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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
동식은 날이 희붐할 때 세수하고 나섰다. 아파트에서 좀 떨어진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우유를 먹었다. 새벽엔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마침 24시간 문을 여는 가게가 있어 편하다. 그렇잖으면 한참 늦은 끼니를 챙겨야 한다. 저녁에서 아침까지는 길어서 허전하니 안성맞춤이다. 새벽이어도 후텁지근 더운 날에 찹찹한 것을 드니 괜찮다.
김밥은 목이 말라도 한 모금씩 우유를 넣으니 사르르 넘어 내려간다. 꼭꼭 씹어 넘기니 한 끼 양이 된다. 작은 것 보다 좀 도톰한 것이다. 서울우유 부산우유 중 알맞은 크기를 골랐다. 날짜가 넘지는 않았을까 보니 모두 정확하게 유효기간 내이다. 시원한 냉방에서 아주 천천히 이 생각 저 마음으로 다니면서 들었다.
내가 지금 가출한 건지 출가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자가 어떤가 보니 같다. 집을 나가면 가출, 종교인이 되면 출가이다. 아무튼 바쁠 게 없으니 걸음 느린 내가 쉬엄쉬엄 걸어서 바닷가 산책로를 간다. 이른 아침에 쌩하게 걸으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 더운데 뛰는 사람도 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 때는 가을바람 같아도 멎으면 무덥다.
그저 바다가 푸르러 바람 부는 것처럼 느껴졌다. 걸으니 후끈거리고 해 뜨자 이글거리는 햇볕에 절어서 송골송골 땀이 난다. ‘찐다 쪄 푹푹.’ 테트라포트 사이사이의 물 흐르는 도랑 곁에 옹기종기 모여든다. 고니가 짝지어 쉬다가 고개를 등에 올리고 곤하게 자는 것을 자주 봐왔다. 옆에 작은 청둥오리도 끼여 알짱거리던 지난겨울이 떠 오른다.
그들이 모두 어디 갔을까. 고향 저 북쪽 바이칼이나 흡수굴 쪽에 있을까. 무얼 얼마나 먹었길래 날아오를 때 ‘후절펑 후절펑’하면서 힘들게 난다. 그 먼 곳을 무거운 몸으로 어찌 날았을까. 날면 좋을 줄 알았는데 아이고 팔 아파라. 그러던 앞 바다는 파도만 일렁이고 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한쪽은 보행이고 안쪽은 자전거 다니는 길이다. 붉고 푸른 빛으로 다르게 했다.
예전엔 이곳이 염전이었단다. 소금을 많이 생산해서 유명했던 곳이라는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낮은 곳이어서 아파트 1, 2층은 비워뒀다. 태풍이 불거나 지진이 나면 바닷물 넘쳐 들어올 때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쓰나미가 밀어붙이지 못하게 숲도 가꾸어 앞에 방위를 세웠다. 그 숲 끝의 산책로를 걷고 있다.
봄이면 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무작스레 잘라줘도 다음 해 보면 또 하늘의 별처럼 수없이 헤집고 나온다. 밤에 걸을 수 있도록 가로등도 촘촘히 세웠다. 빛이 바다로 새어 나가지 않게 먹칠했다. 철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한 것이다. 굽어질 때 저 신평공단이 훤히 보이는 길로 접어들었다. 서에서 걸어 동쪽 끝까지는 십 리쯤 된다.
꽤 길어서 타박타박 내 발길은 더디기만 한 거리다. 곳곳에 의자를 두고 가다가 쉬도록 했다. 화장실도 여러 개다. 남녀 구분으로 수세식이다. 누가 도와주는지 화장지도 있으며 언제나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다. 맑은 물이 나와 세수도 할 수 있다. 안쪽 숲속에는 길이 나 있는데 오솔길이다. 흙길이어서 맨발로 다니는 사람이 있다. 아파트 단지가 생긴 지 십 년인데 솔 나무가 큼직하게 자라 그늘이 지고 있다.
가다가 곳곳에 운동기구가 있어서 각종 놀이로 몸을 푸는 사람이 보인다. 나는 그냥 지나치면서 보기만 하고 시들해서 뚜벅뚜벅 걷기만 한다. 동편 가까이 갔을 때 정자가 나와 올랐다. 2층으로 솔숲에 가린 팔각정이다. 입구엔 모기가 물 것 같아 바깥으로 앉았는데 내려다보니 높아서 어질어질하기만 하다.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잠에서 깨어 아빠 없으면 찾을까 해서이다.
“먼저 아침 들어라. 당분간 밤늦게 들어갈게.”
멍청히 대마등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나무숲이 가운데는 높고 좌우는 낮아지는 게 왜 그럴까 쓸데없는 걱정을 해 본다. 같이 컸을 텐데 둥근 게 가지런하다. 그 뒤에 섬은 보이지 않아도 집에서 늘 봐 안다. 장자도이고 그 앞에 긴 섬은 신자도이다. 할머니가
“등이 뭐여”
세 분이 올라오더니 허리 꼬부라져 기둥에 기댄 채 하는 말에
“산에 등이 있잖아 좀 높아서 그리 불러.”
서낙동강 물이 흐르면서 토사가 밀려 쌓인 섬이다. 섬이 생길 때 들쑥날쑥하다가 풀이 나면서 드러나게 된다. 가덕도 가까이 진우도도 그렇게 생긴 섬이다. 큰 파도가 겁나는데 여러 섬이 막아주니 고마워라. 하모니카를 불다가 누가 올라오면 멈췄다가 가면 또 불었다. 반바지 차림의 남자가 뛰어오더니 덜렁덜렁 다리운동을 하면서 가벼운 몸풀기를 했다.
정자가 흔들거려 무너지기라도 할까 조심스럽다. 그가 기둥에 붙은 버튼을 누르니 선풍기가 돌아간다. 사방 의자 위를 골고루 시원케 해 줬다. 천장 가운데 달린 걸 못 봤다. 동요와 가곡, 찬송가, 민요, 가요 등 수십 곡을 익혔는데 오래 안 불러 잊었으면 어쩌나 하며 불렀다. 막힐 때도 있지만 그런대로 구멍을 찾아 더듬더듬 넘어갔다.
불고 들이쉬고 하는 게 까다롭다. 틀리면 노래가 안 된다. 이걸 불었다 댕겼다 하면서 뒤엉켜 헷갈려 한참 어물거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내와 밭에 일할 때 돌의자에 앉아 천연덕스레 불었는데 요즘은 밭에 가면 일하느라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 불 사이가 없다.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한 번도 꺼내 불지 못했다. 단소도 나무에 매달아 놓곤 내려 불 줄 모른다.
대여섯 곡 하는 단소는 다시 불 수 있을까 싶다. 아리랑과 한오백년, 정선아리랑, 천부여 의지 없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희망가 등이다. 풀밭에서 불면 청아하게 멀리멀리 퍼진다. 밤에 바닷가에 앉아 퍼져서 불면 곧게 오던 바람과 파도가 춤을 춘다. 당리 반도보라에 살 때 승학산 기슭 텃밭에서는 까치와 딱따구리가 뭐라 뭐라 주절주절 대꾸하다 간다.
직박구리가 머리 위를 날면서 멈춰 있으면 빨리 불라고 야단이다. 그런 퉁소 아니 단소를 분 지가 오래다. 우선 하모니카부터 더듬어서 분다. 하릴없을 때 바로 이때다. 하모니카는 베이스도 ‘작작’ 넣어서 분다. 몇 시간 머물다가 버스로 괴정을 갔다. 또 김밥과 우유를 먹었다. 시간이 남아도니 천천히 곱씹으며 시원한 데서 점심시간을 보냈다.
늘 당구 치던 키스에서 만났다. 좀 일러 혼자서 툭툭 연습하다 보니 모였다. 끌기를 잘하는 이준구가 먼저 설렁설렁 들어왔다. 따라 해 보면 잘 안된다. 공이 튕기고 밀리는데 잘 친다. 어쩌면 ‘픽’ 소리 내지 않고 정확히 칠까. 이어 최효수가 오랜만이라며 반가워서 악수를 청한다. 올 추석이 지나면 우리와 같은 급수까지 올려 주기로 했다. 그동안 연습을 많이 해서 늘었다.
사람이나 동물이 둥근 것을 갖고 놀기 좋아한다. 탁구, 테니스, 배드민턴은 친다 밀하고, 축구는 찬다. 야구와 농구는 던진다는 말을 쓴다. 당구는 친다고도 하고 찔러대는 구기 운동이다. 축구와 야구 외에는 실내가 가능하다. 특히 당구는 실내 스포츠다. 기술이 다양해서 오랜 시간 익혀야 중급에서 고수로 올라간다.
박정도 네 사람이 모이면 편을 갈라 4구를 즐겨 쳤다. 요즘 3구를 많이 하는데 우린 예전에 치던 캐롬 네 개가 좋다. 박 회장은 멀리 치기를 기막히게 잘한다. 역회전을 넣어 비실비실 오는 것 같아도 정확하게 와 부딪친다. 몸에 익어서 자신 있게 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봐 왔다. 남이 어려워 못 치는 걸 치게 되고 그러면 모이니 편을 이기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맨날 해도 싫증이 나지 않아 일년내내 더우나 추우나 한결같이 나간다. 오전에 텃밭 일해주고 오후엔 나가기로 했다. 눈치 없이 열심히 일하는 아내 앞에 나간다고 설치니 좋아하겠나. 집에 오면 당구 프로를 보면서 뉴스나 오락프로를 가리니 밉상이다. 당구에 곱게 미쳐야지 야단스레 나대니 가족들도 걱정이다. 당뇨도 있으면서 나가 아무거나 먹고 다니니 엉덩이 뿔을 어쩌면 좋아.
서로 사장 사장하다가 흔해서 회장으로 부른다. 여기 박 회장 때문에 사달이 났다. 아내가 무엇이 싫은지 만나는 것을 꺼린다. 두 집 부부가 가끔 만나 식사도 했건만 어디가 뒤틀렸는지 알 수 없다. 괴정 키스 당구장에 가는 것을 거짓말로 둘러대야 했다. 그래야 서로 편하기 때문이다. 목요일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가
“오늘 점심은 무엇을 들었나요.”
무심결에
“응 칼국수”
했다가 벌컥 화를 낸다.
“모임에서 밥이지 무슨 칼국수”
하기에 난감해서
“어 그 해물--”
하니
“거짓말 바른대로 말해 봐요.”
그래 다투다가 꽁지를 내리고 슬금슬금 방으로 들었다. 따라왔기에 아들 앞에서 아빠를 거짓말쟁이로 몰면 어쩌느냐 서로 옥신각신했다. 뭣이 쌓였는지 이 말 저 행동이 막 나왔다. 서로 한참을 주고받은 얘기가 싸움이 되고 말았다.
“늙어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삽시다.”
했지만 떨떠름한 게 편히 잠을 잘 수 없다. 나에게 퍼붓던 말이 되살아나고 곱 씹혀서 견딜 수가 없다. 몇 번인가 내 방에 쳐들어와 소란을 피운 것이---. 괘씸해서 참을 수 없다. 큰 소릴 걸핏하면 친다. 운전할 때
“이리 가라 저리 가자.”
아이에게 쓰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한다. 내가 어린앤가.
“어딜 가느냐. 누굴 만나느냐. 무얼 먹었나. 목욕해라. 머리 감아라.”
자질구레한 말도 늘어놓는다. 어떨 땐
“시내 가요.” 하고 나가는데 복도에 따라 나와 팔을 당기고 머리 감고 나가란다.
“이걸 입어라 신어라.”
뭐 한가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거기다가
“성경책을 봐라. 기도해라.”
온갖 시시콜콜한 것에 다 입을 댄다. 관심과 사랑이 많은 잔정에 싫증을 느낀다. 특히나 푹푹 떠서 넣어주는 고기와 국, 밥에 질린다. 찍찍 남기면 안 된다며 다 먹으란다. 무슨 수로 먹나 배부른데다 자꾸 먹여 눈알이 나오려 한다. 어린아이처럼 늘 배고파 보이는가 보다. 무엇이든 입에 넣어줘야 마음이 편한 아내이다. 눈물 나게 고마운 정성이다.
그런데 그 말이 잘 안 먹혀들면 그만 큰 소리로 화를 낸다. 이러다 싸우길 자주 한다. 남자가 그까짓 것, 집안 평안 하려고 참고 또 아들 앞에서 한발 물러선다. 그러니 괜찮다 싶은가 버릇이 된 것 같다. 너무 가족을 위해 밤낮 죽자 살자 헌신 봉사하는 아내 영옥이다. 깊은 밤까지 잠 안 자고 무엇이든 찾아서 해대고 헤맨다. 평생 살면서 업고 다녀도 다 못 갚을 빚을 안겨다 준 거룩한 아내이고 자녀의 어머님이시다.
목디스크가 있어 오른팔이 저리고 아프다며 탁탁 치거나 천식이 있어 콜록콜록 잇달아 마른기침할 때는 안쓰럽다. 부지런하고 알뜰해서 잠시를 가만 있지 못한다. 쓸고 닦고 꿰매고 빨래하는가 하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부엌일을 쉼 없이 한다. 결혼한 지 오래여서 다 할 수 있을 텐데도 딸네 밑반찬과 철 따라 온갖 것들을 해서 보낸다.
“이제 그만 해요. 딸도 할 줄 알아요.”
아직 어려서 못 한다나. 손자가 고등학생인데 못 하긴.... 몸도 전 같지 않아서 이곳저곳 탈이 난다. 천성이 그냥 있지 못한다. 아프면 찡찡대지만 괜찮으면 그저 움직여야 직성이 풀린다. 누가 그를 막으리오. 가는 길에 걸리면 야단난다. 지난날 있었던 잘못이 한꺼번에 다 쏟아져 나온다. 늙으면서 성질이 더 거칠어진 것 같다.
“참 착하고 순하며 어질었는데....”
요즘엔 시니어 일을 맡아 한다며 아침에 모니터링을 나간다. 학교와 동사무소, 경로당 등을 돌아보며 사진 찍는다. 열심이다. 아침을 거르고 나갈 때도 있다. 얼마나 성실한지 온몸으로 일하는 것 같다. 몸이 아파 빠지는 노인이 있으면 대신 교통정리를 하고 편히 쉬게 해 준다.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지 할 수 있도록 연락해서 일 시킨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나 저리 성실하고 알뜰한데 왜 집을 나가나. 밤새 뒤척거리다가 한동식은 새벽에 살며시 집을 나왔다. 어디 갈 곳도 없다. 무턱대고 발길 가는 데로 갔다. 정자와 당구장이다. 갈 곳이 거기밖에 없다. 당구장을 나와 헤어지려는데 우산을 두고 왔다. 한참 가서 아차 하는데 빨리 생각났다.
하단 김밥집에 들러 한 줄 시켜 먹었다. 해거름 해서 마을로 들어가는데 새벽에 들렀던 정자로 갔다. 밤에는 정자에 불이 들어왔다. 선풍기도 돌고 환하다. 사람들이 분주히 다니며 운동한다고 야단이다. 나만 앉아서 내려다보고 있다. 숭어가 풀쩍풀쩍 뛰는 소리가 들린다. 하모니카를 꺼내 낭창하게 불어댔다. 아들 문자가 들어왔다.
“아빠 식사는 했습니까.”
한번 다 불자면 반 시간 걸린다. 아침에 불었더니 좀 낫다. 모기가 달라붙으면 힘들 텐데 밝고 선풍기 바람이 센가 없다. 밤 깊어 다니는 사람도 줄고 적막해 보여 설 일어나 집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터덜터덜 걸으면 건 한 시간쯤 걸린다. 아들이 반갑다며 수박과 자두를 가지러 냉장고로 간다.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세수하고 곤히 잠에 떨어졌다. 그래 다니는 것도 몸과 마음이 다 피곤하다. 혹시 방에 들어와 또 싸움을 걸까 문을 걸었다. 곯아떨어져 자다가 깨니 새벽이다. 세수하고 또 살며시 나왔다. 오늘은 집 앞 편의점에서 김밥을 먹었다. 꼭꼭 아주 천천히 씹어 넘겼다. 당뇨약을 한 줄 가져와 먹었다. 요즘 음식을 많이 먹어 혈당 수치가 높게 나온다.
적게 먹을 땐 괜찮다가 언제부터 나도 모르게 높게 나온다. 음식을 이것저것 막 먹어서이다. 알아서 적게 들면 야단이다. 남자가 힘을 못 쓴다며 자꾸 챙겨 먹인다. 싫은 고기를 더께더께 얹어주며 먹으란다. 밥은 그릇 안에 담는데 국과 다른 것을 가득가득 채운다. 그런 것들은 많이 먹어도 된다나. 아는 것 같이 말한다.
입에 넣어주며 한 술이라도 거든다. 그래 밀어 넣는 게 마른 논바닥에 물들어가듯 좋은가 보다. 어떨 땐 성가셔서 화를 내면 아주 못마땅한 표정이다. 거절도 맘대로 못 한다. 그러다간 쌓여서 뭇매를 맞을 수 있다. 이번처럼 크게 화를 내면 물러서면서 좀 숙지근하다. 나 동식은 그래 물들어가면서 살다가 이렇게 시위라도 해야 모습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어제 그 팔각 2층 정자에 올랐다. 갈 곳이 마땅찮아 또 찾았다. 하모니카를 늘어지게 불었다. 더워서 쩍쩍 붙는데 그래도 모기가 안 물어 다행이다. 몇 시간 부니 되살아나면서 짝짝 반주도 넣는다.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동요를 시작으로 ‘학교 종이 땡땡땡’과 나비야, 반짝반짝, 꽃밭에서, 오빠 생각, 우리의 소원, 반달, 등대지기, 에델바이스를 하고 돼서 쉰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여긴 지나면서 잠시 올랐다간 멀리 한 번 보곤 내려간다.
가다가 들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있어서인가 이내 내려간다. 미안하지만 나는 갈 데가 없다. 허름한 평복에 가방을 메고 올라온 아주머니가 맞은 편에 앉았다. 기둥에 기댄 채 대마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측은해 보인다. 사연이 있는가. 나처럼 갈 곳이 마땅찮은가. 신발을 벗어놓고 의자에 올라앉아서 턱을 괴고 있다. 잠시 있다 가는데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하는 수 없이 멈췄던 하모니카를 다시 작게 살살 불었다. 불든 말든 듣기 싫은 표정이어서 몇 곡 불다가 그만뒀다. 내가 가야 하나. 마음속으로 승강이를 하는 중이다. 갑자기 신발을 신으며 고개를 숙이곤
“고맙습니다. 어릴 때 듣던 ‘섬집아기’를 들으니 참 좋습니다.”
한다.
그러면서 줄줄 봇물 터지듯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건너 신도시 아파트에 사는데 서낙동강을 따라 신호대교 쪽으로 걸어서 왔다. 주말마다 온다며 정자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단다. 조수에 따라서 갈대가 물에 잠겼다간 무성하게 보이기도 하는 게 신기하다. 고니가 하얗게 있을 때 너무 좋아 마냥 쳐다본다며
“지금 그들이 가고 없으니 허전해요.”
건너 섬이 예뻐 자꾸 쳐다보게 된다며 저기 갈 수 없느냐고 물었다. 간처럼 크게 보이는 을숙도 아래 섬과 여기 보이는 섬들은 모두 배가 있어야 갈 수 있다. 겨울에 오는 고니가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철새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대마등처럼 가마득히 보이는 왼쪽 저 아래 낙동강 도요등과 백합등도 등이라 하는데 등은 잠겼다 떴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합등은 주먹 크기의 하얀 조개가 나오고 그 아래 바다와 접한 도요등은 도요새가 철 따라 머물렀다 간대서 이른다. 맨 위쪽 맹금머리와 함께 모두 천연기념물이다. 주고받는 얘기에 눈빛을 반짝이며 신기한 듯 흥미진진하다. 몇 해 전 탐조하는 사람에게 들은 것을 기억한다며 나눴다.
“새는 뭘 먹고 살아요.”
고니는 갈대 뿌리에 줄기를 뜯어 먹거나 개펄 속을 뒤져서 배를 채운다. 도요새는 바닷가재를 즐겨 낚아채 먹는다. 쪼르륵 쪼르륵 다니며 흔들어 큰 앞발을 떼고 먹는다. 저 멀리 호주나 뉴질랜드로도 가는데 봄가을에 이곳에 잠시 들렀다 간다. 하도 멀어서 태평양을 건널 땐 몸이 반쪽으로 줄어드는 고달픈 새이다.
여럿이 올라오니 주섬주섬 챙겨 가려 한다. 머뭇머뭇하기에 해가 중천에 올라 나도 일어섰다.
“나는 이 오솔길로 갑니다.”
보던 ‘문학도시’ 책을 주고 바로 앞 큰길로 갈라져서 가는가 했는데, 소나무 숲길로 바짝 따라온다. 큰길 네거리를 건너
“여기 텃밭에 갑니다.”
하고 잘 가길 인사했는데 성큼 또 따라 들어온다.
“텃밭에 따라가 볼래요.”
한다. 지금 심란해서 혼자 있고 싶은데 자꾸 따라다닌다. 매몰차게 냉대해서 가라 할 수 없잖나. 성큼성큼 뒤따라 풀밭으로 들어온다. 처음 본 여인이 어찌나 싹싹하고 사근사근한 지 오래 사귄 사람 같다. 뽕나무와 소사나무 그늘에서 좌우 텃밭을 둘러보더니 화단이 예쁘다며 살핀다. 예전 채송화와 분꽃을 보곤 좋다며 환호한다.
풋고추와 호박을 따 줬다. 간다며 나가는 걸 등 뒤로 보면서 동쪽 토마토와 가지밭으로 갔다. 바람 한 점 없어 무덥고 모기가 달려들어 오래 있지 못한다. 연산동으로 가 약속한 안 교장과 오랜만에 더킹에서 당구를 쳤다. 어금버금했는데 잘 친다. 갑자기 늘었는가. 여러 번 쳤는데 다 졌다. 빈 쿠션을 정확히 쳐서 맞힌다.
“당구학교를 다녔습니까. 어찌 이리 잘 쳐.”
또 길었던 하루해가 저물어간다. 나는 가기 싫은 집으로 꾸역꾸역 들어가야 할 판이다. 전에 쪽지를 주면서 자필 이름을 적으라 하기에 뭔가 봤더니 무슨 일이 있어도 집을 나가 밖에서 자지 않는다였다. 사인한 뒤여서 약속대로 이렇게 하고 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아내가 범띠다. 하단에서 김밥을 시켜 먹었다.
집 가까이 가서 내려 아침에 들렀던 정자에 오르려는데 아차 우산을 또 두고 왔다. 손이 허전해 보니 비었다. 어디에 뒀을까. 연산동일까 지하철일까. 아니면 김밥집일까. 감감하다. 손에 든 것을 버리고 다녀서는 안 되겠다. 어찌하든 찾아야겠다 생각이 든다. 다시 버스를 타고 되돌아 나가 김밥집에 들어갔다. 여기 있다며 돌려주었다.
“멀리 갔다 오셨지예.”
손으로 어루만지며 반가워라 잃었던 것을 찾으니 되게 기분 좋다. 나간 정신을 되돌려놓은 것 같다. 얼마 전엔 시골 동창회에 갔다가 쌀로 만든 부드러운 기지떡을 얻어왔다. 쉰내 나는 여름 쌀떡이 맛있어서 가족에게 맛보이려 했는데 어디에 놔뒀는지 집 앞에서 생각이 났다. 역시 빈손이다. 곰곰 생각해 내서 늦었지만 되돌아가 찾아왔다.
“깜박깜박하는 게 늘어난다.”
이러잖으면 자꾸 잊어서 정신이 더 나간다. 한번은 당뇨약 석 달 치를 타서 가는데 그만두고 내렸다. 아차 했지만 차는 이미 굼실굼실 떠나고 있었다. 뒤따라갔다. 종점에 내리니 앞차가 서 있을 리 있나. 떠나버린 시꺼먼 터널을 봐도 소용없다. 어쩌나 터덜터덜 걸어 올라와 사무실에 들렀다. 마침 누가 맡겼다며 전해줬다.
“아 이렇게 고마울 수가.”
정자에 올라 환히 불 밝히고 선풍기를 돌리니 빙글빙글 시원하다. 모기가 바람결에 달려들 수 없다. 또 하모니카를 꺼내 불고 불었다. 아 하루해가 길기도 해라. 새벽에 나와 이 시간까지 한 달쯤 되는 것 같다. 돌아보니 막상 갈 곳이 없다. 해는 왜 이리 길까. 더디 가는 시간이다. 숱한 생각이 수놓아졌다. 아들이
“저녁은 잡쉈습니까.”
문자가 들어와 걱정하고 있다. 아들이 수원에 있다가 일이 잘 안 풀려 잠시 함께 산다. 없을 때 아내와 무슨 말로 서로 다퉈도 괜찮은데 아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한 것이 걸린다. 둘은 자주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데 밭에서 일하다가도 네 옳다 내 맞다는 등 자자하다 호미로 땅을 콕콕 치면서
“밭하는 게 재미없다-.”
혼잣말하는 아내가 불쌍할 때가 있다. 이렇게 하자면 저러자 하고 저리 하자면 이렇게 해야 한다나. 땀나 곤한 몸에 화가 치밀어 그만 소리치고 따르라 했더니 비뚤어진 마음에 저런다. 그의 성미를 맞춰 주려고 뉘우치며 도와야겠다 맘먹는다. 농사짓기를 좋아해서 시골 가자는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이곳저곳 다녀 봤지만 마땅한 데가 없다.
“농막 같은 집도 놀라울 정도로 비싸다.”
다 값이 치솟아 아파트 팔아서는 허름한 집과 밭뙈기 사기에 모자란다. 그래서 마을 앞 바닷가 공터에다 밭을 일궈 힘껏 일해주고 오훈 나간다. 차 대기 좋고 구청에서 숲을 만들어 가운데 자갈을 깐 보행길이 멋지다. 둑 아래 밭은 숲에 가려 지나면 찾기 어렵고 보이지도 않는다. 가까이 가야 볼 수 있다. 들어가는 뽕나무 주위도 철쭉을 가득 심어 여기 밭이 있는가 들어가기도 어렵다. 안에 들어가 봐야 밭이구나 한다.
“구석진 곳에 물도 흐른다.”
이팝나무와 잔잔한 별꽃 나무를 심어 저 아래 밭이 있음은 짐작도 할 수 없다. 들어가 보면 기다란 게 별천지다. 이제 시골 시골 하던 노래를 잠재울 수 있다. 그래도 가끔은 노래했는데 줄어들어 지금은 좋은가 심상해졌다. 해도 해도 안 되니 가슴에 묻어두고 한 번씩 터지는지도 모른다. 여자 마음은 알 수 없다.
“시골 가잔 말 소원인데 안 들려요.”
가족과 이야기하노라면 그건 이렇다 반대로 말하니 민망하다. 얘기 중에 끊어버리고 들어오길 잘한다. 남편이 만만한가. 엄마 체면 세우려 허허 웃고 넘어가도 이번은 참을 수 없이 화나는 한동식이다. 아들 앞에서 소리쳤기 때문이다.
“가장을 몰아세우면 되나”
여염집에서 보통 겁먹게 하려고 고분고분 길들이기 위해 거나하게 술 취해 들어와 정신없는 척 소리친다. 와장창 소리 나는 양재기나 플라스틱 등 깨지지 않는 물건을 발로 차고 바닥에 뒹굴도록 던지며 소란을 피우는 걸 본다. 젊을 땐 몰라도 40년 넘게 살아서 이제 어스름인데 지지고 볶고 살다 보니 그대 없으면 난 못 살아. 하루가 다르게 절실해진다. 불룩불룩 치밀다가도 이러면 안 돼 참고 참으며 그저 가라앉힌다.
그런데 이번만은 다르다. 중년 아들이 옆에 앉았는데도 큰소리로
“거짓말이야 바른대로 말해봐.”
서로 편하려 둘러대고 얼버무리는데 날 비웃는 얼굴 모습이 슬펐다. 평소에 하던 말
“깝깝하다.”
“아니야,”
“안 해.”
“싫애.”
“하지 마.”
하는 말들이 가슴을 울린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큰일보다 이런 자잘한 일로 응어리질 수 있다. 이렇듯 말하게 만든 것도 다 나 동식의 잘못이다. 평소에 나갔던 일을 소상히 말해 주고 다가올 행사도 그 내용도 말해 준다. 할 얘기가 뜸할 때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혼자 집 지키고 수다한 집안일을 쉼 없이 하는 게 안쓰러워서이기도 하다.
가끔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땐 얼른 알려준다. 행사 내용도 어떤가 하면 그건 이러이러하다고 일러준다.
“당신이 ‘이학식’을 어찌 알아”
나보다 아내가 더 잘 안다. 간을 들여다보고 있다. 살면서 안 맞으면 서로 맞춰 살아야 하는데 대부분 맞는 게 없다. 식성과 종교, 대화, 생각이 다르다. 된장과 칼국수, 김치찌개를 좋아하는데 비리한 생선과 느끼한 고기를 좋아한다. 냄새나는 된장이고 주무르기 힘든 칼국수이다. 겨울 따뜻한 김치 국밥은 어릴 때 많이 먹어 물린다나.
지난날 가까운 부석사와 축서사에 자주 가서 절에 대한 신비감이 있다. 승려들의 향가 시를 읽으니 그윽하고 아득한 느낌을 받아 좋아했다. 또 마을 사과밭에 주일 예배를 드린대서 올라갔다. 마치면 사과를 주워 먹으려는 생각에서였다. 영옥을 만나자마자 하나님을 믿자면서 서면 교회로 갔다. 그리 끌려가다가 평생 믿게 되었다.
성경을 읽어라. 기도해라. 수요 예배드리러 가자. 들들 볶인다. 대화와 생각도 남달라 맞는 구석이 없다. 다들 부부는 살다 보면 생각이며 얼굴도 닮아간다는데 우린 아니다. 내 의견은 저버려지게 되고 아내 뜻대로 흘러간다. 뚝뚝 떨어지는 추녀 빗물이 구멍을 내듯 누누이 조르고 닦달해서 기어이 이루고야 만다. 내가 져야 집안이 조용하다.
하모니카를 불면서도 이러쿵저러쿵 생각에 잠기다가 조금씩 고마운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도 걸린다. 왜 하필 소리를 질러 화나게 하는가. 걸어서 가까워지니 13층 불빛이 보인다. 아들 방이 환하게 비친다. 들어가니 아들이 반가워하며 바로 냉장고로 가서 자두와 수박을 담아온다. 다니면서 땀에 절인 몸을 목욕으로 달랬다.
누우니 편하다. 이내 스르르 잠에 빠진다. 이제 시작이니 이번에는 큰 소리 내는 아내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치겠다며 벼르다가 잤다. 새벽에 깨어 뒤척이다가 세수하고 물 한 모금 마셨다. 나갈 준비를 살살 했다.
“큰 소리 내어 미안합니다.”
할 때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중간에 그만두면 또 흐지부지 유야무야 긴가민가 되기 쉽다. 기도하고 성경 구절을 읽은 뒤 밀렸던 일기를 채근해서 적었다. 혈당을 재니 2백 가까이 나온다. 약을 다니면서 챙겨 먹었는데도 그렇다. 조금씩 더 나온다. 어쩌다 정상이고 날이 갈수록 심하다. 요즘은 더한데 이게 다 아내를 미워하니 벌을 받아서인가.
제일 힘든 것이 시골로 들어가자며 밤낮으로 같은 말하는 거였다. 경주 포석정과 진해 백일 마을을 훑어봐도 잘 안됐다. 오 권사 소개한 대장동 빈집을 가자며 또 졸랐다. 억지로 끌려가 보니 개울 물소리가 요란하고 경사진 땅을 파서 집을 지었는데 습기로 이슬이 맺혀 곰팡이가 슬었다. 어찌 이런 집을 좋아할까. 어이없어 차에 와 기다렸다.
“늙으면 병원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 한다.”
이웃과 등진 습기 가득 찬 집에서 어찌 살아가나. 기막히다. 옆에는 버린 빈집이 있어 밤이면 귀신 나올 법하다. 정나미가 떨어진다. 경주 산기슭 집도 오래 비어있어 풀과 나무가 자라 형편없다. 외딴집 앞은 낭떠러지다.
“명지 두산아파트로 이사 가면 시골 가잔 말 안 하겠다”
해 놓고선 얼마 못 가 마음이 변했다. 전망 좋은 안락한 아파트가 어때서 시골 험한 데로 가자고 몸부림치는가. 너무 오랜 기간 치근대고 괴롭혀서 처음으로 헤어져야겠다는 맘을 먹게 되었다. 주인이 살다가 살 수 없어 나간 얄궂은 집을 소개해준 오 권사가 원망스럽다.
“다시는 오 권사 말도 하지 말라. 준비하라.”
단단히 마음먹고 실증하는 아내에게 쏘아붙였다. 한발 물러서는 듯하고 조심하는 것 같다. 입 밖에 내지 않고 잠잠해지자 없었던 듯 스르르 풀려나갔다. 미안해서 지금의 바닷가에 밭을 만든다고 힘닿는 데까지 애썼다. 나 한동식의 허리가 휘청한다. 목욕한다고 들앉아있으면 어느새 들어와 등을 밀어주고 머리를 감긴다. 꼭 어린애처럼 대한다. 그렇게 보이는가 보다. 왜 그리되었나.
“머리 허연 늙은 영감 아이가 어디 있나.”
그러니 화내봤자 어린애 투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가 보다. 버스에서 만났다며 가덕도 김 집사 집에 간단다. 험한 좁은 곳을 차 몰고 위험하게 자주 간다. 조개와 미역을 싣고 와선 아파트 사람들에게 팔아준다. 가을엔 단감을 집집이 전화해 배달하고 돈 모아 바친다. 김 집사 한번 편한 졸병을 뒀다.
아파트 경로당에 자주 나간다. 부추기면 노인들을 태워 시장에 장 보러 가거나 맛집을 찾아간다. 어떨 땐 교통 범칙금이 다 날아온다. 바보스러운 짓을 서슴없이 한다. 싫어해도 소용없다. 내 좋아하는 일은 거침없다. 누가 뭐래도 하고 마는 고집이다.
“당신 할 짓 다 하면서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요.”
일침을 놓는다.
“뭐 다 했나. 평생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난데.”
소변으로 깨면
“콜록콜록”
기침 소리가 들린다. 천식이 있어서 더운 여름에도 도질 때가 있다. 평생 약을 들라는 의사 말인데도 동식의 시위 때문에 잊고 있었나. 지난봄엔 기침과 열이 난 데서 해열제를 먹여도 듣지 않아 좀 이상해 마을 의원에 갔다. 검사 결과 빨간 두 점의 코로나 양성이 나왔다. 같이 걸려 허우적거리다 일어났다.
“또 걸리지나 않았나.”
신발을 신으려다 말고 멈칫했다.
또 콜록 하는 게 아닌가. 자유분방한 당신을 보니 심통이 생긴다는 영옥의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모로 누워 자고 있다. 더운가. 이불을 덮지 않고서
“기침 많이 했어요.”
하고 이마를 짚으며 어루만지고 쓸어주었다. 나가려는데 발로 걸었다. 자리에 눕히고선
“그래 나가 다니며 먹는 삼각김밥이 맛있어요.”
하며 팔을 툭툭, 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아무 말 않고 있다가 실 일어나 저 끝의 내 방으로 설렁설렁 들어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툭툭, 톡톡 치는 게 사과 말이다. 오늘이 주일이다. 화를 해지도록 갖지 말라는데 이틀이나 불룩불룩했으니 착한 아내한테 다시는 안 볼 것 같이 대했고 별것 아닌 일로 두려워하는 아들 앞에서 미안한 맘이 든다. 할 짓이 아니다. 새벽에 나가 헤매보니 이 찌는 듯 더운 날 땀만 찍찍 나고 눕지도 못하며 걷거나 딱딱한 의자에 앉아 배겨야 했다.
하모니카도 즐거울 때 불어야지 무료해서 이럴 땐 재미가 덜하다. 그러다 보니 감겼던 게 많이 풀어져 쌩하던 게 약해지고 느슨하다. 소리 질러 미웠던 아내에게 누그러져 간다.
“왜 허물어질까.”
가덕도를 가고 경로당을 자주 찾아도 즐거워서 하는 일을 그냥 두자. 포석정이나 백일 마을, 대장동으로 가자면 가는 흉내라도 내자. 교회 권사들과 어울려 시내를 다니는 게 건강해서 만날 수 있을 때가 좋다. 하나 싫어지면 다 마음에 안 들었던 지난날 나 한 고집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면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런 나를 다 받아주고 한 번도 집을 나간 적이 없는 어머니 같은 아내다. 집안이 시끄럽고 분탕이 생겨서 뒤죽박죽일 때에도, 어떤 일이 있어도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늘 기도한다. 때를 굶기거나 요즘처럼 같이 맞받아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히고 머리 감기고 목욕시켰다. 그러던 사람이 지금 와서 때 만난 듯 저런다.
“달게 벌 받아야 해.”
오뉴월 품앗이 돌아오듯, 돗자리 고드랫돌 넘어가듯 지금 야단맞는 한동식이다. 참아야지 나가기는 어디로 가나. 허허 웃고 사람 좋은 얼굴로 실없이 살아야지 무슨....
“갑갑하다, 이래라 저래라.”
온갖 말을 하고 아들 앞에 소리를 버럭 질러도 젊을 때 가부장입네 거드름 피웠던 나는 이제 아내 윤영옥을 뭐라 나무랄 수 없다. 나돌아다닌 게 이다지도 반성을 넘어 물컹해져 버린 바보스러운 동식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떨그럭거리는 소리와 도마에 잔잔하게 써는 소리가 난다. 풋배추를 넣은 된장찌개 냄새가 솔솔 퍼져 코를 간질거린다.
“이러면 안 돼 안 돼, 나가야 해, 나가야 해.”
처음 시집와선 시부모 앞에 발길도 조심조심 걷더니 아이 낳고 살림 불리고 나서는 그 높아만 뵈던 남편도 맏아들처럼 보인다. 그 높던 가장자리는 응달 봄눈 녹듯 어물어물 사라져간다.
“시어머니 가자 안방은 내차지.”
아직도 젊을 때 성질은 남아서 한가락 하려고 덤벼든다. 새벽잠이 퍼부어 자꾸 가물가물 까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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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유! 수고하셨습니다
한편의 소설 대단하십니다
찬찬히 읽어 보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박회장님
지난 주 율림농원에 가서 밤 주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