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정북창과 인종 이야기
내가《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을 쓸 때 이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누구냐? 정북창(鄭北窓)입니다.
책을 많이 읽으신 분은 아마 그냥 알아들을 것입니다.
'정북창', 아시는 분? 아~! 몇 사람 있네! 됐습니다.
이분은 내가 그 때 한두 줄 정도로 소개했습니다.
‘스스로 만장(輓章)을 쓰고 좌탈(座脫)한 유가(儒家)의 큰 도인’
아마 이렇게 써놓았을 것입니다. 이 정도로만 설명했습니다.
좌탈 이라는 것은 앉아서 죽었단 말이에요. 만장(輓章)을 아시죠? 만장,
여러분 상여 나갈 때 만장 나가지요. 스스로 자기 만장을 써놓고 좌탈 한 분입니다.
그분은 엄밀히 말하면 유가(儒家)가 아니라 선도(仙道) 쪽입니다.
내가 오늘 이분의 일생을 여러분에게 간단하게 전하겠습니다.
그 뜻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한테 왜 이분, 정북창을 소개 올려드리느냐?
이분은 상당한 신통이 있었습니다.
신통 등을 비롯해서 외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정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 정북창(鄭北窓)이라고 하는 인물을
오늘 여러분한테 소개를 해드립니다.
이조시대의 왕, 중종 다음에 인종, 그 다음에 명종, 그 다음에 선조로 가지요.
정북창은 그 당시 중종 인종 명종 대의 도인이었습니다. 이인(異人)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종이라는 왕은 등극하여 재위기간(在位期間)이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인종도 신통을 했습니다.
정북창(鄭北窓)은 그 인종이 정신적으로 가장 존경한 스승이었습니다.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등극했는데 인종이 병풍 뒤에다가 스스로 써놓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왕이 되면 영의정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를 기용할 것이고,
좌의정에는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을, 우의정에는 북창(北窓) 정렴(鄭磏)을 기용한다.’ 이렇게 써놓은 것이 있어요.
이 만큼 정북창(鄭北窓)이라는 인물을 인종이 정신적으로 대단히 존경했습니다.
여러분이 역사를 배워서 아시겠지만, 정북창이 살았던 전후 의 조선 양반사회는
연산군의 사화(士禍)가 지나갔던 여파 때문에 많은 벼슬아치들이
자기의 목숨을 예측할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정북창은 선천적으로 벼슬길을 싫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 정북창은 공부를 많이 했지요.
유교 불교 선도, 유불선 모두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손꼽을 만한 학덕이 갖춰진 대단한 이인(異人)이었습니다.
인종왕도 학문과 도덕이 상당히 높은 분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위(帝位)에 오른 지 1년 만에 승하했습니다.
인종왕이 어느 동지(冬至)날 동궁에 있었을 때입니다. 동지에 팥죽을 쑤어먹지요.
동궁의 관헌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별안간 혼자 큰소리로 웃어요.
임금이 실없이 웃는다고.
그러니까 동궁의 관헌들이 ‘어찌해서 그렇게 웃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 글쎄 웃지 않을 수 있겠느냐. 들어봐라’ 하시거든요.
아마 지금의 북한산일 것입니다. 북한산 아시죠? 북한산에 절이 몇 개 있지요.
그때 북한산에 '북한사'가 있었다고 그래. 비구니 절이었는데 큰 절이었습니다.
‘너희들 들어봐라. 북한사 여승이 동지 팥죽을 이고 댓돌 위로 올라가다가
지금 넘어져버렸다. 넘어져가지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팥죽으로 뒤집어썼단 말이다.
그러니 웃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하신단 말이어요.
그래서 이 사실을 기록해 두었다가 동궁의 관헌들이 나중에 그 북한사를 가서
조사를 해봤대요. 정확한 시간에 그랬다는 거예요. 인종대왕이 그 정도였어요.
그 인종대왕이 가장 존경했던 분이 정북창입니다.
출처:2011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