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월요일)*
▲낙엽 이야기②
◾나목(裸木)이 건네는 지혜
◀낙엽 (김해윤 시, 윤학준 곡)
◼라포엠
◀낙엽 (정삼주 시, 박찬석 곡)
◼정영자(메조 소프라노)
◀낙엽(구르몽 시. 정의송 곡)
◼정의송
◀낙엽 (이적 작사 김동율 작사/작곡)
◼김동률
◀낙엽 (트윈폴리오 번안곡)
(Let it be Me:내 곁에 있어 줘요))
◼손태진
◀시간과 낙엽(이찬혁 작사/작곡)
◼이수현
◀낙엽은 지는데
(김양호 시 임석호 곡)
◼최백호
◉늦가을비가 촉촉히 내리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비가 내리는데도
아침기온이 20도
가까이에 있습니다.
유난히 따뜻한 11월의
날씨가 벌써 떠났어야 할
꽃들을 붙잡아 놓고 있습니다.
상강(霜降)이 지난 지
열흘 이상이 됐는데도
한련화, 메리골드, 녹차 꽃,
새이지, 바늘꽃에 다알리아꽃까지
아직 늠름한 모습입니다.
여기에 봄꽃 개나리와
영산홍까지 살짝 꽃잎을 열고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어제부터 오가던 늦가을 비가
오늘쯤 멎으면 꽃들은
이젠 정말 떠나야 합니다.
겨울이 들어선다는
모레 입동(立冬)에 때맞춰
영하로 떨어지는 아침 기온에
더 이상 견뎌내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서 가을 마무리를
국화에 맡겨두고
곧 떠날 것 같습니다.
◉단풍 진 나뭇잎들도
서둘러 떠나고 있습니다.
비와 바람이 떠날 것을
재촉하니 더 이상
머물러 있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을비와 낙엽비가
친구 해서 떨어집니다.
이럴 때 추풍낙엽
(秋風落葉)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밀려서 무너지거나 패할 때
이 말이 등장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추풍낙엽은
엄밀히 따져보면 낙엽을
이야기하는 말은 아닙니다.
낙엽에 빗대어 사람의 일을
얘기할 때 주로 쓰입니다.
그런데 낙엽은 애초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나뭇잎이 아닙니다.
떨켜를 만들어 두고
언제라도 떨어질 준비가
돼 있는 나뭇잎입니다.
그래서 편하게 떨어지도록
도와주는 비와 바람이 오히려
고마울 수도 있습니다.
◉집안에서 빤히 내다보이는
단풍나무와 자작나무의 잎이
거의 다 떨어지고
가지가 앙상해졌습니다.
주변 산들의 나무들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내리는 비에, 바람에,
두서없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무는 잎이 날 때
꼭대기에서 먼저 생기고
아래로 잎이 퍼져나갑니다.
옆에서 보면 바깥쪽에서
잎이 먼저 나고 안쪽으로
잎이 퍼져나갑니다.
그런데 떨어질 때 보면
그 반대입니다.
◉아래쪽의 잎이
먼저 떨어지고
안쪽의 잎이 먼저 떨어집니다.
꼭대기의 잎과 바깥쪽의 잎은
오래 견디다 나중에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늦게 난 잎이
먼저 떨어지고
일찍 난 잎이 늦게 떨어집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지만
그 마지막 잎새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람이 그려 넣은 잎새라
조금은 다르기는 합니다.
늦게 난 잎은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물의 성장 호르몬의
분비가 끝나는 대로
낙엽이 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모든 나무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대체로 그런 패턴을
밟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노래 속에 등장하는
낙엽을 만나보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팬텀싱어 시즌 3 우승팀인
라포엠이 나뭇잎이 지기 시작한
지난달 말에 가곡 앨범
‘시, 詩, Poem’을 내놓았습니다.
여덟 달 만에 내놓은 새 앨범입니다.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
바로 ‘낙엽’(落葉)입니다.
시인 김해윤의 시에
‘마중’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 윤학준이 곡을 붙였습니다.
◉낙엽을 통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노랫말이 인상적입니다.
낙엽으로부터 사랑을 읽고
‘낙엽처럼 낙엽처럼만
살아있으니 사랑하고 가게’라고
노래합니다.
떨어져 뒹구는 낙엽에서
사랑을 읽어 낸 시인의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누구든지 밟고 가도
누구든지 가져다 태워도
상관하지 않는 낙엽입니다.
◉우리 삶을 낙엽에 빗댄
먹먹한 노랫말과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하모니가 어우러져
웅장하고 애절한 분위기의
낙엽 노래를 만들어 냈습니다.
나오자마자 주요 음원차트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반응이 좋습니다.
낙엽이 주는 서정성과 여운을
4중창 가곡으로 느껴봅니다.
‘다 버리고 갈거나
다 묻고 갈거나’
https://youtu.be/TEO0TnyaWYY?si=m_Jfd5WQKEJwJwvB
◉한 갑자, 60년 이전에 만들어진
가곡 ‘낙엽’을 불러옵니다.
가곡 ‘낙엽’은 작곡가 박찬석이
지금 서울교대의 전신인
서울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할 때 만든 곡입니다.
서울사범대학이 서울교대로
이름을 바꾼 것이 1962년이니
60년이 넘었습니다.
당시 박교수가 무용음악으로
만든 곡입니다.
학생들이 곡이 너무 좋으니
가곡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해
노랫말을 붙여 가곡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노랫말은 당시 사범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학생 시인
정삼주의 시에서 가져왔습니다.
역시 낙엽에서 그리움과
사랑을 읽은 가곡 ‘낙엽’을
중앙대 음대학장을 지낸
메조 소프라노 정영자의
노래로 들어봅니다.
https://youtu.be/0_uZSPNj2VI?si=NBtW0xVVP-BPZrki
◉늦가을 낙엽이 질 때
소환되는 노래로
지난주 이브 몽땅이 부른
‘고엽’을 들었습니다.
이때쯤 소환되는 구르몽의 시
또한 같은 제목의 ‘고엽’,
‘Le Feuilles Mortes’입니다.
국내에서 샹송의 노래 제목은
‘고엽’이라고 달면서
구르몽의 시는 ‘낙엽’이라고
달고 있습니다.
시의 분위기로는 아무래도
‘죽은 잎’보다는 ‘떨어진 잎’이
훨씬 더 잘 어울리기는 합니다.
◉구르몽이 19세기 후반에 쓴
이 시는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해진 시가 아닌데도
유독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늦가을이면 낭송시로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작곡가이자 가수인 정의송이
10년 전 4집 앨범을 내면서
구르몽의 시에 곡을 붙여
타이틀 노래로 내세웠습니다.
낭송시와 다른 분위기로
가을의 정서를 살린 노래를
정의송의 감성 짙은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https://youtu.be/Aa-Z096otkI?si=caAafwkJTTmVf9RI
◉김동률 ‘낙엽’은
버클리 음대 유학 시절에 나온
정규 3집 앨범 ‘귀향’에
담겨 있습니다.
그 앨범의 거의 모든 곡을
김동률이 작사 작곡했지만
이 노래의 작사는 이적과
공동으로 했습니다.
떠난 보낸 여인에 대한
공허한 마음을
낙엽에 빗대어 노래했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난 뒤
새잎이 다시 돋아나도
어찌 소중했던 그대와 같겠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랑을
할 수 없게 됐다고 한숨짓습니다.
◉김동률은 지난달 7일부터
여섯 차례 열린 2023 콘서트
‘Melody’를 성황리에
마무리했습니다.
4년 만에 열린 올해 콘서트
여섯 차례 동안
6만 석에 이르는 자리를
모두 채운 채 팬들과 호흡을
함께했습니다.
여기서는 ‘낙엽’를 듣기 위해
2004년 콘서트 ‘초대’(招待)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동률의 절친들인
정재일이 기타를 맡고
하림이 아코디언을 맡아
김동률이 애절하게 부르는
‘낙엽’에 호흡을 맞췄습니다.
https://youtu.be/vhpxhUVEBt0?si=GIDzTZ1ZxTAHJOOB
◉1968년 송창식과 윤형주가
트윈폴리오를 결성한 뒤
‘추억의 히트송 앨범’을 냅니다.
그 속에 팝송 ‘Let it be Me’
(내 곁에 있어줘요.)의 번안곡
‘낙엽’이 담깁니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트윈폴리오의
데뷔곡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낙엽’이란 제목에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가사를 담아 두 사람의
화음으로 이뤄낸 노래는
아름다운 가을 노래가 됐습니다.
◉‘Let it be Me’는 1955년
프랑스 가수 길버트 베코드
(Gilbert Beccoaud)란 가수가
부른 노래를 1960년대
미국의 The Everly Brothers가
‘Let it be Me’란 제목을 달고
리메이크하면서 널리 알려진
팝송이 됐습니다.
송창식과 윤형주가 부른
번안곡 ‘낙엽’의 노랫말은
작사가 홍현걸이 원래 노래
분위기에 잘 맞게 은유적으로
잘 다듬었습니다.
특히 뒷부분에 팝송 원곡의
가사를 그대로 불렀지만
‘낙엽’ 이미지의 노래와
잘 맞아떨어져 상당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베이스바리톤 성악가이자
‘불타는 트롯맨’의 우승자
손태진이 커버한 ‘낙엽’입니다.
원곡의 분위기를 잘 살려
부드럽고 편안하게 흘러가는
‘낙엽’입니다.
https://youtu.be/7TSpe9ZMmy4?si=zTqlnO5Do3cBuyMq
◉젊은 감각이 불러내는
낙엽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낙엽을 통해서 기억 속의
추억을 떠올라는 노래
‘시간과 낙엽’입니다.
‘악동뮤지션’이란 이름으로
2012년 K-pop 스타 시즌 2에서
우승했던 당시 10대 남매입니다.
지금은 악뮤(AKMU)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4년 19살의 오빠 이찬혁이
만들어 동생 이수현과 함께
불렀던 노래가
‘시간과 낙엽’입니다.
◉‘맨발로 기억을 거닐다
떨어지는 낙엽에
그간 잊지 못한 사람들을 보낸다.
맨발로 기억을 거닐다
노란 은행나무에
숨은 나의 옛날 추억을 불러 본다’
열아홉 살에 이 같은
감성을 불러와 노래를 만들어 낸
이찬혁의 감각이 놀랍습니다.
비긴어게인에서 동생
이수현이 예쁘게 부르는
노래로 만나봅니다.
https://youtu.be/qsy-zJXLchk?si=DVFJvPtSZvxtk0a1
◉모두에게 익숙한 노래
‘낙엽은 지는데’로 마무리합니다.
백호빈, 조영남, 최진희 등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은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는
가을 남자 최백호의
버전으로 듣습니다.
https://youtu.be/_hRzxfeYquM?si=PtrtQAinR1YXS-7B
◉낙엽을 떨군 가을 나무는
점차 나목(裸木)이 돼 갑니다.
할 일을 다 마친 나무처럼
휭하니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 살펴보면
아직 건넬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우선 잎이 떨어진 자리를
살펴보면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사람도 상처가 생기면
딱지가 앉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무도
코르크를 만들어
상처 부위를 덮습니다.
그래야 바깥으로부터 오는
감염의 위험을 막습니다.
이 것을 엽흔(葉痕)이라고 부릅니다.
◉엽흔의 모양은 다양합니다.
초승달 같은 모양도 있고
원형, 삼각형 등 여러 가지입니다.
그 위쪽을 보면
또 하나의 생명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겨울눈입니다.
이 겨울눈은 그 속에
잎눈과 꽃눈의 형태로
생명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캡슐’입니다.
이 겨울눈은 앞으로 올
혹독한 겨울 추위와 건조함을
견뎌내고 병충해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나뭇잎은 떨군
나무들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앙상한 몸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그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도
앙상한 나무와 친해지면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꽤 있습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