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초루돈대] 구간
탐방로 주변의 꽃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초루돈대] 구간 탐방로에서
북한쪽으로 바라본 풍경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초루돈대] 구간 탐방로
주변 풍경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초루돈대] 구간
탐방로 주변의 제비꽃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산47 번지에 있는
초루(譙樓)돈대
강희 59년(1720년) 4월에 건립된
초루(譙樓)돈대의
안쪽에서 바라본
출입문
초루(譙樓)돈대에 있는
3개의 포구
초루(譙樓)돈대에 있는 3개의 포구 중
왼쪽의 포구(좌)와 중앙의 포구(우)
초루(譙樓)돈대에 있는 3개의 포구 중
중앙의 포구(좌)와 오른쪽의 포구(우)
초루(譙樓)돈대에 있는
3개의 포구 중
왼쪽의 포구
바깥쪽에서 바라본
초루(譙樓)돈대
초루(譙樓)돈대의
외벽
바깥쪽에서 바라본
초루(譙樓)돈대
[초루돈대~작성돈대] 구간 탐방로에서
초루 돈대 방향으로 바라본 풍경
[초루돈대~작성돈대] 구간
탐방로에서 바라본
봉천산
[초루돈대~작성돈대] 구간
탐방로에서 바라본
별립산(중앙)과 교동도 화개산(우)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산633번지에 위치한
작성돈대(鵲城墩臺)
강화도에 축조된 54개 돈대 중
가장 마지막(1726년)에 쌓은 돈대인
작성돈대
작성돈대의 출입문에서 들여다본
2개의 포구
작성돈대의
2개의 포구
작성돈대의 2개의 포구 중
왼쪽의 포구
작성돈대의 출입문
작성돈대에서
북한쪽으로 바라본 풍경
작성돈대의 안쪽에서 바라본
출입문
둘레가 101m인
중형급 돈대인 작성돈대
[작성돈대~교산리 묵곡 고인돌] 구간
탐방로에서 뒤돌아본
작성돈대가 있는 산
[작성돈대~교산리 묵곡 고인돌] 구간
탐방로에서 바라본
별립산
[작성돈대~교산리 묵곡 고인돌] 구간
탐방로 주변 풍경
교산리 묵곡 고인돌
안내 표지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 산 195 번지에 있는
교산리 묵곡 고인돌
교산리 묵곡 고인돌
교산리 묵곡 고인돌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 504-2 번지에 있는
강화 교산교회(橋山敎會)
1893년 강화에 첫 번째로 설립된 개신교 교회인
강화 교산교회(橋山敎會)
강화 교산교회(橋山敎會)에 있는
초대 교회개척자인 김상임 전도사
기념비
강화 교산교회(橋山敎會)에 있는
초대 교회개척자인 김상임 전도사
기념비
강화 교산교회의
기독교 선교역사관
강화 교산교회(橋山敎會)를 개척하신
3분
한국 선교의 시작
강화에 떨어진 복음의 겨자씨
강화 교산교회를 개척한
김상임 전도사의
후손들
강화 교산교회의 개척사
강화 전역으로 뻗어나간
복음의 줄기
강화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특징
강화에서의
기독교 전파 지도
강화 교산교회의 역사
강화 교산교회를 빛낸 인물들
강화 교산교회의
포토존
강화 교산교회
종합안내도
선상 세례 조형물과
강화 복음전래 기념비
선상 세례 조형물
선상 세례에 관한
안내문
선상 세례 조형물
[강화 교산교회~인화돈대] 구간
탐방로에서 바라본
별립산
[강화 교산교회~인화돈대] 구간
탐방로 주변의 꽃
인천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에 있는
인천광역시교육청학생교육원 서사체험학습장
[강화 교산교회~인화돈대] 구간
탐방로에서 바라본
별립산
[강화 교산교회~인화돈대] 구간
탐방로에서 바라본
별립산
[강화 교산교회~인화돈대] 구간
탐방로에서 바라본
별립산
인화돈대가 있는 언덕
인화돈대가 있는 언덕의
바위
인화돈대(寅火墩臺)에서 바라본
별립산(좌)과 석모도(우)
인화돈대(寅火墩臺)에서 바라본
교동대교와
그 뒤로 보이는
석모도(좌)와 교동도(우)
인화돈대(寅火墩臺)에서 바라본
교동대교와
그 뒤로 보이는
석모도 상주산(좌)과 교동도 화개산(우)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982 번지에 있는
인화돈대(寅火墩臺)에 관한
안내문
2024년04월27일(토요일) 강화도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초루돈대&작성돈대&교산리 묵곡 고인돌&강화 교산교회&인화돈대] 탐방기 탐방지 : 강화도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초루돈대&작성돈대&교산리 묵곡 고인돌&강화 교산교회&인화돈대] 탐방코스: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 버스 정류장~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초루돈대~작성돈대~교산리 묵곡 고인돌~강화 교산교회~인화돈대~인화성 입구 버스 정류장] (14.0km) 탐방일 : 2024년04월27일(토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강화군 양사면 : 최저기온 8도C, 최고기온 22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4시간50분 소요) 09:01~09:20 구산역에서 6호선 지하철을 타고 합정역으로 가서 합정역 6번 출구로 나옴 [19분 소요] 09:20~09:22 합정역 버스 정류장에서 강화터미널로 가는 3000번 버스 승차 대기 09:22~11:18 3000번 버스를 타고 합정역 버스 정류장에서 강화터미널로 이동 [1시간 56분, 37개 정류장 이동] 11:18~11:25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26번 버스 승차 대기 11:25~11:52 26번 버스를 타고 강화터미널에서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27분, 22개 정류장 이동] 11:52~12:01 인천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에 있는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 버스 정류장에서 탐방출발하여 인천 강화군 양사면 전망대로 797 번지에 있는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로 이동 12:01~12:43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를 탐방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는 강화도 최북단 양사면 제적봉에 있는 전망대이다.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어 이북 실향민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강화도의 명소이다. 민족 동질성 회복과 평화적 통일의 기반구축을 위한 문화관광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민통선북방지역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되어 2008년 9월 5일 개관하였다.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대성면 삼달리까지의 거리는 2.3km로 해안가를 건너 예성강이 흐르고, 좌측으로는 황해도 연안군 및 백천군으로 넓게 펼쳐진 연백평야가 있으며, 우측으로는 개풍군으로 북한주민의 생활모습과 선전용 위장마을, 개성송수신 탑, 송악산 등을 조망할 수 있다. 군사분계선이 인접해 있어 신분증 지참은 필수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 12월~02월 09:00~17:00(매표마감 16:00) - 03월~11월 09:00~18:00(매표마감 17:00) ※ 시기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변경 쉬는날 : 연중무휴 주차시설 : 가능 유모차 대여여부 : 가능 신용카드 가능여부 : 가능 애완동물 가능여부 : 불가 문의및안내 : 032-930-7062~3 상세정보 관람동선 : 1층 → 2층 → 3층 → 망배단 → 제적봉비 → 퇴장 입 장 료 [개인] - 성인 2,500원 - 청소년, 군인 1,700원 - 어린이 1,000원 [단체(20인 이상)] - 성인 2,200원 - 청소년, 군인 1,500원 - 어린이 800원 ※ 무료 : 만 6세 이하, 만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장애인 등(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참조) 시설이용료 망원경 : 500원(1회 사용시간 2분) 이용가능시설 - 1층 : 관리실, 통일염원소, 휴게실, 기념품매장, 화장실 - 2층 : 전시실, 북한땅 조망실(시청각교실) - 3층 : 북한땅 조망실(시청각교실), 옥외 전망대 - 지하1층, 4층 : 군부대 전용시설 - 야외 : 망배단 ※ 전망대 입장 시에는 검문소를 거쳐야함 ※ 차량운전자의 경우 운전자 1인만 대표로 신분증 확인 후 출입통제증을 받은 후 입장 주차요금 : 무료 화장실 : 있음 ] 12:43~13:22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산47 번지에 있는 초루(譙樓)돈대로 이동 [문 옆 돌에 명문이 있는 초루(譙樓)돈대 소재지 :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산47 강화 최북단 바닷가의 야트막한 야산 정상에 자리잡은 초루(譙樓)돈대는 1999년 육군박물관 조사단의 발굴 이전에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무명 돈대였다. '초(譙)'는 '꾸짖다' 는 뜻이지만, 초루(譙樓)는 궁문이나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門樓)이란 뜻이다. 같은 해 11월 17일부터 36일 동안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본격적인 초루돈대 발굴작업이 실시되었는데, 강화지역 돈대가 정식 발굴된 것은 초루돈대가 처음이다. 조사결과 초루돈대는 해발 45m의 낮은 구릉 위에 맨 밑바닥에는 화강암을 깔고 평면 계란형으로 쌓아올린 것으로, 남북 35m, 동서 27m 크기이며, 마치 석축산성을 축소해 놓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래돈대’라고도 불리는 초루돈대는 불장-의두-철곶-천진돈대와 함께 철곶보 소속으로 강화 최북단 해안방어의 한 축을 맡았는데, 벽체를 따라 북쪽과 북서, 북동쪽에 각각 포를 설치하는 포좌가 셋 있으며 출입문은 남쪽에 설치됐다. 또 돈대 바깥 벽면은 1단의 기단석 위에 6~8단의 네모난 화강암을 15㎝ 가량 들여쌓고 돈대 윗면에는 할석을 3단으로 쌓아 흙과 강회를 섞어 마무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출입구 문주석의 왼쪽 면석에 4행으로 된 명문이 발견되었는데, 계룡돈대 외에 명문이 발견된 것은 초루돈이 유일하다.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에 따르면, "강희 59년[1720년] 4월이라는 글자가 제일 오른쪽 위치하는데, 이는 초루돈대가 건립된 때를 의미한다. 그 다음으로 전(前)별장 최□형, 패장(牌將) 교련관(敎鍊官) 장준영, 전(前) 사과(司果) 김□□의 이름이 연이어 새겨져 있다." 이 명문으로 인해 초루돈대가 숙종 5년(1679) 강화에 최초로 축조되었던 48돈대에 포함되지 않고 나중에 추가된 돈대임이 밝혀졌다. 치세 연간에 '강화읍성'을 고쳐 쌓고 덕진진에 행궁을 지은 숙종은 1718년에는 빙현돈대, 1719년에는 철북돈대를 각각 축조하고, 세상을 떠나는 이듬해에는 초루돈대를 완성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숙종은 강화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임금인 셈이다. 그로 인해 조선은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밀려오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막아낼 수 있었다. 숙종 하면, 늘 음습한 요부 장희빈을 연상하게 되지만, 이제는 국방에 누구보다 심혈을 기울인 왕으로 기억해도 될 법하다. 민통선 안 야산 정상에 자리한 덕분으로 초루돈대는 지금껏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는 있으나, 동쪽과 북쪽의 석벽은 붕괴가 심하다. 포좌는 붕괴되어 원형이 훼손되었으나, 포구는 3구 중 2구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빠른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붕괴는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돈대의 현존 석벽은 7~8단 정도의 높이이며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안으로 들여쌓는 퇴물림 방식을 택했다. 기록에는 둘레가 85보(99m), 여장(성가퀴)이 38첩이라고 나와 있지만, 남아 있는 여장은 하나도 없다. 다만, 남벽 일부에 여장 흔적이 잔존하고 있으며, 전돌을 사용한 흔적도 보인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산속 고즈넉한 곳에 앉아 있는 초루돈대는 주변에 우거진 나무와 덤불로 인해 마치 오래 전에 버려진 고대의 석조 유적처럼 보인다. 유적 앞에 어떤 안내판도 서 있지 않아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지도 모른다. 민통선 안이긴 하지만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곳이므로 볕 좋은 봄날 돈대 투어에 한번 나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백년 세월감을 느껴볼 수 있다. C등급. 안내판 하나 없는 이 돈대를 찾는 일은 어쩌면 소풍 때 보물찾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 힌트 하나를 준다면, 돈대는 바닷가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높은 쪽을 행해 꾸역꾸역 올라가다 보면 호젓한 숲속의 돈대를 만날 수 있다. 자녀들과 함께 간다면 인디애나 존스 같은 탐험체험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돈대 복원 등급] A등급: 여장을 포함, 복원이 거의 온전하게 이루어진 돈대. B등급: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불완전 복원으로 여장 등은 복원되지 않은 돈대. C등급: 돈대 축대 중 기초 부분 정도만 남아 있는 돈대로, 복원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돈대. D등급: 돈대의 기초부분만 약간과 돌 무더기만 있을 뿐, 주변 정리도 전혀 돼 있지 않은 돈대. ] 13:22~13:30 강희 59년(1720년) 4월에 건립된 초루(譙樓)돈대를 탐방 13:30~14:05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산633번지에 위치한 작성돈대(鵲城墩臺)로 이동 [작성 돈대(鵲城墩臺) 소재지 :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산633 강화도에 있었던 54개 돈대 중 가장 마지막에 쌓은 돈대가 작성돈(鵲城墩)이다. 작성돈대는 양사면 북성리 산633번지에 위치한다. 작성돈은 여장(女墻)만 없지 몸체는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강화에 있는 52개 돈대 중에 원래의 몸체를 이만큼이나 보존하고 있는 돈대는 두 세 개 정도에 불과하니 작성돈은 돈대계의 귀한 오리지널이다. 멀쩡한 돈대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설명판도 없어 더 썰렁하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돈대 탐방기나 관련 사진 한 장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이 작성돈에는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는 듯하다. 작성돈은 최초 48개 돈대가 축성된 1679년으로부터 47년이 지난 1726년에 추가로 쌓은 마지막 돈대라서 초기의 축성 형식과는 조금 차이가 난다. 초기 돈대의 정방형에 가까웠던 성돌의 형태가 장방형으로 바뀌고 사이즈도 좀 더 커졌다. 돌을 거칠게 마름질하여 엉성하나마 줄쌓기를 한 것 같은데 허튼층쌓기와 구별이 안될 정도로 막 쌓았다. 돌이 크니 튼튼하기는 하겠지만 영 성의가 없어 보인다. 돌틈 사이 사이마다 성역(城役)의 고단함이 배어있다. 둘레가 101m인 중형급 돈대인데 포좌가 두 개밖에 없다. 보통 돈대 당 3~4개의 포좌를 가지고 있는데 2포좌 돈대는 이 작성돈이 유일하다. 사실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돈대들은 강력한 화력을 투사하기 위한 포대라기 보다 경계, 경보가 주목적인 해안초소이므로 포좌의 숫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성돈의 포좌도 다른 돈대들과 마찬가지로 4호 불랑기포 운영에 최적화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불랑기포라는 명칭 때문에 강력한 화포를 떠올리지만 사실 지금의 기관총 정도의 전술적 위상을 가진 무기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거치된 불랑기포는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선인 예성강의 들머리쪽을 겨냥하고 있다. 수전에 약할 것 같던 만주족의 淸軍이 병자호란 때 수군을 운용했고 갑구지 상륙을 성공시켰던 바, 이는 이후 조선군부의 큰 트라우마가 되었으니 적의 예상 침공로를 단단히 겨누기 위해 이 일대에 작성돈과 초루돈, 철북돈 등을 나중에 추가로 보강한 것이다. 돈대 내부에는 대여섯평 정도 돼 보이는 막사 자리가 도드라져 있다. 남향으로 자리 잡았던 이 터에는 주춧돌, 기왓장 조각 등이 흩어져 있다. 이렇게 돈사(墩舍)의 흔적이 남아있는 돈대가 거의 없었으니 여장까지 포함한 완벽한 돈대 세트의 모범답안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 작성돈만한 돈대가 없을 듯 하다. 군사시설보호구역만 아니라면 인근의 제적봉 전망대와 어울어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돈대유적이다. 해안선 철책을 따라 서쪽으로 700미터쯤 떨어진 곳에 보이는 아주 작은 동산에는 구등곶돈(龜登串墩)이 있다. 강화도 최북단 돌출부인 양사면 북성리에는 돈대가 네 개씩이나 있다. 양사면 전체로 보면 아홉 개가 된다. 좁은 지역에 이렇게 많은 돈대가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여기가 강화도 방어의 요충지라는 뜻이다. 청나라의 위협을 받던 당시의 조선이나,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지금이나 상황은 비슷하다. 그래서 9개 돈대 중 5개는 현재도 해병대가 사용 중인 현역 돈대이다.] 14:05~14:12 강화도에 있었던 54개 돈대 중 가장 마지막(1726년)에 쌓은 돈대인 작성 돈대(鵲城墩臺)를 탐방 14:12~14:49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 산 195 번지에 있는 교산리 묵곡 고인돌로 이동 [橋山里 묵곡 고인돌群 소재지 :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 산 195 고인돌 군이 위치한 곳은 묵골 마을 가운데에 있는 해발 10m 내외의 비교적 평탄한 임야로서 총 8기의 고인돌이 위치해 있다. 5기는 비교적 밀집한 형태를 보이고 구릉지 넘어 2기, 나머지 1기는 북쪽으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8기중 탁자식이 2기, 개석식 고인돌이 6기로 탁자식과 개석식이 혼재하는 고인돌 군이다. 묵곡은 또는 묵골이라고도 불린다.] 14:49~14:55 교산리 묵곡 고인돌을 탐방 14:55~15:00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 504-2 번지에 있는 강화 교산교회(橋山敎會)로 이동 [강화 교산교회(橋山敎會) 위치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 504-2 설립 : 1893년 성격 : 개신교 교회 설립자 : 이승환 요약 : 1893년 강화에 첫 번째로 설립된 개신교 교회. 연원 및 변천 1885년 아펜젤러 목사가 시작한 인천 내리교회에는 1892년 존스(G. H. Jones, 조원시) 목사가 후임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직후부터 존스 목사는 강화 지역 선교를 시작하고자 하였으나, 강화 지역민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내리교회 안에서는 전도의 한 방편으로 상조계를 조직하였는데, 외국 선교사들이 뒤를 봐준다는 소문을 들은 상인들이 몰려들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계원 중 한 사람이 곗돈을 횡령하고 도망치는 사건이 일어나 계원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교회의 평판이 나빠졌다. 그러나 당시 50여 명의 계원 가운데 두 사람이 교회를 떠나지 않았는데, 그 중 한 명이 강화 서사면(지금의 양사면) 시루미[甑山] 출신 이승환이었다. 1893년 존스 목사는 인천에 있던 전도인 이명숙을 시루미 마을로 보냈고, 이승환의 집에서 교인 4∼5명이 모여 예배를 시작하였다. 한편 서민층이었던 이승환과는 달리 양반 출신인 김상임의 입교는 강화지역 복음 전파에 큰 계기를 마련하였다. 기독교를 믿게 된 김상임은 가신(家神)과 사당을 불사르고 자기 집 앞마당에 열두 칸짜리 예배당을 지어 시루미 이승환의 집에 모였던 교인들을 옮겨오게 했다. 이로써 김상임이 살던 다리목[橋項] 양반들과 이승환이 살던 시루미 서민들 50여 명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어 교산교회가 시작되었다. 교회 이름은 교항(橋項)과 증산(甑山)을 합친 것이다. 1893년 말 존스와 스크랜턴 선교사가 교산교회에서 유숙하기도 했고, 내리교회 전도부인 백헬렌도 6차례에 걸쳐 10주간을 머물면서 강화 전도에 힘썼다. 1930년 ‘기독교 대한 감리회 강화구역 교산교회’로 개칭하였지만, 1930년대 이후 교회가 소강 상태였다. 1950년 ‘중부연회 강화지방 양사구역 교산교회’로 개편되었고, 1961년 새로운 예배당이 건축되었다. 1977년 30평의 성전을 증축했고, 1979년에 목사관을 신축하였다. 1981년 구역회의 결의로 교산교회 명칭을 ‘양사중앙교회’로 변경했고, 1982년에는 ‘새마을유아원’을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994년 구역회에서 교회명칭을 ‘강화 교산교회’로 다시 변경하였으며, 그해 창립 100주년 기념 예배를 드리고 『사진으로 보는 강화교산교회100년사』를 발간하고, 김상임 전도사 공덕비를 제막하였다. 2003년에는 110주년 존스기념예배당을 봉헌하였고, 2009년에는 ‘강화복음전래기념비’를 제막하였다. 2013년에는 창립 120주년 기념 ‘강화초대기독교선교역사관’을 봉헌하였다.] 15:00~15:18 1893년 강화에 첫 번째로 설립된 개신교 교회인 강화 교산교회(橋山敎會)를 탐방 [강화도 첫 교회 강화교산교회 130주년…"바다 건너 북녘 땅 교회 재건이 꿈" CBS노컷뉴스 송주열 기자 기사 등록일 : 2023-03-31 중부연회 김찬호 감독, "강화교산교회 역사는 강화 기독교 역사" 강화선교 130주년 한 눈 '강화초대 기독교선교역사관' 매달 2천 명 순례 박기현 강화교산교회 목사, "초대교회 교인들 처럼 북녘에 교회 재건 꿈" 강화교산교회 5월 7일 130주년 감사예배 드려 1893년 인천 제물포에서 주막을 운영하던 이승환은 미국 감리회에서 파송된 존스선교사로부터 복음을 접했다. 이승환은 고향에 있는 노모와 함께 세례를 받기 위해 존스 선교사(G.H. Jones)를 강화도 교산리(현 강화군 양사면 서사길)에 초청했다. 그러나 당시 강화도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외세 침략으로 기독교를 배척했기 때문에 이승환은 주민들의 눈을 피해 노모를 등에 업고 인근 해안으로 도피해 배 위에서 세례를 받았다. 강화도 첫 교회로 기록된 강화교산교회의 '산상세례' 일화이다. 강화지역 복음의 겨자씨가 된 강화교산교회는 이후 1896년 홍의교회를 태동시켰고, 강화 전 지역으로 복음의 물줄기가 퍼져 1906년까지 26개 교회가 설립됐다. 강화교산교회에 마련된 강화초대 기독교선교역사관에는 매달 2천 여 명이 순례객들이 방문해 초대교회 신앙의 발자취를 배우고 있다. 강화교산교회가 올해로 창립 130주년을 맞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부연회(김찬호 감독)는 31일 강화교산교회 존스기념예배당에서 강화선교 130주년 기념 간담회를 가졌다. 기감 중부연회 김찬호 감독은 "교산교회 역사는 강화 기독교 역사이고, 강화 기독교역사는 감리교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김찬호 감독은 이어 "강화 기독교계는 3.1운동에 앞장섰고,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과 김구 선생 같은 민족 지도자들을 다수 배출했다"며, "강화 선교의 역사는 감리교인들뿐만아니라 한국교회가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130주년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 강화교산교회 박기현 목사는 "강화선교 130년의 역사가 기념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며,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기현 목사는 "강화교산교회 초대 교인들은 배를 타고 황해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며, "믿음의 선진들이 복음을 전하며 개척했던 북한교회 재건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화교산교회 교회창립 130주년 감사예배는 5월 7일 강화교산교회 존스기념예배당에서 진행된다. 강화교산교회 창립 130주년 감사예배 설교는 이철 기감 감독회장이 맡았고, 축도는 김찬호 중부연회 감독이 맡았다.] 15:18~16:26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982 번지에 있는 인화돈대(寅火墩臺)로 이동 16:26~16:33 인화돈대(寅火墩臺)를 탐방 [훼손이 심해서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인화돈대(寅火墩臺) 소재지 :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982 소속 : 광암돈대·구등곶돈대·작성돈대·무태돈대와 함께 인화보(寅火堡)의 관리하에 있었음 근처 돈대 : 2.3km 남쪽에 무태돈대가 있고 북쪽으로 광암돈대가 있음. 크기 및 모양, 규모 : 형태는 원형이며, 크기는 98보, 44성첩으로 기록에 나옴. 실측 조사한 바에 의하면 둘레는 130m임. 현재 상황 : 돈대의 가장자리 기단 석축만 군데군데 조금 남아 있을 뿐, 훼손이 심해서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음. 주변 편의시설 : 공용주차장 및 화장실 등 편의시설 없음. 주의 사항 : 무태돈대에서 인화돈대까지는 민통선 지역이라 군사시설에 대한 사진 촬영이 금지임. 군부대의 원활한 작전수행을 위해 철책 주변 역시 접근 금지임. 복원등급 D등급] 16:33~16:42 인천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에 있는 인화성 입구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16:42~17:35 인화성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강화터미널로 가는 18번 버스 승차 대기 17:35~18:01 18번 버스를 타고 인화성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강화터미널로 이동 [26분, 31개 정류장] 18:01~18:14 강화터미널에서 서울 합정역으로 가는 3000번 버스 승차 대기 18:14~19:50 3000번 버스를 타고 강화터미널에서 서울 합정역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1시간36분] 19:50~20:04 합정역에서 역촌역으로 가는 6호선 전철 승차 대기 20:04~20:19 합정역에서 6호선 전철을 타고 역촌역으로 이동 [15분 소요]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 위치도 강화도 돈대 위치도 강화 교산교회 위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