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학원에 가면 개들이 먼저 도착해 있어요. 목욕실 앞에 케이지가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안에 서너마리씩 갇혀 있죠. 케이지에는 번호가 붙어 있어요. 학생들은 배정된 번호의 케이지에서 개를 꺼내요. 번호를 까먹으면 큰일나요. 실습이 끝나면 반드시 그 케이지에 다시 개를 넣어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이 번식장 개가 저 번식장으로 가는 거예요. 몇번 그런 일 있어서 난리가 났었어요.
케이지 문을 열면 개들이 똥오줌 범벅이 된 채 달달 떨고 있어요. 왜 하나같이 이런 꼴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았어요. 어느 날 학원에 좀 일찍 갔는데 건물 앞에 탑차가 서 있더라고요. 아직 케이지를 내리기 전이었고요. 화물칸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까 어떤 케이지는 옆으로 누워 있고 어떤 케이지는 뒤집어져 있었어요. 생전 바깥 구경도 못 해본 개들이 캄캄한 화물칸 안에서 케이지째 구르고 뒤집히면서 왔으니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겠어요. 겁에 질려서 똥오줌을 싸고 그걸 서로 묻히고 그랬던 거죠.
번호가 배정되면 눈치 빠른 학생들은 푸들부터 잡아요. 애견 마용은 푸들이 시초고 다른 견종의 미용법도 푸들을 기본으로 하거든요. 자격증 시험도 푸들로 보고요. 그래서 푸들 실습은 많이 하면 유리해요. 저는 처음에 개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서 그런 계산도 못 했어요. 그런데 서너달쯤 지나니까 제 살길을 찾게 되더라고요. 원장이 “1번 케이지 누구, 누구, 누구”하고 부르면 내가 먼저 달려가서 케이지 문을 열어야 하는 거예요, 푸들을 뺏기지 않으려면.
제가 처음으로 실습한 개는 시추였어요. 피부병에 걸려서 진물이 줄줄 흐르던. 본격적인 미용을 배우기 전이라 목욕만 시켰어요.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면 목욕 정도는 다 시킬 줄 알지만 학원에서 가르치는 건 달라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매뉴얼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순서도 있고 시간제한도 있어요. 숙련되지 않은 초보자는 순서 되새기랴 시간 확인하랴 정신없어요.
저도 마음은 급하고 손은 서툴렀어요. 번식장 개들은 대부분 겁이 많고 얌전해요. 그 시추도 그랬어요. 싫은 티도 못 내고 달달 떨기만 했어요.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요. 원장은 왔다 갔다 하면서 오분 남았다, 삼분 남았다, 압박하는데 눈물을 훔칠 새도 없어서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된 채 손만 빨리빨리 움직였어요. 그게 제 첫 실습이었어요.
실습
첫달엔 매일매일 울면서 실습했어요. 새끼 뺀 지 며칠 안 돼서 수술 자국이 선명한 모견들도 왔어요. 한눈에도 힘들어하는 게 보이는데 미용을 해야 하는 거예요. 애견 미용은 미용사뿐 아니라 개들에게도 체력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에요.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요.
우선 낯선 장소에 와서 높고 좁은 테이블 위해 몇시간씩 서 있어야 한다는 것부터가 개들에게는 무서운 상황이에요. 거기다 우리가 쓰는 클리퍼, 개들 입장에서는 소음과 진동을 내는 쇳덩어리가 자기 몸을 계속 훑고 지나가는 거잖아요. 드라이어에 기절초풍하는 개들도 많아요. 미용사들이 쓰는 건 가정용 헤어드라이어가 아니라 바람이 세고 소리가 큰 대형 드라이어에요. 그런 일을 출산한 지 며칠 안 된 개가 견뎌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펫숍의 쇼윈도 속에 있는 강아지들 정말 귀엽고 예쁘죠. 하지만 그 강아지들의 부모들은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번식장 개들은 피부병을 기본적으로 다 갖고 있어요. 상태가 나쁘거나, 더 나쁘거나 그 차이 뿐이죠. 피부병이라고 하면 피부가 좀 안 좋나보다, 하면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보통 사람들은 피부병이라는 말에서 몸 전체가 딱딱한 각질로 뒤덮여서 이게 개인지 거북인지 구분도 안 되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해요. 온몸에서 피고름을 줄줄 쏟아내는 상태를 상상하지도 못하고요. 이건 그야말로 미치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이에요.
그뿐이겠어요? 유산할 때 쏟은 핏덩어리가 털 뭉치와 엉켜서 2차 감염이 된 모견도 흔하고요. 장모견은 털로 갑옷을 두른 것 같은 몰골의 개들도 많아요. 그 털 뭉치 안에서 별의별 게 다 나와요. 구더기나 벌레는 당연하고요. 이게 왜 털 속에 들어가 있을까 싶은 것들, 예를 들면 기계 부품 같은 것. 왜 번식장 케이지에 그런 게 있을까요? 엉킨 털이 철장에 기어서 꼼싹달싹 못 하는 개들도 종종 봤어요. 우리가 발견하면 바로 빼주지만 번식장에선 누가 제때 그 개들을 빼주겠어요.
동료가 털 갑옷으로 두른 모견 한마리를 미용한 적이 있었대요. 그런데 클리퍼가 털 속의 뭔가에 걸리는 거예요. 그게 뭐였는지 알아요? 주사기요, 수액 넣을 때 쓰는 주사기. 언제 꽂았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거였어요. 플라스틱 겉통은 털이랑 뒤엉켜 있고, 바늘은 다 녹슬어 있고, 바늘 주변의 피부는 곪아서 썩어문드러져 있고, 어쩌면 그렇게 내버려둘 수 있는 거죠?
제가 예전에 유기동물 구호단체에서 활동했는데 거기 사람들이 이런 말을 자주 했어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개는 내 눈에 띈 개’라고. 단체에 가입하자마자 자기가 발견한 유기견을 구조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확하게 말하면 구조 요청을 하려고 가입한 거죠. 대부분은 개가 구조되어서 안전해지면 사라져버려요. 요청한 사람은 사라지고 개만 남으면 예전부터 거기서 활동해온 봉사자들, 자신의 연민에 책임지려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 개를 감당하는거예요. 단체도 돈과 인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떤 개를 구한다는건 다른 개를 구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눈에 띈 개만 구해달라고 해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개는 내 눈에 띈 개라고 말할 때에는 비판적인 의미도 있는 거죠. 어쨌든 내 눈에 띈 개가 가장 불쌍한 것은 맞아요. 동정심도 내 눈으로 봐야 생기죠. 그런데 만약 그 개와 짧은 시간이라도 교감을 나눴다면 어떻겠어요? 더더욱 외면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실습하는 게 더 힘들었어요. 눈 맞추고 말 걸고 쓰다듬고 안아주고 씻겨주고 미용해줬는데, 거기다 걔들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개들인데, 저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으니까요.
실수
우리 원장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라 초보자들에게 함부로 개를 내주지 않았어요. 최소한 두달은 지나야 개를 만질 수 있었어요. 애견 미용은 다른 기술직과 달라요. 생명을 다루는 일이잖아요. 우리 원장이 하루에도 수백번씩 하는 말이 있었어요.
“개한테 손 떼지마.”
우리가 개를 올려놓는 곳은 높고 좁은 테이블이에요. 개들은 겁에 질린 상태로 그 위에 올라가 있어요. 손을 떼면 눈 깜짝할 사이에 개가 떨어지는 거예요. 원장이 그렇게 주의를 줘도 손을 떼는 실습생들이 있어요. 누가 “야!”하고 부르면 “응?”하고 돌아보다가 얼떨결에 손을 떼는 거죠. 그러면 개는 곧바로 추락, 골절. 특히 푸들은 다리가 약해서 떨어지면 거의 다리가 부러져요.
어느 날 실습을 하는데 뒤에서 빡! 소리가 나더라고요. 정말이지 듣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어요. 돌아보니까 푸들 한마리가 떨어졌는데 경련하듯이 사지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거예요. 뼈가 부러졌나 싶었는데 눈이 뒤집어지면서 구토를 하더라고요. 원장 얼굴이 새하얘졌어요. 골절이면 차라리 나은데 토하는 건 머리를 다친 거거든요. 바로 병원으로 옮겼는데 죽었어요. 지금도 그 장면이 생각나요. 떨어뜨린 사람은 울고불고, 원장은 미친듯이 고함지르고, 다른 실습생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그리고 그 난리법석 속에서 거품을 물고 죽어가던 작은 푸들이.
처음에는 그런 일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오래 생각하고 결정한 진로지만 그만두고 싶었어요. 동물에 대한 연면도 타고나는 걸까요? 저는 예전부터 유별나다 싶을 만큼 그랬거든요. 누구네 집에 개나 고양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시보호소에서 안락사 명단에 오른 동물들 사진만 봐도 울음이 터졌어요.
그런데 학원에 다닌 지 석달쯤 지나니까 저도 무뎌지더라고요. 똥오줌을 뒤집어쓴 채 겁에 질려 있는 개들을 봐도 그러려니, 피부병으로 괴로워하는 개들을 봐도 그러려니,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모견이 힘들어해도 그러려니…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인데 매일매일 충격받을 수는 없는 거예요. 개들의 모습에는 충격받지 않았지만 새로운 충격이 있었어요. 내가 더이상 충격받지 않는다는 충격, 나처럼 연민 많은 사람도 어떤 일이 반복되면 익숙해진다는 충격, 그것도 고작 석달만에요.
살아 있는 시체
완전히 무뎌져버린 시기에 그 몰티즈를 만났어요. 모견이었는데 미용도 할 수 없었어요. 피부병으로 털이 한올도 남아 있지 않았거든요. 맨살이 다 드러나 있는데 그조차도 딱지로 뒤덮여서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어요. 약물목욕이라도 시켜주려고 따뜻한 물에 넣었더니 딱지가 훌렁훌렁 벗겨지면서 피고름이 줄줄 흐르더라고요. 특정 부위가 아니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요. 도무지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 모견은 이미 삶을 포기한 상태였어요. 내가 자기를 들어올리든 물 속에 집어넣든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온몸이 축 처진 채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있기만 했어요. 숨만 붙어 있을 뿐 어떤 움직임도, 최소한의 반응도 없었어요. 시체를 만지는 기분이었어요. 더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나도 명확하게 느껴졌어요. 아, 개도, 동물도 극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죽고 싶어하는구나. 사람이면 벌써 자살했을 거예요.
원장한테 울면서 부탁했어요. 내가 이 개 데려가면 안 되냐고, 구해주고 싶다고, 번식장에 물어봐달라고. 원장이 딱 세마디 했어요. “정신 차려. 나가. 마무리해.” 제가 계속 울면서 매달리니까 원장이 그러더라고요.
“어떤 개가 네 손에 들어왔으면 너한테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의 것을 해줘. 그리고 주인한테 돌려보내. 그게 애견 미용사의 역할이야. 그 앞의 상황, 그 뒤의 상황,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그 개를 번식장에서 빼내는 게 저한테는 구조지만 번식업자한테는 재산을 넘기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애초에 그건 안 되는 일이었던거예요. 그 몰티즈처럼 숨만 붙어 있어도 데리고 있는 건 돈이 되기 때문이겠죠? 그럼 그런 개도 교배를 시키고 번식을 시키는 걸까요? 그날 몰티즈를 보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네가 한번 더 여기에 올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몰티즈는 다시 오지 않았어요. 죽었겠죠. 번식장의 뜬장에서.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저자 하재영)
애견 미용에 대한 부분은 이 책에서 극히 일부를 발췌한거고, 이외에도 번식장에서 강아지 경매장, 보호소, 버려진 개들까지 다루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어서 글로 작성해봤는데 문제되면 삭제할게
청원 주소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7523
첫댓글 청원했어... 진짜 인간에 의해서 평생 고통만 받다 죽게되는 애기들 생각하니깐 너무 마음이 아파..,,
청원했어 ㅠㅠ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인간에 의해서 고통받기만 하고...
아 제발 진짜.... 아
이 책 진짜 한번쯤은 꼭 읽어봐줬으면 좋겠어 저 책은 읽을때마다 눈물나..
청원했어!
청원하고 방금 책도 주문했어ㅠㅜ 인간이 문제야 진짜...
나 다른커뮤로퍼가도될까? 많은분들이 알아야할거같아 나도 청원했어ㅠ
ㄱㅆ 응! 일부러 스크랩 금지도 풀어뒀어 내가 쭉빵 밖에 안 해서 다른 곳들에는 못 올리는데 고마워!! 혹시 다음카페 아닌 커뮤로 가져가는거면 원출처 쭉빵카페만 적어줘~~
@백설 글써줘서 고마워 제발제발 이글 보는사람들이 사지말고 입양했으면..
너무 마음 아ㅏ파..
미치겠다 ㅠㅠ
햇다 ㅠㅠ
했다ㅠㅠ
하 ㅣㅈㄴ짜 마음 찢어져
아 못 읽겠다 아유....
하려고 했는데 청원 종료된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