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6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이집트서 4000년 된 금박으로 덮인 미라 발견
금박으로 덮인 미라는 '헤카세페스'라는 인물로 추정되며, 이집트에서 발견된 왕실 일가가 아닌 인물의 미라 중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형태다. 해당 무덤은 카이로 남부 사카라에서 아래쪽으로 15m 파 내려간 지점에서 발견됐으며, 또 다른 무덤 3개가 함께 발견됐다. 이 중 한 무덤은 "비밀 유지자"의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번 고대 네크로폴리스(죽은 자들의 도시)에서 발굴된 미라 중 가장 큰 미라의 주인은 생전 성직자, 조사관, 감독관이었던 '크눔드제데프'라는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미라의 주인은 '메리'라는 인물로, "비밀 유지자"라는 칭호를 받은 고위 궁정 관리였다. 그는 특별한 종교의식을 수행할 수 있던 권한이 있었다.
아울러 판사이자 작가였던 '페텍'이라는 인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선 이 지역에서 발견된 조각상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보이는 조각상 컬렉션이 함께 발견됐다.
이번에 발굴된 무덤 4곳에선 도기 등 여러 물품이 함께 출토됐다
2022년 북한 사이버 공격 받아 6시간동안 인터넷 불통
북한이 사이버 공격을 받아 인터넷 통신망이 마비되었다. 이날 오전 북한에 디도스 공격으로 추정되는 사이버 공격이 발생, 6시간 동안 모든 온라인 트래픽이 다운됐다.
2019년 김재주 택시노조 전북지회장 전주시청 앞 조명탑(20여m) 고공농성 510일 만에 내려옴
2018년 밀양 세종병원화재로 38명 사망 151명 부상
밀양 세종병원 1층 응급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세종병원은 요양병원도 같이 운영하며 해당 병원에는 본관 및 별관(밀양 요양병원)을 합해 총 177명이 입원 중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많아 이번 사고로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도 각각 1명씩 사망했다. 희생자는 본관 병원에서 발생했다. 화재는 오전 9시 29분 경 초기 진압되었고, 10시 26분 완전 진압되었다.
2018 슈퍼문 블루문 개기월식 3개 천문현상 35년 만에 동시에 나타남
2012년 7선 신상우 前 국회 부의장 별세
그는 '3김(金)시대' 전체를 정치인으로 살았고, 마지막엔 노무현 정권 창출에까지 기여한, 한국 현대 정치사 자체였다.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진학하던 1956년 김영삼(YS) 의원의 상도동 자택에 들어가 1년 6개월간 기숙하며 정치를 배웠다. YS와 맺은 인연은 평생을 갔다. 1971년 고향인 경남 양산에서 신민당 공천으로 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9~10대 연달아 당선됐다.
시련은 1979년 신군부의 12·12 쿠데타 이후 왔다. YS·DJ(김대중) 등 주요 야당 정치인이 정치 활동을 금지당한 상황에서 그는 민주한국당(민한당)을 창당, 1981년 11대 총선에서 제1 야당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민한당은 줄곧 신군부 정권 영향력 아래에 놓인 '관제 정당'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본인도 그 영향으로 1985년 12대 총선에선 낙선했다.
그는 1985년 YS·DJ가 손잡고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에 참여했고 1988년 13대 총선 때 부산에서 재기했다. 1990년 3당 합당 때 합류,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했다. 이후 15대까지 모두 7선 경력을 쌓았고, 15대 국회 후반기 2년간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2002년 대선 때는 부산상고 후배인 노무현 후보의 부산 지역 후원회장을 맡았다.
그는 "YS의 당선은 절반의 성공이었다"며 "DJ와 노무현의 당선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정치 문화가 완성된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상도동·동교동계 양쪽과 두루 가까웠다. 위와 아래, 여와 야 모두 소통 가능했다.
2006년 서울고법 "고엽제 피해 배상" 첫 판결.
미국 다우케미컬과 몬샌토에게 고엽제 피해 한국인 6,795명에게 630여억원 배상하라 판결.
1999년 10월 고엽제 피해자 1만7천여 명 두 제조사 상대로 5조1600여억 원 손해배상 청구소송.
2002년 1심재판부 고엽제와 일반질병 사이에 인과관계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
서울고법은 미국국립과학원 보고서 인용해 고엽제 유해물질 다이옥신과 폐암, 후두암, 전립선암 등 11가지 후유증 사이에 인과관계 인정.
2004년 한글학자 허웅 세상 떠남
2003년 중국~대만 반세기 만에 비행기 운항
2003년 1월 26일 전 세계의 중국인들이 목이 빠져라 기다려왔던 상하이와 타이베이 간의 양안(중국과 대만) 첫 직항이 이루어졌다. 이날 중국과 대만은 54년 만에 처음 항공기 직항을 성공시켰다. 비록 정치적 완충 지대인 홍콩이나 마카오에서 잠시 머물기는 했지만 대만 항공기가 중국 상공을 비행한 것은 분단 이후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만에서 날아온 CAL기는 상하이에 거주하는 대만 비즈니스맨 258명을 싣고 대만으로 되돌아갔다. 대만 푸싱항공도 이날 대만 남부 가오슝에서 마카오를 거쳐 상하이를 왕복하는 직항기를 띄웠다. 새벽 3시55분, 대만 중정공항을 이륙한 CAL기는 홍콩에서 약 30분간 정류한 뒤 오전 8시52분 상하이 푸둥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푸둥공항에서는 대만 항공기가 내려앉자 준비된 환영 음악과 용춤 등 공연이 펼쳐졌다.
중국 민족 최대 명절인 춘절 연휴를 맞아 준비된 이번 항공 직항은 2월 7일까지 한시적으로 16편이 운항됐다. 홍콩이나 대만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던 기존 방식과 비교할 때 항공료는 1만6000 대만폐(약 56만원)로 비슷하지만 소요시간(약 4시간15분)은 1시간 정도 줄었다. 이번 직항은 대만정부 요구에 따라 대만 항공사 6개 만이 취항, ‘쌍방 직항’이 아닌 ‘편도 직항’으로 제한됐다.
2002 광주민주화운동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
2001년 대법원, 16대 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가 벌인 `낙선운동`은 위법이라고 판결
2000년 16대 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가 벌인 낙선운동은 선거법 위반이라는 대법원의 첫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16대 총선 당시 특정 후보 낙선운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울산참여연대 대표 이수원씨와 사무국장 김태근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시민단체가 정치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실정법을 어긴 데 대해 법원이 엄정한 법집행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됐다. 검찰은 2000년 10월 낙천-낙선운동 관련자 처벌을 하면서 집회와 가두행진 등 선거법상 금지된 행위에 대해서만 기소하는 `타협`을 했었다. 검찰은 당시 "공명선거를 통한 정치개혁이라는 정당한 목적을 갖고 있고 `유권자의 후보자 적격성 판단`이라는 공익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그 대신 선거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대상만 기소키로 했다"고 설명했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총선연대 지도부 등 고소-고발 사건 54건에 피고소-피고발인 204명을 상대로 6개월에 걸쳐 처벌대상을 가렸고, 이 가운데 지도부 29명만 기소한 바 있다.
2001년 일본 유학생 이수현, 도쿄 전철노선에 떨어진 일본인 구하려다 사망
일본에 유학중이던 고려대 이수현씨가 2001년 1월 26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퇴근하던 중 도쿄의 한 전철역 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사망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과 NHK 등 일본의 신문과 방송들은 이씨의 의로운 죽음을 속보로 계속 전했다.
방송들은 이날 새벽부터 이씨 사망 소식을 현장 사진과 함께 내보냈으며, 신문들도 석간부터 이씨의 희생을 주요 뉴스로 대서특필했다. 이씨는 고려대 무역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9년 가을 “세상 보는 눈을 넓히고 한일간 중개역을 하겠다”며 휴학한 뒤, 2000년 1월 일본에 건너가 ‘아카몬카이’라는 일본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이씨가 공부하던 아카몬카이 학교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1000여명의 조문객이 몰려들었으며, 모리 요시로 총리와 고노 요헤이 외무장관 등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들 발길도 이어졌다. 일부러 영결식장 앞 길가에 나온 200여명의 도쿄 시민들도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2001년 인도 구자라트에 리히터 규모 6.9~7.9의 강진 발생
인도, 파키스탄, 네팔 일원에서 26일 오전 리히터 규모 6.9~7.9의 강진이 발생,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에서만 최소 220명이 사망했으나 구조작업이 진행되면 사망자 수는 늘어났다. 이번 지진이 지난 56년 이래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지진의 진앙에 가까웠던 구자라트주의 주도 아마다바드 당국은 이번 지진으로 220명 이상 숨지는 등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아마다바드 주민들은 지진이 이날 오전 8시 46분께(현지시각) 발생, 45초 가량 지속됐으며 놀란 주민들이 거리로 뛰쳐나갔다고 전했다.
구조대 관계자는 10층짜리 건물을 비롯, 아마다바드 전역에서 500여채의 구조물이 붕괴됐다고 주장했다.
뉴델리 서부 수라트에서는 건물 2채가 무너져 18명 이상 사망했다. 금융 중심지 뭄바이, 동부 연안의 마드라스 등에서도 지진이 발생, 주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소동이 발생했다. 파키스탄 남부 하이데라바드시에서는 총 4명이 사망했고, 라호르 카라치 페샤와르 등 대도시에서도 지진이 발생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구체적 피해상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번 지진은 인도 공화국 선포 51주년 기념일 발생, 수도 뉴델리를 비록 전국 각 도시에서 기념일 퍼레이드를 벌이던 인도는 초상집 분위기로 급변했다.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는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 지진 피해상황과 구조대책 등을 논의했다.
지진의 진앙지와 강도에 대해서는 나라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도의 뉴델리 지진관측소는 이번 지진이 리히터 규모 6.9라고 발표했으나, 미국 국립지진정보센터는 7.9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인도측이 지진의 진앙지로 구자라트 잠나가르 북동쪽 110㎞ 떨어진 지점을 주목한 반면, 미국측은 구자라트 부지시 북동쪽 20㎞ 지점에서 지진이 시작됐다고 추정했다.
1999년 미국, 불공정무역관행 제재를 위한 `수퍼301조` 부활
1995년 국제통화기금, 멕시코에 차관제공을 승인
1995년 김영삼대통령, `마틴 루터 킹 비폭력평화인권상` 수상
미국 흑인 인권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마틴 루터 킹 비폭력 평화상`의 1994년도 수상자인 김영삼 대통령이 1995년 1월 26일 청와대 춘추관 대회견장에서, 상장과 메달을 킹 목사의 부인 코레타 스코트 킹 여사로부터 전달받았다. 시상식에는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 제임스 레이니 주한미국대사내외 외에도 우리나라 각계 인사 80여명이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수상연설에서 "오늘의 영광을 오직 평화의 길을 통해 자유와 민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자랑스런 동지들에게 돌리며, 숱한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민주화 운동에 적극 동참했던 우리 국민 모두에게 바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날 수여한 비폭력 평화상은 흑인 민권운동가였던 킹목사를 기념해 인권운동과 민주주의에 공헌한 인물에게 매년 수여하고 있으며, 1973년 미국의 흑인지도자 앤드류 영을 시작으로 카터 대통령, 투투 대주교(남아공화국), 아키노 대통령(필리핀) 등이 수상했다. 킹센터는 1994년 12월 30일 김대통령을 18번째 수상자로 발표했었다.
1994년 김상만 동아일보 명예회장 별세
일민 김상만 동아일보사 명예회장 겸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이 1994년 1월 26일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였다. 김명예회장은 우리나라 정부수립 후 지금까지의 반세기 가까운 현대사에서 언론과 교육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인촌 김성수 선생의 장남으로 1910년 전북 부안군 줄포면에서 출생, 영국 런던대를 거쳐 40년 일본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지난 1949년 동아일보 이사로 언론계에 투신한 이래 45년간 동아일보에서 상무(55년) 전무(61년) 부사장(66년) 사장(71년) 회장(77년) 명예회장(81년이후)을 역임했다. 또 1946년 전북 고창여중 재단이사로 교육에 관여한 이래, 중앙고고려대 재단인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의 이사(55년), 재단이사장(82년 이후)으로 2세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에 대한 전대미문의 광고 탄압사태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언론정도를 지켰으며 계속된 권위주의 통치하에서 인권옹호와 언론자유쟁취에 앞장서 민주언론을 선양하고 그 기틀을 다졌다.
1991년 농림수산부 남북교역활성화 위해 북한과 교역 발표
1988년 철도박물관 개관
1985년 테레사 수녀 내한(~29일)
노벨평화사 수상자 테레사 수녀가 1985년 1월 26일 내한했다. 테네사 수녀는 첫날 밤을 안양에 있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원에서 지낸 후 성라자로 마을을 방문해 나환자들을 위로했다.
이 마을 성당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예수는 특별히 나환자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며, 그분이 계실 당시에는 나병이 불치의 병이었으나 지금은 치유할 수 있는 병”이라고 환자들을 격려했다. ‘살아있는 성녀’라는 이름대로 비공식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사랑을 나누었고 28일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를 방문, 김수환 추기경과 환담한 후 출국했다.
1983년 다나카 전 일본수상에 5년 구형
1980 동해서 조업 중이던 어선 2척 선원 24명 북한 경비정에 끌려감
1980년 이집트, 이스라엘 정식 국교 수립
과거 30년동안 4번의 전쟁을 벌인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1980년 1월 26일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이날의 국교수립이 있기까지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977년 11월 19일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30년동안 적대시해 오던 이스라엘을 방문함으로 촉발된 양국간의 해빙무드는 1978년 9월 17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중동평화 합의 문서 조인과 1979년 3월 26일 양국간의 평화조약 서명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날 국교수립이 있기 전날인 25일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3분의2를 이집트에 반환했다.
1978년 소련, 코스모스호 추락지역 방사능 발견
1976년 남북조절위원회 서울측, 북측에 남북조절위원회 정상화 촉구
1971년 일본, 북한 적십자 대표, 교포의 북송재개 합의
1971년 소련 인공위성 `비너스7호`, 금성으로부터 최초의 데이타 송신에 성공
1967년 야당통합을 위한 제1차 4자회담
1967년 영국 하원, 철도국유화 법안 통과
1965년 국회, 월남파병안 가결
베트남에 전투병력을 파견하는 파병안이 1965년 1월 26일 국회에서 가결됐다. 파병 병력은 2,000여 명으로 공병, 수송 및 자체방위부대 등이었고, 파병안은 재석 125명 중 찬성 106표, 반대 11표, 기권 8표로 통과됐다. 이날 국군 월남파병안이 통과 됨으로써 국방장관에게 1월 29일 임명장을 받은 조문환 주월한국군 단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첫 과업은 홍수피해복구작업이라 밝혔다.
1964년 9월 제1이동외과병원 병력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을 파견하면서 시작된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은 1964년 7월 15일 미국의 존슨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파병을 공식적으로 요청함으로 참전이 본격화됐다. 당시 미국은 주한미군의 베트남 이동안으로 한국정부를 위협하는 한편 한국군 봉급의 지급, 한국산 군수품 구매 등의 혜택을 제시하며 압박해왔다.
파병안에 따라 1965년 2월 2,000여 명의 비둘기부대가 파병됐고, 10월는 전투부대인 해병대 청룡부대와 육군 맹호부대가, 1966년 9월 백마부대가 베트남에 상륙했다. 한국군 파병은 1973년 3월 23일에 한국군이 모두 철수할때까지 8년여 동안 총 31만 2,853명이 참전했다. 참전기간 동안 한국군은 1,170회의 대규모 작전과 55만 6,000회의 소규모 작전을 펼쳤으며 5,000여 명이 전사하고 수만명이 부상당했다. 하지만 참전 대가로 벌어들인 10억 3,600만 달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1965년 월남에서 반미데모확대 계엄령 선포
1962년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 세상 떠남
1962년 한국-멕시코, 국교 수립
1960년 서울역 압사사고, 31명 사망
1960년 1월 26일 목포행 완행열차를 타려던 승객들이 서울역 계단에서 집단으로 넘어져 31명이 압사하고 4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망자 대부분은 설날을 이틀 앞두고 고향을 찾으려던 귀성객들이라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평소보다 3배나 많은 4천여 명이 승차했고, 출발시간 5분을 앞두고 개찰하는 바람에 먼저 열차를 타려는 승객들이 좁은 계단으로 무질서하게 몰려든 것이 사고원인이었다. 전형적인 인재였다. 교통부는 사망자 1인당 72만환을 지급하고 사고 다음날인 27일 교통부 앞광장에서 합동위령제를 거행했다. 검찰은 사고책임을 물어 서울역장과 여객주임 등을 구속했다.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 합병 합의
1956년 제7회 동계올림픽 개막(이탈리아 코르티나 담페소)
1951년 해병대 인천상륙
1950년 인도, 독립정부 수립
1950년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 조인
1948년 폴란드 피아니스트 프리드만 사망
1939년 제1회 전국 빙구선수권대회 열림
1934년 소련, 폴란드 불가침조약 조인
1910년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헤이그협약` 국제적으로 발효
1904년 문학평론가 조윤제 태어남
1902년 한국 화학의 선구자 이태규(-1992) 출생
1898년 한성전기회사 설립
1898년 1월 26일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됐다. 이근배와 김두승 두 사람의 명의로 ‘서울시내 전차, 전등 그리고 전화의 시설 및 운영권’ 허가를 받아, 고종을 비롯한 황실이 단독 출자해 세운 기업이었다. 자본금은 일화 30만엔 규모였다.
미국 콜로라도 중부철도회사 사장을 지낸 콜브란은 황실과 용역계약을 맺고 전차-전등의 건설과 운영을 위탁받았다. 결국 미국인의 소유로 넘어간 이 회사는 전차 운행에 필요한 선로 부설공사를 시작해 이듬해인 1899년에는 한국 최초의 전차 구간이 정식 개통됐다.
이때 건설된 구간은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에 이르는 약 8km의 단선 궤도였다. 곧 이어 민간에도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해 일반인들도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1904년 한성전기회사는 한미전기회사로 회사명칭을 바꾸었고 1909년에는 일본 국책회사인 일한와사회사로 넘어갔다.
1881년 프랑스, 출판의 자유 확대
1880년 더글라스 맥아더 출생
1879년 영국의 초상 사진작가 케머런 사망
1841년 영국, 홍콩에 대한 주권선언
1823년 종두법 발견한 에드워드 제너 사망
제너는 글로스터셔주 버클리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3세 때부터 의학을 공부하였으며, 1770년에 J.헌터로부터 2년간 외과학을 배우고, 세인트조지병원에 근무했다.
제너는 어떤 여성 환자로부터 "과거에 우두에 감염됐던 사람은 일생 동안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 는 말을 듣고 확인하기 위하여, 8세된 피프스라는 소년의 팔에 처음으로 종두를 실시하였다. 얼마 후 자연 감염의 경우와 똑같은 두진이 생긴 후 치유됐다. 그 후 그 소년에게 천연두 바이러스를 접종했으나 병이 발생하지 않았다. 즉 우두의 병원체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우두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 등이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이로써 종두법에 성공한 그는 1798년에 `우두의 원인과 효과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많은 의사들의 비난을 받았으나, 그 뒤 효력이 인정되어 1803년에 런던에 우두접종 보급을 위한 왕립제너협회가 설립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접종을 해주었다. 영국의회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상금을 내리기도 했다. 제너가 발명한 종두법은 그 후의 모든 백신 개발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후 제너는 면역학의 원조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1788년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첫 상륙
1787년 5월, 영국을 출발한 11척의 배가 7개월만인 1788년 1월 18일 오스트레일리아 동쪽 보타니만에 도착했다. 배에는 총독으로 임명된 필립 아더와 788명의 죄수, 250여 명의 군인과 가족이 타고 있었다.
필립은 보타니만이 배를 정박하는데 부적당하자 북쪽으로 올라가 1월 26일 잭슨항에 닻을 내렸다. 그리고 당시 자신을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낸 영국의 내무장관 시드니 경의 이름을 따 시드니라고 명명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770년 영국 탐험가 캡틴 쿡에 의해 알려져 영국 영토로 선언됐으나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776년 부터였다. 당시 미국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나 더이상 죄수들을 미국으로 보내지 못하게 되자 오스트레일리아를 새 유형지로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립이 끌고온 죄수들과 함께 시작된 시드니는 오스트레일리아 최대 도시로 성장했고, 1월 26일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날'로 정해져 국경일로 기념되고 있다. 179-년 두번째 죄수들이 보내지고, 이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이주민들이 몰려와 호바트(1803년), 브리즈번(1824년), 퍼스(1829년), 멜버른(1835년), 아델레이드(1836년) 등이 새로운 정착지로 개발됐고 이 6개의 영토는 1850년, 영국 정부에 의해 자치정부로 승격됐다.
1700년 북미 캘리포니아, 오레곤, 워싱턴 등지 진도 9.0 지진 발생
1593(조선 선조 26) 벽제관 전투에서 명나라 군사 왜군에 패함
1531년 포르투갈 리스본에 지진 3만 명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