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제2구간 백병산(白屛山 1,259.3m)
산행일자 : 2007년 03월 18일 (무박산행)
산행장소 : 통리~태현사~1,095봉~고비덕재~1,230봉~백병산~1,085봉~토산령~구랄산~면산~1009.3봉~석개재
산행모임 : 대전 한겨레산악회(39명)
산행날씨 : 맑은 후 눈 그리고 흐림
산행거리 및 시간 : 22km, 09시간 14분(05시20분에 통리 들머리 통과 기준)
열흘가량 완연한 봄기운이 역력하던 날씨가 정맥길 떠나기 전날부터 갑자기 쌀쌀해 지더니 내일 새벽 산행지로 예정된 백병산(白屛山 1,259.3m)이 있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산간지역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는 일기 예보가 배낭을 꾸리고 있는 지금 TV 뉴스에서 흘러 나온다.
03월 17일 23시 40분 배낭을 메고 용문네거리에 도착하니 차가운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정맥호가 도착하려면 아직 30분이라는 시간 여유가 있어 나는 용문 지하철역으로 내려가 잠시 차가운 바람을 피해 본다.
지하철역에는 몇 안 되는 사람들만 오갈 뿐 한산한 가운데 매표소 앞 시계 바늘이 23시 50분을 가리키자 전동차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승강장이 있는 지하 2층에서 마지막 전동차르 타고와 내린 승객 20여명이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올라오기 시작한다.
승객들은 대부분 20대 안 밖으로 보이는데 그 중 술에 취한 승객 여러명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술기운을 이겨지 못해 몸을 비틀거리며 계단을 오르느라 힘들어 하는 남녀들도 간간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후 시계바늘이 24시를 가리키자 지하철 승강장과 지하통로 사이로 철재 셔터가 내려와 한 공간이었던 지하 공간을 두 공간으로 갈라 놓는다.
시간에 쫓기며 욕심과 경쟁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온갖 상념을 떨쳐 버릴 수 있는 고즈넉한 장소인 산으로 나를 옮겨줄 정맥호에 몸을 실고 여러 회원님들과 오늘도 즐거운 산행을 위해 밤을 지새우며 통리로 향한다.
04시 49분 통리 태현사 입구(730m)
대전에서 출항한 정맥호는 평소와 다름 없이 오창과 유일사 휴게소에 잠시 정박한 다음 동녘이 밝아오려면 아직 이른 시간 04시 49분 통리 태현사 입구에 정박한다.
정맥호가 유일사 휴게소에 정박했을 때 휴게소 주차장 바닥은 얼어 있었으며 얼굴을 에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주차장 가장자리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이곳 통리에 도착하니 유일사 휴게소 보다 더욱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에는 듯하고 수북이 쌓여 있는 많은 눈은 내 마음을 심난하게 한다.
태현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기상 관측대의 디지털 온도계는 섭씨 영하 4도를 나타내고 있어 백병산(白屛山 1,259.3m)으로 향하는 능선에 오르면 섭씨 영하 6~7도를 오르내릴 것으로 생각된다.
정맥호에서 하선한 회원님들은 '최영' 산악 구조대장님의 구령에 맞춰 그동안 정맥호에서 굳어 있던 관절과 근육을 이완시키고 있는데 이용우 산악대장님이 38번 도로를 따라 짙게 깔린 어둠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이용우 산악대장님은 아마도 산행 들머리를 미리 답사할 목적으로 어둠을 뚫고 가고 있을 것이다..."
산행전 준비운동을 마치고 태현사를 촤즉과 우측에 각각 놓고 들머리를 찾아 보았으나 좀처럼 들머리를 찾지 못하고 30여분의 시간이 지날 무렵 산악 대장님과 부대장님은 태현사를 알리는 빗돌에서 삼척시 방향으로 38번 도로를 따라 200여미터 지점에 있는 능선을 따라 오르기로 결정한다.
햐얀 눈이 발목까지 쌓인 산행로 상의 눈은 랜턴빛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나는 가운데 그 높이를 점점 높이며 회원님들의 숨을 가쁘게 하며 대퇴부 근육을 팽창시킨다.
가파른 비탈에 쌓인 눈 때문에 연신 미끄러지며 걸음을 옮기는 구지양님과 10분여 가량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니 산 마루와 함께 정맥 마루금이 나타난다. 짙게 깔린 어둠 때문에 주위를 조망할 수는 없으나 흘러내린 능선 방향으로 보아 정맥 마루금은 태현사를 한참을 지나 38번 도로와 만나는 형국이다. "이말은 지도상에 태현사를 우측에 두고 그어진 낙동정맥 마루금이 잘 못 그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06시 31분 첫 봉우리(1,095m)
춘삼월[(春三月) "물론 음력을 기준으로 삼지만..."]이 무색하게 많은 눈이 내린 설국(雪國)의 나뭇가지 마다에는 눈꽃과 상고대[무빙(霧氷)]가 만발하게 피어 회원님들의 눈을 현혹시키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런 아름다운 산행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 산 기슭을 내려다 보니 좌측으로는 삼척시의 야격이 우측 뒤로는 태백시의 야경이 마치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펼쳐지고 있다.
동녘으로 해가 솟아 오르려는지 짙게 깔려있던 어둠은 점점 사그러들고 이른 새벽 여명(黎明)은 히미하게만 느껴지던 산행로 가장자리 물체들의 형상을 뚜렷하게 만들며 사위를 밝혀준다.
새벽 여명빛이 강해짐과 함께 산행로 가장자리 나뭇가지 마다에 피어 있는 눈꽃과 상고대[무빙(霧氷)]는 그 진면목을 확실하게 들어내고 있다. 설국을 걷는 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맥 마루금을 따라 1,095m봉을 오르는 길에 뒤돌아 지나온 길을 굽어보니 "아니 이곳이 신선들이 산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니던가......."
통리에서 38번 도로를 따라 태백세까지 이어지는 골짜기 마다에는 작은 마을들이 고즈넉히 자리해 불빛을 반짝이고 있고, 그 고즈넉한 마을 위로 운해(雲海)가 낮게 깔려 있는 모습은 과히 장관이라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무릉도원을 연상케하는 장관을 보고도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마음을 그 누가 알겠는가.,,, ㅠㅠㅠ 이유는, 낙동정맥 마루금 가장자리에는 철쭉과 잡목 그리고 떡갈나무까지 관목 형태를 이루며 군락을 형성하고 있어 조망이 거의 없는게 아쉬운 현실인 것이다.
06시 35분 1,095m~1,158m봉 사이의 산죽길
1,095m봉에서 정수리의 고도를 측정하는 부대장님을 뒤로하고 꿈결같은 눈길을 따르다 보니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 산죽(山竹)이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참 아름다운 산행로가 나를 반긴다.
산죽길을 걸으며 사위(四圍)가 확연하게 밝아진 것을 느끼고 앞서 가는 서병모님과 '가을하늘(힘내자)'님에게 "무박산행을 하면 일출을 감상하는 특권을 누려야 하는데 대간길에서도 그러했지만 오늘도 일출을 보지 못하나 봅니다."라고 하니, 서병모님 역시 자신도 늘 그런 사실이 아쉬웠다고 한다.
한편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가을하늘'님이 아직 해가 뜨지 않았는지도 모르니 앞서 가 조망이 있는 곳을 찾아보라며 산행로 가장자리로 빗겨서서 길을 양보해 준다. 나는 이미 해가 솟은 것 같으니 그냥 뒤 따르겠다고 말하고 '가을하늘'님 뒤를 따라 고비덕재로 향한다.......
06시 44분 일출(1,158m봉을 지나며)
일출을 보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가을하늘'님 뒤를 따르며 10여분을 걸었을까...
1,158m봉 근처에서 회장님과 몇몇 회원님들의 격양(激揚)된 목리가가 들리며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유는 이미 솟아올랐다고 생각했던 2007년 03월 18일의 새 '해'가 멀리 동녘 하늘 구름을 뚫고 용광로 쇳물보다 더 붉고 찬란한 빛을 발하며 솟아오르고 있는게 아니가!
그 때서야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먼저 가라고 길을 내주는 '가을하늘'님을 지나 떠오르는 붉은 해를 담기 위해 200여미터를 내달려 보았지만 야속하게도 잡목들이 해를 가리고 있어 떠오르는 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채 그렇게 해돋이는 끝을 맺는다......
06시 50분 산죽(山竹)길
1,095m봉에서 1,158m봉으로 이어지는 산행로는 큰 표고차 없이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그 완만한 능선에는 많은 산죽이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데 하얀 눈을 덮어 쓰고 있는 산죽길이 오늘 따라 유난히 아름답게 다가 온다. 그래서 앞서 가는 회원님들의 모습과 내 뒤를 따르고 있던 '꽃사슴'님의 모습을 담아 본다.
'꽃사슴(이은영)'님은 우리 한겨레산악회 '이길숙'총무님 동생으로 서울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변함없이 한겨레에서 주관하는 산행에 함께하시는 열성을 잃지 않으시는 고마운 분이다.
"아마 KTX를 이용하는 요금이 일년이면 수 십 만원에 달하지 않을까...?"
07시 11분 해와 낙엽송(일본 잎갈나무)
1,158m봉에서 고비덕재로 향하는 내리막 비탈에는 소나무과(―科 Pinaceae)의 낙엽, 침엽 교목으로 높이는 20~30미터 가량 자라며, 꽃이한 나무에 피고 열매는 노란색의 구과(毬果)로 9~10월에 익는 낙엽송(落葉松)이 열병(閱兵)을 기다리는 군대의 병사들처럼 산행로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늘어서 있다.
낙엽송((落葉松)은 건축재,침목(枕木),말뚝,전주(電柱 지금은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이십여년 전만해도 많이 쓰였음),선박재 등으로 많이 사용되고 그 나무껍질은 물감의 재료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헐벗은 산지(山地)의 인공 조림수로 한 때 채택된 결과 지금은 아무 산에서든 흔히 만날 수 있다. 낙엽송((落葉松)의 학명은 'Larix kaempferi'이며 흔히 '일본잎갈나무'로 많이 알려져 있다.
위 사진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낙엽송 사이로 구름을 뚫고 밝은 빛을 비추는 해와 그 빛 아래로 우뚝 솟아있는 백산골 건너 '백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7시 14분 고비덕재
멋진 산죽길과 낙엽송길을 지나 통리의 원통골과 백산골을 잇는 임도가 지나는 '고비덕재'에 닿았다.
수북이 쌓인 눈을 덮고 있는 고비덕재의 헬기장은 오늘 따라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말없이 회원님들을 맞이한다. 먼저 도착한 서병모님이 멋진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연신 감탄사를 자아내고 있다. 오늘 1,158m봉에서 고비덕재까지 이어지는 산행로 주변의 눈꽃과 상고대를 봤다면 누구나 감탄사를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부러울 정도로 부부애를 자랑하며 산행하시는 서병모,유영미님... 화이팅!"
07시 24분 백병산 갈림길 오르막 비탈
고비덕재에서 설국을 연상케하는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서병모님 부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백병산 갈림길(1,230m)이 있는 봉우리로 발길을 옮기는데 지금까지의 산행로와는 달리 가파른 비탈이 어어진다.
가파른 비탈임을 말해주듯 산행로 가장자리에는 산행객들의 힘을 덜어 줄 굴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그 로프를 이용하는 회원님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많은 눈이 로프에 쌓인 채 얼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상고대[무빙(霧氷)]라 말할 수 있을까...?"
갈지(之)자로 이어지는 오르막 비탈을 따라 10여분 발품을 파니, 지도를 손에 펼쳐 들고 있는 이용우 산악대장님을 선두로 여러 회원님들이 가파른 비탈을 오르느라 힘겨웠는지 선 채로 잠시 다리쉼을 하고 있다.
"대간 종주때도 그러했듯 이용우 산악대장님은 카메라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07시 31분 설화(雪花), 상고대[무빙(霧氷)]
가파르고 긴 오르막 비탈이 다하고 완만한 산행로가 이어지는 지점에는 유난히 아름답게 핀 눈꽃과 상고대가 눈에 많이 들어와 그 모습에 잠시 취해 본다.
이 지점부터 백병산 갈림길까지는 평전이 잇따르는데 긴 오르막 비탈을 오르느라 피로가 쌓인 다리를 쉬면서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아주 편안한 구간이다. 또한 산행로 가장자리의 눈꽃과 상고대는 피로를 느끼던 회원님들의 눈과 마음속까지도 편안하게 만든다.
07시 37분 백병산 갈림길(1,230m)
아름다운 눈꽃과 상고대에 취해 선두 일행보다 늦게 백병산 갈림길에 도착하니 갈림길에는 '백병산 0.36km'라 씌여져 있는 키작은 빗돌만이 말없이 나를 반긴다. 이 지점에서 백병산은 낙동정맥의 마루금을 우측(서쪽)으로 약간 벗어난 지점에 솟아 있지만, 그 거리가 갈림길에서 0.36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별 무리없이 갔다 올수 있다. 또한 백병산은 낙동정맥 전 구간의 봉우리들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이기 때문에 꼭 들르기를 권하고 싶다. 한편 이 지점에서 면산까지는 8.5km를 더 걸어야 한다.
아래의 사진은 백병산(白屛山 1,259.3m)으로 이어지는 병풍능선을 지나다가 쪽빛 하늘을 바라보며 담은 사진이다.
07시 46분 백병산(白屛山 1,259.3m)
태백시 동쪽 경계에 위치한 백병산(白屛山 1,259.3m)은 매봉산에서 시작하는 낙동정맥의 최고봉으로 주변의 대덕산이나, 금대봉과는 달리 육산이 아닌 봉우리 상당부분이 바위로 이루어진 암장을 가지고 있다. 정수리의 암장이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하고 갈수기에는 흰빛을 띤다고 하여 '백산(白山)' 또는 '백병산(白屛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병산 갈림길에서 백병산 정수리까지 죽 한일(一)자 혹은 병풍을 쳐놓은 듯 일자형 스카이 라인이 이어지는 반면, 백병산 정수리에서 서쪽 병풍바위로 급하게 흘러내리는 곡선은 변화 많은 강원도 산의 형상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고 하겠다.
또한 백병산은 1,295.3m에 달하는 높은 산이지만 매봉산(每峯山 1,303.1m),함백산(咸白山 1,572.9m),태백산(太白山 1,567m) 등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의 해발 고도가 1,500m를 넘나드는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높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는 산이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때가 많이 묻지 않고 자연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산이라 할 수 있겠다.
백병산에는 키작은 빗돌이 세워져 있으며 빗돌이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한걸음 더 올라서면 정수리를 알리는 삼각점이 나온다. 바로 그 지점이 백병산의 정수리인 것이다.
통리에서부터 잡목과 철쭉 그리고 관목(灌木) 형태로 자란 떡갈나무들로 인해 사위가 꽉 막혀있어 답답하기만 하던 조망이 백병산 정수리에서야 조금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삼각점이 있는 정수리에서도 까치발을 해야 멀리 풍력발전을 위해 세워 놓은 매봉산(每峯山 1,303.1m)의 풍차와 운무(雲霧)에 산봉우리의 정수리를 내 주고 있는 태백시 건너 함백산(咸白山 1,572.9m)과 태백산(太白山 1,567m)의 신비스런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정수리 삼각점 주위에는 먼저 도착한 산악대장님과 부회장님 그리고 박진용 전회장님께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그 곳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있는데 잠시후 잇따라 도착한 회원님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백병산 빗돌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맛있는 아침을 먹는다.
짙은 어둠이 깔린 이른 새벽부터 산행을 해서인지 오늘 아침 밥 맛은 유난히 달고 맛있다.
아침을 먹고 후미 일행이 모두 백병산 정수리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회원님들의 모습을 모두 담아보려고 했으나, 선두 일행이 내가 모르는 사이 먼저 이곳을 떠나는 바람에 선두의 모습은 담지 못했다.
선두를 다시 따라잡아 면산에서 선두 일행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으나 최영장군님과 똘이 그리고 총무님이 만류하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후미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래 사진은 매봉산에서 태백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을 담은 사진인데 운무로 인해 신비스런 봉우리들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좌측부터 한정현님(똘이), 이길숙님(호랑이), 구지양님(지양), 최영님(대간사랑)
유영미님(가을하늘), 서병모님(산사냥꾼)
좌측부터 정승복님(카필라), 손중호님(백곡)
류근양님(송곡)
강일구님(작은岳馬)
김의환님(백하)
이은영님(꽃사슴)
08시 18분 백병산 정수리에서
백병산 정수리의 삼각점을 밟고, 멀리 함백산과 태백산을 등지고 서 있는 한겨레의 어르신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참고로 가운데 서 있는 손중호님은 올해 63세인데도 '06년 백두대간을 왕복으로 완주하시고 올해 낙동정맥 완주를 목표로 열심히 산행하시고 있다.
"백곡 어르신 늘 건안하시고 화이팅 하세요.*^^*"
손중호님(백곡)
김일석님(아진돌)
09시 01분 일출 전망봉(1,085m)를 바라보며
백병산에서 갈림길을 지나 가파르게 높이를 낮추며 이어지는 산행로를 따르니 떡갈나무와 산죽이 어우러져 군락을 이루고 있는 구간이 나타나고 그 구간이 다하자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그 능선에는 낙엽송(일본잎갈나무)이 하얀 눈을 덮어 쓰고 아름다운 설국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 능선을 약 40여분동안 기분 좋게 걸으니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송전철탑이 나온다.
송전탑이 있는 지점부터는 예전에는 방화선으로 쓰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밭고랑 같은 임도가 나타난다. 그 임도에는 잣나무로 보이는 1.5m가량의 어린 묘목이 줄을 지어 심어져 있다. 아마도 조림 사업의 일환으로 신어 놓은 듯 보인다.
1.5m가량의 어린 잣나무가 무거운 눈을 덮어 쓰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눈을 털어주며 오르락 내리락 잇따르는 낮은 연봉을 지나니 멀리 두개의 봉우리가 시원하게 한 눈에 들어온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잡목들의 회방을 받지 않고 능선과 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는 첫 번째 구간이라 가슴까지 시원해 짐을 느끼며 너무나 반갑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봉우리는 1,085m봉과 1,030m봉으로 우측의 봉우리(1,085m)가 일출전망대가 있는 봉우리다.
09시 35분 일출 전망대 갈림길
낙동정맥 마루금은 일출전망봉(1,085m)의 정수리를 우측에 두고 촤측으로 비켜 1,030m봉으로 이어진다.
밭고랑을 연상케하는 임도를 따르다 일출전망봉을 촤측으로 휘감아 오르면 토산령과 일출전망대가 갈라지는 갈림길이 있는 능선에 오르게 된다. 고바우(임기수님)과 나는 이곳까지 오면서 연신 뒤 돌아보며 백병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려 했으나 백병산은 잡목과 굴참나무에 모습을 감추고 좀처럼 사진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선가 '일출전망대'라 씌여진 푯말을 보니 전망대에 오르면 그동안 조망이 없어 답답했던 마음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반갑기만 하다.
내가 앞서가는 회원님들에게 일출전방대에 올랐다 갈 것을 권했으나 회원님들은 갈길이 멀기 때문인지 내 말에 귀를 귀우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생각할 것 없이 발길을 일출전망대가 있는 봉우리를 향해 옮기는데 가파른 오르막 비탈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흰눈이 무릎 아래까지 수북이 쌓여 내 발걸음을 느리게 만든다. 그래도 나는 저 봉우리에 오르면 백병산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힘차게 걸음을 옮겨 본다.
09시 38분 일출전망대
일출전망대는 1,085m봉에서 서쪽(태백시 방향)으로 조금 내려선 곳에 육각형의 이층 구조로 만들어진 목조 건물로 사람이나 산짐승이 지나간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새하얀 눈으로 덮인 봉우리 정수리 위에 우뚝 솟아 있다.
아무런 흔적 없이 무릎까지 쌓여 있는 20여미터 가량의 새하얀 눈 위를 홀로 걷는 기분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일출전망대에 올라 나는 먼저 배낭을 벗어 1층 난간에 기대 놓고 2층으로 이어지는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니 2시간 전 올랐던 백병산(白屛山 1,259.3m) 스카이 라인 혹은 열두 폭 병풍(屛風)을 펼쳐놓은 듯한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서고 멀리 매봉산(每峯山 1,303.1m)에서 함백산(咸白山 1,572.9m)을 지나 태백산(咸白山 1,572.9m)으로 이어지는 대간능선이 아스라이 바라다 보인다.
흰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쪽빛 하늘 아래 아름답고 장쾌하게 뻗어 나간 능선, 그리고 그 능선에는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는 봉우리들이 만들어 낸 자연의 신비스런 모습은 한 폭 아니! 열두 폭 병풍(屛風)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백병산의 열두 폭 병풍에 잠시 넋을 잃고 있던 나는 저 아래에서 들리는 한정현님과 최영장군님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려 "똘이...똘이.."라고 소리쳐 본다.
내 목소리를 들은 한정현(똘이장군)님은 이내 답을 하고 잠시 후 최영장군님과 함께 내가 있는 곳으로 일명 '알바'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 올라 온다.
일출전망대에서 백병산(白屛山 1,259.3m)을 조망한 사진으로 열두 폭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특징이 잘 나타난다.
위 사진에서 중앙 제일 높은 봉우리가 '백병산정수리'고 우측의 조금 낮은 봉우리가 '백병산 갈림길'이며 촤측으로 흘러 내린 능선에서는 '병풍바위'를 찾아볼 수 있다.
위 사진은 우측 병풍바위를 지나 태백시 벽산동으로 흘러내린 능선 너머로 매봉산과 함백산을 조망하며 답은 사진이다.
아래 사진은 좌측 태백산과 우측 함백산을 함께 담은 사진인데 짙게 깔린 운무가 두 봉우리의 정수리를 삼켜 버린 모습이다.
일출전망대(육각정)에서 최영장군님과 한정현님을 함백,태백산을 등지게 하고 담은 사진이다.
10시 03분 토산령 정상???(930m???, 1,042m봉???)
일출 전망대에서의 감동이 채 가지기 전 '여기가 토산령 정상 수고하셨습니다.'고 쓰여져 있는 푯말에 도착한다.
'령(嶺)'이라 함은 재나 산마루의 이름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길이 나 있어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를 뜻하는 말인데 이곳에서는 임도나 嶺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산마루 즉 봉우리의 연장선 상으로 보이는 곳이다.
토산령은 해발 930m라 알고 있는데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곳은 토산령 못 미쳐 1,042m봉으로 추정된다. 토산령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곧장가면 토산이 나오고 그 유명한 풍곡리 송골로 빠지는 산행로가 있다고 하지만 수북이 쌓인 눈 때문인지 아니면 푯말이 잘 못 된 것인지 좀처럼 가늠하기가 어렵다.
토산령에는 동쪽 '가곡자연휴양림'에서 '땜골'을 지나 '선골'을 경유해 서쪽의 '머리골'을 잇는 임도가 나 있다고 하는데 그 흔적 또한 찾을수 없다.
11시 22분 구랄산(1,071.6m)
토산령(930m)에서 급하게 높이를 더하는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따라 힘든 발품을 파니 저 멀리 구랄산(1,071.6m)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다가선다. 1,010m봉에서 구랄산을 바라보니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은데 구랄산 정수리는 회원님들에게 20여분 동안의 힘든 발품을 더 요구한 후에야 정수리를 허락한다.
구랄산 정수리에 닿을 때까지만 해도 구랄산을 면산(1,245.2m)으로 착각하고 올랐기에 막상 구랄산 정수리에 서고서야 '면산'이 아니라 '구랄산'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순간 다리의 힘이 쑥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구랄산에 올라 설 때, 갑자기 높이를 더하는 바람에 숨이 턱에 차고 대퇴부 근육이 팽창하는 것을 느끼며 힘들게 오른 만큼 구랄산 정수리에서 안부로 내려서는 산행로 또한 급한 비탈을 이루는 데다가 산행로에는 막 녹기 시작한 눈과 진흙이 뒤섞여 있어 휘험하기 그지 없다.
급한 비탈을 중간쯤 내려섰을까... 갑자기 오른쪽 발이 미끄러진다는 걸 느낌과 동시에 순간 내 눈에는 쪽빛 하늘이 들어온다. 뒤 따르던 이길숙 총무님과 최영님의 말을 빌리자면 "고목나무가 쓰러지는 줄 알았다..." 였다.
최영님과 총무님은 다친데 없는지 물어오며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보는데 정작 고목나무가 쓰러지듯 힘없이 쓰러진 나는 전혀 통증이나 불편한 곳을 찾을 수 없다.
이유는 넘어 질 때 본능적으로 땅에 손을 짚는 행동을 취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내 몸과 땅사이에는 배낭이 놓여진 상태로 '꿍'하는 큰 소리만 크게 났지 배낭이 모든 충격을 흡수해 주는 바람에 내 몸으로는 지면과 80kg의 체중이 부딪치며 발생하는 충격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행하다가 실족했을 때 나뭇가지나 돌부리에 배낭에 걸려 산행객이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실족 사고와는 좀 다른 상황이지만 오늘 나는 배낭의 소중함을 몸소 느꼈다.
이처럼 실족하거나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 배낭의 도움을 받으려면 배낭을 자신의 몸에 알맞게 착용하고 허리끈과 가슴끈 또한 자신의 몸에 맞춰 꼭 채결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1시 52분 구랄산 다음봉(1,010m)
급한 내리막과 오르막 비탈을 따라 30여분동안 발품을 파니 잡목과 떡갈나무가 무성한 1,010m봉이 나타난다. 봉우리 정수리에서는 부대장님을 비롯한 여러 회원님들이 잠시 다리쉼을 하고 있는데, 오늘 산행하는 동안 중간에 위치해서 선두와 후미의 간격을 조율하며 산행을 이끄는 정승복님이 선두에게 무전으로 면산을 지났는지 알아보는 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온다.
그 무전 내용에 의하면 선두는 면산을 이미 지났음을 알수 있었고 지금 우리 일행이 위치해 있는 1,010m봉에서 면산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생각된다. 무전을 끝마친 정승복님과 부대장님은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서 발길을 옮긴다.
1시간여 전 토산령(930m)에서 구랄산(1,071.6m)을 오르며 가곡면 한개골의 골짜기를 보고 골짜기가 매우 가파르고 깊다고 느꼈었는데 1,010m봉에서 면산(1,245.2m)을 향해 가면서 동쪽 사면을 내려다 보니 깍아지른 듯한 골짜기가 끝이 없을것 처럼 까마득히 이어진다. 그 골짜기 끝에는 '땜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댐'이 와전되어 '땜'으로 불린 듯한 작은 저수지(貯水池)가 아스라니 다가선다.
땜골안부(1,000m)로 추정되는 안부에서 면산으로 이어지는 산행로는 1,000m를 넘나드는 봉우리가 잇따르는데 좀처럼 면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잆다. 힘든 발걸음을 옮기며 저 앞의 봉우리가 면산이라고 생각하고 그 봉우리 정수리에 서면 면산이라 씌여진 빗돌은 어느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아래 사진은 높게 자란 낙엽송에 눈과 바람이 만들어 놓은 신기한 모습으로 긴 오르막길을 오르며 총무님이 한 번 담아 보라 하여 담았으나, 실력이 부족한 탓인지 현장에서 느끼던 신비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2시 38분 점심
오늘 점심은 면산에 올라 먹는다고 예정되 있었으나 금방이라도 모습을 드러낼 것처럼 보이던 면산은 아무리 올라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어느덧 시간은 12시 25분을 지나고 있다. 또한 힘들게 발품을 팔며 이곳까지 오른 회원님들에게 '시장기'라는 복병까지 기다리고 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무명봉 하나를 더 넘어서니 강희산 부회장님을 비롯해 7~8명의 회원님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편 긴 오르막 비탈을 만나 자꾸만 걸음이 느려지는 총무님과 구지양님을 뒤로 하고 먼저 도착한 최영장군님도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면산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계획을 취소하고 10여명의 회원님들과 어울려 '맛있는 점심을 나눠 먹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1시간여 전부터 검은 먹장구름이 태양을 삼켜 버리고는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 것과 함께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고 있어 썰렁한 점심을 먹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무박산행에 산행거리가 제법 긴 산행을 감안해서 나는 아침은 밥을 준비했고 점심으로는 간단하게 먹을 요량으로 찹쌀떡을 준비했다.
막상 을씨년스런 날씨와 분위기속에 차가운 떡을 꺼내 놓고 먹으려고 생각하니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데 마침 최영장군님이 찬밥을 한군데 모아 따듯하게 데워서 내놓는 바람에 모처럼 배속까지 훈훈함을 느끼며 맛있는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맛있다고 점심을 많이 먹어서 30여분간 걸음을 옮기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ㅎㅎㅎ 그래도 산중에서의 식사는 언제나 즐겁다."
13시 23분 면산(1,245.2m)
토산령에서부터 시작해 오르는 봉마다 면산 인듯이 보이면서도 막상 그 봉우리에 올르면 면산은 저만치 멀리서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곤 한다. 그렇게 조금 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면산이 가까워지는지 작은 봉우리들이 연이어지다가 갑자기 육중한 육산의 느낌과 함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긴 오르막 비탈이 다가선다.
1,000m 아래의 봉우리들을 넘나들고 1,000m를 훌쩍 넘어서는 긴 오르막 비탈을 오르다가 지나온 능선을 돌아보면 주위의 봉우리가 모두 발 아래에 머문다. 그 봉우리들과 능선을 내려다 본 후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곧장 1,100m, 그리고 1,200m를 넘어서면 마침내 면산(1,245.2m)에 소리 소문 없이 닿는다.
면산은 강원도(江原道) 삼척군(三陟郡)과 경상 북도(慶尙北道) 봉화군(奉化郡)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특별하게 모난데 없이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10여개의 봉우리들을 힘들게 오르고 내린 후에야 정수리를 허락하는 육산에 속하는 산이라고 하겠다.
면산 정수리 빗돌 주변에는 임의로 간벌한 나무들이 수 십그루 덜브러져 있는데 누군가 정수리 조망권을 확보할 목적으로 그랬을 것으로 추정은 된다. 하지만 본연의 목적은 이루지 못했음을 증명하듯 면산 정수리도 지금까지 지나온 봉우리들과 같이 잡목들이 감쌓고 있어 답답할 따름이다.
면산에서 일어설 때는 강원도 삼척군과 경북 봉화군의 경계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남서쪽 산방산(1,175.3m)이 있는 능선을 따르지 않게 주위 해야 한다. 낙동정맥 마루금은 면산 정수리에서 남동쪽으로 열려있는 능선을 따라 석개재까지 2시강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이어진다.
13시 33분 산죽길
면산에서 석개재를 향해 걸음을 옮기면 먼저 떡갈나무와 산죽이 어우러져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 인상적인 구간을 지나게 된다.
아래 사진은 나무 껍질은 붉은 빛을 띠고 수령은 백여년은 넘어 보이는 멋진 소나무가 무거운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사진으로 오늘 산행로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14시 53분 면산을 돌아보며(970m봉을 지나)
면산 자락을 벗어나 산죽군락지를 지나면 제법 가파른 급경사가 이어지는데 고도가 900미터대로 급히 떨어지며 '오전골'안부까지 이어진다. 석개재까지 5키로미터를 가는 동안 900m에서 1,000m를 넘나드는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면 남동쪽으로 향하던 능선이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구간을 지나게 된다.
그 구간을 지나다 보면 서쪽사면(우측)에서 오를 수 없으나 제법 높게 솟아 있는 전방바위를 만나게 된다. 그 전망바위를 지나면 누군가가 임의로 10평가량을 간벌해 놓은 곳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산행로에서 우측 사면으로 10여미터 벗어난 그 지점으로 내려서면 일출전망대 이후 지금껏 조망이 없어 답답했던 마음을 조금은 달랠 수 있으며 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면산의 하늘금 그리고 면산에서 이곳으로 가파르게 흘러 내리는 능선의 모습을 위 사진에서 처럼 조망할 수 있다.
통리 태현사 입구에서 시작된 '백병산'구간 산행이 면산을 지나 이 조망처에 이르니 산행거가 이미 20km를 넘어서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날머리가 가까워질 때 쯤이면 낮은 봉우리가 앞을 가로 막고 설 뿐인데도 무담으로 다가 온다. 하지만 이제 석개재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마음을 고쳐 먹으니 그동안 힘이 없던 다리에 힘이 생기고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뿌듯함이 솟아 난다.
아래의 사진은 면산(1,245.2m)에서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며 흘러 내리는 능선과 삼방산(1,275.4)을 조망하며 담은 사진이다.
15시 05분 마지막 봉(1,009.3m)
면산이 바라다 보이는 조망처에서 10여분동안 발품을 파니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과 경북 봉화군 석표면을 잇는 910번 도로가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1,009.3m봉이 반긴다.
낮은 봉우리 하나가 가리고 있어 석개재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그 지점은 능히 가늠할 수 있다.
1,009.3m봉에 서니 지금까지 힘들어하던 구지양님과 총무님 입가에서는 엷은 웃음꽃이 피어나는데, 오늘 따라 유난히 힘들어하는 한정현(똘이장군)님은 삼복더위의 땡칠이처럼 혀를 길게 빼고 거친 숨을 몰아 쉰다. ㅎㅎㅎ
'최영장군님의 말에 의하면 요즘 한정현님의 체중이 부쩍 늘어서 오늘 따라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15시 16분 석개재
1,009.3m봉에서 석개재로 이어지는 산행로는 급하게 높이를 낮추는 내리막 비탈에 녹기 시작한 눈과 진흙이 뒤섞여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나는 산행로를 조금 벗어나 하얀눈과 가랑잎이 쌓여있는 곳을 찾아가며 조심해서 내려섰다.
910번 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는 석개재에는 '하늘이 내린 살아숨쉬는 땅! 강원도' 라 씌여진 멋진 빗돌이 '어서오십시요 삼척시'라 씌여진 앙증맞은 빗돌을 품고 늠늠하게 서 있다.
"오늘 산행은 거리가 긴 산행이라 조금은 힘들고 다소 위험함 구간도 산재해 있었으나 삼월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눈꽃과 상고대[무빙(霧氷)]의 아름다움에 취해 설국을 걷는 듯한 느낌으로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회원님들 모두 건안하시고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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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3월 28일
강일구
첫댓글 아이고, 참으로 먼길 수고 많으셨습니다. 일일이 동료 대원들 사진까지 챙기시면서 산행을 하시니 무척 바쁘십니다.ㅋㅋㅋ. 미지의 세계를 읽어 가는 제 머리 속에 온통 낙동정맥이 자리를 잡느군요. 백병산, 구랄산, 면산 등등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만나니 반갑기 짝이 없습니다. 전번 대간 때 봉화군에 껍질이 붉은 소나무가 많던데 그곳에도 있군요. 이름을 황장목이라고 하더군요. 상고대와 눈꽃이 멋진 3월의 정맥길 상상만으로도 잠시 행복해졌습니다. 늘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낙동정맥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고 산행기를 자세히 작성한 이들도 찾기 어려워 대간 산행기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더군요. 정맥길 다니면서 가능하면 야생화를 많이 담아오도록 노력할 터이니 저녁노을님의 많은 도움 부탁합니다.*^^*
2탄은 좀 길게 걸으셨네요^^ 3월의 크리스마스..설화와 상고대 속에서 행복한 산행이었겠습니다..멋진 산행 즐감했습니다..3탄도 곧 올려주실거죠^^
"3얼의 크리스마스" 참 좋은 표현입니다. 겨울산님 3탄은 오는 4월 1일에 산행한답니다. 4월 둘째 주에 산행기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