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크리슈나무르티 : 꺼지지 않는 불꽃,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위하여
-- “미륵(彌勒)”의 시대를 살면서, “내가 안 바뀌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How can the brain solve problems if it is not free from problems?”
“두뇌가 문제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 어떻게 문제를 풀 수 있겠습니까?”
-- Jiddu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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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6] 진짜로 세상 좀 “선도”하자면
결국은 “지성”에 대한 말씀인가 합니다만. 역시, 인생 문제, 세상 문제는 “지성”으로 풀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이지요?
저렇게 ‘문제를 좀 풀어보자’는 마음을 아예 못 먹어보게 가르치고 있는데 어찌.. “인생”, 그 “문제”들 좀 폴어가면서 살자는 게 “으뜸 가르침[宗敎]”이지요?
거기서나마, 오히려, 진짜배기 “문제”가 뭔지, 배우지도 못했고, 그러니 그걸 가르칠 수는 더 없는 노릇 아니었습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무려, 소위 ‘종교’마저 탱자탱자, “평양성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그꼴 아니란 말입니까?
소위 조직 ‘종교’라고 하는 것도, 딱 그 수준 아닙니까? 거기, 어디서 좀 나은 꼴이나마 보이고 있단 말입니까? 그 하수인들인지, 소위 ‘정치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것도 ‘좀 생각 있는 부류[귀족화 되어버린 진보]’라고 하면서도, 수수만년 전해 전해 내려온 정신, “홍익인간”마저 “헌법” 조문에서마저 빼버리려고 저렇게 발악에 악다구니들인데요.
“홍익인간”이란, 세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마음씨겠습니다만, 글쎄, 그만한 마음씨를 지닌 소위 조직 “종교”가 달리 어디 있단 말이지요? 다들 하나같이 ‘돈’에 얽매여 있는 꼴들 뿐인 거 아닙니까. 꼭 그 꼴로 세상을 지배해먹고 있는 거지요. 그렇게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그때까지 살아남은 인간들 몰골이 그 어떻겠습니까? 저건, 제 입에 붙은 시구입니다만.
그런 몰골이야 뒤의 문제고, 오늘날 여기 이 꼬라지로 어찌 “선도국”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선도’해서 가고자 하는 데가 어디란 말이지요? 고작, “이 산이 아닌개벼..” 그러고 말겠다고요? 안 그래도, 이미 지구촌 생태계 파괴에,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는데요. 역시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저토록 “전쟁”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선진’ 인간들..
설령, “대멸종”이 ‘기술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아니라면 아예, 저 “고해”라는 말이 없었겠지요. 아마도 “고해”를 해결하는 길에, “대멸종” 문제도 해결되지 싶습니다만. 그렇게 보는 사람도 그리 흔하지 않지요?
뭔 꼴을 좀 갖춰서 ‘선도’하려면, 저런 식으로 선도해야지요. 달리, 무슨 길이 있단 말입니까? 서구 저들 해온 식으로는 결국 ‘그 나물에 그 밥’ 꼴이지요. 그래서야 어찌 문제가 풀린단 말이겠습니까?
그런 걸 가지고 또 무슨 ‘마음공부’니 ‘명상’이니 잔뜩 널어놓고 있으나, 그러고서도 이 꼴이란 말이지요? 과연, 그 ‘벼리’가 뭐란 말일까요? 오로지 “생각”을 문제 삼는 수밖에요.
그러자고, 그러라고, “크리슈나무티” 그 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거 아니겠습니까? 부디, 다들 그 의미 좀 새겨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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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6] ‘문제’를 ‘문제’로써 풀겠다고..
그러나 다들 두뇌는 이미 문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거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살아가면서 문제가 안 생길 수도 없겠습니다만, 문제에 다시 문제를 보태는 꼴입니다.
그래서야 문제가 늘어나는 것이지, 풀릴 수 있는 게 아니지요. 문제는 이미 두뇌 속에 있는 것들로부터 나옵니다.
혹시 두뇌가 진짜로 문제로부터 자유롭다면, 더 이상 문제가 안 생기는 건 아닐까요? 생기더라도 아주 소소한 것일 테니까, 금방 풀어버리겠지요.
'생각' 자체가 문제이겠습니다. 그런 문제, 그런 생각에 또 문제로서의 생각을 더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말하는 인생이라는 게 겨우 이런 수준인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인생은 고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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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6] ‘인생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삶”을 그 순간순간에 살지 못한다면, 언제나 ‘짐’을 지고 다니는 격이지요?
“인간의 굴레”라는 말도 있고 ‘삶의 무게여~~!’라는 노랫말도 있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역시 같은 말이지만, 그런 말들 가운데 우두머리라고 할, “인생은 고해다.”는 말은, 인간들 각자 존재의 바탕에 깔려 있어서 시시각각 우리를 몰아대는 것이고요.
그런저런 모든 것들이 한 다발로 뭉뚱거려진 게 바로 “나”입니다. “자아”지요. 아등바등 우짜든지 간에 서로 그거 ‘실현’하려니까, ‘삶’이라는 게 홀가분할 수가 있겠습니까? 구조적으로 도대체 “행복”할 수가 없는 나락입니다. ‘지옥’이라는 게 어디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빼박, 여기가 바로 거기지요. ‘선도국’ ‘선진국’ ‘강대국’ 되어봤자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부연 같습니다만, 우리가 지닌 모든 “가치”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소도구들입니다. ‘민족’이라는 수준일지라도, 그게 타민족과 대립하는 차원이라면 ‘문제’ 아닐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러기에 “홍익인간”의 “행동”은 “전체”적인, 즉, ‘분열’되지 않은 행동이겠지요? 오롯이 “종교”적인 경지겠습니다. 주말 종교, 초파일 종교 말고 말씀이지요. “종교” 아니면 어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말이겠습니까?
소위 똑똑하다는 사람들을 위시해서, 유명하거나 말거나 간에, 다들 이런저런 궁리에, 무슨 삶의 철학 따위를 내놓겠다고 야단법석을 떤다고 해도, 그게 ‘나’에 매여 있을 뿐이라면, 영락없이 굵직한 목줄에 매달린 짐승 꼴을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그 ‘목줄’이 바로 인간의 ‘생각’일 터입니다. “지성” 역시 생각으로 발현되겠지만, ‘나’에 매인 꼴로서는 저 “지성”이 작동할 수 없지 않습니까?
호모 사피언스가 획득한 이 ‘생각하는 능력’으로 문명·문화를 일으키고 가꾸어왔다고는 해도, 그게 소위 심리적으로도 작동하게 진화했기에, 그게 그만 저 올가미요 굴레요 짐이요 고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생각하는 능력’으로 금성이나 목성 넘어 왔다가 갔다리 할 수 있다고 해도, 지구 같은 걸 몇 개 더 구해서 식민지로 삼는다 해도, 시시각각 자기 ‘생각’에 당하는 꼴을 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문제없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생각’이 ‘문제’니까요.
그저 ‘인생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그 구절이 떠오르는군요. 그렇게 노래해놨으나 마나, 그 시인 역시 저 올가미를 도저히 벗을 수가 없었겠지요. 어찌 그 시인만 ‘생각’이 문제라는 “사실”을, 그 “진리”를 몰랐겠습니까만. 설령 ‘아는 척’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거의 ‘말로만’입니다.
어쨌거나 다들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살다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요. 아닙니까? 저 역시 뭐 그리 다르겠습니까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