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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기획
* 사전 기획 기간 1년3개월
* 시나리오 준비 및 검증기간 2년5개월
* 시뮬레이션 촬영기간 3개월
* 주, 조연 오디션 기간 6개월
세밀한 준비
* 군복 1만 9천벌, 군화 1천여 켤레 제작
* 50년대 의상 4천 여벌 제작, 물품 6천여 점 제작
* 2백 여 구의 시체 제작
* 1천 여 정의 총기, 대포, 기관총, 수류탄, 대검 제작
* 50년대 시대 상황 및 한국전쟁에 관한 1,000여권의 문헌 자료,
화보 집, 전쟁 다큐멘터리 자료 철저 조사
* 20여명의 국내 최고 자문위원 영입을 통한 철저한 고증작업
한국 영화사상 초유의 거대 물량 투입
* 순수 제작비 130억 원
* 엑스트라 총 동원 수 2천5백 명
* 실제 크기의 증기기관차, 탱크, 장갑차 제작
* 20억 원 규모의 평양시가지 등 20 여 개의 대규모 세트 제작
* 2km에 걸친 낙동강 방어선 진지 구축
* 장동건, 원빈, 이은주, 최민식, 공형진, 김수로등 초호화 캐스팅
* 2톤의 화약, 탄약, 폭발물 투입
누수를 방지한 철저한 촬영진행
* 촬영기간 9개월 , 촬영회수 140여 회
* 전국 올 로케이션 (합천, 곡성, 경주, 인제, 양구, 순천, 아산, 전주등)
* 150여명의 국내 최대 스탭 투입
* 국내 최초 시각감독 시스템 도입
* 시간과 비용의 절감을 위한 각각 두 팀으로 구성된 촬영팀, 동시녹음팀, C.G팀
특히 끝부분을 보면 이데올로기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아주 다른 뭔가가 있지.
음... 그쪽은 전쟁영화라면 신물 나도록 만들어봤을 거고,
나한테 주목하는 건 그렇다면 뭐가 어디서 어떻게 다른 전쟁영화냐는 것 같아.
난 <태극기 휘날리며>를 만들면서 한국전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
지금까지 이 전쟁에 대해서는 누가 먼저 총을 쐈느냐, 그러니까 누가 전쟁을 일으켰느냐에만 시선을 주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전쟁중에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굴지만 그렇지 않더라고. 엄청나게 많은 일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어요. 그게 과연 뭐냐,
그리고 그 원인은 뭐냐 하는 것. 그걸 누군가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배경의 중심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또, 서로 살려야만 했던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렸다.
전 세계인의 눈을 만족시켜 줄 역동적이고 스펙터클한 화면과 그들의 가슴을 만족시켜줄 가슴 뭉클한 드라마에 모든 것을 걸었고 다른 재미와 다른 감동, 그리고 다른 깊이로 만든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도였고 거대한 규모였으며 무엇보다 주위의 관심과 격려도 부담되었다. 하지만,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한 번도 나와 우리 스탭들과 우리 연기자들이 만들고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 의심을 해 본적이 없었다. 내 짧은 영화 경력을 모두 걸을 만큼 200% 자신한다.
자만심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의 마음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확고한 자신감과 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이 프로젝트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독 강제규
About The Movie
세계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도 드라마틱한 전쟁으로 평가되는
한국전쟁... 하지만, 이념도 사상도 애국도 명예도, 그 이상의 것
무엇도.. 전쟁을 겪은 한 개인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에게 중요한 건 오직..
2003년은 한국전쟁이 휴전을 선언한 지 정확히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시점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수도, 그리고 모두에게는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는 과거일 수도 있는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영화는 2000년 TV에서 방영되었던 한국전쟁 유해발굴에 관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되었다. 단 한 장의 전사통지도 받지 못하고 50년 동안 전쟁에 참여한 남편을 기다려온 아내. 이젠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꽃 같던 여인은 군인의 등에 업혀 산비탈을 올라 마침내 50년만에 발견된 남편의 유해 앞에 서고 그 바스라진 뼈 조각을 붙잡고 흐느낀다. 어떠한 영화나 소설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한 한국 현대사의 일면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드라마틱한 전쟁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직 우리에겐 끝나지 않은 현재인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민주주의 혹은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차원에서가 아닌, 한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본 전쟁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 모르지만 500만 명이라는 인명이 사라진 전쟁 속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던 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만약 당신이라면? 이라는 전제를 던지며 치열하고 참혹한 전쟁 속으로 들어가 본다. 사랑하는 사람, 하고 싶은 것들, 지켜야 할 사람, 그리고 살고 싶은 원초적 욕망.. 개인에게 있어 전쟁이란 참으로 작은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개인에게 전쟁이란 이러한 모든 것들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고 단지 그 사람의 배경이 될 수밖에 없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러한 개인의 초점에 맞춰 한국전쟁을 그리려고 한다.
완벽한 구성의 깊이 있는 시나리오와 역동적인 화면이 탄생시킬
이 시대 최고의 감동대작!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만큼, 강제규 감독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요소는 바로 깊이와 밀도였지만, 빼 놓을 수 없었던 점은 바로 역동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 전개였다. 스펙터클한 화면과 드라마틱한 구성, 화려한 볼거리 요소 등을 작품 전반에 배치시켜 관객들에게 완벽한 재미를 주기 위한 노력을 결코 빼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쟁을 놀이터로 둔갑시키고 그 속에 영웅을 탄생시키는 몇몇 전쟁영화와는 분명한 차이를 둔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을 짜임새 있게 풀어내는 깊이 있는 드라마와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한번도 시도하지 못한 최고의 스펙터클한 전쟁 씬을 담을 예정이며 이로써 내용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비쥬얼적인 측면에서도 헐리우드에 버금가는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한국영화의 세계화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2003년, 최고의 호흡으로 뭉친 ‘장동건’, ‘원빈’, ‘최민식’,‘ 이은주’, ‘김수로’, ‘공형진’, 그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배우들의 만남!
장동건, 원빈, 그리고 이은주... 그리고 김수로, 공형진까지.. <태극기 휘날리며>가 몰고 온 여러 가지의 이슈 중 관객의 마음을 설레게 할 최고의 화제는 바로 초호화 캐스팅일 것이다. 이들 배우들은 탁월한 연기력과 스타성을 함께 갖춘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로 손꼽히는 배우들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친구>에 이어, 캐릭터에 대한 다층적 해석을 보여줬던 최근작 <해안선>을 통해 확실한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은 장동건. <킬러들의 수다> 이후 영화배우로서의 확고한 자리 매김을 위해 두 번째 작품으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선택한 원빈. 그리고 <오! 수정>, <번지점프를 하다>의 성숙하고 차분한 모습에서 <연애소설>의 발랄하고 경쾌한 모습까지· 어떤 역할이든 완벽하게 소화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이은주. 그리고 주연보다 필요한 조연으로 평가받는 공형진, 김수로 등 연예인이나 스타보다는 연기자라는 단어가 훨씬 더 어울리는 이 젊은 배우들의 만남은 <태극기 휘날리며>가 지니고 있는 최고의 기대요소 임에 틀림없다. 그밖에 강제규 감독과의 친분으로 선뜻 우정출연을 결정한 최민식의 가세는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줄 예정이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유해발굴 사업 경과 보고서
번호 : 20-344-6
수신 : 국립과학 수사 연구소
발신 : 두밀령 고지 유해발굴 사업팀
안건 : 발굴 경과보고 및 특이사항
M1 자동소총 198정 발굴
AK 소총 569정 발굴
식별 가능 유골 29구 발굴
식별 불가능 유골 198구 발굴
식별 가능 유품 1,232품 발굴
특이사항
1사단 8연대 4대대 2중대 2소대 하사 이진석의
유골과 유품 발굴했으나, 이진석 하사는 현 77세로 서울 거주 중,
확인요망
Synopsis
1950년 6월..
서울 종로거리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진태’(장동건)는 힘든 생활 속에도 약혼녀 ‘영신’(이은주)과의 결혼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 ‘진석’(원빈)의 대학진학을 위해 언제나 활기차고 밝은 생활을 해 나간다.
6월의 어느 날,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호회가 배포되면서 평화롭기만 하던 서울은 순식간에 싸이렌 소리와 폭발음,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해진다. 이에 , 남쪽으로 피난을 결정한 ‘진태’는 ‘영신’과 가족들을 데리고 수많은 피난행렬에 동참하지만, 피난열차를 타기 위해 도착한 대구역사에서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만다. 만 18세로 징집 대상이었던 ‘진석’은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군용열차로 오르게 되고 ‘진석’을 되 찾아오기 위해 열차에 뛰어오른 ‘진태’ 또한 징집이 되어 군용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평온한 일상에서 피 튀기는 전쟁터로 내 몰린 ‘진태’와 ‘진석’은 훈련받을 시간조차 없이 국군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으로 실전 투입이 되고 동생과 같은 소대에 배치된 ‘진태’는 동생의 징집해제를 위해 대대장을 만나게 된다. 대대장과의 면담을 통해 동생의 제대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 ‘진태’는 그 무엇보다 동생의 생존을 위해 총을 들며 영웅이 되기를 자처하는데.. ‘진태’의 혁혁한 전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성공한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북진을 시작한다.
애국 이념도 민주 사상도 없이 오직, 동생의 생존을 위한다는 이유 하나로 전쟁영웅이 되어가고 있는 ‘진태’와 전쟁을 통해 스스로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진석’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 평양으로 향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운명의 덫이 그들 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Character & Cast
전쟁도 이념도 꺾을 수 없는 강한 집념의 형, 진태
“잘 들어.. 형 안 죽어, 너 살려서 집에 보낼 때까지는 절대로...”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와 동생을 보살피며 생계를 꾸려 나가는 책임감 강한 맏형.
힘든 생활에서도 나름대로의 소박한 꿈을 키워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자라온 약혼녀 영신과의 결혼을 앞두고 전쟁에 휘말려 목숨을 담보로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도, 동생을 살려서 집으로 보내기 위해 전쟁의 중심에 나서길 자처한다.
장동건 / 진태 역
1972년생
영 화
해안선(2002)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 친구(2001) 아나키스트(2000)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연풍연가(1999) 홀리데이 인 서울(1997) 패자부활전(1996)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2000) 의가형제(1997) 마지막 승부(1994) 우리들의 천국(1993) 등
촬영의 80%를 마치고..
“지금까지 연기한 이례 가장 힘들고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
그 어떤 작품 보다 열심히 했고 철저히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캐릭터에 몰입했다.
자신하건데 이 영화는 나에게 그리고, 한국 영화계에, 더 나아가 세계 영화계에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전쟁 속에서 변해 가는 모든 것들이 원망스런 동생, 진석
“형 도대체 왜 그래?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형을 믿고 따르는 동생.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학업에 매진하는 진석은 생계를 돌보기 위해 배움의 길을 접은 진태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자 자랑이다. 대학진학을 얼마 앞두고 뜻하지 않게 형과 같이 강제 징집되어 이유도 모른 채 한 민족끼리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전쟁이란 현실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결국, 스스로 강해져야만 한다는 현실을 느끼게 된다.
이진석 역 / 원빈
1977년 생
영 화
킬러들의 수다(2001)
드라마
한일합작드라마 프렌즈(2002) 가을동화(2001) 꼭지(2000) 광끼(1999) 프로포즈(1997) 등
촬영의 80%를 마치고..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의 기대감과 느낌이 촬영의 막바지에도 변함이 없다..
육체적으로는 많이 지치고 힘들어도 촬영에만 나서면 설레고 힘이 난다.
영화는 이제 두 번째 작품이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를 거치면서 진짜 배우가 된
느낌이고 연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것 같다.”
적극적이고 사랑스러운 여인, 영신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어..”
혼자서 어린 세 동생을 돌보는 진태의 약혼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강한 삶의 의지와 희망을 가지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그런 그녀지만 진태에게 만큼은 손수 옷감을 잘라 만든 손수건을 쥐어줄 정도로 사랑스럽다. 가을이면 아름다운 신부가 될 그녀는 느닷없이 일어난 전쟁으로 사랑하는 진태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되며 앞을 알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군대를 가보진 않았지만 촬영장에서의 모든 스탭들과 배우들이
모두 전투현장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힘들었지만 모두들 자신감이 넘쳤고 그런 모습은 그 어떤 촬영장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Director
강제규
1999년... 전국 59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사상 초유의 흥행신화를 만들어낸
<쉬리>로 세계 속에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인 거장!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와 <게임의 법칙> 등을 집필하며 시나리오 작가로 먼저 명성을 쌓았던 강제규 감독은 그 이름만으로도 흥행보증수표가 됨과 동시에,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선두주자로 꼽힌다. 환타지 장르에서 액션 블록버스터에 이어 이번엔 역동적이고 감동적인 전쟁 스펙터클까지... 강제규 감독은 항상 새로운 시도로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한 강제규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랑이야기를 통해 그 동안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환타지장르를 개척하였다. 이 작품으로 강제규 감독은 영화를 더욱 영화답게 만드는 스타일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으며 전국 150만 이상의 관객을 불러들여 성공적인 신고식을 마쳤다. <은행나무 침대>에 이어 1999년, 강제규 감독은 <쉬리>를 통해 또 한번 영화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남북의 분단 현실을 배경으로 헐리우드식 액션에 감성적 멜로를 녹여낸 <쉬리>로 전국 597만 관객을 동원, 국내 영화 신기록을 달성했기 때문. 또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쉬리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세계 영화 시장에서 한국 영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야기에서 남북간의 사회갈등까지· 항상 민족과 사랑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으면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온 강제규 감독. 2003년에는 한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1950년대로 되돌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형제의 이야기를 그려낼 예정이다. 대규모로 펼쳐지는 스펙타클한 영상 안에 끈끈한 형제애를 녹여낼 <태극기 휘날리며>는 강제규 감독이 또 한번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휴먼 전쟁 스펙터클장르. 이로써 강제규 감독은 장르와 소재의 한계, 아이디어의 고갈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한국영화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한국영화 재도약의 초석이 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1962년 생.
감독 / 쉬리(1998) / 은행나무침대(1996)
각본 / 지상만가(1997) / 은행나무침대(1996) / 게임의 법칙(1994) / 장미의 나날(1994) /
누가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 외 다수
제작 / 베사메무쵸(2001) / 단적비연수(2000) 외
Staff
“난, <태극기 휘날리며>를 준비하며 내 인생을 걸었다. 그리고 내 인생을 걸만큼 작품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난 내 인생을 바칠 작품에는 특별한 동반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특별한 파트너들은 최고여야만 했고 또한 나와함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했다. 오랜 과정 끝에 그들을 만나고서야 결국, 내 바램이 현실로 되고 있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감독 강제규
2003년 2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영화계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였고, 그들 모두 한국 영화 역사를 새로 쓸 기념비 적인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작품을 짊어지고 나갈 운명의 동반자가 되기를 자청했다. 그리고, 그 멀고도 힘든 여정은 시작됐고 어느덧 험난한 여정은 절반을 넘어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검게 그을린 피부, 상처들로 뒤덮인 몸, 피로로 누적된 얼굴 등은 처음의 그들 모습과 많이 달라졌지만 그들의 강렬한 눈빛만은 그대로였다.
Director of Photography 홍 경 표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을 맡게 된 홍경표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촬영감독이다. 수많은 흥행작품에서 독특하고 완벽한 카메라 워크로 많은 시선을 끈 그는 이번 촬영작업에서 카메라와 조명 두 가지 부분을 모두 감독했다. 두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그가 주안점을 둔 사항은 조명은 스케일, 카메라는 디테일이었다. 조명은 질감이 거칠고 진하게 베어 나오게 하기 위해 광선을 끊어 작업을 했고 야간 야외 씬이 많아 월광의 느낌을 주기 위해 50kw 짜리 대용량 조명을 수입해 사용했다. 촬영에 있어서는 전쟁씬과 전투액션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이를 위해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사용된 ‘이미지 쉐이크‘를 사용하여 인공적으로 흔들림을 만들어 리얼하고 거친 느낌을 주었다. 매 촬영마다 모든 스탭들이 고생했지만 그의 조명팀과 촬영팀은 그야말로 대 전투를 치뤄야 했다. 험악한 지형조건으로 매번 수많은 기자재를 손으로 운반하기 일쑤였고 걸을 수도 없는 험한 이동로 때문에 도로작업만 일주일이 걸린 일도 있었다. 또한 촬영장소의 여건이 원만하지 않아 카메라 워크를 살리는 게 가장 힘들었고 많은 부분 헨드-헬드로 찍어야 한다는 것도 위험 부담이 컸다. 10편의 영화를 작업한 것 같다는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보여주지 못했던 그 모든 기술이 200% 발휘되었다고 자신한다. 특히 대관령에서 촬영한 피난 장면과 국군의 퇴각장면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꼽는다. 액션 씬 못지 않게 드라마에도 많은 부분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영화 자체가 액션과 더불어 강한 드라마가 장점이었기에 인물들의 표정과 동작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잡아내는 것이 필요했다. 다행히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이미 물이 올라 느낌이 항상 살아있었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촬영에 있어서는 이미 베테랑인 그이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는 정말 대단한 스케일을 가진 엄청난 대작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Producer 이 성 훈
<은행나무침대>부터 오랫동안 강제규 감독의 참모역할을 해온 이성훈 PD는 이번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예산책정부터, 스탭 구성, 촬영장에서의 모든 제반사항, 배우와 스탭들의 스케쥴 조정, 현장에서의 마케팅 협조, 로케이션장소 섭외 및 진행까지 작품 외적인 부분에 대한 거의 모든 부분을 담당했다. 그 중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예산 책정 및 자금 집행이었다. 140명이 넘는 현장 스탭들과 회당 평균 200명이 넘는 엑스트라들과 함께 최단 기간 140회 촬영을 마쳐야 했고 8개월에 걸친 전국 18지방의 올 로케를 치뤄야 했기에 그 어려움은 더욱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는 스탭의 세부조직화, 두 팀의 주요 스탭 운영, 미술감독 시스템도입, 로케이션 지역 해당 도시의 협조유도 등으로 보다 효율적인 자금관리를 이루어 내었다. 효율적인 자금 관리 이외에도 그가 중요시한 건 스탭들의 사기 충전이었다. 숙소 배정부터 이동, 식사시간의 식단, 여가 활용 등 140여명의 스탭들이 힘든 촬영을 마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최선의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악천후로 인한 촬영일정 조정과 촬영장에서의 크고 작은 문제로 인한 어려움도 많았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태극기 휘날리며>의 살림을 완벽하게 꾸려온 그는 영화가 공개되고 130억 원으로 이 영화를 도대체 어떻게 찍었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몽정기(2002) / 블루(2003)
Production Designer 신 보 경
<세상 밖으로>, <접속>, <미술관 옆 동물원>, <비밀>, <오버 더 레인보우>등 많은 영화에서 특유의 감각으로 미술 감독 역할을 수행해온 그녀는 경력이 벌써 1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그런 베테랑인 그녀였지만 다른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대형 프로젝트를 담당하기에 앞서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만큼 의욕과 자신감도 앞섰다.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한국 영화로는 독특하게 프로덕션 디자이너 개념으로 작업을 하게 된 그녀는 밑에 두 명의 아트디렉터와 70여명의 미술 스탭을 진두 지휘하였다. 두 명의 아트디렉터는 민간아트 와 군대아트를 나누어 담당했고 그 밑에 분장, 소품, 세트, 헤어, 의상 등을 담당하는 전문 스탭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군대아트를 맡은 <선물>, <정글쥬스>의 이대훈 아트디렉터나 민간아트를 맡은 <패밀리>의 이미경 아트디렉터 또한 내노라하는 프로였기 때문에 그녀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미술, 분장, 세트, 헤어, 의상, 소품, 특수분장, 그리고 특수효과까지 모두 관리를 한 그녀는 전체 적인 조율과 함께 누수가 되는 세부적인 사항까지 체크하였다. 그녀가 이끄는 모든 미술 팀이 최고의 전문가들이었기에 기술적으로는 큰 고충은 없었지만 험악한 촬영 장소 여건과 태풍 등의 기상 조건등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점이 가장 힘들었다. 또한 시대물이기 때문에 리얼리티에 대한 과제가 항상 문제로 남았다. 50년대의 대구역사와, 종로 거리, 개성 역과 여러 대규모의 격전지, 평양시가지등 가보지도 못한 곳을 만들어내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전쟁으로 인해 고증자료까지 남아있지 않아 평양시가지 같은 경우는 중국과 일본에서 구한 흑백 사진 몇 장과 영화적 상상력만으로 작업을 시도했다. 영화 미술은 현실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영화에 맞게 재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100% 고증이 불가능하다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영화적으로 완벽한 재현을 시도하는 것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 말한다.
오버 더 레인보우(2002) / 스물넷(2000) / 비밀(2000) / 미술관 옆 동물원(1998) / 찜(1998) / 접속(1997) / 그들만의 세상(1996) / 세상 밖으로(1994)
Set Decorator 강 보 길
신보경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세트 제작 회사 ‘청솔아트’ 팀과 함께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든 세트 제작을 담당한 그는 15년 동안 이미 크고 작은 영화에서 실력을 검증 받은 인물이다. 거의 대부분이 야외 촬영인 <태극기...>에서의 세트는 그야말로 중요한 작업이었다. 50년대가 배경이었기에 각종 건물과 배경, 군용 건물에서부터 민간 건물까지 모든 부분에서 세밀한 주의가 필요했다. 세트팀은 제작에 앞서 철저한 고증을 통해 실제 당시와 똑같은 세트를 제작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고증 자료의 부족으로 100%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있었으나 그의 손을 거친 세트들은 모두에게 대 만족을 줬다. 그 중 대구역사, 장단역, 경주 집결지, 평양시가지 세트, 읍내 거리세트 등은 명작으로 통한다. 세트 제작마다 항상 40~60여명의 대규모의 기술자들이 투입되었고 30%~40% 정도의 신 재료들이 쓰였다. 합판이나 판넬보다는 벽돌 같은 실질적인 재료를 많이 사용해서 리얼한 효과를 많이 주었고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다해 제작을 했다. 때문에 세트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마치 그 시대 그 장소에 와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이다. 그가 가장 공을 들여 제작한 평양시가지 세트는 영화 역사상 길이 남을 훌륭한 세트로 촬영 이후 합천군의 대규모 테마 파크로 쓰일 예정이다.
지구를 지켜라(2003) / 패밀리(2002) / 챔피언(2002) / 일단 뛰어(2002) / 예스터데이(2002) / 튜브(2003) / 2009로스트메모리즈(2002) / 화산고(2001) / 텔미 썸딩(2000) 외 다수
Sound Editor 이 태 규
<여고괴담>, <단적비연수>, <품행제로>, <아유레디>등 무수한 작품에서 작업한 그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작품보다 <태극기 휘날리며>란 작품은 새로웠고 그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역동적인 화면을 지향하는 강제규 감독의 스타일은 거의 모든 씬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동적이고 주변의 것들이 살아 움직여야 했기에 배우들의 대사와 주위의 소음들을 동시에 담아내는 것이 힘들었다. 그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포타 드라이브’라는 하드레코드를 국내 최초로 사용하였고 마이크도 종류별로 10자루 이상을 항상 준비했다. 항상 가동되는 두 대의 카메라에 각각 한 대씩의 마이크가 설치되었고 붐 마이크 이외에 와이리스 마이크도 상당수 사용되었다. 그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생 효과음 부분이었다. 얼마만큼의 생 효과음을 그대로 살려 낼 수 있는가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한 부분이었으므로 항상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꽉 차고 역동적인 스펙터클한 화면에 반해 소리가 비어 보인다면 화면 전체가 빈약해 보일 수 가 있었고 현장 동시녹음을 통해서만 리얼한 현장 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었기에 모든 소리를 놓칠 수 없었다. 거의 모든 분량이 야외 세트였기 때문에 주변 소음 또한 커다란 방해였다. 녹음 팀 전원이 촬영하기에 앞서 한 촬영장 부근의 매미들을 모두 소탕했다는 얘기는 웃지 못할 전설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모든 노력과 열정을 쏟아 부은 <태극기 휘날리며>는 Foley, 이펙트, 소리등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음질을 자랑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아 유 레디(2002) / 몽정기(2002) / 묻지마 패밀리(2002)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 번지점프를 하다(2000) / 마요네즈(1999) / 가족시네마(1998)
Stunt Coordinator 정 두 홍
25살 때부터 무술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그는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무술감독으로 통한다. 액션을 보는 눈이 탁월하며 카메라와 감독의 연출의도까지 정확히 파악해 최대의 액션 효과를 만들어 낼 줄 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스턴트액션의 비중이 큰 작품이었다. 빗발치는 폭격 속에서의 스턴트 액션, 사격, 백병전등 거의 모든 촬영에 스턴트 액션이 필요했다. 그는 ‘김민수’ 무술감독과 함께 최고의 전투 액션 씬 연출에 사활을 걸고 작업을 진행했다. ‘김민수’ 감독 또한 최고의 스턴트 코디네이터로 통하기 때문에 둘이 함께 연출해 낸 작품은 최고가 아닐 수가 없었다. 영화 촬영 전체의 컨셉과 마찬가지로 스턴트 액션 또한 리얼리티를 중요시했다. 그가 거느린 수많은 전문 스턴트 배우들은 정말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로 모든 스탭 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수많은 다이나마이트 폭발 속에서도 리얼하고도 강력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 스턴트 배우들이야말로 이 영화의 숨은 일등 공신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액션 중 두밀령 고지 전 촬영에서 벌어진 육박전 액션은 그가 꼽는 최고의 액션 씬이다. 수 백 명의 전문 스턴트 요원들이 투입되었고 육박전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철저한 고증을 통해 그 당시 전투 전술을 연구했다. 극도의 근접촬영이 상당수 포함되어 어설픈 동작이 허용될 수 없었기에 위험 또한 컸다. 한데 뒤엉켜 총검으로 찌르고 베고 돌과 개머리판 등으로 가격하는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치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평소 말수가 없고 칭찬에 인색한 그이지만 ‘장동건’과 ‘원빈’의 액션연기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씬 마다 각기 다른 20여 가지의 구체적인 동작을 익히는 과정에서도 몰입도나 운동신경에서 그가 맡았던 그 어떤 배우보다도 뛰어나다고 한다.
Special Makeup Artist 신 재 호
<무사>등 굵직한 영화에서 사실적인 특수분장으로 명성을 날린 메이지 스튜디오 소속인 그는 <태극기 휘날리며> 작업에 임하면서 새로운 기대들로 가득 찼다. 전쟁영화에서의 특수분장은 그 작업량이 어마어마했지만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못한 여러 가지 효과들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크랭크인에 앞서 그는 각종 전쟁 다큐멘터리와 전쟁 사진 등을 보고 특수분장에 대해 각종 아이디어를 구상하였고 헐리우드의 선진 기술도 상당부분 습득하였다. 특수분장 또한 최대한의 리얼리티가 중요한 사항이었다. 폭파장면에서 사지가 떨어져 나가고 총격전에서 총알이 몸을 뚫고 지나가는 등의 모든 표현을 위한 특수분장은 사실성 위주로 표현되었다. 기존 헐리우드 전쟁영화에 눈 높이가 맞춰있는 관객들이기에 어설픈 효과는 상당히 위험한 것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잘해도 본전이었지만 자본적으로나 기술적으로 한 단계 위에 있는 헐리우드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고 영화의 리얼리티를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합천, 대관령, 김제, 부산, 부천, 경주, 양구, 곡성, 전주, 태백 등
전국 18지방 이상의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태극기 휘날리며>의
그 광활한 로케이션!
대관령
혹한..
강한 바람과 서린 눈발 속에 들려오는 커다란 폭발음..
흰눈 속에 더욱 검게 그을어 보이는 검은 폭약연기..
혹한의 서늘함을 한껏 더하는 처절한 비명과 차가운 쇳소리들...
국군의 북진 중 압록강 겨울 전투 씬을 찍기 위해 눈발이 살아있는 로케이션 장소로 택한 대관령.. 그러나,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해발 1,100m 이상의 고지대라 기상예측이 전혀 불가능했고 바람의 세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게다가 촬영장비 공수와 이동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제작진은 보다 리얼한 겨울 씬을 찍기 위해 무리수를 뒀고 두 달이 넘는 이동통로 공사 작업을 통해 드디어 촬영장비가 공수되기 시작되었다. 대관령 중 가장 험하다는 횡계 내의 삼양목장에서 이루어진 로케이션은 눈, 바람, 추위 등 자연과의 전쟁으로 일축된다. 운반 로의 제설작업만으로도 하루가 다 가기 일쑤였고 다음날 되면 또 수북히 쌓인 눈 때문에 허탈감은 극에 달했다. 결국 촬영용 6륜 트럭과 탱크를 운반용으로 대체하여 기어이 촬영에 돌입한 제작진은 그야말로 최악의 여건에서 스스로와의 싸움을 해야만했다. 결국, 1달이 넘는 힘든 촬영이 무사히 끝났고 스탭 들은 필름에 담아낸 자신들의 작품을 보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자신들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최고의 씬들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곡성
불안..
이별과 슬픔, 분노와 아픔이 공존하는 아수라장..
거대한 증기기관차 굉음과 헤아릴 수 없는 인파에 묻혀버린 눈물, 탄성, 비명소리..
지금은 폐로가 된 구 곡성역에서 진행된 이번 로케이션은 대구역사와 장단역, 피난민씬, 국군의 퇴주 장면 씬 등을 촬영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구 곡성역은 넓은 대지에 늘어선 각종 폐 건물과 수려한 자연풍광, 주변의 현대시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명당자리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훌륭한 장소가 쉽게 나타날 리는 없었다. 처음엔, 일단 원활한 장기간의 촬영을 위해 제작진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선을 찾아다녔다. 6개월간 태백선등 전국의 역사를 돌아다닌 제작진은 여러 조건들이 맞지 않아 결국, 중국까지 헌팅을 다녀왔지만 그곳 또한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거의 포기상태로 고민을 하던 제작진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곡성역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 도착한 순간 모든 고민이 해결되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점이 생겼다. 10년 이상 선로정비가 되지 않아 증기기관차의 공수가 어렵다는 문제였다.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실제 증기기관차를 분해해서 갖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촬영에 반드시 필요한 증기기관차를 배제할 수도 C.G로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제작진은 실제 동력으로 이동까지 가능한 3량 짜리 증기기관차 제작에 들어갔고 너무나 훌륭한 실제 증기기관차가 탄생하게 되었다.
경주
분노..
자연이 준 천연의 대지 위.
생과 사를 넘나들며 벌이는 대규모 혈투.
주변의 풍경은 희뿌연 흙먼지와 검붉은 폭발 속에 묻혀만 가고..
국군 후퇴 집결지 장소로 선택된 구 한청공장 부지와 국군의 기습 침투 전을 촬영한 도투락목장은 이번 로케이션 장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백미로 통한다. 한청공장부지는 도투락 목장에서 1km떨어진 산 능선에 있었는데 도투락 목장으로 헌팅을 갔던 제작진에 의해 우연히 눈에 띈 장소이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 쌓여 있어 배경처리의 필요성이 없었고 곳곳에 폐 건물들의 잔해가 남아있어 느낌이 살아있었다. 게다가 해발 600m의 산 능선임에도 불구하고 넓은 대지를 갖춰 놓아 대규모 촬영에 적격이었던 것.. 도투락 목장 또한 원만한 능선을 갖고 있어 기습 침투전을 찍기엔 적격이었다. 제작진은 경주시의 배려와 협조로 도투락 목장 부지에 1달 동안 포크레인과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인민군 교통호 세트를 제작하였다.
또한 한청 공장 부지에는 10여 채의 크고 작은 건물들을 제작하였다. 얼마 전 일본에서 방한한 태극기 촬영장 방문단이 견학한 곳도 이 두 장소였다.
합천
격전..
2만평 대지 위에 살아난 평양시가..
영험한 황매산 정상에서 펼쳐진 46일간의 혈투..
50여 년 전 치열했던 격전의 현장 속으로..
영화의 하이라이트 씬인 평양시가지 전투와 두밀령 고지전, 낙동강 벙어 선 전투 등 굵직굵직한 대규모 전투 촬영이 이루어진 합천군은 대규모의 촬영이 이루어진 만큼 합천군의 대단한 지원도 한몫을 했다. 먼저, 축축한 습지의 땅과 거친 황무지느낌의 배경이 필요했던 두밀령 고지전과 낙동강 방어선 전투는 황매산 정상에서 이루어졌다. 이곳은 영화 <단적비연수> 야외 세트와 고개하나를 두고 떨어져있었는데 강제규 필름 측에서 <단적비연수>촬영 때부터 미리 점찍어둔 명당 자리였다. 밑에서 카메라를 잡으면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산 정상인데다 거칠지만 비옥하고 광활한 초지였기에 대규모 전투 촬영을 찍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제작진은 한 달에 걸쳐 산 정상에 각종 교통호와 진지를 구축했고 역사상 길이 남을 스펙터클한 전투액션을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합천군 용주 마을 수자원공사부지 2만2천평에 평양시가지전을 위한 평양시가지세트 제작이 진행되었다. 20억 원에 가까운 세트 제작비를 투입하여 한국전쟁당시 평양시가지를 영화적으로 복원하는데 주력했다. 한국 영화계에 기념이 될만한 이 평양시가지 세트는 촬영 후 합천군에 기증되어 합천군의 테마관광단지로 재구성될 예정이다.
아산
향수..
폭풍 전야의 고요함.. 폭풍 속의 쓸쓸함..
다가올 거대한 폭풍 앞에 한없이 슬퍼 보이기만 한 행복하고 평온한 일상...
1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아산의 공세리 성당에서 이루어진 국군병원 씬 촬영의 가장 어려웠던 점은 모든 건물과 물건들이 귀중한 문화재였기에 항상 조심해야 했던 점이다. 장소 섭외부터 까다로웠던 터라 제작진은 충분한 사전 조율을 통해 세심하게 움직였다. 워낙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건물들이라 크게 손댈 필요는 없었기에 뒤뜰에 자그마한 취조실 건물만을 지었을 뿐 별다르게 손 댄 부분은 없었다. 다만, 보도블록과 아스팔트로 깔아진 성당주변 길 위에 1톤 가량의 석분을 까는 작업은 예상보다 힘들었고 촬영 후 그 석분을 치워 원상 복귀하는 과정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아산시 외암리 민속마을에서 촬영된 진태 집과 영신 집은 전쟁 전 평온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에 주위 경관과 집의 이미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I N T O T H E R E A L B A T T L E
두밀령 고지 전투
역사 속에 기록되지 않은 가상의 전투 장면을 영화적 상상에 맞게 재구성한 이번 전투장면에는 15,000발의 실제 공포탄과 3,000여명의 엑스트라, 500여명의 전문 스턴트맨 등이 투입된 대규모 육박전이었다. 대규모의 사격 전 대신 육박전(전투 중 탄약이 떨어졌거나 은밀한 기습 전을 수행하기 위해 총검이나 총 머리 판, 대검, 돌덩이 등의 1차원적 무기로 적을 제압하는)으로 진행된 이번 전투를 위해 주 조연배우부터 엑스트라까지 오랜 기간의 총검술 훈련을 받았다. 3주 동안의 긴 촬영과 하루 평균 50여건의 작은 부상사고가 생기기는 했지만 모두들 큰 부상 없이 촬영을 마쳤다. 폭격 속의 육박전 형태로 진행된 이번 촬영에서는 50년대 무기들의 폭발 효과를 내기 위해 다이나마이트와 함께 흑연가루, 시멘트, 나무껍질, 톳밥 등이 함께 쓰여 보다 리얼한 폭격 씬을 선보일 예정이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탱크와 장갑차, 쌍발기까지 등장하여 스펙터클의 극치를 선보일 예정이다.
평양 시가지 전투
인천 상륙 후 북으로 진군을 시작한 국군이 평양시가지에서 대규모 적군과 만나 시가지 전을 벌인다는 설정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투는 평양 시가지 세트 제작비만 무려 16억 원에 달한다. 투입되는 탄약과 폭발물의 양도 엄청나고 탱크, 장갑차등을 이용한 전투 장면 또한
등장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시가전을 방불케 할 이번 촬영은 비록 전쟁은 아니었지만 이미 <쉬리>로 잊지 못할 시가지 총격전을 선보인 강제규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다. 현재 세트 제작이 완료되었고 촬영은 10월초에 시작되어 2주간의 촬영에 들어간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국군이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에서 필사의 전투를 벌이는 이 장면은 총 120여 회 이상의 대형 폭발이 이루어지는 상당히 고난위도의 촬영이었다. 각종 대포와 폭격기 등으로 국군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적군의 무수한 폭격을 담아내었다.
1,000여명의 훈련된 엑스트라와 전문 스턴트 연기자들이 동원된 이번 차량은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서 응급차와 소방차까지 동원된 실로 위험한 촬영이었다. 한 장면을 위해 실제 폭발현장 속에서 몇 번이고 촬영을 거듭한 스턴트 배우들의 활약이 가장 인상깊었지만 장동건과 원빈 또한 근거리 폭발 속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과감한 액션 연기로 스탭들의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큰 사고 없이 2주간의 촬영이 끝났지만 그 후에 스탭들에게 흑연가루만 보면 속이 메스꺼워 지는 흑연가루 알레르기가 생길 정도였다.
압록강진지 퇴각 전투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한 번 전세의 역전을 겪는 국군이 압록강 고지에서 퇴각하면서 벌이는 전투 장면을 담은 이번 촬영은 대관령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전투는 겨울 전투씬으로 하얀 눈과 검은 연기가 배치되어 영상 적으로도 뛰어난 장면이 연출되었다. 겨울이라 흑연가루 대신 대규모의 밀가루와 석분이 투입되었고 20여명의 전문 스턴트 배우들과 2,000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었다. 촬영 장소와 촬영 여건이 원활치 못해 6주간의 기간이 걸린 이번 촬영은 고생한 만큼 기쁨도 크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해준 명 장면으로 기억된다.
한국영화의 세계 정복이라는 고지 점령을 위하여 오늘도 이들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함께 치열한 전투를 치릅니다...
그들의 땀방울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