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수 많은 사연과 갈등 속에 희비의 쌍곡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총체적 단상은 분명히 달콤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 단맛이 사라졌을때 감당해야하는 외로움과 갈등이 곧 근심이다. 근심은 당연히 두려움과 걱정으로 작용하고 현재 뿐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어두운 먹구름을 드리운다.
이런 이야기를 더 현실적으로 보면 결혼 전 연애의 사랑과 청년●중년●장년●노년의 사랑이 다 다를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은 사랑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 물들어 버린 많은 젊은이들이 환상적 사랑, 절대적 사랑, 영원한 사랑을 꿈 꾸지만 참으로 그것은 꿈과 같은 것이다. 냉정한 현실에 직면하여 생활과 직결되는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는데 무슨 사랑? 진실 기쁨 희망 배려 없는 상대에게 사랑? 과연 사랑이 말 처럼 그렇게 쉬울까?
그렇다면 정녕 사랑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사랑의 허와 실을 잘 알고 있다면 그것을 실험하는 계기가 동거이고 결혼이라면 어떨까? 반드시 동거나 결혼이 아니어도 되지만 인류 역사에서 종족 보존과 결혼의 문제는 큰 흐름으로 형성 되어 인간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고도 행복하거나 평범하게 행복한 사실도 분명히 공존한다. 결혼과 이혼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으나 이제는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계약결혼 이라는 말이 터무니 없는 말처럼 느껴지던 때와는 달리 자유연애와 동성연애까지 들먹이는 이 시대에 그대는 어디에 중심을 두고 바라볼 것인가?
그것은 어제 이야기한 것처럼 진정한 영원성에 있어야 하는데 사랑은 영원성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그러므로 근심과 두려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잠시적인 사랑을 위해 영원을 잊으면 안된다는 강렬한 메세지가 아닐까?
----2567. 11. 17 법주도서관 심적 대견 합장
자림 시조 단상 212
애욕은 슬픔과 두려움을 낳는다 애욕을 벗어나면 슬픔이 없는데 그 마음 한 점 두려움 어디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