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전망과 금융위험
금융과 주택의 기묘한 팽창
부동산이 금융시장의 불안한 뇌관으로 자꾸 떠오르고 있다. 집값하락은 이번 미국 금융위기의 근원이며 또한 진행중이다. 더욱이 각국으로 확산되는 집값 하락으로 글로벌 ‘돈맥 경화’와 자산 디플레의 두려움이 깊어만 가고 있다.
원래 금융위기는 혼자 심심해서 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공급이 넘친 특정산업의 경기가 푹 꺼지면서 퍽 터지는 것이다. 거품이 날아가면서 해당산업은 대규모 재고를, 금융권은 졸지에 부실채권을 떠안고, 누더기가 된 금융이 또 다른 부문까지 오염시키는 게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 위기패턴이다. 10년 전 아시아위기는 중화학공업의 과잉투자에서 비롯되었고 2001년 밀레니엄버블은 IT(정보통신) 공급과잉에서, 그리고 이번 위기는 금융(신용)과 주택(가계자산)의 기묘한 결합과 팽창에서 발단되었다. 이것이 이번 위기의 핵심주제가 기업부채보다 가계부채 쪽에 있는 이유다.
부동산을 둘러싼 견해차이와 모순
지금 시장에는 터무니 없이 비싼 집값에 물린 상당수의 중산층 가계가 한숨을 쉬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는 주택이라는 보금자리 내구재에 대한 미련과 두터운 잠재수요도 적지 않게 깔려있다. 부동산을 둘러싼 견해차이는 결국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 집값의 적정성(가치)과 집에 대한 근본수급에 관한 것이다.
거품이란 적정가치와 견준 개념이고 공급초과란 수요에 대한 상대개념인데 집이란 게 당초 단순한 공산품도 아니고 매매기준 또한 사람마다 주관적인데다 주택시장을 둘러싼 한국고유의 특징도 강한 점이 일률적인 잣대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다.
수도권 과밀화와 일자리 증가대비 더딘 주택공급, 서울 핵심지역의 부(富)의 집중화, 100%의 주택보급률에 50%의 자가율이라는 이상한 현실, 소득분배의 양극화 등은 도대체 어느 정도가 실질 구매력을 벗어난 거품이고 어디까지가 공급과잉인지를 헷갈리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또한 공급이 넘치면(미분양) 상식적으로 제조가격이 떨어져 줘야 하는데 지금 부동산시장은 높은 원가(토지보상비등)와 고분양가 논리로 유통가격만 떨어지고 있다. 공급과잉을 바로잡는 심플한 원칙은 우선 가격조정이고, 둘째는 공급과잉 제공자의 구조조정(공급축소와 부실정리)이며 셋째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 위험의 전염을 정부가 끊어주는 것인데 이 모든 게 지금 만만치 않은 숙제거리다.
집값하락과 가계 및 금융부실
만일 집값이 이미 적정가 부근에 와있고 은행의 건전성 또한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다고 치면, 과거에 늘 그랬듯이 머지 않은 시간에 훨씬 느슨한 조건으로 꽤 많이 떨어진 집을 주우려는 수요가 늘게 돼 모든 게 선순환을 탈 것이다. 하지만 아직 집값에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고 다가올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강해 사람들의 지갑과 신용이 계속 털리는 과정이라면 악순환 (집값하락→주택대출 부실확대→ 신용경색→소비둔화→집값하락)은 쉽게 끝날 리 없다.
또한 단기 집값예측도 중요하지만 (일정 폭의 추가하락은 이미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우리의 보다 중요 관심사는 이번 주택 사이클이 과연 과거와 아주 다른 특종상황인가, 아니면 단지 골이 좀 깊은 순환조정인가 하는 문제다. 즉 집값의 장기대세론 문제다. [표 1]에 기초해 이런 점들을 포괄한 우리나라 주택경기에 대한 몇 가지 시사점을 정리하면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소득기준으로 집값 추가하락 압력 커
첫째, 향후 집값은 좀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한국 부동산은 보통 2년 남짓한 하강추세를 보였다. 주택경기가 작년 초부터 조정을 받긴 했지만 세계 경기가 침체터널을 아직 절반도 통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집값은 기술적으로 좀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도 현시점에서 적어도 15% 이상의 집값 추가하락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가치상으로는 적정집값을 어떻게 볼 것인가? 도시근로자 평균인 4,400만원 소득의 가계가 10년간 세전연봉의 40%를 모으고 연소득 100%의 대출을 받아야 겨우 살 수 있는 집이 PIR(집값/가구당 연소득) 5~6배의 집이다. 버블세븐 지역기준으로 가장의 연봉 10배 이상에 해당하는 현재집값은 너무 비싸다. 우리가 생각하는 적정한 집값은 동양의 특수한 부동산 선호통념을 감안해도 연 소득의 7~8배 정도다. 현재집값에서 적어도 20~30%의 추가 하락압력이 있다는 계산이다. (본 자료의 네 번째 결론 하단부분 프리미엄 요인 등을 고려해 할증해도 이렇게 나옴)
현재 30~40배에 달하는 집값/연간임대수익 비율(PER)도 너무 가혹하다. 임차인 입장에서 30~40년치의 임차비용을 고스란히 모아야 현재 집값을 설명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 가계부실화 위험, 통계보다 높아
둘째로 집값조정 과정에서 금융 및 가계부실은 예상보다 클 것이다. 금리가 충분히 내려가고 고용이 바닥을 찍을 때까지 건설사의 고통과 은행의 대출부실화가 커질 것이다. 주택담보대출과 기타대출을 모두 갖고 있는 가계의 현재 빚은 8,400만원이고 한 가계가 연간 갚아야 할 대출이자는 소득의 약 10%인 50조원, 또한 주택담보 대출을 받은 중산층 가계의 소득대비 원리금 상환비율은 평균 20%에 달한다. 더욱이 이들 대다수 가정이 보유한 주식형펀드가 평균 40%, 자그마치 60조원 (가처분소득의 7%)의 손실을 기록한 상황인 만큼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또한 국내가계의 경우 금융자산에서 유동화가 쉬운 예금비중이 높다 하지만 가계부채의 상당분은 중산층 이하에 쏠려있고 반대로 금융자산은 소득상위 계층에 편중되어 있는 현실에서 자영업자와 취약가계의 금융위험은 통계수치보다 훨씬 높다고 봐야 한다. 전방위 신용경색과 연체율 상승, 가계의 어려움이 불 보듯 뻔하다.
금융권 충격흡수에 어려움 클 듯
셋째, 집값하락의 충격을 결국 우리경제가 잘 이겨낼 수는 있겠지만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시중은행의 자본버퍼가 좋고 (대손충당적립액/ 고정이하여신비율 189% : 08.6말), 다행히 미국과 같은 유동화(MBS: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근거로 발행한 증권)도 거의 없고 제2금융권의 MBS도 미미해 은행과 금융시스템이 완전히 고장 날 가능성은 매우 적다. 은행권의 PF(잔액 약 50조)는 거의 선순위채이며 이 전체가 물론 다 망가지는 것도 아니다. 주택실거래가격이 현수준에서 30%정도 더 빠져도(주택시장과 금융권은 비명을 지르겠지만) 평균 40%의 주택담보인정비율 (LTV)에서 그 충격은 어느 정도 수습 가능할 것이란 판단이다. 조간신문 1면에 부동산발 금융위기가 대문짝같이 나와도 10년 전처럼 은행이 부도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은행의 감익과 신용여력축소,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본도 훼손될 수 있다. 일부 2금융권의 구조조정도 피하긴 어렵다.
[ 한국투자증권 이준재 2008. 10/31일자 리포트 소개 : 미분양주택의 시가 63조, 미시행 부동산PF 30조, 키코계약 약 14조, 키코계약을 보유한 중소기업 금융채무 10조, 신생조선사 과잉투자 10조, LTV 70-80% 수준에서 나간 개인주택담보대출 90조와 개인사업자대출 60조 등 금융권 총여신의 25%에 해당하는 약 300조가 현재 한국경제의 잠재적 금융위험 자산임 ]
이중 얼마가 부실화될 것인지는 향후 경기흐름과 구조조정 상황에 달려있다. 터질 건 터지고 건질 건 건지고, 힘든 경기침체기를 지나가야 하는데 그 때까지 과정은 꽤 험난할 듯하다.
부동산 불패신화의 마감
넷째로 사태의 본질이 전세계 자산가격 거품의 응징이란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주택 사이클은 단순한 순환주기(오르락 내리락)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장기간의 가격재편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내년 혹은 수년 후 집값이 바닥을 찍고 나면 이 땅에 부동산 불패신화가 또 재현될 것인가? 우리 판단은 No이다. 향후 부동산은 이번 가격조정 이후 십 수년간 기껏해야 횡보채널 속에 적은 폭의 등락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근본적인 주택구매력의 저하(3%미만의 낮은 저축률과 가처분소득의 70%가 넘는 가계부채, 금융기관의 대출여력 감소, 중산층가계의 부실화)와 금리하락의 여지가 제한적이라는 점,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등이 그 이유다.
그나마 집값이 마지노선(수도권 아파트 기준, 현 시세에서 평균 30% 이내)을 지킬 것으로 보는 이유(주택가격이 이론적 적정가격 위에서 거래되는 프리미엄 존재이유)는 여전히 해소될 기미가 없는 수도권의 과밀화와 고소득 가계층의 주택구매능력, 토지보상을 포함해 부를 축적한 통 큰 독점적 자산가들의 포트폴리오 주택수요, 중상층 가계의 핵가족화 지속, 그리고 장기적으로 낮은 이자율의 지속 가능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