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울림 눈팅회원입니다.
가입한지는 오래 되었어도 그저 산울림만 읽고 보고 훔치는 불량회원입니다.
어제 13주년 기념품에 소요욕이 생겨 염치불구하고 떼를 썻습니다.
열심회원님의 몫을 훔친게 아닌지 내내 불편하여 예전 즐겨가는 모임에 올렸던
산울림 글을 찾아 신고 합니다.
[산울림] 태생 때 부터 열심인 충성파임을 증명하는 의미에서~~
1977년 겨울였다.
혜화동 로타리의 중학교 3학년 연합고사를 마치고 1학년 때 부터 몰려 다니던
용범이,경걸이,해영이 3명은 우리 고등학교를 들어가도 절대 우정을 변치말자고 맹세를 하며
연합고사 끝나고 의미없는 기말고사 기간에 학교를 마치면 늘 동대문에 있는 경걸이 집으로 몰려 다녔다.
경걸이네 집에는 대학교 다니는 형과 누나가 있어 기타도 있고 그 당시 귀하고 귀한 전축과 녹음기가 있었다.
중2 때 교회 다니며 간단하게 익힌 어설푼 기타연주로 나중에 길이 남을 노래를 녹음하고 사춘기 시절 조금은 고상하게
음악감상도 하고 노래도 부르곤 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노래가 대학가요제 1회 대상인 [나 어떻게]와...하남석의 [밤차로 떠난 여인]..
팝송인 존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 진추하의 [One summer night],밤차의 이은하 혜은이 아즘마 정도였다.
송창식 양희은,윤형주...등등은 금지곡 가수로 낙인 찍혀 노래책에 모르는 노래로 존재하던 시절였고~~.
70년대 말 거리에는 지금 핸드폰가게가 한집 건너 있듯이 엘피판과 테이프를 파는 음악가게가 거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세운상가 쪽인 종로 3가는 구루마에 빽판(불법엘피)과 테이프를 복사해 라이센스 판의 1/4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그 당시 종로 쪽 단과학원 한달 수강료가 8,900원 이었고 라이센스판은 900원 테이프는 540원 빽판은 300원 했었다.
가요는 거의 들을게 없어서? 주로 빽판으로 팝송을 사 대었다.
딥퍼플.레드제프린.유라이언힙.씨씨알.....무색의 커버와 조악한 제목이 붙은 최신 빌보드에 등록된 세계 유행음악을 차비를 아끼고
점심값을 아껴서 구입을 했다.
판을 사게 되면 공테이프에 옮겨 복사해 녀석들에게 녹음비를 받고 팔기도 한다.
차인태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와 경쟁 프로인 황인용아나운서가 진행한 [밤을 잊은 그대에게]로 양분된
라디오 키드들은 여학생은 달달한 밤을 잊은~~였고
당시 [장수만세]란 노인 공경프로의 사회자 였던 황인용을 안티하는 남학생은 차인태의 별밤이었다.
여학생은 차인태 아나운서의 머리가 올라갔다(대머리)는 이유로 싫어했다.
이야기가 너무 샜다....
세명의 말년의 중딩들의 집은 용범이는 한강 건너인 신림동이었고 해영이는 수유리였고 경걸이는 동대문 낙산 밑이였다.
그래서 자연 모이는 집은 경걸이 집이었고 혜화동에서 걸어 창경원을 거쳐 종로로 해서 동대문 경걸이 집까지 수다를 떨고
세상구경 하며 걸어 다녔다.
세명이 궁금해 하는 곳은 세운상가다.
빽판가게에서 판을 고르는 척하며 서성되면 찍새 양아치가 [학생들 존거 있는데 구경할려~~]하며 접근을 한다.
순진한 척 [몬되요~~]하고 얼굴 빨게져 물어본다.
양아치를 따라 좁은 골목을 들어가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면 교복을 가방에 구겨 넣고 담배 공초를 빠는 또래의 녀석들이
바글거리는 꼴방에 들어간다.
입장료 300원씩 지불하고 담배연기 가득찬 쪽방에 자리를 잡고 성원이 되었다 싶으면 문을 걸어 잠근다.
21인치 볼록 텔레비 밑에 있는 비디오에 검은 테이프를 집어 넣는다.
1.2.3.~~~번호가 흐르고 시커먼 흑형과 너덜한 백아즘씨가 숨을 헐떡거린다.....
시네마 천국의 토토가 가위질한 필림을 이어 만든 세기의 키스와는 차원이 다른 세운상가 키드들의 문화생활였다.
세운상가에서 가슴 조리며 담배연기 자욱한 소굴에서의 호기심도 두세번으로 그치었다.
입장료도 문제였고 나쁜 짓이라는 죄의식에 환한 곳으로 빠져 나온다.
낮선 음악이 레코드 가게 스피커에서 흘러 나온다.
용범이가 저거 산울림이란 신인그룹인데 무지 재밌다~~
나오는 음악은 [아니벌써]였다.
용범이는 라디오에서 들었다 한다.
판가게에 들어간다.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과 손글씨로 판 뒷편에 가사를 적어 놓았다.
가요는 레코드 한장에 앞면 뒷면 합쳐서 최소 14곡이상은 들어 가는데 산울림의 노래는 9곡밖에 없다.
물론 아니벌써 말고는 아는 노래가 전무하고~~
셋 중 음악에 대한 일가견을 가진 해영이 이 판 사자 하며 지르기를 꼬신다.
셋은 돈을 모아 판을 사서 경걸이 집으로 향한다.
아니벌써가 흐르고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듯한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골목길....
앞면 뒷면 뿅 간다.
사랑타령에 뽕짝이 전부였던 가요의 인식을 바꾸는 대단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쉬운 노랫말이라 바로 따라 했고 락의 비트인 문좀열어줘~를 들을 때는 미친듯이 헤드빙을 해됐다.
헤어질 줄 알고 도원의 결의까지 마친 세녀석은 꼭 피하고 싶었던 정능 산꼭대기의 고등학교에 뺑뺑이로
모두 배치 되었다.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는것은 다행이었지만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는
한시간을 걸어 올라가는 대한민국에서 고도가 제일 높은 학교였다.
신림동이 집인 용범이는 전학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부모님은 서울대학교에 백여명씩 붙이는 이 학교가 좋으셨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달리 엄청난 량의 학교생활을 요구했다.
학교를 마치는 시간은 저녁 10시였고 몰려 다닐 시간은 커녕 만나서 수다를 떨 짬도 생기질 않았다.
그렇게 1학년을 보내고 용범이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용범이가 소장하고 있던 아니벌써가 들어 있는 산울림판은 나에게 건내졌고~~
산울림의 리더인 김창완님은 나보다 10살이 많으시다.
77년에 청년이었던 창완님은 환갑,진갑을 넘긴 할아버지 나이가 되셨다.
산울림은 13집을 끝으로 막내동생인 창익씨가 운명하시는 바람에 울림을 마치셨다.
물론 창완님 개인의 연예,음악활동은 하시지만 예전의 감동은 사라졌다.
잘가는 남대문회현동 엘피가게에 들렸다.
산울림판에 붙은 가격표를 보고 기절을 했다....웬만한 판은 최하가 삼만원이고 5만원대에서 거래가 된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산울림의 CD는 거의 절판이 되었다.
좋은 음악은 세월이 흘러도 대중의 인기를 모으며 존재하다.
얼마 전 가장 좋아하는 산울림 1.2.3집을 모아 트릴로지 500장 한정판이 나왔다.
물론 산울림의 판은 엘피로 씨디로 많이 가지고 있다.
새로운 음질로 복각 되었다는 선전에 오만원이란 비용을 지불하고 들여 놓았다.
손에 들어와 판을 대하니 웬지 허술하다.
김창완님의 허락이 없이 불법으로 제작된 복제된 판이다.
덕분에 산울림을 일주일 동안 계속 들었다......
처음 아니벌써에 설랬던 감동을 떠올리며..
어릴 때 부터 교회에 다녔다.
유초등부 때 부터 같은 교회생활을 한 동네친구이자 교회친구는 지금도 어릴 때 부랄친구라 불리는 절친들이다.
밑의 학년인 토끼 띠의 후배와 위의 소띠 선배들은 인원이 엄청 많은 반면 범띠는 소수정예로 조금은 소외된 모임이었다.
반면에 친구들끼리의 유대감은 어느 학년 기수보다 끈끈했다.
그 시절 교회 학생모임은 무척 활발히 자리했고 학교생활에서 없는 문학이나 이성간의 사교모임도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70~80년대 초는 학생들이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전무했다.
영화관은 거의가 미성년자불가 였고 빵집 조차도 이성간에 들어 가 앉을 수 있는 환경이 못됐다.
군복 같은 교복으로 통제되고 남학생은 짧은 상고머리,여학생은 단발머리로 어느 곳에서나 학생이란 신분이 노출되었다.
한창 하이틴 영화가 유행했다.
이덕화.임예진.진유영.이승현 .......지금은 고모나 철없는 시엄마로 나오는 임예진이란 배우는 가여린 백혈병에 걸려
심금을 울리던 은막의 스타였다.
영화는 고삘이들의 우정인지 사랑인지 애매모호 하게 썰을 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여학생과 교복을 입고 손 잡고 길거리를 걸어가다 훈육 나온 선생에게 걸리면 학교로 통보돼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무시무시한 벌을 각오해야 했다.
유일하게 남녀학생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토요일 오후에 있는 교회 중고등부 모임이었다.
청교도적인 교회 분위기였지만 젊은 아이들이 유일하게 이성교제를 할 수 있는 해방구 역활을 했다.
영영이라는 예쁜 친구가 있었다
국민학교 때 부터 같이 커온 친구지만 예쁜 만큼 얼마나 쌀쌀하고 빈 틈이 없는지 웃는 모습을 볼 수도 없고
모임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도 없이 집으로 곧장 가는 여학생들에게도 왕따 취급 받는 친구였다.
옷은 꼭 교복을 입고 다니고 신앙이 어찌나 좋은지 기도와 찬양하는 모습만 보였다.
막힌 사회였지만 나름 고삘이들에게도 탈출구는 있었다.
[비틀즈]도 들었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혀를 낼름 거리는 [키스]라는 락밴드의 음악도 몰래 들었다.
교회목사님은 사탄의 음악이라며 절대 못 듣게 했지만.....
팝송책을 펴보면 지금생각하면 유치하게 영어 가사 맡에 한글로 발음이 적혀 있었다.
기타는 필수였고 웬만한 학생은 거의 간단한 기타를 연주했었다.
아침에 학교 가면 전날 라디오 공개방송에게 웃겼던 이야기가 주제가 되었고 주말이면 교복을 빵집에 맡기고
정윤희누나가 고개만 내밀고 도리도리 하던 미성년자 불가의 동시상연하는 변두리극장에도 들락했다.
중3 겨울 때 나온 산울림의 아니벌써는 유일한 우상적인 존재였다.
멤버가 서울대 출신이란것도 우러러 보는 조건이었다.
봄이 되자 2집 [내마음의 주단을 깔고]가 나왔다.
당시 제일 유행했던 [나 어떻게]도 산울림이 만든 노래였다.
MBC문화방송국은 당시 덕수궁 뒤쪽 정동에 있었다.
방송국 뒤 러시아대사관 자리에 체육관이 생겼다.
처음에는 레스링선수인 김일체육관이라 이름 붙었다가 방송국의 공개방송과 권투시합 장소로 전용되었다.
산울림이 문화체육관에서 콘서트를 한단다.
입장료는 잊었지만 거의 한달 용돈의 금액이었을거다.
산울림에 뽕 맞은 나는 어떻게든 입장료를 만들어 친구녀석과 팃겟을 구입했다.
토요일 6시부터 콘서트가 시작하고 입장은 5시부터다.
좌석제가 아니라 앞자리에 앉으려고 학교를 마치고 곧장 정동으로 달렸다.
3시도 안됐는데 줄이 체육관이 안보이는 곳까지 늘어섯다.
혹시나 해서 줄 앞쪽으로 가보았다.
늘어선 줄에는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10명중 8명이다.
빈틈없이 늘어선 줄 가운데 빛나는 여학생이 눈에 띤다........
영영이다.....
청쪼끼에 청바지....소위 날라리 예쁜 복장을 하고 친구와 줄에 서서 수다를 떨고 있다.
사실 그 시간은 교회 학생회 집회가 있는 시간이라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을 한 것이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깜짝 놀란다.
친구녀석이 아는 사람이냐? 관심을 드리댄다.
영영이는 무척 예뻤다.
사복을 입은 모습을 처음 보았고 교회 이외의 곳에서 만나 신기하기 까지 했다.
영영이는 자기 줄 사이에 끼라며 틈을 벌려 주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산울림에 몰두한다.
기도하는 예쁘고 거룩했던 마리아는 10년 후에 등장한 마돈나의 현신이 되어 옆자리에서 발광을 한다.
목이 쉬어라 소리 지르고 땀범벅이 되도록 흔들어 되고 공연을 마친다.
영영이는 조용히 말을 건낸다.
해영아~~ 우리 오늘꺼 비밀이다....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 했다.
다음 날 주일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니 영영이는 새초롬하게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뜻 있는 미소를
나에게 던져 주었다.
에필로그:
영영이는 지금도 배 고프거나 심심하면 전화를 해된다.
배고프다....밥 사주라.
그리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세상 사는 이야기를 수다 떠들어 되는 대한민국 대표 아즘마로 변신한다.
|
첫댓글 오~우 왕부럽다는....
방갑습니다~^^
산울림사랑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눈팅에서 기지개를 켜시고 함께 해요~ 좋은글 너무 잘읽었습니다~
자주 뵈어요~~
문화체육관 같은공간에 있었네여. 동시대 동지감으로 잘 보았습니다.^^&
저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도 있다보니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그 시기에는 낙산 밑 숭인동에 살고 있었네요^^
반갑습니다^^~~
저도 정능 꼭대기에 있던 대일 고등학교 나왔습니다
7기 입니다
후배님 6회입니다.
이 방에 늙탱이들이 호흡한다는 것을 짐작했는데
안심입니다.
언제 나이를 이리 쳐? 드셔가지고~~
@searoad 선배님 반갑습니다
언제 오프라인에서 한번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
부러운 추억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
오늘은 1탄 이신거 맞죠?ㅋㅋ
산울림과 연관된 추억 재미있게 읽었습니다.ㅎㅎ
특히 새초롬한 영영이가 대한민국 대표 아즘마로 변신...빵 터졌어요.ㅍㅎㅎㅎ
어여쁘신 영영님께서도 산매에 가입하시면 좋겠어요.~^^
완전 궁금... 지금 영영이랑 살고계신거쥬~~???
서울 사람들은 다르네요...
부산에서의 산울림 사랑은 영화 "친구"에서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친구들을 얼마나 좋아 했던지...지금도 그때 그 친구들과 어울려다닙니다...ㅎㅎ
다들 우리들의 영영이는 팽개쳐 놓구요...ㅎㅎ
초보사랑눈팅회원입니다 외국의 락 아트락등 음악이 최고인줄알았는데 동요같은 음악만있는줄알고만 있다가 우연히 산울림 앨범듣고 작년에 너무 큰충격을받아서 뇌출열로 쓰러질뻔했습니다 현재 맹렬히 열폭중입니다
행복한 시절
오프모임에 오셔서 연장하세요
통기타 모임에서 추억 공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