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d Worker-나무로 살아간다는 사실 (Part2)
3. 그가 목수로 남는 시간, 김용회 Hi is 공예는 풍토와의 호흡이라더니, 혜곡 최순우 선생의 말은 참 맞는 말이다. 나무로 만든 차 도구를 만든다는 그를 찾아 나서는 길, 왜 하필 이 먼 하동인가 생각했더니 해답은 창밖으로 펼쳐져 있었다. 차밭. 섬진강을 따라 이쪽저쪽 길게 넓게 이어지는 밭이 있었으니 차밭이다. 차밭이 지천이니 모두가 차를 마실 것이고 차와 관련한 도구, 다구(茶具)를 만드는 사람이 있는 것은 응당한 일이다. 그런데, 김용회의 일성은 전혀 딴소리다. "호구지책이 안되니까. 그림을 그려서 산에서는 먹고살기 힘드니까 먹고살려고 했지요." 차만 마시면 화장실만 가게 되고 배만 고프다. 당연히, 든든히 먹어야 차 마실 여유도 부릴 수 있는 법이다. 차보다 밥이 먼저다. 목공이 취미일 수는 있지만, 취미목수는 없는 법이다. 3일을 일했지만 생계를 위한 목공이었다. 차 마시고 그림 그리고, 혼자 지낼 때는 살 만했는데 겁 없이 결혼을 하고 나니 둘이선 힘들었다. 그러다 주변에서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일본이나 중국에 가면 자기 나라만의 다구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없으니 한 번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김용회의 목다구의 시작은 이렇게 자연스럽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다. 그래서 흔히 쓰이는 일상다반사 혹은 항다반사(恒茶飯事)란 말은 신기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이란 뜻이다. 그리고 이 평범한 일상성이 생활예술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김용회가 만드는 목다구는 특별할 게 없다. 평범하다. 장식이나 형태가 너무 기발하거나 잔재주가 많았다면 오히려 천박해졌을 텐데 그렇지 않다. 덕분에 오랫동안 쳐다보게 만든다. 간박하고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있는 듯 없는 듯 선들이 예쁘다. 그대로 뻗었으면 무거웠을 직선이 살짝 안으로 곱아 들어가서 너무 무거운 것은 피한다. 다관 뚜껑받침의 앙증맞은 다리에서는 앳된 맵시와 함께 해학마저 엿보인다. "공예는 쓰임이 있어야 하잖아요. 차 도구도 마찬가지여서, 손대는 부분은 담백하게 다리처럼 안 보이는 부분에 공을 들이려고 노력해요." 이런 경우를 두고 최순우 선생은 '제격'이라는 말을 썼다. 선생은 제격을 생활미학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으로 꼽았다. 김용회의 다구는 다도에 제격이다. "특별히 디자인을 배운 적은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쉽게 접근했어요. 선을 살리기 위해서 고무신이나 베틀의 북, 처마선 같은 데서 디자인을 따왔습니다." 한국적인 다구를 만들기 위해 가급적 디자인은 전통적인 선을 찾는 데 주력한다. 글로 디자인을 배운 사람이 답습하게 되는 현학이 없다. 시새움이나 허세, 가식 같은 거드름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정작 이 '목다구'란 말은 그가 처음 쓴 말이란다. 찻상이나 도기로 만든 찻잔(다완) 같은 것은 남아 있지만 나무로 만든 다구는 찾아보기 어렵게 맥이 끊긴 상태였던 터라 모든 것을 새로 만들었다. "차 문화는 시대에 따라 바뀝니다. 옛날에는 차를 마시지 않았으니 다구들이 필요가 없었지요. 그러니 전통을 계승한 형태라고 얘기하긴 어려워요. 다만, 문화의 변화 가운데서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작업 과정은 비교적 단출하다. 보통의 가구들과 달리 짜임이 복잡하게 들어가거나 하지 않는다. 크기도 대부분 작다. 물론 작다고 시간이 덜 드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을 결정하면 모양대로 자르고 끌로 다듬고 사포질을 한다. 목공과 관련한 어떤 정규 과정도 거치지 않은 그가 작업하는 방식은 사뭇 거칠고 가끔은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목재가 갈라지는 부분에 더 이상 갈라지지 말라고 덧대주는 나비장이음 같은 걸 들 수 있는데요. 수십 번 실패하다가 제 방식을 찾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누군가 옆에서 한 번 가르쳐줬으면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게 스스로 깨쳤으니 오히려 제 것이 된 것이겠죠." 한편으론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어떤 나무든 작업하는 데 선입견이 없는 편이다. 다관받침의 다리를 만들 때도 다리를 따로 만들어서 끼운다던가 하지 않고 전체 덩어리에서 바닥을 옴폭 파 들어가는 식이다. 끌 작업을 할지 사포질을 할지 미리 결정하지는 않고 재료를 보고 즉흥적으로 판단하는 편이다. 나무를 재료로 다루는 목수적 직관은 이런 때 발휘된다. 특별한 디자인 없이 단지 목재의 쓰임만을 생각해서 만들게 되는 물건을 결정하기도 한다. 바로, 고재로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고재란 말 그대로, 한옥을 해체하면서 나온 오래된 목재를 말하지만 크고 제대로 된 덩어리가 아니라도 오래된 나무들은 모두 사용한다. 목다듬이, 디딜방아, 절의 기둥이나 부엌문짝 등을 모아 목재가 가지고 있는 흔적과 시간들을 그대로 사용한다. 심지어 소 여물통으로 쓰이던 나무까지 가져다 쓴다. 남에게서 주목받지 못한 나무들이 자신을 만나서 목리를 드러낼 때의 성취감을 즐긴다. "나무가 가진 질감과 목리를 즐기고자 하는 것이지요. 인위적인 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도시의 아파트 등에서는 틀어지거나 터지는 경우가 있는데 고재들은 잘 버텨줘서 그 후론 고재만을 고집하고 있어요." 고재 중에서는 소나무가 가장 흔하다. 하지만 금강송이나 폭이 두 자가 넘는 소나무는 귀하다. 새로 제재한 소나무로 다구를 만들면 참 멋없지만 오래 묵은 소나무로 만들어진 다구는 또 그것만큼 멋진 게 없으니 의아한 일이다. 좋은 목재가 나왔다는 얘기가 나오면 예전에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제주에 좋은 나무들이 있다는 얘길 듣고 일부러 다녀온 적도 있는걸요. 이제는 목재상들이 제가 쓰는 나무를 알고 있어서 적당히 구해주니 편해졌어요." 여전히 박달, 대추, 느티나무처럼 무겁고 조직이 치밀한 나무들은 구하기 쉽지 않다. 목재를 힘들게 구해 오면 쳐다만 봐도 배가 불러서 작업은 놀멘놀멘 할 때도 많다. 낮은 산 속에 옴팍하니 들어앉은 동네 분위기도 한몫한다. 그러다 보니, 동네 노는 목수 가만두지 않고 시골 어르신들이 이것저것 들고 작업실로 찾아온다. 고쳐달라는 얘기다. 정작 목수로서 스스로를 자각하는 때는 이렇게 가욋일을 하는 때다.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시골에선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요. 오히려 이런 걸로 벌이가 되나 하고 걱정하시는 어르신들에게는 그런 일들을 해드리면서 목수로서 뿌듯함을 느끼지요." 목다구를 시작하여 벌써 10년을 넘겼다. 해마다 전시를 통해 새로운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처음부터 전시를 할 생각은 없었다. 다구를 만들어 판로를 찾았지만 수작업으로 인한 높은 가격 때문에 팔리지는 않고, 정작 디자인을 도용한 제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카피를 막을 순 없다지만 누가 처음 이것들을 만들었는지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생각은 유효했고 이제 목다구를 말할 때 사람들은 김용회를 가장 먼저 이야기한다. 그의 작업 대부분은 여전히 다구를 만드는 것이지만 더 큰 가구, 더 복잡한 결구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그에게도 있다. 하지만 정작 나무로 만든 다완에는 욕심이 없다. "찻잔에는 도기가 가장 어울리는데 나무로 억지를 쓰면서까지 그런 쓰임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의문을 갖는 동안 그는 여전히 목수로 남을 것이다. 4. 목수라고 불러도 괜찮을 법한, 권재민 Hi is "맨 처음에는 이렇게 체인톱을 사용합니다." 체인톱을 든 작가는 톱날만큼이나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지만 또 덩치만큼이나 사납거나 거칠지는 않았다. 전기톱을 들었다는 이유로 호러영화를 연상할 필요는 없다. 작가 권재민을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준 그로우업 시리즈(Grow up Series)는 사진만으로도 그 매끈함이 느껴질 정도로 회화적이면서 유기적인 곡선을 뽐낸다. 그런데, 이렇게 부드럽고 날렵한 곡선을 만드는 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그로우업 시리즈는 일단 목재의 형태를 예상해 가면서 정교하게 붙여요. 붙인 다음 체인톱으로 러프하게 깎고 그다음에는 끌이나 그라인더로 깎지요. 마지막에는 대패 같은 수공구로 마무리하고요. 작업으로 본다면 크랙볼(Crack Ball)이나 최근작인 테이블 시리즈보다는 훨씬 가공이 많아요. 한 번 작업에 실수가 있으면 전체를 다시 해야 하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오래 걸렸다. 그로우업 시리즈의 원형이 되는 작품은 방 안에 앉아서 두 달 동안 조각도 하나만 가지고 깎아서 완성했다. 무수한 정념의 칼질이 해낸 근성의 승리였다. 어떤 일을 계속 되풀이하더라도 그 작업이 예측대로 흘러갈 때는 일하는 사람을 고무하는 작용을 한다. 똑같이 반복적인 작업이라도 그 내용이 새로워지고 변형이 일어나며 향상된다. 반복을 거듭하는 그 경험에서 작업자는 정서적 보람을 얻게 되는데, 바로 리듬을 얻기 때문이다. 지루한 작업에서 성실하게 리듬을 얻고 그것을 통해 성취하는 것은 목수의 천성이다. 목수가 될 줄은 몰랐다. 집에서도 등록금 내고 공부시켜놨더니 겨우 목수가 된 거냐고 혀를 차셨다. 방문 손잡이 고치라고도 시키신다. 그것은 목수의 태생이자 운명이다. 집짓는 목수가 있고 가구 만드는 목수가 있다지만 사람들은 매한가지라고 여긴다. 때로 목수는 만능으로 오해받는다. "원래는 서양학과를 졸업했어요. 그런데, 순수회화의 한계성을 느끼고 저한테는 안 맞는다는 걸 알았어요. 다시 목조형가구학과 1학년으로 들어갔지요. 커리큘럼에 '아트 퍼니처'란 과목이 있었어요.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이 '디자인 아트'였기 때문에 관계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상관없더군요." 권재민이 작업해온 '메모리 트레이스(Memory Trace)'라는 주제는 사물이 갖는 상징에 관한 작업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가면 마주했던 어두운 색의 가구와 노란색 등이라는 상징적 기억을 전혀 새로운 형태의 가구로 표현해보고자 한 것이다. "메모리 트레이스란,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미화되거나 왜곡되면서 유기적 형태로 남게 되는 것을 말하는 정신분석학 용어입니다." 토머스 홉스는 우리가 상상한다는 것은 감각을 통해 이미 경험했던 일을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는 '상상은 점점 흐릿해 가는 감각'이라고 보았는데,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 대상이 사라진 뒤에도 그 기억은 남게 된다는 것이다. 권재민은 흐릿해져 가는 유년기의 감각을 상상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한 셈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구와 조명이 하나로 합쳐지는 상상을 이뤄냈다. 그로우업 시리즈는 창의적인 데포르메를 이뤄낸 정세하고 알뜰한 솜씨가 돋보인다. 외양은 호들갑스럽지 않으면서 안온한 모양을 취하고 있다. 가구인데도 조형적이면서도 공예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그 시대 풍토에 발 딛고 서야 하는 것이 공예의 천명이라면 무리한 요구일까. "저 역시 공예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디자인이란 학문이 외국에서 들어오면서 공예가 지나치게 '전통적인 것'으로 좁게 한정 지어져버린 게 아닌가 하고 생각돼요. 1970년대에 태어나서 88올림픽을 겪고 구도심이 갑자기 고층빌딩으로 바뀌는 시기에 사춘기를 보내고 자연보다 콘크리트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저에게는 그런 것들이 오히려 저의 풍토이고 저만의 한국적 정서인 셈이지요." 흔히 한국적 정서로 그려지는 전통과는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그의 착안들에는 여전히 동양적 정서가 묻어난다. "그로우업 시리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재료에 대한 생각, 즉 가구를 만드는 재료인 나무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 작업이 재료 정복적인 형태의 작업이었다는 자각이지요." 자연을 닮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작업이 오히려 나무라는 자연적 소재를 억압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목이다. 나무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서 나무를 제어하고 통제해야 하는 목수에게는 어쩌면 불필요하거나 해서는 안될 생각인 셈이다. 하지만, 권재민은 이것 역시 나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나무에 가져야 할 예의 혹은 태도라고 본다. 나무를 나무 본연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나무로 작업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의 관점에서 불요하다고 버려지거나 폐기되는 나무를 그 모습대로 살려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크랙볼 조명의 탄생이다. 재료에 대한 정복과 제압이 아닌 순응과 화해의 사고는 해외에서 오히려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다. "썩거나 제재소에서 버린 나무를 가지고 작업을 하기로 했지요. 자연적으로 터지고 갈라지는 것을 살려서 자연적인 성질을 반영한, 그래서 오히려 재료의 물성을 드러내보자고요." 버려진 느릅나무의 옹이와 갈라짐을 살려서 램프 셰이드를 만들었다. 나무의 겉과 속, 변심재의 색깔 차이가 심한 것을 그 나무의 성격으로 보고 그것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작업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잘 차린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것은 아니다. 그의 작업 성과들은 부상의 보상이기도 하다. 손가락이 끊어져서 접합수술을 받기도 했고 엄지손가락은 피부를 이식받기도 했다.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실수들이 반드시 나오게 되는 작업이에요. 보통은 다치게 되면 작업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 경우엔 오히려 그때부터 기계를 더 제대로 알고 안전한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기계를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기계의 잠재력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한계다. 목공은 정교하고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다. 사람이 서두른다고 기계가 관용을 베풀지는 않는다. 학교에서 정규 과정을 거쳤지만 목공기술에 대한 것은 대부분 스스로 익혔다. 형태를 먼저 생각하고 구현을 위한 방법의 하나로 찾아낸 가공법이었다.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부분들이고 기본적인 우드워킹, 전형적인 가구 작업과는 달랐던 탓이다. "작업 과정은 무조건 형태를 먼저 생각하고 그 형태의 구현을 위한 가공법을 찾는 순서예요. 가공법을 먼저 생각하면 형태적인 제약이 많아지지요. 내가 모를 뿐 방법은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로우업 시리즈와 크랙볼 작업을 통해 권재민은 나무가 가진 물성에 대해 더 깊이 주목하게 됐다. "자연이 준 돌이나 철 같은 다른 재료와 달리 나무는 내구성이 유한한 재료인 셈이에요. 사람보다는 오래간다지만 감성적으로 바라봤을 때 유한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금속과 돌 같은 다른 재료에도 관심이 가지만 그에게 여전히 목재가 가장 흥미로운 이유다. 수축과 팽창, 양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재료인 탓에 작품을 만드는 중간에도 변하고 만다. 그 변덕을 미리 예측하고 계산에 넣는 것이 녹록치 않은 일이지만 그 점이 되레 나무를 다루는 재미다. "방치만 해도 그 다음 날에도 치수가 변해버리니 현대에서 이만큼 불안정한 재료가 없지요. 이런 유동성이 오히려 유기적인 존재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더불어 나무의 형태가 가진 속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작품에 적용한다. 이는 가구가 가진 사물의 원형에 대한 고민과도 맥을 같이한다. "소크라테스의 일화 중에 도공 무세와의 대화가 나옵니다. 진정한 사물의 원형은 끊임없이 바뀌어가고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해요. 그 원형에 잘 맞았을 때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거죠." 가구보다는 조형이나 공예 느낌이 훨씬 강한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도 특별히 목수나 가구 디자이너 같은 이름을 원하지는 않는다. "딱히 어떻게 불려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이번에는 가구 형태에서 좀더 조형적으로 발전한 오브제 같은 그로우업 시리즈를 구상 중인 것과 목재에 대해서 좀더 탐구해봐야겠다는 생각만 하지요." 유럽에서는 인디펜던트 디자이너나 디자인 메이커라는 새로운 명칭이 생겼다지만 이 역시 탐탁지는 않다. 한동안은 그를 나무의 원형을 찾는 목수 정도로 불러도 괜찮을 듯하다. 권재민이 강의를 하고 있는 대학의 목공작업실. 방학을 맞아 소리를 멈춘 기계들 사이에서 원형을 찾아낸 그의 작품들이 조용히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5. 목수가 말하지 않는 것들, 서기열 Hi is 나이 쉰일곱이면 머리에는 하얀 것이 내려앉고 그 하얀 것들로부터는 경험에서 오는 노련, 노쇠에서 오는 지혜, 숙련에서 오는 철학 같은 것들이 뿜어져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오산이다. 장인에게 그런 것 따위는 없다. 목수는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직업이다. 손가락을 담보로 밥 한 그릇과 바꾸는 삶이다. 예전부터 그랬던 직업이다. 두잇유어셀프(Do It Yourself) 해가며 앞치마 두르고 서부시대의 건맨처럼 폼 나게 전동드릴을 옆구리에 꿰찬 풍경은 없다. 잠시만 한눈을 팔고 긴장을 늦춰도 상처 입기 쉽다. 날물이 돌아가는 굉음은 일순 사람을 압도한다. 흡사 전쟁터다. 철공소에 '일 배우러' 들어간 열일곱 청춘은 하루 만에 뛰쳐나온다. 이유 없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 길로 찾아간 목조각 공방에서는 6년을 견딘다. 이번에는 종목을 바꾼다. 목조각으로는 승부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33년을 전쟁터에서 견뎌냈다. 청년은 아버지가 되고, 목수는 작가가 됐다. "전시 준비하는 4개월간 돈벌이는 일체 안 했어요. 주문이 들어와도 전부 거절하고 오로지 전시 준비만 했지요." 천외목(天外木)이라는 공간에서 39년째 가구를 만드는 서기열은 아트신에서는 첫 개인전을 연 지 불과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신참 작가다. 오랫동안 안성에서 자신만의 가구를 만들어오던 그는 얼마 전 디자인 갤러리 바다디자인아틀리에와의 인연으로 새로운 영역에 첫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동안 받아온 인정과는 다른 종류의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 서기열의 가구는 그가 평생 제작해온 가구들에 기초한 대중 감수성을 지녔다. 세라믹이라는 이질적인 재료와 만나는 디자인으로 꾸려진 그의 이번 가구들은 아프리카산 아카시아나무와 북미산 호두나무를 재료로 단단한 목질을 드러내는 선을 보여준다. 여기에 디자인적 매력과 기술적 자부심을 함께 드러내고 빈틈없는 마무리는 시각적인 시원함과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사방탁자는 치밀한 짜임과 이음이 건실한 구조의 전통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그가 가진 쾌적한 조형미를 감지케 한다. "도면을 따로 그리지 않아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오랫동안 몸에 익은 감각으로 나무를 깎고 머릿속에 그린 그림을 따라서 만들지요. 그렇게 처음 만든 제품이 견본 역할을 해서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식이에요." 목수의 몸은 자신만의 방식에 최적화돼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감 넘치는 선과 균제미는 그의 시간들이 결코 허투루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자신감은 불필요하게 내면화된 자부심의 종류가 아니다. 미묘하고 미세한 불편함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순박하게 드러내는 자신감이다. 목수가 자신이 만든 가구들을 얼마나 대견스러워하는지 느껴진다. 이런 통념을 벗어난 자신감은 바로 기술에서 나온다. "도제방식으로 가르쳐주는데 곁눈질로 배운 지 5개월 만에 깨우쳤지요. 내 팀을 꾸려서 하도급을 받기 시작한 나이가 스물네 살 때였고요. 당시에 나처럼 팀을 꾸린 사람들 나이가 40~50대였으니 정말 빨랐던 셈이지요." 도제식이라지만 정작 공구 사용법도 가르쳐주지 않는 스승, 대팻날을 잘 갈면 일부러 날을 망가뜨려버리곤 하는 선배들 사이에서 익혔다. 장갑 한 켤레 없이 손이 닳도록 무늬목을 바르는 일부터 배웠지만, 기본부터 익혔다는 사실은 목수의 자부심으로 내재화됐다. 명민함과 눈썰미를 타고났어도 기술은 어디까지나 시간에 비례한다. 눈으로 이해하는 것과 손으로 다루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그는 이 시간의 간극을 매일 밤 퇴근 후에 새벽 2~3시까지 낮에 어깨너머로 본 것을 재현해보는 과정을 통해 채웠다. 타고난 의지와 성실이다. 우리의 손은 반복 행위를 통해 훈련된다. 이 반복은 리듬을 가지며 예상하는 기능을 숙달하기 때문에 지루해지는 게 아니라 예민하게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 여기에 일종의 기술적 솜씨가 생기는데 그것이 바로 장인의 솜씨인 것이다. 그는 이런 자신을 '노력파'라고 평하는데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정말 노력했어요. 지금도 그냥 허투루 넘어가는 일은 없어요. 보통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머릿속에서도 일이 끝나지만 저는 잠들기 전까지 일에 집중해 있어요. 의자를 하나 만든다면 머릿속에서 모든 과정이 정확히 그려지지 않으면 일을 시작하지 않아요." 자신만의 목재 다루는 방법을 찾아낸 것도 이런 과정 덕분이다. 요즘 그가 특히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목재의 건조다. 인공건조와 긴 시간을 들인 자연건조를 거친 목재를 사용함에도 여전히 가구의 변형을 한 번씩 겪으면서 직접 목재 건조방법을 찾았다. 냉동 창고 안에서 목재를 보름 정도 찌는 방식을 통해 이제는 안정화된 상태로 가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즐겨 작업하는 수종은 아카시아나무다. 하지만 정작 작업하기 편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억센 아카시아 나무를 잘 다듬어놓았을 때의 성취감을 즐긴다. 테이블톱 한 대만을 놓고, 그것도 7~8팀이 돌아가며 사용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을 거쳐 이제는 원하는 가구를 충실히 구현해낼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환경의 변화와 함께 그는 과거부터 거쳐온 제작 과정에도 변화를 도모한다. 전통적인 요소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요소들은 빼려고 한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구족반(소반 중에서도 소반의 다리가 개(犬) 다리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의 원형 천판을 물레갈이틀(선반)로 회전시켜 깎아 만들었다면 이제는 천판과 천판 주위의 변죽을 따로 만들어 끼우는 방식을 채택하는 식이다. 재료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는 관습적 사용에 의문을 갖는다. "느티나무가 있다면 다들 그 나무를 온전히 살리려고 하는데 저는 그걸 과감히 쪼갠답니다. 큰 판을 쓰려고 하기보다는 작게 면을 분할하는 디자인을 생각해내는 식이지요. 그게 지금 시대에 어울린다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여전히 디자인은 어렵다. 몸에 체득한 것만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모자라다. 서기열은 이 역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한다. 스스로에게서 우러나지 않으면 따라 해본다. 밭에 있는 채소를 그리고 과거 옛사람들이 만들었던 것들을 따라서 만들어본다. 이번처럼 다른 영역의 사람들을 만나면 또 그들에게서 배우는 식이다. 바다디자인아틀리에와의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아트 퍼니처로서의 자신의 길에 대해서 세련되게 설명하지 못하지만 '계속 만들어져온 가구가 아닌 새로운 가구, 나에게 맞는 디자인'이라는 짧은 표현은 그가 앞으로 어떤 것들을 펼쳐내기 원하는지 알려준다. 39년 차 목수 서기열이 손가락을 잃은 것도 아이러니하게도 목수 생활 30년을 지나서였다. 잘 들지 않는 톱날을 타고 넘어간 목재와 함께 손가락을 잃었다. 병문안을 온 지인들과 함께 껄껄대며 웃었다. 경력 30년 목수가 날물 앞에서 마음을 놓았다는 사실에는 어떤 변명거리도 없다. 이제 그는 일을 가르치는 직원들에게 조금 다치는 것에 오히려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차라리 잘됐다고 가르친다. 처음에 살짝 베이고 까지는 것이 나중에 잘리고 피 흘리는 것보다는 낫다. 날물 앞에서 사람은 연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런 일이 목수 서기열을 주눅 들게 하지는 못한다. 목수에게 상처는 훈장이다. "항상 기계를 쓰면서도 내가 '도망갈 생각'을 하면서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뿐이에요." 다치고도 기계가 두렵다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목수로 사는 것은 행복하다. 날마다 재밌다. 아들에게도 '아버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성취감이 있다. 하나 만들고 나면 자화자찬, 아내에게 자랑한다. "내 물건이 내가 마음에 들어야 어디다 내놔도 좋지 않겠어요?" 그는 자신이, 물건이 마음에 꼭 든다. 쉰일곱의 목수 서기열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흰 머리도 없다. 나이가 보여주는 노련미나 연륜, 무게 잡는 철학의 언어 같은 것도 없다. 이런 목수에게, 장인에게 정연한 언어는 필요치 않을지 모른다. 단지, 물건으로 결과로 말하면 그만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