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은사님을 소개합니다 한국어교육과 김정희(2023620099)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담임 선생님을 졸업 후 첫 스승의 날부터 시작하여 한해도 빠짐없이 만나고 있다.
1970년대 교사의 권위는 매우 높았고 학생들도 대체로 순종적이었다 하더라도
전교생 모두에게 신뢰를 받았다는 사실은 아주 특별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왜였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간단한 이유를 말해주곤 한다.
다른 선생님들과 달라도 아주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고.
첫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셨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모습이든 모든 학생들을 차별없이 동일하게 응대하셨다.
게다가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존경할 만한데 너무 쉽고 자연스러워보인 점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다른 열정적인 선생님들처럼 성적 저조, 출결 불량, 문제 행동 등으로
화를 참지 못하거나 고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둘째,
유머가 풍부하셨다.
아무리 심각한 사건이 발생해도 생각지도 못한 발상으로
마무리 지으며 별일 아닌 것으로 끝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실수할수록 담임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셋째,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셨다.
거의 매일 방과후 시간에 쪽지 시험을 위해 공부시키고, 가끔 쮸쮸바도 사주시고,
그 당시 체력장이란 게 있었는데 왕복달리기나 던지기 종목을 따로 훈련시키고,
오래달리기 종목에서는 낙오자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 도우며 완주하는 요령도 알려주셨다.
넷째,
한결같은 일관성은 신뢰와 안정감을 주었다.
신학기 초에는 타 반에 비해 유달리 부족한 면이 많았던 학급이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항상 우리 편’이라는
근거없는 믿음 덕분에 학교 내에서 가장 행복하고 활기차게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다.
지금도 만날 때마다 제자들은 선생님이 얼마나 특별하신지,
선생님은 제자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예전의 에피소드를 재방송하느라 바쁘다.
선생님은 자신을 믿어주고 그렇게나 열심히 따라주었던 제자들 덕분에 행복했다고,
주변의 교사들이 자신을 부러워한다고 그래서 늘 자랑스럽고 고마워하시고,
제자들은 선생님과의 만남이 축복이었다고 감사해한다.
우리는 이렇게 올 스승의 날에도 서로 고마운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 당시는 물론 지금도 나의 교직 생활에서 선생님께 받은 영향력은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
가장 비중있는 나의 롤모델이신 담임 선생님을 닮고 싶은데 모든 부분을 다 모방할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소환하여, 담임을 맡았을 때
영어 교과서와 한문 교과서를 외우도록 아침마다 쪽지 시험을 봤다.
등교시간에 버스에서 영어 다이알로그를 외우는 학생들은 우리 반이었다.
당연히 반별 평균 점수가 심하게 차이가 났고 그 바람에 다른 교사들에게 미움이나 부러움을 샀다.
엄청난 반발과 불평 그리고 칭찬과 환영을 받으면서 꾸준히 이어 나갔더니 서로에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자신의 성적향상을 경험한 후 달라진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도저히 따라오기 어려워하는 학생들까지 억지로 괴롭힌 것은 아닌지 고민도 하고 후회도 많이 했다.
게다가 평소 부러워했던 은사님의 그 여유로움과 유머는 끝내 장착하지 못해서
지금도 매우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을 은사님은 어떻게 힘들이지 않고 하셨을까? 하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저도 선생님을 따라 하고 있어요”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어, 그래. 그런데 열심히 하는 게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적당히 해라’”라는
의외의 답을 듣고 한참을 고민했었다.
그렇구나, 선생님과 나의 차이는 유머가 아니었구나.
어린 시절 은사님과 학급 학생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가장 좋은 것을 주고받으려고 노력했었던 것이다.
학생들이 자진해서 선생님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하려면 서로 간에 믿음이 필요한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해내려고 하면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은 다양한 상황과 가치관이 중첩된 모습으로 살고 있으며, 서로 사랑과 이해
그리고 존중을 바탕으로 각자의 독특한 상황과 필요를 고려하면서 살게끔 되어 있다.
교육환경 역시 다르지 않은 가운데 최선의 자세를 보여주셨던 분이 나의 은사님이다.
함부로 속단하지 않고 좀 더 깊이 바라보고 유심히 관찰하고
사려깊게 생각하는 여유로운 능력을 발휘하셨다.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별일 아닌
사소한 에피소드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사안에 초점을 두되 ‘학생 최우선’의 관점을 가지고 서로에게 부담도 상처도 주지 않으면서
창의적인 방법으로 갈등을 풀어나갔던 것 같다.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등을 포함하여 다른 모든 일을 힘들여
노력하지 않고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아주 단순한 비결을 알고 계셨다.
부드럽고 섬세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여 자발적으로
선생님의 요청에 부응하고 단결하도록 이끄는 매력을 활용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학생들을 마음대로 다룰 줄 아는 고수 중의 고단수이셨다.
교재에 나오는 문화적 리더십과 변혁적 리더십 유형에 꼭 맞아떨어진다고 분석할 수 있는 대상이시다.
은사님의 영향 덕분에 현재 나의 교육관과 신념은 다음과 같다.
‘교사는 차이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식하고 차별과 경계를 허무는
진정한 공평을 실천하는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
교육은 지배와 복종이 아닌 관계로 이루어진다. 교사는 더 이상 부득이함이라는 핑계로
억지스러운 권위를 내세우지 말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마음껏 실패를 즐길 수 있는 교실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선생님이 열정적이어도 폭력적인 모습으로는 진정한 교육이 일어날 수 없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다양한 개성과 잠재력을 스스로 믿고 성장할 수 있다.
그러려면 교사들에게 필요한 역량에는 교육 전문성, 품격 높은 도덕성과 인성,
시대상을 빠르게 읽어내는 능력에 더하여 유연하게 포용하고 해결하는 창의적인 상황대처 능력이 포함된다’
요즘 미래 교육과 미래 교사의 역할에 관한 다양한 전망들이 참 많이 나오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를 맞아 다양성이라는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미래 교사의 역량은
기본적인 교사 역량에다 시대성을 반영한 역량이 첨부된다.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역량이 실력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교육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핵심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여 통합교육을 운영하는 실력있는 교사의 역량도 당연하지만,
세상 변화와 상관없이 한결같은 교육적인 정성과 희생이 무엇보다 강조되었으면 한다.
학생들의 시선과 마음을 배움에 대한 관심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통합적인 리더십은
세상과 무관하게 일관성을 발휘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어령 교수는 스스로를 천리마가 아닌 천리마를 감별해 내는 백락(소질있는 젊은이를 찾아내어
키우는 데 솜씨가 있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면 비로소 무언가가 ‘되기’ 시작하는데 이런 과정이 바로 진짜 교육이라고 한다.
자신의 잠재력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단 한 사람의 어른만 있어도 그 어른의 믿음을 평생
가슴에 안고 자신 안의 재능을 무궁무진하게 풀어낼 것이므로 교사의 역할은 교육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본다.
그 당시 우리를 알아봐 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여중생들이 기를 쓰고 단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은사님과의 만남은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