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신화다시쓰기: 복원된 서사로서 마가렛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에 나타난 극적 독백과 코러스 | 2015 년 | 임미진(전남대학교)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를 제가 부분적으로 발췌하였습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캐나다 문학의 대모인 마가렛 애트우드(Margaret Atwood, 1936~ )의 신화 다시쓰기 작품인『페넬로피아드』(The Penelopiad, 2005)를 중심으로 페넬로페(Penelope)와 열두 시녀들의 복원된 서사가 극적 독백(dramatic monologue)과 코러스(chorus)를 통하여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분석하는 데 있다.
거대서사로 일컬어지고 있는 호머(Homer)의『오디세이아』(The Odyssey)에서 침묵의 여백으로 밀쳐져 있었던 페넬로페와 시녀들의 이야기를 복원하여 다시 쓴애트우드의 신화는 여성의 죽음과 남성의 승리로 끝나는 남성적 신화를 대체한다. 애트우드가 거대서사인『오디세이아』를 해체하고 소서사로 다시 쓴『페넬로피아드』를 현대적인 관점과 이론을 통해 고찰함으로써 신화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고 문화연구의 지평을 확장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애트우드의『페넬로피아드』는『오디세이아』의 남성중심 신화 속에 가려졌던 여성들의 신화이다. 그녀는 남성영웅 오디세우스의 무대와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다른 곳’은 이성 중심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스펙터클이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여성들의 공간’이다. 여성중심으로 다시 씌어진 신화는 이성중심주의의 사유체계로 기록되었던 신화를 해체하고, 지배담론이 확고하게 이
야기의 핵심을 이루어 일체의 다른 이야기들은 부차적으로 종속될 뿐인 전통적 위계질서를 무너뜨린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Telemachus)가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몰살하고 그들과 동침했던 열두 명의 시녀를 교수형에 처한 후,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가 재회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페넬로피아드』는『오디세이아』이외의 자료들, 특히 페넬로페의 부모, 그녀의 어린 시절, 결혼,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남부끄러운 소문과 교수형을 당한 열두 명의 시녀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트우드는 이 작품에서 페넬로페와 시녀들에게 화자의 역할을 맡기고 페넬로페의 복원된 기억의 서사에 따라 외적, 내적 구조를 진행시킨다. 페넬로페는 극적 독백 형식으로, 시녀들은 코러스 형식으로 자신들의 진짜 이야기를 서술하는데 이 과정에서 오디세우스가 행한 거짓, 침략과 약탈, 폭력등 어둡고 추악한 이면이 드러나고 페넬로페와 시녀들의 억압된 상흔과 원한, 분노가 명료하게 드러난다.
본 연구의 서론격인 도입부에서는 본 연구 과제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신화 다시쓰기가 이루어진 배경과 의의를 고찰할 것이다. 신화 다시쓰기의 배후에는 신화를 신성한 서술로 보는 원형주의자의 개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보는 바르트(Roland Barthes)의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신화는 “역사가 선택하는 언술 유형”(type of speech chosen by history)(Barthes 110)이라고 정의하고 기호학과 이데올로기의 두 영역에 바탕을 두고 역사의 변화에 따른 시대적 지배 이념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의미를 산출해 가는 하나의 기호이다. 새로운 의미 형성에 기여하는 요소는 그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소이며, 그 인식소는 주로 지
배 계층에 의해 주도된다. 그러므로 신화는 그 시대의 지배 계층이 의도적으로 구상화시킨 이념의 산물이며 지배 계층이 ‘신성화시킨 서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페넬로피아드』의 글쓰기 전략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 애트우드는 “강한 신화는 결코 죽지 않는다. 때때로 그것은 희미해지지만 소멸되지 않으며 어둠속으로 되돌아가서 변화한 의복과 열쇠(Key)를 가지고 다른 의미를 형성하며 새로운 언어로 나타난다”(“The Myths and Me”, 2)고 말한다.
『오디세이아』는 서구문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원천이었다. 그러나『페넬로피아드』는『오디세이아』에 실린 이야기가 논리를 갖추지도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처음부터 애트우드는 두 대상에 주목하는데 하나는 ‘페넬로페’이고, 다른 하나는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에 의해 ‘교살당한 시녀들’이다.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는 페넬로페와 그녀의 열 두 시녀를 화자로 삼아 그들의 이야기를 낱낱이 들려준 허스토리(herstory)로 신화가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시대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되고 변주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페넬로피아드』는 문학장르상 소설이지만 애트우드는 연극요소인 독백과 코러스, 머리말과 맺음말, 노트, 각장의 제목 그리고 무대지시 등을 도입해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하였다. 극적 요소는 문학차원을 넘어서 독자들에게 보다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의미전달을 가능케 하는데, 작품 내에서 “오디세우스의 재판”, 페넬로페의 위기“, ”인류학 강의“와 같은 장은 각각 한편의 완전한 연극으로 시녀들에 의해 공연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호머 시대로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연결되며 페넬로페의 독백 18개 장과 시녀들의 코러스 11장 등 총 29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삶의 저편인 지하세계에서 유령으로 등장하는 페넬로페는 ”나는 죽고 나서 전부 알게 되었다. 이제 얽혀져있는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The penelopiad 1)고 말하며 자신이 행했던 일들을 방어하고 정당화한다. 여기에 교수형 당한 열두 시녀들은 ”우리도 여기 있어요“(195), ”당신(오디세우스)이 죽여버린 여자들“(5)이라고 슬픔과 분노가 가득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맥콤(Judith MeCombs)은 애트우드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평에서 “신화해체”(demythologizing)와 “신화 다시쓰”(remythologizing)의 개념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두 전략을 통해 수동적이었던 여성들이 힘을 얻고 변화를 겪게 되었음을 강조한다(10-11). 요컨대 다시 쓴 신화 속의 여성 목소리는 고대서사의 장엄한 서사형식에 회의적이며, 그녀들의 관점에 따라 불경스러울 만큼 적극적으
로 자기의사를 표출한다(Howells 9). 애트우드는 이성주의 사유체계 아래 오랫동안 당연시되어 왔던 페넬로페와 시녀들의 억압된 내면을 포착하고 지하세계를 떠돌던 그녀들의 영혼을 불러낸다. 그들을 유령의 모습으로 등장시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애트우드의 글쓰기 양식은 안과 밖 사이의 절대성과 총체성을 거부하고, 진실을 찾고자 하는 시도로써, 거대서사에 저항하는 이 시대 여성의 강렬한 몸짓이다.
셋째 부분에서는 지하세계에 영혼을 불러내는 비합리적인 재현의 의미와 유령으로 부활된 페넬로페의 독백 및 시녀들의 코러스가 지닌 기능을 고찰 해 볼 것이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외부세계에 충실하게 반영되는 객관적 표현물이 아니라 주체의 기억과 회상이 변용, 재구성되는 가변적 구성물로써, 은닉되고 왜곡되어온 사건들을 어두운 골목길을 탐험하듯 조심스럽게 추적하고 탐험한다
(Howells 6). 애트우드는 사실적 재현의 한계를 초월해 지하세계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을 불러내서 말을 시키는 비사실적인 재현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유령의 출현은 비합리적인 상황에 대한 반합리적인 반동으로써 페넬로페와 시녀들의 심층적 실재를 재현하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전략이다.
『페넬로피아드』에서 채택된 유령의 출현은 『오디세이아』와 같은 연속 서사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목적과 지배자의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일직선적인 움직임을 중단시키고 단절시킨다. 따라서 애트우드의 신화 다시쓰기는 그동안 남성 영웅에 의해 삭제되고 은폐되어왔던 여백을 채우고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실종된 부분을 찾아가는 작업이자 침묵을 방한하는 작업이다.
페넬로페는 극적 독백을 통해 살아서는 말한 수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육체가 소멸된 상태에서 대화상대 없이 혼자서 서술하고 있다. 그간 페넬로페에게 부여되었던 역할은 다른 여자들을 매질할 때 써먹는 회초리(2)이며, 그녀의 억압과 소외를 은폐한 채 가부장적 사회를 더욱 견고하게 하고 유지시킨 이상적인 아내의 상징으로 미화된 것이었다. 오디세우스의 이름을 더욱 찬란하게 빛내주고 서구 남성 가부장제를 견고하게 지지하고 떠 받쳐주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그녀의 눈부신 미덕에 대한 찬사를 “제발 나처럼 살지 마요!”라 외쳐 거부하고(2-3), ‘교훈적 전설’인 ‘덕성스러운 아내’, ‘정숙한 여성’이라는 자신의 공식판본(official version)을 강하게 부정하면서 독백을 시작한다. 기나긴 세월동안 침묵하며 기다렸던 페넬로페는 진실을 말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다.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에 의해 교수형을 당했던 시녀들은 살아생전에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이름 없고 보잘 것 없는 여자들, 남들이 불명예를 씌어놓은 여자들, 손가락질 받는 여자들,”(191) 달덩이 같은 열두 명의 매춘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에 목에 올가미를 휘감은 채 한 줄로 매달려 움찔움찔 경련하는 스물네 개의 발이었다(The
Odyssey 473). 아주 어렸을 때 페넬로페가 직접 사들이거나 데려와서 텔레마코스의 놀이 동무로 길렀고, 수의를 짜고 풀던 고된 일을 함께 했으며 왕궁 안에서 페넬로페가 가장 신임하는 눈과 귀가 되어 주었던 시녀들이었다. 페넬로페 곁에서 평생을 살았고 노래로 페넬로페의 마음에 위안을 주었던 거의 자매와도 같은 사이였던 것이다.
페넬로페와 시녀들은 결코 이름 없는 추상적 실체가 아니며, 왕궁내의 공동체로부터 유리된 단자적 존재도 아니다. 그러나 시녀들은 가장 하위주체로서 말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름도 얻지 못한 채 어떤 담론에도 등장하지 못하는 지워진 존재들이다. 그녀들이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에 의해 교살당한 이유는 구혼자들에게 “겁탈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남성가장 “오디세우스 허락 없이 겁탈당했다는 점“(181)이었다. ”그것은 앙갚음 이었고, 분풀이였으며 헛된 명예를 지키려는 살인“(193)이었다. 이들이 집단 유령으로 돌아와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는 모든 억압된 것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기존의 담론을 통해서는 ‘말할 수도’, 말을 하더라도 ‘들릴 수도 없기 때문에’, 억압하는 담론에 대항하는 힘을 얻기 위해서 고대 희랍극의 코러스와 같은 역할로 등장한다.
고대 희랍극에서 코러스는 극의 구조이자 인물이라는 특수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 서사와 행동요소가 강조, 확대되면서 인간의 삶에 대한 운명적 의의가 관객들에게 시각적, 청각적으로 강력한 호소력을 주었다. 또한 관객의 생각 및 느낌을 공유, 대변하면서 작품에 대한 해설적 정보를 제공하고 극적 사건에 대해 논평하며 다른 등장인물들과 직접적으로 대응할 뿐 아니라 무대 밖의 일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Wilson & Goldfab 44-5). 또한 코러스는 관객에게는 극 전체에 대한 성찰적 태도를, 특정한 목표와 상황의 한계 속에 들어 있는 등장인물들에게는 극적 사건에 대한 평가 또는 판단의 기준을 제공했다. 따라서 코러스의 태도나 의견의 변화는 결정적인 극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 의의는 변화와 발전의 결과로 이어진다. 코러스는 배우이자 관객이기도 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주제를 극적 주제로 표현하고 이를 다시 사회적 주제로 환원하여 사회 공동체의 성찰어린 화해와 통합을 기했던 희랍극의 핵심적 요소였다 할 수 있다. 『페넬로피아드』에서 시녀들의 코러스는 페넬로페의 극적독백 사이에서 출현하여 작품
속 배우와 관객으로 참여하고 자신들의 삶의 단편들을 다양한 음악형식으로 노래함으로써 희랍극에서의 코러스 기능과 역할을 다층화 시켰다. 페넬로페의 독백과 열 두 시녀들의 코러스로 이루어지는 문학적 재현은 그들의 상흔을 달래고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적극적, 능동적인 몸부림이다.
결론인 네 번째 부분에서는 각 부분의 주제를 요약하면서 다시 쓴 신화가 권위적 작가나 단일한 음성의 텍스트를 거부하고 독자의 주동적인 역할과 사회적, 역사적 문맥에서 풍부한 의미를 재생산해낼 뿐 아니라 더 확장된 영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할 것이다.
기나긴 억압과 굴종의 역사를 거쳐 여성들의 실체가 여러 문화 형태로 표출되고 애트우드가 개인적으로 겪은 여러 경험과 그녀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제반 사상 및 이념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탐구한 산물인 것이다.
애트우드의 텍스트는 역사와 문학, 사실과 허구, 살아있음과 죽음, 빛과 어둠, 산문과 운문, 정신과 육체 등 이분법적 사고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자유로운 글쓰기의 모델을 제시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이 세계와 지하세계의 조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페넬로페의 극적 독백과 시녀들의 코러스의 재현은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절대성과 총체성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능동적이고 지속적이 텍스트로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