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군 문화관광해설사 중국 절강성 답사기

[고윤정]

 중국 절강성에서 ‘부안삼락三樂’을 보다

신선이 거하는 곳, 중국 저장성을 찾아서 
  중국 방문의 소감은 한마디로 ‘거대하다’이다. 인구수가 많음은 물론이고 한 지역의 성으로 불리는 도 단위의 땅덩어리가 우리나라보다 더 큰 대륙, 심지어 지구 밖에서 찍은 위성사진에 만리장성이 보일 정도라니.
  절강성에서 부안군 문화관광해설사 일행을 맨 먼저 반기며 맞이한 것은 가을비였다. 이십 여일 째 연일 내리는 비에 항주는 온통 무채색 일색이다. 운무에 휩싸인 도시는 신선이 머물렀다는 절강성답게 신비감 속에 살짝 감춰놓고서 속내를 쉽게 들어 내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중국을 다녀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중국은 내게 벌써 두 번째 방문이었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현장교육이다. 부안군 문화관광해설사의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이 목적인만큼 여행의 설렘과 함께 책무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가는 기분으로 짐을 꾸리고 집을 나섰지만 마음은 그리 가뿐하지 않았다.
  항주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오른 우리 일행은 첫 번째 목적지를 향하여 도심 속을 달렸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회주의라는 그동안의 선입견과는 달리 몇 년 새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지구에 음악이 있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것이다.”라는 작가 이외수의 말처럼 비오는 날의 수채화 같은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버스 유리창에 빗줄기가 사선으로 부딪쳐 흘러내리며 비를 담은 차창은 그야말로 달리는 화폭이다.  
  버스가 빨간 신호대기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정신없이 바쁘게 오가던 차량 행렬도 일제히 멈췄다. 도로 한 편을 차지하며 자동차들과 나란히 달리던 오토바이족들도 멈춘다. 줄지어 뒤따라오던 자전거 행렬도 따라 멈춰 섰다.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다가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색다른 진풍경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 운전자들은 어김없이 비옷을 입고 있었는데, 비옷은 한 결 같이 오토바이 운전자와 자전거 운전자가 한 세트 맞춤 제작되어 앞뒤로 넉넉하게 푹 감싸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비옷은 운전에 방해되지 않게 헤드라이트 부분은 투명 비닐로 디자인 되는 섬세함까지 갖춰져 있다. 이 모습은 중국인들에겐 생계의 수단이자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무리지어 도열해 있는 이들의 낯선 풍경은 멀리 이국땅에 와 있음을 새삼 실감케 했다. ‘비 오는 날의 파리’를 그린 카유보트가 아마 이 모습을 지켜봤더라면 또 다른 묘미의 명화가 탄생되지 않았을까.
  푸른 신호등이 터졌다. 출발선에 선 마라토너가 신호탄 소리에 힘차게 스타트 하듯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도 동시에 움직였다. 푸른 신호등은 마치 절강성 5박 6일간 첫 여정의 서막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팡파르 같았다.

 

  절강성 여행 테마는 항주와 주산의 보타락가산 관음신앙에 중점을 두었다. 이번 답사는 그리 녹록치 않는 빠듯한 일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면 광활한 대륙인 중국 절강성의 짧은 일정 속에서 낯선 이국의 정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것인가. 고심 끝에 변산반도와 연계해서 비교해 보고 우리 고장의 자랑인 ‘변산삼락(邊山三樂)’에 견주어 절강성의 풍경, 맛,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했다.

절강성의 풍경 속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 저절로 풍경이 만들어진다고 했던가. 풍경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절강성의 항저우(杭州)다. 절강성은 양자강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강남 갔던 제비가 춘삼월에 돌아온다.’던 그 강남이다.
  마르코폴로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라고 극찬한 항저우, 첫날 답사는 항주의 수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는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항주는 남송의 수도였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킬 때 미인계로 유명한 서시(西施)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항주의 최대의 볼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서호(西湖)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중국 10대 명승지 중의 하나로 항주 서쪽에 있어 서호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서호에는 빼어난 경치가 무려 사백팔십 곳이나 된다. 소동파가 항주 지사로 부임했을 때 쌓은 제방은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서호십경(西湖十景)중에 안개 낀 봄날의 새벽경치가 가장 아름답다는 소제춘요(蘇堤春曜)가 유명하다.
  입구에서 송나라 대문호 소동파 선생이 우리를 반긴다. 서시의 미모에 버금가도록 아름답다는 호수 서호를 소식은 ‘맑은 날의 서호는 화장을 곱게 한 서시고, 흐린 날의 서호는 맨 얼굴을 드러낸 서시’라고 했다. 그래서 이곳 항주사람들은 ‘낮의 풍경보다 밤의 풍경이 아름답고, 밤의 풍경보다는 비오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 4대 미인으로 그의 미모에 반하여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침어(浸魚)미인 서시(西施). 특히 서시는 찡그린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안개 자욱한 하늘이 잔뜩 흐려지고 강물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간간히 떨어지는 빗줄기에 운치는 더해져 서호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아취(雅趣)에 젖게 만들어버린다.
  중국인들은 하늘에는 천당(上有天堂), 땅에는 항주와 소주(下有蘇杭)라고 단언한다. 수려한 경관을 보유하고 있는 바다 같은 호수 서호를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소흥의 난정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중국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워낙 넓은 땅덩어리에 관광지 이동거리가 보통 두세 시간 가량 소요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에 반해 변산반도 일주를 살펴보자면 십 여분 거리마다 주요 관광지가 위치해 있어 짧은 시간 내에 알차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항주에서 소흥으로 또 주산에서 상해로 이어지는 행보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광활한 대륙임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특히 영파에서 상해로 잇는 항주만 대교는 꿈의 다리로 전체 길이가 36km로 교각이 5km마다 일곱 가지 고운 무지개 색이 칠해져있었다.
  평소 서울에 다녀올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몇 시간 동안 시외버스 타고 하루를 소비할 생각에 미리부터 지쳐버리곤 했다. 중국의 드넓은 대지에 발을 딛고 서 있자니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의 유행가처럼 마음의 포용력이 생긴 듯 어느새 조바심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느긋해지면서 일상에 적응돼가고 있었다. 마치 이웃집 놀러가듯 가볍게 나들이 가는 변산마실길 나서는 기분이랄까.

 

  소흥(紹興)은 춘추시대 오월 두 나라의 다툼 속에서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와신상담(臥薪嘗膽), 동시효빈(東施效嚬)이라는 고사를 탄생시킨 본 고장으로 대문학가 노신선생과 서예가 왕희지의 유상곡수(流觴曲水)로 유명한 난정이 있다.
  난정은 소흥 서남쪽에 있는 정자로 춘추년말 월왕 구천이 이곳에 난(蘭)꽃을 심었다하여 난정(蘭亭)이라고 불리었다. 또한 난정은 경주 포석정처럼 왕희지가 소흥 유력인사들과 함께 굽어져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은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왕희지가 난정에서 벌인 곡수유상 시구를 짓지 못하면 벌주 세잔을 마셨다한다. 

  난정 초입의 아지정(鵝池亭)에 이르자 ‘아지(鵝池)’라고 쓰인 석비 앞에서 책에서나 접하던 그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가 직접 썼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부안해설사들은 너도나도 앞 다투어 기념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거위 연못의 정자’라는 뜻을 가진 아지는 왕희지가 거위를 기르면서 서법을 연습했다고 한다. 거위를 뜻하는 아(鵝)의 서체는 왕희지가 직접 쓴 필체이며, 연못을 뜻하는 지(池)는 그의 아들인 왕헌지가 썼다고 해서 ‘부자비’라고도 불린다. 그 사실을 뒷받침하듯 아지정 바로 앞 연못에서는 한 무리의 거위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다.
  부안이 낳은 시인 신석정도 왕희지의 글씨를 장강의 물줄기처럼 구김살 없는 필체로 전아웅경(典雅雄勁)이라고 극찬하며 부러워했었다.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왕희지의 명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답사의 소득이 아닌가 싶다.
  소흥에서의 다음 행보로 중국인들이 존경하는 인물로서 누구나 한 번쯤은 방문하고 싶어 한다는 대문장가 노신고가를 찾았다. 소흥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노신은 일본 의과대학에 유학을 갈 정도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다.

 

  생전에 부를 누리며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개인 저택은 그의 원대한 사상만큼이나 크고 웅장했다. 심지어 집안에 몇 백 평이 넘는 채마 밭까지 갖추고 있어 많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살았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뒤뜰에는 노신이 배를 타고 왕래했다던 대운하가 바로 연결 되어 있어, 마치 우리네 도시 지하철처럼 시내 곳곳으로 편리하게 다닐 수 있었다고 하니 과연 중국이 운하의 천국임을 실감케 했다.
  중국의 소설가이자 혁명의 선구자였던 노신의 사상과 글은 현대에 이르러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과정에 필독 과목으로 선정되어 모든 중국인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루쉰은 말한다. “희망이란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없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것은 지상(地上)의 길과 같다.”라고.

 

  상해에서 가장 중국의 전통적인 멋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단연코 예원을 들 수 있다. 예원(豫園)은 상해 도심의 유일한 원림으로 명대 반윤단이 최초로 건립한 것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20여 년에 걸쳐 만든 400년 된 정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의 아버지는 정원을 완공하기 전에 죽었고, 효자 아들 반윤단 또한 이곳에서 몇 년 밖에 살지 못했단다.

 

  우리 창덕궁의 경우를 보면 자연 그대로를 중시해 건물을 짓는다. 반면 중국인들은 대륙의 기질답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그곳에 자연을 집어넣는다. 그런데도 전혀 억지스럽지 않고 잘 융화된 모습은 오히려 웅장함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할까.
  우리나라 고궁 크기와 맞먹는 규모도 놀랍지만 경극인 전통극을 감상하던 극장공간은 물론 멋진 연못과 정자, 그리고 진귀한 나무와 돌까지 황제가 부러워할 정도로 호사스럽게 만든 인공 정원은 궁궐이 아니라 개인 정원이라는 사실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특히 지붕 용마루 끝에 얹어진 용은 황제로부터 왕위 찬탈의 오해를 불러 일으켰으며, 담장을 타고서 용트림하고 있는 거대한 쌍룡은 명대 이후 당대의 온갖 유행이 결합된 형태라고 한다. 또한 잡귀를 쫓기 위해 아홉 번이나 길을 꺾어서 만들었다는 구곡교와 부를 상징하는 내림마루의 모서리는 중국의 위상을 말해주듯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었다.

 

  아버지를 위해 멋진 정원을 만들었다는 반윤단의 효심에 평생을 자식 걱정으로 밭고랑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고향집 어머니가 몹시도 그리웠다.
  예원을 나오면서 상하이 옛 거리도 한 번 들러볼 일이다. 인사동처럼 없는 것이 없는 만물시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는 우리네 전통시장처럼 물건 값을 깎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상해 옛 거리 초입에서부터 섣부른 흥정은 금물이다. 

 

  마지막 날의 상해는 덤으로 얻는 종합선물세트 같다. ‘상해는 야경 보러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밤의 상해는 화려하게 치장하고서 우리를 유혹했다. 상해 야경은 전망 좋은 라운지나 타워에서 보는 것보다 황푸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보는 광경이 가장 아름답다. 마치 옥구슬이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동방명주의 진면목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유람선이 물살을 가르자 강을 사이에 두고 푸둥과 와이탄이 각기 다른 풍경으로 매혹적인 불빛을 뿜어냈다. 강변에 늘어서 있는 푸둥 지역 빌딩숲은 세계 건물 전시장이라는 말답게 유럽풍의 다양한 건물까지 화려한 조명으로 아름다운 실루엣을 이루고 있었다.
  상해 야경과 격포항 야경이 오버랩 된다. 등대에서 바라본 격포 밤바다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지만 형형색색 오색으로 일렁거려 무척 인상 깊게 내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서화가 춘방은 서화를 감상하고는 ‘이미 내 눈을 거쳐 간 것은 내 것’이라고 감정인(鑑定印)을 찍곤 했단다. 욕심 같아선 상해 야경 한 귀퉁이를 뚝딱 떼어내어 우리 부안에 옮겨놓고 싶다. 

 

  쌀쌀한 상해 날씨였지만 두 뺨을 스치는 상쾌한 강바람이 그동안의 여정으로 인한 피로를 단숨에 날려버린다. 그림에 ‘나 얀 반 에이크가 이 자리에 있었다.’라는 글귀를 남겨 놓은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처럼 내가 다녀갔음을 기록하는 인증 샷 한 컷도 찍었다. 내 멋진 포즈가 상해 야경과 어우러지면서 또 하나의 명화가 탄생되는 순간이다.
 
절강성의 맛을 찾아서
  중국을 ‘음식의 천국’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에겐 김치 없이 삼시세끼를 견뎌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고역이다. 사실 출국을 며칠 앞두고 장염에 걸려 홍역을 치룬 뒤끝이라서 ‘혹시 탈이라도 나면 어쩌나’하고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기우였다. 연일 이어지는 강행군에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지역마다 색다른 산해진미에 맛을 음미하는 여유까지 부리며 호사를 누렸다.   
  밥 때가 되면 한상 가득 차려진 진수성찬에 원탁 판을 돌려가며 먹느라 여념이 없는 내게 동료들은 중국에 그냥 눌러 살아도 되겠다며 우스갯소리를 건넨다. 그렇게 절강성 답사가 진행됨에 따라 기름지고 향신료가 강한 독특한 맛에 어느새 길들여지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정말 못 먹는 게 없는 것 같다. 모든 부위가 음식 재료로 활용된다. 닭 껍질, 닭 벼슬, 집오리 혓바닥과 돼지 신장, 상어 지느러미는 물론 심지어 제비집 말린 것까지 요리로 먹는다니 이들의 취향에 놀라울 따름이다.
  중국음식의 매력은 다양한 채소를 풍부하게 사용하면서 영양분과 재료의 맛을 살린 요리라는 것이다. 지지고, 볶고, 튀겨낸 기름진 요리에 우리들의 우려와 달리 항주의 음식은 생각보다 담백하고 먹을 만했다. 특히 주산시 해산물 요리는 즉석에서 골라먹는 재미와 더불어 무척 싱싱하고 담백했다.
 

 

  중국인들이 기름진 음식에도 불구하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아마도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차 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식사 후나 그리고 손님을 맞이할 때 절대 빼놓지 않는 것이 바로 차(茶)다.
  절강성 항저우에서 대표적인 용정차는 중국 10대 명차로 청나라 황제 건륭제가 매우 좋아했단다. 짙은 향, 부드러운 맛, 그리고 찻잔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찻잎에서 고소한 향이 난다. 용정차의 깊은 맛에 감명을 받은 왕이 어느 절 앞의 차 밭에 벼슬을 내렸다고 하니 가히 그 명성을 짐작할만하다.
  우리 고장 부안에도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이에 못지않은 명차가 있다. 식약동원(食藥同原)’이라고 했던가. 음식과 약은 뿌리가 같다는 말이다. 즉 음식을 제대로 먹으면 보약을 먹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차 뿐만 아니라 각종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약차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일곱 가지 약초를 가미해서 만든 부안의 칠향차(七香茶)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 ‘부풍향차보’에 의하면 부안현감으로 있던 이운해가 고창 선운사 일원의 차를 따서, 약효에 따라 일곱 가지의 향약(香藥)을 가미해서 약용 차를 제법(製法) 했다고 한다. 풍 맞았을 때, 추울 때, 더울 때, 열날 때, 감기 들었을 때, 기침했을 때, 체했을 때 등 각종 증상에 따라 마시는 칠향차는 말 그대로 안성맞춤 약차인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대에 이르러 그 비법이 전수되지 않아 맥이 끊겨 있다. 그렇지만 천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부풍향차보가 있다. 칠향차 제조법과 차 끓이는데 소용되는 여섯 종류의 다구에 대해서 세세히 일러주고 있어 복원하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을 듯하다.
  이에 부안군에서는 칠향차를 지역 명차로 특화시키고자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칠향차 재현과 더불어 상감청자의 본 고장답게 부안청자박물관과 연계해 칠향차를 고풍스럽게 담아낼 수 있는 청자 찻잔을 복원하는데 힘쓰고 있다니 이런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이다.

 

  중국 절강성은 예로부터 물고기의 고장으로 불렀다. 서호 호수에서만 나는 생선요리 서호초어(西湖醋魚)는 이름만 봐도 항주의 정통요리임을 알 수 있었다. 식초나 설탕을 양념으로 넣어 만든 초어에는 형수와 시동생간의 애환이 서려있다.
  전설에 의하면 서호에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다. 서호를 찾은 깡패무리가 형수의 미모에 반해 형제와 시비가 붙어 형을 죽이게 된다. 형수는 이들의 보복이 두려워 시동생을 멀리 떠나보내면서 “신맛과 단맛의 생선을 먹고 언젠가는 출세하여 항상 오늘의 어려움을 잊지 말라”고 다짐하며 마지막으로 요리를 해준다.
  그 후 시동생은 출세를 했고, 다시 항주로 돌아와 그들의 죄를 물었지만 형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잔칫집에 형수가 만들어 주던 요리가 올라왔다. 요리사로 숨어 지내던 형수가 만든 생선 요리로 인해 형수와 시동생은 눈물의 상봉을 했으며 이들의 두터운 정과 의미를 가진 생선요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단다.
  절강성 항저우(杭州)에서 또 하나의 전통 요리는 바로 동파육(東坡肉)이다. 큼직한 삼겹살 덩어리를 통째로 향기 좋은 전통 명주 소흥주에 넣어 삶은 후 간장으로 장시간 졸여서 만든 동파육은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고 한다. 집에 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간장을 넣고 돼지고기를 삶았는데, 바둑을 두느라 깜박 잊고 고기를 너무 삶아버려 낭패였지만 의외로 맛이 좋았단다.
  동파육의 유래는 소동파가 항저우 지사로 있을 때, 양쯔강의 범람으로 큰 물난리 위기에 처하자 소동파가 병사들과 백성을 동원해 강가에 제방을 쌓아 도시를 구하게 되었다. 이후 소동파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 백성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돼지고기를 보내자, 그는 혼자 먹지 않고 자신이 개발한 요리법으로 돼지고기를 요리해 백성과 나눠 먹었다. 그러자 소동파의 어진 마음에 감동한 백성들은 돼지고기 요리 이름에 그의 호를 붙인 동파육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전해진다.
  동파육은 원래 중국식 삼겹살 수육을 말한다. 쫄깃하면서도 입에 넣으면 녹을 듯 부드러운 동파육은 돼지고기 특유의 맛을 최고로 살린 요리라고 말할 수 있다.
  시대의 풍류객 소동파는 요리에도 조예가 깊어 식도락가로 유명하다. 그는 요리 경험을 기록에 남기기도 했는데 ‘깨끗이 씻어서 가마에 두고 물을 적당히 넣는다. 익은 다음 재촉하지 말고 약한 불에 스스로 이뻐지게 한다.’
  또한 항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리가 ‘거지닭’이다. 연잎으로 싸서 간장에 조려낸 음식으로 이 고장 거지가 운 좋게 닭 한 마리를 얻었는데 변변한 재료가 없어서 진흙구이를 해 먹은 데서 유래했다. 암행 중이었던 건륭황제가 우연히 이 거지닭을 맛있게 얻어먹었다고 한다. 이처럼 재미난 이야기가 얽힌 서호초어와 동파육, 그리고 거지닭은 항저우의 유명한 음식이 되었다.
  맛 하면 부안도 어느 지역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먹는 것과 성욕은 사람의 본능이라고 주장했던 조선의 풍운아 이자 맛 칼럼니스트 허균이 도문대작에서 손꼽은 부안의 명물 ‘삼대 진미’가 있다. 복숭아꽃 색을 띤 새우 도하(渡河), 오징어, 사슴꼬리를 그늘에 말려 임금에게 진상한 녹미(鹿味)가 그것이다.

 
 

  부안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로 문화관광해설사 고윤정이 개인적인 주관으로 특별히 손꼽는 미슐랭은 바로 격포다. 사시사철 싱싱한 횟감을 즐길 수 있으며 뽕을 특화시켜 만든 음식은 물론 백합죽, 바지락죽, 그리고 갑오징어 돌판구이, 꽃게장들은 입 안 가득 바다 맛을 언제든지 만끽할 수 있다.
  사실 세상을 살다보면 먹는 것만큼 신나고 즐거운 게 또 있을까. 낯선 곳에서 별미를 찾아먹는 즐거움은 여행의 또 다른 묘미(妙味)인 듯하다. 식도락가들은 말한다. 음식은 눈으로 먹고, 귀로 먹고, 코로 한 번 더 먹고, 마지막으로 입으로 먹는다고.
  추억은 언제나 맛있다. 특히 짭조름한 동파육과 우리네 백숙과 같은 거지닭에 순도 50도가 넘는 중국 전통술 빠이주(白酒) 한 잔을 곁들인 저녁식사는 여행의 풍미를 더했다.

절강성의 역사, 문화 이야기
  중국은 역사 지리적으로 우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수 없이 산재해 있는 중국은 우리나라에 많은 문물과 문화적 영향을 주었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절강성은 수천 년의 역사 문화만큼이나 명승고적이 많다.
  절강성 답사가 절정으로 치닫는 셋째날, 빠듯한 일정에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일찌감치 호텔 문을 나섰다. 잔뜩 찌푸린 하늘은 여전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그러고 보니 절강성에 도착해서 맑은 하늘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황사로 인해 새로운 지구를 찾아 떠나는 내용을 담은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마치 비극이 눈앞의 현실이 될 것만 같은 엉뚱한 노파심마저 든다. 내 고향 하늘이 더욱 그리워지는 날씨다.
  살아서는 부안이라는 ‘생거 부안’ 고장답게 ‘비는 쫓고 눈은 잡아맨다.’는 속담이 생길 정도로 쾌청한 부안 하늘을 마음껏 만끽하고 싶어진다. 이렇듯 한 달 가까이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새삼 인내와 감사를 배운다.  우리는 그렇게 짙은 안개가 자욱한 스모그 한복판에서 격포 수성당 개양할미의 미스터리를 풀기위해 보타낙가산의 관음신앙을 찾아 힘찬 행보를 시작했다.
  보타낙가산은 절강성 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중국 4대 불교 성지(聖地)중의 하나다. '꽃과 나무로 가득한 작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보타낙가는 관음보살이 거주하는 ‘포탈라카(potalaka)’의 음역이다. 보타산과 낙가산을 함께 보타낙가산으로 불린다.
  중국 옛 선현들은 ‘산과 호수의 으뜸은 서호에 있고, 산과 강의 명승은 계림에 있으며, 산과 바다의 절경은 보타에 있다’고 노래했다.

 

  보타산은 예부터 ‘골짜기마다 사찰이요, 길이 다하는 곳마다 승려가 있다’고 했을 만큼 활발하게 포교가 이뤄지던 곳이다. 물론 지금도 관음의 가피를 입고자 보타산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크고 작은 절 모두가 관음보살을 봉안하고 있어 명실상부한 관음의 고향으로 불린다.
  낙가산(洛伽山)은 보타산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섬으로 배로 이동하는데 30여분이 걸렸다. ‘낙가산을 가지 않으면 보타산에 오지 않은 것과 같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이곳 또한 관음보살의 도량이다.
  낙가산의 지형은 마치 석가가 연꽃위에 누워있는 것처럼 섬 전체가 하나의 와불상(臥佛像)을 이루고 있다. 배를 타고 가다보면 섬 모양이 불상의 머리, 목, 가슴, 배, 발등을 일부러 조성 해 놓은 듯 바다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보타낙가산에는 관음성지의 근원지인 불긍거관음원이 자리하고 있고, 관세음보살을 친견할 수 있다는 조음동이 있다. 의상대사가 이곳을 다녀간 후 절을 본 따서 낙산사 홍련암을 건축했단다.
  파도가 동굴에 들어가 울린다는 조음동은 천 길 낭떠러지 사이로 갈라진 돌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 동굴 속 파도가 절벽에 부딪칠 때마다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포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찔하게 만들어버린다.
  또한 범음동(梵音洞)은 바닷가의 좁고 가파른 두 계곡을 가로 질러 암자를 세웠다. 천상의 음악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범음동은 마치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다 울려 놓으려는 듯이 암자 밑으로 거친 물살의 바다물이 드나들고 있었다.
  푸퉈산(보타산)이 관음도량이 된 유래는 당 초기 한 서역승이 이곳에서 관음을 보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거의 같은 시기에 신라 상인들이 오대산에서 관음상을 구해와 배에 싣고서 신라로 돌아가려고 출항하였으나 암초에 걸려 나아가지 못했다. 배가 멎은 채 움직이지 않았는데 조음동 부근에 관음상을 내려놓으니 배가 순조롭게 출항하였다. 배가 암초에 걸려 나가가지 못하였다하여 신라초(新羅礁)라 하였고, 그 관음상을 모신 곳은 움직이지 않은 관음을 모신 불긍거관음원이란 명칭이 붙게 되었다.
  불긍거관음원의 역사는 서긍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제일 먼저 등장한다. 보타산에서는 일본 승 혜악이 신라상인을 대신하여 오대산에서 관음상을 구해 온 인물로 알려졌지만 신라 상인을 일본 승려로 바꿔치기 했다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 보타산은 중국 4대 불교 명산 중 유일하게 해상 불교성지로 해천불국(海天佛國)이라는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빠듯한 배 시간에 맞춰 관음신앙의 근원지를 찾아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국의 늦가을 날씨와 비슷한 하늘은 여전히 회색빛이다. 남해바다의 끈끈한 해풍 때문인지 이날따라 유난히 후덥지근했다. 답사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후끈해지는 열기에 두툼하게 챙겨 입은 옷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벗어 제쳤다. 관음의 흔적을 찾아서 보타낙가산 곳곳을 헤매자니 종아리가 뻐근해 온다.
  마침내 보타낙가산 중턱에서 불자들의 신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남해관음 동상을 찾았다. 크기가 무려 33미터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관음동상으로 보타낙가산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3대 관음성지가 있는데 동해 낙산사 홍련암, 서해의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으로 이곳 모두 해안에 세워져 보타산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보타산 어느 곳에서나 보인다는 전체가 황금으로 도금돼 있는 거대한 남해관음보살상 앞에서 우리는 고개를 높이 치켜들고 한참을 올려다 봐야했다. 남해관음상 앞엔 관광객과 참배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중국에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남해관음보살이 인자한 미소로 맞이한다. 관음보살의 가피 속에서 우리의 소원이 통한 걸까. 관음상 앞에 도착 하자마자 마치 화답 하듯이 온종일 흐렸던 날씨가 갑자기 쪽빛 푸른 하늘을 드러냈다. 중국 절강성에 와서 처음 보는 맑은 하늘이다. 햇살 한줄기가 이토록 감격스러울 줄이야 …….
  곳곳마다 비치되어 있는 대형 향로 앞에서 중국인들은 너도나도 향을 사르고 소원을 빌고 있었다. 한줌 가득 욕심껏 향을 살라대는 이들 또한 빌 소원이 무척 많은가 보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관세음보살에게 살짝 소원을 넣어 본다. 
  석가모니의 입적 이후 미륵이 출현할 때까지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준다는 관세음보살은 이름만 불러도 곧바로 그 소리를 듣고서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변산반도에 도래한 해신(渡來海神)으로 정착한 한국적인 휴머니즘을 가진 여신으로 표현된 개양할미의 원래 고향은 어디일까. 우리는 관세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보타낙가산에서 그 원형을 찾아보았다. 
  개양할머니가 부안 앞바다에서 표류하는 어선을 구하기 위하여 바다 속으로 들어가도 겨우 바닷물이 발목에 찰랑거릴 정도였다니, 얼마나 키가 큰 개양할머니였을까 했다. 그런데 보타산에 와 보니 남해관음이 주산군도 섬을 건너 뛰어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관음도(觀音跳)라는 발자국 유적이 보타산에 있는 것을 보니, 개양할머니와 남해관음이 뭐가 다를 게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남해관음이 흑산도를 딛고서 부안 앞바다까지 건너 뛰어 개양할미가 된 것은 아닌가. 수성당의 개양할미가 남해관음의 화신이라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개양할미가 건너뛴 바닷길을 사단항로라고 했다. 
  변산반도 바닷길이 중국 항주만과 변산반도 사이에 사단항로가 개설되어 있다는 점에서 항주만 일대에서 개양할미의 근원을 찾아볼 필요성이 있다.
  주산군도 보타도에서 출발한 배가 다도해를 거치지 않고 흑산도를 경유하여 곧바로 변산반도 해역에 진입한다. 조선시대부터 격포와 위도 사이는 배가 항해 하는데 주요 관문이었으며 서해 해상활동의 요충지였다. 서긍이 정해현 매잠에서 출발하여 한반도 해역으로 들어오면 반드시 이곳 해문을 통과했다.
  항주만 남쪽 주산군도에 승사열도가 있다. 승사열도 어부들은 봄철에 고기잡이 나가기 이전에 퐁어와 해난 방지를 위하여 해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개양제를 지냈다.
  개양은 닫아두었던 바다를 고기잡이를 위하여 ‘바다를 처음 연다.’는 뜻으로 이 개양제가 사단항로를 타고서 변산반도로 직접 전파해온 것으로 본다. 즉 죽막동 수성당 개양할미는 사단항로의 바닷길을 타고서 주산군도에서 변산반도로 건너왔다고 보는 것이다.
  개양할미의 연원을 밝힐 수 있는 해안가의 할머니신이 주산군도의 보타산에서 등장하고 있다. 보타산의 단고도두(短姑道頭)이야기가 그것이다.
  단고도두는 보타도 서남해안에 위치해 있다. 거대한 바위 묘장엄로(妙庄嚴路)에 긴밀히 밀접해 있다. 이곳은 자연적인 바위로 보타산을 찾아오는 선박들이 정박할 수 있는 유일한 부두였다. 송원시기에 일본과 조선 국적의 선박들이 보타산에 왔고, 성스럽게 제사를 올리는 사람들이 항상 끊이질 않았던 곳이다.

 

  옛날 송의 조산위는 이곳을 고려도두(高麗道頭)라고 불렀다. 고려도두는 고려의 상인들의 왕래가 그만큼 많았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관음원 앞바다에 신라초(新羅礁)로 불리는 조그마한 암초가 남아 있다. 의상을 비롯한 많은 고승들이 중국에서 유학을 했으며 보타산의 신라인 흔적은 해로를 통한 중국과의 왕성한 교류를 잘 암시하고 있다.
  단고도두 관음연기설화에 의하면, 아주 오래전에 올케와 시누이가 있었다. 두 사람은 평소 아껴 모은 돈으로 향을 피우고 보타산의 관음보살을 만나기 위해 염불바구니를 들고서 함께 배를 타고 떠났다.
  그 당시 보타산에는 아직 부두가 없었다. 작은 배는 남천문 서쪽의 한 옅은 곳에 밧줄을 매고서 사람들은 해안에 올랐다. 그런데 오직 시누이만이 배를 끌어안고 머리를 숙인 채 배속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올케는 급한 마음에 그녀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그러자 아가씨는 월경이 와서 몸이 깨끗하지 못하므로 불문성지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얼굴을 붉히며 언니에게 쭈물쭈물 말했다. 언니는 듣자마다 다 큰 아가씨가 월경이 오는 날짜도 잘 모른다면서 관음 참배하는 일을 다 그르쳤다고 수차례 꾸중을 한 후 혼자서 염불바구니를 들고 산에 향을 피우러 갔다.

 

  이때 배의 주인도 해안에 술을 마시러 올라갔고, 배안에는 오직 아가씨 혼자만 남게 됐다. 그녀는 향도 제대로 못 피우게 됐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언니에게 한바탕 혼까지 났으므로 후회도 되고 몹시 괴로웠다.
  이때 자죽림(紫竹林)에서 한 늙은 할머니가 한손에는 지팡이를 한손에는 참대바구니를 들고 배가 정박해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돌멩이 한 줌을 집은 다음 바다를 향해 한 알을 던지자 돌멩이가 금방 큰 바위로 변했다.
  이렇게 하나씩 던진 돌멩이가 배 옆에 까지 이르렀고, 해안은 반듯한 바위들로 줄지어 하나의 부두가 되었다. 그리고 자죽림에 거처하는 할머니는 아가씨에게 너의 언니가 보낸 것이라며 바구니를 덮은 천을 열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밥과 반찬을 한 그릇 내놓았다. 마침 배고팠던 아가씨는 맛있게 먹었고, 배가 부르자 졸려서 배에 앉은 채 잠이 들었다.
  잠시 후에 배의 주인이 술을 다 마시고 돌아왔는데 갑자기 부두가 생겨있지 않은가.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또 봐도 틀림없었다. 이때 언니와 같이 배를 탔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왔다. 부두가 생겼다는 배 주인의 말을 듣고 다들 놀라워했다. 언니는 아가씨를 깨우며 부두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아가씨는 어리둥절 해하며 자기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언니는 바구니 속에서 큰 떡 두 개를 꺼내어 배고프니 빨리 먹으라고 했다. 아가씨는 언니가 다른 사람한데 밥을 보내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자, 언니는 그런 적이 없다면서 꿈 꾼 것 아니냐고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이에 아가씨는 할머니와의 일을 상세히 말했다. 배 주인은 뛸 듯이 기뻐하며 이 부두를 만들고 밥을 갖다 준 사람은 틀림없이 관음보살이라고 했다. 그래도 언니는 의심스러워 한달음에 절의 대웅보전으로 달려갔다. 관음보살이 입은 옷의 자락을 자세히 보니 아직도 바닷물에 젖은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가. 언니는 그제서야 배 주인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보타산에는 선박을 댈 수 있는 부두가 생겼다. 올케가 시누이를 혼낸 한 단락의 이야기가 있으므로 후세사람들은 이 부두를 단고도두라고 불렀다. 단고도두 이야기는 키가 작은 할머니가 만든 부두라는 이야기인데, 바닷가의 할머니라는 점에서 격포 수성당의 개양할미와 다를 게 없다. 키가 작은 단고와 키가 큰 개양할미가 관계에는 분명 수수께끼가 숨어 있는 듯하지만, 죽막동의 개양할미나 자죽림의 할머니는 바닷가의 할머니해신이란 점에서 같다. 보타산의 자죽과 변산의 해장죽은 관음의 성지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본다. 개양할미가 관음의 화신이란 이야기가 더욱 실감난다. 
  죽막동의 개양할미는 현존하는 변산반도의 해신이다. 죽막동 사람들은 매년 정월 14일에 수성당에서 개양할미에게 제사를 지낸다. 수성당 할머니가 관선리까지 바다 위를 걸어갔는데 바닷물이 고작 발등위에 조금 올라올 정도로 키가 매우 컸다는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개양할미는 딸 여덟 명을 데리고 살았는데 각 도에 한 명씩 시집을 보내고 막내딸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대표적인 전설이다.

 
 
  개양할미가 거처하는 곳은 수성당 당굴이다. 관선리는 관세음보살이 온 곳이라 하여 관선불이라고 불리는 지명인데 그렇다면 개양할머니가 처음 당도한 관선리는 관세음보살이 개양할머니로 화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양할미가 거처하는 곳은 수성당 당굴이다. 관세음보살의 거처가 어디 수성당의 당굴뿐이랴. 해안길 따라 진서면으로 가다보면 관선리를 만난다. 관선리는 관세음보살이 온 곳이라 하여 관선불(觀仙佛)이라고 불리는 지명인데, 내소사 석포리에도 관음상을 실은 배가 당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내소사 대웅보전에 들어가면 불상 뒷면 벽에 백의관음보살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 백의관음보살이 석포리, 관선리에도 들어오고, 죽막동에도 들어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변산반도 전체가 관음신앙단지처럼 들어온다. 변산반도는 일찍부터 바다의 관문이었고, 제안포, 검모포 등 포구가 발달하여 뱃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었다. 

  관음은 뱃사람들의 신앙이었다. 보타산에서 신라상인들이 왜 관음상을 배에 실고서 출항하려고 했는지가 새삼스럽게 실감난다. 망망대해의 항해 도중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주는 생명의 손길이기에 관음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죽망동 제사유적 앞 임수도 주변에는 조류가 심하고 물의 흐름이 복잡하다. 옛날부터 이곳에 사는 어부나 항해하는 사람이 변산반도 해신으로 개양할머니를 모신 것이 해양제사의 시발 요인이었다고 본다.
  보타산 할머니의 설화와 수성당의 개양할미를 비교 분석해 보자면, 보타산의 할머니와 죽막동의 할머니는 바닷가에서 거처하는 해신(海神)이다.

 

  보타산의 자죽림이 있는 곳에 관음굴이 있으며, 격포 수성당도 당굴(여울굴)을 중심으로 해장죽이 장막을 치고 있다고 해서 죽막동이란 마을 지명이 생겨났다. 자죽림은 고려시대 관음보살도에 반드시 등장하는 대나무를 말하는데 실제 보타산에는 자죽림이 광범위하게 숲을 이루고 있고, 보타산의 자죽림과 죽막동 수성당의 해장죽(海藏竹)은 관음성지라는 상징적 의미는 같다고 본다.

 

  할머니는 괴력을 가진 거구의 여성이다. 보타산 할머니가 돌멩이 한줌을 주워서 하나씩 바다 속에 던졌는데 바다에서는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부두가 조성되었다는 이야기와 수성당 할머니는 기본적으로 거구의 해신이라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또한 할머니는 매우 어려운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원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노파는 참대바구니에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밥과 반찬을 가져오는 구세주다. 수성당할머니도 바다에서 해무로 표류하는 곤경에 처한 어부들을 구해주는 해신으로 등장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같다.
  할머니신은 관음보살의 화신이라는 사실이다. 바윗돌을 던져 부두를 만들어 배가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굶주린 시누이에게 음식을 가져와 도와준 사람이 관음보살이다. 당신도는 사찰의 탱화와 같은 그림이다. 보타산 단고도두 설화에서 보타산 할머니신은 대웅전에 있는 관음보살이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수성당 개양할머니 설화에서는 관음보살이라는 내용은 명시되지 않는다. 행여 사찰의 대웅전에 좌정하는 관음보살이 바닷가 마을로 내려와 할머니로 화신한 것은 아닐까. 관음보살이나 개양할미나 하얀 옷을 걸친 것은 같다.
  그렇다면 하얀 옷을 입은 거구로서 수성당 할머니도 관음보살로 보아야한다. 수성당할머니 당신도는 백의관음 보살의 응화신으로 묘사 되었으며, 내소사 대웅보전의 후불벽리면에는 보타산에서 규모가 제일 큰 고찰 보제사 관음보살도와 동일한 백의관음보살도가 그려져 있다.

  
  승사열도 섬마다 여성을 해신으로 모시는 마을 신당들이 많다. 바다의 뱃길을 돌보거나 바다에서 어려운 곤경에 처한 어부나 사공들, 그리고 항해자들을 구해주는 해신으로 등장하고 있는 보타산의 할머니는 주산군도 해역의 어부들에게 개양할머니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주산군도의 개양할머니가 사단항로를 가로질러 변산반도로 건너온 듯하다.
  실제 이 사단항로가 황해의 실크로드였다는 사실을 입증 해 준 사람이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다. 그는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주산군도 정해현 보타산에서 출발한 배가 흑산도를 경유하여 곧 바로 변산반도 앞 바다에 위치한 죽도와 위도에 정박하였다고 항해일지를 기록해 놓고 있다.  
  그리고 이 뱃길을 실제로 항로 체험을 한 사람이 동국대학교 윤명철 교수다. 그는 뗏목을 타고서 주산군도 보타산 해안에서 출발하여 한반도 서해안에 당도하였는데, 그 바닷길은 서긍이 기록한 해도와 일치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개양할머니가 중국 주산군도에서 한국의 변산반도로 직접 건너왔다는 것은 부안군 진서면 운호리 관선불에서 채집된 설화에서도 알 수 있다. 두 지역의 할머니가 해신으로서 성격도 흡사하지만 보타낙가산의 관음성지와 변산반도의 관음성지 구도가 너무나 흡사하다. 

  그 핫라인(hotline)이 주산군도와 변산반도 사이의 사단항로였으며, 수성당 죽막동과 변산반도에서 전승하는 관음연기설화와 개양할미의 발원지를 주산군도의 보타낙가산으로 설정해 보았다.
  또한 중국 절강성 주산군도 심가문이란 동네에 ‘심원’이란 기념관이 있다. 바로 한국의 심청이 중국에 시집와서 살았다는 집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나라 전래설화인 효녀 심청 이야기를 현실화 했다는 점이다.

 

  절강성 근해의 보타도 앞바다에는 ‘신라초’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다. 신라 상인들이 관음상을 싣고 가려다가 이 바위에 부딪혀 좌초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이 일대는 장보고가 해상활동을 벌인 무대이기도 했다. ​
  그런데 주산시 보타구에는 심원이 있다. 심원(沈院)은 심청의 기념관이다. 왜 이곳에 심청기념관이 조성된 것일까. 효녀 심청의 본명이 원래 원홍장이고 심봉사로 알려진 원량의 딸이었으며, 아버지를 위해 부처님께 자신을 바쳤다가 우여곡절 끝에 진나라 상인인 심국공에게 팔려갔다는 설화가 전해오는 곳이다.
  심청의 무대가 이곳 보타산이 된 것 같은 착각과 혼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효녀 홍장 이야기는 곡성 관음사의 관음신앙과 결부되어 있다. 성덕산 관음사는 전남 곡성군에 위치하고 있지만, 곡성은 내륙 깊숙한 곳으로 바다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심청전에는 심청이를 공양미삼백석에 산 뱃사람들은 곡성사람들이 아닌 중국 남경상인들이었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곡성군은 심청 이야기를 매개로 중국 주산시 보타구와 우호교류를 해오고 있다.

 

  그런데 정작 부안 앞바다에는 임수도와 임당수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심청이가 공양미 300석에 남경 상인에 몸을 팔리고 배에 실린 심청이는 부안군 위도면 임수도 옆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는 게 심청전의 본질이다. 중국에서 올라오는 배는 항상 임수도 옆을 지났다. 얼마나 위험한 관문이었기에 해문이라고 하였을까. 이 바닷길은 한반도에서 절강성 및 복건성을 오가는 주요 뱃길이었다.
 심청이 몸을 던진 임수도는 1993년 서해훼리호가 좌초된 해역인데 이곳은 평소에도 물살이 거칠어서 해난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곡성이나 부안 외에도 심청 이야기는 백령도에서도 전해 오고 있다. 이렇듯 심청 이야기는 우리나라와 중국 간에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웅변하고 있다. 

 
 
  항주에서 가볼만한 곳을 손꼽으라면 당연히 세계 3대 쇼 중 하나인 송성가무쇼다. 중국의 남송(南宋)시대를 배경으로 춤과 노래로 재현한 송성가무쇼는 총 4막으로 구성되어 송나라 건국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영웅이야기, 사랑이야기, 세계로 뻗어가는 항주이야기로 진행된다.
  대륙답게 웅장한 스케일과 압도되는 큰 무대는 폭포가 쏟아지고, 객석에서도 비가 내리고, 무대 근처 객석이 저절로 이동되며, 무대에서 말을 타고 달린다.
  첨단기법을 이용한 영상과 조명의 화려함, 그리고 눈이 부실만큼 화려한 의상과 군무는 별천지에 온 것처럼 빠져들게 된다. 송성가무쇼는 웅장함과 화려함을 갖춘 그야말로 종합예술 가무극이었다. 

 

  특히 한국인 관광객을 배려해 한국어 자막을 넣어주는 센스와 아리랑 공연도 무척 인상적이다. 쇼를 감상하고서 부럽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부안에는 조선시대의 궁궐을 비롯하여 양반가, 평민촌을 재현한 사극 전용 드라마 세트장이 있다. 부안영상테마파크에서도 우리 전통을 살린 가무극 공연을 하면 어떨까 하고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송성대극장에서 매일 공연되는 ‘송성 가무쇼’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송성관광지구는 저장성 항주의 성곽과 옛 거리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가장 인기 있는 테마파크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이밖에도 고려사관(高麗使館)은 중국 대외교류사의 꽃이자 영파 해상실크로드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북송시기에 고려왕조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공식사절을 빈번히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민간 무역거래가 매우 활발했다. 송나라 조정은 명주에 고려사를 설치해 고려관련 사무를 맡게 하고, 고려사관을 설치하여 사절들에게 왕래의 편리를 제공했단다. 

 

  영화 암살의 배경으로 조국 광복의 구심체 역할을 했던 역사의 현장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찾았다. 건물 외벽의 푯말이 아니었으면 그냥 무심코 지나쳤을 임시정부청사는 주택가에 자리하며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이곳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피 흘린 역사의 현장인가 싶을 정도로 초라하게 보존되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오로지 나라의 독립만 꿈꿨을 애국지사들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상해의 프랑스조계에 수립하였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虹口)공원 의거를 계기로 상해를 떠나 항주로 이전할 때까지 임시정부는 만 13년 동안 상해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당초 임시정부는 여러 곳을 전전하며 옮겨 다니다가 1926년 3월부터 현 위치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1층에는 회의실과 주방이 자리 잡고 있으며 2층에는 김구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집무실과 숙소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3층에는 임시정부 활동에 관한 자료가 보관된 2개의 전시실이 있다. 별게 아닌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크게 부각시키는 중국인들에 비해 역사적 현장을 홀대하는 것 같아 어려운 숙제를 안고 나오는 것처럼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다. 

  중국 절강성 자계시(慈溪市) 상림호(上林湖)의 월주요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이대로 허탕치고 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달려왔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붙잡고 사정이라도 한 번 해볼 요량으로 현지 가이드가 부랴부랴 월주가마터 관리인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사공은 어두운 강물에 통통배를 띄웠다. 얼마나 행운인가 그토록 와 보고 싶었던 곳이 이곳 월주요지가 아니었던가.

  
 

  사방이 칠흑같이 어둔 밤에 배를 띄우는 것은 사실 무모한 일이었다. 그나마 불빛조차 갖추지 않은 멍텅구리 배였다. 긴장감을 감추느라 너스레를 떠는 우리들과 달리 뱃사공은 이런 것쯤이야 별거 아니라는 듯 익숙한 솜씨로 통통배 운전을 하며 어둠속을 헤쳐 나갔다. 시커먼 강물이 희미한 휴대폰 불빛에 일렁인다. 오로지 사공의 감각적인 경험으로 배는 움직였고 잠시 후 월주 가마터에 도착했다.
  부안청자박물관에서 사진만으로 해설을 만족해야 했던 우리는 역사적인 월주가마터 현장에 왔다는 사실에 몹시 고조됐다.

 월주요 기술은 10세기 전반 고려에 전해져 초기의 벽돌식 가마 전축요가 경기도 시흥 방산동 가마로 이어졌고, 또한 11세기 이후의 한국식 토축요가 고창 용계리, 부안 진서리와 유천리 등에서 발굴되어 전국에서 청자가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어둠속을 헤치고 월주가마터를 현장을 찾았던 신선한 충격은 쉬 잊혀 지지 않을 영원한 추억으로 남았다. 

 

  이밖에도 항주역사박물관과 해양민속박물관, 영파박물관 그리고 상해박물관을 찾았다. 특히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상해박물관은 중국 역사를 한 눈에 다 보는 것 같았다.  중국 고대의 청동기, 조각, 도자기, 회화, 서법, 전각, 화폐, 옥기 등 약 10만 점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부안 해설사들은 부안청자와 비교되는 청자관을 더욱 유심히 들여다봤다. 볼게 너무 많은 상해박물관은 층마다 구역으로 나눠진 테마 전시관으로 이뤄졌다. 우리는 빠듯한 일정에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아야 했다.

여행이라는 삶의 힌트 
  중국 저장성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자연박물관이었다. 중국 내 숨은 보석으로 불리기도 하는 절강성은 거대한 호수와 압도적인 건축물들로 가득하다. 자원이 풍부하고 산과 바다가 수려한 풍경은 다양한 스토리를 품고 있었다. 

 

  또한 절강성의 역사와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박물관은 각종 예술품과 유물들로 가득했다. 과연 도자기의 본향답게 아름다운 중국 청자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이 맛있는 항주의 특산 요리에서는 쫀득쫀득하고 달콤한 추억을 담아왔다. 
  그들의 문화유산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천혜의 자연경관을 보유한 아름다운 변산반도가 더욱 그립다.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아름다운 풍광을 보유한 우리 고장에 13억 중국인들을 초대하여 맘껏 자랑하고 싶어진다. 아니 자매처럼 형제처럼 친하게 오가는 곳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그동안 절강성 일대를 돌아보며 거대한 중국 대륙의 풍모를 느껴봤다. 절강성 현장답사는 우리 고장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절강성에서 직접 뗏목 탐사를 실시했던 윤명철 교수는 “진달래꽃 피는 땅은 모두 우리 땅, 우리 겨레”라고 했다. 저 중국 대륙은 장수왕과 광개토태왕이 말 달리던 바로 우리 땅이었고, 드넓은 남쪽바다도 통일신라인들과 고려의 뱃사람들이 오가던 사단항로인 우리의 바닷길이었다. 

 

 절강성 현장답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간다는 노사연의 ‘바램’처럼 뭔가 꽉 찬 느낌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중국 절강성 답사에서 ‘잘’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본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보고……．

  신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5박 6일은 호기심천국이었고 옹달샘 같았다.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다’고 말한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거라고. 우리의 삶이 여행이라면 삶 자체를 온몸으로 즐겨야 하지 않을까.

[한충호(문화유산)]

고윤정
선생님 잘 쓰신
답사글 읽어봣습니다
앉아서도
중국을 다녀온 기분이네요
건강하시구요

[최 혜숙]

찬찬한 답사글 올려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류인상/고창]

글 속에 쏘옥 빠졋다가 정신차려보니
밖이 어두어졌네요.
참으로 눈과 마음으로 구경 한 번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윤정]

평소 해설하듯 썼는데 부족하고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11월 말경에 부안해설사들이 절강성 현장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비교답사를 통하여 호연지기를 기르는 시간이 됐답니다.
이번 답사가 부안군이 시발점이 되어
타 시군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편정수(군산)]

글에 빠져 읽다보니 새벽닭 울 때 되어 나머지는 내일 선유도가는 배에서 읽겠습니다.
깊이있고 전문성있는 한편의 논문같은 답사기에 선생님의 열의가 느껴집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며 즐겨찾기에 등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