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들의 노예가 된 상태로는 평강이 없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린도후서 4:18) 하셨고 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1~3)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보이고, 잡히고, 나타난 모든 것(천지만물)들은 사실상 가장 불확실하고 믿을 수 없는 가변성의 존재로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생성, 소멸, 재창조될 가장 최하위에 속한 도구적인 존재일 뿐, 결단코 모든 존재의 으뜸(근본)이 아닙니다.
만들어질 수 있고, 다른 형태와 성질로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나 보여지고 감지될 수 있게 되었고, 또 '보고 있는 자'(창조주)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재창조 되어 변형되기 위해서 보여지고 나타난 것이 바로 우주 만물입니다. 모든 존재의 최하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보이고 나타난 것일 뿐, 모든 존재의 으뜸이라서 보이고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보고 있는 자'(창조주)의 아들로서 태어나 자신들의 도구(노예)에 불과한 모든 '보이고 있는 것'들의 종이 되어 그것을 많이 소유하는 것으로 평강하려 합니다.
앞서도 말하였지만, 보이고 나타난 우주 만물은 실존이 아니라 가상의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물질의 원소가 어떻고, 인체의 구조와 작동이 어떻고, 우주만물의 생성소멸과 기원과 나이가 어떠하다는 등의 존재 가치를 전혀 부여할 수 없는 저질스런(소멸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일체 교육하지 않았고 오직 그 모든 것들의 생성소멸을 좌우할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해 피조물들의 대표자가 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분수와 도리, 곧 자녀된 본분(인격)만 주로 가르쳤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가르치고자 하는 이런 지식으로 온전하게 되면 그의 생명은 하나님의 동반자가 되어 영생에 이르게 되며, 그 때부터 하나님 이외의 천군천사들도 사람들을 수종하게 되며, 또 우주만물의 모든 존재들은 그 영생한 사람의 손바닥 위에 놓인 한낱 조약돌에 불과하며, 그 조약돌에 불과한 우주만물은 영생하는 사람 앞에서는 감히 “나는 존재한다.”라는 기색조차도 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생은 만물의 생성소멸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고 있는 자'의 위치에 속한 하나님의 영과 또 '보이고 있는 자'의 위치에 속한 흙으로 조성된 육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은 육신을 '보고 있는 자'의 위치에서 관찰할 수 있으나, 육신은 다만 자기의 형태만 볼 수 있고 자신을 '보고 있는 자', 곧 영은 감지할 수 없으나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고 막연히 믿고 있습니다. 사단이 이러한 인간 육신의 무지를 이용해 이간질 하여 영의 생각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마침내 육신의 생각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 중에 영으로만 만들어진 천사들은 오로지 영의 생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분쟁 없이 영생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영과 육이 갈라져 서로 주도권을 잡아 사람의 주인 행세하려 하기 때문에 그 내부적 갈등은 지구상에 존재한 그 어떤 세계 대전이나 냉전보다 더 참혹합니다.
사람의 영과 육신 중 주인 행세하여야 할 자는 오직 영입니다. 왜냐하면, 영은 자신을 낳으신 하나님을 항상 인식할 수 있으나, 육신은 자기의 육감으로는 인식할 수 없으나 항상 자기를 '보고 있는 자' 곧 하나님보다 항상 자신이 볼 수 있는 것들만 최우선적으로 존중합니다. 그리고 영은 자기와 함께 하고 있는 육신을 볼 수 있으나 육신은 자기와 함께 하고 있는 영(정신)의 존재를 육적 이론으로는 인정할 수 있어도 그 형체만은 도무지 볼 수 없기 때문에 영의 생각을 때때로 환상으로 취급해 무시합니다. 영(남편)의 뜻을 받들어야 할 아내 같은 육신이 전후좌우 가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막무가내로 고집부리기 때문에 사람들의 영이 마침내 주인 행세를 포기하고 분쟁 없이 살고자 하였습니다. 마치 대한민국 정부가 좌파들의 천방지축을 용납한 채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존재는 크게 "보고 있는 자"와 "보이고 있는 자"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보고 있는 자"는 대부분 창조주, 부모, 선생, 상관, 영(사용자)이며 "보이고 있는 자"는 대부분 피조물, 자식, 제자, 부하, 육신(도구)입니다. '보고 있는 자'(영)의 역할은 '보이고 있는 자'(육)들을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도록 지도하고 관찰하여야 합니다. 만일 "보고 있는 자"(영)의 직위에서 "보이고 있는 자"(육)의 언행을 규제하다 발생되는 반발이 두려워 간섭을 포기해 버리고 철부지 육신을 임의대로 방치해 버리면, 얼마 못가 영도 육도 함께 멸망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고 있는 자는 영 뿐이고 육신은 죽음을 당해 보기 전에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하여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보이고 있는 자" 쪽에 위치한 육신의 생각이 "보고 있는 자" 쪽에 위치한 자기의 주인되는 영을 항상 이겨 먹으려고 합니다. 영과 육이 하나되어 살아가면서 각기 자신들의 생각이 사람이 생존해 가는 일에 대해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런 주장 자체는 모두 선합니다. 마치 대한민국의 진로에 대해 좌파 우파가 갈라져 싸우는 이유가 서로 국리민복을 위한다는 취지이기 때문에 쉽게 탓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쪽 방법이 진정 국리민복을 위한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오직 "보고 있는 자"(영)의 위치이냐, "보이고 있는 자"(육)의 위치이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들이 자신의 모든 정황을 자세히 내려다 "보고 있는 자"(영)의 말씀을 따라 진로를 결정하지 않고 다만 자신에게 내려다 "보이고 있는 것"(육)들에게 진로를 맡겨 살아갑니다.
한반도의 거민들이 반세기 이상 내부적인 갈등에 허덕이면서도 통일을 이룩할 수가 없었던 이유가 바로 자신들의 모든 정황을 자세히 내려다 "보고 있는 자"(영)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다만 자신들에게 내려다 "보이고 있는 것"(육)들에게 일임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말세지말에 한반도를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치려 하나, 기독교인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대부분 육신의 생각에 지배당하여 신앙생활을 하거나 국정을 다스리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육적인 부강만 김정일처럼 추구하되 영적인 부강,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거룩함은 무시하였습니다. 육적 부강은 소돔.고모라의 길로 치닫게 하지만, 영적(심령의) 부강(강건)은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 잡기 때문에 어떠한 육적 부강이 수반되어도 공명정대하게 사용됩니다.
우주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인간들이 피조물들 중 가장 나약한 존재가 되어 우주만물 모든 것들에게 지배 당하여 항상 불안공포에 떨며 생존하게 된 주된 원인이 바로 영적 부강을 무시한 죄악 때문입니다. 성경을 안다는 기독인들의 신앙 목적들을 보십시오. 한 사람 같이 모두 육적인 부강을 추구하는 기복 신앙에 빠져 예수님의 주된 교육인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거룩함을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한반도의 문제가 바로 우주적인 선악의 문제로써 이것을 단순히 육적인 부강으로 해결하려면 반드시 세계 대전이 되지만 영적인 부강, 곧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경건으로 해결하게 되면 마치 경찰이 죄인을 잡아다 심문하듯 선이 악을 사로 잡아 심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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