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7] 이정옥(李貞玉) 일심봉천(一心奉天) - 3. 예비된 길을 향해 - 1 1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해 4월 4일에 통일교회에 입교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입교 3년 전 하루는 갑자기 여자 무당이 우리 집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 “이 댁에 앞으로 하늘의 큰 복을 조상들을 통해서 주시려고 하얀 광목을 하늘로부터 안방 창문 살에 대고 있으니 이것을 받으시오”라고 했다.
2 전주 시내에 모모 한 집안에서 전답까지 주면서 치성을 드리는 자기 단골들이 많은데 아무 관계도 없는 이 댁에 왜 이런 큰 복을 주시는지 알 수 없다고 하면서 무당 자신도 참 이상하고 믿어지지 않지만 산신령님이 내몰아쳐서 견디지 못해 왔다고 한다.
3 나도 그 당시 점을 쳐보거나 무당을 찾아가 본 일이 없었다. 또 이런 일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집안 어른들에게 가서 의논했더니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하시더니 나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믿어 보라고 하셨다.
4 전주시 동쪽에 기린봉이라고 하는 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 무당(별칭 꺼먹동이)은 그 산기슭에서 기린봉 산신령님을 모시고 있다고 했다. 그가 받은 나에 대한 계시가 굉장히 엄청난 내용이기 때문에 여기에 다 밝힐 수 없지만 그 복이 그때부터 3년 후에 오게 된다고 했다.
5 그 해가 바로 내가 입교한 1956년이었다. 입교 후에 선생님께 그 무당이 받은 계시의 내용을 말씀드렸더니, 다 맞는 말이라고 하셨다. 내가 이 길에 입교할 것을 3년 전에 계시로 무당을 통해서 알려주신 것이었다.
6 1955년 7월, 선생님께서 이대사건으로 옥중에 계실 무렵 어느 날 신문에 통일교회가 사교냐? 아니냐? 하는 표제로 사회면에 크게 게재된 것을 보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통일교회라고 하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것이 내가 통일교회에 대해서 최초로 듣게 된 동기였다. 그러나 종교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7 내가 친하게 사귀고 지내던 분들은 대개 전주 사회의 명문가의 지성인들이었다. 그중에서 전북제사(全北製絲) 사장 부인과는, 나와 9년 연상이지만 그분도 나를 좋아했고 나도 그분을 존경했다. 그분도 동경 유학생이었다. 그분은 자주 서울을 왕래했는데 한 번은 서울에 다녀오더니(이대사건 당시) 문 교주가 정말 이러저러한 좋지 못한 분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