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7일 오늘의 역사
2022년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제11회 가온차트뮤직어워즈'에서 8관왕
BTS는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11회 '가온차트뮤직어워즈'에서 '올해의 가수상' 음원 부문과 앨범 부문 등을 포함해 총 8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가온차트뮤직어워즈의 '올해의 가수상'은 분기별로 앨범상, 월별로 음원상을 준다.
BTS는 '올해의 가수상'(분기별 앨범상), 5월·7월·10월 '올해의 가수상' 3회(월별 음원상), '올해의 리테일 앨범상', '올해의 롱런 음원상', '올해의 소셜 핫 스타상', '뮤빗 글로벌 초이스상'등 총 8개 부분을 수상했다.
2022년 영국 12살부터 72년간 무면허 운전자 적발
영국에서 12살 때부터 70년 넘게 무면허 운전을 한 80대 남성이 붙잡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84살 남성 A 씨는 전날 노팅엄셔주 불웰의 한 편의점 근처에서 파란색 차를 몰다 차량번호인식(ANPR) 카메라를 쳐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경찰은 청력이 좋지 않고 서 있는 것을 힘겨워하는 A 씨를 조사하다 깜짝 놀랐습니다. A 씨가 무려 72년 동안 운전면허와 보험 없이 운전대를 잡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운전자가 1938년생인 것보다 더 믿을 수 없었던 건, 그가 12살 때부터 지금까지 무면허·무보험 상태로 운전을 했다는 것이라면서 "경찰로부터 차를 세울 것을 요구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2019년 호주 북서부 마블바 49.3℃ 60년만의 무더위, 야생마 90여 마리 물고기 100만여 마리 떼죽음
2019년 필리핀 남부 가톨릭교회 미사 중 폭탄테러 사망 20명
2016년 한국 축구 세계 최초로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확정.
2014년 충북서 AI감영 의심신고 첫 접수 닭,오리 88만3천여마리 살처분
2013년 브라질 남부 포르토 알레그레시 나이트클럽에 큰 불 242명 숨짐
2013년 인도 수마트라 폭우 산사태로 30명 사망 실종 이재민 4만 6천 명
2011년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도지사직을 잃다.
2010년 북괴, 대한민국 서해 백령도 NLL부근에 해안포를 발사.
2010년 스티브 잡스 터치스크린 태블릿PC 아이패드 첫 선
2010년 ‘호밀밭의 파수꾼’ 미국 소설가 J D 샐린저 별세
2010년 1월 27일 미국 소설가 J D 샐린저(Salinger·91)가 고향인 뉴헴프셔주 코니쉬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샐린저는 전 세계적으로 65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다.
샐린저는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은둔생활을 고집했던 작가로 유명하다. 지난 45년간 한 편의 소설도 발표하지 않았고,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가족, 특히 딸들로부터 억압적이고 불쾌한 괴짜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자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찾아온 스티븐 스필버그를 문전박대해 돌려보내기도 했다.
1919년 뉴욕에서 폴란드 출신 유대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샐린저는 1932년 뉴욕 맨해튼의 맥버니 중학교를 성적불량으로 퇴학 당하자 2년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이때의 경험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펜시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는 사건의 모델이 되었다. 1940년 ‘??은이들’이라는 단편을 발표하며 등단한 샐린저는 2년 후 보병으로 2차대전에 소집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고, 군생활중에도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1951년 발표한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그는 전후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홀든 콜필드가 학교에서 퇴학당해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48시간 동안의 방황을 그린 이 작품은 당시의 10대들이 사용하는 거침없는 비속어의 사용과 학교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아 논란을 빚었다.
특히 1980년 비틀즈 맴버 존 레논을 살해한 마크 채프먼이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중·고등학교에 따라 제각각 금서 목록과 권장도서 목록에 동시에 지정할 만큼 찬반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지금도 해마다 30만부 이상 팔리며 청소년들이 가장 사랑하는 책으로 남아 있다.
2010년 미국 진보 역사학자 하워드 진 별세
진이 1980년 발표한 '미국 민중사'는 미 고교·대학에서 역사교과서로 쓰이며 학술서적으로는 드물게 수백만 부가 판매됐다. '오만한 제국'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 등 다른 책들도 지식인 필독서로 여겨지며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1922년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난 진은 20대 초반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했다가 환멸을 느끼고 반전주의자가 됐다.
흑인 여성만 다니던 스펠먼(Spelman)대에서 역사학 교수를 맡던 30대 시절엔 인종차별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더 컬러 퍼플(The Color Purple)'로 유명한 앨리스 워커(Walker)가 당시 진에게 배웠다. 보스턴대 교수로 옮긴 후엔 놈 촘스키(Chomsky· MIT 언어학과 교수)와 함께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벌였고, 1988년 은퇴일까지 교내 간호사들의 파업 현장에 피켓을 들고 섰다.
진은 배우 벤 애플릭, 맷 데이먼이 어릴 때부터 옆집에 살아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도 진의 추종자였다. 미 주간지 '더 네이션(The Nation)'에 지난 13일 남긴, 버락 오바마(Obama) 미국 대통령을 비난한 에세이가 진의 마지막 글이 됐다.
2009년 독도경비대원 1명 실종
2009년 1월 27일 새벽 독도에서 근무 중이던 독도경비대 통신반장 이상기(30) 경사가 실종돼 경찰이 수색에 나선지 하루만인 28일 오전 10시5분쯤 수색 작업을 벌이던 해난구조대 다이버가 독도 등대 뒤편 옛 접안시설 주변에 있는 얼굴바위 틈 사이에서 이 경사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북경찰청에 따르면, 27일 오전 2시30분쯤 이 경사와 함께 근무하는 독도경비대 부대장 이모(35) 경장이 이 경사가 없어진 것을 발견, 상황실에 수색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경비대는 해경 소속 5000t급 경비함과 헬기 등을 지원받아 독도주변 해역과 독도 내 각종 시설물에 대한 수색을 벌였다. 독도경비대 관계자는 “이 경사는 순찰 및 근무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레이더 등 통신시설을 점검하러 다닌다” 며 “이날도 시설점검 도중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뎌 바다로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이 경사의 시신에는 추락할 때 생겼을 것으로 보이는 외상 외에 별다른 상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사는 의무경찰 복무도중 화재 현장에서 민간인을 구해 경찰관으로 특채된 모범 경찰관으로 부산 북부경찰서 등에서 근무하다 2004년 8월 울릉도로 전입했으며, 이달 16일 독도경비대에 배치됐고 3월 중순께 울릉도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2008년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세상 떠남
32년간 철권통치 펼치다 1988년 반정부 시위로 물러남. ‘개발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으나 국제투명성기구(TI)는 ‘20세기 가장 부패한 정치인’으로 꼽음
2003년 남북한 군사분계선 통행 타결. 폭 10m임시도로 개방
2003년 휴대전화 ‘010‘ 통합. 통신위서 결정
2004년 1월 1일부터 모든 휴대전화 신규가입자의 식별번호가 ‘010’ 으로 통일되며 010 사용자끼리는 ‘oooo-oooo’식의 8자리 고유번호만 입력해 통화할 수 있다. 또 기존 가입자도 원할 경우 010으로 바꿀 수 있다.
통신위원회(위원장 윤승영·윤승영)는 27일 정보통신부가 상정한 이동전화 식별번호 010 통합 방안과 번호이동성제도를 내년 1월부터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통신위는 또 1위 사업자부터 6개월씩 번호이동성을 순차적으로 실시하기로 한 정통부안에 대해 실시 간격을 정통부 장관에 일임했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부와 SK텔레콤 사이에 논란이 됐던 ‘010’ 이동전화 식별번호 통합과 번호 이동성 도입문제가 일단락됐다.
번호이동성이 실시되면 가격이나 서비스를 비교해 자신이 원하는 기존 번호를 그대로 갖고 이동통신 회사로 옮겨갈 수 있다. 다만 특정업체에 가입자가 몰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간격을 두고 일방향 이동만 허용한다. 실시 간격은 당초 6개월이나,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신위의 이번 결정에 대해 2,3위 업체인 KTF와 LG텔레콤은 환영한 반면, 선두업체인 SK텔레콤은 불만을 표시했다. SK텔레콤은 정통부가 010식별번호통합과 번호이동성 시차별 실시안을 마련하자 “특정업체 봐주기”라며 반발했었다.
1994년 빌리 그레이엄 미국목사 평양 방문
1998년 WHO 첫 여성사무총장에 브룬틀란트 선출
유엔 전문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 사무총장이 탄생했다. WHO 이사회는 1998년 1월 27일 비밀투표를 통해 그로 하를렘 브룬틀란트 전(前) 노르웨이 총리(58)를 신임 사무총장으로 선출했다.
브룬틀란트는 12년 간 노르웨이 총리를 3차례 지낸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불굴의 신념과 리더십에다가 특히 공중보건 환경 여권분야에서 국제적 명성을 쌓아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선출되기 전부터 차기 유엔 사무총장 감으로 꼽혀왔다. 브룬틀란트는 당선소감을 통해 "보건문제를 세계 각국의 주요 정치의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빈곤과의 전쟁, 홍역 등 전통적 질병과 홍콩조류 독감 같은 신종 질병의 퇴치, 재정난에 직면한 WHO의 개혁 등을 강조했다.
1965년 하버드에서 공중보건학을 전공, 오슬로시 보건책임자로 있을 때 환경장관이 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41세 때인 1981년 노르웨이 최초의 여성총리이자 최연소 총리로 등장하면서 세계적인 뉴스 메이커가 됐다. 식을 줄 모르는 국내 인기에도 불구하고 1996년 후계자에게 정권을 물려주기 위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1997년 마스하도프, 체첸 대통령에 당선
1997년 1월 27일 실시된 체첸 공화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족독립당 당수인 아슬란 마스하도프(46) 전 총사령관이 당선됐다. 은발에 온화한 인상의 마스하도프는 구소련 대령 출신으로 화력이 절대 열세였던 체첸군을 이끌고 러시아군을 끈질기게 괴롭혀온 뛰어난 전략가였다.
체첸 북부에서 태어난 마스하도프는 러시아에서 정규 군사교육을 받고 러시아군 포병 연대장을 지냈다. 게릴라전의 명수로 알려진 그는 체첸이 독립을 선언한 지난 1991년 체첸 반군에 합류, 1996년 3월 반군 주력부대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때까지 대러시아 항쟁을 계속해 왔다.
그는 또 러시아 대통령 특사로 체첸에 파견된 알렉산드르 레베드를 상대로 `무인 대 무인`의 협상을 벌여 체첸의 경제적인 자립을 위한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유연한 협상가의 면모도 보여 강온양면을 다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1996년 프랑스, 남태평양의 팡가투파환초에서 시라크대통령 취임이후 6번째 핵실험
1995년 한국-세이셸 국교 수립
1994년 빌리 그레이엄 미국목사 평양 방문
1994년 김대중 전민주당대표,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 설립
김대중 전민주당대표가 이끄는 아태평화재단이 1994년 1월 27일 재단 현판식과 창립기념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김이사장은 이날 재단 출범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촉구하고 북한내 상응한 기관과의 합동연구 계획을 밝히는 등 통일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본격적으로 피력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창립기념식 및 문화행사는 여의도 63빌딩에서 국내외 인사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 동안 성대하게 거행됐다. 해외고문인 코라손 아키노 前 필리핀대통령 축하연설과 카터 前 미국대통령과 고르바초프 前 소련대통령은 각각 대독된 축하메시지를 통해 아태재단과의 긴밀한 상호협력을 다짐했다.
1989년 김현철 전 내각수반 사망
1989년 장세동 전 대통령 경호실장, 직권남용혐의로 구속
1989년 영국 항공기 설계가 소프위스 사망
1987년 김태홍, 신홍범, 김주언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가모독죄로 기소-군사독재 정권의 보도지침 폭로 파문
1983년 소련, 중부유럽 비핵화지대 제의
1982년 진해만 오염방지를 위해 첫 그린벨트로 설정
1982년 페루 동부지방에 집중 폭우 600명 사망 5000명 실종
1981년 인도여객선 탐포나스 호 자바 해에서 화재로 침몰 580명 사망
1978년 이집트-이스라엘 중동평화원칙선언에 합의
1977년 국내 최초 남성이 간호학과(서울대) 입학
1973년 민주통일당 창당(대표 양일동)
1973년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파리평화협정 조인
베트남 평화협정이라고도 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1973년 1월 27일 남베트남(월남), 북베트남(월맹), 남베트남 해방전선(베트콩)의 외무장관과 미국무장관이 만나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파리평화협정에 조인했다. 파리평화협정은 1월 23일 북베트남 대표 스안 도이와 미국 대통령 보좌관 키신저가 가조인한 바 있다.
파리평화협정은 1. 조인후 60일 이내에 미군 철수 2. 포로 상호석방 3. 남베트남의 사이공정부, 남베트남 해방전선과 제3세력의 3자에 의한 민족화해일치 전국평의회 설치 등을 결정했다. 이 휴전의 담보를 위해 키신저는 월맹에 40억달러(20억달러는 미국 직접원조, 20억달러는 IBRD 차관)의 원조를 제공, 이것으로 피폐한 월맹의 경제 재건을 돕기로 했다. 키신저는 보다 확실한 휴전을 담보하기 위해 휴전감시위원단인 캐나다, 이란, 헝가리, 폴란드 4개국을 서명에 참여시켰다.
한편 월맹에서는 인질형식으로 하반라우 외무차관이 150명의 고문단과 함께 사이공에 체류했다. 이제까지 미국이 베트남전에 투입한 전비는 1300억달러였고 사망 4만4천명, 중경상자 30만3천명이었다.
1971년 김대중후보 자택 폭발물사건 발생
1971년 과테말라의 대통령(1951-54) 아르벤스 사망
197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국내 발효
1971년 일본 고분에서 백제시대 칠지도 발견.
1967년 미국-영국-소련, 우주평화조약 조인
1967년 미국 우주왕복선 아폴로1호 조종사3명 사망
우주비행사 비르길 그리솜, 에드워드 화이트2세, 로저 채피가 1967년 1월 27일 밤 우주선 아폴로1호에 일어난 화재에 휩싸여 사망했다.
이들 3명은 오는 2월 21일 처음으로 발사될 아폴로우주선의 승무원으로 14일 동안 지구궤도를 돌 예정에 있었으며 이에 대한 본격적인 모의실험 도중 지상에서 사망했다.
폭발은 엔진 산소공급장치 및 에어컨디션기계가 장치된 아폴로우주선의 증심체에서 일어났다.
희생자들은 케이프 케네디 우주발사 센터의 34호 발사대에 있던 새턴1 로켓 위에서 우주비행 중에 취할 자세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긴급구조대가 그들에게 접근을 시도했으나 조종실에서 뿜어나오는 짙은 연기로 접근할 수 없었다
1966년 핵무기 확산 방지 위한 제네바 군축회담 개막
1965년 월남 쿠데타로 칸 재집권
1964년 프랑스, 중국정권 승인
1963년 민정당 발기인대회 개최
1961년 민주당 소장파 32명 신풍회 결성
1959년 프라우다지 이동준 기자 판문점에서 귀순
1959년 1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96차 군사정전위원회의 도중 소련 프라우다 신문사의 평양지국 번역기자 이동준씨가 `나는 자유를 선택한다`며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유세계로 탈출했다.
남루한 남색 양복에 흑색 외투를 걸치고 레닌 노동모를 쓰고 회담장소에 나타났던 이씨는 이날 아침 회담이 시작된 지 약 5분후인 오전 10시35분경 때마침 공산대표가 자유세계에 대한 욕설과 비난을 한참 퍼붓고 있는 동안 북한기자들과 군인들의 눈을 피해 회담장소건물 바로 옆에 있는 유엔군전방기지 사무소로 넘어왔다. 이후 이씨는 그가 입고 있던 낡은 옷을 유엔군복으로 갈아입고 극비리에 서울로 왔다.
이씨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1956년 프라우다지 번역기자로 들어갔던 것도 오늘의 성공이 목적이었다고 말하면서 북한의 실정을 폭로했다.
1958년 미국, 소련 문화교류협정 조인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 히트곡 `브레이크 호텔` 발매 시작
1953년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 롤백정책(소련포위정책) 언명
1951년 미국, 네바다에서 원자폭탄실험 개시
1950년 미국, 나토가맹국과 상호방위협정 체결
1950년 중국 공산당 중국본토 완전 점령
1948년 김구 유엔한국위원회에서 남북주둔군 철수 후 자유선거 실시가능 주장
1945년 소련군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1945년 1월27일, ’20세기의 치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됐다. 소련군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700kg이나 되는 머리가락, 사람의 골분(骨紛),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의치와 안경태였다. 5kg으로 1000명을 살상할 수 있는 ‘사이클B’ 가스가 사용된 흔적도 발견됐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가스실 처형은 1944년 11월부터 중단됐고, 죄수들도 5000여명의 환자들만 남기고 걸을수 있는 6만명은 모두 독일로 옮겨졌다. 아우슈비츠에 있는 3개 수용소 중 이날 소련군이 해방시킨 수용소는 독일군이 미처 파괴하지 못한 곳이고 이보다 20배나 큰 인근의 비르게나우 수용소는 독일군의 파괴로 흔적만 남았다.
1940년 4월 아이히만 히틀러의 지시로 건설된 아우슈비츠에서 가스학살이 시작된 것은 이듬해 9월부터. 유대인 절멸을 결정한 1942년 1월부터는 이른바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가 자행됐다.
150만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떼죽음당한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전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 전쟁이 끝난 1947년에 처형됐다. 이곳에서 처형된 사람은 유럽 각지에서 끌려온 유대인이 90%였다. 집시, 여호와의 증인 신도, 동성연애자 등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1926년 영국 베어드, 세계최초로 텔레비전 실험에 성공
1926년 1월 27일 스코틀랜드 출신 존 베어드가 영국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 앞에서 세계 최초의 텔레비전 실험에 성공했다. 회원들 앞에 놓여 있는 인형이 무선장치를 통해 멀리 떨어진 브라운관 화면에 영상으로 그대로 보여진 순간이었다.
사진처럼 평면적이지 않고 인형에 햇빛이 비치는 부분과 그림자 부분이 선명하게 구별되는 입체적인 영상이었다. 비록 주사선이 30개에 지나지 않고 초당 프레임도 10개에 그치는 조잡한 형태였지만 베어드는 이 장치를 ‘텔레비전’이라고 명명했다. 베어드는 이에 앞서 1924년 텔레비전 방송으로 물체의 외관을 전송했고, 1925년에는 인간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만한 화상으로 전송한 바 있다
1924년 이탈리아-유고슬라비아 동맹조약 조인
1921년 한인기자단체 무명회 발족
1901년 이탈리아 오페라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사망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가 1901년 1월 27일 사망했다. 1813년에 태어나 향년 88세를 살다간 베르디의 삶은 ‘오페라에 의한, 오페라를 위한, 오페라의 인생’그 자체였다.
신화적, 초자연적 소재보다는 나약한 인간 내면의 본성에 관심을 기울인 그의 불후의 명작들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오텔로’ ‘리골레토’ 등은 오늘날 오페라 무대서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가장 크고 웅장한 산을 쌓아올린 거장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음악가가 아닌 그의 개인적 삶은 거장으로서 온갖 부와 명예를 누린 특별한 삶은 아니었다.
농부의 피가 흐르는 베르디는 이탈리아 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작은 시골마을인 고향 부세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타가타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그는 틈나면 책을 읽거나 작곡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냈다. 특히 농가를 방문하여 이웃들과 농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베르디는 생전에 발표하는 오페라마다 대부분 최고의 성공을 거두어 대도시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더욱이 이탈리아의 영웅으로까지 추앙받으며 명예욕을 충족시킬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세속의 욕심에 얽매이지 않고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유롭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1881년 독립운동가 김규식 출생
광복후 미군정의 주된 관심은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임시정부 수립과 신탁통치’안을 맡길 지도자 선정이었다. 김구는 고집스럽게 반탁을 주장해 일찌감치 대상에서 제외됐고, 이승만 역시 반공·반소의 극우파로 비쳐져 배제됐다.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인물이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이었다. 좌우합작운동을 펼치고 있던 우사의 노선이 미국의 의도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1881년 1월 27일에 태어난 우사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10여 년간을 후진양성에 힘썼으나 나라의 명운이 다하자 중국으로 망명,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파리강화회의(1919년)에 참가하고, 이승만과 함께 미국 조야를 상대로 독립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22년간 중국에 머물며 임정 부주석으로 활동했다. 광복 후 귀국한 우사도 초기에는 반탁 대열에 동참했지만, 남북분단을 우려해 ‘임시정부 수립’ 우선쪽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이를 위한 좌우합작이 그가 풀어야 할 선결과제였다.
1947년 4월 7일, 미군정이 대통령직 수락을 요청했지만, 김규식의 대답은 뜻밖에도 ‘노’.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이승만의 남한단독정부수립 노선이 힘을 받자 우사는 북행까지 감행하며 좌우합작 돌파구를 찾으려 했으나 이도 실패하는 바람에 낙담해 있던 중 6·25를 맞아 납북됐다. 1950년 12월 평남 만포에서 69세로 숨졌다.
1880년 발명왕 에디슨 백열전구 발명특허 취득
1874년(조선 고종 11) 경복궁 자경전-순희당-자미당 등 400여간 불탐 창덕궁으로 옮김.
1832년 영국 동화작가 루이스 캐롤 태어남
1814년 독일 철학자 피히테 사망
1808년(조선 순조 8) 부산 금정산성 완공.
1756년 오스트리아 작곡가 모차르트 출생
1250년(고려 고종 38) 승천부에 궁궐 창건.
98년 제13대 로마제국 황제 트라야누스 즉위
98년 제12대 로마제국 황제 네르바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