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3일,
목요일 오후.
'춘포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우야. 잘 지내지? 서너달 있으면 우리가 만난 지 딱 10년이 되네. 난 그때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지.
자네가 썼던 영화 후기를 읽고 감동하여, '탄야'에게 부탁해서 아우를 만났던 일들이 마치 어제 일 같네.
봄날 따사로운 햇볕이 양평 '소나티네'에 가득할 때 다시 한번 조우하여 탁배기 한잔 나누자고.
내 '장구' 실력도 몰라보게 향상됐는데 아우도 다시 한번 감상해 보지 않을랑가?"
"아아, 형님. 10년요?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요? 저는 까막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가겠습니다. 가야지요. 형님의 별장, '소나티네'로 달려가겠습니다. 사랑하는 형님 뵈러 가야지요. 많이 그립습니다. 춘포 형님"
형님과 몇 마디를 더 나눴다.
다음 주에 있을 명절인사까지도 드렸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전화를 끊었다.
나도 모르게 10년 전의 추억과 상념들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아니, 형님은 그때 그 일들을 어찌 다 기억하고 계셨을까? 10년이란 숫자까지. 역시 형님은 대단하셔"
나는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글 한 편이 엮어 준 형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12-3 년 전부터 '울트라 마라톤'과 '트레일 런' 등 익스트림 스포츠에 빠져 있었다.
그런 운동을 좋아 하는 사람들의 전용 게시판에 나는 영화 후기를 한 편 게재했다.
그 영화는 2004년 5월에 개봉됐던 장안의 화제작 '트로이'였다.
당시에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걸작이었다.
형님과 통화를 한 뒤 그 날 밤, 나는 내 일기장을 다시 열어 보았다.
그 안엔 당시에 내가 작성했던 영화후기 한 편이 고이 잠들어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난공불락의 '트로이 성'을 향해 단 한 사람의 전사가 다가서고 있었다.
그는 용기있는 무사였다.
굳게 다문 입, 이글거리는 눈빛, 신기에 가까운 무술과 지략, 다부진 신체.
그는 전설적인 '스파르타'의 전사, '아킬레스'였다.
거성 앞에 선 '아킬레스'는 상대를 목놓아 외쳐 불렀다.
"헥토르"
"헥토르"
"헥토르"
불려진 그의 이름은 투명한 하늘을 따라 '트로이' 전역으로 울려 퍼졌다.
그 당시 '트로이'와 '스파르타'는 전세계의 옴파로스였고, 지구의 중심이었다.
'트로이'의 왕족과 군인들도, '스파르타'의 귀족과 병사들도 이 한 마디의 절규 같은 외침 속에 모두 숨을 죽였다.
그리고 수만 개의 눈빛들이 그 이후를 응시했다.
쏟아져 내리는 지중해의 햇살만이 그 전장 안에 가득할 뿐, 개미새끼 하나 미동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의 움직임도 없었고, 어떤 생명체의 작은 호흡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정지된 듯 그 짧은 순간,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
숨막히는 백주의 정적이었다.
"헥토르"
"헥토르"
'헥토르'를 부르는 '아킬레스'의 목소리는 진정으로 비장했다.
죽음같은 전율이 잔뜩 배어 있었다.
그의 일갈은 옴파로스의 운행을 그대로 정지시킬 만큼의 무서운 사자후였다.
양국 최고 전사들의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그렇게 결행되고 있었다.
지존끼리의 맞섬과 최후 승부는 언제나 외나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있음이 인간사 고래의 전형이었다.
'트로이' 최후의 보루였던 뛰어난 장수, '헥토르'.
그는 '아킬레스'와의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에서 자신이 질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트로이'의 리더였고, 진정한 장수였다.
수 많은 트로이 백성들이 추앙했고 오마주를 보냈던 마지막 우상이었다.
그들의 간절한 사랑과 비원을 가슴에 앉은 채 '아킬레스'와의 최후 일전을 위해 거대 성문을 열고 담대하게 나서는 '헥토르'.
그의 강렬한 눈빛, 건곤일척의 최후결단, 백척간두의 끄트머리에 선 장수의 비장한 심정, 죽음을 불사하는 그의 용기있는 출격.
내 손바닥에도 땀이 맺혔다.
영화관의 관객들도 같은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며 숨을 죽였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조국의 영광과 미래를 위해,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트로이의 명예를 위해, 이 한 목숨 바쳐 싸우자"고.
조국의 '명예'보다 자신의 '여자'를 지키자며 피를 토하듯 절규하는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컥거렸다.
그리고 목이 메였다.
그것은 준엄한 현실이었다.
숫컷들이 칼을 드는 이유.
이 세상 전부보다 더 귀한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지라도 자신의 영역과 가족들을 지켜내고자 했던
단 하나의 간절한 비원.
그것은 남자들의 야성적인 삶을 작동시키는 원초적인 힘이자 동인이었다.
이것이 동서고금을 예리하게 관통하는 숫컷들의 단순하고도 서글픈 원형질이리라.
"그래서 더더욱 콧날이 시큰했던 걸까?"
전설적인 전사, '아킬레스'와의 치열한 싸움 끝에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서 너무나도 멋지고 아름다운 남자, '헥토르'를 만났다.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를 내 가슴 속에 선명하게 각인시킨 순간이었다.
강직하나 부드러운 애정이 묻어나고 용맹무쌍하나 사나이의 진실된 눈물이 마르지 않는 사람.
절도와 원칙을 고수하되 배려와 양보의 모습이 더 큰 남자.
치열한 전쟁터에서 수도 없이 피를 뿌렸지만 마음 속엔 너무나도 따뜻한 사랑과 순수가 물씬 배어 있는 진정한 사내.
그의 이름이 바로 '트로이'의 '헥토르'였다.
이 팍팍하고 메마른 시대에 '헥토르' 같은 사람은 왜 이리도 드문 것일까?
그런 남자가, 그런 남자의 넓은 가슴과 불타는 심장이,
이밤에 더욱 간절하게 생각나는 건, 삭풍에 사방으로 흩날리는 애수와 그리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참는 시대다.
너무 풍요해서 되레 정신이 아프고, 고도로 발달된 첨단의 시대여서 오히려 외로움에 병들어 가는 패러독스의 시대.
현 세대의 슬픈 자화상이자 아이러니다.
또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깊은 밤, 나는 나즈막하게 '헥토르'에게 고백했다.
"헥토르"
"당신은 갔지만 당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었고 믿음을 주었습니다.
용기와 그리움을 주었습니다.
그런 멋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준비된 대장부였기에 당신의 장렬한 '주검' 앞에서 가슴을 쥐어 뜯으며 쓰러졌던 당신의 사랑하는 여인도,
당신의 시신을 수습하며 통한의 눈물을 쏟았던 당신의 부친도 진정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을 오래오래 간직하며 기억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헥토르"
오늘도 소리 없이 밤이 깊어만 간다.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온유의 밤'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영화 후기는 이랬다.
10년 전 어느 날, '탄야'의 초대로 그의 집들이에 갔었다.
그곳에서 친구인 '탄야'가 소개해 주어 처음으로 만났던 '춘포 형님'.
형님은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환한 미소, 안경 너머로 깊고 선한 눈빛을 반짝거리며 초면인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형님은 나를 보고 '영화 '트로이'의 후기를 쓴 사람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반갑다며 한 잔 술을 가득 따라 주셨고 그날 이후로 형님과의 숱한 대화와 교제가 오갔다.
각종 사유의 편린들, 뭉클한 감성과 웃음들, 때로는 촉촉한 눈물의 사금파리들이 서로의 언문을 통해 진솔한 교감으로 엮여졌다.
형님은 文과 武 그리고 藝와 智가 깊은 분이셨다.
남자가 남자에게서 느끼는 매력과 감흥은 교제의 품격을 더욱 깊게 해주었고, 나눔의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형님은 운동도 매우 열심히 하셨다.
아래 사진을 보면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누구나 금세 알 수 있으리라.
2007년도 여름으로 기억된다.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군의 휴전선까지,
한반도를 대각선으로 달리는 622K 죽음의 '울트라 레이스'가 있었다.
쏟아지는 장맛비, 이글거리는 태양, 무지원 서바이벌 대한민국 종단 울트라 622K.
형님은 그 대회에 참전했다.
끝내 발가락이 문드러지고 피가 터져 신발 안에 선혈이 흥건할지라도 형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나도 같은 운동을 하는 울트라맨으로서 그 처절한 극한의 고통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렇기에 피 범벅이 된 형님의 발을 볼 때마다 여전히 가슴이 울컥거렸고 나도 모르게 가끔씩 눈물이 삐질삐질 솟구쳤다.
이 사진을 접할 때면 안도현님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온전하게 자신을 불태워 주변을 뜨끈하게 덥혀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수백 킬로도 넘는 무지 길고, 외롭고, 고통스런 포도 위에 피와 눈물로 써내려간 영혼의 숱한 '랩소디'들.
그 지옥 같은 광시곡들을 영롱한 영혼으로 승화시켜 끝내 가슴 벅찬 감동으로 엮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이 얼마나 처절한 기도이며 뜨거운 소망인지를.
순수한 육신만으로 한 땀 한 땀 눈물겹게 써내려 갔던 무한도전의 여정들,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서사인지를.
눈물과 핏물이 골수에 사무쳤던, 그런 출사표를 한 번이라도 던져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래서 일까?
나는 가슴으로 통하고, 눈빛만으로도 느낌이 공유되는 그런 '춘포 형님'이 좋다.
울트라 레이스를 사랑하는 형님.
그런 까닭에 지금은 한국을 넘어 국제적인 인물로 거듭나셨다.
2014년 연초, '모나코'에서 개최된 '세계 울트라 런너스 연맹(IAU)' 연차총회에서 아시아 대표직을 계속 유지함과 동시에 드넓은 오세아니아 지역까지 전부 관장하는 명실상부한 IAU의 거목이 되셨다.
그제 오후에 형님으로부터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로 인해 몇 해 동안 서가에 꽂혀 잠들어 있던 추억의 일기장들이 술술술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형님을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한 통의 편지를 쓰듯, 10년 전 수상록 한 대목을 다시 탁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리움이 묻어나는 편지지에 대고 꼭꼭 눌러 필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그런 심상을 따라 짧은 시간에 글 한 편을 정갈하게 엮고 보려 한다.
형님과 얽힌 새콤달콤한 글감들은 아직도 책꽂이 위 빨간색 파일 안에서 고이 잠들어 있다.
영원히 탈고 않 될 소중한 밀어와 추억으로 남겨져도 좋고, 언젠가 탈피해 '소나티네'로 날아가도 좋으리라.
형님은 타고난 자유인이자 통찰력 있는 藝人이다.
그래서 만나는 시간이 항상 즐겁고 행복했다.
감동의 편린들과 다양한 느낌표들.
과거, 현재, 미래의 다면적인 모자이크 안에서 앞으로 어떤 스토리텔링들이 생물처럼 살아서 데굴데굴 굴러갈지 무척 궁금하고 또한 기다려 진다.
햇볕 잘 드는 어느 봄날.
양평 '소나티네'로 그리운 형님을 만나러 가야겠다.
둘이서 나누는 걸죽한 탁배기 한 잔이 오늘따라 더 그립다.
"사랑합니다. 형님"
2014년 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