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야코 여행3 - 도야코 호수를 구경하며 죠몬인과 야요이 문화를 생각하다!
7월 9일 홋카이도의 삿포로 에서 7시 30분 출발 기차를 타고는 9시 20분에
도야 洞翁(동옹) 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도야코 온천 에 내립니다.
관광안내센터로 들어가 지도를 받고는 동영상 노보리베쓰 온천의
도깨비 를 보고는 비가 그치기에 걸어서 도야코 호수 洞翁湖(동옹호) 로 갑니다.
호수에는 일주 유람선 도 다니고 또 모터보터며 발로 젓는 오리보트도 대여한다지만
오늘은 성수기나 주말도 아닌데다가 이슬비가 내리니 이용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풍랑이 심한 탓인지 모터 보트 를 물에서 뭍으로 끌어올려 놓았는데 작업의 편의를
위한 것인지 완전히 올리지는 않고 나무판에 붙들어 메어 놓은게 인상적입니다.
해변을 거닐며 청동 조각상 들을 보는데 관광 온천 호텔의 뜰에 조성한 등나무와
또 그 옆에 온천 손탕 이라고 해야 하나? “테유(手湯)" 의 거북이
앙증맞은데 그러고 보니 그 뒤에 동굴 온천(風呂) 을 선전하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무료인 손탕은 장수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수탕(手湯) 이라고 적혀있는데 마침
호수 저편에서 들어오는 유람선 이 보여 선착장으로 가니 이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운행하는 모양이라 망설여지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없으니....
비가 조금씩 다시 내리기에 호수를 뒤로 하고 올라오는데.....
또 손탕“테유(手湯)" 를 발견하니 과연 온천 동네라 할만 합니다.
거리에서 예쁜 화단이며 나무에 올려놓은 꽃다발 그리고 온천 호텔 들을
구경하는데 꽃으로 장식한 모습이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가 않네요?
그러다가 어느 온천 호텔 앞에 좀 전에 도야 기차역 에서 본 풍경을 보았으니
바로 9개 국기 가 보이고..... “サミット 開催記念 北海道 洞翁湖” 라!
그렇니까 G8 이라고 불리는 나라로 왼쪽에서 부터 국기를 보자니 일본,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영국, 미국 그리고 그 옆은.... 호주인가? 그럼 G9 라!
2008년 7월 7일 부터 사흘간 저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아홉나라 정상 들이
여기 도야코 호수 에서 만나 "세계를 요리" 했다는 것일러나?
그러니까 저 유람선으로 보건대 호수 가운데에 나카지마(中島) 라는
섬이 있는데 경치도 아름답지만 각국의 정상들을 경호하기에 안성맞춤이라....
불현듯 유람선을 타고 나카지마 로 가서 산을 오르고 싶은 욕심이 이는데....
산책로를 걸으면 에조 사슴 및 야생동물 도 볼수 있다지만 시간이 없네요?
다시 비가 조금씩 내리기로 관광안내센터 로 돌아오니 여전히
동영상 이 돌아가고 있는데... 버스 시간이 있어 잠시 봅니다.
전투에 출전하는 무사들이 보이고 국제스키 마라톤 에 이어 화산이 폭발한
쇼와 신잔 이며 유주산 화구 를 하이킹 하는 코스가 펼쳐집니다.
또 4월 말에서 10월 말 까지는 매일 저녁마다 도야코 불꽃놀이 가 펼쳐지는
것을 감상할수 있다는데..... 아니? 하나비 火び 를 매일 한다니????
그 다음 장면에서 원주민 인 "죠몬인 아이누족" 을 보는데....... 오사카대
고하마 모토쓰구 교수는 1,949년 부터 수만명의 유골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일본인의 원류 를 밝히기 위한 프로젝트인데.... 그 결과 원주민인
죠몬인(아이누족) 과 한반도 도래인 의 비율이 1: 8.6 이라고 밝혔습니다.
BC 3세기에 규슈에서 토착 죠몬 문화 가 사라지고 벼농사와 청동기 로 대표되는
야요이 문화 가 시작되는 것은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대거 이주 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규슈 등지에 30개의 소국들 왜국 이 세워지는데 그중에 규슈 서북부
(후쿠오카?) 에 위치한 왜노국(倭奴國) 은 중국에 사신을 파견합니다.
서기 57년 후한(後漢) 광무제 가 왜노국(倭奴國) 왕에게 금인 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금인이 규수 서북부 지가도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왜인(倭人) 들이 신라나 가야 는 말할 것도 없고...... 백제나 고구려 보다도
먼저 중국에 사신 을 파견해.... 국왕 책봉 을 받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고대에 문화는 오직 선진 한반도에서만 미개한 왜국으로 전해진 것은 아니라는?
왜(倭) 는 본디 순하다는 뜻 인데 왜소하다는 뜻의 왜(矮) 와 음이 같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혼동하고 또 훗날 왜구의 침탈도 있고 해서 작은 왜인으로 굳어집니다.
중국의 사서인 위지(魏志) 동이전 에 보면 AD 238년 중국에 사신을 파견했던
여왕 히미코의 야마대국 邪馬臺國 은 규슈 왜국의 연맹왕 으로 생각 됩니다.
그런데 저 왜인 들은 누구인가요? 일본 토착인인 신석기 죠몬인 같지는 않으니....
한반도에서 청동기와 벼농사 를 가지고 건너온 야요이 문명의 이주민 들입니다.
AD 209년 남해안과 섬 일대의 골포국(骨浦國), 칠포국(柒浦國), 고사포국(古史浦國),
사물국(史勿國), 고자국(古自國), 보라국(保羅國) 등이 김해 가야국을 침범 합니다.
이른바 변한 12국 (훗날 가야 6국) 에 속하지 않은 나라들로 포상팔국 浦上八國
이라고 하는데..... 금관가야 (김해 加羅) 는 신라에 구원병을 요청합니다.
신라 내해 이사금 은 아들 이음 (奈音 내음) 과 태자 우로 (于老) 에게 6부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포상팔국의 장군들을 죽이고는 포로로 잡아간 6,000명 을 돌려주게 하였습니다.
이에 원한을 품은 포상팔국의 골포, 칠포, 고사포 3국 은 3년 후에 다시 신라의 변경인
갈화성(울산) 을 공격하니 나해 이사금이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물리쳐야 했습니다.
마한 54국 중에 위치를 보자면 충남14국, 경기12국, 전북이 11국인데
전라남도 로 비정되는 나라는...... 불과 5개국 정도라???
그럼 마한에 속하지 않는...... 나주 와 고흥 등 전남 남부 지역과 전라도
와 경상도 남해안의 저 포상 8국 이 바로 "왜인" 들이 아닐까요?
저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민족 이니 그들이 규슈에
세운 나라들인 "왜노국과 야마대국이며 웅습" 등은 모두 왜국 이라....
광개토대왕 비문 에도 나오지만 AD 391년 신묘년 부터 왜인 들이 바다를 건너와서는
백제의 후원아래 김해 금관가야 및 함안 아라가야 와 연합해 신라 를 공격합니다.
신라 수도 서라벌이 포위 되고 나라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하자 김씨 내물왕 은
고구려 광개토대왕 에게 스스로를 "노객(노예)" 이라고 낮추며 구원병을 빕니다.
이에 광개토대왕은 서기 400년 후연과 대치하던 중이라 직접 출병하지는 못하고 5만 대군 을
보내 함안과 김해 종발성 을 공격하니 금관가야는 망하고 왜군과 함께 왜국 으로 달아납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서기 532 법흥왕때 구형왕이 항복한 것은 금관가야에 속했던 부산(동래) 의
독로국 이 가야의 이름을 계승 하고는 신라의 부용국 으로 있다가 훗날 망한 것이지요?
왜국으로 도망친 가야인 들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니 야요이 문화 를 대체하는....
고분 문화의 주인공 으로 일본의 천황(일왕)인 스진(숭신) 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홍원탁의 “백제와 대화 일본의 기원”그리고 최인호씨의 소설 제4의 제국 (3국+가야)
및 일본 역사학자 도쿄대 교수인 “에가미 나미오”의 글 등을 종합한 것이니,
일본 초대 천황 진무(신무) 와 10대 천황 스진(숭신) 은 동일 인물 로....
그 사이에 나오는 2 ~ 9대 천황(일왕) 은 연대를 높이기 위한 가공 인물 로 봅니다.
최인호씨 말 처럼 김해 대성동 마지막 고분인 13호 고분 의 주인공이...... 일본 10대
천황인 스진(숭신 崇神) 이라면 그가 생전에 왜국으로 건너가 나라 를 세웠고
그 무리들이 다시 한반도로 건너와 가야와 함께 신라 서라벌을 공격한 것은 아닐까요?
백제는 일본에 문화를 전해주었으니 아직기와 왕인박사가 논어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간게
서기 400년경 이고 노리사치계가 불교를 전해준건 552년 입니다만, 그 보다 훨씬 전인
서기 57년 에 왜노국이 사신을 파견해 한나라에서 왜국왕 금인을 받았고, 238년 에는
야마대왕에 이어 서기 413년 찬이 왜국왕을 제수받으니 한국보다 더 빠르다고 하겠습니다!
고구려 5만 대군에 패망해 왜국으로 쫃겨간 스진(숭신)의 후예 들이 세키나카이 바다를
건너 오사카 동쪽에 야마토 조정 을 연 것은 15대 오진(응신) 천황 으로 보입니다.
일본 천황중에 "진(神 신)" 자 이름이 붙는 사람은 초대 신무, 숭신 그리고 응신 3명입니다.
그런데 고구려군에 패해 쫃겨갔던 왜군은 4년후인 404년 대방(황해도 봉산군) 에 침입하니
그 기세가 얼마나 사나운지 광개토대왕 이 직접 출진하여 물리쳐야할 정도였으니
이는 400년 김해를 점령한 5만 고구려군이 후연의 침입으로 후퇴 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왜군이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와 경기를 거쳤다면 백제군의 길안내 가 있었을 것으로
보는데 이는 마치 서기 207년 포상팔국 이 김해가야 를 공격했을때 신라 구원군으로
실패하자 3년후 8국중 골포등 3개국이 보복으로 신라의 울산 을 습격한 것을 연상케 합니다.
또 이는 훗날인 서기 1377년 고려 우왕때에 왜구 들이 3월 강화를 침범하고 4월에 경상도와
충청도를 유린하더니 6월에는 황해도에 상륙해 수도 개성 을 위협하자 고려는 계엄령 이
선포되고 내륙 한양, 충주, 철원 중에 천도 하자는 논의가 있었던 사건의 전조에 해당합니다.
중국의 송(劉宋)서 이만전(夷蠻傳) 과 남제서및 양서에 왜국의 다섯왕 이 조공을 바쳤기로
책봉했다는데...... 찬(讚)- 진(珍)- 사이(제 濟)- 고오(흥 興)- 부(무 武) 입니다.
413년 찬(응신이나 닌토쿠왕) 이 사지절 도독, 왜, 백제, 신라, 임나, 진한
마한왕, 안동대장군을 칭하므로 중국에서는 처음에는 안동장군 왜국왕 만을 제수합니다.
그후 중국에서는 제(濟) 에게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마한왕" 이자 안동장군
이란 칭호를 제수하였으니.... 백제는 중국과 수교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졌으나
신라는 중국과 수교가 없었으니 왜국왕들이 한반도에 연고권이 있다고 주장 했던 것?
그후 478년 무(유랴쿠왕) 는 진동대장군을 거쳐 정동대장군 을 제수 받는데 당시
고구려 장수왕은 정동장군, 백제 전지왕은 진동장군 의 책봉을 받고 있었지요?
이후 왜국에서 대왕(大王)으로 불리우던 백제는 동성왕때 중국 남제국에 청하여
왕자와 신하에게 주려고 왕의 칭호 5명, 제후 칭호 3명, 태수칭호 7명을 하사받습니다.
오늘 왜인 후손인 일본은 예술에서는 고도의 형식미 를 추구하고 선악보다는 집단의 이해 가
우선시되는 삶을 살며, 보편적 진리보다는 현세적 가치에 충실한 종교, 철학을 하는데
주자학등 유교는 일본에서는 보편적 통치원리라는 핵심을 잃고 실천윤리 로 바뀌었으습니다!
지진과 해일 화산폭발과 잦은 태풍등 자연환경 에 적응하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그건 그렇고.... 화장실에 갔더니 비가 내리는 탓인지 너무 캄캄해 놀랐더니
갑자기 불이 켜지는데..... 절전 을 위해 전기는 나올때 소등해 달라고 적혀있네요?
그러고는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는 다시 언덕을 올라가 산을 넘어 도야역 에
도착하는지라, 잠시 기다려서는 하코다테 로 가기 위해 지하 해저 터널 을
지나 혼슈 최북단에 위치한 아오모리 까지 가는 12시 11분발 기차에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