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5 - 모토마치 공원에서 페리제독을 보고 걸어서 항구를 구경하다!
하코다테 函館(함관) 역에서 전차를 타고 주지가에 내려서 사카모토 료마 기념관 을 구경하고는....
니쥬켄자카 二十間坂(이십간판) 언덕길을 올라 히가시혼간지 를 지나 성공회 성요하네스
교회 를 거쳐 러시아정교회 소속의 하리스토 교회 를 보고는 모토마치 가톨릭 성당 을 구경합니다.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이 구로후네 7척 을 이끌고 도쿄만에 와서 개항을 요구하자 에도 막부는
굴복해 요코하마 와 하코다테 를 개항 하니 교회 들이 들어선 것인데 더 걸으니 연한 푸른
색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나타나는데.... 바로 구 하코다테 공회당 이니 500엔을 내고 입장합니다.
서양식 건축물로 1907년 화재 로 소실된 후에 1910년에 재건 되었다고 하는데
여기 공회당 본관은 천황(일왕) 이 묵기도 했던 곳이라고 하며....
베르사이유 궁전 거울의 방 을 연상시키는 무도회 가 열렸던 홀 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와 모토마치 공원 元町公園 을 보는데 이 도시 하코다테의 발상지 로 나무와 꽃이
아름답게 가꾸어진 공원안에는 사진역사관과 관광안내소가 있으며.... 또 페리 광장이
조성되고 1854년에 일본을 침입해 수도를 위협한 페리의 동상 이 서 있는데 침략자의 동상이라니?
우리 같으면 군함을 타고 침입해 함포로 도쿄 시내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한 미 해군 제독 페리를
침략자 로 볼법도 한데.... 일본인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나 보네요? 적의 무력 침입에 굴복한
것은 분명 수치스러운 일 인데도.... 이를 계기로 서구문명 을 받아들인 것을 더 크게 평가하나 봅니다?
하코다테 函館(함관) 는 홋카이도 관문이자 북해도에서 3번째로 큰 도시로 1858년 미국과 조약
으로 개항 했으니 그후 하코다테는 국제무역항 으로 상선과 군함, 포경선등 외국인의
왕래가 잦아 활기찬 도시가 되었으며 모토마치에 서양 영사관과 상사 및 교회 가 세워집니다.
100년전 서양풍의 이국적인 분위기 와 야경 의 명성이 높으며 개항이되자 도시 방어를 위해 1866년
완공된 고료가쿠성 전망대가 있는데 1868년 도쿠가와 막부의 해군사령관 에노모토 다케아키 는
쇼군 요시노부가 에도에서 물러나자 불복하고는 신센구미와 함께 8척의 함대 를 이끌고 후퇴합니다.
에노모토 막부 함대는 하코다테 에 상륙해 에조공화국 을 설립하고는 대통령 에 선출된후
고료가쿠성 五稜郭城(오릉곽성) 을 차지하고 저항하는데 무진전쟁 을 일으킨
조슈번과 사쓰마번, 히젠번과 도사번등 신정부군의 포격으로 함대가 소실 되고 맙니다.
성 함락 전에 희귀본인 네델란드어판 “만국공법” 을 토벌군 사령관 구로다 기요타카 에게 전했고
그러고도 에노모토의 막부군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으나 결국 1869년 5월 18일 항복하니
2년여에 걸친 보신전쟁 (戊辰戦争 무진전쟁) 내란 은 막을 내리고 메이지 유신 이 성공합니다.
구로다 기요타카 는 에노모토 다케야키 구명 운동을 펼치니 후일 구로다 기요타카 총리치세에 에노모토는
외무대신이 되며, 구로다 기요타카는 1876년 강화도조약 시에 전권대신으로 조선 에 오는데....
모토마치 공원 을 나와 향토자료관(구영국영사관) 근처에서 유카타 를 입은 어린이들의 모습이 예쁩니다.
北方民族 資料館 ( 북방민족자료관 ) 이 보이니 아이누 와 월터, 기리야크 등 홋카이도
에서 오호츠크해에 분포하는 소수 민족 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는데.......
가라후토(사할린)와 치시마(쿠릴) 주민이 눈길을 끈다지만 시간이 늦어 문이 닫혔네요?
좀 더 걸으니 붉은색 벽돌 건물이 보이는데 하코다테 문학관 이라....
문득 일본의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나오미와 가나코” 가 떠오릅니다.
나오미는 백화점 직원이고 가나코는 퇴직 전업 주부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자들이
가정 폭력 을 행사하는 가나코의 남편을 죽이기로 하고는 살인계획 을 세웁니다.
가나코 남편의 폭력은 응석 에서 출발했으니 부잣집에서 떠받들여
키워진 그는 응석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분노를 폭발 시킵니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그는 금융위기후 경쟁이 격화된 은행에 들어갔는데 실적
스트레스 를 감당할수 없으니 그 울분을 아내에게 주먹질로 푸는 것이라!
남편이 이혼도 거부 하니 합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는지라 가나코
는 남편의 해외도피를 위장한 살인 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지요.
복수는 통쾌하기는 하지만 순진한 두 여자의 뻘짓 이 눈치빠른
시누이의 등장으로 하나둘씩 드러나며 반전 이 일어납니다.
우리나라도 저출산 황혼 이혼, 가족 해체와 1인 가구 등 일본의 전철을
고스란히 뒤따르고 있는지라....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사이 갑자기 도로변에 간판이 하나 나타나니 쓰나미 주의보
라? 우리가 서 있는 도로는 표고가 불과 3.2 미터 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러고는 다카다야케이 자료관 을 지나서 다이산자카 大三坂 언덕길을
만나 좌회전하여 도로를 건너 항구 인 부두 쪽으로 걸어 내려가니.....
거기 옛날에는 부두의 창고 로 사용된 건물들이 이제는 개조 를 하여......
상점가 가 들어선 모습을 건물을 통과하면서 구경합니다. 세상에? 창고를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기에? 우리 같으면 허물고 새 건물 을 지으련만....
그러고는 가네모리 레드브릭 웨어하우스 金森赤 レンガ 倉庫
라고 불리는 건물을 다 통과하니 부두 도로 가 나오는데....
건너편은 하코다테 항구 부두 인데 보통 보는 어선 외에도.....
유람선과 요트며 보트 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을 구경합니다.
하코다테 는 지리적으로 혼슈에 가장 가까운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메이지 시대부터
해운 이 발달했고 홋카이도와 혼슈와의 연결망으로 세이칸 연락선 이 다녔습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혼슈와 북해도를 잇는 해저 터널 이 생긴 지금도 정기 페리
가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 사이에 취항하고 있어 물류의 한 축을 이룹니다.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지방 특색산업인 조선 과 그 관련 산업이 많이 번창해
하코다테는 활기찼지만..... 오일 쇼크 를 경계로 침체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도시 하코다테는 예전에는 북양 어업의 기지 로서 번창했으니...
어선단의 일제 출어 등도 좋은 구경거리 풍물 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쪽의 러시아(당시는 소련) 가 200 해리 경제수역 의 설정 이후는
사할린과 캄차카에 출어할수 없어 그런 풍물은 옛일 이 되고 말았습니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의 부동산 시장이 폭락 하는 이른바 버블 경제의 붕괴
후에는 하코다테도 예전의 활기찼던 모습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하코다테의 야경이 보고싶네요
하코다테의 야경......
일본 3대 야경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즐겁게 읽고갑니다
고마운 말씀입니다.
이제 봄이오는 기운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