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 다르크의 수난 >
이 영화는 잔다르크의 영웅적 삶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지 못했을 부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또한 그녀의 ‘수난’ 부분에 집중함으로써 또 다른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그녀의 삶을 잘 이해하며 진실다운 진실에 근접하는 지점을 마련해 준다.
크게 잔다르크를 마녀로 몰기 위한 재판과정과 화형장면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극의 진행에 따라 보는 이의 정서를 심화시킨다. 종교적 신념이 영화를 이끄는 중대한 축이며 실재했던 인물들을 통해 대립의 양상을 띠고 있으나 이 영화는 종교를 비판하거나 옹호하거나 ‘종교적인 구원’에 대하여 다루었다기 보다 잔다르크의 삶에 대한 열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삶 가운데 커다란 시련에 직면한 한 인간과 그런 인물이 겪는 고통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스크린 위에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잔 다르크의 고통의 찬 절규가 들리는 듯 했다. 정적인 카메라의 움직임과 화면을 가득 채우는 주인공의 얼굴과 표정, 대사의 자막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가고 있는데, 이 점이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이라고 생각했다. 무성영화에서 현란한 기술을 사용하기보다는 연기자의 표정과 몸짓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며, 잔 다르크의 표정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따라서 감독은 영화에 굉장히 많은 클로즈업 기법을 등장 시켰다. 첫 번째는 잔 다르크의 재판 장면이다. 일반적으로 동적이기보다는 정적 기능을 수행하는 클로즈업 쇼트들을 사용하면서, 카메라를 활발하게 작동시켰다. 카메라는 잔 다르크의 얼굴을 비스듬하게 사선으로 촬영하고, 또 곧 이어서 턱으로부터 얼굴을 잡아나간다. 클로즈업은 대상의 세부를 확대하고 알려주는 기능을 넘어서게 된다. 이러한 화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평범한 대상에게서 예기치 못한 매력적 요소를 발견하게 한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극단적인 카메라 앵글을 통해서 잔다르크를 독특하고 개성 있는 인물이 되게 한다. 둘째로는, 판사들을 클로즈업으로 담은 장면이다. 판사들의 음모를 클로즈업을 통해 위선적인 동정 뒤에 숨겨진 무감각한 냉소주의로 폭로하였으며, 그들의 반대편에는 신에 대한 믿음 속에서 힘을 찾은 똑같은 크기의 잔 다르크로 클로즈업하여 나타내었다. 이처럼 <잔 다르크의 수난>에서 클로즈업은 그 의미가 확대되고, 그 기능 역시 확대된다.
이와 같이 의도된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은 이야기의 주제보다도 표정이나 감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관객이 이야기의 주제보다도 인물의 표정이 지니고 있는 인간의 자연스러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감독이 의도한 대로 잔 다르크를 하나의 보편적 인간상으로 구상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양식을 통해 본인 또한 <잔 다르크의 수난>을 특정한 역사적 시대와 특정 정치 배경에 서 있었던 한 여인의 정치적 종교적 투쟁의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인간의 신념과 갈등의 문제로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