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 ‘망각에 부치는 노래’. 서울시립미술관 컬렉션
리더의 혼란스러운 연출
회사원이면서도 연출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뮤지컬 공연을 대하면서였습니다. 1996년에 내한 공연한 『레 미제라블』을 보면서 감동이 컸는데, 무대 연출의 힘에 감탄했습니다. 한 인물(여공 팡틴)의 인생 역정을 한 무대 위에서 단 몇 분 사이에 나타내 보인 일, 한정된 공간 안에서 시민군과 정부군의 전투 장면을 실감 나게 펼친 것이 그 예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형사 자베르가 다리 위에서 물로 뛰어드는(자살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휑한 무대 위에 장치라고는 폭 2미터도 되지 않는 다리 난간의 일부만 있었습니다. 배우가 그 난간을 넘어 뛰어내리는 동작을 할 때 난간이 빠르게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자베르가 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같은 해에 브로드웨이에서 『미스 사이공』을 보았습니다. 부두의 철망 문을 사이에 두고 탈출하려는 베트남인들과 막으려는 미군들이 밀고 당기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무대 안쪽에서 베트남인들이 관중석을 향해 문을 열고 들어서려 했습니다. 고조되는 음악과 더불어 어느 순간 베트남인들과 미군의 위치가 뒤바뀌었습니다. 탈출하려는 무리가 관중석에서 무대 안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관객이 베트남인들과 한 무리인 양 가슴에서 격동을 느꼈습니다.
연출의 힘을 느끼다가 방송 드라마를 보면서 비판적 안목이 생기기도 합니다. 슬픔에 싸인 등장인물이 혼자서 독주(毒酒)를 병째로 들이켜는 장면을 여러 드라마에서 자주 보니 불편합니다. 지나치게 과장된 모습은 너무 쉬운 연출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 일에서도 연출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일이 생겼습니다.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조직에는 일곱 개 요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중 한 요소는 스타일입니다. 근무하던 회사에서 행동양식이라고 번역해 보았는데 딱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여섯 요소와 달리 이 스타일은 경영자의 그것을 가리킵니다. 경영자의 말, 행동, 관심, 시간 배분 등에 관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영자의 언행은 조직원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연출이 필요합니다. 허위나 위선의 언행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경영자의 의도를 조직원들에게 정확하게 이해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지 못하는 경영자를 보았습니다. 이런 식이지요. 사장이 회사의 공식 스피치에서 품질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가 한 해의 경영 실적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품질 항목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원가를 낮추어 이익을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직원들은 사장의 메시지에 대해 혼란을 느낍니다. 그런가 하면 높은 목표를 제시하며 우량회사를 만들자고 전 사원들에게 호소하던 경영자가 사원 처우라는 대목에서는 명확한 생각을 말하지 않아서 사원들에게 실망을 안기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경영혁신의 대가인 톰 피터스는 1985년에 펴낸 『A Passion for Excellence(우량성을 향한 열정)』에서 문제에 대응하는 경영자의 행동을 소개합니다. 그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미국의 퍼듀 치킨은 닭고기를 파는 회사입니다. 창업자이자 CEO인 프랭크 퍼듀는 팔려 나가는 닭고기의 날개에 평균 여덟 개의 잔털이 남아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잔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잉의 대형 항공기에 장착하는 제트 터빈을 도입했습니다. 그 결과 여덟 개의 잔털은 평균 두 개로 줄었습니다. 산술적으로는 혁신입니다. 그러나 그는 남아 있는 두 개의 잔털도 어떻게든 없애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행동은 연출도 아니고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는 행동으로 표출한 것입니다. 이런 회사 제품의 품질이 어떠할지는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후략>
[옮겨온 글] / 출처; 2020년 12월 21일 (월)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홍승철(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 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 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아시타비(我是他非)
해마다 이맘때면 대학교수들이 그해의 세태를 반영한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교수단체들이 교수들을 대변하기 위해 1992년 창간한 ‘교수신문’ 주관으로 2001년부터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고 있는데, 주로 유교나 불교 경전 등에서 발췌한 단어를 선정해 왔다. 교수신문은 20일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발표했다.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뜻으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시쳇말을 한자어로 옮겨 새로 만든 말이다. 교수신문이 신조어를 사자성어로 선정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여야, 진보와 보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는 물론 코로나19를 놓고도 도처에서 내로남불이 불거졌다는 뜻에서 아시타비를 뽑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아시타비가 내로남불의 고급 버전이라는 설명도 나오는데, 여기엔 한문을 우러르는 사대주의가 녹아있다. 언어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일 뿐 우열을 갖지 않는다. 한자는 마치 심오한 철학이 담긴 것처럼 인식되곤 하지만 실은 사물의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로 가장 원시적인 글자라 할 수 있다. 굳이 등급을 매기자면 순우리말과 영어, 한자를 조합한 내로남불이 훨씬 고급스런 사자성어다. 사자성어는 글자 네 개로 하나의 단어를 이룬다는 뜻이므로 반드시 한문일 필요는 없다. 아시타비 대신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뜻의 영어 문장 ‘I am Right, You are Wrong’의 이니셜을 따서 ‘IRYW’라고 해도 훌륭한 사자성어가 될 수 있다.
연말마다 그해의 한자를 뽑는 것은 다른 한자 문화권에서도 보인다. 일본은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중국은 국가언어자원관측연구센터가, 대만은 타이베이시 문화국에서 선정한다. 한자가 국어인 중국과 대만은 정부 기관에서, 일본은 한자 관련 기관에서 주관하는 셈이다. 한국처럼 교수 사회 전체가 나서 한자를 선정하는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아직도 한국의 지식인 사회 저변에 중화사상이 스며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교수들이 매년 사자성어로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발상에도 어찌 보면 전근대성이 묻어 있다. 학자는 불철주야 학문에만 매진하면 될 뿐 사회를 가르치려 들면 안 된다. 미국이나 영국은 출판사에서 ‘올해의 단어’를 선정한다. 조선왕조는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학자가 정치를 좌지우지한 나라였다. 그 종말은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대로다. 그 이상한 DNA가 인터넷이 날아다니는 지금까지도 살아 있는 것 같다. ‘폴리페서’(정치인+교수)라는 단어는 너무 협소해서 이 광범위한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너나잘해’, 아시타비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순우리말 사자성어다.
[옮겨온 글] / 출처; 서울신문 / 김상연(서울신문 논설위원) / 2020-12-21 00:50
생설미
[문화] 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동짓날에 팥죽 생각이 나는 이들은 팥죽의 맛을 아는 이들일 것이다. 팥죽을 먹을 때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면서 무언가를 찾는다면 팥죽을 먹을 줄 아는 이들일 것이다. 죽이 된 팥알이나 조금씩 남아 있는 팥 껍질의 맛도 즐기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새하얀 알을 찾는 것이다. 새알심, 말 그대로 찹쌀이나 수수의 가루를 내어 새알처럼 둥그스름하게 빚어 넣은 심이다.
‘심’은 한자로는 ‘心(마음 심)’이라 쓰는데 사전을 보면 죽에 곡식 가루를 잘게 뭉쳐 넣은 덩어리로 맨 앞에 풀이돼 있다. 팥죽 말고 다른 죽에서는 본 기억이 별로 없으니 이런 뜻이었나 의아하기도 하다. 이보다는 나무줄기나 뿌리에 있는 것, 혹은 옷을 만들 때 넣는 것, 연필이나 초에 넣는 것 등을 가리키는 말로 더 익숙하다. 죽 전문점도 생겼다지만 죽을 먹는 일이 드물다 보니 본래의 용법으로는 거의 안 쓰인다.
새알심은 방언을 뒤져보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새알 수제비’나 이와 비슷한 유형은 새알 모양으로 손으로 빚어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옹심이’ 유형은 감자 가루를 둥글게 빚어 끓여낸 음식을 본 적이 있다면 대충 감이 잡힌다. ‘오구랭이’나 ‘도구랭이’는 아무래도 동글동글하게 빚어내는 모양에 착안해 만들어진 이름일 것이다. 새알심도 그렇지만 방언의 다른 이름도 귀엽고 입에 착착 감긴다.
그런데 경기도 지역에서 쓰이는 ‘생설미’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생뚱맞다. ‘새알심’과 비슷하지만, 통상적인 말소리의 변화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방언에는 이처럼 기원이나 의미를 따지기 어려운 말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마저도 점점 사라져 가는데 방법이 없다. 박제해서 박물관에 보관할 수도 없고 그 말을 쓰는 이들을 민속촌에 가둘 수도 없다. 결국은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밖에 없다. 하긴 요즘에는 새알심보다 밀크티에 들어가는 펄이 더 익숙하니 심의 뜻을 펄로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옮겨온 글] / 출처; 문화일보 / 한성우(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 2020년 12월 18일(金)
동지, 밤이 가장 긴 때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오늘(12월 21일)은 연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winter solstice)일이며 동지 절기의 첫 날이다. 황도 상의 태양의 위치로 말하면, 북반구에서 동지는 하지 때 북회귀선에 이르렀던 태양이 반년 동안 계속 남하하여 갈 수 있는 황도 상의 가장 남쪽인 남회귀선(南回歸線)까지 내려간 때다. 동지 때는 지구의 자전축이 태양을 등지고 있어서 지구의 북반구가 태양에서 가장 멀어진 때이기도 하다.
동짓날 해는 연중 가장 남동쪽에서 떠서 가장 남서쪽으로 지며 이날 해의 남중고도가 연중 가장 낮다. 이날 서울에서의 남중고도는 약 29도로 약 76도인 하지 때보다 무려 47도나 더 낮다. 이는 그만큼 햇빛이 정남향의 창으로 하루 종일 방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난방시설이 부족했던 옛적에 우리 선조들이 정남향 집을 짓고 남쪽으로 방문이나 큰 창을 낸 이유이기도 하다.
동지가 있는 달을 동짓달(음력 11월・양력 12월)이라고 부르는데 황진이의 저 유명한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라는 시조에서 보듯, 동짓날을 가지고 있는 동짓달이 연중 밤이 가장 긴 때다. 동짓날은 해 뜨는 시각이 7시 43분, 해 지는 시각이 17시 18분으로 밤이 낮보다 4시간이 50분이나 더 길다. 하지만 동짓날부터 해는 다시 조금씩 북상하여 하짓날에 가장 북쪽까지 온다. 그래서 “동지가 지나면 해가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동치미와 곁들어 먹고, 집 곳곳에 뿌리거나 한 그릇씩 떠놓고 이웃 간에 나누는 풍습은, 귀신과 액운을 쫓는다는 토속 신앙에서 비롯됐다. / 이효성 주필
이처럼 동지는 북반구에서 볼 때 태양이 가장 멀어졌다 다시 점점 가까워지는 천문학적 전환의 시점으로 역법(曆法)의 기산점(起算點)이다. 그래서 절기 가운데 동지의 중요성이 더 크고, 고대에는 24절기 중 동지를 가장 큰 명절로 즐겼으며, 동지는 직접적인 풍습도 가장 많은 절기였다. 동짓날부터 낮 길이가 다시 길어지므로 옛 사람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축하하고, 중국의 주(周) 나라에서는 동지를 설날로 삼았다. 그러나 설날이 동지 후 둘째 달(오늘날 음력 정월) 초하루로 정착되면서 대신 동지는 ‘아세(亞歲・제2의 설)’가 되었고, ‘작은설’, ‘아찬설’, ‘아치설’, ‘까치설’ 등으로 불려왔다.
동지는 생명체에게 가장 소중한 햇볕을 주는 태양이 복원되는 시점이지만 대지와 대기가 차져서 이때부터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무렵에 흔히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고 평균 기온이 영도 이하로 내려간다. 옛적에는 이러한 때에 딸기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었기에 ‘동지 때 개딸기’란 속담도 있는데 이는 철이 지나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을 바란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영국 시인 셸리(P. B. Shelley)는 ‘겨울이 오면, 봄이 멀 수 있으랴’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때부터 춥고 지루한 엄동설한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짓날에 절식으로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넣은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는데 시원한 동치미와 동태국을 곁들이기도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집 곳곳에 뿌리거나 방, 마루, 광, 헛간, 우물, 장독대 등에 한 그릇씩 떠놓고 가족과 이웃 간에 나누어 먹는 풍습은 귀신과 액운을 쫓는다는 토속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팥죽은 매우 상징적인 음식이다. 검붉은 색의 팥죽은 밤을 그리고 하얀색의 새알심은 해를 상징하는데 새알심을 하나 먹는 것은 새로운 해를 맞는 것이기도 하고 한 살을 더 먹는 것이기도 함을 상징한다.
겨울의 제철 생선으로는 한류성 회유어족인 명태와 대구를 꼽을 수 있다. 과거 동지 전후 특히 동짓달 보름께에 북쪽으로부터 함경도 앞바다로 몰려드는 명태의 떼를 ‘동지받이’라고 불렀는데 볼이 붉고 등이 넓으며 알배기가 많았다고 한다. 대구는 명태와 함께 대구과에 속하기 때문에 명태와 비슷한 모양이나 훨씬 더 크고 통통하다. 대구도 동지를 전후로 알을 낳기 위해 북쪽에서 남해로 회유해 오는데 이 무렵부터 거제도와 통영 앞바다에서 많이 잡힌다.
[옮겨온 글] / 출처; 아시아투데이 / 이효성(아시아투데이 주필) / 2020. 12. 21. 04:00
이름만 바꿔 재배치한 美 제1기병사단과 韓 수도사단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이름은 가장 기초적인 구분 수단이다. 설령 이름이 같더라도 동일한 인격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이름은 특정인의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는 일종의 브랜드다. 그래서 살아온 삶에 따라 이름으로 가치가 바뀐다. 이순신처럼 존경의 상징일 수도 있지만, 이완용처럼 치욕의 대명사가 될 수도 있다.
반면 여기서 더 나가 이름 때문에 삶이 결정된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일종의 운명론인데, 우리나라에 특히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이름을 지을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외부에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작명을 의뢰하는 경우도 흔하다. 과거에는 너무 귀하게 여겨서 타인이 함부로 언급하지 않도록 호(號), 휘(諱), 자(字) 등이 별도로 존재했을 정도다.
기업에도 이름은 중요하다. 일단 자신들의 가치와 소비자에게 어필하려는 것을 함축적으로 담아야 한다. 당연히 작명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효과가 좋지 않거나 업종 자체가 완전히 바뀔 때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이럴 때는 기존에 펼치던 노력과 비용이 완전히 매몰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한다.
이처럼 한 번 정해진 이름을 바꾸려면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인명의 경우는 소송을 통해야 가능할 만큼 절차마저 복잡하다. 기업명은 기존에 존재하던 다른 기업명과 중복되거나 유사하지 않다면 바꾸는 데 크게 제약이 없는 편이다. 그래도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거나 LG, SK, CJ처럼 예전 이름과 최대한 연관되도록 신경 쓴다.
기동 훈련 중인 수도사단 소속 K-21 장갑차. 1973년 수도사단은 베트남에서 귀환한 후 제32사단 주둔지에 새롭게 터를 잡았다. 하지만 전통 있는 부대의 이름과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실제로는 제32사단을 수도사단으로 바꾼 것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자면 굳이 이름에 연연할 필요가 없지만, 단지 전통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지키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이름을 사수하기 위해 쓰지 않아도 될 비용과 노력을 굳이 낭비하기도 한다. 이처럼 합리적이지 못한 모습까지 드러난다는 것은 그만큼 이름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런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군이다. 군의 활동 단위인 부대는 필요에 따라 창설, 해체가 이뤄진다. 특히 전시라면 수시로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가변적인 조직임에도 부대의 이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경이로울 정도다. 어쩌면 그 정도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1965년 한국에 주둔 중이던 미 제1기병사단이 본토로 철수하고 대신 미국에 배치돼 있던 미 제2사단이 한국으로 이동했다. 당시 두 부대의 규모나 무장 수준이 그다지 차이가 없었으므로 그냥 맞교대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제1기병사단은 미국에 도착한 지 석 달 만에 다시 태평양을 건너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름’에 담긴 가치
이 때문에 상식적으로 보자면 복잡하게 그럴 필요 없이 제2사단을 베트남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될 것이다. 아무리 돈 많은 미군이라도 사단급 부대를 재배치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부대를 전개했다. 이는 부대의 이름을 지키려는 미군의 유별난 고집 때문에 벌어진 일종의 착시다.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리를 듣는 미 제1기병사단의 전통을 엿볼 수 있는 행사 장면. 비록 서류상 맞교환이었지만, 부대의 전통과 이름을 지킨 덕분에 3개월 만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베트남으로 이동 전개하는 희한한 기록을 남겼다. 사진 위키미디어
1963년 미군은 기존 사단 중 하나를 신속 기동 부대로 바꾸기로 했다. 어느 사단을 개편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기병대의 전통을 승계한 제1기병사단을 개편하는 것이 뭔가 이치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당시 해당 부대는 한국에 주둔 중이라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철군시키고 대신 다른 부대를 보내는 것은 불합리했다.
이에 본토의 제2사단을 제1기병사단으로, 한국에 주둔한 제1기병사단을 제2사단으로 이름만 바꾸기로 했다. 즉 병력, 장비, 시설 같은 하드웨어는 그대로 두고 간판, 역사, 전통 같은 소프트웨어만 교환한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한 행정 비용 등이 발생했지만, 어쨌든 제1기병사단을 본토로 이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국군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 1973년 베트남에서 철군한 수도사단은 제32사단 주둔지에 자리 잡았다. 대신 제32사단은 국군의 월남 파병 이전에 주둔했던 충남 연기로 이동했고, 그곳에 있던 제51사단은 경기도 남부로 다시 전개했다. 이처럼 연쇄적으로 부대 이동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나, 사실 부대의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다 보니 서류상으로 그렇게 바뀐 것뿐이었다.
수도사단은 이미 병력과 장비가 감축되어 귀국 당시에 실체가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워낙 역사적 위상이 큰 부대라서 제32사단을 수도사단으로 바꾸고 대신 제51사단을 제32사단으로, 제99여단을 제51사단으로 변경한 것이었다.
바꾸기도 힘들지만 희한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억지로 사수하려고 하는 것이 군부대의 이름이다. 그 정도로 중요한 가치이자 존재다.
[옮겨온 글] / 출처; 이코노미 조선 376호 / 남도현(조선일보 군사 칼럼니스트) / 2020년 12월 14일
겨울에도 미끄러지지 않는 타이어의 과학적 원리
[우리가 몰랐던 과학 이야기]
타이어(사진)는 자동차의 승차감과 주행의 안정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품 중 하나인데요. 특히 브레이크를 밟을 때 타이어의 접지력은 제동 성능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접지력은 타이어와 도로 노면의 밀착성을 뜻합니다. 겨울을 맞아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린 도로에서는 미끄러지기 쉬운 탓에 타이어는 더욱 중요하게 됩니다.
오늘은 겨울용 타이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는데요. 구조와 소재에 따라 타이어 기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접지력을 높이는 트레드 기술
타이어에서 노면과 접촉하는 ‘트레드’(사진)는 음각으로 새겨진 선들이 다양한 형태의 패턴을 띄고 있는데요. 이는 디자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접지력 및 차종에 따른 기능 등이 고려된 기술적인 결과물입니다.
세로로 굵게 새겨진 선들은 젖은 도로 위를 달릴 때 물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하고, 가로로 새겨진 얇은 선들은 자동차의 접지력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타이어의 기능은 트레드에 선들을 어떻게 새겨 넣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겨울에 적합한 트레드 패턴
그렇다면 눈이 내려 도로가 얼어 있거나 젖어 있는 일이 잦은 겨울에는 어떤 패턴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까요?
겨울철 차가 주행할 때 타이어가 눈을 누르면서 마찰력으로 수분이 발생하는데, 이 수분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면 미끄러지게 됩니다.
따라서 겨울용 타이어에는 세로로 굵게 새겨진 선들이 여름용보다 더 넓고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가로로 새겨진 얇은 선들은 더욱 촘촘히 새겨져 접지력을 더욱 높입니다.
만약 트레드를 확인하고 홈 깊이가 50% 이하로 마모되어 있다면 반드시 새로운 타이어로 교체해야 합니다.
◆ 겨울용 타이어에 들어가는 실리카
타이어(사진)는 다 고무로 되어 있다고 여길 텐데요. 하지만 타이어는 고무뿐만 아니라 철과 섬유 등으로 이뤄진 타이어 코드, 그리고 카본 블랙(흑색의 미소한 탄소 분말), 실리카, 프로세스 오일(배합 고무의 작업공정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첨가하는 광유), 노화 방지제, 가류제(보다 탄성이 있는 질긴 성질을 갖게 하기 위해 첨가), 첨가제 등 다양한 화학소재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 소재는 하나하나 타이어의 내구성과 안전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겨울용 타이어는 일반 제품보다 실리카 함량이 높은데요. 모래에서 추출한 실리카는 말랑말랑한 성질이 있어 추운 겨울 온도가 낮아져도 타이어가 유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어 접지력을 유지하게 해줍니다. 또한 실리카는 친수성 소재로, 젖어 있을 때 수막현상을 줄여주는 역할을 해 미끄러운 도로에서도 안전한 운행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고성능 전기차 타이어. 출처=콘티넨탈 타이어(continental tires)
◆ 고기능성 타이어 소재 폴리우레탄
타이어 기능을 높여주는 소재 중 하나로 폴리우레탄을 꼽을 수 있는데요. 타이어 내부에 부착해 주행 시 노면과의 충격에 의해 발생하는 소음을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타이어의 핵심 보강재인 타이어 코드도 폴리우레탄 섬유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최근 전기차 보급에 따라 고기능성 폴리우레탄 타이어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요. 폴리우레탄은 고무보다 하중 용량이 3~4배 이상 높으며, 내마모성 및 내충격성이 우수하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한화솔루션은 폴리우레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인 TDI(톨루엔디이소시아네이트)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겨울철을 맞아 철저한 자동차 안전점검을 통해 눈길과 빙판길에서도 안전운전 하길 바랍니다.
*이 기고는 한화솔루션・케미칼과 세계일보의 제휴로 작성되었습니다.
[옮겨온 글] / 출처; 세계일보 / 한화솔루션・케미칼 블로거 / 2020-12-14 11: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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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로의 알고리즘 여행]
인간학습 모방이 기계학습 / 컬러TV, 망막의 색 처리 모방 /
AI의 한 갈래인 유전알고리즘은 / 문제 해결에 쓴 진화 프로세스
진화의 세대수를 감안하면 우리 몸은 우주의 근원을 밝히는 연구실보다 아프리카 초원에 더 어울린다. 그런 우리가 138억 년 전 우주 탄생까지 추적하고 있다. 놀라운 성취다.
우리 망막에는 600만 개 정도의 원추 세포가 있다.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민감하게 반응하는 색의 파장이 다르다. 각각 빨강, 녹색, 파랑 근처를 담당한다. 파장 분포를 보면 인간의 시각은 녹색에 가장 친화적이다. 망막에서 색 파장에 반응하는 이들 원추세포와 명암에 반응하는 간상세포의 입력이 대뇌피질로 들어가서 색을 해석한다. 컬러 TV와 모니터는 우리 눈이 색을 받아들이는 원리를 차용한 것이다. 색을 내는 방법인 RGB 체계는 빛의 삼원색인 빨강, 녹색, 파랑의 강도를 각각 수치로 준 것이다.
인간 학습의 큰 두 줄기는 보고 배우기와 부딪혀보고 배우기다. 시각으로 사물을 구분하는 것은 보고 배우기이고, 고급 학습이나 스포츠 활동은 부딪혀보고 배우기다. 기계학습에서 이를 차용했는데 전자를 지도학습이라 하고, 후자를 강화학습이라 한다.
사람의 대뇌에는 160억개 정도의 뉴런(신경세포)이 있는데 이들은 시냅스로 선택적으로 연결된다. 입력을 받은 뉴런들이 연결의 강도에 비례해서 다른 뉴런들로 신호를 전파하는 과정이 우리의 생각이고 행동이다. 자라면서 뇌에서 시냅스 수가 점점 많아질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출생 직후에는 뉴런 사이의 연결이 아주 희소하다. 유아기에 왕성하게 연결이 증가해 최고조에 이른다. 성인이 되면 유아기의 40% 이하로 오히려 줄어든다. 어린이들은 뉴런의 연결은 많은데 체계가 잡히지 않아 뉴런이 여기저기 마구 ‘발화’한다. 그래서 수용력이 높은 반면 산만하다. 학습이 거듭되면서 경쟁에서 진 시냅스는 도태되고 이긴 시냅스들은 강화된다.
요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딥러닝은 인공신경망이 크고 깊어진 딥넷을 기반으로 한다. 딥넷은 6살 어린이의 뇌처럼 뉴런들을 마구 연결해놓고 시작한다. 이후 다양한 입력을 주고 결과에 따라 연결 강도를 계속 수정한다. 이 과정에서 정보 처리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연결은 도태되고 일부 연결들이 살아남아 성인의 뇌처럼 체계를 갖춘다.
망막에서는 좁은 범위의 망막 세포들을 다발로 묶어 시신경에 연결한다. 이웃하는 시신경이 담당하는 다발 영역은 겹치고 경계 부분만 다르다. 이렇게 겹쳐 있는 시신경 정보를 처리하면서 전체 이미지를 해석한다. 딥넷 중에 CNN(합성곱신경망)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망막의 다발 처리를 모방한 것이다. 알파고도 CNN 구조의 신경망을 사용하고 있다.
과학의 큰 두 줄기는 환원주의와 구성주의다. 환원주의는 대상을 쪼개 들어가는 것이고, 구성주의는 대상을 합쳐나가는 것이다. 구성주의의 대표 원리는 진화다. 여러 경쟁적 대안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긴 것들이 살아남는 방식이다.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고, 세포가 모여 생명체가 만들어지고, 개인이 모여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 다 진화적이다. 진화의 유전적 프로세스를 문제 해결에 차용한 것이 AI의 한 갈래인 유전알고리즘이다. 이 분야의 대부인 존 홀랜드는 자신이 컴퓨팅에 섹스를 도입한 사람이라는 조크를 남겼다.
반면 연금술은 긴 실패의 역사를 갖고 있다. 뉴턴도 그중 한 사람이다. 20세기에 원자 구조가 밝혀지고 금이 양성자 79개를 가진 주기율표 상의 ‘원소’라는 것이 밝혀졌다. 수은 원자에서 양성자 하나만 빼내면 금 원자가 된다. 이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원자핵에서 양성자를 빼내는 것은 핵융합 수준의 힘이 필요하다. 금은 지구의 자연이 만든 적 없고 백 프로 우주에서 날아온 것이다. 우리 몸에는 마그네슘, 철, 아연, 나트륨, 칼슘 등의 무기질 원소가 필요한데 이들도 우리 몸이 생성할 수 없을뿐더러 지구에서도 생성되지 않는다. 우주에서 날아와 존재하던 것을 지구의 식물이나 동물이 섭취하고 우리가 다시 그들을 섭취하는 것이다.
지구에 있는 원소 각각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다른 원소와 분자로 결합되면서 다른 얼굴을 할 뿐이다. 지구는 먼 옛날 초신성 같은 별들이 폭발하고 남은 먼지의 조합이다. 인간도 기본적으로는 우주 먼지의 조합이다. 분자 속에 이미 있는 원소를 ‘추출’할 수 있을 뿐 원소의 생성은 모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인류의 위대한 성취다.
[옮겨온 글] / 출처: 중앙일보 / 문병로(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 2020.12.18 00:31
모네(Claude Monet, 1840-1926,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