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맘이 아주 아픈 사람이었다.
아픈 맘으로 내 몸을 찬찬히 훑어보니 어찌 이리 결격사유들만 가득하던지
허전함에 어찌어찌하다가 결국 얼굴에 더 큰 사고를 만들었다.
이게 다 자격지심의 결과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강신주가 말한 자기애나 확신이 없기에 생긴 일이 맞았다.
그때(혹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나를 사랑하고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회복하는 것.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는 늘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절실했었고
나 자신을 용서해야 했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되는 나보다는 독립된 객체로서의 나를 믿어야 했다.
힘든 시간이 지나갔고 이제야 비로소 좋아지는 길로 돌아서게 되었다.
맘, 누구와도 주고받을 수 있다.
마음은 유기체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것들쯤이야 누구든 경험론적으로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꼭 주고받으려고 사랑을 시작하진 않는다. 나도 그랬다.
줘 버리기만 했지만, 행복했던 사랑은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에게 몰입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 덕분에 삶의 의욕도 생겼고 내가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었다.
시도 쓰고 글도 끼적이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주위의 여럿은
너 연애하고 있구나~!! 하고 말들을 해왔다. 덩달아 기분 좋아하면서.
이 책 다 상담을 읽으면서, 강신주가 이야기한 사랑이란
이런 '쨍'한마음에서 피어난 진실에 솔직하자! 가 아닌가 생각했다.
인생의 굴레를 무시하라! , 너 자신에게만 집중하라! 고 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근간을 지키고 있는 초자아를 깡그리 무시하라는 말은 아닐 것으로 생각됬다.
그 이유는, 책을 읽는 모두와 듣는 모두는 이미 성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칼릴 지브란이나 메리 헤스켈의 만남에 늘 단서를 달며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유치환 선생님이나 이영도 시인의 사랑에 또한 토를 달지 않는 것처럼
사랑(혹은 불륜이라 말하는...)은 둘 사이의 문제이지 방관자들의 논쟁거리는 아니다.
나를 만지지 않는 사람과 만나기에 불행하거나 고독한 적은 없었다.
내 몸을 부드럽게 연주해주지 않아서 슬픈 적도 없다.
사랑한다는, 하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배려심이 없는 행동으로 무례하게 여자의 몸을 대하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딱 한 시간만 같이 있어봤으면 좋겠다고 킬킬거리긴 했지만
그것은 치기 어린 장난으로 한 말이지 진심이 아니다.
배려가 가득하고 사랑이 충만할뿐더러 격정까지 가득한 사랑이면 금상첨화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늘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형태의 사랑이건 간에 그저 '그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언젠가부터였을까 기다릴줄 아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꼭 내가 '열녀' 혹은 심지깊은 사람같아보일듯도 싶으나
사실 새로운 사랑에 대한 열망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게으름이 병이다.
2남2녀의 중간에서 태어난 나는,
아빠형제 여덟 엄마 형제 여섯인 대 가족에서 자랐다.
늘 고독을 꿈꿨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상 아쉬웠었다.
서른 다섯이 넘어 영업을 하게 되며 드디어 밥을 혼자 먹게 되었다.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 그게 얼마만이었는지 ......
암만 생각해봐도 고독보다는 여유가 주는 행복감이 더 컸다.
그래도 남들의 이목이 신경쓰일때를 위해서 나름의 법칙을 만들어 놓았다.
울지 않는 것과 웃지 않는 것이 그 내용이다.
후춧가루가 매워서 울어도 남들은 혼자 청승이라고 할게 분명하고
기분좋게 웃어도 미쳤다고 할테니까...
어짜피 그들이 원하는 '나'란 본인들이 술먹는 걸 방해하지 않는 여인일테니
그 바램에 충실할 뿐이다.
알고보면 모두들 고독했다고 하니
순간순간의 고독 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낼 수 있는 재체기같이 되었다.
그냥, 어느 날부터 그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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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에 대해 정말 일찍부터 집중하고 살았지만
나를 바라보며 기대하는 일반적인 바램들은 최근에서야 인식하게 되었다.
'나의 곁에 열심히 남아 주기를'바라는 그것이 가장 대표적인 바램이었다.
나 스스로에게는 비교적 명쾌한 태도로 살았으나
내 주변것들에 대해선 한번도 쿨하지 못했다.
늘 그 일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만 했다.
정신간호를 배우며 알게 된 나의 병명은 '해리성 둔주'였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 한 평생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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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살던 숯댕이눈썹 흰 얼굴의 사내를 좋아하다가
짝사랑의 병이 깊어져서는 밤이 아침같고 대낮이 한밤중같던 시절을 보냈다.
너무나 힘들고 지치고 싫었었다.
결국은 내가 뭣때문에 이리 괴로운지 본질을 잊었었다.
결국에는 세상의 빛도 낮의 밝음도 탐탁치 않았다.
그때 생긴 버릇이 있다. 휙 떠나버리는 것.
정처없이 숨어버리던 습관.
그때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이 날 미친듯 찾으러 다녔다.
늦은 밤,학교 도서관 옆 구석에 덩그마니 앉아있으면
즐겁게 해주려 웃고 떠들던 애들이 늘 곁에 있었는데
그 애들이 붙여준 별명, 둔주 Fugue
나는 늘 떠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이게 내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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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강신주가 내 옆에 있었으면 그랬겠지?
"떠나세요. 인생 두 번 살수 있나요?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먼저 인식하셔야 합니다.
그 후 바로 실행하시는 겁니다.
일상의 노예가 되느냐, 주인이 되느냐는
스스로 결정하시는 겁니다."
아으... 진짜로 떠나볼까나ㅎㅎㅎ
제가 그게 가능하겠습니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