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일 : 2024년 7월 6일
31번째 성지순례는 1.영광 순교자 기념 성당(영광성당) → 2.고창 개갑장터 순교 성지 입니다.
순례를 떠나면서 바치는 기도
† 자비로운신 주님
약속의 땅을 향하여 떠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친척 엘리사벳을 돕기 위하여 길을 나선
겸손 과 순명의 여인 마리아의 발걸음을 인도하셨듯이
지금 길을 떠나는 저희(신 다빗, 김 소화데레사, 신 미카엘)를 돌보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시어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또한 주님께서 언제나 저희(신 다빗, 김 소화데레사, 신 미카엘)와
함께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
길에서 얻는 기쁨과 어려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게 하시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과 믿음, 사랑의 생활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나이다.
아멘.
" 피 흘려 주님께 영광을 바친 영광 순교자들의 얼을 이어받아 "
영광 순교자 기념 성당(영광 성당)
[광주대교구]
영광 지역에 복음이 처음 전해진 것은 1791년 신해박해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먼저 호남의 사도인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유관검 형제의 모범과 애긍을 통해 그들이 소유한 전답의 소작인과 마름들뿐 아니라 가난한 이웃에게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윤지충 바오로를 통해 전라도 각지에 복음이 전파되는데, 그와 인척 관계를 맺은 영광의 이우집 또한 유관검의 권유로 입교했습니다. 1791년 신해박해로 고산 저구리로 들어와 교우촌을 형성한 윤지헌 프란치스코를 통해서도 복음이 전해졌는데, 그를 찾아와 교리를 배우고 입교한 이들 중에 영광의 윤종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장에 살던 최여겸 마티아의 열정적인 선교를 통해서도 전해졌는데, 그가 입교시킨 많은 사람 중에 영광에 살던 조카 최일안과 영광 고을의 양반인 이화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광 지역은 호남에서 천주교가 비교적 일찍 그리고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영광 지역 신자 중 1801년 신유박해 때 이화백과 복산리의 양반 오씨가 영광에서 순교했고, 이우집과 최일안은 전주에서 처형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종집과 남조이는 황해도의 문화와 운율로 각각 귀양 갔고, 강완숙 골룸바의 딸 홍순희 루치아가 영광으로 귀양 왔습니다. 병인박해 중인 1867년 영광 뜸밭 출신으로 공주 국실에 살던 김치명이 공주에서 교수형으로, 1872년 한때 영광 신어실에 살았던 유문보 바오로가 나주에서 옥사로 순교했습니다. 여러 기록으로 보아 당시 영광 지역의 교세는 전라도에서 세 번째로 컸다고 보입니다.
1937년 영광에 본당이 처음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해방과 전쟁의 와중에 한때 영광 본당은 폐쇄되어 산정동 본당과 함평 본당의 공소가 되었습니다. 60년대 들어 신자가 늘자 1965년, 전쟁 당시 전소된 성당 자리에 새 성당을 재건하고 12월에 공소에서 본당으로 재승격되었습니다. 영광 순교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광주대교구는 2010년 9월 영광 성당을 ‘영광순교자기념성당’으로 지정했습니다. 2014년 6월 영광순교자기념성당을 봉헌하고, 본당 설립 80주년을 기념해 성당 1층에 ‘영광순교자기념관’을 마련했습니다. 이 기념관은 특별히 영광의 여섯 순교자와 세 유배자 그리고 초기교회 신자 둘을 기리고 있습니다.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지정 2007년 9월 1일 제18대 주임으로 부임한 문병구 스테파노 신부는 영광 지역 순교자 역사 발굴 작업을 시작하고, 2009년 3월 27일 영광 순교자 고찰(1801년 신유박해) 학술회의 개최했다. 이러한 노력에 이어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2010년 9월 10일자 공문을 통해 신유박해 때 목숨을 잃은 영광 지역 순교자들을 기리고자 순교터와 인접한 영광 성당을 ‘영광순교자기념성당’으로 지정했다. 여러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정문 앞(현 전남 영광군 영광읍 도동리 석장승 앞 남쪽 개울가 인근)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영광에서 순교한 이화백과 오씨가 처형된 순교터로 확인되고 있다. 이곳은 영광 읍성 밖으로 물이 흐르는 홍교가 있고,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옛 장터이며, 우시장이 있던 곳으로 1832년에 잡귀 · 액 · 살 등 부정한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석장승을 이곳에 세운 것도 순교터 추정의 근거가 되고 있다.
2011년 7월 28일 제19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상준 유스티노 신부는 그해 11월 ‘영광순교자현양사업회’를 구성하고, 2013년 7월 27일 영광순교자 기념성당 신축 기공식을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의 주례로 거행했다. 2014년 6월 20일 “영광성당 75년사”를 발간하고, 그해 6월 28일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축복식을 가졌다. 기념성당은 타원형 평면으로 교회를 상징하는 배와 물고기 이미지를, 등대 형태의 종탑을 통해서는 영광을 비추는 그리스도의 빛을 표현하고 있다. 기념성당 정면의 순교자 기념문은 성과 속의 경계로서 네 개의 칼 모양 기둥은 영광의 순교자 네 분(이화백, 오씨 양반, 김치명, 유문보 바오로)을 상징하고 있다. 기둥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배의 돛과 만장의 이미지이며, 가운데 십자가는 조선 시대 죄인의 형틀로써 순교를 의미한다.
2015년 1월 13일 제20대 주임으로 부임한 송홍철 루카 신부는 기념성당 1층에 영광순교자기념관을 마련해 2017년 5월 13일 김희중 대주교를 모시고 영광성당 설립 80주년 기념미사 및 영광순교자기념관 축복식을 거행했다. 본당 설립 80주년을 맞아 마련한 기념관은 영광의 여섯 분의 순교자와 세 분의 유배자, 초기교회 신자 두 분(윤종백, 김득겸)을 기리고 있다. 기념관 내부에 ‘핏빛 사랑으로 진복을 사신 영광의 순교자들’(양단철 작)이라는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설치하고,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중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다섯 성인의 유해를 두 개의 성인 유해함에 나눠 안치했다. [출처 : 이은주,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과 서종태 박사 논문, ‘영광 지역의 천주교 전파와 박해 및 순교터’와 관련 신문 기사를 중심으로 편집(최종수정 2018년 6월 27일)]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강완숙 골롬바. 최여겸 마티아
순교자 이화백
순교자 양반 오씨
소성당
대성당
순교터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정문 앞(현 전남 영광군 영광읍 도동리 석장승 앞 남쪽 개울가 인근)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영광에서 순교한 이화백과 오씨가 처형된 순교터.
석장승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옛 장터이며, 우시장이 있던 곳으로 1832년에 잡귀 · 액 · 살 등 부정한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석장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