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가족 성당 (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스페인어 :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은 스페인 바로셀로나에 짓고 있는 로마 카톨릭 성당이다.
'사그라다'는 스페인어로 성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파밀리아는 가족을 뜻하기 때문에 성가족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을 책임졌다.
이 건물 중 일부인 가우디가 작업한 탄생의 파사드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며,
2010년 11월에는 성당 내부가 완성되어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집전하는 봉헌 미사가 거행되었다.
현재 2022년 기준으로 140년째 공사가 진행중이며, 비용은 관광객하고 신자들 헌금과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투시도 (완공시의 모습)
가우디 서거 100년 주년에 맞춰 완공 시기를 2026년을 목표로 하였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기한내 준공이 불투명하다.
완공 시 건물 크기는 가로 150m 세로 60m, 높이 170m로 예상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바로셀로나가 한 눈에 다 보인다.
성가족 성당을 배경으로...
동남측 상부 외관
◆ 탄생의 파사드 (동쪽)
가우디가 생전에 완성한 부분 - 이 곳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됨)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탄생의 파사드(동쪽), 수난의 파사드(서쪽), 영광의 파사드(남쪽)로 구성되어 있다.
각 파사드 위에는 2개씩 짝을 이룬 탑이 4개씩 세워져있다. (총 12개의 탑 = 열두제자를 뜻함)
탄생의 파사드 건물 외벽 중앙에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서있고 비둘기들이 앉아 있다.
가우디는 설계의 영감을 나무, 옥수수, 꽃, 동굴, 벌집 등 자연에서 얻었다고 한다.
탄생의 파사드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왼쪽은 희망의 문, 가운데는 자비의 문, 오른쪽은 신앙의 문이며,
이들은 각각 요셉, 예수, 마리아를 위해 만들어졌다.
※ 파사드 : 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
탄생의 파사드 상부 모습
◆ 자비의 문(탄생의 파사드, 성당에 들어가는 가운데 문)
마리아의 잉태부터 예수의 탄생을 표현하고 있다
탄생의 파사드 상부
사이프러스 나무와 흰 비둘기, JHS( Jesus Hominum Salvator) 인간의 구원자이신 예수 라는 뜻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
수태 고지 : 기도를 올리던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마리아가 임신했으며 아이의 이름을 예수로 지으라고 말하는 장면
↓ 목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고 축하하는 천사들
예수의 탄생 : 아기 예수가 마굿간에서 태어나는 장면. 마굿간임을 표현하기 위해 왼쪽에 소가, 오른쪽에는 당나귀가 새겨져있다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는 세명의 동방박사 : 유대인들의 왕이 태어났다며 황금, 향유, 몰약을 바치고 경배한다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는 목자들
◆ 희망의 문(탄생의 파사드 왼쪽 문) 상부
요셉을 위해 만들어졌다.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식
가운데 : 어린 예수와 아버지인 요셉이 다정하게 보는 장면
동방박사에게 예수의 탄생을 전해들은 이슬라엘의 헤롯 왕은 2세미만 사내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왼쪽 : 천사가 미리 알려줘서 애굽으로 피난 가는 세 가족
오른쪽 : 아이들을 잡아 죽이는 로마 병사
◆ 신앙의 문(탄생의 파사드 오른쪽 문) 상부
마리아를 위해 만들어졌다.
나팔부는 천사들
아래 종려나무 잎이 화석같이 보인다.
세례를 받는 아기 예수
가운데 : 동방박사들과 얘기하는 어린 예수
오른쪽 : 목수로 일하는 청소년 예수
■ 성가족 성당 내부
내부는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것처럼 나무와 꽃들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기존의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아름답게 빛난다.
내부가 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미사를 여는 데는 지장이 없는 수준이다.
탄생은 아침의 빛을 표현하여 푸른 빛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들었고,
수난은 저녁의 빛을 표현하여 붉은 빛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들었다.
인공조명이 아니라 스테인드 글라스와 자연의 빛이 만들어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아름답다
수난의 파사드 쪽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각 지역의 성인들의 이름 기록.
우리나라 최초 천주교 사제 김대건 신부님 이름 : 맨 왼쪽 원형 안에 KIM으로 적혀있다.
탄생의 아침 빛을 표현한 동쪽 스테인드 글라스
♧ 탄생의 파사드와(동쪽)과 수난의 파사드(서쪽) 방향으로 마리아 상과 요셉의 상이 있고 그 가운데에 예수의 십자가 상이 있다.
중앙 : 예수의 십자가 상
탄생의 파사드(동쪽) 방향 : 마리아 상
수난의 파사드(서쪽) 방향 : 요셉의 상
중앙 : 예수의 십자가 상
예수의 십자가 상
◈ 예수의 십자가 상
가우디는 성당 건축의 모든 조각상을 실제 사람, 동물을 모델로 했으며, 마을 사람, 동물을 데려와 회반죽을 입히고 띄어내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가우디를 미치광이로 불렀다고 하며,
이 예수 십자가 상도 실제 모델을 여러가지 포즈로 취해 본 후 사방에 거울을 매달아 최고의 각도를 얻어낸 것이라 한다.
성가족 성당 안에서...
◇ 성가족 성당 천장
나무를 형상화 한 기둥
기둥마다 새겨진 문자에 각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수 많은 기둥 중 복음사가에 헌정된 4개의 기둥(마태, 누가, 누가, 요한) 위에는
성가족 성당에서 가장 높은 예수의 탑(170m)이 세워진다.
나무를 형상화한 기둥으로 받친 천장은 나뭇잎과 꽃으로 징식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건축가 가우디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조급 불편하고 약했다고 하며, 틈만 나면 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연 속에서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부분의 설계 영감을 자연에서 얻었다고 한다.
생전에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 “직선은 인간의 것이지만 곡선은 신의 것”이라고 했던 가우디답게 내부도 남다르다.
하늘과 별을 담아낸 천장, 태양 방향에 따라 의미와 색이 달라지는 스테인드글라스, 나무처럼 기운 나선형 기둥 덕에 빛의 숲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둥들은 나무가 가지를 뻗듯 위쪽에서 여러갈래로 갈라진다.
■ 수난의 파사드 (서쪽, 가우디 이후 건축가가 완성한 부분)
수난의 파사드의 탑은 1954년부터 시작되어 1976년에 완공되었고,
예수님의 수난을 나타낸 조각들은 카탈루냐 조각가인 수비라츠(Subirachs)에 의해 진행되어 동쪽 탄생의 파사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추상적이고, 간결한 직선 위주의 조각들로 가득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십자가를 메고 언덕을 오르는 예수.
예수님에게 키스하는 유다.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 더하여도 33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이는 예수가 33년을 살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성가족 성당은 매년 2,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 영광의 파사드(남문)
공사 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모형
회색 부분 : 완공된 부위, 노란색 : 공사 중이거나 미착공 부위
구글지도 3D로 본 성가족성당
구글지도 3D로 본 성가족성당
♥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1852년 6월 25일 대장장이 출신 구리 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난 가우디는 다섯 살부터 시작된 관절염으로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수업을 자주 빼먹어 성적도 좋지 않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해 대부분의 시간을 '관찰'로 보냈으며 바르셀로나대학 이공 학부도 학점이 안 좋아 간신히 마쳤다.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시립 건축전문학교 시절부터. 대담하고 혁신적인 설계로 과제물마다 논란을 일으켰다.
'천재 아니면 미치광이'라는 평가 속에 아슬아슬한 점수로 학업을 마칠 무렵 가우디는 평생의 후원자를 얻었다. 부유한 은행 가문 출신의 건축가 구엘(Palau Güell)을 만난 것.
그의 천재성을 간파한 구엘의 도움으로 돈 걱정이 사라진 뒤부터 가우디의 사무실에서는 대학 건물, 교회 등 명작들이 쏟아졌다. 1883년부터 선배의 뒤를 이어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대성당)의 설계와 공사를 맡으면서도
밀가루 반죽으로 빚어놓은 듯한 6층짜리 아파트 카사밀라, 기묘한 창문으로 유명한 카사 바트요, 후원자 구엘을 기념하기 위한 구엘 공원 등도 잇따라 선보였다.
가우디가 성가족 성당 공사를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는데,
그는 비야르가 설계한 초기의 디자인을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면서 그때부터1926년 73세로 죽는 날까지 43년간 이 공사에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쳤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직접 인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설계도를 그려 나갔고,
마지막 15년 동안은 아예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겨 인부들과 함께 숙식하면서까지 성당 건축에 몰입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사생활이 곧 건축이었던 가우디는 낡은 침대 하나만 남기고 1926년 교통사고로를 당해
그는 결국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자신이 지은 이 성당의 지하 납골묘에 안장되었다.
원래 이 납골묘에는 성인이나 왕족의 유해만 안치될 수 있는데, 로마 교황청에서 그의 신앙심과 업적을 높이 사서 허가해 준 것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