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 1723~1792) / ‘아기 사무엘(Infant Samuel)’, 1776년
입으로 먹고 입으로 나오는 것은
요즘은 만년필 연구소가 있는 을지로가 ‘힙지로’라고 인파로 북적대지만,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연구소가 있는 인쇄 골목엔 사람보다는 “착착” 소리 내며 돌아가는 인쇄기와 종이를 실어 나르는 수레 달린 오토바이와 지게차가 더 많았습니다. 주말 오후가 되면 사람 소리가 나는 곳은 오직 만년필 연구소밖에 없었습니다.
건물 4층에 위치한 4평 남짓 연구소엔 이미 일찍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복도는 물론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만년필 이야기로 말 그대로 시끌벅적했습니다. 그날은 여느 때보다 만년필을 수리하러 온 사람들이 배는 더 많았습니다. 아마도 주중에 신문이나 방송에 연구소가 나왔던 모양입니다. 이런 주말은 특색이 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도 찾아오신다는 점입니다. 평소엔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 젊은이들 방문이 대부분입니다.
파커45. 1980년대 학생들이 가장 갖고 싶었던 만년필
그분 역시 한 손엔 신문을 오려 들고 계셨고 다른 손에 만년필이 있었습니다.
만년필은 몽블랑. 한 번도 쓰지 않은 새것이었습니다. 10배 확대경으로 펜촉도 보고 뚜껑도 열어본 다음 “선생님, 이 만년필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요.”라고 말씀 드렸더니. “아 글쎄 잉크를 어떻게 넣는 거요?” 연구소는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연구소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기초적인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라 이 방식을 접한 분들은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중학교 1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서독제 수퍼 로탁스(Super Rotax)’를 가져와 “이 만년필은 삼촌이 준 것인데, 잉크 넣는 방식이 달라 펜촉을 담그고 뒤에 있는 꼭지를 돌리면 잉크가 들어가 어때,신기하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만년필들은 손잡이 아래 몸통을 열고 스포이트 역할을 하는 고무튜브가 있는 장치를 꾹꾹 누르면 잉크가 들어갔습니다. 이런 방식은 에어로메트릭(Aerometric) 또는 스퀴즈 타입이라고 부르는데,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던 것은 물론 가장 유명했던 미제 파커45와 제가 갖고 있던 국산 만년필 역시 이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만년필 하나를 꺼내 잉크를 넣으면서 “이 만년필은 1930년대에 나온 독일제 펠리칸 100이라는 만년필로 뒤에 있는 꼭지를 보면 화살표가 하나 그려져 있는데, 화살표의 의미는 펜촉을 담그고 화살표 방향으로 꼭지를 돌리면 잉크가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화살표는 1940년대가 되면 사라집니다.”
1930년대 펠리칸 100과 꼭지에 있는 화살표
"이 몽블랑 만년필에 이런 화살표가 있었으면 선생님도 쉽게 잉크를 넣으셨을 텐데요.” “어찌 됐든 입(펜촉)으로 먹고 입(펜촉)으로 나오는 것은 똑같습니다.”어르신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환한 얼굴로 연구소를 나섰습니다.
1931년 콘클린 노작 만년필 광고. / 이 역시 잉크 넣는 방법을 꼭지 상단에 새겨 넣었다.
이 방식을 피스톤 필러라고 합니다. 1929년 독일 펠리칸사(社)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 방식은 고무색(rubber sac)이 들어간 이전 방식보다 같은 크기라면 잉크가 더 많이 들어가 독일과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만년필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1931 콘클린사(社)에서 노작(Nozac)이라는 모델에 채택되어 출시되었는데, 미국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아마도 몽블랑을 가져오신 어르신처럼 잉크를 넣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나봅니다. 얼마 가지 않아 노작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고, 1940년대 후반 위에서 말씀드린 방식인 에어로메트릭 방식의 파커51이 대히트를 하자 미국에서 피스톤 필러 방식의 만년필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만년필 회사들인 파커, 셰퍼, 워터맨사(社) 등은 지금까지도 이 피스톤 필러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현재 고급 만년필의 대명사가 된 독일의 몽블랑과 펠리칸, 이탈리아 오로라 등은 이 방식을 계속 채택. 수십 년 후가 되겠지만 만년필 세계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겨지는 시작점이 됩니다.
[옮겨온 글] / 출처: 2020년 12월 03일 (목)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필자소개; 박종진(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가공할 모사드
2007년 1월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어느 호텔의 바. 시리아 원자력위원회의 이브라힘 오트만 위원장이 초면의 여성 옆에 앉아 있다. 이 여성은 우연을 가장했지만 실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공작원. 여성의 미모와 능란한 말솜씨에 사로잡힌 오트만 위원장은 둘만의 대화에 빠져들어 간다. 같은 시간, 모사드의 다른 공작조가 오트만의 방에 침투해 자물쇠가 굳게 잠긴 여행 가방을 따고 있다.
망을 보던 공작원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오트만이 방에 돌아가고 있다. 남은 시간은 1분!” 가방을 딴 공작원은 노트북에 있던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방으로 가던 오트만은 복도에 있던 취객과 부딪친다. 하지만 이 취객 또한 도주 시간을 벌게 해 주려는 공작원. 방에 있던 공작원이 가방 등을 감쪽같이 원위치시켜 놓고 빠져 나오면서 영화와 같은 이 작전은 성공했다. 시리아의 핵 개발 증거를 잡은 이스라엘은 8개월 뒤 미국의 승인 없이 단독으로 시리아의 알키바르 핵 시설을 폭격한다.
모사드는 세계 정보기관 중에서 늘 톱 5위 안에 드는 최강을 자랑한다. 로넨 버그먼은 2018년 저작 ‘누가 죽이러 오거든 일어나서 먼저 죽여라’(Rise and Kill First)에서 1949년 창설한 모사드가 70년 역사에서 적어도 2700건의 암살 작전을 수행했다고 폭로했다. 버그먼의 취재원이자 모사드를 2002년부터 8년간 이끈 메이어 다간은 암살을 이렇게 표현했다. “2만 5000개의 자동차 부품 중 100개가 빠졌다면 운전하기 어렵겠지만 자동차를 멈추는 데는 운전수를 죽이는 게 가장 효과적일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암살이다.”
지난달 27일 이란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59)가 테러 공격을 당해 사망했다. 서방 언론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이란 핵합의 복귀를 저지할 셈으로 이스라엘이 암살했다고 분석했다. 예상대로 이란의 강경파는 배후로 모사드를 지목하고 ‘피의 복수’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올해 미국의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암살 때도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았지만 엄포에 그쳤던 점을 감안할 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마지막 군사행동을 자초할 수 있는 이란의 보복공격이 감행될 공산은 낮아 보인다.
파크리자데 사망으로 암살된 이란 핵과학자는 5명으로 늘었다. ‘타깃 제거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모사드의 행동으로 이란 핵 개발이 더뎌진 건 사실이다. 적들에 둘러싸이고 홀로코스트 트라우마가 있는 이스라엘이다. 하지만 되풀이되는 전쟁과 살육으로 보복을 불러 분쟁의 불씨를 이어 가고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모사드 방식이 옳은지는 의문이다.
[옮겨온 글] / 출처: 서울신문 / 황성기(서울신문 논설위원) / 2020-12-03 00:19
한쪽으로만 꼬인 DNA의 법칙…자연의 암호를 풀어라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기적의 신약' 존재할까
약국을 방문하면 많은 이름의 약과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이미 익숙한 이름이 있고 처음 보는 화학물질 이름도 있습니다. 화학을 공부한 저도 모르는 이름이 많은데 대다수 사람은 무척 생소하고 어렵게 느끼겠다 싶습니다. 제약사들도 약 이름을 짓는 데 애 먹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베나치오' 같은 약은 이름만 들어도 어떤 증상에 필요한 것인지 연상됩니다. 그래서 작명 의도에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제약사는 약의 성분을 암호처럼 숨기거나 성분이 바로 연상되도록 명명합니다. 일례로 아스피린(Aspirin)의 A는 '아세틸'의 앞자이고 spir는 '살리실산' 같은 조팝나무산(spiraeic acid)을 의미합니다. 아스피린의 주성분은 '아세틸살리실산'입니다. 해열・진통・소염 효과로 잘 알려진 '이부프로펜'은 약물 화학명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경우입니다. 시럽 형태인 부루펜도 성분이 같죠. 약 물질인 이부프로펜(Ibuprofen)은 유기화합물의 화학명입니다.
그런데 약국 진열대의 건강보조제에 이런 명명 형식을 가진 다소 생소한 이름의 약물이 있더군요. 분명 우리 몸의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이름인데, 이름 앞에 로마자 알파벳인 'L'이 접두어처럼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L-아르기닌'이라는 물질을 그대로 상표로 사용한 겁니다.
이 글에서 제가 특정 상품명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것도 이름이 일반적인 화학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L이라는 용어는 아르기닌에만 사용할까요. 사실 이는 이부프로펜에도, 대다수 유기화합물에도 적용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화학물질을 단순히 구분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죠. 예를 들어 이부프로펜에는 L-이부프로펜과 D-이부프로펜이라는 두 성분이 같은 양으로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해열과 진통 효과를 내는 물질은 D-이부프로펜뿐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무엇일까요?
두 물질의 화학적 구성 원소는 같습니다. 원소의 종류와 개수가 같지만 결합 방식은 달라 다른 성질을 지닌 물질이 있지요. 화학에서는 이런 물질을 이성질체(異性質體・isomer)라고 부릅니다.
이성질체 가운데는 원자 간 결합 방식마저 같은 '입체 이성질체'가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일란성 쌍둥이처럼 비슷하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배열이 다른 물질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입체상 좌우가 바뀐 모습이죠.
아스피린의 'A' 아세틸의 앞글자 / 이부프로펜 L・D 성분 구성요소 같지만 /
화학적 결합 방식 다른 이성질체 / 닮았지만 배열이 다른 일란성 쌍둥이 /
자연 속엔 카이랄성 물질 하나만 존재 / DNA 나선의 비밀, 아직도 이유 몰라
우리는 거울에서 자기와 닮은 모습을 보지만 사실 좌우가 바뀐 모습입니다. 이 분자는 서로 겹쳐지지 않습니다. 왼손 장갑에 오른손이 들어가지 않는 거죠. 이를 화학에서는 거울상 이성질체 혹은 카이랄성(Chirality) 분자라고 부릅니다. '카이랄'은 손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됐습니다. 우리 양손이 좌우가 바뀌어 서로 겹쳐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따온 말입니다. 여기서 L과 D는 라틴어 레보(Levo)・덱스트로(Dextro)의 약자로 왼쪽과 오른쪽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두 물질은 물리ㆍ화학적 성질이 매우 비슷합니다. 그래서 구분이 잘 안 되고 분리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물질이 약제로 우리 몸에 들어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L-이부프로펜의 경우 속이 쓰리거나 간에 부담을 주니까요.
인공 유기화합물 대다수는 이런 거울상 이성질체가 둘 다 만들어집니다. 그러니까 약제도 예외는 없겠죠. 대다수의 약물은 우리 몸의 효소와 맞물려 그 반응으로 약효가 나타납니다. 열쇠와 자물쇠처럼 서로 결합이 잘 맞는 구조여야 효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이부프로펜의 경우 오른쪽 거울상 이성질체에 약효가 있는 거죠. 그래서 불필요한 이성질체는 걸러내고 약효가 있는 D-이부프로펜만 추출해 약을 만들기도 합니다. 덱시부프로펜(Dexibuprofen)은 이부프로펜보다 절반의 양으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고 부작용이 없는 거죠.
신기한 것은 인공물질이 아닌 자연물질의 경우 카이랄성물질 하나만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반대의 거울 이성질체는 만들지 않습니다. 결국 약효가 있는 이성질체의 다른 쪽 물질은 약효가 없거나 독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죠.
DNA를 보면 나선 모양처럼 한쪽으로만 꼬여 있습니다. 이는 DNA를 이루는 당물질도 한쪽 카이랄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신비하고 감동적이지만 인류는 아직도 자연이 왜 한쪽만 만드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릅니다.
이에 대해 몰랐던 인류는 현대의학 역사상 최악의 사건을 만듭니다. 1959년 독일 제약회사 그뤼넨탈은 진정제의 일종인 '탈리도마이드'를 만듭니다. 탈리도마이드는 동물시험과 임상시험에서 부작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 기적의 약물로 불리며 유럽에 급속도로 퍼졌죠.
그뤼넨탈은 거대한 미국 제약시장의 문을 두드렸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승인을 신청했습니다. 당시 심사관은 미국의 약리학자 프랜시스 올덤 켈시(1914~2015)였습니다.
켈시는 15세에 대학을 들어간 수재였습니다. 그는 연구직을 거쳐 FDA에 합류했죠. 그가 맡은 첫 승인 심사 업무는 독일 기업이 신청한 탈리도마이드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약사의 실험자료가 미비한 데다 임신부들이 복용할 경우 태아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검토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승인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약을 거절한 켈시는 제약사의 손해배상 청구에다 각종 협박과 비난까지 견뎌내야 했습니다. FDA 내에서도 질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가 FDA에 들어갈 당시 여성 연구원을 잘 뽑지 않는 게 FDA의 분위기였습니다. 상사가 그의 이름만 보고 남성으로 착각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켈시가 겪었을 고통은 짐작할 만합니다. 그가 1년이 넘도록 6번이나 승인을 거절하는 사이 탈리도마이드의 실체는 드러납니다. 한 알만 먹어도 기형아가 태어나는 약이었죠. 결국 독일에서만 한 해 동안 약 1만2000명의 기형아가 태어나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탈리도마이드가 임신부의 입덧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입소문을 타고 급속히 퍼졌던 겁니다.
문제는 탈리도마이드의 분자구조에 있었죠. 한쪽 카이랄 분자에 입덧 완화 효과가 있었지만 다른 쪽 분자는 혈관 생성을 억제했던 겁니다. 결국 태아의 인체 말단 조직인 팔다리가 자랄 수 없었던 거죠. 당시 미국에서 17명의 기형아 출산으로 그친 건 과학적 원칙을 따른 켈시의 행동 덕이었습니다.
독일산 진정제 '탈리도마이드' / 1년간 6번 승인 거절 FDA 켈시의 용기 /
한쪽 카이랄 분자서 심각한 부작용 / 코로나 백신・치료제는 문제 없기를
최근 들어 미국에서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20만명 이상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거대 제약사 두 곳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조만간 승인할 예정입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작과 동시에 백악관은 백신 개발 프로젝트를 가동했죠. 프로젝트 명이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인 걸 보면 신약에 대한 유례없는 승인은 전혀 이상할 것 없습니다.
두 제약사는 허가 후 24시간 안에 백신을 보급할 준비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약 개발은 으레 오래 걸리기 마련입니다. 물론 백신은 치료제와 다릅니다. 그러나 신약이 승인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시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거대 제약사의 발 빠른 횡보가 염려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미지의 영역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두렵습니다.
저 또한 백신이든 치료제든 부작용이 없길 바랍니다. 모든 것이 멈춘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길 바랍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듭니다. 팬데믹이 잠잠해지려면 집단 면역 차원에서 충분한 인구가 백신을 접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백신을 몇 차례 맞아야 효과가 있는지 아직 모릅니다. 우리에겐 아직 어떤 경험도 없기 때문이죠.
게다가 사회정의와 공공선이라는 면에서 백신 수혜는 공정하게 돌아가야 합니다. 선진국에서 시작될 백신 접종이 또 다른 사회적 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거죠.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코로나19가 풍토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풍토병은 언제 다시 변이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모릅니다.
백신의 등장은 분명 희망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모습을 사회적 정의와 함께 입체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나 기적의 약을 바라겠지만 자연 아닌 인류가 만든 세상과 약에 기적은 없을 듯합니다. 약의 다른 얼굴은 독이고, 인류도 늘 두 모습을 지니고 있으니….
[옮겨온 글] / 출처: 아시아경제신문 / 김병민(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 2020.12.02 16:12
불교는 붓다를 믿는 종교가 아니다
자현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문명의 갑옷을 입지 않은 인간은 나약하다. 맹수는 둘째치고, 지구상에는 인간이 맨몸으로 이길 수 있는 동물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안 좋은 조건을 인간은 협력과 도구의 발달을 통해서 극복한다. 그리고 그 끝에 문명이 있다.
문명 이전의 인간은 다양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불안정한 상황은 인간으로 하여금 강자의 가호를 요청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신(神)의 출현이다. 유신론적 종교는 신을 중심으로 신에 대한 믿음과 구원이라는 방식으로 확립된다. 이런 점에서 유신론의 기원은 멀리 선사시대로까지 소급될 수 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 인간은 신에 대한 비중을 줄이고 점차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등장하는 것이 신을 대체하는 '진리'다.
©게티이미지뱅크
유・불・도의 동아시아 종교는 모두 진리를 추구한다. 이 진리는 과학이 추구하는 귀납적 진리가 아닌 연역적 진리로, 인간의 행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런 점에서 동양 종교 역시 과학은 아니다.
그러나 신이 인격적 존재로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것과 달리, 진리는 법칙적이기 때문에 판단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동양 종교는 철학, 즉 인문학의 영역에서도 다루어진다. 이런 진리를 유교에서는 '인(仁)', 불교에서는 '법(法)', 도교에서는 '도(道)'라 칭한다. 인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하는 본연의 공통 윤리이며, 법은 법칙 즉 보편의 원칙이다. 그리고 도 역시 법과 유사한 원리적인 질서를 가리킨다.
다산은 '논어고금주'에서 인을 '이인상여(二人相與)' 즉 두 사람이 서로 함께하는 인본적 가치로 풀이했다. 그리고 붓다는 법을 영속하는 법칙이며, 당신은 이러한 진리를 발견한 발견자이자 체득자로 규정한다. 끝으로 '노자' 제4장에서 도는 하느님보다도 먼저 존재했던 '상제지선(象帝之先)'의 가치로 규정된다. 유신적 종교가 신 중심적이라면, 진리 의존적 종교의 핵심에는 진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진리 중심의 종교에서는 교조보다도 진리가 우선되며, 교조는 진리의 체득자로 일종의 롤모델과 같은 위상을 점할 뿐이다.
붓다라는 표현은 이를 잘 나타내 준다. 붓다는 번역하면 각자(覺者), 즉 '깨달은 사람'이라는 의미다. 즉 특정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닌 대명사인 것이다. 이 붓다의 범주 안에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미륵불과 같은 개별적인 붓다들이 존재한다. 마치 왕조 국가의 최고 수장에 대한 호칭이 왕이며, 이 왕 안에 다시금 법흥왕, 진흥왕, 성덕왕 등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즉 불교의 이상인격인 붓다는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을 나타내는 보편적인 명칭이라는 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불교의 목적은 단순히 붓다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붓다가 발견하고 체득한 진리를 통해서 내가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는 데 있다. 유신론적 종교가 신이 될 수는 없는 것에 반해, 동양 종교에서의 목적은 모두가 성인이 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런 점에서 붓다는 불교도의 이상이지, 단순한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석가모니는 열반에 들기 3개월 전,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의 가르침을 설했다. 이는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는 말이다. 여기에 석가모니에 대한 의존이나 믿음의 강요는 일절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인식 주체로서 판단자인 나와 진리만이 의지처가 된다는 가르침일 뿐이다.
또 석가모니는 평소 제자들에게 4가지에 의지하라고 가르쳤다. 그것은 '①진리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依法不依人). ②진실된 경전에 의지하고 허황된 경전에 의지하지 말라(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 ③본질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依義不依語). ④지혜에 의지하고 앎에 의지하지 말라(依智不依識)'이다. 이러한 가르침 속에 당신을 믿으라는 측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본질을 직시해서 깨어 있는 삶을 살라고 촉구하고 있을 뿐이다.
석가모니는 제 아무리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라도,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적 사유를 통해서 검토하고 수용할 것을 촉구한다. 즉 불교의 본질은 나를 세워서 붓다가 되는 것에 있지, 붓다만을 믿고 숭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옮겨온 글] / 출처: 한국일보 / 자현(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 2020.12.02 17:48
보이지 않는 손의 복수
`미친 전세값`은 없다 / 미치게 만든 건 정치일 뿐 /
가격과 전쟁을 벌인다면 / 시장의 복수는 필연이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의 이기심 운운하면서 탄생시킨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란 개념은 다름 아닌 가격(Price)이다. 스미스가 경제학의 아버지로 대접받는 이유는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힘이 가격임을 밝힌 데 있다.
푸줏간 주인이 파는 고기나 양조장 주인이 빚은 술 가격이 생산비에 의해 결정되는지, 고기나 술을 사려는 소비자들 주머니 사정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건 앨프리드 마셜의 말마따나 "가위의 윗날이 종이를 자르는지, 아랫날이 종이를 자르는지를 따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굳이 경제학을 배우지 않아도 정답을 안다. 수요와 공급이다.
애덤 스미스 이후 경제학은 사실 그 본질을 따지고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 손`의 왜곡이 일어날 때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연구다. 최근 논란이 되는 집값・전월세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가격의 왜곡 여부다. 무엇이 왜곡이냐에 대한 경제학적 정의(定義)는 명쾌하다. 그건 `미친 전셋값`이니, `착한 집값`이니 하는 감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다.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느냐 여부에 달렸다. 경제학 교과서를 인용하자면 시장의 효율성은 소비자 후생과 생산자 잉여에 의해 좌우된다. 즉, 전월세란 상품의 경우는 세 들겠다는 사람이 최대한 지불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가격과 실제로 지불하는 가격의 차이인 소비자 후생을 훼손하는지, 전월세를 놓는 사람이 실제로 받은 금액에서 비용을 빼고 얻는 이득인 생산자 잉여가 훼손되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소비자가 생산자보다 더 혜택을 본다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여론은 그걸 약자의 편에 선다고 해서 정의(正義)라고들 한다. 설사 정의라 해도 그건 단기에만 해당된다. 장기적으로는 이기심의 실종으로 공급 위축을 부른다. 그 결과 소비자 후생의 손상은 필연이다. 그렇다면 불의(不義)다. 지금 부동산 시장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경제학원론식으로 풀어 쓰면 이렇게 된다.
가격이 마음에 안 든다면, 즉 왜곡이라고 주장하려면 소비자 후생과 생산자 잉여의 과학적 측정이 전제돼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현재 형성되는 가격에 죄를 물을 수는 없다. `미친 집값`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누구나 거주할 집은 있어야 한다. 자가든 전월세든. 주택보급률 100% 같은 통계는 의미가 없다. 그런 논리를 대려면 더 나은 집을 구하기 위해 2600만 명이 주택청약예금에 가입한 걸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살고 싶은 지역, 선호 주택이 있다. 단순 무식하게 말하자면 강남 아파트를 원한다. 왜 한적하고 공기 좋은 전원주택에 살지 굳이 복잡한 강남에 살려고 하느냐고 채근한다면 돌아오는 답은 뻔하다. "너나 거기 살아라. 시골에." 강남 아줌마식 표현으로는 "부동산은 새 소리 들리는 데가 아니라 차 소리 들리는 데 사는 거야"라고.
그러나 참 고약하게도 이런 데 정치가 개입한다. 전셋값 폭등 원인과 전쟁을 벌이는 게 아니라 전셋값 그 자체와 전쟁을 벌인다. 주택을 많이 보유하는 건 투기이며 전셋값은 무조건 낮추는 게 정의라 생각하는 우군이 많다. 정치가 완력을 행사한다면, 그것도 고상한 명분을 걸면 시녀인 경제는 당할 재간이 없다. 전월세 상승 폭에 상한을 두거나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하는 것. 그게 가격과의 전쟁, 시장과의 싸움이다.
그러나 만고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다. 경제는 시차를 두고 복수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의 보이는 복수다. 전세난민 신세가 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급기야 위로금을 주고 세입자를 내보내게 된 것. 전세 집주인이 본인이 이제 그 집에 살겠다고 세입자를 겁박해 이면계약서를 쓰고 전세금을 더 받는 것. 그런 게 시장의 부작용이며 전쟁을 걸어온 상대방에 대한 복수다. 더더욱 아파트는 빵처럼 밤새운다고 만들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그래서 복수는 치명적이다. 참으로 우리의 정치는 때늦은 후회를 많이도 했다. 그러면서도 여태까지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사인 것 같지만.
[옮겨온 글] / 출처: 매일경제신문 / 손현덕(매일경제신문 주필) / 2020.12.03 00:08:01
롤스로이스 장갑차
[오늘의 경제 소사]
1914년, 전쟁 통해 신뢰도 상승
전차와 장갑차, 어느 게 빨리 나왔을까. 등장 무대는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동일하지만 시간대는 후자가 앞선다. 1916년 9월 솜 전투에서 데뷔한 영국군 전차 ‘마크 Ⅰ’보다 장갑차가 1년 3개월여 빨리 나왔다. 영국 해군이 1914년 12월 3일 롤스로이스사로부터 장갑차 3대를 납품받은 것이 최초다. 물론 장갑차의 효시는 이보다 훨씬 빠르다. 고대 중국과 영국에서는 동물의 힘으로 움직이는 무장 마차가 전장에 나온 적도 있다.
영국 기계공학자 심스는 1898년 내연기관이 달린 4륜 자전거 전면에 방탄판을 설치하고 기관총을 장착한 전투차를 선보였다. 심스는 1902년 독일 다임러 차에 철갑과 기관총을 단 ‘모터 전투차’를 제작했으나 보어전쟁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 실전 기회를 놓쳤다. 몇몇 시제품이 더 나왔지만 ‘처음으로 대량생산돼 실전에 투입된 장갑차’는 롤스로이스 장갑차다. 장갑차를 발주한 군대는 육군이 아니라 해군.
영국 보빙턴 전차박물관에 전시 중인 롤스로이스 장갑차의 1920년 개량형. 대량생산된 최초의 장갑차다./위키피디아
영국 해군 항공대는 대공 및 수색작전용으로 장갑차를 원했다. 영국을 폭격하려는 독일 비행선에 맞서 출격한 전투기가 격추될 때마다 달려가서 조종사를 구출하는 임무를 맡았다. 영국은 12대로 구성되는 장갑차 중대 6개를 꾸리고 서부전선에도 보냈으나 쓸모가 없었다. 참호전에서 장갑차의 역할이 없었던 탓이다. 대신 중동지역에서는 큰 성과를 거뒀다. 아랍 원주민 부대를 조직해 오스만제국군의 철도와 보급로를 끊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롤스로이스 장갑차는 루비보다 귀하다”는 말을 남겼다.
롤스로이스 장갑차는 항공기용 엔진 생산을 위해 1917년 생산이 중단됐지만 전후 수많은 개량을 거쳐 아일랜드 내전과 2차 대전에서도 활용됐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만 하다. 최고급 승용차를 장갑차로 바꾼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당시 시점에서 롤스로이스는 좋은 차를 만드는 유망 신설업체로 평가받았다. 1906년에 설립돼 내구성 좋은 차라는 명성을 일찌감치 얻었지만 세계 최고급 차량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을 통해 내구성을 인정받으며 롤스로이스는 명성을 굳혔다. 전쟁은 기회였던 셈이다. 본질적으로 최고의 인재와 도구를 전장에 투입하는 국가가 전쟁에서 이긴다. 본격적인 장갑차가 등장했던 116년 전 조선은 마차조차 흔하지 않은 나라였다. 이제는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새 역사를 쓰려는 참이다. 한화디팬스의 신형 장갑차 ‘레드 백’은 10조 원 규모인 호주의 차세대 궤도형 장갑차 최종 후보에 올라 독일산과 경합 중이다. 미국의 차기 장갑차에 선정될 가능성도 있다. 성공을 빈다.
[옮겨온 글] / 출처: 서울경제신문 / 권홍우(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선임기자) / 2020.12.02 13:27:08
美 국가정보국(DNI)
2001년 9월 11일,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서 테러로 9,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미국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당시 16개 정보기관 간에 신속・정확한 정보 교류가 이뤄지지 않아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책임론이 대두됐다. 9・11테러 국가진상조사위원회는 정보기관을 총괄할 국가정보국과 국가대테러센터 신설을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2004년 12월 정보 개혁 법안이 미연방 하원을 통과한 후 창설된 국가정보국(DNI・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은 미국의 최고 정보기관이다. 해외 정보 담당 중앙정보국(CIA), 국내 정보 담당 연방수사국(FBI), 국가안전보장국(NSA), 국방정보국(DIA), 국가정찰국(NRO) 등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한다. 반세기 넘게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군림하던 CIA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지만 DNI는 독립기관이다. 국가정보국장이 장관급 예우를 받지만 내각의 장관이 되지 않는 행정 체계를 갖추고 있다. DNI는 1년에 400억 달러가 넘는 정보 예산도 주무른다. 국가정보국장이 ‘정보 차르’로 불리는 이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오바마 행정부에서 CIA 사상 최고위직에 오른 여성으로 화제를 모은 애브릴 헤인스 전 CIA 부국장을 최근 DNI 국장으로 지명했다. 바이든은 이어 ‘대통령 일일 정보 브리핑(PDB・President’s Daily Brief)’을 받기 시작했다. PDB는 DNI가 16개 정보기관으로부터 취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하는 기밀 문건이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대통령과 부통령, 국가안보 담당 최고위급 참모에게만 제공돼 ‘세계에서 가장 발행 부수가 적은 신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바이든이 경험과 실력을 겸비한 안보 라인을 갖추고 여러 기관을 통해 국가 안보를 챙기기 시작하는 것에 반해 우리는 되레 거꾸로 가는 모양새다. 국정원 대공 수사권의 경찰 이양을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밀어붙여 안보에 틈새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미국과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들어가는 듯한 한국이 묘하게 대비된다.
[옮겨온 글] / 출처: 서울경제신문 / 정민정(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 2020.12.02 21:49:05
태반에 암수가 있다고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며 은행나무문(門)에 속하는 유일한 종인 은행나무는 암수딴몸이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있다는 뜻이다. 소나무처럼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있는 암수한몸이 식물엔 흔하지만 동물에선 암수딴몸이 대세다. 어류나 파충류에선 짝짓기를 안 하고도 새끼를 낳는 처녀생식 개체가 가끔 발견되지만 포유류는 필히 암수가 짝짓기를 해야 한다.
흔히 털과 젖으로 표상되는 포유동물은 자궁에서 아이를 키운다. 그런데 쉽게 잊히는 생물학적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태아를 키우는 장소가 한쪽 성에 치우친다는 점이다. 암컷 포유동물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투자해야만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암컷과 수컷의 생식 전략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왜 그런지 조목조목 따져보자.
인간을 포함해 처녀생식을 하지 않는 포유류 동물 세계에선 암수 두 성에서 비롯한 유전자, 즉 난자와 정자가 필요하다. 두 세포가 만나 하나의 수정란이 되면서 인간 생식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수정란은 보면 볼수록 놀라운 세포다. 난자와 정자는 결코 간세포나 신경세포가 될 수 없다. 최종 단계까지 분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정란은 모든 세포로 거듭날 수 있다. 이를 수정란이 전(全)형성능을 가졌다고 말한다. 양성(兩性)에서 유래한 두 종류의 세포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전형성능을 획득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수정란이 거듭 분열해 그 수가 200여개에 이르면 이들 집단은 기능이 다른 두 종류의 세포로 분화한다. 하나는 태아가 될 세포들, 다른 하나는 태반이 될 세포들이다. 그렇다. 태반은 엄마가 아니라 태아가 만든다. 각별한 형제라 해도 그들이 사용했던 태반은 다르다. 따라서 장차 여성으로 자라날 태아가 한동안 사용할 태반은 암태반이다. 태아와 태반이 같은 수정란에서 발원한 까닭이다. 수태반을 사용하는 태아는 반드시 남자아이가 된다. 이때 암수 사이엔 미묘한 이해관계의 충돌이 일어난다.
인간의 태아는 약 아홉 달 동안 태반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두툼한 태반은 엄마와 태아 순환계가 만나는 경계면 역할을 한다. 엄마와 태아의 혈액은 태반을 경계로 가까이에서 서로 영양분과 노폐물을 교환한다. 포도당이나 미네랄과 같은 영양소를 얻은 태아는 대사 폐기물을 어미의 순환계로 보내 제거한다. 수컷 포유류는 수태반을 통해 가능하면 태아를 크고 건강하게 키우려 한다. 그 일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암컷 포유류는 미래에 있을 또 다른 생식에 대비해 자원을 안배하려 한다. 여러 명의 태아를 두는 일이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서로 상충하는 이해관계는 암태반과 수태반의 크기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사람에게서 간혹 발견되는 포상기태(胞狀奇胎)라는 임신 증상은 암수 이해관계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태반과 액체가 들어찬 덩어리가 가득한 기태 구조물은 수정 후 약 5개월이면 자연 유산되지만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기에 수술로 제거한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이런 기이한 태반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는 사뭇 놀랍다. 어떤 이유로 핵이 사라진 난자에 정자가 들어갈 때 포상기태가 생긴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난자의 핵이 없으면 대신 수정란은 정자의 유전자를 두 벌 복제해서 손실을 만회하고자 한다. 우연히 정자 2개가 핵이 없는 난자에 들어가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암수의 유전자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수정란은 정상적인 태아로 자라지 못했지만 태반의 크기만은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포상기태 사례에서 보듯 우리는 비록 이해관계가 다르다 해도 태아를 만들 때 반드시 난자와 정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난자에서 온 유전자는 엄마에게서, 정자에서 온 유전자는 아빠에게서 왔다는 신호를 충실히 전달한 것이다. 암수 태반이 바로 그 증거다. 생식생물학은 엄정하다.
[옮겨온 글] / 출처: 경향신문 / 김홍표(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 2020.12.03. 03:04
노숙자(盧淑子, 1943년생, 서울대학교 회화과 졸업) / 감국 / 45 x 45, 종이에 채색,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