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나 모델(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
대니엘A 벨 지음. 김기협 옮김. 서해문집.
이 책은 미국 사회나 서방 사회에 상당한 논란을 일으킨 책이라고 한다. 공감 보다는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어떤 여론조사를 보았더니, 한국인들의 80%가 넘는 사람이 중국에 반감을 가졌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우리 동네 세탁소 아저씨도 중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곧잘 한다. 늘 가난한 허덕이고, ‘짝퉁’이나 만들어 파는 나라라고도 한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증거기 희박한 증거들에 의해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아야 할지 의문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단 한 번도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년 10%정도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수 억의 인민을 빈곤으로부터 구제해 왔고, 이제 미국과 견줄만한 국력과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이 자체로 보면 중국의 지도자들과 중국을 비난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왜 중국은 서방의 견제 대상이고 많은 한국인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까? 아마도 기존의 세계질서와 생활양식과 표준에 균열을 일으키고 도전을 하는 강력한 국가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강조하는데 가끔 보면 이 다양성이란 개인적인 차원이나 미시적 차원의 다양성에 머무르고, 문명이나 문화나 정치체제에 대한 다양성은 아닌 듯하다. 중국에도 다양성의 가치를 실천해 볼 수는 없는걸까? 중국은 여러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세계 그 어디를 살펴보아도 문제가 없는 체제나 정치는 없다. 다른 문제가 있을 뿐이다. 흔히 중국을 공산당 독재국가라고 한다. 1일1표 선거민주주의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즉 다당제가 아니고, 1일1표 투표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기에 독재국가이다. 이 당연해 보이는 명제나 표준 약관에 의문을 가져볼 수는 없을까? 왜,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1인1표 선거방식만을 사용해야 하는가? 사실 지도자를 선출하고 정치 체제를 만드는데 1인1표 방식의 역사는 그렇게 길고 유구하지 않다고 한다. 전면적 시행은 겨우 백 년 정도라고 한다. 만약 중국이 중동이나 아시아의 작은 국가였다면 미국이나 서방에서 이렇게까지 격앙된 반응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서방이 만든 ‘표준’을 바꿀 능력이나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늘 ‘다양성’이나 ‘관용’에는 이런 함정이 숨겨져 있다. 다양해라 하지만 우리가 정해놓은 범위를 벗어나지는 마라. 그럼 우리가 왜 중국의 정치체제나 지도자 선출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까? 중국은 ‘표준’을 바꿀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의문을 가져보자. 지금 한국에서 정권을 잡은 세력들이 가장 강조하는 가치가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던데‘ 오직 자유민주주의체제만이 자본주의를 할 수 있을까? 소위 ’독재국가‘나 ’공산국가‘는 자본주의 경제제도와 맞지 않는 것일가?
지금의 세계의 정치체제의 표준은 1인 1표 ’선거민주주의‘ 체제다. 정치 지도자를 뽑는 유일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간주된다. /1인1표 선거 민주주의/에 의해 지도자를 선출하지 않으면 독재나 전체주의 국가로 낙인이 찍힌다. 이에 반해 중국의 지도자 선출 방식은 현능주의라고 한다. 1일1표 선거 방식이 아니라, 덕이 있고 능력있는 지도자를 뽑는 방식아라 한다. 유능하고 덕이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을 1인1표가 아닌 방식으로 선발한다고 한다. 이런 예는 천주교의 교황을 선출하는 모양과 비슷해 보인다. 교황을 신자들의 1인1표 방식으로 선출하지 않아도 독재나 전체주의니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중국에서 자기네 지도자들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선출하겠다는데 왈가왈부할까? 저자는 중국의 정치제도를 옹호하거나 방어를 위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좋은 정치 지도자를 뽑는데 1인1표 방식만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더 좋은 방식을 찾아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한다. 정치는 정치지도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현명하고 덕이 있고 능력있고 인민의 자유와 복지를 위해 복무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를 뽑는데 정치의 본령이 있다면 우리는 좋은 지도자를 뽑는 방법을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가? 좋은 지도자를 뽑는 방식이 1인1표에 있는지, 아니면 ’현능주의(meritocracy)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는지 탐구할 필요가 있지 않을가? 선거민주주의는 미국식 방식이고, 현능주의는 중국식 방식이다. 그 외 더 다양한 방식이 역사적으로도 실제로도 존재하지만, 현실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 본다면 이 두 방식이 경합을 벌이고 있고 실현 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고, 또 저자가 미국 태생이지만 중국의 칭화대학에서 정치학을 연구하고 있기에 현능주의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더 가깝기에 가능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꼭 정치의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한때(한국사회는 늘 한때 유행하다가 곧 잊혀지기를 잘하기에) 결력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시험의 ‘공정’논쟁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반드시 시험만이 공정한가? 아니면 경력이나 경험은 공정하지 않는가? 한 번의 시험 통과가 평생의 안정을 보장하는 게 맞는가? 가장 공정한 방식은 차라리 추첨이나 동전 던지기 일 수 있지 않는가? 등.
1인1표 방식은 단순하지만, 사실 중국의 현능주의 선출 방식은 그렇게 투명하거나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30년 동안 현능주의 제도를 구축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고, 어느 정도 현능주의 방식이 제도로서 정착이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최고 지도자 등급으로 올라가기까지 최소 20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고 무수한 평가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꽤 유눙하고 경력이 있지만, 그 정도 경력은 중국에서 현의 지도자 경력도 되지 못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현능주의 체제에서는 1인1표 방식보다 정치 지도자가 더 유능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현능주의가 현재 중국의 발전과 위상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1인1표 선거민주주의는 그 목적이야 무엇이든 능력이나 현명함이나 경력보다는 유권자의 인기투표 방식으로 선출되기에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미국의 발전과 위상이 1인1표 방식의 선거민주주의에 있다면, 중국은 현능주의에 있다고 한다. 미국은 여러 맥락으로 1인1표 방식이 맞고, 중국은 여러 맥락과 역사적 경험 등이 현능주의가 적합하였다고 한다. 단지 차이라면 미국은 1인1표 선거민주주의를 세계적 표준으로 제정하고 강요하였고, 중국은 자신들의 국가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정치 체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품성과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의 선발을 인민의 투표에만 맡기지 않는 현능주의 정치제도를 다룬 책이다/ 당연하게 현능주의 정치제도를 옹호하는 책이라고 한다. 역자 김기협은 이 책을 ‘민주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이어서 민주주의에 관한 여러 가지 ‘상식’에 찌들어 있는 독자들을 배려할 줄 아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이 민주주의에 찌들어 있는 ‘상식’을 흔들지 아니면, ‘상식’을 강화할지는 독자의 몫이 아닐가? 나는 개인적으로 1인1표 방식의 ‘선거민주주의’에 대해 회의감이 많이 든다. 1인1표 방식이 단지 1인1표 방식을 지키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좋은 지도자를 뽑는 데 목적이 있다면 매우 많은 문제나 결함이 있지 않을까 싶다.
1인1표 방식의 문제점을 집어보고, 현능주의의 여러 가능성과 문제점과 방향 등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선거민주주의 방식의 네 가지 주요 문제점과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다수의 횡포’ 비이성적이고 이기적인 다수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소수파를 억압하고 나쁜 정책을 채택하는 쪽으로 권력을 휘두를 위험이다. 우리는 비이성적이고 이기적인 유권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 이성을 훈련하거나 공공선을 숙고할 시간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더군다나 자신이 이기주의자고 비이성적이라는 상태를 인지할 능력도 희박하다. 둘째-‘소수의 전횡’이다 경제력을 장악한 소수 집단이 지나친 힘으로 정치 과정에 개입해서 공공선에 부합하는 변화를 가로막거나 자기네 이익에 맞는 정책을 관철할 위험이다. 흔한 일이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보다 자산가들을 위한 대책을 먼저 마련하는 등 노골적이다. 세 번재 위험은 ‘투포 집단의 전횡’이다. 미래 세대나 외부인들에 대한 무시이다. 사람들은 자기네 집단의 단기적 이익만을 따지기 때문에 미래 세대나 외부인들에 대한 전횡이다. 최근에 일회용품 사용 제한 정책 폐기 같은 정책들이다. 투표집단은 자신들의 불편이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 지도자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미래 세대를 위한 기후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우리들은 미래 세대를 위한다는 아름다운 말을 남발하지만, 액세서리에 불과하고 사실은 당장의 불편도 감수 할 생각이 없다. 네쨋- ‘경쟁적 개인주의의 전횡’ 선거는 일정주기로 적을 만들고 적에게 승리하는 게임이다. 조화보다는 사회적 대립과 편가르기를 자극한다. 1인1표는 개인주의를 장려하기도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선거민주주의의 위험에 대해 공감을 하는 사람이라면 계속 읽기를 권하지만, 이 위험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면 이 책을 더 읽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1인1표를 신앙처럼 받드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논리나 합리적 근거를 제시한다고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 개인적인 생각은 믿음과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책은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다. 믿음이 필요하다면 종교를 가질 일이다.
저자는 2장에서 현능주의 체제에서 좋은 지도자의 조건을 제시한다. 1-상황이 필요로 하는 리더쉽 2-지적 능력 3-사회적 기술 4-도덕적 품성이다. 3장에서는 현능주의 정치체제의 단점을 제시한다. 1-부패의 문제. 경제할 세력이 없고 주기적인 정권교체가 없기에 부패의 가능성이 크다. 2-경직성 문제. 3-정당성의 문제. 1인1표는 인민의 선택이 정당성을 보증하지만, 현능주의는 정당성에 대한 의문에 명확한 답변이 곤란하다고 한다. 선거민주주의도 여러 문제가 있고, 현능주의도 여러 문제가 있다. 하나의 완벽한 제도나 시스템은 없다. 저자는 현능주의의 장점과 단점을 적시하고 역사적 맥락 등을 살펴보고 현능주의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제어하는 여러 가능성과 제도들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의 현능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층은 민주주의, 중간층은 실험 공간, 상층은 현능주의 체제를 제시한다. 일면 수직적 현능주의 수직적 모델이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작은 나라에서 시행하기에 적합한 제도라고 한다. 마을 단위나 촌 단위에서는 선거민주주의 위험성이 있더라도 큰 폐해가 없다고 한다. 중간층에서는 현능주의와 선거민주주의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일종의 완충지역이고, 여러 가능성들의 실험실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최상층에 고도의 정책 능력과 지적 능력이 필요하고 한 번의 잘못된 결정이 치명적 결과를 낳을 수 있기에 철저한 현능주의를 채택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현능주의 제도를 모든 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정치 제도라고 생각지 않는다. 중국의 전통과 맥락과 정치적 상황에서 가능한 제도라고 한다.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바보들이 아니다. 그들은 수십 년동안 중국에 가장 적합한 정치체제와 시스템을 만드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고, 역사적 시행착오도 숱하게 겪었다. 만약 중국이 1인1표 제도를 도입하였다면 지금처럼 중국이 세계적 국가도 될 수 없었고, 중국 제국이 존립하지도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현능주의가 오직 중국에만 맞는 정치체제인가는 의문이다. 미국의 세계 각국에 1인1표 민주주의를 보급하고 강제하여 왔다. 저자는 중국도 현능주의의 장점을 아직 정치체제가 확립되지 않는 국가에 보급할 수 있지 않냐고 한다. 기존의 상식이나 표준에 얽매이지 말고 생각해 보자. 1인1표 선거민주주의가 현재 세계에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선거민주주의 지도자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고 인기있는 정책들만 남발하고 유권자들의 단기적 이해관계 해결에만 몰두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똑같은 연설들만 반복하고 있지 않는가? 1인1표 선거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은 모든 유권자가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다. 이 전제조건이 무너지면 선거는 그야말로 프로야구 올스타 투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인기투표에서 뽑힌 지도자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가? 그렇다고 이 복잡한 세계에서 매일 먹고살기에 바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된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을가? 중국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현능주의 정치도 그 영향력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연결되고 복잡한 세계, 한 국가나 한 나라만의 힘으로 해결하기 힘들고,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한 과제들, 유권자의 당장의 이익에 반하지만, 인류나 인간 전체를 위한 정책들을 이 변덕스런 1인1표의 경쟁적 개인, 이기적이고 비이성적인 유권자들에게만 맡길 수는 있을까? 기후 위기 해결은 1인1표 국민국가 선거민주주의 제도에서는 해결 가능성이 아주 희박할 수밖에 없다. 1인1표를 행사하는 투표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특별한 권력자이거나 결정자라고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실재적으로 그런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끼기에 충분하다. 해서 한 번 1인1표 체제를 선택하면 웬만해서는 돌려 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선거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현능주의를 채택한 중국은 현능주의의 단점을 누르고 장점을 살린다면 중국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솔직히 터놀고 이야기해 보자.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위, 따듯한 밥이나 잠자리면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지 않는가. 세계가 어떻고 인류가 어떠냐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도 않고 그런데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지도 않지 않는가. 중국의 최고의 정치적 이상은 인민들이 누가 정치 지도자인지 알 필요가 없는 세상일지 모른다.
첫댓글 찬찬히 써내려간 글이지만 메시지는 묵직하게 전달되는 동종의 울림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위, 따듯한 밥이나 잠자리면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지 않는가. 세계가 어떻고 인류가 어떠냐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도 않고/
정치는 사적인 일이 아니고 공적일인데 개인의 이익에만 기준을 두고 투표하기보다 공공의 이익에 중점을 두고 정치(투표)를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