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지 않은 것은 없다.
다만 업과 부정적인 생각이
가능을 불가능하게 만들 뿐.
절대자는 전지전능하고
이미 내 안에 거하고 있고
내가 부처라고 하는 하나님 부처님은
전지전능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내 안에 거한 하나님을 현현하게 하고
이미 내가 부처인 부처를 현현하게 하고
내 안에
절대자라고 하는 전지전능함을 드러낸다면
그것에 불가능이 있을까? 없을까?
불가능은 불가능이 아니라
말과 생각 의식 마음이 불가능하게 할 뿐,
불가능은
가능의 반대말일 뿐이다.
2008. 11. 06. 07:50 칠통 조규일
수행을 잘하기 위해서, 나는 누구인가? / 확철 칠통 조규일
수행의 시작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며
자기 자신의 모든 행을 타인화해서
자기 자신을 보고 관찰하고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관찰하고 성찰하며 자기 자신을 바르게 보는 것이다.
그리고 수행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객관화, 타인화해서 나라고 하는 자기(自己)를 면밀히 관하여 살펴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면밀하고도 정확하게 하나하나 파헤치며 그 실체를 확연히 아는 것이다.
(와~ 드디어 명확하게 밝히셨네요.^^)
그럼 나는 누구냐?
각기 나라고 하는 나 자신을 이루고 있는 일합상의 주인이다.
일합상의 나는 산과 같고 집과 같고 지구와 같고 우주와.....같다.
나는 나라고하는 일합상 집 주인이고
나는 나라고하는 일합상 산 주인이고
.....
나는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의 주인이다.
나를 이루고 있는 나란 일합상 안에 있는 모든 것
그 어느 것 하나도 빠짐없이 그들의 주인이다.
나는 그들이면서 그들이 아니고 그들은 나이면서도 내가 아니다.
나는 나를 이루고 있는 일합상 그들이면서 그들이 아니고
그들은 나를 이루고 있는 일합상 나이면서도 내가 아니다.
나는 나를 이루고 있는 일합상의 주인이다.
주인이면서 나라고 하는 일합상 안에 있는 것들에게 있어서 에너지 빛이고 태양이며 창조주 조물주이다.
나는 나를 이루고 있는 나라고 하는 일합상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본래 자신들의 본래 세계와 성황으로 연결하는 창조주 조물주 신이다.
나는 나라고 하는 일합상 안에 있는 본래 자신들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 생명 생명근원 생명근원근원들을
본래 자신들의 본래 세계와 성황 성성향향 꽃성화황으로 연결하는 창조주 조물주 창시자이다.
나는 나라고 하는 일합상 안에 있는
존재 존재자 생명 생명근원 생명근원근월들 속에 있는
존재 존재자 생명 생명근원 생명근원근원들을
본래 자신들의 본래 세계와 성황 성성향향 꽃성화황 청청향향 꽃성청황으로 연결하는 창조주 조물주 창시자 신이다.
나는 나라고 하는 일합상 안에 있는
존재 존재자 생명 생명근원 생명근원근월들 속에 있는
존재 존재자 생명 생명근원 생명근원근원들 그 속에 있는 생명 존재 존재자 생명근원들
본래 자신들의 본래 세계와 성충 성황성황 청으로 연결하는
창조주 조물주 창시자 청이다.
선사님 더 이상 하지 마십시오.
더 하시면 이제는 이상해집니다.
여기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더 하시면 이해하려고하기보다는 이상하게 생각하기가 더 쉽습니다.
나는 나라고 하는 나를 객관화해서 밝혀 아는 만큼
나는 깨어난다. 깨닫게 된다.
지금 현실이란 이곳에서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 현실에서 크다고 하는 일합상 안에 것은 올라갈수록 작아지고
지금 현실에서 작고 작은 일합상 안에 것일수록 위로 올라갈수록 커진다.
현실은 전체를 벗어나 있지 않은 채 현실 속에 있고
전체 속에서 보는 현실은 흔적을 찾아보기조차 없이 작다.
전체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0000 0000
이제 더 쓰지 마십시오.
여기서 더 밝히셔도 모릅니다.
이상할 뿐입니다. 이것도 다 이해 못합니다.
2017. 01. 26 09:21
자기 자신 안에
우리들 각기 저마다는
자기 자신 안에
자등명이고 부처님이고 하나님이며
본성이고 본래면목이고 주인공이 있고
저마다의 이름으로 부르기 이전에
절대자라 이름할 이가 있다.
이름한 이름들
저마다로 드러나고
드러나서는
말하고 행하여
말하고 행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고
현현하는데
넉넉한 날이 되세요.
2007.07.11 07:03 칠통 조규일
바램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면
까닭의 원인을 모르고서 어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요인을 해소할 수 있으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전에 일어난 일의 원인을 알고 제거하고 나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일어날 수 있도록
원인을 제공해야 변화는 일어나는 것이다.
변화하고자 하는 바램대로 이루어지도록 하고자 한다면 변화하는 바램의 원인을 제공하라.
그것이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생각이나 의식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행을 통하여 원인을 제공하라.
그러면 바램대로 변화할 것이다.
2007.07.31 07:09 칠통 조규일
굳게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라
모든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누구 때문이 아니고 주변에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남들로부터의 자존심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고
자존심에 달려 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자등명과 자성불
전지전능한 절대자를
굳게 믿고 의지하며
스스로 존귀한 그임을 알고
그의 자존심을 가지고 나아갈 때
세상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할 뿐
세상이 어떻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구, 어떤, 주변과 환경, 세상에 이끌려가기 보다는
절대자로 우뚝 서 갈 수 있는 지혜와 광명을 가지시도록 해야하겠습니다.
가끔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흔들릴 때가 있을지라도
뿌리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흔들림 없이 있는 것과 같이
우리들 모두 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절대자이며 부처님이고 하나님이며
자등명이고 자성불이
근본 뿌리임을 알고
이름한 이름들이
자기 자신임을 자각하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자각하고 나아감에 부족함이 없는 날이 되소서
2007.07.14 07:30
2007.07.16 07:55 칠통 조규일
창조주(創造主)는 어디에 있고, 누가 창조주인가? / 확철 칠통 명철 조규일
창조주(創造主)란 각기 저마다 살아 있는 자체가 창조주이다. 크게 보면 크게 본 만큼의 세계의 세상 자체가 창조주이고 작게 보면 작은 대로 본 만큼의 세계의 세상 자체가 창조주이다. 창조주가 따로 어떤 개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체가 창조주이다.
개미 자체를 보면 개미 자체를 이루고 있는 성품이 개미의 창조주이고, 풀을 보면 풀을 이루고 있는 풀의 성품 자체가 창조주이다. 따로 누가 있어서 창조시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품이 자기 자신을 창조해서 그와 같이 창조한 것이다.
동물이나 사람, 모든 살아 있는 자체, 저마다 각기 하나의 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상을 이루고 있는 성품 자체로 상을 창조한 창조주이다.
사람들 각기 저마다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이 자기를 창조한 것이고, 지구는 지구 자체가 지구를 창조한 것이다. 무엇이 지구를 이루고 있는 모든 지구의 성품이 지구를 창조한 것이다.
지구 내에 미국, 한국이라고 할 때 한국은 한국이라고 하는 한국을 이루고 있는 한국이란 상 안에 모든 성품들이 한국을 창조주이고, 미국은 미국이란 나라를 이루고 있는 상 안에 모든 성품들이 미국을 창조한 창조주이다.
이는 눈으로 보이는 것에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이르기까지 각기 저마다 하나의 상은 하나 상 안에서 상을 이루는 성품이 되고 상을 이루는 성품은 상 안에서 창조주가 되어서 이루고 있는 하나의 상을 창조해 가고 창조해 내는 것이다.
작게 보면 작게 창조주가 되고 크게 보면 큰 대로 창조주가 되면서 저마다 각기 스스로를 이루고 있는 상 안에서 상을 이루고 있는 성품으로 상을 창조해 가고 창조해 내는 창조주가 되어 있다.
작은 창조주는 큰 창조주 안에 있다할지라도 큰 창조주의 영향을 받기는 하되 작은 창조주로써의 창조를 하고 창조가면서 스스로 창조주로써의 삶을 살아간다.
지구는 지구 자체로 살아 있는 창조주이고, 태양계는 태양계 자체로 태양계를 창조해가고 창조해 내는 창조주이고 은하계는 은하계 자체로 은하계를 창조해가고 창조해 내는 창조주이며.
우주, 다중우주, 수없이 많은 다중우주, 이보다 더 많은 다중우주....이 모든 것들이 저마다 각기 창조주이되 큰 것은 작은 것을 이루게 하고 만든 창조주입니다.
큰 것은 작은 것을 창조하고 만들어 내되 작은 것은 작은 대로 살아 있으면서 스스로를 창조하고 만들어 가면서 스스로 창조해가고 이루어지게 만들면서 창조해 가는 창조주입니다.
창조주라고 어떤 개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자체로 있는 것이 창조주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것과 같이 지구도 살아 있고, 우주도 우주 자체로 살아 있고, 다중우주도 다중우주 자체로 살아 있고, 수없이 많은 다중우주도 자체로 살아 있고, 이보다 더 많고 많은 다중우주도 살아 있습니다.
이는 작게는 각기 저마다 나로 살아 있으며 점점 더 크게는 범우주적이 되고 범 다중우주가 되고...점점 포괄적인 다중우주 자체로 살아 있습니다. 이 자체가 창조주입니다. 누가 있어서 창조주가 아니라 있는 자체로 각기 저마다 창조주입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대로 있는 자체로 있는 자체가 창조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와 어느 이름의 상을 하고 있는 것과 대면해서 창조주를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창조주는 이름한 자체가 창조주이고 이름한 자체의 상을 이루게 한 성품 자체가 창조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의 창조주는 나이고, 지구에서 보면 지구의 창조주는 지구이고, 우주에서 보면 우주의 창조주는 우주 자체이고, 다중우주에서 보면 다중우주 자체가 창조주이고, 더 많은 다중우주 자체에서 보면 더 많은 다중우주 자체가 창조주이고 더 수없이 많은 다중우주 자체가 창조주이고 더 수없이 많은 다중우주보다 더 많은 다중우주 자체로 보면 그 자체로의 창조주입니다.
창조주는 크고 작고를 떠나 이루고 있는 자체 성품을 창조주라고 하는 겁니다.
마치 우주 일체를 하나의 상(相)으로 보았을 때 불교에서는 부처라고 하고 우주 일체를 하나라고 하는 상, 부처를 이루고 있는 것을 불성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불성이 우주 일체라고 하는 하나의 상을 이루는 성품을 불성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유일신 하나라고 했을 때 유일신 하나 자체를 창조주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상은 하나의 이름을 갖고 하나의 이름은 하나의 상을 갖는다. 하나의 상은 상을 이루고 있는 성품이 있는 그 성품 자체가 이름한 상에 있어서의 창조주인 것입니다.
창조주는 의식하고 인식한 범주 내에서 상 안에서 이루고 있는 성품 자체가 창조주이고 그 창조주 안에 있는 각기 저마다는 각기 저마다 나라고 하는 내가 자기 자신 스스로를 창조해가고 창조해 내며 만들어가는 창조주입니다.
창조주가 따로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이 의식하고 인식한 세계의 세상을 이루고 있는 상의 성품이 창조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를 어떻게 인식 의식하느냐에 따라서 자기 자신이 창조주일 수도 있고 또는 자기 자신이 의식 인식한 세계 안의 성품이 창조주일 수도 있습니다. 가기 저마다 자기 자신을 창조주라고 한다면 모두 다 각기 저마다 창조주이지만 의식하고 인식한 세계의 세상의 한계에 있어서의 창조주는 각기 저마다 의식하고 인식하는 한계가 서로 다른 만큼 각기 저마다 자기 자신의 의식과 인식 안에서 가늠하여 아는 세계의 세상의 성품이 창조주이니. 이름은 창조주로 똑같을지라도 가늠하여 아는 세계의 세상은 다른 만큼 다르면 다른 만큼 그 크기가 다르면 다른 만큼 어마어마한 차이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자기 자신 밖의 창조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자기 자신이 아는 세계의 세상에 있는 창조주를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똑같다고 강요하지도 말며 또 자기 자신이 아는 창조주가 최고 최상이라고 하지도마라. 이는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로 우물 안의 개구리와도 같은 꼴이다.
그러므로 각기 저마다 모든 존재들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의 창조주는 각기 저마다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자기 자신을 이루고 있는 성품이고, 자기 자신 밖의 창조주는 각기 저마다가 의식하고 인식하고 있는 세계를 이루고 있는 성품이 자기를 이룩한 창조주라 할 것이다.
지금의 자기 자신을 있게 한 창조주는 자기 자신이고 자기 자신을 이룩되게 하는 창조주는 자기 자신이 의식하고 인식하고 있는 의식과 인식의 한계 내에서 자기 자신을 창조해주고 창조해 내고 있으며 자기 자신의 의식의 한계 내에서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고 창조하며 만들어내는 만들어가는 창조주라 할 것이다.
창조주는 무엇이 되었든 이름한 상(相), 그 상을 이루고 있는 성품이 창조 불변의 기본법칙이고, 상을 이루고 있는 성품 안에 있는 실존적 근원적 근본적인 존재 자체의 자유의지가 창조의 절대적인 원리고 법칙이다.
창조는 누가 따로 있어서 창조주에 의해서 창조되거나 창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각기 상을 이루고 있는 이름 안에 성품의 작용으로 성품 속 실존적 실재적 근원적 근본적인 존재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상을 이름한 상의 성품 안에서 실존적 실재적 근원적 근본적인 존재에 의하여 스스로 각기 저마다 창조된다.
창조주는 각기 저마다 이름한 상, 상을 이루고 있는 실존적 실재적 근원적 근본적 존재 자체가 창조주이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각기 저마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창조해 왔고 창조해 가고 있는 창조주이다. 각기 저마다 창조주는 따로 없고 다만 작은 것은 큰 것의 영향을 받고 큰 것은 작은 것의 영향을 받으며 그 영향권 내에서 자기 자신 스스로 창조해 갈 뿐이고 창조해 낼 뿐이다.
2016. 02. 01 14:46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고 살아지는 것이다. / 확철 칠통 황금종려 조규일
주저하지 말라
결정했으면 행하라.
결정하기 전에 생각해 보고
이것 저것 견주어 보는 것이다.
인생은 살아 있음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살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뜻과 의지를 가지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뜻과 의지,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을
살아가는 것이라 할 것이며
힘들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순간순간 충실하게 매사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힘들고 괴롭고 죽을 것 같은
절망과 좌절의 순간이 넘어가게 된다.
이렇듯 살아지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과 살아지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평상심 위 아래로 주기를 그리며
이것일 때는 저것이 숨고 저것일 때는 이것이 숨으며
서로 간에 너울너울 춤을 추듯
파장과 율동,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 주기 아닌 주기를 가지고
마치 파도가 출렁이듯 출렁이며 흘러가고 있다.
평상심 위에서
인생은 이와 같이 살아가고 살아지면서 흘러간다.
냇물이 흘러가 듯
강물이 흘러가듯 흘러간다.
즐겁거나 괴롭거나 희망적이든 절망적이든
잠시도 멈춰 있는 없이 흘러간다.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지는 것이다.
고해(苦海)의 바다를 헤어쳐 건너가려고 하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면
고해의 바다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것에 맡기는 것은 살아지는 것이다.
살아가는 삶을 적극적인 삶이라 할 것이며
살아지는 삶은 소극적인 삶이라 할 것이다.
적극적 소극적으로 살아가고 살아지며
흘러가는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창조해 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뜻과 의지,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행하여 가며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행하는 쪽으로 창조해 가는 것이다.
그 누가 있어서 자기 자신의 앞길을 창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해 가는 것이다.
창조자는 자기 자신 이외의 누가 있어서 자기 자신을 창조한 것이 아니다
태초부터 자등명의 움직임으로 통하여
진아(眞我)라고 하는 자등명이
지금의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이 행한 것으로 인하여 창조해 온 것이다.
지금까지
자기 자신이 자기를 창조하며 이루어 왔듯
앞으로도
자기 자신이 어떻게 행하여 가느냐에 따라서
행하여 가는 그것을 따라 창조되어 가는 것이다.
가는 길, 가고자 하는 길에 맞게
살아가며 살아지면서
스스로를 창조해 가는 것이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그 곳을 향하여 걸어가라.
걸어가는 그것이
자기 자신의 완성이고 창조다.
자기 자신을 완성하고 창조하라.
2010. 12. 09 05:32
당신은 소중하고 귀한 존재입니다.
자등명에 대한 진실한 말들/ 칠통 조규일
자등명(自燈明) 전지전능(全知全能) 절대자(絶對者) 무량광(無量光) 무량수(無量壽) 마하자등명(摩訶自燈明) 절대자 자등명 창조주(創造主) 자등명 주인공(主人公) 자등명(自燈明) 마하자등명(摩訶自燈明)
이 몸의 주인공이고
만물의 주인공이며
만물의 창조주이신
전지전능한 절대자 자등명이여!
주인공으로 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창조자로 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전지전능한 절대자로 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업과 상관없이 자등명으로 살게 하소서
자등명의 삶을 살자.
행하는 자등명으로 살자.
주인공의 삶을 살자.
창조자의 삶을 살자.
절대자의 삶을 살자.
자등명은 전지전능한 절대자이고
절대자는 무량광 무량수로 가늠할 수 없이 크고 큰 자등명이고
가늠할 수 없이 크고 큰 자등명은 절대자로 저마다의 자등명이고
저마다의 자등명은 자기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 자등명이며
자기 자신을 창조한 자등명은 자기 자신이 나라고 하는 지금의 자기 자신의 주인공이고
창조자이며 절대자 자등명으로 본래 가늠할 수 없이 크고 큰 자등명이다.
자등명(自燈明) 전지전능(全知全能) 절대자(絶對者) 무량광(無量光) 무량수(無量壽) 마하자등명(摩訶自燈明) 절대자 자등명 창조주(創造主) 자등명 주인공(主人公) 자등명(自燈明) 마하자등명(摩訶自燈明)
지금 당신은 육신이 나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지만
당신의 육신 속에는 영혼이 있고
영혼이 나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지만
당신의 영혼 속에는 시방을 두루 밝히는 자등명이 있습니다.
당신의 내부 깊숙이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혼 깊이
영혼의 손길 마쳐 닿지 않는 곳에는 시방을 두루 밝히는 자등명이 있습니다.
이 자등명이 당신의 주인공입니다.
당신은 본래 자등명입니다.
업(식)에 덮여있고 둘러싸여 있어서 업으로 살면서
업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나라고 하지만
당신은 자등명으로 무량광(無量光)이고
무량광 자등명은 무량수(無量壽)로 절대자입니다.
절대자 자등명은 만물을 창조한 창조주이고
지금 당신 안에서 지금의 당신을 창조하여 존재하게 하고 있는
당신의 주인공으로 당신을 움직이게 하고 있고 활동하게 하고 있으며
스스로 그 어느 것에도 의탁하지 않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게 하고 있는 존재자 자등명입니다.
당신은 이와 같이 소중하고 귀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자등명이란 빛의 존재입니다.
전지전능(全知全能) 절대자(絶對者) 무량광(無量光) 무량수(無量壽) 마하자등(摩訶自燈明) 절대자 자등명 창조주(創造主) 자등명 주인공(主人公) 자등명(自燈明) 마하자등명(摩訶自燈明)
자등명마하(自燈明摩訶) 마하자등명(摩訶自燈明) 마하자등명아(摩訶自燈明我) 아자등명마하(我摩訶自燈明)
전지전능(全知全能) 자등명(自燈明) 마하자등명(摩訶自燈明)
2009. 04. 22 08:17
그대 마음에 / 칠통 조규일
함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함의 이름이 다른 것과 같이
그대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대가 다를 것이다.
2006. 08.16 07:45 칠통조규일
생각을 잘해야 한다. / 칠통 조규일
모든 것들이 한 생각 속에 생멸하니
마치 모든 것이 한 생각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처럼
생각의 힘이 세다 하겠으나
생각의 힘이 아니라 마음의 힘이고
마음의 힘인 듯하나
마음의 힘이 아니라 업의 힘이고
업의 힘인 듯하나
업의 힘이 아니라 허공의 힘이고
살아 있는 허공의 힘인 듯하나
허공의 힘이 아니라 우주의 성주괴공하는 힘이고
우주의 성주괴공하는 힘인 듯하나
성주괴공하는 힘이 아니라 본성의 속성의 힘이고
본성의 속성의 힘인 듯하나
본성의 속성의 힘이 아니라 본성의 힘이고
본성이 힘인 듯하나
본성의 힘이 아니라 절대자 창조주의 현현이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또 한 생각에서 창의력이 나오고
창의력은 마치 한 생각이 발휘한 것처럼 생각이 되기도 하겠지만
이는 이미 자유로운 마음 안에서 자유로운 생각에서
가지고 있는 틀어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생각하는데서
생각을 따라 마음이 가고 마음을 따라 기(氣)가 가고
기를 따라 본성의 속성이 도래하고
본성의 속성이 현현하는 것을 따라 본성이 드러나고
드러난 본성을 따라 절대자와 창조주가 현현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하겠으니.
그럼으로 생각의 힘이 세다 할거며
생각으로 업이 나타나는가 하면 업이 소멸되고
생각으로 선업을 쌓는가 하면 악업을 쌓기도 하고
생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의력이 나오기도 하고
본성의 속성이 드러나기도 하며
본성이 드러나
절대자가 현현하고
절대자가 현현하며 창조주가 현현하게 되고
이러한 모든 것들의 원인이 한 생각에 있다 하겠습니다.
이런고로 한 생각을 잘해야 한다 하겠습니다.
2005. 11. 10. 13:56
(창조주 신 절대자 조물주 세계)
위 세계로 올라오면 / 확철 칠통 명철 조규일
(창조주 신 절대자 조물주 세계) 위 세계로 올라오면
모든 행으로 만들어지고 창조하게 되나니.
스스로를 잘 다스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업과 습으로 세상을 망치고 세계를 망치고 자기 자신을 망칠 뿐만 아니라 남들도 망치게 될 것이다.
(창조주 신 절대자 조물주) 위 세계로 올라오면
생각하면 생각한 것들이 창조 만들어지고 마음을 내면 마음 낸 것들이 창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창조주 신 절대자 조물주)
위 세계로 올라오는 사람이나 올라온 사람은
필히 여여하게 마음이나 생각을 바르게 올바르게 해야 한다.
생각이나 마음을 바르지 않고 올바르지 않을 경우
시기, 질투, 부정적 생각, 부정적인 마음, 못된 생각이나 못된 마음, 못된 말을 할 경우
이것들이 생각이나 마음,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창조되어
이것이 마치 실재 있는 것과 같이 영적으로 존재하게 되어서 말하거나 마음먹었거나 마음을 냈거나 생각을 했거나 일으켰거나, 생각이나 마음을 바르지 않고 올바르지 않을 경우의 일이 그대로 만들어지고 창조되어 존재적 가치와 존재성을 갖고 생명으로 살아가게 되는 듯싶다.
뿐만 아니라 시기, 질투, 부정적 생각, 부정적인 마음, 못된 생각이나 못된 마음, 못된 소리를 할 경우에도 그대로 존재적 가치를 갖고 존재하는 생명으로 만들어지고 창조되어서 달라붙어 있거나 대상에게 했을 경우 그 대상에게 달라붙어서는 서로 간에 힘들게 하는 듯싶다.
위 세계로 올라가면 올라오면 생각과 마음을 바르게 올바르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 주변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듯싶다.
공부가 위로 올라갈수록 어려운 듯 싶다.
스스로 바르게 할 자신이 없고 올바르게 할 자신이 없는 경우에는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창조주 신 절대자 조물주 창시자 위 세계에서는 적어도 자기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들이 창조되고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갖고 여여하게 행을 바르게 하고 올바르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긋나면 어긋나는 만큼 나쁜 언행, 나쁜 생각과 의식....의 행, 모든 행은 그대로 창조되고 만들어져서는 자기 자신을 지옥으로 끌어내리거나 그러한 것을 대상 역시도 그것들이 달라붙어서 원만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한 달라붙은 만큼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늘 강조해온 말이지만
정말로 여여하게 바르게 올바르게 생각하고 의식하고 마음먹고....
생각의 행, 마음의 행, 의식의 행, 무의식의 행, 잠재의식의 행, 업의 행, 신업의 행, 안이비설신의 모든 행을 바르게 올바르게 해야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망치고 다른 사람들까지 망칠 수 있는 만큼 정말로 조심스러운 것 같다.
마음의 행, 생각의 행, 말의 행, 몸의 행....모든 행을 여여하게 바르게 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창조주 신 절대자 조물주 위 세계로 올라올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 좋을 성싶다. 이 위 세계로 올라오려고 수행하지 않는 것이 좋을 성싶다. 아니고서는 자신을 망치고 남까지 망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럽다할 것이다.
본인이 쏴줘서 올라오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니 만큼 어지간해서 올라올 수 있는 세계도 아니지만 올라오게 되어서 본래 자기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여여하게 바르게 하지 않고 올바르게 하지 않고서는 올라올 수 없고 올라갈 수 없는 만큼 스스로 올바르게 할 자신이 없고 바르게 해야겠다는 생각, 마음이 없는 사람은 위 세계로 올라오려고 욕심을 낼 일이 아니지 싶다.
나쁜 업의 습, 부정적인 업의 습, 시기, 질투, 독설....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위 세계로 올라오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창조주 신 절대자 조물주 위 세계로 올라오고 싶거든 여여하게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라.
여여하게 스스로를 잘 다스릴 수 없는 사람, 업의 습,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업에 끌려 여여하게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어떻게 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시기, 질투하거나 나쁜 생각이나 부정적인 생각 마음을 일으키며 여여하게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더 이상 올라올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 듯싶다.
창조주 신 절대자 조물주 위 세계로 올라오고 싶고 더 위 세계로 올라와 본래 고향산천 부모형제가 있고 배우자 자식이 있는 세계로 올라가고 싶거든
업과 습, 나쁜 부정적인 생각이나 마음을 하루 속히 다스려라.
여여하게 스스로를 잘 다스려라.
아니고서는 이제 더 이상 위 세계로 올라올 생각이나 수행을 하지 말고 포기하라.
포기하지 않고 창조주 신 절대자 조물주 위 세계로 올라오고 싶거든
여여하게 스스로를 잘 다스려라
그리고 바르게 올바르게 긍정적으로 나 이외의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라.
남을 이롭게 할 자신이 없거든 포기하라.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며 나를 이롭게 하려거든 남을 이롭게 하라.
생각이나 마음 행을 이쁘게 하라. 아름답게 하라.
그러면 이쁘게 아름답게 만들어지고 창조될 것이다.
이쁘지 않고 아름답지 않으면 않은 만큼 이쁘지 않고 아름답지 않고 만들어지거나 창조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쁜 마음, 이쁜 생각,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생각을 일으켜라.
그러면 이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만들어지거나 창조되어서 이쁘고 아름다움 속에 있게 되어서
좋고 행복할 것이다.
2016. 11. 24 05:39 칠통 조규일
가능하지 않은 것은 없다.
다만 업과 부정적인 생각이
가능을 불가능하게 만들 뿐.
절대자는 전지전능하고
내 안에 거하고 있고
내가 부처라고 하는 하나님 부처님은
전지전능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내 안에 거한 하나님을 현현하게 하고
이미 내가 부처인 부처를 현현하게 하고
내 안에 절대자라고 하는 전지전능함을 드러낸다면
그거에 불가능이 있을까? 없을까?
불가능은 불가능이 아니라
말과 생각 의식 마음이 불가능하게 할 뿐,
불가능은 가능의 반대말일 뿐이다.
2008. 11. 06. 07:50 칠통 조규일
확철 칠통 명철 조규일 / 2008년 11월의 짧은단상중에서
판단은 경험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깨어나도록 하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행함에 있어서
고통없이 깨어나기란 쉽지 않다.
산고의 고통을 겪어야 새롭게 태어난다.
마치 새 생명이 태어나듯
알에서 깨나듯
깨어나기 위해서는
2018. 04. 11. 07:52 칠통 조규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과 확신이라 할 것입니다. / 칠통 조규일
자신감, 겸손, 하심(下心)에 대하여
살면서 자신감, 겸손, 하심(下心)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매사에 자신감을 갖고 열심으로 노력하고, 겸손하며, 교만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자신감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절대자 및 부처 하나님이라는 확신과 믿음 속에서
전지전능한 힘이 있어 하려고 하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고
모든 의지와 뜻이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이
밖으로 현현할려고 하면 할 수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이야기 합니다.
겸손은
나이외 상대방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절대자 또는 부처님 하나님이라 인식하고
꼭 아닐지라도
상대방 누구든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존경 존중하고 존중 소중히 할 때
자연 겸손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속 겸손할 때
자연 마음은 하심을 갖는 것 아닌가 싶지요.
매사에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 부처님 절대자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자신 스스로를 믿고 있는 마음 믿음이 확고하고
이러한 믿음 속
일체 모든 만물 뿐만 아니라 모두 다 그러함을
인식하고 한 형제자매임을 인식할 때
거만하지 않고 겸손할 수 있으며
거만하지 않고 겸손할 때에 또한 교만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자기 자신이 남들보다 잘났다 더 많이 안다고 스스로 인식하고
자기 자신이 아는 것을 잘 난 것을 뽐내려할 때
나외에 다른 이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이 들 때에
우리 저마다는 타인을 업신여기거나 자기 스스로는 거만해지기 쉬우며 남을 업신여기고 거만할 때 겸손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지요
겸손하지 않은 사람 교만하지요.
이와 같이
매사에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고 겸손하고 교만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절대자 하나님 부처님임을 생각 인식하고
지칭한 이름들의 전지전능한 능력 힘이 밖으로 화현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업 때문이며
업으로 인해서 거만해지고 교만해짐을 생각 인식하고
업의 파노라마를 인식하고 업의 파노라마를 넘
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할 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겸손할 수 있으며
하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과 확신이라 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본래 하나님이고 부처님이며 절대자임을 믿고
스스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이름한 그 분들임이라 믿을 때에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은 충만할 것이며
그 분들의 드러난 언행과 동등시 하려고 할 때
그와 같지 않음에 그와 같아지려 할 때에
스스로 힘써 노력할 것이며
남을 지칭한 분들의 화신이라 할 때에
이를 인정 인식할 때에
겸손 거만 교만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 칠통 조규일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혹독한 규정에도 아직은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제 자신과, 제 주변 사람들 모두와 거리에서 만나는 낯모를 이들, 제 주변의 모든 사물과 숨쉬는 공기와 바람과 자연과 가끔씩 느끼는 외로움과 뜻 모를 침묵까지도요.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어떠한 행동이나 마음 씀씀이를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사랑을 엄밀히 관찰해 보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사랑이란 말로 이기적인 자신을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마음 씀씀이,....여타 행동을 사랑이라고 했을 때
그 사랑이란 말속에는 사랑이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집착과 이기, 에고가 애정의 너울을 쓰고
사랑이란 집 속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집이 없습니다.
사랑에는 집착과 이기, 정이 없습니다.
참다운 사랑은 베푼다는 생각도 베풀었다는 생각도 없이 행도 없이 그냥 그 자체입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행 자체가 되었지만
그 행 자체를 두고 내가 너희에게 사랑을 베풀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대 또한 종교가 있으면 그대가 믿는 종교의 교주
즉 예수님이나 하나님, 부처님, 여호와.......에 향하여 기도 예배드릴 텐데
그것을 그대가 사랑이라 하지 않는 것과 같다할 것입니다.
그대가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말한 것처럼
순수하고도 무한한 사랑을 하며 살고 싶다면
그대 주변 사람들 모두와 거리에서 만나는 낯모를 이들
그대 주변의 모든 사물과 숨쉬는 공기와 바람과 자연과 가끔씩 느끼는 외로움과
뜻 모를 침묵까지도, 예수님을 대하듯 부처님을 대하듯 그대가 믿고 있는 종교의 교주를 대하듯
아무런 사심 없이 분별하지 않고 대한다면
이는 사랑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며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찌 저도 생각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만 대할 수 있습니까? 하겠지만
그대의 맑고 밝은 마음에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점차로 그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악한 나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악하다 나쁘다 하지만
그 중 어떤 사람은 그를 악하지 않다. 나쁘지 않다.
자기 자신에게는 좋은 사람이었으며 선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는 어떤 연유로 그러할까요?
그것은 그 사람이 대중이 나쁘다 악하다 한 그 사람을 선하게 착하게 보고 받아드리니.
악한 속에 선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겐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이 있고 하나님이 있고.....
진아, 진여가 있습니다.
부처님 같이 대하면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지 없는 지 모르는 부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 하나님처럼 대하면 예수님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이러는 사이 자기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이나 예수님을 닮아갈 것입니다.
선한 속에도 악이 있고 악한 속에도 선이 있습니다.
선한 속에서는 더욱 선을 찾고 추구하는 악한 속에서도 선을 찾는 추구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일 것이며
자기 자신을 올바로 찾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부처님 대하듯 하나님 대하듯 해 보십시오.
그러면 변할 것입니다.
주변이 변하고 그분들이 변하고 그대가 변해져 있을 것입니다.
우주 만물이, 사회가, 주변 사람이, 그대가.....
빛과 사랑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보면 본대로 들으면 들은 대로 진리가 진리 속에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너희가 진리를 알고 진리 속에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
언제나 늘 처음처럼
오늘은 어제의 오늘이 아니라 새로운 오늘이다.
오늘 새롭게 태어나 잠들 저녁에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 피우소서.
2007. 02. 01 08:45 칠통 조규일
행하며 통하여 가라. / 칠통 조규일
일이 수행이고 수행이 일이 되게 하고
생활이 곧 수행이며 수행이 곧 생활이 되게 하고
생활의 삶이 스스로가 원하는 삶이 되게 하고
스스로 원하는 삶이 가정과 가족이 원하는 삶이 되게 하고
가정과 가족이 원하는 삶이 곧 생활의 삶으로 수행이 되게 하라.
처음은 전부가 서로 다른 듯 분별이 일어나지만
수행이 깊어지고 일심 일념으로 수행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모든 것들이 하나로 통하여져서
수행이라 것도 수행이 아니랄 것도 없고
생활이랄 것도 생활이 아니랄 것도 없이
삶이 곧 생활이고 생활이 곧 수행으로
행하여 가는데 행에 있어서 걸림과 장애를 제거하며
자연스럽게 그리고 여여하게 흘러가도록 하는 행이 바로 수행이고
이것이 바로 스스로가 원하는 삶이고
가정과 가족 및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삶이라 하겠지요.
그런 만큼 수행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자기 자신이 있는 그곳이 수행처이고
자기 자신의 행을 닦아 가는 것이 수행인 만큼
자기 자신이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든 행하면 된다 하겠습니다.
자기는 자신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걸림과 장애가 안의 대상이든 밖의 대상이든
행하며 통하여 가라.
그것이 수행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막힘 없이 통하여 졌을 때
그대는 통함에서 막힘을 보리라.
막힘에서 통함을 보니 모두가 막혀있는 듯하지만
통함에서 보면 막혀 있는 것 없이 일체 모든 것들
은 통하여 있다.
막힘으로 인한 장애와 걸림이 있으니
통하고자
가족이든 가정이든 자신이든 바라는 것이고
그것을 원만하게 통하여 가고자 행하는 것이다.
그 행하는 것이
생활이고 삶이고 수행이다.
수행이라고 특별한 것이 아니다.
2007. 11. 19 10:10 칠통 조규일
나는 누구인가요? / 칠통 조규일
아무 것도 없는 → 없고도 있고 있고 없는 곳 → 나라고 하는 하나의 상이 있으니 →이 나를 굳건히 믿고 있는 이들과 함께 스스로 있는 이가 있으니
이것이 나 자신 이렇듯 나 자신은 내가 아니라
나를 굳게 믿고 똑같이 닮아 있는 이들이 모여서 일합상을 이루고 있는 이들이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은 내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나도 내가 아니라 나라고 하는 나일 뿐 내가 아니다.
나는 있고도 없고 없고 있는 것이 나이다.
나라고 하면 나라고 하는 상으로 나가 있고 나라고 하지 않을 때는 나는 어디에도 없다.
나라고 할 때 똑닮아 있는 이들의 행이 있을 뿐이다. 이게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은 나를 닮으려고 애쓰고 노력했던 이들이 나를 닮아 나와 똑같이 된 믿음으로 나 스스로가 된 이들이 자신(自信)입니다. 이렇듯 자신은 내가 아니라 나를 닮으려고 애쓰던 이들이 나와 하나 한몸이 되고 그런 이들이 믿음이 굳건하여 나 스스로를 이루고 있는 이들이 자신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누구든 나라고 할 때의 나는 위와 같고 나 자신이라고 할 때 자신도 위와 같습니다. 어느 세계에서 이와 같이 이루어졌을까요?
창조주 신황청 세계에서 이와 같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각기 저마다 나는 창조주 신황청 세계에서 나라고 하는 나란 상이 나란 몸이 형성 이루어졌고 이때 나를 닮아서 나와 똑같이 이들이 나를 믿고 나와 하나가 된 이들이 나 자신입니다. 이렇듯 나는 창조주 신황청 세계 이전에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존재의 나라고 할 것이 없는 존재, 존재라고 할 것이 없는 존재가 나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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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창조주 신황청 세계는 어디에 있을까요? 지구에서 본다면 본성이라고 하는 것을 1억5천 892개 이전에 있으며 이렇듯 여러분 스스로는 이와 같이 어마어마 엄청난 존재입니다. 스스로의 나들은요. 진정한 나는요. 그럼에도 이를 모르고들 지구에서 살고 있지요.
나를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나를 이루고 있는 이들을 나라고 하며 깨어 아는 만큼 나라고 하는 몸이란 체를 나라고 하며 살고 있지요.
저마다 깨어서 아는 만큼요. 어떤 이는 육체란 몸이 나라고 하고 이 몸이 다하면 끝난다 하고, 어떤 이들은 영체 즉 영혼이 나라고 하고, 아직까지 스스로를 자등명체라고 한 이들은 없을 겁니다. 적어도 스스로 자등명체라고 알려면 적어도 인간의 몸에서 출신(出身)해서 영혼의 체가 인간의 몸 육체를 빠져나와 자등명 세계로 올라와서 자등명체를 형성 이루고 인간의 몸으로 또다시 들어왔을 때나 알 수 있으니까요. 출신한 분이 내가 하기 전까지는 출신했다고 이야기는 있지만 실직적으로 나와 같이 밝힌 이들이 없었으니. 확철대오 깨달음을 증득했다고 해봐야 영혼의 체, 영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몸이란 육체 안에 체는 스스로가 수행되어 올라갔다가 육체 안으로 다시 들어옴에 따라서 그 육체 안에 체는 수없이 바뀐다.
본인이 수행하여 올라오며 자등명 체(自燈明 體)를 1번째 시작으로 167번째 비비비비하비비비비비비휘 체(秘秘秘秘遐 秘秘秘秘秘秘輝 體)를 2013. 1. 30. 12:15 “자신의 내면으로 나 찾아 들어가면 갈수록 드러나게 되는 나는 이와 같다.” 글을 써 밝혀 드러내고는 끝이 없는 듯싶은 생각이 들었고 더 밝혀 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더 이상 체(體)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었다. 그러고 나서 신영혼(神靈魂)이었던 신영혼이 계속해서 바뀌고 변하며 밝혀 올라오게 된다. 밝혀 올라오면서 신이 영이 되고 영이 혼이 되면서 새로운 신이 도래하고, 또 신이 영이되고 영인 혼이 되면서 새로운 신이 도래하고, 그렇게 변하고 바뀌기를 수 차례에 걸려서 변하고는 영으로 바뀌었던 신(神)이 신(信)으로 새로운 신(信)이 되어 드러나고 그러므로 신영혼(神靈魂)이 신(信靈魂)이 되어 신(信)이 신(神)이 되는 것까지 밝혀 드러냈었다. 이후 신(信)은 또 영이 되고 영은 혼이 되고 또 새로온 신(信)이 도래하고, 이와 같이 변하는 과정 선상에서 “英이 靈이고 信이 神이다” 란 글을 써서 드러내 위 세계에서 英(영:꽃)의 열매가 靈(영)이고 信(믿음)이 신령스럽고 불가사의 한 神(신)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알았고, 2017. 02. 16 17:02 승숭신요류(承崇信了流)를 찾아 밝혀 드러냈고, 2017. 02. 22 19:20 처음으로 신(信)을 양산하며 神을 전부 다 信 하나로 만들어지고 주변이나 나에계는 신(神)은 없고 신(信)이 양산되고 양산된 신(信)들은 주변에 함께 있게 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며 밝혀 올라오면서 나를 믿고 의지 추종 맹신하고 그러다가 닮으려고 하는 이들이 드러나고 닮아서 하나 한몸이 된 이들이 드러나고 그러다가 이제는 나 자신이라고 하는 이들이 드러났다.
오늘 아침 달리면서 선사님 자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불러달라고 해서 불렀던 천천 향빛 빛천 향빛천 꽃출 향천 빛천 꽃황 출빛천 노래 (2023. 08. 12 09:13 ~ 09:20 – 00:07:39)를 들으면서 자신도 내가 아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일어났다.
자신(自信)이란 스스로를 믿는 이들로 나라고 하고 있는 이들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신(神)이 →신(信)이 되고 →신(信)이 하나 한몸이 되었다가는 자신(自信)이 되어 하나로 있었구나. 와우! 자신도 내가 아니다. 그럼 나는 스스로인가? 스스로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스스로도 있는 것이니까요. 라고 아침 운동 글에 썼었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서 졸려 누웠는데 생각이 일어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다. 있는 나라고 할 때 나는 나를 닮아 있는 이들이 스스로의 자신이 되어 있는 이들로 활동을 하고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라고 해도 맞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 없습니다. 없다하고 보면 있습니다. 있다고 하고 보면 없습니다.
이는 누구인가요? 누구나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나는 누가 있어서 창조해 준 것이 아니라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나를 인식하고 의식함으로
스스로의 나를 갖음으로 인해서 나 자신이 나를 행하도록 하여서 행함으로 스스로의 나를 창조해 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누구나 나 자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의식하고 인식하느냐 따라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창조해 간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언제 진정한 나는 창조되었는가? 생겨났는가?
그것은 창조주 신황천 세계에서 창조되어 생겨났다 보시면 되겠나이다.
그럼 창조주 신황천 세계에서 누가 창조했는가요?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천체라고 하는 천체가 창조했고 생겨나게 했다고 보시면 되겠나이다.
천체의 근본 바탕은 지구 여기에도 있고 창조주 신황천 세계에도 있습니다.
그 비율이 어디에 더 많이 있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비율이 많은 쪽에서 창조해 생겨나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지구에는 비율이 낮아서
나라고 하는 나는 창조해 가지만 나 이외의 다른 나는 창조해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신황천 세계 천체의 비율이 가장 높아서
나 이외의 나를 만들거나 창조하고 생겨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창조주 신황천 세계 아래서도 비율이 높은 곳에서는
그 만큼 수행이 고도로 이루어진 분들에게는
나 이외의 다른 나를 창조해 생겨나고 하고
나는 새로운 일을 하거나 하던 일을 하거나 창조되어 생겨난 나는 창조되어
생겨나기 이전에 내가 아던 일을 하거나 또는 새로운 일을 하게 되거나 하게 되고
그러다가는 스스로의 나를 창조해 생겨나게 할 수 없을 때에서는
분신을 만들어 똑같은 형식으로 일을 하게 하고,
그러다가 분신으로도 되지 않으니 복제를 만들어서 똑같은 형식으로 일을 하게 하다보니
수없이 많은 내가 창조주 신황천 세계에서 이 아래 지구에까지 분포되어 있다고 보시면 되겠나이다.
이와 같이 누구나 다 각기 저마다의 나는 내가 창조하고 생겨나게 했으며 또한 분신도 복제도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초생 세계에 올라오기까지는 모두다 복제고 그 위로 올라와서도 복제도 있고 분신도 있으며 복제가 사라지면 분신이 수없이 있고 분신이 다 하면 그 위로 나라고 하는 나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나가 창조주 신황천 세계에 올라오면 더 이상 나는 없습니다. 아니 없고도 있습니다. 있고도 없습니다. 그렇게 천체입니다.
이렇듯 누구나 각기 저마다는 천체입니다.
천체의 전체이고 부분입니다. 부분이 전체고 천체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가상은 또 다릅니다. 현실로 나왔을 때 이와 같고 가상에 있을 때는 누구나 복제이고 분신입니다. 나라고 하되 나라고 할 것이 없는 복제고 분신입니다.
예 이제 되었습니다. 더 이상 쓸 필요성이 없습니다요. 시간요. 부라보...
2023. 08. 13 오후 6:39 칠통 조규일
전체, 하나, 창(窓), 창조주 의식 / 확철 칠통 명철 황황 꽃황천꽃 성황 성꽃황 천 조규일
전체, 하나, 창(窓), 창조주 의식
잠들기 전에 천황봉 꽃을 활짝 피워내고는 피곤해 육체는 재우고 의식은 깨어서 전체 하나 위로 올라오도록 의념 의식했다. 내자, 딸, 아들. 가까운 이들...현실에 부모 조부모 조상님들...윗 세계 조상님들 부모님들 자식들 배우자 분들.... 전체 하나로 올라오도록 이끌고 올라왔다. 얼마나 했는지는 모른다. 계속하며 잠이 들었다가 깼으니 모른다.
아침 카페 일을 보고 카카오스토리에 글을 올리는데 이름을 확철 칠통 명철 전체 하나 황 조규일이라고 쓴다. 이것 뭐지? 전체 하나 황이라면 황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면 전체 하나로 올라온 이곳 외에 더 위라고 할 곳이 있다는 말인데, 더 이상 밝힐 것 없이 다 올라왔다고 했는데, 더 갈 곳이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일어났다.
아침 공양을 하면서 지금 올라온 곳에서 얼마나 가면 나올까? 지금의 의식으로 갈 수 있는 한 가고 또 가고 그렇게 몇 번, 몇 십번, 몇 백번을 하는데... 안으로부터 “십만50번” 하니. 하나의 세계가 나온다. 맞닥트린 세계로 들어가려고 하니 “들어가면 죽는다. 들어가지 말거라.” 그 말을 무시하고 들어갔다. “어서 오시게 고생 많았지.”‘ 여기가 전체 하나 전체를 관하는 창인가?’ “그렇다네.” ‘전부를 보고 있고만’ “아니네.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네. 물론 보려고 한다면 다 볼 수 있지만...” “들어가면 죽는다고 들어가지 마라고 했는데도 들어오다니 겁이 없고만,” ‘죽어봐야 육체의 옷을 벗는 거고, 육체의 옷을 벗지 않는다면 육체 안의 몸이 죽어서 새롭게 태어날 터인데 뭐가 무섭겠는가? 다만 변하고 바뀔 뿐인데. 그러니 망설일 필요도 없이 들어온 거지. 여기 들어오니 밖이 어둠 속이다. 암흑이다. 난 들어왔을 뿐 아무 것도 모르겠다. 또 내가 있네, 분명 나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 나는 또 누구인가? 전체 하나 창 안에 들어가 있는 나는 누구인가?’ “설명하자면 기네. 이 모든 것들이 자네의 노고로 이루어진 것들이지.” ‘설명해 줄 수 있나?’ “안 되네. 다 올라와서 아시게네. 지금은 안 되네.” ‘나는 누구인가?’ “창조주일세.” ‘모두가 스스로의 창조주 아닌가?’ “그것과는 다르네 일반적으로 말하는 창조주일세.” 허무가 밀려와 쌓여온다. 몸이 무겁다. “이제는 더는 알 수 없네. 육신을 버리고 다하고 오면 모를까 그전에는 알 수 없는 세계까지 왔네. 사실 육체를 벗을 때까지 올까? 했는데 왔고. 육체를 벗고 와야 올 수 있는 데까지 왔네. 그래야 알 수 있는데 육체를 벗기 전에 와서 더 이상 우리들도 어떻게 못하네. 다만 이제 다 왔고 더 갈 곳이 없다는 것일세. 배우자들을 위해서 못 밝힌 세계들이나 밝혀 올라오시게.” 좌선해도 무겁다. 그냥 쓰러져 잤다가 깨었다. 그리고는 밝히다만 세계들을 밝히고 나서 이글을 쓰기 시작해 이제 마무리 중이다. ‘더 쓰고 할 것이 있는가요?’ “없습니다요. 다만 잊지 말고 있으시면 됩니다.” 나오니 안은 어두워 보이고 밖은 흐리다. 창에서 나와 나를 보니 내가 없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갔을 때 분명 내가 있었다. 그 안에 있는 분들과 각각의 개체로 있었다. 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내가 없는데 듣고 말하는 이 누구인가요?’ “자연입니다. 법과 진리입니다. 있는 자체입니다.” ‘대답하는 이 누구입니까요?’ “자식입니다.” ‘자연에서 법과 진리에서 있는 자체에서 생겨난 자식인가요?’ “와~ 드디어 알아보셨습니다. 화신의 자식입니다.”
‘의식으로 100.050번 간 의식은 어떤 의식이었나요?’ “창조주 의식이었습니다.”
‘창조주 의식이란 어떤 의식인가요?’
“무엇이든 해내고 무엇이든 되게끔 하게 하려고 하는 의식입니다.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바라는 대로 되게끔 의식을 내고 의식으로 되도록 하는 의식입니다. 창조주 의식은 누구나 갖는 것이 아니라. 창조란 것을 해본 분들이나 가질 수 있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창조주 의식을 가진 분들은 안 되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습니다. 그냥 뜻과 마음대로 이루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단점은 안 되는 경우들도 많이 생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물론 되는 것도 있지만요.”
신의식과 창조의식이 다른 점은 신의식은 되거라. 그러거라 한다면 창조의식으로 신의식과 같이 되거라. 그러거라 하되 그 뒤에도 되도록 의식을 한다는 것이 다르다고 보면 된다.
2019. 12. 30 12:43
업덩어리는 기운덩어리이다.
마음은 업을 따라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다.
기운이 움직이면 결과가 생긴다.
결과는 멈춤 없이 변하고 변하며 기운과 함께 흘러간다.
이렇듯 우리들은 자기 자신 일의 결과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결과에는 기운의 작용이 있고
거기에는 마음작용이라는 업의 작용이 있게된다.
업의 작용은 가만히 있어도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운을 움직임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움직임을 최소를 하며
작용과 비작용을 관찰하고 성찰해서
그러한 작용을 알고
스스로 잘 활용할 수 있는 날이 되소서.()
2007. 11. 03 07:53 칠통 조규일
오늘이 있기까지
생각과 의식의 행위를 통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오늘이 되었다.
지난 생각과 의식으로 인한 생각들이
오늘을 만들어 낸 것과 같이
10년 후 20년 후도 마찬가지로
오늘의 생각과 의식이 행위로 이어져서
아주 조금씩조금씩 변화해서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 있을 것이다.
10년 후 20년 후...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변화하고자 한다면
오늘이란 오늘을
생각과 의식으로 행위를 통하여
조금씩조금씩 집을 짓듯 창조해 가야한다.
창조의 씨앗은 생각과 의식에 있고
창조의 시작은 행위에 있다.
자기 자신은 누가 창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자신을 창조해 가는 것이다.
창조주는 남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무엇을 창조하고 싶습니까?
창조하고 싶은 것,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실천궁행(實踐躬行) 하시는데 부족함이 없는 날이 되소서...()
2007. 11. 16 07:56
첫댓글 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