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독서법 / 버지니아 울프 / 정명진 옮김(28)
조지 엘리엇*
* 1919년 11월 20일자 TLS에 실린 에세이
조지 엘리엇139)을 주의 깊게 읽는 것은 곧 독자 자신이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적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조지 엘리엇을 읽는 것은 또한 독자 자신의 통찰력에 그다지 명예롭지 않은,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을 깨닫는 것이다. 그 같은 경향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망상에 빠진 여자로 본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견해를 반(半)은 의식적으로 부분적으로 악의를 품은 가운데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여인이 유령처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녀보다 훨씬 더 심하게 망상에 사로잡혀 지냈다. 그녀의 마법이 어느 순간에, 그리고 어떤 수단에 의해 풀렸는지 확실히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의 마법이 풀리게 된 원인을 그녀의 삶이 공개된 것에서 찾는다. 조지 메러디스는 연단에서 "변덕스런 작은 쇼맨"140)과 "편력하는 여자"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두 사람을 정확히 겨냥하지 못하고 그냥 날려 보내는 것으로 만족할 수천 개의 화살에 화살촉과 독을 주었다. 그녀는 젊은이들이 비웃을 대상 중 하나가 되었다. 말하자면, 그녀가 똑같이 우상 숭배의 죄를 저지르고 있고 똑같이 경멸당할 수 있는 진지한 사람들의 집단의 편리한 상징이 되었다는 뜻이다.
139) 조지 엘리엇은 필명이며 본명은 메리 앤 에번스(1819~1880)이다. 당시에 여성 작가들 대부분이 본명으로 사랑에 관한 소설을 주로 썼으나 엘리엇은 이런 틈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또 이미 번역가와 비평가로 알려져 있었던 터라 그런 것과 별도로 순수하게 소설로 평가 받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필명을 썼다
140) 조지 엘리엇과 관계를 맺고 있던 철학자 조지 헨리 루이스를 문단에서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당시에 루이스는 유부남이었다.
액턴 경141)은 그녀가 단테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했다. 허버트 스펜서는, 마치 그녀의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는 듯이, 런던 도서관에서 모든 픽션을 금지시킬 때 그녀의 소설을 면제해 주었다. 그녀는 여성의 자존심이고 본보기였다. 더욱이, 그녀의 사적 기록은 공적 기록보다 더 매력적이지 않았다. 프라이어리142)에서 보낸 어느 오후에 대해 묘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면, 이야기꾼 스펜서는 일요일 오후에 있었던 그런 진지한 모임에 관한 기억이 자신의 유머 감각을 자극한다는 점을 언제나 암시했다. 그는 낮은 의자에 앉은 엄숙한 부인 앞에서 불안감을 강하게 느끼면서 자신이 지적인 말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141) 영국 카톨릭 역사학자이자 정치인이며 작가(1834~1902)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142) 조지 엘리엇은 조지 헨리 루이스와 1864년 이 집으로 옮긴 후 1880년에 존 크로스와 결혼할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 이곳은 "펠릭스 홀트",
"미들마치". "대니얼 데론다"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엘리엇은 이곳에서 상대의 유명한 문인들과 함께 일요일 오후에 모임을 가졌다.
틀림없이, 그 대화는 매우 진지했다. 그 위대한 소설가가 깔끔하게 남긴 기록이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날짜가 월요일 아침으로 되어 있는 메모이다. 거길 보면 그녀는 자신이 피에르드 마리보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거론할 생각이었으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만 마리보에 대해 말했다는 점에 대해 비판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듣던 사람이 어김없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주었다. 그럼에도, 일요일 오후에 조지 엘리엇과 마리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그림같이 생생해지지 않았다.
정말로, 심각하고 부루퉁하고 거의 말(馬) 같은 힘이 느껴지는 건 얼굴은 조지 엘리엇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울적한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책을 읽은 사람은 책장마다 조지 엘리엇의 얼굴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확신을 떨치지 못한다. 에드먼드 고스는 최근에 그녀가 빅토리아 자동차를 타고 런던을 달리는 모습을 보고는 이렇게 묘사했다.
몸집이 크고 탱탱한 시빌라143) 같아 보였으며, 꿈을 꾸듯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옆모습을 보면, 다소 우울한 그녀의 굵은 이 목구비는 모자와 부자연스럽게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모자는 언제나 첨단 파리 패션이었으며, 그 시적의 모자는 큰 타조 깃 털을 장식으로 달았다. 143)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아폴론의 신탁을 받던 무녀를 뜻한다
레이디 리치144)는 똑같은 솜씨로 보다 친밀한 내부의 초상을 남겼다.
그녀는 아름다운 검정 공단 가운을 입고 난롯가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옆 테이블에는 초록빛이 도는 램프가 놓여 있었다. 테이 블엔 독일 책들과 팸플린, 상아로 만든 종이 자르는 칼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매우 조용하고 기품이 있었다. 응시하는 듯한 눈 은 작았으며, 목소리는 달콤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가 친구 같다는 느낌이, 개인적인 친구가 아니라, 선하고 자애로운 충동 같은 느낌이 들었다.
144) 윌리엄 메이크피스의 새커리의 첫째 딸이자 소설가(1838~1919) 당시에 문단에서 큰 활약을 했다
엘리엇이 한 말 한 토막이 전해지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신의 영향력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경험을 통해서 타인들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아주 강하게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우리도 마찬가지로 타인들에게 똑같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 사람이 기억 속에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해 오던 어떤 장면을 30년 후에 회상하면서 당시에 오간 말들을 곰곰 씹다가 돌연 처음으로 폭소를 터뜨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 모든 기록에서, 우리는 기록자가 현장에 있을 때조차도 적당한 거리를 지키고 침착성을 잃지 않았으며, 훗날 생생하거나 혼란스럽거나 아름다운 어떤 인격의 빛이 눈을 현혹하는 상태에서는 소설들을 절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인격의 아주 많은 부분이 드러나는 픽션에서, 매력의 부재는 중대한 결정이며, 당연히 대부분이 그녀의 성과 다른 남성이었던 비평가들은 아마 반은 의도적으로 그녀가 여성이 갖춰야 할 가장 바람직한 자질을 결여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조지 엘리엇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여성적인 면이 강하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예술가들을 천진난만한 아이로 만드는 그런 기이한 버릇이나 급격한 기질 변화 같은 것이 그녀에겐 전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리치 부인에게도 그렇게 비쳤듯이, 그녀는 "개인적인 친구 같은 사람은 아니었으며, 선하고 자애로운 충동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초상들을 조금 더 가까이서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의 검정 공단 정장을 차려 입고, 빅토리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나이든 어느 유명한 부인의 초상들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말하자면, 삶의 과정에 힘들게 분투한 끝에 거기서 빠져나올 때 타인들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깊은 소망을 품었지만 친교에 관한 한 젊은 시절에 그녀를 알았던 소수의 집단 밖으로는 절대로 확장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 부인의 초상들이다. 우리는 그녀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 문화와 철학, 명성, 영향이 똑같이 매우 미천한 토대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녀는 목수의 손녀였다.
그녀의 삶의 첫 권은 대단히 우울한 기록이다. 거기서, 우리는 그녀가 옹졸한 시골 사회(그녀의 아버지는 세상 속에서 신분 상승을꾀하면서 중산층에 많이 가까워졌지만 그럴수록 활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였다)의 참을 수 없는 따분함 속에서 신음하며 분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결과, 그녀는 런던의 매우 지적인 리뷰 잡지의 보조 에디터가 되고 허버트 스펜서의 존경 받는 동료가 되었다. 그녀가 슬픈 독백에서 드러내듯이, 그 단계들은 힘들었으며, 이 독백에서 존 크로스145)는 그녀에게 삶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것을 강요했다. 145) 조지 엘리엇의 남편으로 은행가였다(1840~1924)
아주 젊은 시절부터 "의류 클럽(clothing club)146) 같은 것을 조직하면서 무엇인가를 이룰" 것으로 여겨졌던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 역사 차트를 제작함으로써 어떤 교회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그 일에 이어 신앙의 상실이 따랐는데, 이것이 그녀의 아버지를 크게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 일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와 함께 살기를 거부했다.
146) 옷을 가난한 사람에게 전하는 모임을 말한다.
그 다음에 다비드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147)의 글을 힘들여 번역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 자체로 "영혼을 마비시킬" 정도로 힘든 이 작업은 여자로서 가정을 꾸리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간호한다고 해서 강도를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애정에 그렇게 강하게 의존하는 그녀에게 블루스타킹148)이 됨으로써 오빠의 관심을 잃고 있다는 절망적인 확신은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147)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1808~1874).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 그의 저서 <역사적 예수>는 유럽 기독교에 충격을 주었다.
148) 교육받은 지적인 여자를 일컫는 표현이다. 원래는 18세기에 엘리자베스 몬테귀 부인이 이끈 블루스카깅 소사이어티에서 유래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마리 올빼미처럼 돌아다닌곤 했는데, 그것이 오빠에게 대단한 혐오감을 안겨주었다." 그녀가 자기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입상을 놓고 슈트라우스의 책을 번역하느라 끙끙거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어느 친구는 이렇게 썼다. "정말 딱했다. 병자 같은 창백한 얼굴로 끔찍한 두통에 시달리는 가운데 아버지에 대한 걱정으로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나는 가끔 동정심을 느낀다." 우리가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의 순례의 단계들이 더 쉽지는 않아도 적어도 더 아름다웠을 수는 있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강하게 품게 될지라도, 그녀가 문화의 성체 위를 걷는 데는 우리의 동정심을 초월하는 어떤 완고한 결심이 있었다.
그녀의 발달은 매우 느리고 매우 어수선했지만, 그 뒤에 아주 뿌리 깊고 고귀한 야망이라는 저항할 수 없는 기동력이 버티고 있었다. 모든 장애물은 마침내 그녀의 길에서 평으로 치워졌다. 그녀는 모든 사람을 알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읽었다. 놀랄 만한 그녀의 지적 활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젊음은 끝났지만, 그 젊음은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어서 서른다섯의 나이에, 능력의 절정기에, 그리고 자유를 만끽하는 가운데, 그녀는 그녀 자신에게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우리에게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조지 헨리 루이스149)와 바이마르로 갔다. 149) 조지 엘리엇의 '소울 메이트'로서 그녀와 함께 살았지만 그녀와 결혼은 하지 않았다
그 결합에 뒤이어 나온 그녀의 책들은 그녀에게 개인적인 행복과 함께 위대한 해방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아주 충만하게 입증하고 있다. 그녀의 책들 자체가 우리에게 풍성한 진수성찬을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가 문학 경력의 문턱에서 맞은 일부 삶의 상황들에서, 우리는 그녀의 정신이 과거로, 시골 마을로, 어린 시절 기억 속의 고요함과 아름다움과 천진난만으로 향하도록 하고, 그녀 자신과 현재로부터 멀리 벗어나도록 하는 영향력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녀의 첫 책이 <미들마치>가 아니고 <성직 생활의 장면들>이었던 이유를 우리는 이해한다. 루이스와의 결합은 그녀를 애정으로 감쌌지만, 상황과 인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결합은 또한 그녀를 소외시켰다. 그녀는 1857년 이렇게 썼다. "나는 특별히 초대 받기를 원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녀는 훗날 "세상이라 불리는 곳으로부터 차단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처음에는 상황 때문에, 나중에는 명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두드러지게 됨에 따라, 그녀는 자신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고 동등한 조건에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소설가에게 그 상실은 심각한 일이었다. 그래도 <성직 생활의 장면들>의 빛과 햇살 속에서, 보다 크고 성숙한 정신이 사치스런 자유의 감정과 함께 그녀의 "아득한 과거"의 세상으로 점점 널리 퍼지는 것을 느끼면서,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적절해 보인다. 그런 정신에는 모든 것이 획득이다. 모든 경험은 자각과 숙고의 층들을 아래로 하나씩 차례대로 스며들면서 영양을 공급하고 풍성하게 가꿨다.
우리가 그녀의 삶에 대해 알고 있는, 그야말로 얼마 되지 않는 양의 정보를 바탕으로 픽션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파악하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기껏 그녀가 배웠다 하더라도 대체로 일찍 배우지 않은 어떤 가르침을 가슴속 깊이 새겼다는정도이다. 그 가르침들 중에서 그녀의 가슴에 가장 깊이 새겨진 것은 관용이라는 우울한 미덕들이었다. 그녀의 공감은 일상의 운명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은 평범한 기쁨과 슬픔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행복하게 작동했다. 그녀는 자신의 개성의 감각과 연결되는그런 낭만적인 치열성을 전혀 보이지 않으며, 그녀의 개성은 충족되지도 않고 억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세상을 배경으로 그 모양을 예리하게 새기고 있었다. 제인 에어의 불같은 이기주의에, 위스키 잔을 앞에 놓고 꿈에 젖는 오만한 늙은 성직자의 사랑과 슬픔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초기에 발표된 책들, 그러니까 <성직 생활의 장면들>과 <아담 비드>와 <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의 아름다움은 대단하다. 엘리엇의 작품에 등장하는 포이저 가와 도드슨 가와 길필 가, 바튼 가,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각자의 환경 속에서 서로 의존하며 살고 있는데, 이들의 장점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피와 살을 가진 살아 있는 인간들이고, 우리가 어떤 때는 싫증을 느끼고 어떤 때는 공감하며 그들 사이를 돌아다니지만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언제나 별다른 이외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지를 우리는 오직 위대한 원조(元祖)들에게만 보낸다.
그녀가 장면마다 어느 한 인물 쪽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일으키는 기억과 유머의 범람은 고대 잉글랜드 시골의 전체 조직이 고스란히 부활할 때까지 이어지는데, 그 범람은 자연적인 과정과 공통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비판할 것이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한다. 우리는 받아들이고, 확장한다. 우리는 위대한 창조적인 작가들만이 안겨 줄 수 있는 달콤한 온기와 정신의 해방을 느낀다. 몇 년 간 밀쳐놓았다가 다시 그 책들을 펼치게 되면, 그것들은 우리의 예상과 정반대로 그때와 똑같은 에너지와 열기를 뿜는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붉은 과수원 담에 부서지는 햇살 속에서처럼 그 온기 속에 한가로이 빈둥거리고 싶어진다. 만약에 이런 식으로 미들렌드150)의 농부들과 그들의 아내들의 기질을 따르는 것에 경솔한 포기 같은 요소가 있다면, 그곳 상황에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도 넓고 깊게 인간적이라고 느끼는 것을 좀처럼 분석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세퍼튼151)의 세계와 하이슬로프152)의 세계가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그리고 농부들과 농업 노동자들의 정신이 조지 엘리엇의 독자들 대부분의 정신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고려한다면, 우리가 농가 주택에서 대장간으로, 통나무 집 거실에서 교구 목사관의 정원으로 쉽고 또 즐겁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조지 엘리엇이 우리가 겸손이나 호기심의 정신에서가 아니라 공간의 정신에서 그들의 삶을 공유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사실 덕분이다.
150) 잉글랜드 중부 지방을 일컫는다
151) 런던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15마일 떨어져 있는 교외 마을
152) "아담 비드"에 나오는 가공의 마을
엘리엇은 절대로 풍자 작가가 아니다. 정신의 움직임이 너무나 굼뜨고 둔중하기 때문에, 그녀는 코미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 본성의 중요한 요소들을 아주 큰 묶음으로 모아서 관대하고 건전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대략적으로 분류한다. 그녀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발견하듯이, 이 이해력은 등장인물들을 생생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좌지우지할 힘까지 부여했다.
유명한 포이서 부인153)이 있다. 포이서 부인이 죽을 때까지 특히한 성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은 쉬은 일이었을 것이며, 때문에 조지 엘리엇은 그녀가 같은 장소에서 다소 자주 웃도록 만든다. 그러나 책을 덮고나면, 기억이 간혹 현실 속에서인 듯 세부적이고 미세한 것들을 불러내는데, 우리가 책을 읽을 당시에는 그것들보다 더 두드러진 특징이 그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이다. 우리는 포이서 부인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회상한다. 그녀가 한미디도 언급하지 않은 일들도 있었다. 그는 병든 아이에겐 인내 그 자체였다. 그는 토티154)를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엘리엇의 등장인물들 중 다수에 대해 이런 식으로 깊이 생각할 수 있으며, 그러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인물에도 그런 특성들이 숨어 있을 폭과 여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조지 엘리엇은 이런 특성들을 그 모호함으로부터 끌어낼 생각을 전혀 품고 있지 않다.
153) <아담 비드>의 등장인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거칠지만 속은 따뜻하다.
154) <마담 비드>에 등장하는 포이서 부부의 아기.
그러나 이처럼 온갖 관용과 공감이 팽배한 가운데, 초기의 책들에도 보다 강한 압박의 순간들이 있다. 그녀의 기질은 폭이 아주 넓다는 점을, 그러니까 바보들과 낙오자들, 어머니들과 아이들, 개들과 풍성한 머들랜드 들판들, 정신이 맑거나 예일 맥주에 취해 있는 농부들, 말 거래상들, 여관 주인들, 성직자들과 목수들을 두루 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런 온갖 것들을 어떤 로맨스가 넉넉히 품고 있다. 그것은 조지 엘리엇이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유일한 로맨스인 과거와의 로맨스이다.
책들은 놀랄 만큼 재미있게 읽히며 오만함이나 가식의 흔적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초기 작품의 넓은 범위를 염두에 두고 있는 독자에게, 회상의 안개가 점점 걷힌다는 것이 명백히 느껴질 것이다. 그녀의 힘이 줄어든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판단에 그녀의 힘이 성숙한 <미들마치>에서 정점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판과 농장의 세계는 더 이상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현실의 삶에서 그녀는 성공을 다른 곳에서 추구했으며, 비록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차분하고 위로의 성격이 강할지라도, 초기의 적품들에서도 조지 엘리엇 본인이었던 그 불안정한 정신, 그러니까 언제나 엄격하고 질문을 던지고 고투하던 존재의 흔적이 있다. <아담 비드>에서는 디나에 조지 엘리엇을 암시하는 요소가 있다. 그녀는 <플로스 강번의 물방앗간>의 매기에서 훨씬 더 공개적이며 더 완전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넷의 후회>에서 자넷이며, 로몰라155)이고, 지혜를 찾다가 래디슬로156)와의 결혼을 통해서 사람은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느 도로시아이다.
155) 조지 엘리엇이 15세기를 배경으로 쓴 역사 소설 <로몰라>의 주인공
156) 래드슬로와 도로시아는 조지 엘리엇의 소설 <미들마치>에 둥장하는 인물들이다.
조지 엘리엇과 충돌을 빚는 사람들이 그녀의 여주인공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우리는 생각하는데, 그렇게 판단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여주인공들이 그녀의 여러 측면들 중에서 최악의 면을 겉으로 드러내고, 그녀를 힘든 곳으로 이끌고, 그녀를 자의식 강하고 남을 가르치려 들고 이따금 통속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약에 그 자매(姉妹) 관계를 모두 지워버린다면, 예술적으로 훨씬 더 작고 훨씬 더 열등한 세상이 남을 것이다. 그것을 하나의 실제로 보는 경우에, 사람들은 그 실패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녀가 37세가 될 때까지 소설을 전혀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또 그녀가 그때부터 자기 자신을 분노 같은 무엇인가와 고통의 결합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오랫동안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러다가 창작 에너지의 첫 번째 분출이 다 소진되고, 자신감이 생겼을 때, 그녀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더욱 많은 글을 썼지만, 그녀는 젊음을 성급하게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 그렇게 했다. 여주인공들이 그녀 자신이 했을 법한 말을 할 때면 언제나 그녀의 자의식이 특별히 두드러진다. 그녀는 여주인공들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위장했다. 그녀는 여주인공들에게 아름다움과 부(富)까지 허용했으며, 어울리지 않게 브랜디를 좋아하는 취향까지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천재성이라는 바로 그 힘에 의해서 목가적인 장면 속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불안하면서도 활기를 주는 사실은 그대로 남았다.
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의 집안에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소녀는 여주인공이 주위에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예이다. 그녀가 어리고 집시들을 따라 집을 나가거나 인형에 못을 박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한, 유머가 그녀를 통제하며 그녀를 사랑스런 존재로 지켜준다. 그러나 그녀는 발달하고, 조지 엘리엇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채 알기도 전에 집시나 인형, 세인트 옥스157)가 더 이상 줄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성숙한 여자를 앞에 두고 있다. 먼저 필립 위켐158)이 창조되고 후에 스티븐 게스트159)가 창조되었다. 위켐의 나약함과 게스트의 상스러움이 종종 지적되었다. 그러나 둘은 나약함과 상스러움을 통해서 조지 엘리엇이 남자의 초상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여주인공에게 어울리는 짝을 상상해야 할 때 손을 떨게 만들었던 그 불확실성과 허약, 더듬거림을 보여준다.
157) <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에 나오는 가상의 장소.
158) <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에 등장하는 인물로 매우 지적이다.
159) <플로스 강벼의 물방앗간>에 등장하는 인물로 잘생기고 매력적이고 부유하다.
가장 먼저, 조지 엘리엇은 자신이 알고 사랑했던 가정의 세계 그 너머로 내몰리면서 중산층의 응접실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없다. 거기서 젊은 남자들은 여름날 오전 내내 노래를 부르고, 젊은 여자들은 앉아서 시장에 내다 팔 흡연모자160)에 수를 놓고 있었다. 그녀는 그곳이 자신이 서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느끼고 있다. 그녀가 "훌륭한 사회"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서투른 풍자가 그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훌륭한 사회는 포도주와 벨벳 카펫, 6주 앞의 만찬 약속, 오페라 요정이 나올 것 같은 무도회장을 갖고 있다. --- 훌륭한 사회
는 과학은 페러데이가 처리하고, 종교는 최곤의 집에서 만나는 상급 성직자에 의해 처리되도록 한다. 그런 사회가 어떻게 믿
음과 강조을 필요로 하겠는가?
여기엔 유머나 통찰의 흔적은 전혀 없으며, 오직 그 기원이 개인적인 것 같은 앙심의 흔적만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제도의 복잡성이 경게들을 가로지르며 떠도는 소설가의 공감과 인식력데 끔직할 만큼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메기 털리버161)가 조지 엘리엇을 타고난 환경에서 끌어 낸 것도 나쁘지 않았다.
160) 남자들이 옛날에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연기가 머리카락에 배는 것을 막는 동시에 멋을 내기 위해 쓴 모자를 말한다.
161) <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의 주인공 어린 때는 똑똑하고 충동적인 아이로 그려진다. 작품 마지막에 19세로 묘사된다.
조지 엘리엇은 훌륭한 감정적인 장면을 끌어들이길 고집했다. 그녀는 사랑해야 하고, 절망해야 하고, 남자 형제를 두 팔로 꼭 끌어안고 물에 빠져 죽어야 한다. 위대한 감정적인 장면들을 깊이 조사할수록, 위기의 순간에 우리 머리 위에서 환멸과 수다의 소나기로 폭발할 구름이 일어나서 모이고 두꺼워질 것이라는 예상이 더욱 불안스럽게 다가온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대화가 방언이 아닐 때 그녀가 대화를 장악하는 힘이 느슨해지기 때문이고, 도 부분적으로 그녀가 나이 탓에 피곤해서 감정을 집중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여주인공들이 말을 아주 많이 하도록 허용한다. 그녀는 언어를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녀는 하나의 문장을 선택하고 그 안에 장면으 핵심을 압축해 집어넣는 솜씨를 결여하고 있다. 나이틀리 씨162)가 웨스턴 가의 무도회에서 "당신은 누구와 춤을 추시려 합니까?" 라고 물었다. 이에 엠마는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과 춰야겠지요." 라고 대답한다. 그녀는 할 말을 충분히 다 했다. 그러나 캐저본 부인163)은 한 시간가량 말을 했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창밖을 내다 봐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자 주인공들을 냉정하게 쫓아버리고 조지 엘리엇을 그녀의 "아득한 과거"의 농업 세계에 한정시켜 보라. 그러면 당시는 그녀의 위대성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진정한 특색까지 잃게 된다. 그 위대성은 그녀의 위대성이라는 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못한다. 초기의 책들에서 드러나는 관접의 폭과 중요한 특징들의 뚜렷한 강조와 불그레한 빛, 그리고 훗날의 책들에서 드러난 탐구력과 깊은 사고는 우리로 하여금 오래 머물면서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상세히 설명하라고 유혹한다.
162) 제인 오스틴의 <엠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163) 조이 엘리엇의 <미들마차>에 등장하는 인물
그러나 우리가 종국적으로 시선을 줄 곳은 여자 주인공들이다. 도로시아 캐저본은 "나는 어린 소녀일 때부터 나의 종교를 발견하려고 언제나 노력해 왔어." 라고 말한다. "나는 기도를 아주 많이 하곤 했어. 지금은 기도를 거의 하지 않아. 나는 단지 나 자신만을 위한 욕망을 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 그녀는 그들 모두를 대신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 그들은 종교 없이 살 수 없으며, 그들은 어린 소녀일 때 누군가를 찾기 시작한다. 각자는 여자로서 선(善)에 대한 열정을 깊이 품고 있으며, 이 열정은 그녀가 열망과 고뇌 속에 서 있는 장소를 책의 심장으로, 그러니까 숭배의 장소처럼 고요하고 속세와 단절된 곳으로 만들지만, 그녀는 누구에게 기도를 해야 하는 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그들은 배우면서 자신의 목표를 추구한다. 여자의 일상적인 일에서도 그렇고, 보다 넓은 마음으로 여성들에게 이바지하는 방향으로도 그렇다. 그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며, 우리도 그 이유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없다. 고통과 감수성으로 팽배한 상태에서 너무나 많은 시대를 묵묵히 견뎌온 여자의 낡은 의식은 내면에서 흘러넘치며 무엇인가를, 아마도 인간 존재의 사실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좀처럼 알지 못한다.
조지 엘리엇은 너무나 강한 지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실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거나, 단호한 진실을 약화시키지 못한다. 여주인공들의 분투가 보여준 엄청난 용기를 제외한다면, 그 투쟁은 그들에게 비극으로 끝나거나 훨씬 더 우울한 어떤 타협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조지 엘리엇 본인의 이야기의 불완전한 버전이다. 조지 엘리엇에게도 마찬가지로 여자의 짐과 복잡성으로충분하지 않았다. 그녀는 안식처 그 너머까지 나아가서 낯선 밝은 색으로 빛나고 있는, 예술과 지식의 열매들을 직접 따야 한다. 극소수의 여자들이 그것들을 딸 수 있었듯이, 그녀도 그 열매들을 따면서 자신의 유산을, 그러니까 관점의 차이와 기준의 차이를 부인하지도 않을 것이며 부적절한 보상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억할 만한 인물인 그녀가 과도하게 칭송을 듣고, 자신의 명성을 피하고, 낙담하고,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다가, 몸서리치며 사랑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다. 마치 거기에만 만족이 있고, 정당화가 가능한 것처럼. 동시에 그녀는 "까다로우면서도 간절한 야망"을 품은 가운데 삶이 자유롭고 탐구하는 정신에 재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겠다고 손을 뻗고 있으며, 여자로서 품는 포부로 남자들이 지배하는 현실 세계에 맞서고 있다. 그 문제는 그녀의 창작물에 어떻게 작용했든 그녀에게 승리감을 안겨주었다. 그녀가 감히 시도해 성취한 모든 것을 회상할 때, 말하자면 슬픔에 짓눌린 그녀가 이중의 부담에 신음하던 육신이 닳아 죽을 때까지 어떻게 그 슬픔을 극복하고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이해력을 추구했는지를 회상할 때, 우리는 그녀의 무덤에 월계수와 장미를 아낌없이 놓치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