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신윤복의 '혜원전신첩'(간송미술관 소장)중 삼추가연~>
秋叢繞舍似陶家 (추총요사사도가)
遍繞籬邊日漸斜 (편요리변일점사)
不是花中偏愛菊 (불시화중편애국)
此花開盡更無花 (차화개진갱무화)
국화꽃 쌓인 집은 도연명이 사는가
삥두른 울타리에 해가 기우네
꽃중에 국화를 편애해서가 아니라
이 꽃지면 다른 꽃이 없다네
元稹(원진)의 菊花(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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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산파가 나이 먹은 딸 하나를 데리고 살다가 세상을 뜨자, 노처녀가 시집도 안 가고 제 어미 하던 일을 자연스레 이어받았다.
서른이 가까운 노처녀 산파는 차가운 기운이 돌고 좀 쌀쌀 맞지만 백옥같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허리는 잘록했다.
간혹 외출을 할 때도 눈을 내리깔고 다녔고, 누가 말을 걸어도 예, 아니오 뿐이다.
매파가 와서 중매 얘기라도 꺼낼라치면 등을 떼밀어 문밖으로 쫓아냈다.
노처녀 산파가 시집을 가지 않으려는 데는 연유가 있다.
열서너살 때부터 제 어미를 따라 아이 받으러 다니며 수많은 여인이 아이 낳으려고 버선을 입에 물고 생땀을 쏟으며 몇날 며칠 산통을 겪는 걸 봐 왔고, 수많은 여인이 아이 낳다가 목숨을 잃는 걸 봐 왔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남정네 탓, 남자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게 노처녀 산파의 가슴에 박인 생각이다.
그녀가 이렇게 철옹성을 치고 있어도 성문을 열려는 짐승(?)이 있으니 다름 아닌 천하의 한량, 박진사다.
와우골 산자락 외딴집에서 어렵게 홀로 사는 신노파 집에 박진사가 들어섰다.
“어인 일로 진사 나리께서 늙은 쇤네를 찾아오셨수?”
박진사는 싱긋이 웃으며 엽전 꾸러미를 신노파 손에 쥐어 줬다.
이튿날 저녁 나절~
신노파가 헐레벌떡 노처녀 산파집 문을 두드렸다.
“시집간 딸애가 배가 차올라 보름 전 우리 집에 해산하러 왔는데 진통이 시작되네.”
노처녀 산파가 얼른 출산 준비 손보따리를 싸 가지고 신노파 뒤를 따라 산허리를 돌아 초가삼간 외딴집 사립문에 들어서자 방 안에서는 앓는 소리가 났다.
방 안에 들어선 산파가
“할멈, 촛불을 켜든가 호롱불 심지를 좀 올리세요”
했다.
신노파가 대답하기를
“우리 집에 초는 없고 호롱불 심지를 올려 볼게”
하며 호롱불을 만지다가 가물거리던 호롱불마저 꺼져 버려 방 안은 칠흑이 되었다.
초를 구하러 간다고 신노파는 나가고 깜깜한 방에서는 출산통 신음 소리만 들려, 노처녀 산파가 더듬더듬 이불 속으로 두손을 넣어 산부의 배를 쓰다듬었다.
배가 별로 부르지 않아 홑치마를 걷어 올리고 음부에 손을 대자 무성한 숲 속에서 벌써 아기가 나오고 있다.
노처녀 산파는 깜짝 놀랐다.
이날 이때껏 수많은 아기를 받아 봤건만 이번 아기는 번개로 밴 아이인지 손이 닿자 노처녀 산파의 온몸이 짜릿짜릿하고 숨이 가빠지고 아랫도리가 힘이 빠지고 등줄기에 땀이 났다.
음문을 열고 나오는 아기를 만지던 노처녀 산파가 또 한번 놀란 것은 도대체 어느 부위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것이다.
아기 머리이기엔 너무 작고 손이기엔 손가락이 하나도 없고 발이기엔 발가락이 없다.
양수가 묻어 미끈미끈한 것을 이 손으로 만져도 저 손으로 만져도 알 길이 없고 노처녀 산파의 몸만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어느새 산부의 손이 노처녀 산파의 허벅지를 더듬다가 가랑이 사이 옥문에 다다랐건만 노처녀 산파는 비몽사몽간에 ‘내가 왜 이러지’를 주문처럼 외며 눈을 감고 쓰러졌다.
출산한다며 이불을 덮어쓰고 누웠던 신노파의 딸(?)이 재빨리 노처녀 산파의 치마를 올리고 음부에서 나오려던 그것으로 지그시 노처녀 산파의 옥문으로 밀고 들어갔다.
박진사의 양물이 쉼 없이 절구질을 해대자 노처녀 산파의 신음 소리가 온 방을 들썩이고 두팔로는 박진사의 등을 감싸 안았다.
폭풍이 지나가자 정신을 차린 노처녀 산파는 치마끈을 매며 중얼거렸다.
“산통으로 죽을 때 죽더라도 이래서 아이를 또 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