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28일 촬영
오사카 간사이 공항
이곳에서 공항리무진을 타고,
우에혼마치로 왔다.
우에혼마치에서 전철을 타고,
숙소에 와서 짐을 풀고,
밥을 먹고 오사카 성으로 갔다.
오사카 성 입구.
해자.
오사카 성
오사카성은 히메지 성, 구마모토 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名城) 중 하나이나, 현존하는 오사카성은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여 복원한 것으로
겉으로만 옛 모습 그대로고 내부는 전기와 수도가 설치된 현대식 건물이다.
JR 서일본 오사카 순환선의 오사카죠코엔역(大阪城公園)이나 지하철 츄오선 타니마치욘초메역(谷町四丁目), 모리노미야역(森 宮),
타니마치선 텐마바시역(天滿橋)이 근처에 있다.성 자체까지는 600m 이상 떨어져 있으니 산책하기에는 딱 맞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주했던 성이자 세키가하라 전투 이전까지는 사실상 일본의 수도 역할을 한 성이기에 일본의 성 중에서도 가장
큰 편이며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만 해도 지칠 수 있다.
오사카 성의 전시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오사카 성이 에도 막부에 의해 축소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역사
오사카 성 부지는 원래 정토진종(淨土眞宗)의 본산지인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가 있었다. 혼간지 세력은 천험의 요새를 구축하고
다이묘에 맞먹을 정도로 힘을 키웠으며 잇코잇키를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에 대항하였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와 10년 동안 이어진
이시야마 전투 끝에 이곳을 내주고 옮겨가는 조건으로 종전에 동의했다. 이 시점에 이시야마 혼간지는 불타 사라진다.
1582년 오다 노부나가 죽고 정권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3년 수도 교토의 외항이자 상업 도시인 오사카의 중심부에
거대한 성을 건설하여 자신의 거점이자 히데요시 정권의 수도로 삼았다. 오사카 성 부지는 혼간지가 노부나가에게 10년 간 대항할
정도로 지리적으로 유리한 입지였다. 히데요시가 건설한 오사카 성은 지금 남아있는 오사카 성과는 다른 것으로, 훨씬 규모가 큰 성이었다.
대규모의 이중 해자가 성을 보호하고 있었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은 후에도 오사카 성은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도요토미가에 충성하는 세력의 본거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가 격돌한 1615년의 오사카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면서 오사카 성의 건물들은 도쿠가와 측의 화포 공격 등으로 모두 소실되었고 성의 바깥 해자는 완전히 매립되었다.
일본 전역에 토목 공사가 성행했던 에도 초기, 에도 막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명으로 오사카 성은 1620년부터 1629년에 걸쳐
재건되었다. 이른바 천하보청의 일환, 비용은 다이묘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마련했다. 도요토미 가문의 성벽과 해자를 파괴하고 그 위에
새로운 석벽을 쌓아 옛 흔적은 사라졌다. 니노마루와 신노마루의 해자를 매립하면서 성의 전체 규모는 1/4 정도로 축소되었지만
원래 높이 약 40m이던 천수각은 새로운 위치에 58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완성했다.
지금의 55m 높이 천수각보다 더 큰 규모 혼마루와 지반도 한층 돋워 더욱 웅장해 보이도록 했다. 이 정도의 대역사를 벌인것은
오사카가 멸문한 도요토미 가문의 중심지였던데다 오사카가 서일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거대한 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쿠가와 막부가 오사카 일대를 직할지로 만든 것을 보면 이러한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런 사정을 몰랐던 당대 조선통신사 일행은 왜 오사카성이 재건되었냐며 분노하여 따지기도 했다.
그런데 에도 막부가 오사카 성을 허물고 성을 새로 재건했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 에도 막부 중기에 이르자 잊혀지고, 쇼와 시대까지
사람들은 오사카 성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1959년의 학술조사 과정에서 에도 막부가 다시 건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오사카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 것을 염려해서 그 발표를 주저했다는 일화가 있다.
에도 막부 시절 쇼군은 에도에 머물렀으므로 정치 무대에서 오사카는 부각되는 일은 없었다. 19세기에 막부 대신 천황을 받드는
존왕양이파가 서일본을 중심으로 세력을 얻으면서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도쿠가와 이에모치는 조슈 정벌 도중 오사카 성에
머무르다가 사망했으며, 대정봉환 이후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오사카 성에 잠시 들어온 적도 있다.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재건한 후에도 오사카 성은 여러 번 화재를 겪어 수리해야 했다. 결국 1665년에 낙뢰로 인해 천수각이 소실되었다.
그 뒤로는 오랫동안 성이 재건되지 못하다가 근대애 와서 성터에 일본 육군 오사카 조병창과 제4사단의 건물들이 들어섰으며,
1931년에야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되었다. 철골 콘크리트로 지은 것은 당시의 건축법상 방화, 내진 등을 이유로 목조 건축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수각 부분은 현대 건축에 속한다.
1~4층은 에도 막부 시절의 양식을 따라 검은색과 금색을 둘렀다. 꼭대기 층만 뭔가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1945년 3월 9일에 일어난 도쿄 대공습이 일어난 지 4일 뒤에
오사카에 미 공군이 네이팜탄을 쏟아부어 성도 오사카와 함께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종전 이후에 다시 재건되었다.
현대의 오사카 성
지금의 오사카 성 천수각은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체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심지어 엘리베이터까지 들어가 있다.
외관은 화려하지만 실은 4층까지는 도쿠가와 시대, 5층은 도요토미 시대의 천수각으로 혼합하여 복원해 고증오류가 심하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외관만 성이고 내부는 현대라고 말한다. 내부의 전시 공간은 유물 내용도 다소 부실하고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어
차라리 주변에 있는 오사카역사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천수각 자체는 오사카시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며 전시는
부실하지만 거기서 파는 도록은 꽤나 훌륭한 편이다. 고증을 떠나서 외형만큼은 '일본에 대한 환상'을 상당히 충족시켜 주는 편이라
일본의 이미지와 문화와 관광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고증을 희생하고 미래의 일본 관광 자원을 얻은 것이다.
천수각 주변에는 옛 오사카 시립 박물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원래는 오사카 성에 자리잡았던 제4사단 본부 건물로,
1931년 천수각 재건과 함께 성내의 사단 본부대 소속 건물들을 집약하면서 건축되었고, 1948년부터 1958년까지는
오사카부 경찰 청사로 이용되었다. 1960년 이후에는 박물관으로 쓰이다가 2001년 오사카 역사 박물관 개관과 함께 폐관되었다.
현재는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
참고
*3대 명성(名城)은 오사카 성 히메지 성, 구마모토 성과 함께, 오사카 성, 히코네성 , 나고야 성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구마모토 성도 현대식 복원이고, 유일한 오리지널 성인 히메지 성도 현대에 많은 보수가 있었다.
*정토진종(淨土眞宗)은 일본 역사서나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일향종(一向宗)의 원래 호칭이다.
*천하보청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압박하기 위해 성을 쌓고 도시를 정비하도록 명한 것이 시초이다.
도쿠가와 막부의 오사카 성 천수각은 이러한 건축 붐의 절정.
*제4사단은 오사카 고스톱 사건을 일으킨 부대다. - 출처 나무위키 -
오사카 성에는 벚꽃이 만발했다.
靑屋門
해자 너머로 보이는 천수각.
천수각 앞의 극락교.
극락교는 교각까지 나무로 만들었다.
극락교에서 본 외부 해자에 떠있는 유람선
靑屋門(청옥문)으로 들어올 때는 이 성돌이 제일 큰 돌인줄 알았었는데 아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57세에 낳은 아들 유일한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장남인 츠루마츠는 3살 때 요절)를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법을 고치고 이미 후계자로 지명했던 누나 닛슈의 아들인 조카 히데츠구의 직책을 박탈하고 할복시킨 뒤 그의 가족 도 모두 숙청하고
다수의 다이묘들에게 히데요리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서약서도 받았는데
히데요리가 5살이 되는 해인 1598년 9월에 히데요시가 갑짜기 사망한다.
그래서 히데요리가 죽은 아버지의 뒤를 잇기는 했는데, 도쿠카와 이에야스와의 전투에서 패하게 되자
어머니와 함께 이곳에서 자결하였다고 한다. 비가 세워 있기는 하지만 자결터가 이곳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오사카성 내부의 해자.
천수각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대포.
천수각의 문.
천수각의 용마루 끝을 장식한 기와 샤치가와라(호랑이 얼굴에 물고기 모양을 한 상상의 동물)
용마루 끝을 장식한 기와 샤치가와라(호랑이 얼굴에 물고기 모양을 한 상상의 동물)
천수각에서 본 풍경, 우측의 녹색 지붕이 무덕관이고 좌측에 있는 작은 녹색지붕이 임진왜란의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이다.
후세토라 (실물크기 복제) / 높이 1.5m, 폭 3.3m,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조한 오사카성 천수각은 장식성이 매우 높은 건물로 최고층(제5층) 외벽 고시이타(허리 높이까지 붙이는 목판재)에는
후세토라(먹이를 노리는 자세의 호랑이)의 용감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1931년 재건 당시에 이 천수각이 모델이 되면서 호랑이 역시 316년만에 복원되어, 천수각 최고층의 사방 외벽에 장식된 4종 8마리의
호랑이가 주위를 제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동서쪽 면 중의 1마리입니다. - 현장 설명서 내용 -
오사카성 천수각(1931년 재건) 용마루의 샤치가와라(수컷) / 높이 2.19m, 전후폭 1.10m, 좌우폭 0,75m. 중량 400kg,
금박 3360매(3번 입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조한 오사카성 천수각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1쌍의
샤치가와라(호랑이 얼굴에 물고기 모양의 상상의 동물로, 용마루 양 끝에 다는 장식기와)가 맨 꼭대기에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현재의 기와는 1931년에 추정 복원되고 1996년에 다시 수복된 것으로 청동제 주물에 금박을 입혔습니다.
이것은 그 샤치가와라를 실물크기로 복제한 것이며 암수 1쌍 중 용마루 남쪽에 있는 수컷입니다.
벚꽃에 앉아 있는 잉꼬
해가 지고 있다.
극락교로 다시 나왔다.
청옥문 앞에 포장마차들이 있다.
청옥문 우측은 매화동산이다.
매화동산. '대판성 매림(大阪城 梅林)'이란 비가 있다.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리노미아역에서 전철을 타고,
숙소로.
작성자 : 칠복이
첫댓글 구경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전철교통이 잘정리된
일본 편안한
여행 하신듯요
봄계절이
넘좋드라구요
일본여행 기행문
잘구경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