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존재의 인식과 자전적 성찰의 탐색
--인천 임선영 시집 『바람결에 티끌』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삶에 대한 인식과 인생론 명징한 정리
인천 임선영(仁泉 林仙英) 시인이 제4시집 『바람결에 티끌』을 상재한다. 그는 시집 『뉘시오이니까』 『그대가 날 부른다면』 『허공아! 너 다 가져』를 상재하고 수필집도 여러 권 펴낸 중진 시인이다. 그의 작풍(作風)은 대체로 “자아 인식에 관한 그의 정서와 사유(思惟)의 흐름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보편적인 시법(詩法)에서 창작의 동기나 발상 등이 대체로 자신이 살아온 현실적인 삶(real life)에서 탐색하는 정황을 엿볼 수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라고 제2시집의 해설에서 필자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자아 인식을 통한 사유(思惟)의 확대에서 창출하는 진솔한 자전적인 성찰의 의미를 포괄(包括)하고 있는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등단 이후 원불교문인회와 청시시인회 그리고 한국시원 운영이사로서 괄목(刮目)할만한 활동으로 그의 시적 경륜은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호응(呼應)을 받고 있어서 그가 지향하는 삶을 통한 인생관이 확고한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이 시집 전체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공감의 영역은 더욱 확산할 것으로 이해하게 한다.
그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닌/ 만들면서 살아내는 고것/ 어떻게 즐겁게 살까/무엇을 즐기며 살까/ 좋은 친구 만나서/ 즐기던 노년의 얼굴엔/ 피고 진 세월이 고스란히/ 남는다 했던가(「행복이란」 중에서)”라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으로 수많은 고뇌와 번민이 동반한 “어떻게 즐겁게 살까/무엇을 즐기며 살까”라는 행복에 대한 염원들이 노년의 사유에서 의식의 흐름을 적시하고 있어서 자신의 존재의식을 이해하게 하고 있다.
어제보다 나은 선택을 위해
살아있다 꽃은
때론 누군가을 위해
온몸을 던지고 싶을 때도
초록바다의 봄빛 추억을
노을에 묻으며
갑자기 무거운 먹구름
내려와 앉을 때도
밴취에 버린 기억대신
살아있는 시간을 주우면
하늘마음 쏟아지는 소리
다 지나가며 잊는 거야
삶이란.
--「다 그런 거야」 전문
임선영 시인은 이처럼 삶에 대한 인식에서 “다 그런 거야”라는 긍정의 어조로 일단 정리하고 있지만 이러한 결단에 이르기까지는 그 내면에 침잠(沈潛)해 있는 삶에 대한 애착에서 파생하는 다채로운 형상들이 “살아있다 꽃”에 비유함으로써 인생은 곧 “살아있는 시간을 주우며” 봄빛 추억과 무거운 먹구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 우리네 삶의 형태인데 그는 결론으로 “다 지나가며 잊는 거야”라고 수긍하면서 자위(自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시인의 말>에서도 언급했듯이 “무슨 복으로 주신 감사 생활 속에/ 자신을 곱하고 나면 걱정도 시련도 슬픔도 제로가 되는 삶/ 모두가 고마움이 되는 삶/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듯 원고지에 시를 쓰듯 난/ 내 삶을 예쁘게 그리고 쓰며 살아/ 갈 수 있어 참 행복하다./ 훌쩍 날아 갈 그날까지”라고 그의 진정한 심중(心中)의 실체를 토로(吐露)하고 있어서 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이해하게 한다.
그는 다시 “슬프게 하는 것/ 미처 깨닫지 못한 마음/ 치유하는 자연이 지닌 본성/ 먹구름 몰려드는/ 삶의 어느 길모퉁이에서도/ 넉근히 견딜 수 있는/ 너그러움 안겨준다.(「화창한 어느 날」 중에서)“거나 “삶의 구비마다 잠시 쉬었다 가라고/ 힘든 마음을 포근히 안아 주며/ 내려놓는 자의 마음을 읽는다 (「쉼터에서」 중에서)” 그리고 “스치고 지나가는 정적/ 온몸 더듬고 가는 고요/ 야윈 삶 덮어주는 적막/ 거기에 한 줌 티끌로 앉아/ 즐길 줄 아는 너 無로구나.(「기도 속에서」 중에서)”라는 어조는 바로 그가 지향하는 시적인 관념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과 친구가 되고변함없는 그를 알아보면인생 철들어쪼끔 마음이 자라는 거라네세상에 유일하게 변함없는넓디넓은 친구를 머리에 이고무언으로 약속을 잘도잘도 지키는파란 출렁임을 듣고 눈으로 어루만지면즐거움도 슬픔도 하나가 되어인생 그거 아무것도 아니지上下高低 그 실없는 착각알고 겸손해져 다 놓고 느긋해지면인생은 벌써 단풍 들어보따리 싸서 들고 갈
준비를 한다네.
--「아! 인생 그것은」 전문
그렇다. 그는 삶을 통해서 절실하게 천착(穿鑿)한 인생문제에 대해서 진중(鎭重)하게 사유하는 시적인 구조나 의식의 흐름 그리고 시적 전개를 읽을 수 있는데 이는 그가 감응한 “아! 인생 그것은”에서 그는 인생은 철들었다느니 인생은 벌써 단풍이 들어 식물들의 결실과 시간적인 종말에 대한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어서 그가 이제 즐거움도 슬픔도 하나가 되었으니 인생 그거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에서 “보따리 싸서 들고 갈/ 준비를 한다네.”라는 의미심장한 어조를 들려주고(telling) 있는 것이다.
그는 “홀연히 떠나버린/ 그 사람의 삶이 바람이듯/ 한 생 또한 바람이려니(「바람 1」 중에서)”라거나 “사랑이 살며시 조는 듯/ 기대어 향기로우면/ 손길 다가와 어루만지며/ 우리 잘 살다 가자// 피고 사그라들고/ 자연의 생사가 인생/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 않던가(「인생이라는 건」 중에서)”라는 어조로 그의 인생론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무거운 짐」 「인생」 「서러운 세월」 「바람 7」 등에서 그가 구현하면서 적시하려던 인생관이 적나라하게 명징(明澄)한 어조로 표명(表明)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흡인(吸引)하고 있는 것이다.
2. 향수에서 재생한 그리움의 진원지
임선영 시인에게는 불망(不忘)의 그리움이 아직도 생생한 진원지(震源地)가 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추억이 스며든 향수가 그의 뇌리(腦裏)에서 명민(明敏)한 이미지로 재생하고 있어서 이러한 사고(思考)의 영역도 그가 지향하는 인생행로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는 작품 「고향」 중에서 “고랑물 돌고 메뚜기 뛰노는/ 고향 길을 가 보셨는지요/ 버들가지 꺾어 버들피리 불라치면/ 동무들 올망졸망 모이고/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물방개 피라미 모여들던 그곳/ 산골 도랑 실개천에 가보셨나요”라는 어조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그가 보낸 유년시절의 기억을 되살려서 동화같은 이미지로 향수에 젖게 하고 있다.
그는 다시 “자운영 논배미 분홍빛 꽃물결 아롱거리고/ 물총새 할미새 춤추며 날아 내를 건너고/ 친구들 냇가를 촐삭촐삭 건너면/ 가을바람 코앞을 스치며/ 가을 냄새 가슴 시절에/ 들어와 있습니다.”라고 마을 앞의 추억에서 그의 가슴을 울리는 그리움의 보고(寶庫)를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신작로에 푸라타나스 춤을 추던
마한의 옛터라고 늘 자랑하던 터
할머니의 손주 사랑 가득하던 곳
엄마의 사랑으로 아늑하던 자리
배꼽 친구 가득하여 재미있었고
집안 어른 가득히 모이던 우리 집
평상에 누워 별 하나 별 둘
삼베 홑이불 덮고 세이면
수 없이 떨어지던 별똥별
모깃불 여름 하늘에 그림 그리고
풀벌레 모여 합창 무르익으면
마당 풍악 품어 안고 잠이 들었지
어쩔 수 없었어 어린 시절 회상
그곳 하늘이 거기에 바람이
텃밭에 단 수수 쪽쪽 빨던 기운
그냥 품속으로 기어들어와
서정을 만들었고 시인을 만들었지
못 잊어서 잊지 못해서.
--「그리운 고향」 전문
이렇게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절정으로 각인(刻印)되고 있는데 이는 고향의 정경(情景)과 동시에 클로즈업 되는 가족들의 생활상이 미감(美感)의 언어로 직조되고 있어서 그리움의 범주는 더욱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특히 “집안 어른 가득히 모이던 우리 집”에는 할머니와 손주, 엄마의 사랑이 항상 넘치고 있다.
이러한 그리움은 평상에 누워서 별을 헤아리거나 삼베홋이불 덮고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거나 모깃불 매캐한 여름 하늘에선 풀벌레들의 합창을 감상하던 “어린 시절 회상”이 그의 가슴을 지금도 설레게 하는 고향, 거기에서 태동한 서정들이 모여서 그를 시인으로 탄생하게 한 영원한 향수로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임선영 시인의 고향에 대한 추억에는 작품 「고무줄 놀이」 「자치기」 「그네뛰기」 「널뛰기」 「모심기」 「나물캐기」 「대보름 다리밟기」 등에서 그 때 그곳의 아름다운 흔적의 여운으로 심저(心底)에 깊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움이 눈물처럼 쏟아지는 날
빗소리는 맞는 게 아니잖아요
듣는 거라 잖아요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는 시간
비 오는 날은 생각이 많아
창문을 열고 흘러내립니다
비가 와야 무지개가 뜨고
비워야 채워지는 자연의 이치
어지럼증 가득한 세상에서
결핍은 그리움을 만든다 했던가
열망했던 것들이
다 타버린 인생의 끝자락
떠나갈 때를 잘 알고
가며 그렇게 쏟아 붓고 비우듯
비를 닮아 가야 하겠지.
--「그리움 쏟아지는 날」 전문
그의 그리움은 향수에서 발원하지만 이를 확대해보면 자전적인 인생론과도 상관성을 갖는다. 그는 비 오는 날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들으면서도 울컥울컥 솟음치는 그리움이야말로 “열망했던 것들이/ 다 타버린 인생의 끝자락/ 떠나갈 때를 잘 알고/ 가며 그렇게 쏟아 붓고 비우듯/ 비를 닮아 가야 하겠지.”라는 결론처럼 그리움의 이미지는 다양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어조는 작품 「그리워서」 전문에서도 “그리도 많은 선물 중에/ 당신은 붓놀림 춤사위를 주셨던가요/ 그리울 때면/ 보고파질 때면/ 하루 종일 붓을 치며 그려 봅니다/ 초록 호남 만리정에/ 아름다운 가야금 소리가/ 단비를 머금은 풀꽃 사이에서/ 들려오네요/ 아가! 그립다고”라는 간절한 음률로 그의 화폭(畵幅)을 펼치면서 그리움을 음미(吟味)하는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그는 작품 「추억이 된 사람」 「걸어온 길에 서서」 「간다는 것은」 「흔적 1」 등에서 그리움은 절정(絶頂)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3. 가정 화목과 가족애의 요람
임선영 시인에게서 가정은 가장 중요한 생활의 원천으로서 가족 사랑의 근원을 이룬다. 이처럼 누군가가 말했듯이 가정은 행복을 축척하는 곳이라는 것과 본질적인 인간의 감화(感化)는 가정에서부터 이루진다는 진실을 상기하게 된다.
그는 가정과 가족에 대한 애정이 그의 생활 경험과 거기에서 체득(體得)한 인본주의(humanism) 실천의 장(場)으로써 자신의 지혜를 투영한 시적인 형상화의 모태(母胎)가 되기도 한다.
그는 “둥글고 네모 난 상/ 큰방에 차려놓고 숟가락 젓가락 장단/ 쌀밥은 할머니 밥 보리 섞은 손주들 밥/ 된장국에 김치면 맛있던 집/ 형제자매 아랫목에 발 담그고/ 옹기종기 한 이불 덮고/ 철없는 정 스며들어/ 서로 끌어안고 자던 집/ 굴곡진 언덕 넘어온 정과 사랑/ 꿈과 희망 시와 그림으로 피게 한/ 노년의 인생 수를 놓게 한/ 그리운 고향집. (「그리운 고향집」 중에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향집의 정경에서 취택한 이미지는 바로 온 가족들의 사랑과 정, 그리고 꿈과 희망이 넘치는 가족애의 요람이다.
옹기종기 모였네
잔소리하는 나무 그늘 밑
어리광 부리는 꽃
투덜대는 정원수
손잡고 어우렁더우렁
세월 유수 타는 터
전생 어울렸던 인연들 모여
환한 꽃밭 이루어 놓은 자리
슬플 때 가만히 손 내밀어
시린 시간 아늑함 안기는 곳
아프다고 말하면
밤이 북극성을 덮어주듯
야윈 삶을 안아주는
따스한 아랫목이여라.
--「가족은」 전문
그가 구현하는 가족은 “전생 어울렸던 인연들 모여/ 환
한 꽃밭 이루어 놓은 자리/ 슬플 때 가만히 손 내밀어/ 시린 시간 아늑함 안기는 곳”이라는 그의 심저에는 여기에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모든 정서의 기원으로 화목과 우애의 상징이다.
또한 그는 “옹기종기” 모인 가족들을 나무와 꽃, 정원수의 다양한 형태들로 비유함으로써 더욱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분위기의 가족애를 적시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들의 “야윈 삶을 안아주는/ 따스한 아랫목이” 되어주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넓디넓은 인생이란 초원에
덩그러니 둘만 남아서
피차의 실수를한없이 흡수하는 호수그는 귀머거리가 되고난 눈 뜬 소경이 되어
뜸을 들인 후 성숙해져서세월의 장식장에 앉아있는
해묵은 골동품
이만큼 세월 보내고 보니부부란 참고 또 참는 길만이
최선이란 얘기를 하며
행복해야 할 부부의 아이들이우릴 보고 있음을 기억하며둥근 보름달처럼 산다.
--「老夫婦」 전문
임선영 시인은 가족 중에서 가정 먼저 대할 수 있는 부부에 대하여 각별한 애정의 범주를 각인시키고 있는데 그가 인생의 출발점과 실재(實在)의 생활상에서 감응하는 사랑의 감도(感度)는 계량(計量)하기가 어렵다. 이제 “老夫婦”란 세월이 어쩔 수 없이 달아준 이름표 앞에서 만감(萬感)의 교차를 되새기고 있어서 그는 부부에 대한 정의(情誼)를 ‘그는 귀머거리가 되고/ 난 눈 뜬 소경이 되어/ 뜸을 들인 후 성숙해져서/ 세월의 장식장에 앉아있는/ 해묵은 골동품’이라는 비유로 그들만의 애정은 바로 “이만큼 세월 보내고 보니/ 부부란 참고 또 참는 길만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 「偕老」 중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웃음과 화목/ 퍼지게 하는 저 꽃/ 초로로 같이 걸어가는 길에/ 핀 저 꽃.”이라는 비유법으로 노부부의 상념(想念)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그에게 각인된 이미지가 재생되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줄 서서 기다려야 먹던 집/ 아버지 팔짱 끼고 기다리던 집/ 서설이 어찌나 쏟아지던지/ 벌벌 떨며 손시럽던 날/ 아버지 정 때문에 견디던 그날/ 그 집 김치는 왜 그리 맛있고/ 닭 국수물은 그리 고소했지/ 맛있지 많이 먹어라(「서설이 쏟아지는 날」 중에서)” 그리고 어머니는 “긴 세월 기다림에 지친/ 눈물 가득하던 그 눈/ 이제야 느껴지는/ 여인의 말없는 하소연// 어머니 모습(「하소연」 중에서)” 등으로 부모에 대한 효심도 그의 가족애에서 간과(看過)할 수 없는 시적 진실이다.
이 밖에도 그는 딸냄이, 손녀, 손주들에 대한 사랑이 “지성인가 감천인가/ 설빔 속에 곱구나/ 꽃같이 자라거라 아가/ 우리 똥강아지들아”라고 가족과 가정에 대한 애정이 절정에 달하고 있어서 화목한 가정의 모범으로 우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4. 전원 서정과 계절 향연의 이미지
임선영 시인은 지금까지 다채로운 인생 행로의 체험을 통한 과거의 시간성에 대한 추억이나 불망(不忘)의 현상들을 집대성하여 자신의 시적 진실을 토로하고 있으나 결정적인 시적인 주제는 그가 생장한 전원에서의 서정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이는 고향 전래(傳來)의 다양한 풍습이나 자연 환경에서 각인된 생활상들이 추억으로 회상하여 재생한 이미지들이 그의 시혼(詩魂)을 불태우면서 작품으로 승화하는 모습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새벽의 합창 고막을 친다
나무들 키 재기하는 뒤뜰에서
이웃한 새들 새벽잠 깨우며
눈 빗장 스르르 열리게 하고
가슴 벽 열리는 소리
하루를 열게 하는 저 아우성
개구쟁이 시절
창호지 사이로 어슴푸레
간 보이던 밝음이 시작되면
벼슬 달고 오색 도포 일생 벗지 않고
잠자리에 든 생명체 깨우던 꼬끼오
시계 없는 시골 마을
농부들 새벽 일터를 챙기던 소리
세월 구비고비 강산 뒤집었는데도
서로 다른 소리의 울림으로
무상 보시하는 자연의 가르침
또 다른 하루 신의 선물.
--「새벽의 함성」 전문
그렇다. 그는 개구쟁이 시절, 시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잠자리에 든 생명체 깨우던 꼬끼오” 새벽닭 울음소리나 “농부들 새벽 일터를 챙기던 소리” 등이 그의 청각(聽覺)이나 시각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생(生)의 한 단면으로써 “무상 보시하는 자연의 가르침/ 또 다른 하루 신의 선물.”이라는 결론의 어조처럼 그의 시적인 서정성이 정리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순정적인 서정은 작품 「어스름」 중에서도 “숲길이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벌써 불그레한 얼굴을 하고/ 무심히 서 있다/ 한참 있다가 봐도 그냥 있다/ 그 옆에 한 생을 다 하고 지쳐 쓰러진/ 노란 풀잎 떼기도”라는 순수한 한 생의 서정적인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이 그는 무상보시하는 자연과 더불어 이 자연이 변화하는 시간성, 계절의 순환에서 감응하는 그의 정서는 그 계절적인 이미지가 사계절마다 다르게 현현 되지만 거기에 투영하는 자신의 사유는 궁극적으로 자연 서정의 범주에서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벚꽃 눈부셔
풍경 속에 마음 치대며
꽃비 맞으며 가는 길
적적한 황혼 흔들린다
처진 가슴으로
만개한 꽃길 헐며 가니
가지에 솟구치는 순처럼
가슴으로 번지는 불씨
눈 시린 꽃분홍 봄
봄 그림자에 눈 배인
시인에게 말을 건넨다
그대에게 무엇이 되어줄까
하늘 아래 꽃잎은
해롱해롱 휘날리며 묻는데
할 말 잃은 황혼은
시간을 두르며 일렁인다.
--「꽃 부신 날」 전문
그는 우선 봄에 대한 서정에서부터 사계절을 모두 자신과 동화(同化-assimilation)해서 꽃길에서 꽃비를 맞으면서도 “그대에게 무엇이 되어줄까”라고 꽃들과 시인은 순진성 넘치는 교감을 하고 있어서 “할 말 잃은 황혼은/ 시간을 두르며 일렁인다.”는 어조로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恨歎)하는 내심(內心)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이처럼 그는 봄뿐만 아니라, 철마다 생성하는 자연 환경에서 그가 관조(觀照)하면서 취택하는 무수한 형태의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고(shwoing) 있어서 그의 전원적인 온화한 심저(心底)의 내면을 이해하게 한다.
그가 사계절마다 창출한 시법(詩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현현하고 있어서 그의 서정은 자연과 시간의 조화에서 깊이 감응할 수 있을 것이다.
*봄= 꽃 피던 자리에/ 꽃눈이 휘날린다/ 한 세상 잠깐 왔다/ 뭉유도원 길 만들더니/ 눈길로 노래하고/ 향기 듣게 해주며/ 시로 눈 감게한다(「꽃지는 어느 날」 중에서)
*여름= 한 치도 버릴 수 없는 더위 맛/ 인생의 절정기를 보듯/ 언제 못 볼지 모르는/ 정열의 계절 끌어안으며/ 흐르는 땀을 닦는다.(「여름맛」 중에서)
* 가을= 어느 사이 따스해진 마음/ 가슴에 걸린 달이/ 눈꼬리 올려주며 간질이는 말/ 우린 닮은꼴이잖아/ 가을 날 서재에서 답을 읽는다.(「가을이 들려주네」 중에서)
* 겨울= 하늘 끝에서 겨울잠 자다/ 놀라 깨어보니 입춘 다 지났네/ 화들짝 놀라며/ 그냥 설 레 벌레 쏟나 보다(「겨울 선물」 중에서)
5. 結-“바람” 이미지의 시적 상관성
임선영 시인은 이 시집 전체를 통해서 “바람”에 대한 이미지의 형상화에 심혈(心血)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歷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바람이라는 무형에서 발상하는 시법은 흔들린다, 일렁거린다, 혹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이거나 공(孔), 나아가서는 허(虛)라는 정신적인 지혜의 가치관일 수도 있을 것이다.
화선지에 펼쳐졌던 한 생
붓을 들고 생각하니
창해에 거품이었고
바람결에 티끌이었고나
사계절 푸르르려 곧게 서있던
늘 푸른 소나무에서
떨어진 가녀린 이파리 한 잎
보이지도 흔적조차 찾을 길 없는
보잘것없는 한 잎으로 땅에 져서
먼 하늘을 보니
흰 구름으로 두둥실 떠다니다
흔적 없이 스러져간 구름 한 조각
최선을 다 하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무상의 그것.
--「바람곁에 티끌」 전문
그는 이 시집의 표제시(標題詩)이기도 한 “바람의 티끌”은 우선 바람과 티끌의 대칭적인 의미가 바로 무상(無相)이라서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형이상적(形而上的)인 정신세계에 몰입함으로써 인생무상과 비존재적(非存在的), 어쩌면 허무(虛無)에 도달하려는 인생관을 모색하는 진실을 확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바람”이라는 제재(題材)로 무려 7편의 작품을 완성하면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네/ 그냥 공기, 나 살아있어--중략--아름다운 꿈이었어/ 모든 것이 놓고 가는/ 바람 같은 허망이었어.(「바람.7」 중에서)”라는 의식의 흐름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뭘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뭘 해도 속 빈 강정 같은 날책은 적당히 쌓아두고읽고 싶은 손이 가는 것을쏙 쏙 뽑아 읽는 재미로메꾸어지는 하루
언어에도 그림자가 있을까그림자를 가진 시가 있을까향을 맡은 감촉 손 끝이 전율하더니잉태한 시가 쏙 빠진다적막이 이리 아름답다는 것 알즈음두터운 커튼도 그림자를 가리지 못하고굳게 닫힌 창문을 열지 않고 들어와잠든 공간을 흔들며 깨운다시의 그림자가내 생의 한순간을흔들어 깨어 있게 한다.
--「적막과 적막 사이」 전문
임선영 시인의 작품의 주제는 시와 접맥(接脈)하는 모든 사물과 관념에 대한 집약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는 이 “적막과 적막 사이”에서 감지(感知)할 수 있듯이 이 적막이 의미하는 진솔한 상징이나 이미지는 무엇일까. 어찌보면 적막의 현상도 앞에서 말한 허무나 무상과도 밀접한 상관성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심경(心境)에서도 그는 시와 연결하여 그의 의지를 발현하고 있어서 그의 원불교적인 신심(信心)과 시심(詩心)이 동시에 승화하고 있음은 주변의의 공감영역은 무변(無邊)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의 뇌리(腦裏)에는 현재의 자적(自適)에서도 언어의 그림자나 그림자를 가진 시를 탐색하고 있어서 그는 “적막이 이리 아름답다는 것을 알즈음” 시의 그림자는 그를 흔들어 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이 시집에서 추구하려는 시적인 감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어서 임선영 시인의 시적 지향점은 어디인가, 또는 무엇인가를 능히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림 속에 그리기도 하고/ 시 속에 쓰기도 하고/ 생활 속에 웃음 짓게 하는/ 여기저기 가 득한 수수한 저 꽃(「偕老」 중에서)
- 찾아들 화사한 자연의 분칠들이/ 눈앞에 잔치를 벌이면/ 세월을 잊은 예술혼은/ 붓을 들고 시를 쓰겠지 (봄 손님「」 중에서)
- 산야에 눈바람은/ 흰 물감을 쏟아내며/ 서리 눈발로 펑펑 우는데/ 겨울 선물 받은 나그네 아랫목 이불된 마음/ 시로 화답한다 (「겨울 선물」 중에서)
- 서서히 떠나는 한 폭의 풍광/ 안갈 듯 넘어가는 인생 같아서/ 해질녘 안겨드는 시를 휘여 잡고/ 낙조와 어울려 얼씨구/ 가슴 꽃망울 툭툭 터진다 (「해넘이」 중에서)
- 한 세상 잠깐 왔다/ 뭉유도원 길 만들더니/ 눈길로 노래하고/ 향기 듣게 해주며/ 시로 눈 감게 한다 (「꽃 지는 어느 날」 중에서)
- 코로나라는 육중한 운명의 바퀴/ 시련에 짓눌려 신음하던 그도/ 시를 떨구며 숨을 쉰다. (「바람 5」 중에서)
- 어느새 상실된 마음을 들고/ 꼭 쥔 손금 속으로/ 저물어가는 세상은 시로 읊으며 운다. (「바람 6」 중에서)
이제 인천 임선영 시집 『바람결에 티끌』 읽기를 마무리 한다. 그가 자칭(自稱) 황혼기에 대한 만유(萬有)의 실재 상황들이 그의 시각이나 청각에서는 모두가 한 폭의 그림이며 한 소절의 시이다. 그는 화가로서의 경지도 괄목할만한 경륜을 소유한 시인으로 그가 주창(主唱)하는 화중유시(畵中有詩)와 시중유화(詩中有畵)에 대한 개념을 절대적으로 실현하는 시인과 화가의 숭엄(崇嚴)한 인격자로서의 예술세계를 확고하게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삶과 인생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창조하는 시적인 진실을 만인들에게 들려주는 현재의 위상은 존경의 대상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시집 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