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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라파타르, 생애의 고지(高地)에 서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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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AL HIMALAYA ; Sagramatha National Park
2017—[Khumbu Himal] EVEREST.B.C. TREKKING — (11)
▶ 4월 7일 (금요일) * [EBC Trekking 제12일]
<고락셉>(5,140m)→ <투클라>→ <페리체>(4,240m)→ <팡보체>(3,930m)
* [하산의 트레킹 ; 고락셉에서 팡보체까지] — 하늘이 열어주는 맑은 날씨
오늘은 히말라야 트레킹 12일째 되는 날이다. 오늘 고락셉(Gorak Shep, 5,140m)을 기점으로 하여 세상으로 발길을 돌리는 첫날이다. 이제 홀가분하게 빈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니 기분이 좋다.
아, 그런데 밖에 나와 보니 신비로울 정도로 하늘이 맑고 깨끗하다. 무한 우주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단 한 점의 티끌도 허용하지 않은 순도 100%의 청람(靑藍)빛 하늘이다. 그야말로 청정무구(淸淨無垢) 바로 그것이었다. 조용히 올려다보니 영혼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다. 팽팽하게 긴장된 파란 하늘을 보니 온몸에 차가운 전율(戰慄)을 느낀다. 문득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가 생각 났다. 질곡(桎梏)의 시대에 한 송이 꽃으로 떨어진 시인 윤동주(尹東柱). 저 하늘은 순결한 시인 윤동주가 아프게 기도했던 그 절대선(絶對善)의 세계가 아닌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저 푸른 빛이 바로 절대(絶對)의 하늘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해발 5,000미터의 히말라야 고지(高地)에서 만나는 맑은 하늘빛, 저것은 고뇌(苦惱)에 찬 시인의, 깨끗한 영혼의 자리일 것이다. 시인의 정결한 영혼(靈魂)이 스스로 다짐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렇게 티 없이 맑은 기도로 승화된 하늘이다.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과 같은 아주 사소한 양심의 떨림도 허용하지 않았던 청렬(淸冽)한 영혼의 소유자였고 따뜻하고 깊은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간 청년이었다. 비록 ‘별’[순수한 사랑]이 ‘바람’[현실의 고난]에 시달림을 당할지라도 결단코 좌절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저 설산고봉 같은 준열(峻烈)한 자기 다짐을 하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그렇게 우리의 목숨을 담보하는 천명(天命)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숨이 막히는 고지, 순백(純白)의 설산고봉들이 도도하게 솟아있는, 청정(淸淨) 하늘 앞에서 마음의 옷깃을 여민다.
문득 미세먼지를 걱정하고 사는 우리 도시(都市)의 하늘을 생각했다. 문명(文明)이라는 화려한 욕망의 광채 속에서 우리의 하늘은 제 빛깔을 잃고 말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그 미세(微細) 먼지로 가려진 막막한 시공(視空)이 되어버렸다. 아, 그렇지만 그곳은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하늘이다.
일찍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설파한 노자(老子)가 ‘화광동진(和光同塵)’을 말했다. …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이목구비를 막고 그 문을 닫아서,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을 풀어주며 그 빛을 부드럽게 하고 그 티끌과 하나가 된다. 그것을 현동(玄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친해질 수도 없고, 소원해지지도 않는다. 이롭게 하지도 않으며, 해롭게도 하지 못한다. 귀하게도 할 수 없으며,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 귀(貴)한 것이 된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노자(老子)』56장
‘천하에 귀한 것’은 결국 인위적(人爲的)으로 어떻게 하지 못하는 순수자연의 세계를 말한 것이지만, 무한하고 거대한 대자연(大自然)은 세상의 티끌까지도 ‘자연스럽게’ 포용한다. 그것이 바로 ‘화광동진(和光同塵)’이다. 이 말은 원문 속의 ‘和其光 同其塵’을 넉 자 말로 표현한 것인데, 화(和)는 ‘온화하게 조화한다’는 뜻이고 광(光)은 ‘빛나는 것’이요, 동(同)은 ‘함께 하는 것’이며 진(塵)은 ‘티끌’인데 ‘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을 비유한 말이다. 따라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와 덕을 드러내지 않고 주변과 맞추며 흔연히 세속과 어울린다’는 뜻이다. 이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시점에서 마음속에 새삼 떠오른 구절이었다. 오래 전 조용히 귀향하여 자연(自然)의 삶을 살고 있는 저 문경 반곡의 만촌(晩村) 남휘덕 형 댁의 거실에 걸린 액자가 ‘和光同塵’이었다.
이제 나는 그 문명의 도시를 향하여 발길을 내딛는다. 연일 고행으로 인해 몸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어제는 이번 트레킹의 정점인 칼라파타르(Kala Patthar, 5,545m)를 등정(登頂)하였고, 이제 고도(高度)를 낮추어 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숙제를 푼 아이들의 홀가분한 마음이 이럴 것이다. 이렇게 청명(淸明)한 날을 맞는 것은 '하늘의 도움[天佑神助]'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히말라야에서 악천후(惡天候)를 만나는 것은 다반사인데 이렇게 연일 날씨가 좋으니 우리 대원들이 참으로 많은 축복을 받은 것이다. 롯지의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트레킹 준비를 완료했다.
오늘의 일정(日程)은 여기 고락셉(Gorak Shep, 5,140m)을 출발하여 로부체(Lobuche)를 지나 투클라(4,620m)에 이르고, 그곳에서 계곡 분지의 길을 따라 가면서 페리체(Periche, 4,240m)를 경유하고, 소마레를 거쳐 팡보체(Pangboche, 3,930m)까지 가는 여정이다. 상당히 고도를 낮추는 여정(旅程)이기도 하고 또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야 한다. 특별한 것은 올라올 때 우리가 거치지 않은 페리체(Periche)를 경유하는 것이다. 올라올 때는 페리체가 아닌, 딩보체(4,410)m에서 하루를 유숙하면서 고소적응을 했었다. 딩보체와 페리체는 높은 산등성이를 사이에 두고 있다. 동쪽의 딩보체는 임자체 계곡의 분지에 있고, 서쪽의 페리체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분지에 있다. 두 계곡은 페리체 패스 아래에서 합류하여 깊은 계곡의 강(江)을 이루며, 남쪽으로 내려간다. 쿰부히말(Khumbu Himal)의 들머리인 루클라(Lhukla)에서 고지 고락셉(Gorak Shep)에 이르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 트렉(Trek)'은 바로 이 계곡의 길을 따라 형성된 것이다.
* [고락셉에서의 출행] — 옥시겐을 흡입하며 걷는 이 대장
오전 8시, 고락셉(Gorak Shep, 5,140m)의 ‘히말라야 롯지’ 앞에 대원들이 집결했다. 대원들의 상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상배 대장이 산소통을 짊어지고 있었고, 그 산소 마스크 착용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는 보지 못했는데 로부체(Lobuche, 4,910m)에서 이곳까지 올라오면서 이 산소(Oxygen)에 의지하여 올라온 모양이었다. 일단 오늘 로부체까지는 산소를 공급받으며 내려갈 예정이라고 했다. 말은 안했지만 상당히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걱정도 되고 마음이 안타까웠다. 고소증(高所症)은 고도를 낮추면 나아지는 병(病)이므로 오늘 부지런히 아래로 내려가면 더 좋아질 것이다. 모든 대원들이 좌우로 도열하여 ‘고락셉-칼라파타르 등정’의 인증샷을 찍었다. 도도하게 솟은 거봉(巨峰) 푸모리(7,165m)의 설산(雪山)과 그 품안에 안겨 있는 칼라파타르(5,550m)를 배경으로 한 장면이었다. 대원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기념비적인 사진이다. 가이드 빠샹이 찍었다.
고락셉에서 출행에 앞서 도열한 대원들
산소(酸素) 마스크를 장착한 이 대장 / 그 옆에 마일러(좌)와 카일러(우)가 호위하고 있다
이제 쿰부히말 트레킹의 정점(頂點)에서 다시 세상으로 회귀(回歸)하는 시점이다. 히말라야의 정상 에베레스트를 바라보며, 지나간 시간의 삶을 아프게 돌아보고, 이제 다시 살아야 할 세상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지향하고 살아가는가’, ‘나에게 주어진 이 생애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일상에서도 가끔 스스로 던지는 자문(自問)이지만, 순정(純情)한 히말라야의 고지에서 새삼 이런 화두를 떠올리는 것은, 히말라야 칼라파타르가 살아온 날과 살아가야 할 날의 한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내 일찍이 생명(生命)의 시간이 이렇게 절절하게 생각된 적이 없었다. 내 깊고 뜨거운 사유(思惟)는 차갑게 솟아있는 설산고봉 앞에서 아프고 준열(峻烈)했다. 백양로의 은사 정현종(鄭玄宗) 시인이 노래했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 [다시 세상으로 가는 길 ; 고락셉에서 출행] — 험난한 너덜지대를 다시 지나며
오전 8시 20분, 고락셉(Gorak Shep, 5,140m)에서 트레킹에 돌입했다. 처음부터 급경사의 모래 사면(斜面)을 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가파른 산길은 파란 하늘 속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오늘 트레킹의 첫 구간은 고락셉(Gorak Shep)에서 로부체(Lobuche)까지인데, 어제 올라올 때의 과정을 상기하면, 우리의 트레킹 여정 중 가장 험난한 코스이다. 마구잡이 돌바위 너덜지대가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던 그 구간이었다. 이제는 하산 길, 마음이 안정되어서인가. 간밤의 휴식이 주효했는가. 모르고 걸을 때의 막막함과 알고 걸을 때의 익숙함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그렇게 험악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실 히말라야 해발 4,000~5,000미터 고지대는 수목한계선을 넘어선 지역이므로, 나무 한 그루 없이 자갈과 모래와 바위가 뒤엉겨 있는 황량한 땅이다. 더구나 빙하지역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
푸모리(Pumo Ri) 거봉
하늘로 올라가는 길
* [험난한 산길에서의 삶] — 아픈 만큼 더 소중한 인생, 다시 돌아보는 풍경
가파르게 경사진 돌 바윗길을 치고 오르고 또 내리는 길, 한 떼의 야크 캬라반이 무거운 짐을 싣고 높은 언덕을 올라가고 있고, 일군의 현지인 포터들이 엄청난 짐을 지고 산길을 오른다. 내용물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의 몸짓보다 훨씬 큰 물건을 등에 지고 산을 오르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의 고통은 그냥 무색(無色)해지고 말았다. 척박한 고산의 험로(險路)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곳 사람들의 생명력을 가히 경이로운 것이다. 척박하지만 거기에도 인간의 뜨거운 숨결이 있어 히말라야는 생명(生命)의 땅이 되고, 그래서 거칠지만 정겹고 애틋한 삶이 깃들어있다. 에베레스트를 찾는 산악인이나 트레커들은 모두 이 길을 통해 몸으로 자신의 목숨 가치를 아프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산(山)에다 목숨까지 걸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무지막지한 돌밭의 너덜지대
험악한 빙하의 골짜기를 지나가는 야크의 행렬
아, 사람이 지고가는 인생의 무게는 과연 얼마인가
사방의 풍경이 보이는 산등성에 올라섰다. 푸모리와 칼라파타르(Kala Patthar) 암봉과 돌산이 세 층위를 이루는 풍경, 눕체의 설봉과 그 아래 깊게 파인 쿰부빙하(Kumbu Glacier)의 계곡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부터는 푸모리(Pumo Ri)와 눕체(Nuptse)의 설산거봉을 등에 지고 내려가는 것이다. 산을 등에 지고 내려가는 하산 길, 조용히 참된 삶의 도리를 묵상하며 아주 천천히 걸었다.
푸모리-칼라파타르-그리고 자갈과 모래의 사면(斜面)지대
쿰부체-창체-에베레스트 오른쪽 어깨 / 쿰부빙하 상류, 하얀 눈밭골짜기 오른쪽 위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있다
어제 가파르게 올라왔던 로부체 패스(Lobuche Pass, 5,110m) 위에 도착했다. 고갯마루에서 조망한다. 남쪽으로 펼쳐진 계곡의 넓은 분지가 시야를 연다. 파란 하늘에 솟아오는 순백의 거봉 타부체 피크를 위시하여 담세르쿠-강데카 설봉이 장엄한 파노라마가 가슴에 와 안긴다.
로부체 패스에서 돌아 본 푸모리 - 렝트렌 설산의 연봉 / 저 너머가 바로 티벳이다
로부체 패스(Lobuche Pass, 5,110m)
로부체패스에 남쪽으로 바라본 전경 / 강테가-탐세르쿠 연봉과 다부체피크-촐라체의 설봉
* [로부체 패스를 지나 로부체까지] —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면 걷는 길
오전 8시 45분, 해발 5,110m 로부체 패스에서 내려가 분지(盆地)의 평원 길로 내려섰다. 이제 험악한 돌길은 끝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로부체 롯지까지는 아주 평탄하게 이어지는 길이다. 김준섭, 박미순, 신은영 대원과 필자가 선두에서 걸었다. 김장재, 기원섭, 이진애 등 나머지 대원들은 뒤에서 오고 있다. 그리고 후미에 이상배 대장은 마일러와 카일러 형제가 배행(陪行)하여 올 것이다. 오늘도 날씨가 아주 좋다. 밝은 햇살이 내리는 아늑한 평지의 길이다. 바람결은 선선하여 아주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
로부체패스를 내려와 계곡분지의 평원에서
거대한 산이 지켜보고 있었다
다시 거대한 산을 안고 걷다
눈부신 설봉 아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잠시 망중한의 평화를 누리다
오전 10시 20분, 로부체(Lobuche, 4,910m)의 ‘에코롯지’에 도착했다. 이틀 전에 우리가 유숙한 산장(山莊)이다. 뒤에 오는 대원을 기다리며 레스토랑의 홀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면서 시원한 망고쥬스 한 잔을 마셨다. 노곤하게 늘어지는 피로감이 엄습했지만 고도(高度)를 내려서 그런지 심신은 조금 안정되었다. 산소 공급을 받으며 출발한 이 대장을 비롯한 마일러는 한참을 기다려도 도착하지 않았다. 마일러는 이곳 외국인 캠프에서 종사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이별을 고해야 한다. 이후에 이 대장은 카일러가 동행하게 될 것이다. 한참 뒤에 이진애 여사와 김장재 등 다른 대원들이 도착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환담하며 이곳 롯지에서 1시간 이상을 쉬었지만, 갈 길이 멀다. 오늘은 로부체-투클라-페리체-소마레를 경유하여 팡보체까지 가야 한다. 올라올 때의 거리를 생각하면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고도를 낮추어가며 내려가는 길이니 힘은 좀 덜 들겠지만 워낙 먼 거리를 남겨두고 있다.
내려가는 길, 잠시 들어가 휴식을 취한 로부체의 에코롯지
* [로부체 에코롯지에서 투클라 패스에 이르는 길] —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설산거봉들
오전 11시 30분, 로부체(Lobuche, 4,910m)에서 출발했다. 가이드 파샹(Pashang)을 비롯한 대원들이 줄을 이어 걸었다. 하늘이 아주 청명하고 깨끗했다. 눈부신 햇살이 따갑게 쏟아진다. 언덕 위에 머물러 있는 거대한 몸집의 야크(Yak)가 큰 눈망울로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히말라야 야크의 언어(言語)는 ‘침묵(沈黙)’이다. 한 번도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갈 때도 그렇지만 풀을 뜯다가도 늘 고요하게 서 있다. 짐을 싣고 갈 때에는 워낭의 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크고 맑은 눈망울이 무언(無言)의 말을 할 뿐이다. 야크는 히말라야의 성자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황량한 계곡 너머, 청람 빛 하늘 아래 티보체피크와 아라캄체의 백색 거봉과 그 탐세르쿠-캉데카 설봉이 장엄(莊嚴)하다. 동쪽으로 돌밭 언덕 위로 아마다블람의 삼각설봉이 하늘을 찌른다. 발걸음은 거칠고 팍팍한 땅을 걷고 있지만 가슴은 순결한 백색의 설봉(雪峰)을 안고 가는 것이다. 평탄한 길을 꾸준히 걸어 나갔다. 걷다가 문득 돌아보니 아직도 도도한 위용으로 서 있는 푸모리(Pumo Ri, 7,165m) 설봉이 황량한 계곡 너머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므로 남쪽으로 가는 우리는 저 장엄한 푸모리를 등에 지고 걷는 셈이다.
투클라로 향하는 대원들
* [투클라 패스의 고원에서 투클라로 내려가는 길] — 타보체피크-촐라체 빙하
한참을 그렇게 내려오니 분지(盆地)의 너비가 좁아지면서 너덜지대 계곡이 나온다. 물이 흐르지 않는 돌밭을 건넜다. 완만한 산모롱이를 돌아서 나가니 두클라 패스[고개]의 평원이 시야를 활짝 열었다. 이곳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반 중 조난당한 사람들을 추모(追慕)하는 돌탑이 즐비하게 있는 곳이다. 며칠 전 올라가는 길에 한국인 조난자의 탑도 발견하고 추모한 바 있다. 젊음의 순결한 목숨을 설산(雪山)에 바친 영혼들이 머무는 곳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다시 또 명복을 빌었다.
시선을 압도하는 타부체피크
푸모리-링트렌-쿰부체를 등에 지고 걷는 팍팍한 계곡길
야크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투클라 패스(고개)(4,830m)의 고원 / 군데군데 추모탑이 있다
하얀 설봉을 배경으로 한 투클라패스(4,830m)의 오색의 룽다르
해발 4,830m 두클라 패스(Dukla Pass, 4,830m)는 주변의 설산 풍경을 조망하는 데 최적의 조망처이다. 김준섭, 김미순, 신은영, 김장재 대원 그리고 필자가 먼저 도착하여 뒤에 오는 대원을 기다리며 장엄한 쿰부히말의 산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관을 감상하며 그 풍경을 가슴에 담았다. 고갯마루에 서면 그 남쪽으로 보이는 많은 설봉들과 페리체 계곡의 전경(前景)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바로 앞 가까이에서 거대하게 솟아있는 타부체피크-촐라체에서 쏟아져 내리는 빙하(氷河)의 모습은 가히 불가역의 위용이었다. 아래로 내려다보면 바로 아래 투클라 롯지에서 페리체에 이르는, 깊고 너른 계곡이 아득하게 한 눈에 들어온다. 페리체 계곡은 좌우의 거대한 설봉 사이에 있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두꺼운 빙하로 채워진 계곡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남쪽 멀리 탐세르쿠-캉데카 연봉이 본격적인 자태를 드러내고 동남쪽에는 아마드블람(Ama Dablam, 6,856m)의 우아한 거봉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이다.
투클라패스(4,830m)에서 남쪽으로 내려다 본 전경(全景) / 왼쪽 아바드블람, 오른쪽 강테카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투클라(4,620m) 롯지 / 타부체피크에서 쏟아지는 빙하
타부체피크 빙하(氷河)의 사면(斜面)
* [투클라 롯지 점심식사] — 우리나라의 ‘辛라면’을 맛보는 행복감
오후 1시, 투클라(Thukla, 4,620m)의 ‘칼라파타르 롯지’에 도착했다. 고소의 증세는 여전했다. 김준섭, 김미순, 신은영, 김장재 대원 그리고 필자였다. 한참 뒤에 가이드 파샹이 이진애 대원을 모시고 롯지에 이르렀다. 기원섭 대원과 이상배 대장은 카일러가 배행하며 후미에서 오고 있다. 먼저 롯지에 도착한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파샹은 ‘페리체에서 점심을 하기로 되어 있다’고 했으나 모두 배가 고프고 기진한 상태라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마침 메뉴판을 보니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한국의 ‘辛라면’이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볶음밥과 신(辛)라면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그 동안 네팔식 밀빵이나 토스토로 요기(療飢)를 하다가 따끈하고 얼큰한 한국의 라면을 만났으니 여간 별미(別味)가 아니었다. 눈물이 날 만큼 감격하며 참 맛있게 먹었다. 볶음밥도 쌀이 윤기가 흐르고 맛이 있었다.
투클라(Thukla, 4,620m) 롯지에 도착하여 / 가이드 빠샹 셀파
* [페리체 마을 내려가는 길] — 계곡의 분지, 고즈넉한 평원을 따라가는
오후 2시, 투클라(Dukla, 4,620m)에서 ‘오후의 트레킹’에 돌입했다. 후미의 대원들이 도착하지 않았으나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으므로 먼저 출행하기로 한 것이다. 투클라 앞의 계곡은 참으로 험악하다. 빙하가 녹으면서 산(山)의 속살이 심하게 파인 데다 몬순기의 폭우가 내려 산곡(山谷)을 무참하게 침식하여, 그 아래 계곡은 무지막지하게 돌들이 나뒹굴고 엉겨 있었다, 좁은 수로(水路)에 빙하가 녹운 뿌연 계곡물이 세차게 흘러갔다. 작은 쇠다리를 건너 완만한 산록의 길로 접어들었다. 산모롱이를 돌아나가니 널따란 둔덕이 나왔다. 길옆 가장자리 큰 바윗돌에 하얀색 페인트로 갈림길 표시를 해놓았다. 왼쪽의 화살표에 ‘DIN’, 오른쪽 화살표에 ‘PHE’라고 씌어 있다. 바로 딩보체(DIN)와 페리체(PHE)의 갈림길이다. 딩보체로 가는 길은 3일 전 우리가 유숙했다가 올라온 고원(高原) 산록의 길이다. 우리는 페리체 방향으로 길을 잡고 계곡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참 동안 완만하게 그리고 가파르게 쏟아지는 비탈길이었다.
딩보체(DIN)와 페리체(PHE)의 갈림길에서 / 뒤의 산은 타부체피크(6,367m)
* [페리체 내려가는 길에서 다가오는 설산의 장관] — 아마다블람의 고고한 풍모
계곡(溪谷)으로 내려서니, 페리체 계곡의 분지와 그 주변이 산세가 한 눈에 들어왔다. 계곡은 오른쪽은 거대한 티보체 피크(6,367m) 산줄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가파른 사면(沙面)이요, 왼쪽은 사흘 전 우리가 지나갔던 포칼트(5,806m) 산록의 사면(斜面)이었다. 넓은 계곡의 분지(盆地), 시야가 훤하게 열린다. 그런데 정면(正面)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설봉, 파란 하늘에 솟아있는 것은 장대한 거봉 아마다블람(Ama Dablam, 6,856m)이었다.
기차게 솟아오른 아마드블람( 6,856m) 준봉 그리고 페리체로 가는 계곡의 분지
거대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 아마다블람(Ama Dablam)은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히말의 마차푸차레(Machapuchare, 6,993m)와 유럽의 중부 알프스 체르마트 지역에 솟아있는 마테호른(Matterhorn, 4,478m)과 함께 세계 3대 미봉(美峰)으로 꼽힌다. 하늘을 찌르는, 예리하고 거대한 산봉은 조각도로 깎아놓은 듯한 아름다운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삼각의 준봉(峻峰), 그 산세가 가히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주봉은 높이 6,856m이며, 그보다 낮은 봉우리는 5,563m이다. 산의 이름은 '어머니와 진주목걸이'라는 뜻이며, 진주는 만년빙(萬年氷)을 상징한다. 이 지역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첫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산이다. 1961년 마이크 길(Mike Gill)·배리 비숍(Barry Bishop)·마이크 워드(Mike Ward)·월리 로마니스(Wally Romanes) 등이 처음으로 등정(登頂)하였다. 저 아마드블람은 우리의 이상배 대장도 ‘2004년 동계 아마드블람 원정대’의 대장으로 등반한 적이 있어, 이 대장은 저 산봉을 바라볼 때마다 늘 감동과 감회에 젖기도 한다.
장대한 거봉 아마다블람(Ama Dablam, 6,856m)
* [페리체 계곡의 목가적인 풍경] — 맑고 따뜻한 날. 평원에 흐르는 평화
파란 하늘, 참으로 화창한 날씨이다. 고산 설봉 위 하얀 새털구름이 떠 있을 뿐 날씨는 아주 맑고 화사했다. 페리체(Pheriche) 마을은 계곡의 남단에 위치해 있으므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평원의 고요한 적막(寂寞)이 흐르는 길이다. 계곡의 분지는 평탄한 흙길이어서 걷기에 아주 쾌적했다. 분지의 평원에는 잔디도 있고 땅바닥에 깔린 향나무도 있었다. 대원들은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 자기 컨디션에 맞추어 걷고 있었다. 후미의 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려가는 도중, 사각으로 자연석 돌담을 쌓은 야크카르카도 있고 이른 봄 마른 풀밭에서 야크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4,000고지 히말라야의 목가적 풍경이 아주 고즈넉했다.
히말라야에도 봄이 오고 있었다 / 페리체 분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있는 야크들
페리체(Pheriche)로 가는 길, 길은 멀었다. 걸어도 걸어도 저만큼 보이는 마을은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히말라야에서는 거리를 말하지 않는다. 이정표(里程標)도 없을 뿐 아니라 있어도 시간이나 거리 표시는 없다. 해발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거리와 시간을 따져 조급하게 걸으면 고소증(高所症)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히말라야의 시간(時間)에 맡기고 오직 묵묵하게 걸을 뿐이다. 조급한 욕심은 금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체력과 몸의 리듬에 맞추어 겸허한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 자연의 조건과 자연의 시간과 하나가 되어, ‘자연의 몸’으로 걸어야 한다. 자연과의 깊은 호흡으로 걸으면 마음과 몸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뒤를 보니 우리가 지나온 투클라 어름의 산봉들이 아주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 [페리체 마을의 ‘카나실롯지’] — 팡보체-소마레에서 투클라로 가는 길목
오후 3시 36분, 페리체(Pheriche, 4,240m) 마을에 도착했다. 비교적 큰 마을이다. 이곳은 분지의 평원에서 야크(Yak)를 키우는 마을이었는데, 산악인이나 트레커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에베레스트 트렉의 요로(要路)에 위치하고 있어 롯지도 많고 병원도 있으며 우체국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길가에 연해 있는 ‘Mt, 카나실 롯지’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김준섭, 김미순, 신은영, 김장재 대원과 카일러 그리고 필자였다. 그리고 조금 뒤에 이진애 대원이 가이드 파샹과 함께 당도했다. 우리는 각자 취향에 따라 시원한 음료를 청하여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식당의 사방의 벽에는 이곳을 다녀간 전 세계의 등산객들이 남긴 깃발이나 플랜카드 등을 붙여 놓았다. 그 중에는 한글로 된 깃발, 한국 사람들이 남겨 놓은 글도 있었다. 우리도 ‘칼라파타르 등정’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대원의 명단을 적어서 벽에 붙였다.
페리체 마을 롯지의 마당에서
페리체 마을을 나서며 바라본 풍경 - 캉테가와 담세르쿠 설봉
* [페리체에서 계곡을 건너 가파른 고개를 넘다] — 페리체패스를 넘어 딩보체 갈림길
오후 4시 15분, 페리체(Pheriche, 4,240m)를 출발했다. 오후의 해가 서쪽의 산봉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팡보체(Pangboche)까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아침의 출발지인 고락셉(Gorak Shep)을 기점으로 볼 때 오늘 트레킹 여정의 반 정도는 온 것 같았다. 후미의 기원섭 대원은 이상배 대장이 동행해 올 것이다. 가게와 돌담이 있는 마을길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올라섰다. 돌아보니 북쪽의 설산 연봉과 넓은 계곡의 분지 그리고 그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페리체 마을의 풍경이 가슴에 안겨왔다.
페리체 계곡을 돌아본 풍경
산모롱이를 돌아드니 깊은 협곡(峽谷)이 나타났다. 이 협곡의 물이 바로 저 아래에서, 추궁-딩보체에서 내려오는 임자콜라의 계곡물에 합류(合流)하는 것이다. 철제 다리를 건너 가파른 언덕을 치고 올랐다. 이곳이 바로 페리체 패스(Pheriche Pass)이다. 이때까지는 고도(高度)를 낮추며 평지의 길을 걷다가 다시 높은 고개를 올라가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절벽의 산허리 길은 아주 가팔랐다. 모두 기진맥진이다. 대원들의 간격이 또 다시 많이 떨어졌다. 고갯마루(4,270m)에 올라섰다. 사방을 둘러보니 엄청나게 높은 고지(高地)이다. 임자콜라가 내려다보이고 계곡 건너편 뒤로 아마다블람(Ama Dablam)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시야에 압도해 왔다. 북쪽을 돌아보니 멀리 로체 연봉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완만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멀었다. 깊은 곳까지 내려왔다가 산허리를 돌아드니 야크카르카가 내려다보이는 곳, 딩보체로 가는 갈림길 삼거리에 이르렀다. 해가 많이 기울었다. 해 그림자가 이미 계곡을 지나 건너편 산록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페리체 계곡의 쇠다리를 건너
페리체 패스(Pheriche Pass, 4,270m) 가파른 길을 치고 오르다
아주 가까이 이마를 마주한 아마드블람(Ama Dablam)
* [산록의 마니월을 지나, 소마레 고갯마루] — 돌아다보이는 순백의 아마다블람
자연석 돌판으로 겹쳐서 만든 마니월(Mani Wall)을 지났다. 그리고 평원의 길로 접어들었다. 너르고 평탄한 분지(盆地)의 길이다. 광활한 분지의 가장자리에 규모가 큰 롯지가 있다. 올라갈 때 보았던 그 ‘Sunrise Guest House’이다. 평원을 지나 야트막한 산기슭을 오른다. ‘소마레(Shomare)’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임자콜라의 깊은 협곡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갯마루 바로 아래 소마레 마을이 있다. 돌아보니 건너편 민둥산 뒤로 아마드블람의 하얀 설봉이 고개를 들고 있다.
우리가 방금 내려온 패리체패스로 올라가는 산길 / 오른쪽 아래 딩보체로 가는 산허리길
소마레(Shomare, 4,010m) 마을길로 내려갔다. 깊은 계곡, 임자콜라의 절벽 위에 있는 마을이다. 경사진 비탈에 형성된 소마레는 온통 ‘돌’이다, 돌로 집을 짓고 돌로 담을 쌓고 돌판으로 길을 깔았다. 돌계단을 내려가는 걸음마다 허벅지와 무릎에 심한 통증을 느낀다. 마을은 이미 해가 진 상태, 소마레를 지나고 이어지는 깎아지른 절벽의 산길을 따라 걸었다. 왼쪽에는 수십 길 아래 임자콜라의 계곡물이 세차가 흐르고 있다. 높은 산길에 올라서면 멀리 팡보체(Pangboche) 마을의 파란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는 그곳이 금방 닿을 수 있는 그곳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빤히 보이는 데도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히말라야 길이다.
* [소마레 마을을 지나 팡보체 가는 길] — 해가 지거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날이 점점 어둑해지고 있었다. 건너편 높은 산봉(山峰)에만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열심히 걸었다. 갈림길이 나왔다. 팡보체(Pangboche)의 '엄홍길휴먼스쿨'의 표지판이 가리키는, 위의 길은 윗마을[Uper Pangboche]로 가는 길이고 왼쪽의 낮은 길은 아랫마을[Lower Pangboche]로 드는 길이다. 위의 길은 포르체를 거쳐 쿰중으로 가는 길이니, 며칠 전 우리가 포르체를 출발하여 올라온 길이다. 오늘 우리는 팡보체의 아랫마을에서 유숙하고 내일 텡보체를 경유하여 남체를 경유로 몬조까지 내려 갈 예정이다. 팡보체는 아마드블람 베이스 캠프(BC)로 들어가는 거점 마을이다.
팡보체 아랫마을[Lower Pangboche]의 다랭이밭
금방 해가 저물었다.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반가운 얼굴들 앞에 나타났다. 우리의 카고백을 지고 먼저 도착한 네팔 친구들이, 이미 롯지에 짐을 내려놓고 우리를 마중 나온 것이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들의 모습이 반갑고 정겹다. 일부러 동네 어귀에 마중나와 우리를 반가이 맞으며 배낭을 받아 매려고 한다. 그들의 미소와 인정(人情)이 따뜻하고 고마웠다. 팡보체는 마을이 제법 커서 숙소를 찾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 [팡보체 <붓다롯지>의 밤] — 아주 늦은 시간에 도착한 후미 대원
오후 6시가 넘어서 팡보체(Pangboche, 3,930m)의 롯지에 도착했다. 우리가 유숙할 ‘붓다롯 지’는 2층으로 된 깔끔한 집이었다. 해가 지고 사위가 완전히 어두워졌다. 후속 대원들의 간격이 많이 떨어졌으므로, ‘네팔 친구’들이 다시 마을 입구의 갈림길까지 마중을 나갔다. 그런데 이상배 대장과 기원섭 대원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아침까지 이 대장의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고, 기원섭 대원의 컨디션이 염려 되었다. 7시가 넘어 이 대장과 기 대원이 도착했다. 참 멀고 먼 여정(旅程)이었다. 롯지의 식당은 말린 야크똥으로 불을 피어 아주 따뜻했다. 현지식으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코에서 단내가 나고 거칠게 부릅튼 입술이 많이 불편하고 아팠다.
팡보체의 붓다롯지 / 금빛 저녁햇살을 받고 있는 아마드블람(Ama Dablam)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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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소포화도가 위험한수준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마니 힘들었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