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리고) 그림자
이형국
빛은 그림자다. 빛이 물체를 투사하면 (에 닿으면) 물체의 반대편에서 이차원적 형태의 그림자가 태어난다. 주검은 빛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곳의 안착이다. 빛은 그늘을 만들지만. 그늘은 빛을 막아준다. 인생이 그렇다.
인간은 죄를 잉태한 채 태어난다.(다고 한다.) 무슨 성선설이니 성악설을 얘기하자는 건 아니다. 본능적인 (원초적) 악이 내재하여 있다는 거다. 선이란 밝음과 죄라는 어두움이 존재하게 된다는 거다.
누구에게든 죄악을 알게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죄에 물들어간 시기가(시절이) 있다. 모두에게 있어서 대동소이하다. 아이러니하지만 나이가 먹을(들)수록(,) 학습의 기간이 계속될수록 악도 성장한다. 선악에 대한 판단력이 생기면서 악에 대한 모호한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일정 정도의 사이코패스화가 된다.
학창√시절 나의 죄를 고백한다. 어머니에게 참고서 산다고 삥땅하(치)던 일, 학교 주변의 조그마한 서점에서 참고서(책) 들고 튀던 일 등의 행위였다.(이다.) 예를 들어 친구들 두세 명이 서점에 들어가서 나머지가 주인의 시야를 막을 동안 한 명은 가방 사이로 재빨리 참고서를 (눈여겨 둔 책을 가방에) 집어넣고는 태연하게 나갔(왔)다. 탐심보다는 마음 졸이는 재미 때문이었다. 회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망동이다.
(친구들 얘기는 무용담처럼 짜릿하였다.) 그 밖에도 여학생 헌팅하러 야간 영화관에 들어간다. 여학생이 서 있는 옆에 밀착해있다가 손을 슬쩍 부딪친다. 흠칫거리면 자리를 옮기고 가만히 있으면 손을 잡는다. 반 친구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못내 부러워했다. 나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여친을 갖게(사귀게) 되었다. 한 줄기 찬란한 빛이었다. 세상을 얻은 듯 마냥 기쁘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 찬란한 빛줄기 속에는 아픈 음영도 함께 드리워지는 걸 몰랐다.
가출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서 (외박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여친의 부모가 갑자기 친척 집에 갔다 온다며 집을 비우셨단다. 혼자 있기 무섭다며 자기 집에 같이 있자 했다. 그 달콤한 빛을 따라가고자 했다. 자율 학습 마치자마자 그 아이(그 달콤한 빛을 따라 여친) 집으로 갔다.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지만, 앞뒤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하룻밤과 낮 동안을 함께 했다. 다음 날 수업이 끝날 시간에 학교에 갔더니, 학우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일이냐는 듯 난리가 나 있었다. (나 없는 새) 어머니가 학교(에) 다녀갔는가 보다.
어머니는 눈두덩이 퉁퉁 부어 있었다. 울면서 밤새우셨나 보다. 미안했다. 연락 방법이 없었던 걸 어떡하나. 궁색한 변명거리로 어머니를 달래야 했다. 밤새도록 전등 밑에서 (정신없이) 노닥거리며 눈빛을 반짝일 (거릴) 때, 어머니는 밤새(날밤 새우며) 그림자(처럼) 위에 앉아 아들의 안위를 눈물로 기도했으리라. 불효를 저질렀지만 미안할 뿐 죄인 줄은 미처 몰랐다.
↖잘 나갈 때, 즉 내 삶이 환할 때(하게 잘 나갈 때) 그림자도 짙어진다는 걸 체험해보니까 알게 되었다. //관운이 있어선지 승급이 남보다 빨랐다. 회사 내외에서의 헤게모니의 확대와 그에 따른 성과보수의 확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건방 떨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휴일이면 골프가 친구 되고 밤이면 룸살롱에서 양주를 벗 삼았다. 그 외 도박 등 부적절한 일상생활은 나의 삶을 짙은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게 했다. 짧았던 사탄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데는 몇 배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늘이 진노했다. 사탄의 그림자가 된 나를(내게) 불의 심판을 내렸다.
회사가 부도나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검찰과 법원을 오갔다. 제일 먼저 거래로 인해 사귀었던 사람들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학교 동기들도 전화가 뜸해지더니, 마지막으로 나 혼자만 남았다. 하늘이 빛을 거두어 가버렸다. 그림자도 없는 죽음과 같은 시기였다. 수십 년 만에 정신적 물질적 궁핍을 맛보았다. 큰딸은 일 년(대학교를) 휴학했다. 정신적으로 제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허망한 자존감도 무너져버려, 옅은 음영조차도 지워져 버렸다. 투명√인간처럼 맴돌았다. 어떻게 하든 내 그림자를 찾아내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허공을 손으로 휘저어가며 한 발짝씩 나아가려 애썼다. 바늘구멍만 한 빛조차 없었지만, 이빨을(를) 악물었다.
고등학교 동기인 친구가 본인 회사에 나를 취업시켜주었다. (어둠 속 한 줄기 빛이었다.) 부모님을 안심시키고 가족을 돌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전 직장만큼은 아니었지만, 여분의 직장생활이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감사한 마음을 가슴에 새겼다. 모든 일에 절제를 앞세웠다.
이제는 호기나 부릴 나이는 넘었다. 절제된 생활은 오염되어있던 내 그림자를 깨끗이 씻어낼 것이다. 세상을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나는 매일 여러 번 성찰한다(吾日三省吾身).’고 설파했다. 내 남은 삶의 이념이다. (2023.02) (11.5매 1656자)
○ 빛과 (그리고) 그림자 : 가수 김동아, 패티 김
귀격과 천격
권자이
귀격은 (귀한 사람은) 얼굴이 잘 생긴 것(탓)일까? 천격은(천한 사람은) 가난해서 남루 해 보이는 것일까? 소위 말하는 귀공자 타입은 타고나는 것일까? (판단하기 어렵다.)
요즘은 모든 사람이 영양상태도 좋을뿐더러 각자 개성이 있어 외적으로는 다 귀격이다. 과거 계급사회에서는 타고난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귀격과 천격의 경계가 엄연히 구분 지어졌다. 현대사회에는 모든 일이 분업화되어 있고 전문화되어√있어 직업에 귀천도(이) 없고 타고난 신분√차별도 없다. 그러나 귀격이 있고 천격이 있다. 그것의 구분은 부끄러움을 알고 모르고의 차다.
중국 역사상 가장 태평 성대함을(를) 누릴 때는 요, 순 시대라고 한다. 요임금은 (조조의 친구) 허유의 인품을 알아본다. 자신은 횃불에 비유하고 허유는 태양에 비유하며, 태양 앞에 횃불은 존재가치가 없으니 제발 임금 자리를 맡아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허유는 염천강에 귀를 씻어버린다. 허유는(가) 요임금을 향해 (한 말이 의미 깊다.)
“네가 할 일 다 하고 나에게 자리만 주면 내 할√일이 없다. 새가 가지 많다고 다 둥지 틀더냐(,) 한 가지만 하면 된다.”
요임금은 또 순을 찾아가 자신의 (두) 딸 두 명을 다 줄 테니 임금 해달라고 사정을 한다. //순임금은 (어떤가.) 허름한 평민√차림으로 민생을 둘러보러 나가서 밭가는 농부에게 이 나라 임금 이름을 아느냐 고 묻는다. 농부는 (가 대답하였다.) ↘“세상이 이렇게 태평성대한데 임금 이름 따위는 알아서 뭣 하(오)느냐 고 되받는다.(”)
죄를 짓지 않고도 자신의 능력을 돌아보고 부끄러워하며(한 요와 순임금이다.) 자신보다 훌륭하다고 여기는 자에게 아무 사심 없이 권력까지도 내주려고 사정을 하는데,(하기도 한 분들이다.) 왜 이 시대에는 요, 순이나 허유 같은 위정자가 없을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도 하고 죄를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실수에도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짓고도 고개를 빳빳하게 쳐드는 뻔뻔함을 보이는 자들이 있다. 서리 내린 뒤에라야 굳센 풀을 알 수 있듯이, 큰일을 겪어봐야 그 사람의 본성이 보인다.
남녀를 막론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감성이 무뎌지지만(,) 동물과 구분지어지는 것 중 하나가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모른다는 것은 인간이지만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다. 동물은 특정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니 유치한 거짓말이나 (유치한) 행위로 합리화하고 정당화하지 않는다. 반면 인간은 교묘한 행위나 거짓√언어로 많은 사람의 눈을 가리게 하고 자신의 정체성까지 상실해도 부끄러움을 모르니 얼마나 천박한가.
시골 살 때 (일이다.) 동네에 팔십대 노부부가 사는 집을 도배도하고 재래식√부엌을 고쳐주기 위해 봉사자들이 일을 하러 왔다. 그때 노부부는 아들, 딸 같은 사람들에게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굽어진 허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굽히며(혔다.)
↖“아무√쓰임도 없는 노인네 여태 살아 있어 젊은 사람들 애먹여서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말이다.)
↖오래산 것이 왜 죄가 되겠는가, 평생 흙만 파고 정직하게 산 것뿐인데......?(.)
↖온갖 잘못을 저지르는 것 중에도 잘 드러나지 않게 소위 똑똑하다는 자들은 권력이나 직위를 이용해 교묘한 수법으로 편법을 쓰는 경우도(를) 종종 보게√된다. 이럴√때 누군가는 이유도 없이 피해를 입고도 무엇에 당한지도 모르고 억울함을 겪게 된다. (차라리 시골 노부부의 삶이 우러러 뵌다.)
어떤 잘못에 해명을 해도 진실성이 있는 말은 (해명은) 간단명료하며 잘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여긴다. 반면 진실성이 없는 말은 일관성이 없고 너덜너덜 하며 모든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돌아보면 나 역시도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의식 무의식적으로 크고 작은 실수는 물론이고, 인연 있었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잘못을 저지른 (준) 일이 셀 수 없을 것이다.
기억으로 담아두지 않았을 뿐이지.(,) 참으로 부끄럽다.
성인은 종일 하는 일이 참회하는 일이고 범부는 종일하는 일이 계산하는 일이라고 하든데,(한다.) 성인의 행위는 못하더라도 남은 여생(은) 천박하게 살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엄중한) 생각에 미치니 두려워진다.
요즘√시대는 이렇듯 신분이나 직업이√아니라,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직업의 귀천을 들먹일 게 아니다.) 작고 사소한 실수에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귀격이 아니겠는가.
○ 일관성 있는 지론을 펼쳐야 설득력 있습니다.
○ 요순시대 임금 자리를 넘겨주려는 당위성이 부족합니다.
○ 단락과 단락을 매끄럽게 연결해야겠습니다.
돌고 도는 세상
이지연
(학생들 지도 방문 날이다. 영훈의 집은 동네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동네에서 멀찍이 떨어진 그곳에는 공예방 가건물이 여러 채 있었다. (늘어선 곳이었다.) 낯선 나를 단박에 알아보고(본) 학습자 부모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들의 안내로 아이가 있는 컨테이너로 향했다. 열린 문으로 보이는 컨테이너 속이 어지럽다. 당황한 표정을 감추며 아이에게 밝게 인사했다. 정돈 안한(된) 물건들이 커튼으로 덮여(가려져) 있다. 앉을 자리는 청소했는지(만은) 말쑥한 카펫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앉은뱅이책상이 놓여 있다. (안절부절못하는 영훈에게 당황한 표정을 감춘 내가 짐짓 밝게 인사했다.)
곧 3학년이 되는 영훈이는 오늘부터 10개월간 내가 지도하게 될 학습자이다. 또래보다 몸집은 크지만(,) 숫기 없고 목소리도 작았다. 어머니께 초기 면접을 하며 가정 형편을 알아보니 기초 수급자 가정이다. 영훈이 어머니는 베트남 사람이고, 아버지는 손가락 일부가(이) 다섯 개나 절단된 장애인이라고 했다. 말하는 태도나 내게 난로 옆에 앉게 하는 걸로 봐서 예의가 바른 것 같았다. 컨테이너 옆 가건물은 영훈이 부모님 일터이다. 남편 손이 불편하여 자신이 일을 돕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며 웃는 그녀가 안쓰러우면서도 고마웠다. 하루 종일 작업장에서 일하기에 온 식구가 아침에 작업장으로 와서 저녁때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휴식 공간으로 마련한 컨테이너이지만 물건이 겹겹이 쌓여 있어 빈 공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책상이 있지만(위에) 학습지가 제멋대로 쌓여 있었고,(다.) 책꽂이에는 아이가 읽을 만한 책이 없을 뿐더러 꽂힌 책은 먼지가 뽀얗다. 의자 없는 책상은 제 구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듯 무심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기초 조사와 아이 학습 능력 테스트를 하며 1시간 넘게 쪼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하반신이 뻐근하다. 방문수업의 고질병이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작업장에서 아이(영훈이) 어머니가 나왔다. 다음 수업부터는 책상에서 수업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의자가 없다고 걱정하는 어머니께 구해보겠노라고 안심 시켰다. 부모님이나 아이가 예의√바르게 행동하여 정이 가고 관심을 더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주고 싶었다.)
지인들에게 전화와 문자로 폭이 좁은 깨끗한 의자 2개 구한다는 말을 퍼뜨렸다. 원하는 의자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남편과 몇몇 지인은 부모한테 구해달라고 하지 왜 사서 고생하냐고 했다. (짐짓 나무랐다.) 내가 구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아 그리 하는 것이라 대답했다. 운 좋으면 우리 동네에서 마음에 드는 의자를 구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며 남편이 스마트폰으로 가끔 들여다보는 중고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깨끗한 철제 의자가 마음에 들지만 애석하게 하나밖에 없어 소용이 없었다. 두어 시간 구경했(열심히 살폈)지만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비싸거나 거리가 멀어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의자도(가) 몇 개 있었다. 헤져서 버려야 될 것 같은 나눔 물건도 있었지만 아무거나 구해주기는 싫었다.
오지랖이 넓다고 핀잔하던 남편도 수시로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해 보는 눈치(였)다. 주말 늦은 밤 스마트폰을 뒤적이던(만지작거리던) 남편이 마땅한 의자가 있다며 보여주었다. 5분 전에 올린 것이었다. 등받이까지 폭신하고 산뜻한 색상의 의자 2개가 인근 동네에서 나왔다. 그것도 무료로 준다는 것이 아닌가. 채팅으로 얼른 찜했다. 일요일 오전 시간에 가지러 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일부러 가야√하는 수고로움은 감수해야(했)지만 마음에 드는 의자를 구하게 되어 기뻤다.
내비게이션 검색 창에 채팅으로 알려준 주소를 치니 집에서 15분 거리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골목이지만 길갓집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도착했노라 전화하니 젊은 남자분이 금세 의자 2개를 갖고 나왔다. 트렁크에 이리저리 맞춰 자리를 잡(싣)느라 애를 먹었지만(어도,) 책상을 쓸 수 있다는 기쁨에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의자를 보는 영훈이 표정이 기대된다. 트렁크에서 웅크리고 있는 의자를 빨리 책상 앞에 앉히고 싶다.
나눔과 봉사는 (어쩌면) 돌고 도는 것이다.(것인지도 모른다.) 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봉사하고, 나눌 수 있는 건 나누면 (내게로 돌아온다. 영훈이네 의자가 그렇다.) 그만이다. 어떤 (갈급한) 이에게는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신청해 주고, 어떤 이에게는 생필품 나눔을 한다. 영훈이를 위해 의자를 구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니 (구해준 덕일까, 또) 다른 나눔이 오기도 한다. (온다.) //한 마을에 사는 친구 텃밭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제철 채소가 자란다. 나를 비롯하여 여러 지인들이 무시로 드나들며 푸성귀를 뜯어 먹는다. //나눔이든 봉사는 꼭 받은 이에게 갚지 않아도 좋다. 대가를 바라는 나눔이 아니기에 굳이 받은 이에게 갚을 필요는(가) 없다. 내 도움을, 내 나눔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행하면 그만 아니겠나. (돌고 도는 나눔과 봉사가 흥겨운 봄날이다.)
2023. 2.26.
○ 서두는 짧고 명료하게 하세요.
○ 말미 부문을 잘 정리하세요.
- 말미까지 영훈이 얘기를 중심으로.
첼로와 댄스
(호작질 미련)
엄영희
(나는) 첼로 소리를 좋아한다. 낮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 G 선의 소리가 너무 좋다. 언젠가 아마추어 단원으로 첼로 연주자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나저제나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백화점에서 날아든 전단지에 눈이 번쩍 뜨였다. '울림이 있는 첼로'(,) 제목도 멋있게 소수정예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당장 전화로 예약하고 등록했다. 창고 한편에서 수년째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연습용 첼로를 꺼내어 닦았다.
매주 금요일 오후 무거운 첼로를 메고 몇 달 동안 빠지지 않고 다녔다. 수강 인원은 딱 4명, 피아노를 잘 치는 아가씨, 같은 성을 가진 동생뻘 되는 플루티스트,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한 훈훈한 외모의 카페 사장(이다). 나를 제외하곤 (빼곤) 모두 음악을 전공하기도 했고, 첼로 연주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아름다운 선율을 낼 때 나는 몇 주 동안 활 긋기만 반복했다. 이러다 평생 활만 긋겠다 (다 말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굳어질 대로 굳어진 손가락으로 바른 자세로 활을 (바르게) 잡아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시내 악기상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갔다.
“(‘)괜찮은 첼로 하나 사고 말아야지.(’)”
(작심하고 시내 악기상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갔다.)
↖서툰 목수가 연장 나무라듯 잘 안 되는 것이 첼로 탓만 여겨졌다.(탓으로 여긴 거다.) 악기상 여주인은 본인도 최근에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에 만난 고객 한 분은 일흔이 넘었는데 첼로를 처음 시작했다고(며) 나를 격려했다.
“앞으로 10년 후를 생각해 보이소.”
마음마저 고운 주인은 첼로는 연습용을 좀 더 사용하고 필요하면 수리도 해주겠다고 해서 잘 끊어지는 (끊어질 때를 대비한) 줄 몇 개와 첼로 용품들을(만) 샀다.
첼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가르쳐 걸 떠올리며) 거울 앞에 앉아 자세를 잡아본다. 폼은 그럴듯하다. 보면대에 스즈키 첼로 교본을 얹어 놓고 아는 동요부터 연습했다. 몇 곡을 간신히 연주할 수 있게 될 무렵 다음 학기가 시작되어, 또 등록했다.
(그렇지만,) 수강 인원이 모자라 폐강될 것 같다는 전화가 왔다. 영업을 위주로 하는 백화점 성격상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무거운 악기 들고 다니며 나름 교통이나 여건을 고려하여 등록한 수강자들은 항의했다. 그래봐야 단 (고작) 4명,(그야말로 소수의견에 불과하였다.) 담당자는 5명 이상만 되어도 폐강하지 않을 수 있다고.(며)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고 했으나(다. 간절한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시간만 흐른 채 강좌는 없어져 버렸고, 갈 곳을 찾지 못한 (잃은) 첼로 수업은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문화센터에서 댄스를 배운 적도 있다. 몸치로 평생을 잘 살아 살아왔는데 느닷없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는 (댄스 열망은) 유럽 어느 나라를 여행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날은 패키지여행 일행들과 클럽에 가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넘쳐나는 클럽에는 세계 각 곳에서 온 여행자들이(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화려한 테이블보가 덮인 테이블마다 그 나라 국기와 국가명이 쓰인 팻말이 놓여 있었다. 태극기 아래 'KOREA'라고 쓰인 테이블엔 우리 일행뿐, (그야말로) 우리가 국가대표였다.
한껏 고무된 목소리의 진행자는 중간중간 참여한 나라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치면서 관객들의 호응과 참여를 유도했다. 자기 나라 이름이 불릴 때마다 환호와 함께 몇 사람씩 몰려√나가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하였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노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어떻게 하나?' (싶은) 걱정도 은근히 되었다.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드디어 들뜬 목소리의 사회자가 외쳤다.
“코리아, 코리아!”
순간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우리 일행들의(중) 한 무리가 벌떡 일어났다. ‘좀 놀아본 분들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아뿔싸 그들의 발걸음은 출구로 향하고 있었다. 나 또한 무대 체질은 전혀 아니어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진행자의 (얼어 있었다.)
“코리아!”
(연신 불러 젖히는 진행자의) 소리가 잦아들 때를 기다리면서 우두망찰 부끄럽고 촌스러운 코리안이 되어 있었다. (되고 말았다.)
세련된 코리안이 되기 위한 고심은 댄스 배우기로 싹을 틔웠다.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주변에 소문부터 냈다. 주말엔 시내에 나가 댄스용 구두를 샀다. 춤출 때 신는 구두가 따로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몇 주는 대형 거울 앞에서 열 지어 기본 스텝을 하고, 그다음부터는 파트너를 바꾸어 가면서 했다. 직장인을 위한 댄스라고 해서 혼자서 추는 춤인 줄 알았는데 난감했다.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추니 나도 웃기지만 남들을 보면 더 우습기도 하고,(하였다.) 나무√둥치 같은 뻣뻣한 몸으로 춤추겠다고 들이대는 남자 파트너를 보면 웃픈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는 남자들의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듣기에도 어색하고 민망했다.
퇴근 후 있는 대로 속력을 내어 (재빨리) 달려와야 주차하고, 제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발이 꼬일 때마다 강사는 말했다.
“처음이라 그렇지 자꾸 하면 자연스럽게 됩니다.”
격려하는 그녀의 소리도 허투루 들리기 시작했고, 더 비싼 가죽 구두 사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차할 공간이 없어 몇 바퀴를 돌다가 수업이 반이나 지난 다음에 들어가는 일도 몇 번 생겼다. 바쁜 일과 때문에 한두 번 빠지고, 여름이 오자 그냥 있어도 땀이 나는 판에 나와 남의 땀 냄새를 맡는 것도 고역이었다. 춤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수강 기간도 다 채우지 못하고 끝난 춤 수업은 신데렐라 구두 같은 은빛 구두만을 신발장에 남겨 놓았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꼭 전문가가 아니면 어떤가? 모두가 다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대로 풋풋함과 좌충우돌하는 용기가 있지 않은가? 여러 분야에 아마추어들이 늘어나는 요즘 1만 시간이라는 개념이 꼭 산술적으로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분야에서 중단하지 않고 오랜 시간 즐기면서 관심을 두고, 연습과 시간을 투자하고 지속해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번 생에 첼로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댄스는 남의 춤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보다. 첼로와 댄스는 마음은 원이로되 몸과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던 내 인생의 호작질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열정이 도질까 싶어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첼로와 신데렐라 구두를 정리하지 못했다. 이들이 빛 볼 날이 오기는 할까. 봄날에 새싹 돋듯 죽었던 열정이(또한) 살아날 날이 올까?(.) 그나저나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또 다른 호작질이 되는 건 아닐까. (첼로와 댄스 못다 한 아쉬움에 가슴 아리다.) (17매)
웃음꽃
배정행
입춘이 지나자 벌써 마음이 들뜬다. 올겨울이 유난히도 추워서였는지 이번처럼 봄을 기다려 본 적이 없다. 봄이 어디까지 왔나 궁금해서 창밖 아파트 화단에 있는 매화나무로 자꾸 눈길이 간다.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주는 나무다. 하지만, 아직 꽃샘바람이 매서워 꽃 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행이라도 떠나볼까. 꽃샘바람이 매서우나 봄맞이를 궁리하고 있을 때다.)
봄맞이하러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볼까 궁리하고 있을 때다. 마침 (대구)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밀양 사는 친구(Y)가 나들이 오라는√데 갈 수 있냐고 묻는다. 모임 일원인 중학교 동기가 밀양 사는데 한 번도 그쪽에 가서 모인 적이 없어서 흔쾌히 동의했다. 모임 회원 10명 중 한 명을(친구를) 위해 9명이 움직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밀양에서 모이기로 뜻이 모아졌다
아직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있는 중학교 동기들이 있다. 중학교 (학창 시절) 때 워낙 끈끈하게 맺어져 있던 사이여서 그럴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도 대구 사는 친구를 중심으로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는 같은 반에서 공부한 동급생이 아니라(기 전에) '화랑 단'이라는 단체의 일원이었다. 각반의 실장, 부실장으로 이루어진 화랑 단은 경주 '화랑의 집'에 가서 숙박하며 교육받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유 교양 반'이라는 고전 독서 반에도 여러 명이 겹치기로 속해 있었다.
우리가 모두 합창반이었던 일을(때를) 회상할 때는 늘 폭소가 터졌다. 음악 선생님이 합창반 뽑을 때, 노래 잘하는 학생을 뽑지 않고 성적이 우수한 아이(학생)들 위주로 뽑았기 때문이다. 누가 들어도 노래 못 부르는 아이가(라도) 소문난 우등생이면 무조건 합창단으로 영입했다. 여러 명이 일어나서 노래 부른 후 합창반에 적합한 학생을 뽑았다고는 하나 그건 형식일 뿐이었다. 그 시절에는 교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때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린 자주 만나게 되었고 많은 활동을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졸업 후 다른 고등학교로 뿔뿔이 흩어져도, 여러 지방의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을 때도 우리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다. 결혼해서 서울로 가고부터는 소원해졌지만, 대구로 오자마자 바로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해 사방으로 알아보았다. 계속 모임을 하고 있었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달려갔다. 그렇게 이어져 온 동기회 모임이었다.
2월 모임 날에 밀양에 사는 친구 Y가 빠졌다. Y는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매달 대구로 우릴 만나러 오는 친구다. 대구 사는 친구도(조차) 가끔 빠지곤 하는데 Y는 개근상을 줘야 할 정도로 모임에 열성적이었다. 그런 친구가 요즘은 한 번씩 모임을 거르기도 한다. 얼마 전 만났을 때 Y가 황반변성에 걸렸다는 사실을 남이 얘기하듯 꺼냈다. 한쪽 눈이 안 보이는데도 대수롭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건 우릴 안심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에다가 많은 대외 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 일에도 잘 대처하는구나 싶었다. 걱정하면서도 고통을 의연하게 이겨내는 Y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는 Y가 운전이 힘들어져 못 오게 되면 어쩌나 늘 노심초사했다. 이번엔 갑자기 일이 생겨서 빠진다고 하는데도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못 보게 되자 (뜸해지자) 이번엔 Y가 우릴 밀양으로 초대한 것이다. 나들이하기엔 추운 날씨였지만 그런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친구를 만날 생각으로 기꺼이 밀양으로 향했다.
수성 IC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40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인)데도 처음 가 본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대구보다 더 쌀쌀하니 따뜻하게 입고 오라는 Y의 말에 따라 모두 패딩 차림으로 왔(갔)다. 하지만, 밀양의 꽃샘바람은 세찼다. 월연정 동백은 아직 꽃봉오리를 터뜨리지 못한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매화와 배롱나무가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아직 겨울잠에 빠져 있었다.
"꽃 필 때 오면 정말 좋겠다."
하나 마나 한 얘기를 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보았다. 어디를 가도 아직 텅 빈 겨울 들판이었지만 친구의 안내로 밀양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점심으로 먹은 매기 구이와 메기매운탕은 대구에선 먹어볼 수 없는 특이한 맛이었다. 극구 사양했지만, 점심값을 초대한 사람이 (Y가) 내겠다고 해서 대접받는 느낌으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친구의 넉넉한 인심이 느껴졌다. 식사 후에는 밀양 천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실컷 수다 떨고 난 후 누리는 밀양을 떠나왔다.
Y가 손 흔들며 서 있는 모습이 멀어져 점이 될 때까지 사이드미러를 쳐다보았다. 남은 한쪽 눈을 보호하기 위해 밖에선 늘 선글라스를 써야 하는 친구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는다. 치장하려고 일부러 선글라스를 쓴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모습이었다. '오래오래 만나고 싶은 친구야, 네가 못 오면 우리가 가면 되지.' 모두 말없이 같은 생각 하며 대구로 돌아오는데 카톡 알림음이 동시에 울려댄다. 밀양 안내하랴 사진 찍으랴 동분서주하던 Y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전송하는 소리였다. 일제히 핸드폰을 열어보니 벌써 수십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사진 속 친구들이 모두 (티없이) 웃고 있다. 온종일 예쁘다, 멋지다, 모델 같다는 소릴 들어서 그런(선)지 모두 꽃처럼 예쁘다. 다른 사람 눈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눈엔 그렇다. 만나면 예뻐지고 눈만 마주쳐도 사춘기 소녀처럼 웃음 터지니(진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어릴 (소녀)적 친구들을(를) 만나러 가는 것일(고 온 까닭인) 게다. 동백이 피지 않으면 어떻고 매화가 꽃샘바람 피해 숨어 있으면(은들) 어떠리. 꽃 중에 제일 예쁜 꽃, 우리가 피워놓은 웃음꽃이 사방에 가득(만발)하니 그게 바로 진정한 봄 아니겠는가? (바야흐로 춘삼월 봄이다.)
○ 오프닝을 지루하게 여기는 관객 있습니다.
○ 서두를 가능하면 단문, 단도직입적으로
꿈√접기
이광조
여섯 아기가 일렬로 누워있다. 그 중 하나는(가) 손자 유현이다. 갸름한 얼굴에 눈이 초롱초롱한데 키는 제일 작다. 산후조리원 동기 여섯 엄마가 모임√하면서 찍은 사진이란다. 같은 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들이 몇 달간의 육아√실적을 비교해보면서 남긴 작품이어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딸아이 얘기를 따라가 보니 초보√엄마들의 호들갑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 재미있다.
한참√동안 열을 내어 이런 저런 얘기를 (열띠게) 늘어놓던 딸아이 얼굴에 그늘이 스쳤(친)다. 속이 상한단다. 누구√못지 않게 정성을 기울였는데 아이가 작아서 맥이 풀린다는 거다. 별소리 다√한다며 아내가 말을 막는다. 발육√시기가 사람마다 다른데 몇 달 되지도 않는 아이를 두고 어미가 할 소리냐고 나무란다. 나도 몇 마디 거들면서 딸을 위로하지만 섭섭한 마음 거두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 뒤에도 유현이는 성장이 그리 흡족하지 않았다. 어쩌다 어미의 부탁을 받고 어린이집에 찾으러 가는 날이면 또래들에 못 미치는 체구가 애달팠다. 다른 아이들보다 언어습득이 앞서고 두뇌√회전이 빨라 보이지만 먹성이 까다롭고 체구가 작은 것이 늘 안타까웠다. 어미가 워낙 몸피가 없어서 애도 약하다고 아내가 혀끝을 찼다. 우리 부부 둘 다 약한 것이 딸에게 대 물림됐다며 미안해하다가도, 딸애 가졌을 때 내가 자기 속√터지게 한 일이 많아서 그렇다고 화살이 나를 향해 날아오기도 했다.
그러던 딸이 달라진 속내를 내비쳤다. 친정에 와서 며칠 머무는 동안 근처 소아과에 유현이를 데리고 갔는데, 어미의 푸념을 듣던 의사가 한 마디 하더란다. 윤곽이 이렇게 생긴 아이들은 본래 빨리 자라지 않는 법이니, 엄마가 마음을 비우는 게 정답이라고 했단다. 이상하리 만치 그 말에 무게가 실리면서 (솔깃해지면서) 듣는 순간 바로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고 한다. 속앓이를 해오다가 지쳐서 스스로 포기하고 싶던 마음을 의사가 ‘툭’ 건드렸는데 그게 먹혀든 모양이다.
첫돌을 두어 달 앞두고 있는(둔) 이솔이는 유현이의 여동생이다. 덩치 작은 첫 아이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딸이 둘째는 제법 티룩티룩(퉁실퉁실)한 것 같다고 사진을 보내주며 좋아했던 녀석이다. 한 번은 딸이 아이 허벅지살이 겹치는 걸 보여주며 (제) 오라비하고는 완전 딴판이라고 자랑을 했다. 나도 애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볼륨 있고 야무지다고 장단을 맞추자 어미 얼굴이 바로 환해졌다.
누워 지내며 우유나 받아먹던 때의 이솔이는 무던한 아기였다. 아시타는 오라비가 천방지축 설쳐대어도 누워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던 순둥이였다. 그랬던 애(아이)가 두어 달 못 본 사이에 완전히 달라져 있다. 껌딱지처럼 어미에게 달라붙고 성에 차지 않으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어댄다. 평균√체중을 웃도는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매달리자 어미가 감당이 안 되어 (을 못해) 쩔쩔맨다.
성미도 지(제 오빠와) 오빠와는 많이 다르다. 기는 요령을 터득한 뒤로는 온 집을 다 헤집어 놓는다. 유현이가 귀찮아하는데도 기어이 그 방에 기어들어√가고 오라비(오빠) 손에 들린 장난감을 움켜잡으며 서로 차지하려고 실랑이를 벌인다. 여차하면 유현이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흔들고 옷을 붙잡고 매달릴 때도 있다. 큰 녀석은 싫다며 짜증을 내는데 자세히 보니 이솔이는 오빠를 몹시 좋아하는 것 같다. 유현이가 밀쳐서 바닥에 넘어져도 금방 일어나 다시 매달리는 걸 보면 자존심 팍 접고 덤비는 지독한 짝사랑인 것 같다.
작은 녀석을 뜯어 말리고 짜증√내는 큰 녀석을 이해시키느라 어미가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렇잖아도 약한 애가 육아에 지쳐 핼쑥하다. 사위가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키우는 데도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고 푸념을 한다. 그러다가도 이솔이가 한번 웃어 보이면 바로 무너지는 걸 보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나마저 어리둥절해진다.
하루는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동영상을 보여줬다. 딸이 찍어 보낸 거였다. 영상의 주인공은 이솔이였는데 어미가 쥐어(여)주는 예쁜 인형은 바로 놓아√버리고 지(제) 오빠의 장난감자동차를 거머쥔다. 그것도 모자라서 자동차를 뒤집어서 바퀴를 돌려보고 내부 부속품을 만지작거린다. 딸이 어이없어 하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그대로 녹음되어 있다.
사위가 컴퓨터, 음향기기 등 기계 해체 조립하는 걸 취미로 하는데 그걸 쏙 빼 닮은 유현이가(다.) 맨날 장난감을 조립하고 부수며 놀 때까지는 그래도 사내아이라서 그러려니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계집아이 이솔이마저 똑 같은 낌새를 보이자 딸의 심술보가 폭발한 모양이다. 배 아파가며 낳고 젖먹이여 키운 것은 본인인데 저는 손톱만큼도 닮지 않고 왜 모조리 신랑√판박이만 나왔느냐고 제 엄마한테 푸념하더란다.
지가 잘못 만들어놓고 누구를 원망하느냐며 웃다가 한 마디 더 보탠(탰)다. 울산에서 태어나 자라는 애가 사방이 현대자동차인데 (울산 애가) 어찌 그 영향을 받지 않을 거며, (것이냐.) 임인년인 지난해(에) 났으니 그야말로 범띠 가시내야. (낸데,) 자동차 좋아하는 왈가닥인 게 지극히 정상이지. 그걸 무시하고 예쁘게 머리 따아(땋아) 내리고 나폴(풀)거리는 치마 입혀서 손잡고 다닐 생각했다면 어미 꿈이 너무 야무진 거지. 안 그래?
작은 체구지만 개성 있고 당당하게 어린이집을 수료한 유현이는 며칠 뒷면(곧) 유치원에 들어간다고 들떠 있다. 5월 초(몇 달 뒤)에 첫돌을 맞는 이솔이는 새로 사는 인형이나 소꿉놀이 장난감보다는 오빠가 쓰던 자동차와 로봇을 더 좋아할 터이니, 덕분에 생활비가 많이 절약될 것이다. 그런데 뭐가 문젠가. 어미가 꿈을 조금 (좀) 더 접기만 하면 될 것을.(23년 2월 27일, 14매)
분수 지키기
김상영
귀농 회원에게서 강아지를 사 왔다. 그는 식당의 음식 찌꺼기를 거둬 먹여 개들을 키우는 사람이었다. 살림에 보태고자 식용으로 팔 목적이었으니 족보고 뭐고 없었다.
아내와 나는 그 수캐를 ‘광돌이’라 부르기로 했다. 고향 마을이 넓을 廣 바위 岩으로 속칭 ‘광바우’여서다. 족보 있는 녀석이 아니어서 썩 내키진 않았으나 이왕지사 벌어진 일이라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개천에서 용 난다더니, 슬슬 진돗개 태가 나는 것이었다. 정통 진도산인 줄 아는 이웃이 생겼다. 짖기도 잘해서 개방된 촌집을 지켜주는 울타리처럼 여겼다. 더구나 스킨십을 잘하니 자식처럼 예뻐하게 되었고, 사흘이 멀다고 고기를 먹여 피둥피둥 살이 올랐다.
바야흐로 춘삼월이라 봄이 기지개를 켰다. 아내와 나는 개를 데리고 앞산 밭으로 나물 캐러 갔다.
“보소, 광돌이 또 이 칸다.”
가관이다. 개가 냉이 캐기에 여념이 없는 아내 등에 앞발을 척 걸치고 꺼덕대는 게 아닌가. 돌도 안 된 개 주제에 춘정春情이 발동한 것이다.
“하지 마, 죽는다.”
타일러보고 쫓기도 했지만 틈만 있으면 그 짓을 시도하였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고, 잡종 티를 내는 게다.
그날 이후 아내를 향한 광돌이의 연정은 저돌적이었다. 아내는 먹이를 줄 때마다 하트를 날리는 것 같다며 꺼림칙해 했다. 게슴츠레한 눈을 보면 ‘느끼남’이 따로 없었다. 차마 할 소리는 아니지만, 질투가 났다.
이웃 마을에 최 형이 살았다. 등단수필 ‘경운기 팔자 개 팔자’에서 언급한 형이다. 그는 너나없이 소로 농사를 짓던 시절에 경운기를 샀다. 본인 농사 틈틈이 이웃 일하러 다녔는데 집집이 얼른 해달라고 줄을 서다시피 했다. 탄탄한 체력으로 밭갈애비가 할 일을 도맡아서 다부지게 새경을 받았다. 도리깨질이나 수동식 탈곡기로 힘겹던 타작을 뚝딱 해치워 알곡 삯을 모았다.
말년에 삼십 리 밖 처가 동네로 이사해서 과수원 농사를 지으며 잘 산다는 소문이 났다. 동네 점방에서 맥주를 상자째 낸 데다 장터 다방 오봉 아가씨 커피값을 호기롭게 부담한 적도 있었다. 뜬 고향을 못 잊어 종종 얼굴을 비치던 그가 중병이 들었단 소문이 돌았다. 백약 처방 중에 광돌이를 눈여겨봤던 모양이었다. 최 형이 점방 아주머니를 중간에 끼워 개를 팔라고 했다. 마님을 집적거릴 정도로 왕성하고 덩치 큰 누렁개라 오지게 약발을 받겠다 싶었던 게다. 그런다고 덥석 응하기엔 키운 정이 만만찮아서 차일피일하고 있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고, 오지랖 넓은 점방 아주머니가 다시 나서서 섭섭잖게 개 값을 쳐주마고 했다. 이웃 간에 지나치게 이문을 밝히는 건 도리가 아니다 싶어 사룟값 정도만 받기로 했다. 헐값에 주기로 한 데는 쾌차를 비는 마음을 담았다. 여차여차해서 팔기야 했지만 광돌이가 개 주제를 알고서 혈기를 눌렀다면 그리 일찍 보내지 않았을 거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그 후로 다른 개를 키워보았지만, 본능에 충실한 흠만 없다면 광돌이는 명견이었다.
처가 식구들과 남이섬으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엔 남이장군의 묘가 있어 잊고 살던 역사를 살피게 되었다. 17세 때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25세에 공조와 병조판서를 역임했다니 불세출의 영웅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그가 신진세력의 약진을 고까워하던 반대파의 견제를 받아 28세에 능지처참당했다.
남아 이십 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이라,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 못 한다면 훗날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오.’가 빌미가 되었단다. 평평할 平(평) 자를 얻을 得(득) 자로 고쳐 역모를 꾀했다고 모함했다 한다. 자만심을 한껏 뽐낸 이 시는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반대파에게 활용되었으리라. 남이장군이 세조 임금 앞에서도 술에 취해 호기를 부릴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래서 액면 그대로 믿기가 뭣하지만, 젊은 공신으로서 기고만장했으리란 면은 짐작이 간다.
우리는 뭍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면서 갑론을박을 벌였는데 남이장군 앞세워 떼돈 벌겠다는 동서가 있고, 짧고 굵게 살아서 사내답다는 처제도 있었다. 나는 처제나 동서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 뽐내며 거만해서 명을 단축한 거라 확신했다. 광돌이가 춘정을 눌렀다면, 남이장군이 호기를 부리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 광돌이는 우리 집에서 사랑받으며 오래도록 살았을 것이고, 남이장군 역시 억울한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분수를 잊고 나대다가 화를 자초한 셈이라면 나는 어떨까. 가물에 콩 나듯 술 한 잔 사면서 호기를 부리는 건 아닐까. 밥술이나 먹는다고 뻐기며 살진 않을까. 경박한 글줄이나 써서 방송을 타고, 지방지에 실리는 것으로 자만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자수성가
이연희
부모 탓 환경 탓하지 않았다
내 가진 그릇의 크기에 맞춰
제 자리에서 인(풀)생 활짝 피웠다
첫댓글 형국샘 글에서 어머니 우신 이야기가 (여덟번째 단락) 좀 이상합니다. * 울면서 밤새우셨나보다.* 울면서 밤을 새우셨나보다 요렇게 하면 어떨가요?
못 보게 막아 놨는데 왜 이리 조회수가 많을 꼬.