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말씀: 야고보서5:15-18】 개역개정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말씀 나눔】
여러분 성도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누리는 가장 큰 복은 무엇일까요?
물론 죽어서 천국 가는 자격을 얻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외에 다른 무엇은 없을까요?
구원받은 백성은 죽어서만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구별된 성도로 이 땅을 살아가려면 대적 마귀들과 싸울 무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도들이 경험하는 대표적인 권능 중의 하나는 병든 자를 고치는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는 권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주신 은사입니다.
이 능력은 기도를 통해 받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시작하며 불렀던 찬양처럼 베드로 사도가 나면서 부터 걷지 못하는 병자를 향하여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말하고 손을 잡아 일으켰을 때 그 병자가 나았던 것처럼 성도들은 그러한 신유의 은사를 원합니다.
이렇게 희망하는 이유는 신유의 은사가 믿는 자들에게 임하는 표적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17에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신 말씀은 신유의 은사를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많은 도전이 됩니다.
그러나 손을 얹고 기도하여도 당장 치유되거나 건강의 변화가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대부분은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기도한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일까요?
기도를 받은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받은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여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도 자신의 병 낫기를 위해 세 번이나 작정하고 기도하였는데 치유 받지 못한 것도 믿음이 부족해서 일까요? 믿음이 부족하다면 어떤 믿음을 더해야 치유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성도들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로 믿음이 없음과 더불어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십니다.
마가복음 11:23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기도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단지 조건이 있습니다.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입니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성도들의 믿음의 선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믿지 못하고 마음에 의심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6:17-18을 보면,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 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귀신을 쫓아내고, 뱀독에도 무탈하고,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매우 중요한 말씀을 간과하고 넘어갑니다. 바로 ‘내 이름으로’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내 이름으로라는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며 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군 생활 할 때, 국방부 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 표장을 받게 되면, 국방부 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에게 직접 표창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해당부대 지휘관이 대신 수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해당 부대 지휘관이 마음대로 표창을 수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표창장을 수여하는 계획과 그 대상은 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이 결재를 해야 수여 됩니다.
국방부 장관의 이름으로 해당 부대 지휘관이 수여하지만, 국방부 장관의 뜻에 따라 수여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뜻에 따라 축귀도 하고 치유도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고 있는 믿는 자들이라는 의미는 예수님께서 주님의 뜻에 따라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손을 얹고 기도할 때 필요한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며 나의 주인 되신다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권적으로 행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전제로 오늘 말씀을 보면, 오늘 말씀을 보다 정확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먼저 15절 상반 절에 보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병든 자를 치유하신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구원하신다고 말씀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구원하다는 단어로 인해서 일부 학자들은 육체의 치유가 아니라 영적인 치유를 의미하는 것이라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문맥을 고려하고 야고보 사도가 사용하는 어휘를 잘 관찰해보면 영적인 구원이 아닌 육체의 치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는 필요하지만 기도 받아서 구원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믿음의 기도가 영혼을 구원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판단인 것입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구원하시는가?
다시 말하면 누가 치유하시는가? 입니다.
15절 중반에 보면,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으키는 일의 주체가 기도하는 사람이나 기도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사도들이 사람들을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치유하시고 축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이 병을 치유 받고 죄 사함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주권적인 결정으로 그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치유의 은사를 부정하거나 평가절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치유의 은사는 교회 공동체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치유의 은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고린도전서에서만 언급되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 나타나는 여러 은사는 매우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당시에도 대부분의 성도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좀 더 성숙한 영적 지도자들이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야고보 사도도 교회가 치유를 위해 기도하여야 함을 강조하시기 위해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라고 강권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드려진 치유기도는 치유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치유는 오직 치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경우에만 현실이 된다는 것입니다.
치유에 대한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아무리 재능이 많아도, 끈질기게 응답해주실 때가지 기도한다고 해도 우리의 공로나 능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치유를 위해 한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였지만 응답되지 않았을 때 그 잘못이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거나 의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기도가 위대한 성인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16절 하반절에 보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누구일까요?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서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 되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주님의 뜻을 찾는 성도들이 의인인 것입니다.
이 의인들이 간구하면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역사하는 힘이라고 번역된 구절을 영어성경에서는 의인들의 기도는 그 효력이 매우 강하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제적인 예로 엘리야 선지자 이야기를 가지고 옵니다.
야고보 사도는 엘리야 선지자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기도는 엄청난 효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7-1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합 왕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대한 처벌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가뭄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가뭄이 들도록 기도하였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8:42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가뭄이 끝나도록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과 출애굽 당시 모세를 통해 재앙을 내리시던 것을 참고하여 생각하면 엘리야 선지자가 가뭄이 들도록 기도하였다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제껏 우리들이 살펴보았던 것을 고려하면 엘리야 선지자가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들도록 기도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정확히 일치하는 기도였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엘리야 선지자하면 갈멜산 전투로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기도의 응답에 대한 예는 가뭄보다는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셔서 물을 잔뜩 부은 재단에 불을 내리신 것이 훨씬 더 인상적입니다.
그럼에도 야고보 사도가 가뭄에 대한 엘리야의 기도를 예로 든 것은 가뭄으로 죽어가는 땅에 생명의 단비가 내려서 죽어가던 생명들을 소생하게 함으로 열매를 맺었듯이 의인들이 행하는 믿음의 기도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힘이 있음을 더 강조하기 위함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면, 당시 야고보서를 처음 받은 성도들은 엘리야의 가뭄에 대한 기도에 대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보다 훨씬 더 친숙한 사건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쩌면, 농경사회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갈멜산의 전투보다 가뭄에서 해갈되는 단비를 내린 엘리야의 기도가 더 크고 현실감 있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잘 알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보면,
병을 고치기 위한 믿음의 기도를 할 때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곧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모든 기도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있다면 제거해야 합니다.
이 장애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비로소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병 고침을 받기 원하는 병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믿음의 기도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믿음의 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기고 그를 질병에서 건져주실지 여부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만약에 고쳐주신다면 그야 말로 은혜의 선물이고, 고쳐주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일 설교 말씀을 나누면서 사도바울이 자신의 질고를 고쳐달라고 기도했지만 응답받지 못한 것은 병 고침을 받지 않은 것이 사도바울에게 더 유익하기 때문이라고 나누었습니다.
그와 동일한 원리로 믿음의 기도를 합심하여 드렸지만 병 고침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우리의 간구가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으시면 응답하지 않으시거나 거절하실 수 있습니다. 거절하신 것도 기도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이 달려 있음을 믿는 성도들을 응답하신 기도에도 거절하신 기도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야고보 사도가 강조하는 믿음의 기도에 대해서 살펴 보고 있습니다. 이 믿음의 기도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짐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들 어느 누구라도 효력이 매우 강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로 제시한 엘리야의 기도는 엘리야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했기 때문에 응답 받은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병을 낫기 위해 기도했는데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은 내가 병을 낫게 해야 한다는 착각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해서 병을 낫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며 심각한 오류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병든 자들이 병이 낫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기도가 성도들이 해야 할 기도입니다.
그 병을 낫게 하실지, 그대로 질병 중에 있게 하실 지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성도들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질 것을 믿고 병든 자를 향해 믿음의 기도를 하면 됩니다.
일명 기도발이 쎈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통성기도나 묵상기도나 동일하게 들으십니다.
큰 소리로 기도하면 들으시고, 속으로 기도하면 못 들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쎄게 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끌어내겠다는 생각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 구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예배당으로, 목장으로, 예수 영접 모임으로 인도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고, 예수님을 구주로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기도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VIP의 마음을 만져주셔서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믿음의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할 의무를 가진 성도들입니다.
주변에 병든 사람들을 위해, 우리들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무엇보다 믿음의 기도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내가 직면한 오늘이 고난과 역경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위해 믿음의 기도를 쉬지 않는 성도는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오늘 이후 평생 동안 기도를 쉬지 않으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 양】
주님 보좌 앞에 나아가,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부흥),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예수예수, 마음 속에 근심있는 사람, 하나님의 음성을
찬송가: 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주 선한 능력으로, 내 평생 사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