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4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신안 앞바다 어선 전복 3명구조 9명 실종
2023년 박지원 월드컵 5차 남자 1000m 금메달, 최민정 여자 1500m 금메달 획득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제24회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4일 오후 9시 개막했다. 이날 개회식에서 한국 선수단은 전체 91개 참가국 가운데 73번째로 입장했다.
한국선수단은 쇼트트랙 곽윤기와 김아랑을 기수로 전체 73번째로 입장하며 참가 인원은 임원 28명과 선수 20명이다.
선수 20명은 봅슬레이 8명, 루지 4명, 빙상 4명, 스켈레톤 3명, 스키 1명으로 구성됐다.
선수단 입장 순서는 제1올림픽을 1896년에 개최한 그리스가 가장 먼저 들어오고 그 뒤로 나라의 중국명 첫 글자의 간체자 획수 기준에 따른다.
우리나라는 '韓國'(한국)으로 첫 글자 획수가 많아 비교적 뒤 순서에 입장하게 됐다.
이번 대회에는 7개 종목(15개 세부 종목)에서 총 109개의 금메달을 놓고 91개 참가국의 선수들이 경쟁한다. 한국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를 따내 종합 15위 내 진입이 목표다.
2021년 신민준 9단(22세) 세계 바둑 제패, 제25회 LG배 (온라인) 기왕전 커제 9단(중국) 꺾고 우승
2021년 국회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차관급) 탄핵소추안 의결(가 179 부 102 기권 3 무효 4), 사상 첫 법관 탄핵소추
2020년 24년(1978-2002) 철권통치한 케냐 독재자 대니얼 아랍 모이 전 대통령 사망
2018년 압둘라 야민 몰디브 대통령 국가비상사태 선언
2017년 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 세상 사망(94세)
2015년 중화민국 트랜스아시아 항공 소속의 ATR 72-600기가 지룽 강에 추락
2011년 미국의 항공모함용 무인전투기 X-47B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 공군 기지에서 첫비행에 성공
2011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남쪽 지역 홍수 사망 5명 이재민 4만여 명
2010년 ‘옥탑방 기부 천사’ 김춘희 할머니 별세
2010년 2월 4일 오전 ‘옥탑방 할머니’ 김춘희(85·서울 양천구 신정동)씨가 별세했다. 지병인 천식으로 고생하던 김 할머니는 지난달 호흡 곤란 증세로 서울 구로성심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패혈성 쇼크와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숨졌다.
김 할머니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2006년 12월 250만원, 2007년 12월 600만원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는 등 평생 남을 도우며 살아왔다. 김 할머니는 자신이 살던 옥탑방 전세금 1천500만원과 시신마저 별세 후 기증키로 약정했다. 김 할머니가 2005년 1월 1호로 가입한 ‘행복한 유산 캠페인’에는 올해 현재 13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11명은 김 할머니처럼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 전세보증금을 기부하기로 했다.
1945년 북한에서 홀로 월남한 이후 식당과 공사장 등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린 김할머니는 충남 홍성의 한 보육원에서 10년 동안 고아들을 돌보기도 했다.
시신은 6일 고려대 의대에 기증되었다.
2009년 삼성전자, 40나노급 반도체 세계 최초 개발
2009년 2월 4일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40나노급(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을 적용한 DDR2 D램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따라 지난 2005년 60나노급 D램에 이어 2006년 50나노급 D램, 올해 40나노급 D램 제품 등 초미세 공정을 적용한 반도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기록을 이어가게 됐다.
삼성전자는 40나노급 1기가 DDR2 D램 개발 기술을 적용, 40나노급 2기가 DDR3 제품을 올해 안에 개발 완료하고 양산도 개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06년 50나노급 제품 개발 후 2008년 양산까지 약 2년 정도 걸렸던 것에 비해 공정이 더 미세해지는 40나노급에서 신제품 양산 기간을 1년 이상 단축하는 것은 현재 시장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해 나가고자 하는 전략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40나노급 2기가비트 DDR3 D램은 지난해 9월 양산을 시작한 50나노 2기가비트 DDR3 D램 대비 생산성을 약 60% 향상시킬 수 있어, 현재 50~60 나노급 D램을 양산하고 있는 D램 업체 대비 제조 경쟁력의 격차를 1~2년 이상으로 확대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2007년 발레리나 박세은, 로잔발레콩쿠르 그랑프리 차지
2007년 2월 4일(현지시각) 발레리나 박세은(18.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예비학교)양이 스위스에서 폐막한 로잔발레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지난해 USA발레콩쿠르(잭슨 콩쿠르)에서 금상 없는 은상을 받았던 박양은 이로써 세계 4대 발레콩쿠르(로잔, 잭슨, 불가리아 바르나, 모스크바) 중 두 봉우리를 정복한 최초의 한국 발레리나로 기록됐다
2007년 제주에 '한국판 폼페이 유적' 확인
2007년 2월 4일, 지난 2006년 발굴됐던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105 일대가 5000여년 전 화산 폭발로 덮였던 ‘한국판 폼페이유적’임이 확인됐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이날 “하모리에서 1.5km 떨어진 송악산 화산 분출에 따라 하모리 일대를 1m 정도 덮은 화산쇄설물(火山碎屑物.화산 분출로 나오는 고체 물질들) 토양을 방사성 탄소연대측정한 결과, 약 5200년 전에 화산이 폭발했음을 미국 ‘지오크(Geochron)연구실’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재단은 또 “화산쇄설물 바로 아래 층에는 신석기시대 토기 조각과 어패류 등 당시 신석기인들의 생활을 증명하는 유물과 식물 화석 등이 잘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분석 결과 ‘하모리 신석기인’들은 눈알고둥과 개울타리고둥, 명주고둥 등으로 조개탕을 끓여 먹었으며, 물고기는 능성어와 감성돔, 참돔을 즐긴 것으로 나타났다.
2004 안상영 부산시장 뇌물혐의로 구속 중 목을 매 스스로 목숨 끊음
2002년 전 KNCC 총무 김관석 목사 별세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김 목사는 영생중학교를 다닐 때 세례를 받았고,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권유로 동경신학교에 진학했다. 태평양전쟁 발발로 학도병에 징집돼 학업을 중단했던 그는 광복 후 한신대의 전신인 조선신학교에 편입했다. 졸업 후 은사인 김재준 목사를 모시고 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던 김 목사는 1952년 피란지 부산에서 기독교서회에 참여하면서 개신교 연합운동에 종사하게 됐다.
1952∼54년 미국 시라큐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후에는 기독교서회 주간으로 기독교 출판에 전념하게 됐다. 1968년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로 선임됐다. 그는 격동의 시대였던 1970년대를 거치며 만 12년간 재임하면서 3선 개헌 반대, 유신헌법 철폐 운동 등을 이끌었다. 소탈하고 강직한 성품이었던 그는 정부의 압력 속에서도 개신교계와 재야를 연결하고 국제적인 지원을 끌어내는 일에 앞장섰다.
2001년 경제사학자 조기준 박사 별세
경제사학자 조기준 박사가 2001년 2월 3일 별세했다. 그는 광복 후 불모지와 다름없던 우리 학계에 경제사학의 학문적 틀을 닦은 학자로 평가받았다. 특히 한국 자본주의 발달사 연구는 독보의 영역이었다.
함흥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때만해도 철학자를 꿈꾸었으나 경제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그의 학문적 신조는 유물론적 경제사관이나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사관을 모두 거부하며 조선후기 실학과 일제하 민족 기업가들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모태를 찾는 일이었다. 이 같은 학문적 노력은 `한국기업가사연구` `자본주의 성립론` 등의 저작으로 정리됐다.
그런 한편 기업가 윤리를 강조, 상 도의와 선비정신을 겸비한 새로운 경제인의 전형으로 신상(紳商) 개념을 주창하기도 했다. 1982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직을 정년 퇴임한 후 `한국경제사 신강`(84년) `한국 자본주의 발전사`를 펴내는 등 그의 학문적 열정은 식지 않고 이어졌다. 우직하게 한국경제사에 집중해온 그는 대한민국학술원상(1971년) 국민훈장 모란장(1982년) 다산경제학상(1983년) 인촌학술상(1997년)을 수상했다
1996년 95년 11월 발견된 대동여지도 원판 확인
1995년 조선일보, `이승만과 나라세우기`전 개막
1995년 최희용 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획득
1994년 일본, 자체 개발한 대형로켓 발사에 성공
1992년 무장탈영병 오세호 육군하사 난동
1989년 재야운동가 함석헌씨 별세
함옹은 1901년 3월,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다. 평양고보를 거쳐 정주 오산학교에서 남강 이승훈과 다석 유영모의 가르침을 받았다. 일본으로 유학해 1928년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일본에서는 무교회주의자인 우치무라 간조 문하를 드나들며 영향을 받았다. 귀국 후 모교인 오산고보 교사로 재직하면서 친구 김교신이 주재하던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훗날 ‘뜻으로 본 한국 역사’로 게재)를 연재했다.
1942년 5월 ‘성서조선’ 의 필화 사건에 연루돼 1년간 복역했으며 광복 후 북한이 공산 치하에 들어가자 1947년 3월 월남했다. 1948년부터 서울 YMCA 강당에서 성서읽기 강좌를 개설한 함석헌은 1956년 장준하가 주재하는 ‘사상계’ 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사회활동의 전면에 부상했다. 그는 톨스토이에게선 보편적 휴머니즘을, H G 웰스에게선 역사적 낙관주의를, 간디에게선 비폭력 평화주의를 수혈받았다. 훗날 1950~60년대의 사상계에 실렸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한국 기독교 무엇을 하고 있는가’ 등의 명논설과 군정반대, 월남파병반대, 한일 굴욕외교반대, 삼선개헌 반대 등 끊임없는 저항운동은 모두 ‘자유인’ 의 정신세계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1985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87년 과학기술원 윤한식-손태환 박사팀, 최강력고분자알로이섬유 세계 최초 개발
1987년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 사망
1980년 바니 사드르 이란 대통령 취임
1980년 경부고속전철 건설 발표
1977년 국문학자 양주동 별세
자칭 `인간 국보 제1호`로 자처했던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가 1977년 2월 4일 한 시대를 풍미한 걸출한 학문과 재주, 익살과 술로 점철된 고달픈 삶을 마감했다. 그는 시인이자 평론가였고, 수필가이자 재담가였다. 평생을 구두 한벌 허름한 옷으로 만족해하고, 신문구독료 방범비조차 갖가지 사유를 붙여 내지 않았던 구두쇠였지만, 민족적 자각에서 어문학 연구의 길로 들어선 이래 향가연구에 빼어난 업적을 남긴 불세출의 학자이자, 기인이었다.
양주동은 1903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황해도 장연의 누이댁에서 성장했다. 중동학교를 마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양주동은 1937년 돌연 국학자로 변신해 `청구학총` 제19호에 `향가의 해독`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일본인 학자 오구라 신페이의 권위에 도전, 학계를 놀라게 했다. 오구라는 향가 해독이 전무하던 시절에 `향가 및 이두의 연구`(1929)를 발표함으로써 국학계의 권위 있는 학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의 해독은 정확성과 문학적 감성, 논리의 완벽성에서 오구라의 그것을 압도했다.
양주동은 1942년 육당 최남선이 "앞으로 1백년 뒤에 남을 책은 오직 이 한 권 뿐이다"라고 극찬한 `조선고가연구`를 내고, 1946년 `여요전주`를 발간하며 최고의 국학자로서의 반열에 올라선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타고난 입심으로 재직중이던 동국대는 물론 여러 대학과 방송에서도 언제나 인기있는 재담가였다
1976년 록히드사건
1976년 2월 4일, 미 상원외교위원회 다국적기업소위원회는 록히드사가 비행기를 팔기 위해 사용한 부정자금문제를 조사하던 중, 록히드사가 일본의 정부고관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6억엔 규모의 뇌물을 주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시 일본국회는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관련기업간부 등에 대한 증인 소환을 시작했다. 검찰도 수사에 착수, 상사 마루베니와 항공사 전일공의 사장 등을 뇌물을 준 혐의로 체포했다. 결국 7월 27일에는 당시 총리직에서 물러나 있던 다나카가 마루베니의 자금 5억엔을 받은 혐의로 체포됐다. 다나카는 그동안 컴퓨터 붙은 불도저, 서민 총리의 별명을 얻으며 중일국교정상화 등 업적을 남긴 일본 정계의 최대거물중의 하나였다. 다나카는 1974년 금권정치파문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나 있던 상태였다. 다나카는 무죄주장을 폈으나, 1983년 동경지방재판소는 그에게 징역4년, 추징금 5억엔의 실형판결을 내렸다. 1987년 동경고등법원도 다나카의 항소를 기각했다.
록히드 사건은 결국 이렇게 근 10년에 걸쳐 진행되면서 다나카맥을 몰락시켰다. 일본 전후 정치사를 대표하는 다나카 가쿠에이와 그의 거대한 다나카 맥 을 몰락시킨 록히드 사건은 오직과 파벌항쟁이라는 두 원인이 얽혀 만들어낸 정변이자 일본판 율곡사건이라 할 수 있다.
1976년 제12회 동계올림픽 개막(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1975년 정부, 북한의 KBS-TV 전파방해 경고
1974년 미국 신문왕 허스트의 손녀 패트리샤 허스트 유괴
미국의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손녀이자 신문재벌 랜돌프 애퍼슨 허스트의 셋째 딸인 20살의 패트리샤가 1974년 2월 4일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한 아파트에서 미국의 과격 도시게릴라 단체 공생해방군(SLA)에게 납치됐다.
2월 12일 "캘리포니아주의 모든 빈민층에 1인당 70달러분의 식량을 지급하라"는 이들의 요구조건에 허스트가는 200만달러 규모의 빈민지원계획을 추진하면서 9만여개의 식량상자를 빈민들에게 제공했다. 그러나 4월 3일 "식량배급은 사기"라며 허스트가를 비난하는 패트리샤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테이트프가 SLA의 전투복을 입은 패트리샤의 사진과 함께 허스트가에 배달되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후 패트리샤는 SLA와 행동을 함께 하며 `타니아(체 게바라의 여자친구 이름)`라는 가명으로 샌프란시스코 은행강도에도 가담했다.
결국 그녀는 사건발생 1년 7개월이나 지난 1975년 9월18일에 체포됐지만, 고발 성명과 은행강도 사건은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협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7년형을 선고했다. 곧 보석으로 풀려난 패트리샤는 자신의 경호원과 결혼했다.
1974년 문공부, 헌법 긴급조치 비난한 일본 아사히신문 수입허가 취소
1971년 롤스로이스사(社) 파산
영국 자동차 품질의 상징인 롤스로이스사(社)가 `커다란 국가적 비극`이란 정치적인 표현처럼 1971년 2월 4일 파산 선고를 받았다. 록히드 항공사의 새로운 트라이스타 여객기를 위한 제트엔진 개발로 큰 손실을 입었다고 회사는 발표했다. 영국정부는 롤스로이스사의 제트엔진 사업은 영국과 프랑스 간의 콩코드 초음속 정기 여객기를 위한 엔진의 개발을 포함한 거대한 국제적 계획와 국가 방위를 위한 것이라고 재빨리 발표했다.
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항공기 생산으로 자동차 부분은 롤스로이스사 총 매출액의 5%만을 차지하고 있어 파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자동차인 롤스로이스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지는 않았다.
롤스로이스사의 엔진은 영국의 군 및 상업용 항공기 대부분에 장착하고 있으며 롤스로이스사는 록히드사에 공급할 새로운 제트엔진 생산계약을 너무 낮은 가격으로 체결하여 몰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1969년 헤이그주재 중국대리대사 미국 망명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발족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과학기술분야에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우리나라에 산업기술개발과 기술지원이라는 사명을 갖고 1966년 2월 4일 발족됐다. 이후 화학연구소, 해양연구소, 전자통신연구소 등 대부분의 정부출연 연구소가 KIST에서 분리돼 독립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월남파병의 대가로 존슨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미국 바텔연구소를 모델로 세워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부는 해외에서 유학중이거나 자리를 잡고 있던 우리 과학자들을 유치, 당시 대학교수 월급의 세배를 지급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아끼지 않았고 박대통령도 불시에 KIST 연구원들을 방문해 사기를 북돋아줬다
1966년 일본 여객기 동경만에 추락, 133명 사망
1964년 키프러스 반미사건 발발
1959년 경향신문 `여적(餘滴)` 필화사건 발생
경향신문 1959년 2월 4일자 고정칼럼 `여적((餘滴))`란의 기사가 선거제를 부인하고 폭동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다음날인 2월 5일 경향신문 한창우 사장 앞으로 압수수색영장이 내려졌다. 편집국장이 신문이 발행된 당일 연행됐다. 기사는 미국 허멘스 교수가 쓴 '다수결의 원칙과 윤리'라는 논문에 대한 단평이었다. 자유당정권 치하의 최대 언론탄압사건으로 꼽히는 여적필화사건은 1959년 4월 30일 당시 가장 격렬한 야당지였던 `경향신문`에 대한 폐간명령으로 이어졌다.
폐간이유는 1월 11일자 사설 ‘정부와 여당의 지리멸렬상’이 허위보도이며, 2월 5일자 ‘여적’란의 기사가 폭동을 선동했으며, 2월 16일 홍천 모사단의 유류부정사건 기사가 허위보도이고, 4월 3일자 간첩관련 기사는 공범들의 도주를 방조했으며, 4월 15일 이승만대통령의 기자회견 기사를 왜곡, 허위보도함으로써 미군정법령 88호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이유는 `경향신문`이 1956년 정-부통령선거, 장면부통령 저격사건, 보안법파동 등을 보도하면서 노골적인 대정부 비판기사를 게재해온 데다, 경향신문이 가톨릭재단으로 민주당의 장면 부통령을 적극 후원했기 때문이었다. 폐간이라는 보복조치에 앞서 서울시경은 단평 `여적`의 필자 주요한과 발행인 한창우를 내란선동혐의로 입건했다. 정부의 이러한 탄압에 맞서 경향신문은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끈질긴 법정투쟁을 벌인결과, 폐간된지 361일 만인 1960년 4월 27일자 조간부터 복간됐다
1958년 국무회의. 원자력원 설치안 의결
1957년 대구 조양사 노조의 처녀 580명 유인 매매 사건 발생
1957년 미국, 영국, 프랑스 통독문제 토의
1948년 실론(스리랑카), 영국으로부터 독립
1946년 중국에서 광복군 6백명 귀국
1945년 미국, 영국, 소련 정상 얄타회담 개최
얄타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 종반에 소련 흑해 연안의 얄타에서 미국 루즈벨트, 영국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모여 독일의 패전과 그 관리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 회담이다
1945년 2월4일부터 2월11일까지 2차 대전의 전쟁 수행과 전후 처리, 국제연합의 창설 등을 논의했다. 그 결과 회담 참여국들은 패전국인 독일에 대해 최저 생계를 마련해 주는 것 외에 일체의 의무를 지지 않으며 독일의 군수산업을 폐쇄하고 주요 전범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에 회부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소련이 대일본전에 참전하는 대가로 러·일전쟁에서 잃은 영도를 반환해 주기로 하였고 제2차 대전 후의 패전국과 참여국에 관한 논의에 한반도의 신탁통치 문제가 처음으로 거론되었다
38선이 이 때 결정됐다는 '얄타 밀약설'도 있다.
1941년 한국 시인 김지하 출생
1938년 히틀러, 전군통수권 장악
1932년 미국의 레이크 플레시드에서 제3회 동계 올림픽 개최
192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황색인종 배척법 제정
1906년 `명왕성`발견한 미국의 천문학자 톰보 출생
1906년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출생
1902년 미국 비행가 린드버그 출생
1877년 브라질 여왕, 거미줄로 짠 옷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선물
1842년 덴마크의 비평가 조지 브란데스 출생
1789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선출됨
1689(조선숙종 15) 송시열 제주도로 귀양감
1688년 프랑스의 극작가 피에르 마리보 출생
1669(조선 현종 10) 훈련도감(지금의 신병훈련소)내 훈련별대 창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