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에 잘 어울리는 노래가 있지요. 바로 <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입니다. 이 곡은 1971년 박건 님의 애절한 목소리에 실려 큰 반향을 일으켰지요. 이 곡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나무인 마로니에를 소재로 하여 이국적인 냄새를 풍깁니다. 쓸쓸하면서도 정감어린 휘파람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이 곡은 늦가을과 초겨울의 명곡으로 손꼽힙니다.
박건 님은 1966년 < 그리워 우는 파랑새 >라는 곡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고, 1969년 취입한 ‘사랑은 계절 따라’ ‘청포도 고향’ 이 연달아 히트하여 인기 가수 대열에 합류합니다. 그러다가 1971년 발표한 <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의 빅히트로 10대 가수로 선정되었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은 < 사랑은 계절 따라 >, < 청포도 고향 >과 함께 박건 님의 3대 히트작으로 볼 수 있지요. 이 곡의 빅히트로 박건 님은 마로니에 가수라는 애칭을 얻습니다. 박건 님은 지난 2011년 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으로부터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의 젊음과 낭만을 추억하게 하여 대학로 이미지 제고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로 감사패를 받았지요.
<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는 본래 지금은 사라진 동아방송의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였습니다. 이 곡은 신명순 님이 가사를 썼고, 김희갑 님이 작곡을 담당했지요. 박건 님이 이 곡을 취입하게 된 것은 동아방송 관계자 때문이었지요. 남성4중창단 블루벨즈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던 동아방송 음악부장은 박건 님의 목소리가 이 곡에 잘 어울린다고 판단하고 적극 추천합니다. 이 곡은 휘파람 때문에 크게 히트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박건 님은 취입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지요.
“ 이 노래를 취입하러 녹음실에 갔는데 갑자기 작곡가 김희갑 선생님이 노래 앞부분에 휘파람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악단원들에게 휘파람 불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그때 내가 나서서 직접 불어보면 어떻겠냐고 했죠. 그래서 불게 되었는데, 처음 마이크에 대고 부니 소리가 튀며 휘파람소리가 끊어져요. 해서 마이크를 반대로 내려놓고, 다른 곳에서 불었죠. 녹음이 끝난 후 김선생님이 ‘휘파람을 그렇게 잘 부르는지 몰랐다’며 매우 만족해하셨죠. 아마도 이 노래는 휘파람 때문에 더욱 히트된 것 같아요.”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루루 루루 루루루 루루루 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속에 봄비가 흘러 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아아아
루루 루루 루루루 루루루 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듯이
덧없이 사라진 다정한 그 목소리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아아아
루루 루루 루루루 루루루 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피고 있겠지 피고 있겠지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의 주제는 주점에서 술을 마시며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지요. 이 곡의 가사에 의하면 주인공은 마로니에 나무 부근에서 연인과 만나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로니에 잎이 떨어지던 날 연인이 홀연히 떠나갔습니다. 이 곡은 낙엽과 이별을 절묘하게 오버랩시키고 있지요. 사랑도 청춘도 다 사라졌다고 절규하는 것으로 보아 주인공은 연인과 아주 오래 교제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주인공은 연인은 떠나갔지만 연인과의 추억이 서린 마로니에는 건재하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 것으로 여겨집니다. 무한한 자연의 생명과 유한한 인간의 사랑을 대비시킨 것은 철학적 향기를 느끼게 하지요.
<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의 가사를 쓴 신명순 님은 마로니에가 소재한 동숭동 소재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다녔다고 합니다. 신명순 님이 재학 중일 당시 대학들은 정치적 이유로 휴교령이 빈번하게 내려졌지요. 신명순 님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학교 안에 있던 마로니에 주변에서 어울렸던 학우들을 생각하며 이 가사를 썼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그렇게 본다면 임자잃은 술잔은 사라진 학우를 그리는 것으로 볼 수 있겠네요.
결국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은 주인공의 주변을 스쳐갔던 우정과 연애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가사에 청춘과 사랑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대학로 동숭동 거리에는 많은 청춘 남녀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