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21
<작품 해설>
러시아 저항 문학 최후의 기수로서 옛 소련의 ‘학대받는 사람들’, 불운의 문학인들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던 솔제니친은 온 세계의 양심적 지식인들의 뜨거운 지지와 공감을 등에 업고 1970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지명되었다.
이로써 전후 소련 문단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958), 미하일 숄로호프(1968)에 뒤이어 세 번째 노벨문학상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소련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될 때마다 그 작품의 문학적·예술적인 가치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세계적으로 떠들썩한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 통례처럼 되어왔다. 파스테르나크의 경우에는 수장작인 <닥터 지바고>가 소련 내에서 출판이 금지된 반공·반소적 작품이라는 점에서 소련 당국의 노려움과 불만을사 작가로 하여금 수상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게 한 데 원인이 있었지만, 숄로호프의 경우에는, 수상작인 <고요한 돈 강>이 20여 년 전의 작품이라는 점, 수상 결정이 강대국의 비위를 맞추려는 정치적 배려의 인상이 짙다는 점 등 때문에 서방 측 지식인들의 빈축을 샀던 것이다.
그러나 솔제니친에 대한 노벨문학상 수여는 적어도 ‘정치적 배려’ 운운하는 불명예만은 깨끗이 씻은 셈이다. 왜냐하면 솔제니친이야말로 소련 집권층이 파스테르나크보다 몇 배나 더 미워하고 기피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은 1918년 남부 러시아 코카서스 지방에서 한 교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1941년 독소 전쟁 발발과 함께 군대에 자원 입대, 포병 중대장으로서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종군 중에는 두 번이나 훈장을 수여받았다.
1945년 2월,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린다면, ‘스탈린에 대한 불손한 언사’ 때문에, 8년형을 언도받고 북극 지방과 중앙아시아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징역살이를 했으나, 형기 만료 후에도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카자흐스탄의 유형지에서 계속 억류 생활을 했다.
1956년 흐루시초프의 이른바 ‘반스탈린 운동’의 혜택을 받아 그는 석방되었고, 다시 1년 후에는 ‘범죄 사실 없음’이라는 판정을 받고 시민으로서의 명예가 회복되었다.
솔제니친은 1973년 파리에서 <수용소 군도>가 출판된 후 반역죄로 법정에 섰고, 1974년 국외로 추방되었다가 1994년 소련의 붕괴되고 나서야 20여 년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반 데니스비치의 하루>는 한마디로 말해서, 현대 러시아의 비극이며 공산주의 소련의 치부인 강제 노동 수용소 생활을 배경으로 한 인간 존중의 절규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도스토예프스키도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피력한 바 있지만, 솔제니친의 이 외침은 더욱 처절하고 더욱 큰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 묘사되고 있는 스탈린 시대 수용소의 현실은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비참한 것이다. 그러나 솔제니친은 이 가공할 현실을 묘사하는 데 어디까지나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때로는 가벼운 유머까지 섞어가며 담담한 필치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특히 등장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 놀랄 만한 정확성, 간결하고도 박력 있는 문체, 작품 전체의 밑바닥을 흐르는 강인한 저항 정신, 바로 이러한 것들이 이 작품에 높은 문학적 예술성을 부여하여 독자를 완전히 휘어잡는다. 또한 이러한 점이 그에게 노벨문학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준 것이다.
첫댓글 솔제니친의 소설을 처음 접했던 것은 <수용소 군도> 전 6권이었다.
완독하기까지 인내를 요구하는 지루하기까지한 책이다.
그러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열독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준다.
모처럼 책에 집중했던 소설로, 현시점에서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번쯤은 자신에게 화두를 던져주는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