무 귀퉁이가 여자의 배를 자주 퉁퉁 쳤다. 나는 여자가 나를 부르는 신호인 줄 알고 서서히 몸을 움직여 머리를 아래로 돌리고 귀를 기울인 채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어야 할 그곳에서 나는 여자의 힘든 삶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공사장의 수많은 소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수시로 들리는 여자의 기도 소리에서 나는 여자의 손마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어서 세상 밖으로 나와 여자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여자는 공사장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결근이라는 것을 했다.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와 약속을 지킨답시고 되지도 않는 소리로 크게‘엄마아’하고 부르며 여자의 손마디를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여자는 대답 대신 눈물을 흘렸고, 마디 굵은 손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오야지라 불리는 일꾼 관리 반장은 무슨 일인가 하고 집을 찾아왔다. 전날 고된 일을 하고 돌아와 해산한 것을 알고는 산모용 미역과 소고기를 사서 넣어주고 말없이 돌아갔다. 그때 나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고 여자는 무슨 이유인지 울었다.
여자는 나를 낳고 사흘도 채 되지 않아 공사장으로 갔다. 아침 일찍부터 배부르게 젖을 먹여 준 이유가 있었다. 나를 방바닥에 눕혀 놓고 여자는 두 손을 모아 잠시 기도를 한 뒤, 한 줄기 바람처럼 사라졌다. 나는 잠들었다가 깼다가 반복하며 울고 또 울었다. 내 소리는 방안에 갇혀 정오가 될 때까지 방안에서만 맴돌았다.
여자를 보고 놀란 반장이 몸조리를 더 하고 오라고 했지만, 여자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일하지 않으면 당장 생계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저는 쉴 수 없어요. 대신 점심때, 집으로 가서 아기 젖을 물릴 수 있게 해 주세요.”
허락을 받아낸 여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내 울음소리는 문밖으로 터져나갔다. 공사장에서 집으로 달려온 여자는 문을 부수듯 열고 들어와 온몸을 내게로 던졌다. 그 순간, 내 입으로 꿀이 흘러들어왔고 여자의 입에서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성이 선율을 타고 울려 퍼졌다. 여자와 나는 그 짧은 시간에 수만 번 맥놀이를 주고받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걷기 시작했고 집 밖에 있는 우물이 걱정된 여자는 나를 방에 가두었다. 방에는 먹을 것이 있었고 밖에는 여자가 있었다. 달깍,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나 혼자 여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했다. 눈을 감으면 여자의 목소리가 더 선명히 들렸다. 이것은 뱃속에서부터 훈련된 일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여자는 예전과 똑같이‘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뛰어서 집으로 왔다. 여자의 손에는 아침 간식으로 나온 빵이 항상 들려있었다. 여자는 빵과 국수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항상 빵을 선택했다. 여자가 가져다주는 빵엔 비릿한 쇠 맛이 났다. 여자는 간식을 먹지 않은 대신에 점심을 많이 먹었고 다시 공사장으로 정신없이 내달렸다.
꿀 같은 휴식을 주는 점심시간마저도 끊임없이 내달려야 했던 여자의 가쁜 심장 소리는 내게 엄마라는 거룩한 신종으로 각인되어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크고 아름답게 들렸다. 당좌와 당목의 만남이 극적일수록 소리는 아름답다.
어떤 이는 종소리가 신의 목소리라고 했다. 내게도 엄마라는 신이 존재한다. 투박하고 마디 굵은 신의 손, 태곳적부터 들려주던 기도의 음성. 지금 들리는 종소리다. 아, 신종에 새겨진 비천상, 그 여인이 바로 내게 젖을 물리고 공사장으로 달려가 버렸던 여인이었다. 언제나 날아오를 준비를 해야만 하는 비천의 여인이었지만 내 영혼에 영원한 울림을 주었던 여인이기도 하다.
‘소리의 비밀은 들으려고 하는 자에게만 들린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비밀로 남는다.’
- 김미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