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 졸업 이 후..
연대의 농구부 포지션을 보게 되면 그냥 기가차고 어떨땐 말이 안나오기도 합니다.
제 청춘의 고향이고 사춘기에서 눈 뜬 시절의 영원한 마음속의 낭만의 곳 이기에 응원하고 박수치고 하지만..
농구를 보다 보면 언젠가 부턴 학교의 정책과 농구단 운영의 모습들을 보게 되면 그냥 부아가 치밀기도 합니다.
연희 전문 시절은 제가 잘 알지도 못하고..
설령 안다해도 신문 쪼가리나 그냥 여기 저기 입소문을 통해 아는 정도 이니 그때의 학교 성적과 선수들의 모습들은 유추하기가
힘듭니다.
해서 제가 어린 시절 찌지직 거리는 흙백 TV를 통해 보고 알게된 선수와 그때의 경기들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떠오르는대로
쓰고 하고자 합니다.
기억의 오류로 잠깐 잠깐의 틀린 부분들은 저 보다 연배가 위신 분들도 계실테고 농구계에 종사하시는 전문가들도 계시리라 믿고
작은 부분들은 지적 보단 좋은 말의 수정도 부탁 드립니다.
60년대 중 후반 부터 제가 아는 선수들 이고 그때의 경기들 입니다.
제가 처음 연대 농구를 알게 된 것은..
가드 김인건 방열
포드 신동파 곽현채
센터에 그 유명한 피벗과 리바운드가 으뜸 이라던 188의 故 김영일 선생 이셨습니다.
당시 고대에는
인창 출신의 힘좋은 포드겸 센터를 보던 박한과 조승연이 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휘문 출신의 이병국 감독이 연대로 부임 하면서..
연대는 센터 왕국이 되는 센터 중심의 농구를 하게 됩니다.
또 화려한 개인기가 돋보이고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게 되는 선진 적인 농구 시스템이 학교의 농구단 분위기 였습니다.
반면 안암골 고대의 농구 스타일은 유기적이고 체력적인 우위를 통해 개인기 보단 조직력이 우선 되는 터피한 농구단 분위기로
양교의 농구 스타일은 극명하게 대비가 되고 했습니다.
연세대는
1970년 용산고의 미남 센터 188의 터프가이 이보선을 스카웃 신동파가 졸업 하기 전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게 됩니다.
이보선과 초중고 친구인 고택과 성북고( 지금의 홍대 부고)의 슛쟁이 김경태를 스카웃 고대의 우위를 보이게 되죠..
이 해 고대는 그 유명한 송도고 출신의 테크니션 가드 김동광이 입학하게 되고
71년 전체 랭킹 1위 였던 휘문의 슛쟁이 듀오 박형철과 박성민을 스카웃..
신동파,곽현채,,등이 졸업 전력의 공백이 생긴 연대를
김동광 시절 부터 3-4년간 연대의 농구를 완전 제압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기전 만큼은 터프가이 센터 이보선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엄청난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 하고..
승리로 가져오는 멋진 선수 였습니다.
연세대는 황금의 74 학번들 고교 랭킹 1-2-3위를 모두 싹쓸이..
연세대학교 농구단 제2의 황금기를 열게 됩니다.
용산의 센터 신선우 인창의 미남 슛쟁이 표범 박수교 휘문 출신의 슛거리가 가장 길고 정확했던 장봉학에..
장봉학에 얹혀 덤으로 입학하게된 최희암 까지..
이때 고대에도 송도고 출신의 명가드 김형년이 입학 합니다.
연대는 74년에 이어 75년 에도 선수 싹쓸이에 성공..
우리나라 최초의 190 장신의 가드 였던 경복의 신동찬 전주고 아이돌급의 외모 였던 박인규 수도공고의 195센터 조명수 까지..
전주고 김만진도 이때 같이 입학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신일고 농구단은 인천의 송도고와 함께 고대 커넥션으로 묶기어 이재국 감독이 탐냈던 이충희 이전의 명 슈터
황유하를 고대에 빼앗기게 되며 명지의 진효준도 놓치게 됩니다.
다시금 76년에는 다른거 없었습니다.
누가 경복 조동우의 목에 방울을 달까 하는 연대 고대 양교 스카웃의 전쟁 이었습니다...
당시 스포츠 잡지인 주간 스포츠에는 조동우의 신장이 2m로 소개 되었고 우리나라 농구단 센터의 꿈의 신장인 2m 였기에
더더욱 난리가 났었습니다.
서장훈때의 모습 처럼 양교 감독인 이병국과 진가일 감독은 007작전을 방불케 하며 조동우의 집과 학교로 출근 하다 시피
전쟁을 벌이지만 결국 조동우는 선배 신동찬이 있는 연대로 도장을 찍게 됩니다.
거기에 알짜 배기 195m의 장신 포워드 였던 전주의 안종관 까지....
고대는 신일고 커넥션으로 195의 이장수를 스카웃 합니다.
76년 정기전 에서는..
190의 신동찬
184의 박수교
195의 안종관
195의 조명수
198의 조동우...........라인이 선 보이며 평균 신장 190이 넘는 꿈의 라인업 이라며..
kbs 조춘제 아나운서와 해설 하시던 김영기씨의 떨리는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 하기만 합니다.
문제의 77년..
연대는 경복의 힘 좋은 196의 센터 임기열을 스카웃 하지만..
송도의 만능 선수 이충희와 신일의 터프가이 188의 임정명을 스카웃..
49연승의 신화를 만드는 주인공들의 조합이 완성 됩니다.
고대 라인업이 가드 이동균 가드 이충희 포드 황유하(진효준) 임정명 센터 이장수.......의 황금 조합 이었습니다.
그리고 1975년 젊은 총각 감독 박한이 부임 하면서 고대 농구부의 중흥을 맞이 하게 되죠..
하지만 78년 연대는 서울체고 출신의 미남 센터 박종천 79년 이충희에 버금가는 슛터인 광신상고의 故 김현준
80년에는 용산의 고명화 휘문의 오세웅 양정의 조명선을 스카웃..
휘문의 이민현 신일의 김진,,을 스카웃한 고대와 함께..
故 김현준과 박종천이 졸업 하게 되는 1981년 까지 연세 - 고려의 무적 시대는 계속 되었습니다.
1980년 부터 농구단에 엄청난 투자와 정봉섭을 감독으로 임명 하며
연대 고대가 싹쓸이 했던 고교 스카웃에 중앙대가 공룡으로 나서며..
좋은 선수들을 빼앗긴 연-고대는 1987년 최희암의 연대가 유도훈 최병식,,등을 앞세워..
강동희가 주장이던 중앙대 7년 천하를 마감 시킬 때 까지...
1980년 초 중반은 중앙대 천하가 되고 맙니다.
1970년 이보선 이전의 고 김영일
1972년 경복의 이수기
1974년 용산의 신선우
1975년 수도공 조명수
1976년 경복의 조동우
1977년 경복의 임기열
1978년 서울체 박종천..................까지...
이때만 하더라도..연대는 센터 고대는 가드 였습니다.
이런 중심추가 바뀌게 된 계기가...
80-81년 전관왕으로 고교 농구의 혁명을 일으켰던 경복의..
유재학-이희창-김윤호- 204의 남상만...으로 이들의 스카웃 전쟁이 시작 되었고..
거기에 송도의 정덕화 용산의 전창진 까지...
애당초 연대 김동원 감독은 천재 가드 유재학만 잡으면 신장만 204였지 수수깡 같은 남상만은 유재학의 품으로 돌아온다 하며
전창진 까지 확보 느긋해 하던 중..
고대 박한 감독의 비밀 작전에 말려 안심 하던 차에 남상만 빼오기에 성공 유재학을 빼앗긴 설움을 조금은 달랜다..
거기에 전창진 까지..
결국 이해 전창진과 남상만은 2중 등록 파문에 휩싸여..
고교 시절 최고의 모습을 보였던 전창진과 한국 농구계의 염원 이었던 204의 센터 남상만은 꽃을 피우지 못했다
전창진은 고대 에서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 나갔지만 입학때의 후유증으로 고교 올스타때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벤치에 앉는 빈도가 많아지며 농구 선수로서의 명성은 끝이 난다..
그리고 남상만은 가출 농구단 숙고 이탈을 밥먹듯이 하면서 결국은 농구를 그만두게 되고...
박한 감독의 벙어리 냉가슴을 보이게 하며 땅을 치게 하는 대 후회를 하게 했다...
이때 부터 센터 없는 농구를 하게된 연세대 농구는...
한기범 김유택 허재,,,등의 막강 고공 농구에 속수 무책...
마산 출신의 최병식이 입학 하기 전 까지는...소위 말하는 양궁 농구로...
양중철-이용간-김윤호,,,가 건재하던 고대,
혼혈 이었던 김성욱이 있던 국민대 에게 마저 패하며..
1982-1987년 까지 연대 농구의 긴 암흑기는 오랜 시간 지속이 되었었다....
이런 시간은 오래 도록 고쳐지질 못하고..
정재근 김재훈 서장훈..으로 이어지는 튼튼한 센터 농구를 하던 연대는..
서장훈 졸업 이 후 잠깐 구본근이 있었지만..
또 다시 오랜 시간 양궁 농구로 대학부의 절대 강자 자리를 계속 놓치게 되는 반복을 계속 해서 되풀이만 하고 있다...
2020 스카웃 대 실패로 인한 작금의 이 현실이..
또 다시 연대 농구단의 치욕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아쉬움에 지난 시간들 회상 해 봤습니다.
19년 홍대부고 선상혁의 입학을 거절한 댓가로 연대-홍대 부고 커넥션이 좋았었지만
서서히 금이가고 은희석 감독과 홍대부고와의 사이는 좋지 않은걸로 알고 있었지만..
박지원에 버금가는 후배 박무빈이 연대로 입학 다시금 관계가 좋아지나 싶은 순간 박무빈이 고대로 턴 하며..
이 모든 단초가 되었는데.....
대학 감독은 스카웃 하기 위해선..
어떨 땐 기기도 해야하고 울기도 해야 합니다...
절대 본인의 자존심만 가지고는 좋은 선수 스카웃 못 합니다.
예전 중앙대 정봉섭 감독이 김유택 허재 한기범을 스카웃 하기 위해 얼마나 큰 정성과 직접 그집에 빨래 까지 해 줄 정도의
정성을 보였던 점들..
최희암 감독이 이상민 서장훈을 잡기 위해 일년 365일 매일 그들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왔던 장면들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임진각에서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었는데 최희암감독이 처음 부임했는데 선수들이고 학부형이고 모두 수근거리고 무슨 지시를 내려도 시큰둥하며 그야말로 바지저고리 취급을 하더랍니다.
한마디로 물주전자 당번이 연대에 부임했으니 얼렁뚱땅있다가 빨리 가라는 시그널이었답니다.
그당시 연고대의 5개부 감독은 모두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이었거든요.
학교측에서도 임시코치로 들였다가 다음 감독을 기다리는 분위기였다네요.
그래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돌리고 또 돌리고 말을 듣지않으면 뺨도 때리고 몽둥이도 들었나 봅니다.
@신촌주방장 저부터 반대 했습니다..
굵은 검은색 뿔테 안경에
점퍼 입고 벤치 지키는 최희암 감독
첨에는 진짜 맘에 안들었고
연대 농구 진짜 망하는줄 알았습니다
@신촌주방장 그때는
82년 부터 이미 3인자 4인자로
전락한 연대 농구단 이었고
중대의 기세가 너무 좋아
몇몇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모교
감독들이 고사 하는 바람에
연대 농구 당시 분위기로는 진짜
다 망해가는 난파선 이었을 때
입니다
@준일짱 50년 연대농구를 응원한 일반팬인 은길억(가명)씨의 증언에 따르면 83년 겨울부터 직장이 끝나면 무보수로 연대선수들을 지도했답니다.
아마 휘문선배인 김동원감독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본인의 농구에 대한 열정이 선수시절 주전자당번이었지만 누구보다 훌륭한 선수를 키워내겠다는 열정이 정기전 6연패와 대고대전 5년9개월 무패 그리고 막강한 실업팀(삼성,기아,현대,sbs)을 모두 제압하고 농구대잔치를 우승의 신화를 창조했던것 같습니다.
은길억씨의 증언에 따르면 해군시절 휴가를 나와도 신촌체육관에 들러 후배들을 지도했다고 합니다.
@백양로 고대와 중대 그리고 가끔 한대와 김성욱의 국민대한테도 패하던 진짜 암흑기였습니다.
쓸만한 센터가 없어서 무척 고생했던 안타까운 시절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중대의 한기범과 허재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아 분명히 괘씸죄가 적용된것 같습니다.
그때가 84년3월13일 오후 17시에 경기가 있었고 고대의 이신욱과 김유택이 서로 말싸움을 하던중 이를 말리려던 한기범을 공격하려는 의사로 오인하면서 고대벤치에 앉아있던 김모와 여모(84준석군 부친이 아님)가 한기범의 목을 뒤에서 잡아 넘어트리고 마구 짓밟았습니다.
다른 한명이 또 가세하려하자 허재가 말렸고 그녀석이 허재에게 따귀를 때렸습니다.
주장 정재섭과 양중철은 말리기는 커녕 수수방관했고 대부분 순둥이들이 많았던 중대선수들은 사태를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고대농구는 더티한 팀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대랑 중대 난투극 벌인건 84년 아닌가요? 경찰까지 출동하고 정말 난리났던 기억이 납니다.
@준일짱 죄송합니다^^
84년3월13일 춘계대회 결승입니다
@준일짱 옛날 동대문링크에서 아이스하키경기때도 고대빙구팀과 응원단은 진짜 거칠고 폭력성이 강했습니다.
제가 안티고대를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또 제자리에 와있는것도 84년 중대폭행과 동대문링크의 거친 하키파이트때문입니다.
제 고교선배님인 이ㅈㅇ씨도 고대빙구 거칠었다는건 인정하면서도 연대도 거칠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상하게 고대가 연대를 때린것만 기억납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 고대선수들과 응원단이 진짜 얌전하고 신사적으로 바뀐겁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11.19 22:1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11.19 22:10
이때 고대 감독은 고의던 사고이던 다시는 스포츠판에 나오면 안됩니다.
허재가 그렇게 맞고도 심판 팔목을 잡고 조치를 취하라는 성숙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때 고대 감독이나 문제의 장본인들은 스포츠계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realpine 그때 고대스포츠는 축구와 야구빼곤 진짜로 거칠었습니다.
빙구도 럭비도 농구도 참 어그레시브하고 살벌했지요.
@신촌주방장 플레이하던 선수를 벤치에서 나와서 공격을 한다. 이게 무슨 스포츠며 특히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대학농구에서 일어날법한 일인가요???
벤치에서 나온 선수들은 퇴학이나 자체적적인 조치를 취했는지 궁금 하네요.
@realpine 한기범을 폭행한 두명이 경찰에 불려가 하룻동안 유치장신세를 졌으나 박한감독의 부탁을 받은 정봉섭감독이 한기범의 어머니를 설득해서 이둘은 풀려났고 고대농구부에서 제명되었습니다.
일반 학생이 되어 체교과인 한명은 졸업하고 다른 한명은 공부를 못따라가 자퇴한걸로 전해집니다.
이제 이런 이야기도 어느덧 35년 7개월전의 이야기가 되었군요.
저도 이런 기억을 지우려고 애쓰는 중인데 막상 시합이 있으면 또 안티고대가 됩니다.
고대팬들이 들으면 싫겠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이제는 잊어버리고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신촌주방장 아 그랬군요!! 그 당시에도 미흡하지만 적절한 조치가 있었군요.
그 이전에 대학생이라고 버스차장 뺨때리던 시절이니 참 부끄러운 세상에 살았습니다 ㅠㅠ
요즘은 과연 어떤지 궁금합니다 ㅠㅠ
그들또한 맹목적 충성심에 희생자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정말 스포츠 흑역사중에
@신촌주방장 혹시 초성으로 쓰신분이 고대 아이스하키선수셨던 이중우선생님 아니신가요? 경복고 정호현이 이분 조카로 들었습니다
@이글스 딩동댕
@이글스 고교동창인 계창민씨와 보성출신의 탄동은등과 함께 고대빙구부의 전성기를 이끌었지요.
@신촌주방장 주방장님
보성 나오셨군요
당시 고대 계창민 이병철이
주 공격수 였고
우리는
정진수 강익수 골리 이경호
이재현 등이 동시대 활약 했었죠..^^
@백양로 저는 만리동고개의 배문나왔습니다.
계창민과 이중우가 배문으로 알고있는데요?
@신촌주방장 연대 스포츠를 사랑하시는 신촌주방장님은 배문을 나오셨군요.프로바둑기사 서봉수의 배문!
@농구만세 이택림ㅡ강승모ㅡ변진섭도 배문출신입니다.
야구의 김인식ㅡ백기성ㅡ김시철도 배문이구요
국회의원은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또 한분의 논객이신 백양로님이 계셨군요.백양로님의 많은 글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