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삼례문화예술촌의 사랑스러운 작품들
(기행 수필 제2편)
루수/김상화
하늘은 비구름으로 검게 가렸다. 가랑비가 얄밉게도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오늘 우리가 등산하기로 한 내변산은 시간이
맞지 않아 오르지 못했다. 또 비가 내린다고 산을 오르지 못하게 통제까지 한다. 그래서 등산을 하지 못하고 아쉬움만 가슴에 안고 절 구경만
했다. 내소사는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절이다. 절 마당에는 두 그루의 감나무에 가을의 상징인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보기만 해도
아름답다. 절을 모두 구경하고 삼례를 가자고 한다. 웬 삼례냐고 의아했다. 버스는 음산한 날씨를 가르며 한참을 달린다. 도착한 곳은 허름한 창고
몇 동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그때까지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창고 있는 마당으로 가니 필자가 까마득한 어린 시절에 보았던
달팽이를 대형으로 만들어 기어가는 장면을 연출 해놓았다. 또 한편에는 이것도 필자가 어릴 적 봄이면 논에서 맹꽁맹꽁하며 합창하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맹꽁이 가족이 정겹게 놀고 있는 장면을 만들어 놓았다. 초저녁이면 맹꽁이들 합창에 귀가 따가워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농약으로 인해 멸종되어 맹꽁이 자체를 구경하지 못한다.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지금은 그 소리가 가끔은 그리울 때가 있다.
벽면에는 삼례문화예술촌이란 빨간 글씨로 쓴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도대체 허름한 이 창고 안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의문을 품고 창고를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품을 손작업으로 만들었을까? 하며 하나하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예술의 세계가 펼쳐진다. 모두 수작업이라고 하니 더욱더 놀랍다. 자료가 무엇인지는 만져볼 수가 없어
모르지만, 사람의 입술도 다양하게 묘사해 놓았다. 더욱 놀란 것은 눈을 무슨 자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교하게 만들어 놓았다. 새가 나는 모습,
인간의 상상력, 사람을 동물화해서 아기자기하게 표현해 놓았다. 이 허접한 창고에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품이 숨 쉬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완주 삼례문화예술촌의 심가영 심가희 쌍둥이 자매 관장의 노력과 뒷받침을 해주는 완주 군수님을 비롯한 지자체 님들께 뜨거운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 세계로 뻗어 나가 길 기대도 해봅니다. 다음은 이곳에 써놓은 맹꽁이 이야기를 너무도 구수해 리커피 해본다.
삼례 예술촌 맹꽁이 터줏대감 이야기를 정겹고도 재미있게 써 놓았다.
맹~꽁~맹~꽁
저는 밤에만 활동하고 비가 올
때(5~8월) 땅속에서 나와 울어대며 짝짓기를 합니다. 사람들은 저를 희귀한 동물로 지정하여 멸종 위기종으로 보호를 하고 있답니다. 이곳(쌀
창고가 들어서기 이전)은 만경강으로 이어지는 습지와 소류지(웅덩이)가 이어져 비가 오면 맹꽁이, 개구리, 두꺼비 가족들이 함께 놀았던 최고의
생태 터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터전을 갈아엎고 파헤쳐가기 위한 양곡 창고를 만든 것이지요! 쌀을 보호하기 위해 화학 약품을 쓰고
쌀을 옮기는 기계 소음으로 더이상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꽉 막힌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우리 맹꽁이 가족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고
땅속 깊이 숨어 어렵게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1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단단하게 굳어졌던 땅이 물길이 열리고 신선한
공기가 피부를 감싸고 돌았습니다. 깜짝 놀라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예쁜 연못과 아름다운 꽃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변한 환경에
비를 맞으며 우리는 맹~꽁~맹~꽁~ 목이 터져라 울어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생명처럼 물길이 흐르고 새로 만들어진 작은 연못은 우리들의 친구
청개구리와 두꺼비들과 함께 놀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왔던 터전을 빼앗아 쌀 수탈 창고로 이용되었던 이곳이 예술촌으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더불어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연못과 물이 있어 행복합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터전을 지켜가며 오래오래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비 내리는 여름밤이 되면 삼례 예술촌의 맹꽁이합창단 노랫소리가 삼례 뜰에 널리 널리
퍼져나갈 것입니다.
글: 맹꽁이
협조: 방촌마을 최인기 할아버지
자문: 시민 행동 21 한국 양서 파충류 보존
네트위크
완주구 삼례 양곡 창고는 192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4동, 조적조(組積造) 2동으로 구성된 건축물이다.
건축물의 외벽 및 내부 일부와 지붕 트러스 차양 등이 잘 남아 있으며, 벽의 위쪽에 있는 작은 창, 지붕 위쪽의 환기 시설 등이 창고 건축의
전형적인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이 창고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하여 그 쌀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였다.
(조적조(組積造)=건축 양식 중 하나로 돌, 벽돌, 콘크리트 블록 등으로 쌓아 올려서 벽을 만드는 건축구로 양식을
말한다.)
삼례문화예술촌에 대한 이야기다. 삼례읍은 만경강 상류에 위치하여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한 만경 평야의 일원을 이루는
지역으로 일제강점기 군산, 익산, 김제와 더불어 양곡 수탈의 중심지였다. 양곡 수탈 중심에 있었던 삼례 양곡 창고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대지주
시라세이가 1926년 설립한 이엽사농장 창고로 추정되며, 완주지방의 식민 농업회사인 전북농장, 조선농장, 공축농원과 함께 수탈의 전위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914년 보통 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삼례역 철도를 이용해 군산으로 양곡을 이출하는 기지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군산 일대 조석 간만의 차가 커서 만조시에 삼례비비정마을까지 바닷물이 유입되어 들어 오면 배로도 양곡을 수탈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삼례역 주변 주민들은 수탈을 위해 밤마다 "한말한섬" "한말한섬"쌀 세는 소리를 들으며 나라 잃은 아픔과 배고픈 설음을 눈물로 삼켰다고
한다.
삼례 양곡창고는 1920년대 신축되어 2010년까지 양곡창고로 사용되다가 저장기술 발달 등 환경 변화로 기능을 잃게
되었으나, 지역 생활을 위해 완주군에서 매입하여 문화공간으로 조성하였다. 2013년 6월 5일 문화와 예술이라는 새로운 생명을 담은
삼례문화예술촌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삼례문화예술촌 내에는 모모 미술관, 카페 뜨레, 책공방 북아트센터, 디지털 아트관, 김상림목공소,
삼례책마을 등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 이 지역은 역사와 문화를 잇는 문화 예술촌을 중심으로 막사발미술관(구
삼례역사)과 책마을 등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함께 하는 문화 마을로 조성되어 세계적인 명소로 발돋움하는 꿈을 꾸고 있다.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필자는 의심치 않는다.
이곳을 오게 된 동기는 본 산악회의 리더이며 사진작가인 장선덕 본부장 덕분이다. 시간이 되면 회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볼거리를 안내해서 지식을 넓혀주려고 노력한다. 정말, 이 산악회의 독보적인 보배와 같은 존재다. 삼례문화예술촌을 이끄는 심가영
심가희 쌍둥이 자매 관장과 두터운 인연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오게 된 동기였다. 관람을 다 한 뒤에는 향기로운 차도 한 잔씩 서비스를
받았다. 물론 관람료도 받지 않았다. 입장료는 성인 1인당 2,000원이라 한다. 커피는 5,000원에서 6,500원까지 있다. 우리는 1인당
약 7,000원이란 거금을 장선덕 본부장 덕분에 서비스를 받은 것이다. 보기 힘든 예술품을 관람했지요. 차까지 서비스를 받았으니 너무도
고마웠다. 1편에서 서술했듯 인연이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심가영 심가희 쌍둥이 자매 관장의 프로필을
적어본다. 미모도 아름답지만 고전 무용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우리나라를 알리고 빛낸 쌍둥이 자매 무용수다. 금림무용단을 이끌고 있다. 전주
대사습 놀이 장원과 차석을 하였으며 세계 엑스포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단을 경영한다. 교수로도 활약하고 있다. 제1회 대한민국 농악제을 열었다.
삼례문화예술촌 대표이며 "40년 해외 공연으로 나라를 선양한 자랑스러운 분들이다. 심가영 심가희 쌍둥이 자매님 오늘 참으로 감사합니다.
2018년 10월
02일
첫댓글 소생은 군생활을 익산 금마면에 있는 육균제이훈련소 후방기연대<현재는 제7공수>에서 3년간 복무했었습니다.
속된 말로, 이리가면 이리, 저리가면 전주, 그리 가면 금마라고 해서 교통(?)의 요세였습니다. 삼례는 전주 가는 길목 농촌 평야 들녘
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냥 평범했던 곳에 이렇게 유명한 삼례문화예술촌이 생겻네요. ㅎㅎ 작가님의 좋은 기행문 감사합니다.
최대감님 반갑습니다
금마에서 군 생활을 하셨군요
저도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맞이고 후반기 교육으로 금마에서
3개월간 훈련을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 금마에서 복무를 하셨다니 60년대 훈련 생활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그곳의 지리는 잘 모릅니다.
최대감님 감사합니다. 추위가 몰아닥쳤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소생, 61년도에 입대하고,64년도에 제대하였네요. ㅎㅎ
저하고 연대가 비등합니다
더욱 반갑습니다
저는 청주출신인데 서울 병력과 함께 교육을 받았습니다
좋은 인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