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7월에 제주도를 혼자 다녀왔었는데, 꽤 좋았거든요. 후기를 쓴다 쓴다 하는게 어째 일년만에 쓰게 되네요;
* 혼자 떠나는 여행.
외국이면 또 모르겠습니다. 그쪽 문화나 교통이나 예산이나 이런 여러가지 준비할것들이 있겠죠. 그런데 국내에 혼자간다? 아무것도 필요없습니다. 그리고 같이 가는 일행도 없으니, 모든게 제 마음대로입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걷고 싶으면 걷고, 타고 싶으면 타고, 보고 싶으면 보면 됩니다. 두려울것도 거리낄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작년 제주도를 떠날때 저한테 있었던건 왕복 비행기표, 배낭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렌트카도, 숙소도, 먹어야할 맛집도, 봐야할 관광지도, 걸어야할 올레길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주도에 떨어져서 제가 제일 처음 한건, 바다가 어느쪽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상하다는듯이 쳐다보더니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냐고 되묻길래, 그저 바다면 된다고, 제일 가까운 바다가 어디냐고 답하자. 저쪽이라고 손짓을 해줍니다. 그래서, 그냥 그쪽으로 걸었습니다. 바다를 만나자, 바닷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걷고 또 걷다가 해가지면, 네이버에서 게스트하우스라고 치고 주변검색을 합니다. 제일 가까운 게스트하우스에 전화해서 방있는지 물어보고 있다하면 그리 가서 잡니다. 방이 없다하면? 다른데 가면 되죠. 다른 지역은 몰라도 제주도에선 게스트하우스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음날 깨선 또 바닷길을 따라 걷습니다. 걷다보면 올레길을 만나기도 하고, 그러면 올레길을 따라 걷기도 하다가, 내가 가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 올레길이 이어져 있으면 그냥 무시하고 도로 따라 걷기도 합니다. 걷다가 국도변 과일 파는 천막을 만나면, 염치 불구하고 기어들어가서 참외 하나 사서 깍아 먹고 앉아서 아줌마들이랑 질릴때까지 노가리를 깝니다. 아주머니 젊었을때 한 미모 했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총각 고생한다고 참외를 주실려고 하십니다. 참 정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시죠? 배낭 여행 안해본분들의 이야깁니다. 참외요, 무겁습니다. 그거 배낭에 넣고 걸으면 어깨 다 나갑니다. 당장 먹을수 있는 양을 넘는 무엇도, 배낭여행객들에겐 짐에 불과합니다. 극구 사양한다고 고생했네요.
걷다가 원두막 같은게 보이길래 그냥 기어들어가서 누워서 늘어지게 낮잠 한잠 잡니다. 한참을 자고 있으려니 주위에서 수근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젊은 총각이 왜 저러고 있냐고, 더럽다고, 냄새나는거 같다고 그럽니다. 살포시 눈을 떠보니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와선 도대체 뭐하는 새낀지 궁금해 합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저도 육지 가면 정장 입고 출근해서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사무직이라고 주장해봤자 콧방귀도 안뀔꺼 같아, 계면쩍은 웃음만 남기고 또 걷습니다.
걷다가 의외로 만난 예쁜 풍경에, 시원한 바닷 바람에 한참을 앉아 있기도 하고, 너무 더워서 햇볕을 피하고자 편의점에 들어가서 음료수 하나 마시기도 합니다.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면, 지나가는 버스 타고 갑니다. 어디로요? 모르죠 전. 버스가 어디로 가는진 기사님이 아실겁니다. 적당히 버스에서 앉아서 다리도 쉬고, 에어컨 쐬면서 더위도 가셨다 싶으면 내려서 또 걷습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산방산 탄산온천?을 만났습니다. 목욕이나 하고 갈까 하고 보니 거기도 게스트 하우스가 있네요? 게스트 하우스 사용하면 온천은 1회? 2회? 무료? 콜. 거기서 온천하고 하루 또 묵습니다. 여기 시설도 괜찮고, 온천도 괜찮도 여러모로 다 괜찮았던 기억이 있네요.
또 다음날 걷습니다. 걷다가 보니 목도 마르고 덥고 배도 고픕니다. 지나가다보니 횟집이 하나 보이는데 옆에 물회 전문이라고 적혀있네요. 콜, 들어가서 한치 물회 한그릇 먹고 또 걷습니다.
그런식으로 제주도를 한바퀴 다 돌아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기엔 시간이 너무 모자라더군요. 한 절반 정도 돌고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제주공항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게 제가 제주도를 혼자 즐기는 방법이였습니다. 개인의 성향이나 그때의 심정에 따라 달라질수 있겠지만, 저는 당시 온전히 혼자이고 싶었고,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여행이였습니다.
* 제주도의 게스트 하우스.
게스트 하우스라는 시스템을 처음 접한건 제주도입니다. 전에 남자 후배랑 같이 제주도를 간적이 있어서, 당시 게스트 하우스라는곳에 처음을 묵어 봤는데요. 이게 굉장히 매력적인 곳입니다.
자, 여행을 왜 떠나는가요. 전 여행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갑니다. 일종의 일탈이죠. 팍팍하고 머리아프고 바쁘고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즐거움만을 찾고 느끼기 위해 가는게 여행입니다. 게다가 제주도는 일단 비행기를 타고 갑니다. 비행기에 내려 제주공항을 나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게 야자수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풍경이죠.
그래서 제주도에 떨어지는 순간, 전 일상의 저는 완전히 잊고 버리고, 한사람의 여행자로만 존재할수 있습니다.
저만 그럴까요? 제가 겪어본바,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일상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주도에만 있는 시스템인지 까진 모르겠습니다만, 제주도의 게스트 하우스는 대부분 디너 라는게 있습니다. 의무 아닙니다. 원하는 사람들만 1인당 일정 금액(1만원 가량?)을 내고 디너에 참석할수 있습니다. 게스트 하우스 마다 제공해주는 음식의 종류가 다릅니다만, 대부분 적당량의 음식과 적당량의 주류입니다.
거기에 가면, 저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즐거움을 찾고 누리기 위해 제주도를 누비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선 사람들과 너무나 즐겁게 어울릴수 있습니다. 저도 낯을 꽤 가리는 편인데, 적어도 게스트하우스에선 그런거 없습니다. "오늘은 어디 다녀오셨어요" 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조합에 따라선 밤새 세상에 없는 친우를 만난냥 즐겁게 술잔을 기울일수도 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너무나 즐겁게 어울렸던 사람이랑, 일상속에서 저를 눈살 찌푸리게 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사람도 나도, 게스트하우스 안에서는 그저 즐거운 생각과 즐거운 기억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기에, 그렇게 마냥 좋을수 있는거겠죠.
실제로 저는 어느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조합이 너무 잘맞은 관계상, 다음날 새벽 6시에 한라산 등반이 예정되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2시까지 한라산을 마셔댔고, 다음날 한라산을 올라갔다 와서 그 멤버 그대로 다시 새벽 3시까지 한라산을 마신 적도 있었습니다. 말도안되게 힘들것 같지만, 그땐 힘들다는 느낌 보다는 그저 즐거웠습니다.
반대로 위에 적은 혼자 제주도를 찾았을땐, 온전히 혼자 있고 싶어서 디너는 일절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귀에 이어폰 하나 꼽고 들고간 책을 읽으면서 저녁시간을 보냈죠.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 가격에 적당한 편의를 제공 받으면서 쉴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건 제주도에서만 누릴수 있는 즐거움이겠죠.
디너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것도 게스트하우스만의 매력이고, 싼 가격에 적당한 편의를 제공받으면서 쉴수 있는것도 게스트하우스만의 매력입니다.
게스트하우스는 참으로 좋은곳이예요.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하신 분들은 꼭 한번쯤은 경험해 보시라고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뭐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제주도에서 사람 손이 많이 닿은 곳은 굳이 갈 이유가 없는것 같아요. 제주도는 그 자연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굳이 인간들이 부려놓은 재주를 감상하기 보다는, 그냥 제주도의 자연만 봐도 충분히 좋고, 그게 더 가치 있는것 같습니다.
제주도를 처음 한두번 갈때는, 트릭아트 뮤지엄이라던지, 테디베어 박물관이라던지, 그런 곳도 많이 갔었습니다. 그러다가 제주도 방문 횟수가 몇차례가 되기 시작하자 더 이상 그런곳은 안가게 되더군요. 유명한 자연경관인 성산일출봉이라던지, 섭지코지라던지, 용오름이라던지 뭐 유명한데도 좋고. 그냥 이름모를 바닷가라던지, 누구껀지 모를 목장, 여기가 어딘지 모를 산길이 더 좋았던것 같습니다.
당연히 제주도를 처음 가보시는 분들은, 유명한 관광지 가보세요. 안가보시면 아쉽잖아요. 그런곳도 충분히 돌아보시고, 여기서 제주도가 끝이라고 하진 마시고 다음부터는 그냥 제주도 자체를 즐겨보세요. 아마도, 제주도 그 자체가 훨씬 더 매력적일겁니다.
아,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제주도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절물휴양림입니다. 거긴 꼭 자연경관이라고 하긴 힘든데, 새벽이나 비오는날 사람 적을때 들리면 전 거기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안타까운건 절물휴양림 숙소는 너무 경쟁이 치열해서 아직 단 한번도 성공해본적이 없다는거..
올레길 좋아요. 좋은데, 의외로 으슥한 곳이 꽤 많습니다. 저도 올레길은 작년에 처음 걸어봤는데, 왜 올레길 여대생 살해사건 이런게 일어날수는 있겠다 싶더라고요. 정말 사람 한명만 걸을수 있는 으슥한 산길같은데가 꽤 포함이 되어있거든요. 물론 저처럼 덩치 산만한, 곰과 구분이 힘든 반인반수들이야 두려움을 주는 존재지 두려움을 느낄 존재는 아닙니다만, 여자 혼자 올레길을 걷는다? 꽤나 무서운 순간이 있을것 같습니다.
저도 으슥한 올레길을 걷다가 혼자 오신 여자분이랑 마주치면, 여자는 극혐 + 극도의 경계 어린 눈빛으로 저를 보시고, 전 아무짓도 안했지만 괜시리 굉장히 죄송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지나치게 되더라고요. 뭐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두렵겠죠.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나타난 놈이, 언듯보면 곰같은데, 자세히 보니 사람이니 얼마나 무섭겠어요. 차라리 곰이 낫지...
여기저기 게스트 하우스 들리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게스트 하우스 호스트들은 제주도 토박이들 보단 외지 사람이 훨씬 많더군요. 보통 일반 관광객들처럼 제주도를 한번 두번 오다가, 너무 매력있어서 거기 눌러붙어서 게스트 하우스를 차린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게스트 하우스 스텝들은 그 중간단계, 현실과 제주도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경우가 많고요.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그 매력을 살짝은 맛을 본것 같아서, 틈만 나면 제주도로 튈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달력이 나오자마자 휴일 체크하고, 이번에는 가을 제주다! 라며 1월달에 10월달 제주행 티켓을 이미 끊어놨습죠. 가을 제주는 또 어떠한지, 이미 수차례 가본곳임에도 불구하고 또 기대가 됩니다.
첫댓글 이렇게 글을 읽다 보니, 저도 한번 무작정 가보고 싶어지네요.
저도 요새 마음이 공허한데 연속 여행글을 보니 여행 가고 싶어져요.
게스트하우스의 매력이죠.
밤마다 파티
그리고 파티에서 만난 이성과의 썸씽
네? 게스트 하우스에서 썸도 있습니까? 전 늘 형님들의 애정만..ㅜㅠ
@theo 님 잘 아시면서...
되는사람만 된다는 사실...ㅜㅠ
성격상 여행계획을 다 짜구. 유명한 곳. 가야할 곳 다 찾아보고 가끔은 계획짜는 게 스트레스인데. 이런 여행 꼭 도전해보고 싶네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숙박하면, 스케줄이랑 유명식당, 그리고 숨겨진 명소들까지 더 해결되요.
저도 처음 여행가는 곳은, 한인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합니다.
아래 후쿠오카 여행기에 보이듯, 저도 어느정도는 계획을 잡고 가는 성격입니다만. 혼자 가는 여행은 그런거 그닥 필요없습니다. 어쩌면 그게 최대 장점이죠ㅋ
절물 진짜 최고입니다!! 운이 좋아 하루묵었었는데 너무좋은 기억을 줬던 곳입니다!!
저도 2년 전 여름휴가 때 탄산온천 갔다가 근처 게하가서 숙박했는데 예전 생각납니다..
저도 올 2월 혼자다녀왔는데 그때생각도 나고 좋네요. 제주도는 혼자가야 제맛인것같아요!
몇일전 와이프와 2살, 5살 아이들 델꼬 다녀왔습니다. 중국판이다 같은 값이면 해외를 간다 이런이야기도 많지만... 제주도 너무 멋진 곳입니다.
여기저기 다닐거 없이 제주도의 자연만 보고 와도 충분하다는 말 완전 동감입니다!!!
차라리 곰이 낫지 ㅋㅋㅋㅋ
아! 올해 안으로 꼭. 혼자서 배낭 메고, 제주도 여행 가야겠어요~~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공감 백프롭니다.
제주행 비행기에서 이글을 봤네요.
벌써부터 설레이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